눈을 줍다

 


 간밤에 눈이 내렸다. 언제 내렸을까. 새벽 너덧 시에 내다 볼 때에 벌써 눈이 쌓였을까. 글쎄, 서너 시까지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고 느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마당에 눈이 얇게 깔렸다.

 

 전라남도 고흥에서는 눈을 구경하기 참 힘들다고 했는데, 뜻밖에 처음으로 눈을 구경한다. 다른 시골에는 눈이 제법 쌓였을까. 멧골마을은 꽁꽁 갇히도록 눈이 내렸을는지 모른다. 내 어버이 살아가는 음성 시골집에도 눈이 펑펑 내렸을 수 있다.

 

 아이가 마당으로 나간다. 혼자 커다란 비를 들어서 쓰는 시늉을 한다. 가만히 바라보면, 쓰는 시늉만 하지는 않는다. 고 비로 마당에 아주 얇게 쌓인 눈을 쓴다. 그런데말야, 아이야, 이만 한 눈은 안 쓸어도 금세 녹는단다.

 

 한참 비를 들고 놀던 아이는 이제 맨손으로 눈을 쓸어서 모은다. 조물조물 조물락거리며 작은 손바닥에 작은 눈덩이를 얹어서 방으로 들어와 보여준다. “눈이가 저기 있어요. 눈이가 차가워요.”

 

 지난겨울에는 눈 내린 날 얼마나 추운가를 뼈저리게 느꼈을 텐데, 올겨울에는 눈을 주우면서 논다. 지난겨울 멧골집에서 펑펑 내리는 눈을 끝없이 쓰는 아버지를 으레 보았기에 아주 얇게 깔린 눈을 비질하며 놀려 했겠지. 야무지구나. (4344.12.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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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12-17 11:58   좋아요 0 | URL
사금벼리를 보면, 옛날 이야기 `만석군 며느리`가 생각나요~^^

전 사금벼리에게 홀딱 반해서 더 자주 들락거리는 것 같아요.
이가 참 고르게 났네요.
눈을 조물락거리는 손도 이쁘구요.
추운 겨울, 이보다 뜨뜻한 난로가 없지 싶어요.
부러워요~^^

숲노래 2011-12-17 16:31   좋아요 0 | URL
사름벼리가... 만 석을 질 수 있어서
아버지랑 어머니를
흐뭇하게 할 수 있겠군요 ㅋㅋㅋ

그러자면, 만 석을 지을 땅부터
마련해야겠군요 @.@
 


 아기를 안고 싶니


 세 살 아이도 네 살 아이도 몸무게가 너무 적어 한 살 동생을 안을 수 없단다. 너희가 조금 더 자라야 하고, 너희가 신나게 흙을 박차며 뛰어놀면서 힘살을 붙여야 비로소 너희 어여쁜 동생을 씩씩하게 안으면서 달래고 어르며 보살필 수 있단다. 마음껏 달리고 구르면서 놀렴. 마음껏 어버이 품에 안기면서 사랑을 받아먹으렴. 마음껏 햇살과 밥과 바람과 물과 이야기를 받아먹으렴. (4344.12.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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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동백꽃 낮 동백꽃


 아침에 꽃망울 연 동백꽃이 낮에는 활짝 피어난다. 이 작은 봉우리가 이렇게 커다랗게 벌어지기까지 몇 시간이 들었을까. 이렇게 흐드러진 동백꽃은 앞으로 며칠쯤 고운 내음 퍼뜨리는 잎사귀를 벌린 채 살아갈까.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가르치던 얘기 가운데 ‘동물은 움직이고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대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깜빡 잠이 든 다음 깨어나면 꽃잎이 달라지는걸. 아침에 바라보고 밖에 나가 신나게 뛰놀고 집으로 돌아올 무렵 바라보면 또 잎사귀랑 줄기가 달라지는걸.

 꽃은 꽃삶대로 꽃결을 느껴야 한다. 나무는 나무삶대로 나무빛을 헤아려야 한다. 지식에 갇히면 꽃을 꽃눈이 아닌 사람눈으로 바라보고 만다. 지식에 얽매이면 나무를 나무넋이 아닌 사람넋으로 따지고 만다. 사람은 사람살이 흐름조차 옳게 읽지 못하는 나머지, 꽃과 나무가 어떻게 흐르며 싱싱하게 살아숨쉬는가를 깨닫지 못한다. (4344.1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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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바라볼 곳
 [고흥살이 3] 마을 밥잔치



 새로 깃든 마을에 인사를 합니다. 밥잔치 조촐히 엽니다. 가까운 면에 있는 밥집으로 찾아가서 밥 한 끼니 함께 먹습니다. 밥집에서는 봉고차 한 대를 가지고 와서 마을 어르신을 태웁니다. 차 한 대로 모두 모실 수 없어 봉고차가 두 번 오갑니다.

 봉고차 오기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인형 업는 매무새로 마을 어르신들 사이에서 뛰어놉니다. 아이하고 살짝 떨어진 자리에서 아이가 노는 양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마을 빨래터요 샘터 시멘트울에 기대어 마을 너머 멧자락 내다보는 아이를 바라봅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 살아가는 터에서 제 눈 틔울 무언가를 바라볼밖에 없다고 문득 느낍니다. 아이 어버이가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아이는 도시내기 눈으로 온누리를 바라보며 큽니다. 아이 어버이가 시골에서 살아간다면 아이는 시골내기 눈으로 온누리를 바라보며 커요.

 아이가 늘 자동차를 바라본다면 아이 마음에는 자동차가 크게 자리잡겠지요. 아이가 아파트나 높은건물 늘 바라본다면 아이 마음에는 아파트나 높은건물이 널찍하게 자리잡을 테고요.

 풀약 치는 흙일꾼인 어버이를 둔 아이라면 흙을 일굴 때에 풀약을 쳐야 하는 줄 마땅히 받아들이리라 느낍니다. 손으로 빨래하고 어머니 아버지가 나란히 밥을 차리는 어버이를 둔 아이라면, 어버이 삶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받아들일 테지요.

 내 눈길을 아이 눈길과 맞추어 생각합니다. 내 삶길을 아이 삶길과 맞대어 헤아립니다. 내 사랑길을 아이 사랑길에 포개어 꿈을 꿉니다. (4344.11.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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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1-11-24 13:2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집들이를 하신거네요~~ 하하하

숲노래 2011-11-24 18:28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셈입니다 ^^

마녀고양이 2011-11-24 13:49   좋아요 0 | URL
동네 어른들께서 정말 좋아하셨겠어요...
된장님 댁 식구들이 활력소가 되는거 아닐까요? ^^

숲노래 2011-11-24 18:29   좋아요 0 | URL
다른 데에서 살던 사람들이
좋은 시골마을을 찾을 때에
이곳으로 한 분씩 옮겨 오며
살뜰한 곳으로 더 따사로이
일구는 손길을 늘리면 좋겠어요~
 


 비오는 날 아이와 걷는 길
 [고흥살이 2] 자동차 거의 안 다니는 길에서 놀기



 빗방울이 들지 않으면 자전거를 끌고 면에 다녀오려 했습니다. 빗방울이 뚝뚝 듣다가는 후두둑 쏟아지기까지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는 놓습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면으로 갈까 싶으나 버스 때가 맞지 않습니다. 집에서 면까지는 2.1킬로미터. 네 살 첫째 아이가 제법 잘 걸으니까 우산을 쓰고 걸어갈까 하고 생각합니다.

 비는 내리다 멎다 합니다. 아이는 혼자서 우산을 펴겠다고 합니다. 아직 혼자 우산을 끄지 못하지만, 단추를 꾸욱 눌러 혼자 우산을 펼 수 있습니다. 아이한테 우산은 제법 크고 무겁다 할 만하지만, 아이는 이 우산을 씩씩하게 들고 기운차게 걷습니다.

 아이 작은 손가방을 아버지 우산 고리에 겁니다. 아이는 저도 이렇게 하겠다며 제 손가방을 달랍니다. “너한테는 무거울 텐데?” 아이는 십 미터쯤 제 우산 고리에 작은 손가방을 걸친 채 걷다가 “아버지, 이거.” 하면서 제 우산을 들며 손가방 도로 가져가라 합니다.

 비가 멎을 때에는 아버지한테 우산을 들어 달라 합니다. 제 손가방을 달랍니다. 이렇게 이십 미터쯤 가다가 “아버지, 이거.” 하고 다시 부르더니 제 손가방을 들어 달랍니다. “나, 뛸래.” 



 짐 하나 들지 않고 홀가분하게 달리는 아이는 아버지보다 앞서 갑니다. 혼자 두 팔 휘휘 저으며 앞서 달리다가는 뒤를 돌아보며 살짝 멈추었다가는 다시 달립니다. 길가에 선 큼지막한 글씨판을 보고는 “저게 뭐야?” 하고 묻습니다. 길가에 선 ‘30’이라는 숫자를 보고는 “저 동그라미 뭐야?” 하고 묻습니다. “응, 서른이야.” “서른?” “서른.”

 빈 논에 앉아 이삭을 줍던 참새떼가 파르르 날아갑니다. 까치떼도 멧비둘기떼도 화다닥 날아갑니다. 그저 옆에서 걸어갈 뿐이지만, 이 새들은 저렇게 멀리까지 내뺍니다.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는 호젓한 길입니다. 문득 앞에 뭔가 드러누운 모습이 보입니다. 이 길바닥 한복판에 차에 치여 죽은 짐승 한 마리입니다. 내장이 터져 비져나오고, 이빨이 톡 튀어나옵니다. 자동차가 조금 더 천천히 달린다면 이 짐승을 치지 않을 텐데요. 밤이라 하더라도 싱싱 내달리지 않는다면 멧짐승이나 들짐승이 슬프게 죽지 않을 텐데요.

 옆으로 논이 길게 펼쳐진 길을 걷습니다. 논자락 길이지만 시멘트로 닦인 널따란 길입니다. 경운기나 짐차가 다니자면 이렇게 널따랗게 시멘트로 발라야 하겠지요.

 마을 사이를 지나갑니다. 아이는 쉴 사이 없이 여기에 쪼그려앉고 저기에 쪼그려앉습니다. 다 벤 논에 자라는 풀을 쓰다듬으면서 “풀아, 잘 있어.” 하고 인사합니다. 늦가을에 피는 들꽃을 내려다보며 “꽃아, 잘 있어.” 하고 인사합니다. 몇 걸음 못 떼면서 여기 바라보고 저리 들여다보느라 바쁩니다. 이것을 만지고 저것을 건드리느라 부산합니다. 



 호덕마을을 빠져나올 무렵, 시멘트를 깔지 않은 흙 논둑길을 봅니다. 아이랑 이 길로 접어듭니다. 아이는 또 쪼그려앉습니다. “이거, 반지 하는 풀이야.” 토끼풀 하나 톡 뽑으며 아버지한테 보여줍니다.

 호덕마을에서 나와 다시 찻길을 걷습니다. 아이는 찻길 한복판 노랗게 그은 금을 밟으며 달립니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아무 자동차가 안 보입니다. 십 분 남짓 아무런 자동차 없는 길을 걷자니 앞에서 군내버스 하나 다가옵니다. 아이를 불러 길가에 섭니다. 버스를 바라보며 손을 흔듭니다. 빗줄기가 조금 굵어집니다. 아이는 풀섶에서 강아지풀 하나 뜯습니다. 옆에 억새가 있기에 억새도 뜯어 보라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뜯은 강아지풀은 아버지한테 건네고, 제 작은 두 손으로 억새풀 하나 뜯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다가는 시든 꽃송이를 보고는 이 꽃송이를 셋 꺾습니다. 강아지풀이랑 억새풀은 한손에 쥐고, 시든 꽃송이 줄기 셋은 다른 손으로 쥡니다. 아버지는 우산을 펴서 아이한테 받칩니다. 빗줄기가 더 굵어집니다. 파리 한 마리 아이 우산 밑으로 들어옵니다. 



 이제 면에 들어서는 큰길입니다. 호덕마을과 동백마을을 지나 봉동마을로 나가는 찻길에는 드나드는 자동차 거의 없지만, 도화면으로 오가는 큰길에는 자동차가 제법 있습니다. 자동차가 여럿 오가니 아이가 외치는 소리가 잘 안 들립니다. 빗방울은 거셉니다. 아이는 얼른 걸을 생각을 하지 않고 종알종알 이야기를 합니다. 걸음을 재촉합니다. 큰길에서 벗어나 마을길로 접어듭니다. 이제 차소리에서 풀려납니다. 자동차 드나드는 길이란 걸을 만한 길이 못 됩니다.

 우체국에 들릅니다. 아이 신과 양말이 몽땅 젖었습니다. 양말을 벗깁니다. 신은 그대로 신깁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걷습니다. 가게에 들러 파리끈끈이를 사고, 빵집에 들릅니다. 면사무소에 들러 서류 하나 받습니다. 빗줄기는 더 거세집니다. 아이를 안고 택시 타는 곳으로 갑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택시를 탑니다. 아이는 졸음이 가득한 눈이지만 끝까지 졸음을 참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살짝이나마 잠들지 않습니다. 실컷 놀고 실컷 자며 실컷 다시 놀다가 밥을 실컷 먹으면 좋을 텐데. (4344.11.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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