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백 살 될 느티나무 (13.4.27.)
고흥 길타래 9―고흥에서 내로라 할 문화재

 


  우리 식구 고흥에 보금자리 마련해 처음 깃든 뒤, 고흥에서 가장 즐겁게 누릴 한 가지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보면, 꼭 하나 다른 어느 것보다, 고흥읍 느티나무 한 그루 꼽을 수 있습니다. 처음 이 느티나무를 보고는, 또 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아이들과 쉬면서, 참말 이렇게 우람한 느티나무를 곁에서 바라볼 수 있는 한편, 느티나무 굵다란 줄기를 두 팔 벌려 안을 수 있는 곳이 한국에서 어디에 있느냐 싶더군요.


  누구라도 가만히 생각을 기울이면 잘 알 수 있어요. 천 살 넘은 나무 가운데, 여느 사람이 손으로 줄기나 가지나 잎을 만질 만한 나무는 이 나라에 한 그루도 없어요. 천 살 넘은 나무는 ‘지킴나무(보호수)’로 삼아, 나무 둘레에 울타리를 촘촘히 박고는, 나무 곁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저 멀거니 눈으로 쳐다보거나 사진만 찍으라 하지요. 천 살 가까운 구백 살이나 팔백 살 나무들도 으레 ‘울타리 안쪽에서 외롭게’ 있기 마련이에요.


  고흥군 고흥읍 한쪽에 깃든 느티나무는 곧 구백 살이 될 텐데, 다른 어느 고을에서처럼 높다란 울타리를 둘레에 빙 세우며 못 들어가게 막지 않습니다. 울타리 없는 느티나무인 만큼, 우리 아이들도 나무에 올라타며 놀고, 읍내 아이들도 곧잘 나무타기를 하며 놉니다. 지난해에는 태풍이 찾아들어 아주 굵은 가지 하나 우지끈 부러졌지요. 이때 고흥군에서는 부러진 굵은 가지 오래도록 내팽개쳤다가, 두 달 즈음 지나고서야 누군가 짐차에 실어 땔감으로 쓰려고 가져갑디다(가지 부러져서 팽개쳐진 때부터 어른 두 사람이 끌고 가서 짐차에 실어 가져가는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구백 살 가까운 느티나무를 타며 놀 수 있다는 대목은 아주 놀랍고 반가우며 기쁩니다. 어른도 나무타기를 하면 더 좋겠지만, 어른은 좀 참으라 하고, 아이들은 나무 숨결 살가이 느끼도록 살짝살짝 나무타기를 하면서, 나무 한 그루 구백 해 가까이 살아온 지난날 돌이켜보는 좋은 이웃으로 여기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2013년 오늘날에서 구백 해를 덜면, 1113년 즈음 됩니다. 역사로 치면 고려 무렵이라 하겠지요. 그러니까 고려 무렵 누군가 심었을, 또는 느티나무 씨앗 한 톨 바람에 날려 씩씩하게 뿌리내리고는 어린 느티나무 한 그루 자라서 오늘날까지 고이 이은 셈입니다.


  숱한 전쟁을 치르고도, 온갖 아픔과 생채기를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또 웃음과 기쁨과 노래와 두레와 품앗이를 두루 옆에서 바라보면서도, 이렇게 오랜 나날 살아온 나무 한 그루예요.

  가을날 느티나무 곁에 서 보셨나요? 봄날 느티나무 옆에서 하늘바라기 해 보셨나요?


  고흥읍 느티나무는 해마다 사월 십일 언저리에 조그맣고 푸르게 빛나는 느티꽃 피웁니다. 느티나무이니까 느티꽃을 피우지요. 은행나무는 은행꽃 피우고, 단풍나무는 단풍꽃 피워요.


  다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느티꽃도 은행꽃도 단풍꽃도 눈여겨보지 못해요. 장미꽃이나 동백꽃은 바라볼 줄 알아도, 깨알만큼 아주 작고 갸날픈 느티꽃 알아보거나 즐기려 하는 사람 거의 없어요.

 

 

 

 


  느티꽃 피기 앞서 느티잎 푸르고 싱그럽게 돋습니다. 느티잎은 ‘풀빛’이라고만 하기에는 어딘가 아쉬운, 그렇다고 ‘나뭇잎빛’이라고만 뭉뚱그리기에는 더없이 모자란, 이리하여 느티나무 잎사귀이니까 ‘느티잎빛’이라는 ‘새로운 풀빛 이름’ 하나 지어야 어울린다고 하는 생각을 일깨웁니다.


  마늘잎빛과 파잎빛은 다릅니다. 유채잎빛과 배추잎빛은 다릅니다. 민들레잎빛과 소리쟁이잎빛은 다릅니다. 토끼풀잎빛과 괭이밥잎빛은 다르지요. 풀잎 가운데 똑같은 풀빛은 하나도 없어요. 모두 다른 빛깔이요 저마다 다른 무늬입니다. 똑같은 뽕나무 한 그루에서도 잎사귀 모두 잎빛 달라요. 밤나무에서도 감나무에서도, 잎사귀를 찬찬히 들여다볼 때에 ‘같은 빛이나 무늬나 크기’인 잎사귀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느티나무를 올려다봐요. 느티나무 느티잎 가운데 똑같은 잎사귀는 하나라도 있을까요. 구백 살 가까운 고흥읍 느티나무 곁에서 자라는 무척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 함께 살펴보셔요. 세 그루 느티나무 모두 잎빛 다르고, 꽃빛 달라요. 세 그루 느티나무가 나란히 느티꽃 피울 적에 곁에 서 봐요. 바람 쏴아 불면 꽃술 촤르르 나부끼는 소리를 듣고, 느티잎에 서린 푸른 냄새를 맡아요. 마음을 맑게 트고 생각을 환히 열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고흥군에서는 지난해부터 올봄까지 느티나무 둘레 둑방길 가장자리 따라 거님길을 마련했어요. 퍽 오랫동안 거님길 공사를 하더군요. 눈에 잘 뜨이라는 뜻으로 파랗고 붉게 빛깔 입히며 거님길을 지었구나 싶은데, 이 빛깔은 느티나무하고 조금도 안 어울립니다. 애써 거님길 마련한다 한다면, 거님길 따라 사람들이 거닐 때에 바라볼 느티나무와 냇물을 살펴야지요. 차분한 빛깔, 포근한 빛깔, 부드러운 빛깔, 옅은 빛깔, 맑은 빛깔, 밝은 빛깔을 입혀서 거님길을 꾸며야지요.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갑니다. 나무는 하늘을 바라며 자랍니다. 곧, 거님길 바닥은 흙빛일 때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둑방길에서 떨어지지 말라며 세우는 울타리라면 나무 줄기 빛깔이라든지 하얀 빛깔로 입혔으면 한결 잘 어울리겠지요.


  사월 이십일 즈음 넘어서면 고흥읍 느티나무 느티꽃 하나둘 떨어지고, 사월 이십오일 즈음 되면 느티꽃은 거의 다 집니다. 느티꽃을 보고 싶다면 한 해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고흥군에서는 느티나무 옆에 있던 평상을 치우고 정자를 돈 들여 지으면서, 아직까지 마무리 손질을 안 해요. 정자짓기 마친 지 벌써 여섯 달 넘었지만, 정자를 드나들 계단이나 발판 하나 마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자 안쪽 나무바닥을 말끔히 치우지도 않아요. 게다가, 평상 있던 자리에 있던 커다란 대리석을 느티나무 옆에 아슬아슬하게 쌓았어요.

 

 

 

 


  나무는 나무대로 고달픕니다. 사람은 사람대로 느티나무 곁에서 쉴 쪽틈마저 없습니다. 고흥군에서 느티나무 둘레로 제대로 된 쉼터(공원)를 마련하고자 한다면, 느티나무 앞에 선 자동차부터 치워야 합니다. 이곳에는 자동차가 서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느티나무 바로 옆에는 주차장 있으니, 주차장에만 차를 세우도록 하고, 느티나무 곁에는 아이들과 할매 할배 다리쉼 하면서 나무그늘 누리도록, 아늑하고 좋은 나무걸상 마련해서 놓아야 합니다. 예전처럼 평상을 다시 두어도 좋아요. 평상이 있으면 마을사람들 호젓하게 쉬고 어울리는 이야기마당 되고, 고흥으로 나들이(여행) 오는 사람들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울 자리가 됩니다.


  느티나무 둘레는 아예 아무 자동차도 못 들어오게 하면 훨씬 좋아요. 자동차 못 들어오면 이 둑방길에 있는 식당들 영업이 힘들지 않느냐 걱정하실 분 있을까 모르겠는데, 자동차 없이 걸어서 오가는 짤막한 100미터 남짓 한 길이 되면, 오히려 식당 손님 더 늘어나지요. 하염없이 잠자는 자동차한테 가로막혀 제대로 안 보이던 느티나무 우람한 나뭇잎춤 바라보면서 이곳이 참 예쁘고 좋은 줄 느낄 수 있습니다. 느티나무 둘레에서 다리쉼을 하던 사람들이 홀가분하게 느티나무 둑방길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밥 한 그릇 즐기겠지요.


  느티나무 둘레에 있는 아스팔트까지 걷어내어 흙길 풀밭길 만든다면 더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고흥군에서 힘써 알리려 하는 ‘고흥 영화잔치’를 느티나무 둑방길에서 열 수 있어요. 굳이 고흥만에다가 멍석 깔고 잔치판 벌여야 하지 않아요. 고흥 읍내에 아주 좋은 마당이 있어요. 구백 살 가까운 느티나무 둘레를 널따란 쉼터(공원)로 삼아서, 이곳에서 ‘느티나무 영화잔치’를 하면 돼요. 냇물 사이 가로지르는 다리 한둘 놓아, 느티나무 보러 이곳으로 걸어오기 좋도록 하고, 느티나무 둘레에서 어떤 공연이나 행사를 할 적에는 주차장까지 넓게 쓰면 더 좋겠지요.


  ‘경관’은 돈을 들여서 꾸미지 못해요. ‘경치’는 돈을 쏟아부어도 만들지 못해요. 오랜 나날 천천히 이루어지는 ‘경관’이고 ‘경치’예요. 느티나무 한 그루 구백 해 가까이 고흥 읍내에서 살아낸 아름다운 푸른 숨결 헤아리기를 빌어요. 고흥은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 따위 끌어들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문화재와 자연유산 많아요.

 


  사랑스러운 손길을 조금만 뻗으면 돼요. 따사로운 마음길로 조금만 애쓰면 돼요. 서울에도 부산에도, 제주에도 울릉에도, 광주에도 순천에도, 해남에도 강진에도, 이처럼 훌륭하고 놀라운 ‘구백 살 느티나무 문화유산’은 없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곁에서 쓰다듬고 어루만지면서 누릴 ‘구백 살 느티나무 자연유산’ 있는 다른 고을은 한 군데라도 있을까요?


  이제껏 못 알아보았으면 이제부터 알아보면 됩니다. 이제까지 돌보지 못했으면 이제부터 살뜰히 보살피면 됩니다. 고흥읍 느티나무 한 그루부터, 고흥군 골골샅샅 깃든 우람하고 아름다운 나무들 곱게 아낄 수 있기를 빕니다. 우람한 나무 곁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어린나무도 곱다시 아끼면서 이 나무들 앞으로 삼백 해나 오백 해 뒤에 우리 뒷사람 고흥에서 좋은 숲 누리도록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땀흘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4.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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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7 11:30   좋아요 0 | URL
곧 구백살이 될, 느티나무와 함께살기님의 좋은 글 덕분에
마음과 눈이 푸르디 푸른 토요일입니다.^^
벼리가 올라가 있고 보라가 앉아 있는 느티나무의 사진이 정말 좋습니다.
느티나무 옆에는 역시 평상이 제격이겠지요..

숲노래 2013-04-28 08:50   좋아요 0 | URL
네, 평상 치우고 정자를 돈 들여 세웠는데...
외려 고흥에서 이곳이 '우범지대'처럼 되고 말더군요...
참 쓸쓸합니다...
 

 

 

 

 

종이버스표 하나 (13.4.8.)
고흥 길타래 8―봉래산 편백나무 숲길

 


  2012년 9월 즈음부터 고흥군에서도 교통카드를 쓸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고흥군 골골샅샅에 있던 작은 가게에서는 종이버스표를 더는 안 팝니다. 모든 삶이 참 빠르게 달라지는구나 싶습니다. 종이버스표만 팔던 읍내 가게는 아예 문을 닫고, 종이버스표를 함께 팔면서 물건 몇 가지 함께 파는 조그마한 면소재지 가게나 시골마을 가게에는 사람들 발길이 더 뜸합니다.


  시골에서도 교통카드를 쓰는 일이 좋은 편리요 문화요 복지라 할 수 있을까 살짝 아리송합니다. 얼마나 편리요 문화요 복지일는지 궁금하곤 합니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은 날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편의점에 어렵잖이 들른다지만(교통카드 충전은 여러 달 동안 편의점에서만 되었어요. 이제는 읍내 버스역에서도 해 줍니다.),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편의점까지 갈 일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시골마을에서 지내는 할매와 할배가 교통카드에 돈을 채우려고 따로 편의점까지 가야 하는 일은 무척 번거롭지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나 다른 마을로 나들이를 갈 때 살펴보면,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거의 모두 맞돈을 내요. 교통카드로 찍는 할매나 할배는 거의 없어요. 읍내 버스터에서 시골마을로 돌아가는 할매와 할배는 으레 종이버스표를 끊지요. 교통카드에 돈을 채워서 찍는 할매와 할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은 거의 다 교통카드를 찍어요.


  그러면, 교통카드란 무엇일까요. 시골마을에 편리와 문화와 복지를 앞세우며 쓰도록 하는 교통카드란 어떤 편리와 문화와 복지가 될까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는 편리와 문화와 복지일 테지만,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한테는 무엇이 될까요. 시골마을 작은 가게에 들러 종이버스표 끊으면서 이야기 몇 마디 나누고, 가게에서 볼일도 보던 삶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하는 교통카드는 시골마을에 어떤 편리와 문화와 복지로 스며들 만한 일이 될까요.

 

 

 

 

 


  봉래면 바깥나로섬에 깃든 봉래산으로 봄꽃마실을 갑니다. 편백나무 살그마니 우거진 조그마한 숲길을 걷습니다. 편백나무 숲길로 가는 길목을 알리는 푯말은 제대로 서지 않습니다. 예내식당 앞 ‘예내’ 버스터에서 내려 맞은편 조그마한 다리 지나 안쪽으로 걸어서 들어가면 편백나무 숲길로 접어들 수 있지만, 막상 편백나무 숲길까지 몇 킬로미터쯤 걸어가야 할는지, 이 길이 어떠한 길이요, 그 둘레에는 어떤 쉼터가 있는지 하나도 알 노릇이 없습니다. 게다가 봉래산 편백나무 숲길이자 삼나무 숲길까지 찾아가는 오르막길 왼편으로는 높다란 철조망이 길게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숲길이요 멧길에 웬 철조망인가 싶지만, 우주센터 때문에 이렇게 쳤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우주센테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려고 무언가 놓아야 한다면, 이런 무시무시하고 볼썽사나운 철조망을 크고 길다랗게 세워야 했을까요. 숲길과 멧골에 걸맞게 울타리를 쌓을 수 없을까요. 대나무를 베어 대나무 울타리만 쌓아도 됩니다. 나무울타리를 쌓아도 되고, 탱자나무 울타리를 마련해도 돼요. 찔레나무 울타리를 둘 수도 있고, 두릅나무를 심어 울타리 노릇 하도록 할 수 있어요.


  천천히 숲길로 올라갑니다. 숲길로 접어들 때까지는 나무그늘 없는 멧길입니다. 자동차 다니기 좋도록 길을 내었구나 싶은데, 차라리 아무 자동차도 오르내리지 못하게 하면서, 그러니까 자동차도 자전거도 드나들지 못하는 길로 하면서, 오직 사람만 걸어서 오르내리는 숲길로 두었으면, 이러면서 우주센터를 빙 두른 철조망은 모두 걷어내고 이곳에 ‘볼썽사납지 않고 숲속하고 제대로 어울리는 나무울타리’를 세운 다음, 나무울타리 앞에는 고흥에서 즐거이 마주하는 봄꽃과 여름꽃과 가을꽃 철따라 피어나도록 들꽃 씨앗 조금 뿌리면 참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나무울타리 한쪽에 푯말 하나 붙이면 돼요. ‘숲을 사랑하는 고흥사람은 숲을 아껴 주셔요.’, 이렇게만 적어도 되지요. 굳이 ‘우주센터 출입금지’처럼 무서운 말 안 적어도 돼요.


  콩배나무 하얗게 맑은 꽃망울 흐드러진 곳에서 나무그늘 우거진 숲길로 아이들과 함께 들어섭니다. 작은아이는 졸립다 하기에 품에 안고 걷습니다. 큰아이는 씩씩하게 숲길을 걷습니다. 나무그늘 없이 시름재 언저리까지 올라와야 하는 길은 여느 멧자락하고 비슷하지만, 나무그늘이 짙게 드리우는 숲속으로 접어드니, 비로소 ‘숲이로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숲바람은 냄새와 맛과 결이 사뭇 다릅니다. 포근하면서 선들선들 감기는 숲바람이 무척 짙푸릅니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겨 잠듭니다. 숲바람 흐르며 쏴아아 촤르르 노래하는 소리 들으며 고요히 잠듭니다. 나는 작은아이를 왼가슴으로 안고 봉래산 숲길에서 숲꽃이라 할까 멧꽃이라 할 들꽃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눈으로 보아도 좋고, 사진으로 담아도 좋습니다. 아이를 안은 채 쪼그려앉거나 무릎을 꿇거나 코를 들꽃 가까이에 대며 꽃내음 맡아도 좋습니다. 아이를 안지 않은 손으로 꽃송이를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이 깊은 숲속에서 너희들은 어여삐 어울리면서 맑은 빛 뽐내는구나.


  금탑사 디딤돌 사이 빈틈에서 보던 현호색과 봉래산 숲길에서 보는 현호색은 같은 현호색이면서도 꽃빛이 새삼스레 다릅니다. 편백나무 숲길에서는 다른 어느 꽃보다 제비꽃이 참 많이 보입니다. 하얗게 꽃잎 피어나고 단풍잎처럼 또는 쑥잎처럼 잎사귀 퍼지는 이 제비꽃을 일컬어 ‘남산제비꽃’이라 하는데, 어느 모로 보면 ‘단풍제비꽃’일는지 모르겠다 싶기도 합니다. 좀처럼 알기 힘들구나 싶어, 2013년 4월 1일에 새로 나온 《특징으로 나온 한반도 제비꽃》(지성사 펴냄)이라는 책을 살피니, 꽃잎을 보며 남산제비꽃하고 단풍제비꽃을 가른다 합니다. 꽃잎이 줄기 하나 한 곳에서 겹쳐서 퍼지면 남산제비꽃이고, 꽃잎이 줄기 하나에 하나씩 따로 돋으면 단풍제비꽃이라 한답니다. 그러니, 봉래산에서 보는 하얀 꽃망울 제비꽃은 남산제비꽃이라 할 수 있어요. 다만, 고흥은 남산 아닌 고흥이고 봉래산이니 ‘봉래제비꽃’이라는 이름 얻으면 어떨까 싶기도 한데, 서울사람 발길이 봉래산에도 닿아 남산제비꽃이 퍼졌을까요, 아니면 남산제비꽃 씨앗을 누가 이곳에 뿌렸을까요, 아니면 남산에도 한라산에도 마이산에도 봉래산에도 자라는 하얀 꽃망울 제비꽃인데, 학자들이 남산에서 가장 먼저 찾아냈기에 남산제비꽃이 되었을까요.


  큰개별꽃을 보고, 산자고를 봅니다. 천금성을 보고, 족도리풀을 봅니다. 편백나무에서 떨군 씨앗이 자라며 조그마한 ‘아기 편백밭’이 된 곳은 밟지 말아야겠다 여기며 발걸음 살살 옮깁니다. 머잖아 이 어린 싹들이 씩씩하게 커서 우거진 숲을 이루겠지요. 그늘이 짙어 못 자랄 수 있고, 얼기설기 서로 얽힐 수 있겠지요.

 

 

 

 

 

 


  한 시간 즈음 숲길을 거닐고 바깥으로 나옵니다. 볕이 잘 드는 곳에 피나물밭이 이루어집니다. 피나물에 꽃이 피어나면 노랑매미꽃이라고도 한답니다. 왜 노랑매미꽃이라고도 할까 궁금하지만, ‘나물’이라는 이름이 붙는 피나물이니, 무엇보다 줄기와 잎을 똑 끊어서 입에 넣습니다. 살짝 쌉싸름한 맛이 돌며 괜찮습니다. 아무렴, 나물인걸요.


  볕이 더 잘 드는 곳은 양지꽃밭입니다. 볕이 잘 드는 데에서 자라니 양지꽃일까요. 시골에서는 양지꽃이라는 이름 말고도 쇠스랑개비라고도 하고, 가락지나물이라고도 한답니다. 꽃으로만 바라볼 때에는 양지꽃이 될 테고, 즐겁게 뜯어서 먹는 봄나물로 여긴다면 쇠스랑개비나 가락지나물이 될 테지요. 바라보기에 따라 다릅니다. 마주하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봉래산 숲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아이들 데리고 봉래면 ‘나로 공공 버스터미널’로 갑니다. 포두면 쪽으로 나가는 버스표를 끊습니다. 고흥군 다른 데에서는 종이버스표를 이제 안 파는데, 봉래면에서는 아직 종이버스표를 끊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 남깁니다. 봉래면에서 포두면까지는 3100원입니다.

 

 

 

 


  군내버스에는 우리 세 식구만 탑니다. 소영마을, 봉남마을, 대영마을, 사동마을 백양마을 죽죽 지나는 동안 아무도 안 탑니다. 우리 식구들 버스마실 호젓하게 즐깁니다. 이 군내버스 모는 일꾼도 여느 때에는 손님 없이 홀로 버스를 몰까요. 홀로 천천히 마을 구비구비 돌 때에는 봄에는 봄내음 맡고 가을에는 가을내음 맡겠지요. 일(버스 몰기)도 하고 마실(고흥 여행)도 즐기고, 시골 군내버스 일꾼은 퍽 괜찮은 일자리 되겠구나 싶습니다. 남들은 돈 들여 고흥으로 여행을 오지만, 고흥 군내버스 일꾼은 돈을 벌면서 천천히 마을마다 샅샅이 돌며 봄내음 한껏 들이켜네요.


  손님이 없는 군내버스는 남성을 거쳐 동래포와 우산과 봉암과 정암을 지납니다. 신촌과 세동을 지나 원세동세거리에 이르러, 우리 식구는 내립니다. 마침, 고흥읍에서 동백마을 지나가는 군내버스 지나갈 때입니다.


  아이들과 풀밭에 서서 조금 놀자니 군내버스 지나갑니다. 손을 들고 휘휘 젓습니다. 버스 일꾼이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멈칫멈칫 그냥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저 앞에서 멈춥니다. 작은아이를 안고 큰아이 손을 잡고 달립니다. 버스에서 할머니 두 분이 내립니다. 그러더니 우리 쪽으로 마주 달려옵니다. 할머니 두 분은 하하하 웃으면서 달려옵니다. “싸게싸게 오쇼. 가방은 이리 내고. 아니 우찌 애들 데리고 타쇼. 오늘은 자전거 안 타쇼.” 버스 일꾼은 “거그는 안 서는 데인데 손을 흔들면 우짜요. 거그는 위험해서 죽은 사람도 있고, 다음에는 아우야 앞에서 타쇼. 거 애들 때문에 세웠소.”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원세동세거리에는 어엿하게 버스터 이름도 있고, 버스를 타는 곳입니다. 도화면에서 포두면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어김없이 버스를 세웁니다. 그리고 원세동세거리 아래쪽 세동마을 사는 분들은 읍내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갈 적에 늘 이곳에서 내립니다.

 

 

 


  세 갈래 길이 위험하다면, 위험하지 않도록 뭔가 시설이나 조치를 해야지요. 위험하지 않게끔, 포두에서 도화로 접어드는 길목에도 ‘버스를 타고 내리며 기다리는 시설’을 마련해야지요. 고갯마루 한쪽에 ‘버스 타고 내리는 자리’를 마련하든 해야지요.


  군내버스가 왁자합니다. 봉서마을 지나 동백마을 쪽으로 꺾을 무렵, 큰아이가 “내가 (단추) 누르고 싶은데.” 하고 말합니다. “그래, 네가 눌러라.” 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삐익 하고 누릅니다. 옆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할머니들이 “아가야, 벌써 누르면 어쩌냐. 저기 우사(소 키우는 우리) 지나서 눌러야지. 우사에서 내리면 우짤려고.” “저희 마을인지 알고 눌렀는가베.” “다 아니까 잘 세워 주것지.”


  작은아이를 안고, 큰아이는 손을 잡고 내립니다. 큰아이는 버스에 대고 “할머니, 안녕!” 하고 손을 흔듭니다. 도화면 이웃마을에서 군내버스 함께 타고 다니는 할매 할배 들하고 우리 식구는 ‘서로 이름은 모르’지만, ‘낯은 서로 익숙한’ 사이입니다. 할매들 오늘 고마웠어요. 4346.4.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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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걷는 고흥 들길 (13.3.30.)
고흥 길타래 7―제비고을 고흥 삶터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시골 아이들은 아주 마땅히 들길을 걷거나 달렸고, 숲길을 오르내리며 풀과 나무하고 사귀었습니다. 서른 해나 마흔 해쯤 앞서는 시골마을마다 아이들 북적거렸을 테고, 스무 해쯤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아이들 웬만큼 복닥거렸겠지요. 1970년대 어느 통계를 보면 포두면에 있는 첨도라는 섬에 국민학생이 백 명 넘었다고 했어요. 그러나, 이제 포두면 첨도는 온통 빈집이 되고, 시골마을 사랑하는 두 분이 새집 짓고 살아갈 뿐, 아이들 목소리나 노랫소리 들을 수 없습니다.


  섬 아닌 뭍에서도 아이들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집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순천이나 광주, 때로는 수원이나 인천이나 부산이나 서울로 보내는 어버이가 제법 많고,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에 도시로 보내는 어버이가 꽤 많으며, 고등학교를 마치면 거의 모두 도시로 나갑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흥 시골마을에서 흙을 만지거나 물을 만지는 젊은이는 거의 찾아볼 길 없어요. 대학교를 가야 하기에 도시에 가거나, 공장이나 회사에서 일자리 잡으려고 도시로 가요.


  시골마을 고흥을 떠나 도시로 간 아이들은 명절날 아니라면 두 번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일이 없습니다. 나중에 예순 살 넘어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하면 ‘귀촌’이나 ‘귀향’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올는지 모르지만, 예순이나 일흔 되어도 도시에서 그대로 뿌리박는 사람이 더욱 많습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마을 일구는 가장 튼튼한 밑힘은 젊은이와 푸름이인데, 정작 고흥 시골마을에서는 시골 아이가 시골에서 뿌리내리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일에는 눈길을 안 두어요. 대학교를 보내는 데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고, 도시에 있는 공장이나 공공기관에 일자리 얻도록 꾀하는 데에 지나치게 마음이 사로잡힙니다.

 

 


  우리 집 두 아이와 조용한 들길을 걷습니다. 이 마을에도 저 마을에도 아이들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면소재지 언저리까지 가면 아이들 모습이 있지만, 면소재지 아이들이라 해서 들놀이를 하거나 숲놀이를 하지는 않아요. 면소재지 편의점에서 놀거나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사먹을 뿐입니다. 면소재지 한켠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조금 뒹굴다가 집으로 돌아가 손전화기 만지거나 텔레비전을 볼 뿐이에요.


  삼월이 저물 무렵부터 들판에 자운영 꽃물 번집니다.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나는 자운영이 고랑마다 고개를 내밉니다. 자운영 꽃물 번지기 앞서 유채꽃 노랗게 피어났으니, 이제 사월 한복판 즈음 되면, 들판마다 유채빛과 자운영빛 흐드러지며 예쁜 꽃무지개 생기겠지요.


  볕 잘 드는 돌울타리 한켠에서 딸기꽃 하얗게 핍니다. 자운영꽃 필 무렵, 들딸기와 멧딸기도 하나둘 하얗게 꽃을 피워요. 멧골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꽃을 피우고, 앵두나무도 발그스름한 빛 살짝 감도는 하얀 꽃 터뜨립니다. 매화꽃 질 즈음 피어나는 앵두꽃잔치 곁에 서면 온몸에 앵두꽃내음 번집니다. 앵두알 붉게 맺히면 앵두알내음 번지고, 앵두꽃 흐드러질 때에는 앵두꽃내음 번져요.


  도화고등학교 앞문 곁에 봄꽃 가득한 나무 우람합니다. 도화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이 봄꽃 기쁘게 누릴 테지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고흥을 떠나 도시로 가면, 봄마다 꽃잔치 벌이는 우람한 나무를 떠올리며 고향을 그릴까요.

 

 

 

 


  논둑 어디나 시멘트로 바릅니다. 아이들과 시멘트 논둑길을 걷습니다. 아이들은 들판 앞에 서서 한참 들여다봅니다. 무엇을 들여다볼까요. 푸릇푸릇 봄풀 들여다볼까요. 냉이꽃 들여다볼까요. 푸른 잎사귀 사이로 볼볼 기어다니는 개미나 거미를 들여다볼까요.


  풀섶 한쪽에서 하얀제비꽃 핍니다. 도랑 바닥도 시멘트로 발라, 가재이고 다슬기이고 살아갈 터 없습니다. 그러나, 시멘트 도랑 바닥이라 하더라도, 큰비 몰아치고 나면 논흙 쓸려서 새롭게 흙바닥 이루어집니다. 새로 생긴 흙바닥에 논생물 다시 찾아올까요. 논생물 다시 찾아들면 가재도 다슬기도 다시 돌아오고, 가재와 다슬기 다시 돌아온 이곳에 개똥벌레 숨결 이을 수 있을까요. 지난해에는 개똥벌레 여럿 만났으니, 올해에도 우리 마을 둘레에서 개똥벌레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꽃을 맺는 갈퀴나물을 뜯습니다. 꽃을 맺기 앞서 신나게 뜯어서 먹었습니다. 꽃이 맺은 뒤에도 즐겁게 뜯어서 먹습니다. 나물이거든요. 볕이 덜 드는 곳에서는 키가 좀 작은 유채꽃 피고, 볕이 잘 드는 곳에서는 벌써 어른 키만 한 유채꽃 핍니다. 꺽다리 유채꽃 옆에는 앉은뱅이꽃이라 할 만한 꽃다지 앙증맞습니다.


  고흥 아이들은, 다른 시골자락 아이들은, 봄날 봄마실 다니면서 봄꽃맞이 얼마나 즐길까 궁금합니다. 제아무리 고3 수험생이라 하더라도, 한껏 흐드러진 봄날에는 학교 수업쯤이야 하루 거른 채 다 같이 가까운 들판을 손 잡고 거닐며 까르르 웃음꽃 터뜨리며 봄나물 뜯어서 도시락 먹으면 얼마나 재미날까요. 아니, 봄날에는 아예 학교수업일랑 그만두고, 날마다 들판에서 들일을 하고 들놀이를 누리면서 들바람 마실 수 있으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자운영 꽃빛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생물 교과서에도 미술 교과서에도, 어떠한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들판에서 들일을 하다가 쉬면서 자운영 꽃송이 하나 톡 따서 냠냠 씹어먹어요. 자운영내음 온몸으로 번지며 목마름이 가시고 배고픔도 가라앉습니다.


  이름을 아는 들풀은 이름을 아는 대로 뜯어서 먹습니다. 이름을 아직 모르는 들풀은 네 이름이 무엇일까 헤아려 보며, 내 나름대로 살짝 새 이름 붙입니다. 잎맛과 꽃맛 헤아리면서 풀이름 어떻게 붙이면 어여쁠까 생각합니다.


  하얗게 꽃이 필 적에도 고소하면서 향긋한 찔레꽃이요, 푸릇푸릇 새잎 돋을 적에도 맑으면서 향긋한 찔레잎입니다. 찔레잎을 따고, 쇠뜨기꽃을 뽑습니다. 봄까지꽃이며 자주광대나물이며 마음껏 뜯어서 먹습니다.

 

 

 

 


  나 한 입 먹고 아이 한 입 먹습니다. 들마실을 하니까 들풀을 들밥 삼아 먹습니다. 여섯 살 세 살 어린 아이들은 온 들판 저희 것으로 삼아 뛰놉니다. 우리 집 처마에서 살아가는 제비들이 우리와 함께 들길에서 놉니다. 우리는 땅을 밟고 달립니다. 제비들은 들판 위를 훨훨 납니다. 아이들은 들노래 부르고, 제비들은 하늘노래 부릅니다.


  그런데, 들판에서 만난 제비가 ‘우리 집 제비’인 줄 어찌 아느냐고요? 우리 집 처마 밑에 지난 삼월 십오 일 즈음부터 제비가 다시 왔거든요. 지난해 우리 집 처마에서 새끼를 깐 제비들이 올해에는 아주 일찍 찾아왔어요. 새벽부터 저녁까지 마당에서 늘 바라보는 ‘우리 집 제비’들이라서, 들판에서 만나도 곧장 알아볼 수 있어요. 너희도 우리하고 같이 놀고 싶구나, 하고 손을 흔듭니다. 이제 보름쯤 더 지나면 이웃집에도 봄제비 찾아올 테고, 고흥 마을 어디에나 제비춤잔치 벌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예쁜 시골마을 고흥에서 한국에 가장 내로라할 만큼 뽐내며 내놓거나 나눌 아름다운 한 가지를 꼽는다면, ‘우주 산업’ 아닌 ‘숲과 들과 제비’가 되리라 느껴요. ‘우주관문 고흥’ 아닌 ‘제비고을 고흥’으로 다시 태어나, 고흥 아이들이 고흥 아끼며 사랑할 길을 곱게 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4.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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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탑사 봄꽃내음

고흥 길타래 6―걸어야 만나는 꽃

 


  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꽃한테 마음을 연 사람입니다. 꽃한테 마음을 열지 못한 사람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을 보더라도 느끼지 못합니다. 꽃은 꽃망울이나 꽃송이나 꽃잎으로만 꽃이지 않습니다. 마음밭을 꽃밭으로 일구는 숨결로 마주할 때에 비로소 꽃입니다.


  따사로운 볕살 드리우는 아침나절, 멧길을 거닐며 봄내음 마십니다. 포근한 바람결에는 봄을 맞이해 피어난 꽃마다 내뿜는 꽃가루가 실립니다. 이른바 꽃바람이 붑니다. 꽃바람을 쐬면서 비자나무숲 사이를 거닐면, 곳곳에 스스로 뿌리를 내려 자라는 진달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겨울에도 푸른 잎사귀 짙은 비자나무 사이에서도, 겨울날 잎 모두 떨군 나무들 사이에서도, 진달래는 씩씩하게 새 꽃을 틔웁니다. 분홍빛이라는 낱말로는 가리키기 어려운, 꼭 진달래빛이로구나 하는 한 마디로만 가리킬 수 있는 진달래꽃을 틔웁니다.


  금탑절 앞마당에서 자라는 명자나무, 또는 아가씨나무 꽃망울이 터질락 말락 합니다. 명자꽃, 또는 아가씨꽃은 어떤 빛이름으로 가리켜야 할까요. 빨강, 짙은빨강, 주홍, 다홍, …… 명자꽃이나 아가씨꽃 또한 다른 어느 빛이름으로도 가리키지 못합니다. 오직 명자꽃빛이나 아가씨꽃빛이라고 말할 때에 비로소 이 꽃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너른 풀밭에서도 피어나는 제비꽃이지만, 그늘진 구석자리에서도 피어나는 제비꽃입니다. 너른 풀밭에서 피어나는 제비꽃 빛깔은 살짝 옅습니다. 그늘진 구석자리에서 피어나는 제비꽃 빛깔은 한껏 짙습니다. 조그마한 제비꽃 곁에는 더 조그마한 꽃마리가 하얗게 흔들립니다. 이 작은 꽃을 마주하자면 걸어야 합니다. 이 작은 꽃을 마주하자면 신나게 걷다가도 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늦겨울부터 이른봄 사이에 흐드러지는 동백꽃은 멀리에서도 곧 알아챈다지요. 누구라도 동백꽃 붉은 꽃망울 쉬 알아채리라 생각합니다. 동백꽃송이는 걸어가면서도, 때로는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알아볼 만합니다.


  그러나, 제비꽃이나 꽃마리는 자동차를 타고 지나갈 적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 일쑤예요. 100킬로미터나 120킬로미터, 아니 80킬로미터나 60킬로미터로 달린다 하더라도 제비꽃이나 꽃마리 빛깔도 내음도 모습도 무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천천히 걷다가는 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걸음을 멈출 뿐 아니라 쪼그려앉아야 합니다. 쪼그려앉을 뿐 아니라, 흙바닥에 털썩 앉아서 고개를 한참 들이밀어야 합니다.


  작은 꽃은 작은 사람 작은 눈길을 바랍니다. 작은 꽃일수록 더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작고 가녀린 이웃들일수록 더 찬찬히 헤아려야겠지요. 작고 가녀리며 가난한 이웃을 슥슥 지나치는 눈길로 바라본다면, 서로 어깨동무할 손길을 찾을 수 없어요.

 

 

 


  자가용에서 내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에, 작고 가녀리며 가난한 이웃 마음을 조금 느낄 수 있습니다. 곧, 두 다리로 숲길 천천히 거닐며 숲바람과 봄바람 느끼다가 문득 멈추어서 발밑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는, 무릎을 꿇거나 엉덩이를 흙바닥에 대고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아야 제비꽃이며 꽃마리를 알아채고는 인사를 건넬 수 있어요.


  기왓장 얹은 흙울타리 한쪽에 접시꽃잎 돋습니다. 꽃대가 오르며 꽃망울 맺히자면 더 있어야겠지요. 조글조글 보드라운 접시꽃잎은 다른 봄풀처럼 맛난 봄나물 될까요.


  제비꽃보다는 아주 조금 큰 현호색이 디딤돌 한쪽에 옹크립니다. 눈이 밝은 사람은 알아볼까요, 눈이 밝은 사람이더라도 못 알아볼까요. 이곳에 한 송이, 저곳에 두 송이, 알록달록 나란히 핍니다. 봄맞이 누리는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 건네고 싶어, 이렇게 작은 꽃이 이렇게 구석진 자리에서 호젓하게 꽃내음 내뿜을까요.

 

 

 


  현호색 앞에서 한참 쪼그려앉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포두면 금사마을에서 금탑절까지 자동차로 싱싱 오갈 만한 길을 뚫었으면, 현호색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금탑절 곳곳에 시멘트를 깔아 비오는 날에도 질퍽거리지 않도록 한다면, 이 작은 들꽃 현호색이 금탑절 곳곳에 뿌리를 내려 마알간 꽃선물 할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무르익으려고 한창 애쓰는 함박꽃가지 예쁩니다. 함박꽃은 함박웃음처럼 크게 벌어져도 곱고, 아직 꽃봉오리 맺지 못하고 천천히 기운을 모으며 봄볕 받는 꽃가지로 있을 적에도 곱습니다.


  꽃다지는 어떤 풀이 될까요. 겨울 이기고 봄 누리는 반가운 봄나물 내음으로 다가오는 풀일까요.


  꽃다지도, 봄까지꽃도, 코딱지나물(광대나물)도, 냉이도, 꽃마리도, 모두 반가우며 고마운 봄나물이요 봄풀이며 봄꽃입니다. 잎사귀 하나 뜯어서 먹어도 봄맛이요, 꽃대와 꽃송이까지 통째로 먹어도 봄맛입니다.

 

 

 


  나물로 먹기 앞서 오래도록 들여다보셔요. 꽃다지 노란 꽃잎과 꽃술 들여다보셔요. 얼마나 작은 꽃이요, 얼마나 사랑스러운 꽃인가 하고 마주하셔요. 그러고 나서, 즐겁게 뜯어 즐겁게 먹어요. 꽃다지 한 송이가 내 몸속으로 들어와서, 꽃다지와 내가 하나되는구나 하고 느껴요. 봄까지꽃 뜯어서 먹으며, 봄까지꽃이랑 내가 한삶으로 지내는구나 하고 느껴요.


  우리는 누구나 먹는 대로 삶을 빚어요. 우리가 먹는 밥은 모두 우리 숨결이에요. 우리가 마시는 물과 바람도 우리 숨결이에요. 맑은 밥 먹으면서 맑은 숨결 돼요. 맑은 물 마시면서 맑은 숨소리 내지요. 맑은 바람 들이켜면서 맑은 눈빛 밝혀요.


  머위꽃이 피고 머위잎이 퍼집니다. 숱한 봄풀 사이에서 머위꽃은 몹시 커다랗게 보입니다. 아직 활짝 벌어지지 않은 머위꽃은 통째로 먹는 고마운 나물이 됩니다. 머위야, 머위야, 내 몸으로 들어와서 더 아름답게 피어나렴. 톡, 하고 하나 뜯습니다.

 

 

 

 


  우람한 동백나무 곁으로 천등산 줄기를 바라봅니다. 금탑절 서림 스님이 내어주는 따스한 찻물 한 잔 받습니다. 바람 고요한 아침나절, 풍경소리 또한 고요합니다. 절집 옆에서 일찌감치 꽃을 피우고는 진 복수초는 씨앗을 맺느라 바쁩니다. 복수초는 꽃으로도 어여쁜데, 이렇게 씨앗 맺는 푸른 빛깔 또한 앙증맞고 어여쁩니다. 아예 밭을 이룬 수선화들은 꽃송이 벌어질 적에도 예쁘지만, 꽃송이 벌어질까 말까 망설이는 때에도 예쁩니다.


  푸른 물결일까요. 노란 물결일까요. 바다는 파란 물결이다가도 때로는 푸른 물결인데, 봄들판은 어떤 물결 되어 우리들 마음속으로 젖어들까요.


  수선화밭 가장자리에는 할미꽃이 곱다시 핍니다. 할미꽃과 수선화 사이에는 봄까지꽃이 돋습니다. 수선화만 예쁘다 여기면 봄까지꽃이고 할미꽃이고 뽑히겠지요. 서로 다른 봄꽃이 서로 다르게 어여쁘다 여기면, 모두 한 자리에서 즐겁게 피어나면서 봄빛 베풀겠지요.


  서림 스님 옷소매 닳은 모습을 뒤에 서서 바라봅니다. 스님이 한손을 뻗어, 저기 닥종이 만드는 닥나무에 핀 꽃을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삼지닥나무라 한다는데, 꽃이 필 적에 저렇게 예쁘다고 이야기합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닥종이로 다시 태어나도 어여쁘며, 닥나무에 꽃망울 맺혀 온통 꽃잔치를 이루어도 어여쁩니다. 절집에 와서 부처님한테 절은 않고, 절집을 둘러싼 작고 작은 꽃이랑 소담스럽고 소담스러운 꽃을 마주하며 끝없이 허리를 숙입니다. 자꾸자꾸 고개를 숙입니다.

 

 

 

 


  키 작은 꽃을 찬찬히 들여다보자면, 허리를 숙일밖에 없어요. 키 작은 꽃송이 사진 하나로 담자면 고개를 숙일밖에 없어요. 아예 땅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해야 합니다.


  금탑절에서 내려오는 길에 다시금 진달래를 만납니다. 진달래 바라보며 방긋 웃습니다. 네 빛 보고 또 보아도 더할 나위 없이 곱구나. 사람들이 시멘트건물에 갇힌 채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본다든지 칠판만 쳐다본다든지 참고서만 파헤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사람들이 너른 들판에 서서 햇살 먹으면서 너희 봄꽃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다면, 가슴 가득 꽃마음 되어 아름다운 사랑을 속삭일 텐데. 어른들도, 아이들도, 고등학교 수험생도, 누구라도 이 좋은 봄날, 숲길 천천히 거닐며 봄노래 부른다면, 우리 고흥 시골마을 아리땁게 돌보는 길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나는 금탑절에서 내려와 백치성을 끼고 지정마을 쪽으로 넘어가는 멧길을 갑니다. 군청에서는 이 멧길을 아스팔트로 깔려고 공사를 합니다. 자동차 넘나들기 좋게 아스팔트 깔아도 되겠지요. 그런데, 자동차는 안 다녀도 좋아요. 사람들 누구나 호젓하게 이야기꽃 피우며 도란도란 거니는 숲길로, 흙길로, 거님길로, 마중길로, 마실길로 고이 지킨다면, 훨씬 좋으면서 널리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자가용 몰며 싱싱 달리는 길에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샘솟지 못하거든요. 한국사람은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 자가용 내려놓고 오래도록 걸어다니면서 즐거운 이야기 길어올리거든요. 막상 한국에서는 자가용을 내려놓지 못한 채 이곳저곳 쏘다니다가, 그만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말거든요.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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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3-26 13:28   좋아요 0 | URL
오늘 님의 서재에 들어오지 못했으면 놓칠 뻔한 세상의 그림들을 잘 감상하고 갑니다. ^^

숲노래 2013-03-26 15:29   좋아요 0 | URL
남녘땅은 참으로 한껏 무르익어요.
이 어여쁜 봄을
사랑스러운 이웃들 모두 맑게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도화사람 마실 다니기 (13.3.2.)
고흥 길타래 5―올봄·지난봄 들마실

 


  고흥 도화면 동백마을에서 살아가는 우리 네 식구는 지난 2011년 가을부터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2011년 8월에 집 자리와 도서관 자리를 살피러 고흥마실을 처음 했고, 9월에 마음을 굳힌 다음, 10월에 살림집 계약을 하고서, 11월에 도서관으로 쓸 흥양초등학교 건물 넉 칸 빌려서, 고흥에 갓 뿌리를 내렸어요.


  많이 어린 두 아이하고 부대끼는 삶이라 다른 시골이웃처럼 알뜰살뜰 집살림을 건사하지 못합니다. 도서관 또한 제대로 열지 못합니다. 그러나, 집과 도서관 모두 천천히 뿌리를 내리며 튼튼하게 줄기를 올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리라 생각해요. 새봄을 맞이해 들일·밭일 바쁠 나날이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마을부터 제대로 돌아보고 즐겁게 누리며 반갑게 걷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시골에서 일구는 삶이란, 느긋하고 넉넉하며 아름답게 삶을 누리자는 뜻이 될 텐데, 아이들이 고운 봄볕 흐드러지게 쬐면서 들길 걷는 일에도 마음을 기울이며 재미있게 놀자고 생각합니다.


  볕 좋은 한낮, 자전거를 끌고 나옵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웁니다. 이웃마을에는 봄볕이 얼마나 드리우는가를 돌아보기로 합니다. 여섯 살 세 살 아이와 거닐면 면소재지까지 오갈 수 있고, 천등산 언저리까지 다녀올 수 있는데, 자전거수레를 몰면 한두 시간 길을 둘러볼 수 있어요.

 

 

 


  동백마을부터 달리는 자전거는 동호덕마을과 도화면 소재지를 지나 서오치마을에 이릅니다. 도화면 장날이 예전에는 무척 컸다 하는데, 이제 예전 모습은 찾아볼 길 없습니다. 참말 많은 사람들이 복닥거리며 서로 아끼고 돕는 시골살이 이루던 지난날이었겠지요.


  볕 아주 잘 드는 길가에 있는 시골집 동백나무 소담스레 벌어집니다. 참 빨리 피어나는군요. 그만큼 볕이 좋다는 뜻이요, 볕이 좋은 만큼 다른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도 잘 익는다는 뜻일 테지요.


  전봇대에 챙 넓은 모자 하나 있습니다. 들일 하는 할머니가 이곳에 모자를 꽂으시는 듯합니다. 전봇대에 끈 하나 묶으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겠어요.


  예전에는 길가 가게였음직한 살림집 앞을 지납니다. 유리창에 빛바랜 자국으로 남은 ‘담배’ 종이를 보고 알아챕니다. 이 언저리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렸을까요. 마을 분들 들일 하다가 이곳에서 담배도 사고 막걸리도 샀을까요. 간장도 사고 조미료도 사고 소금도 사고 과자도 사고 라면도 사고 했을까요.

 

 

 


  지등마을 어귀에 나무 한 그루 섭니다. 아직 그리 큰 나무는 아닙니다. 앞으로 쉰 해를 더 살고 백 해를 더 살면, 이 나무 한 그루 지등마을 밝히는 우람한 나무 되겠지요. 이백 해 더 살고 사백 해 더 살면, 지등마을 지키는 씩씩한 나무 될 테지요. 큰아이하고 나뭇줄기를 쓰다듬고 어루만집니다. 나뭇줄기에 귀와 손바닥을 대고 나무 숨소리 듣습니다.


  지등마을 어귀에는 이곳에 있는 시설을 살펴 적바림한 자국이 아직 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에 이런저런 시설을 살펴 숫자를 적바림했을까요. 우물이 몇이요 가게가 몇이며 주민 숫자 몇이라는 대목을 이렇게 마을 어귀에 적도록 시킨 사람은 누구일까요. ‘무슨무슨 지도자 아무개’와 ‘담당공무원 아무개’ 자국은 아직 햇볕에 바래지 않습니다.


  아이들 태운 자전거를 천천히 몹니다. 겨울바람처럼 드세지 않고 차갑지 않지만, 바람이 제법 붑니다. 자전거를 몰며 마을 한 바퀴 빙 돌아봅니다. 봄햇살 포근히 내려앉는 시골길을 천천히 달립니다. 봄햇살 먹는 들풀은 푸릇푸릇 돋고, 길가에서 자라는 후박나무도 새 잎을 틔우며 꽃봉오리 맺으려고 부산합니다.


  지등마을에서 이목동마을 사이는 오르내리막. 이목동마을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고, 지등마을로 가는 길은 오르막입니다. 자동차로 달리면 오르막도 내리막도 모르겠지요. 자전거로 달릴 때에 비로소 길이 어떠한가 하고 깨닫습니다. 지등마을에는 붉은벽돌로 쌓은 버스터 있고, 이목동마을에는 군에서 새로 지어서 놓은 듯한 버스터 있습니다. 햇살과 빗물 가릴 지붕 있고, 옆과 뒤는 유리로 막음하니, 버스 오가거나 사람들 오가는 모습 살피기에 괜찮겠구나 싶습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버스터 건물 짓기 앞서까지는 아무 푯말 없이 ‘이쯤에서 버스 서고 지나가고’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도 줄기 한쪽에서 새 가지가 나오곤 합니다. 이런 새 가지를 가지치기 하라고도 하지만, 모두 쳐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옆줄기에서 돋은 작은 가지 하나 쉰 해나 백 해쯤 지나면 굵고 튼튼하게 자라, 쉰 해나 백 해 뒤 태어나 뛰놀 아이들이 나무타기를 하며 놀 수 있으리라 느껴요. 사람들은 소나무 가지를 뭉텅뭉텅 잘라 우듬지만 달랑 남기곤 하는데, 나무젓가락 박듯 나뭇가지 모두 치는 일은 나무한테도 사람한테도 안 좋으리라 느낍니다.


  이목동 세거리에서 원도동 쪽으로 꺾어 구암 바닷가를 빙 돌아볼까 하다가 작은아이 새근새근 자고 큰아이도 퍽 졸린 듯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박문터를 지나, 시루봉과 유주산 사이, 사동마을 가는 푯말 있어 이쪽으로 올라갈까 하며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퍽 가파릅니다. 자전거를 달리지 못하고 내립니다. 땀 뻘뻘 흘리며 수레를 끕니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안 보인다 싶은데, 왼쪽 벼랑 따라 쓰레기 많습니다. 누가 어디에서 왜 여기까지 와서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형광등과 빈 푸대뿐 아니라, 헌 텔레비전까지 있습니다. 술병은 너무 흔한 쓰레기입니다. 멧비탈에 쓰레기를 버리면 이 쓰레기는 누가 치울까요. 이 쓰레기는 어찌 될까요. 쓰레기로 덮인 비탈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시사람이 고흥으로 왔다가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이 둘레 마을 분들이 버린 쓰레기일까요. 아니면, 이 마을에서 좀 먼 다른 마을에서 자동차 몰고 여기까지 와서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사동마을까지 가지 못하겠다 싶어, 자전거를 돌립니다. 비탈길을 천천히 내려옵니다. 다시 서오치마을로 들어섭니다. 서오치마을 굵은 팽나무 옆을 지나갑니다. 비탈길에서 작은아이가 잠에서 깼기에 팽나무 곁에서 살짝 쉬었다 갈까 싶었는데, 팽나무를 빙 둘러 울타리를 세웠군요. 이 팽나무는 아무나 찾아가서 누릴 수 없는 듯합니다. 푸른 빛깔 쇠울타리에는 이 마을 아무개가 서울에 있는 ㅅ대학교에 붙은 일을 기리는 걸개천 하나 붙습니다.


  면소재지 가로질러 도화냇물 따라 신호리로 접어듭니다. 누르스름한 빛깔 고운 들길을 달립니다. 논둑 한쪽에 포기를 이루는 유채풀을 봅니다. 햇살은 따사롭게 내리쬡니다. 아이들은 수레에서 하품을 합니다. 자, 집으로 돌아가서 마당에서 신나게 뛰며 놀자.

 

 

 

 * * *


  지난 2012년 3월 언저리에는 들마실 어떻게 즐겼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지난해에는 작은아이가 아직 잘 걷지 못해, 옆지기와 내가 작은아이를 서로 업거나 안으며 큰아이는 걸리면서 걸어다녔습니다. 동호덕마을 마늘밭 사이를 지나가고, 서호덕마을 자작나무를 구경했습니다. 도화냇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어요. 도화냇물에 시멘트 붓고 큰돌 쏟으면서 물고기가 아주 많이 사라진 듯합니다. 왜 냇바닥을 시멘트로 메꾸면서 물고기 삶터를 없애거나 망가뜨려야 할까요. 물고기를 몽땅 죽이면서 수십 억 들이는 ‘냇바닥 공사’는 누구한테 이바지하는 일이 될까요.


  우리 식구는 시멘트로 안 덮은 논둑이 있는 데를 찾아서 걷고 싶었습니다. 이제 고흥군에서 시멘트 안 덮은 논둑은 아주 드뭅니다. 경운기 다니기 좋도록 논둑을 시멘트로 덮고, 잡풀 자라지 말라면서 논둑이랑 밭둑 모두 시멘트로 덮으려 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간다지만, 흙땅이나 풀밭 밟고 거닐기란 퍽 힘들어요.

 

 

 

 


  집에서 면소재지까지 두 다리로 걸어서 나들이를 하던 어느 날, 면소재지에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웃마을 할매를 만납니다. 할매는 머리에 짐보퉁이 이고 지팡이 짚으며 씩씩하게 걸으셨어요. 면소재지에서 우리 마을이나 옆마을까지는 1100원이면 되는데, 할머니는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갑니다. 이렇게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가면, 들바람 먹고 들새 노래 마시며 봄볕 한껏 즐길 수 있어요.


  도화초등학교는 운동장이 흙바닥입니다. 가짜 잔디 안 깔아 참 반갑습니다. 깔려면 진짜 잔디를 깔아야지, 플라스틱 호르몬 뭉치라 할 인조 잔디 까는 일은 아이들한테 못할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집부터 도화초등학교까지 걸어서 나들이를 하며 이것저것 타며 놉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들길에서는 막 피어나는 유채꽃을 봅니다. 논을 그득 채운 자운영 풀밭을 바라봅니다. 먹음직스러운 싱그러운 풀을 뜯고, 바람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습니다.


  일찍 핀 동백꽃은 일찍 떨어집니다. 늦게 피는 동백꽃은 늦게까지 붉은 빛깔 베풉니다. 냉이꽃이랑 들쑥갓꽃 어우러진 마을회관 앞자락 작은 꽃밭은 한창 봄물결입니다. 봄을 먹는 봄마실입니다. 4346.3.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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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17 23:21   좋아요 0 | URL
검정 비닐봉투를 머리에 이신 할머님과, 옆지기님과 사름벼리와 산들보라의 사진이 넘 좋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렇게 활짝 핀 동백꽃을 본 적이 없어요. ^^;;;

숲노래 2013-03-18 08:49   좋아요 0 | URL
비닐봉투는 아니고 보따리예요. 서울 언저리에서는 동백나무 보기 힘들지요.
전라남도 경상남도 바닷가 쪽 마을에서는 장미 저리 가라 할.. 참말 그런데, 온갖 동백꽃이 골고루 핀답니다. 분홍빛 동백꽃도 있어요. 참말 깜짝 놀랄 만한 어여쁜 동백꽃이 골골샅샅 피고 진답니다.

올해에는 동백꽃튀김을 한 번 해 볼 생각이에요 ^^;;;

appletreeje 2013-03-18 10:38   좋아요 0 | URL
앗, 보따리군요 ^^;;
그런데 동백꽃튀김의 맛은 어떠할까요~??
생각만 해도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