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앉기


 여름 동안 마당에 앉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시멘트로 닦인 마당에 여름날 앉다가는 뜨거워 애먹는다. 가을로 접어들었기에 시멘트 마당이라 하더라도 자리를 깔고 앉을 만하다.

 아이 어머니는 뜨개를 하고, 둘째 갓난쟁이는 하늘과 나무숲을 올려다보는 채로 누우며, 첫째는 마당에서 뛰놀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며 이래저래 논다. 둘째가 누나랑 함께 뛰놀자면 앞으로 한두 해쯤 기다리면 될까.

 낮이고 저녁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아침이고, 집 앞길로 지나다니는 자동차만 없으면 언제나 조용하게 풀벌레와 멧새 우짖는 소리로 온몸이 젖어든다. 우리한테 논이 없어 이 가을에 누렇게 무르익는 나락 소리를 마음껏 듣지는 못하지만, 이웃집 나락이 저 멀리에서 익는 소리와 내음을 바람결에 함께 느껴 본다. (4344.9.1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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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짓기 잠자리


 잠자리는 어떤 소리를 내면서 울까. 잠자리가 내는 소리는 사람 귀로 들을 수 있을까. 날마다 몇 차례씩 마당에 빨래를 널고 걷으면서 만나는 잠자리를 볼 때마다 잠자리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내 귀로는 도무지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한다. 아니, 내가 마음을 조금 더 활짝 열지 못했기에 못 듣는달 수 있다. 손가락으로 살며시 건드려도 빨랫줄에서 날아가지 않는 잠자리이다. 눈알을 또륵또륵 굴리면서 나한테 잠자리말을 살며시 건네지만, 나는 좀처럼 못 알아들으리라.

 더없이 좋은 가을 포근한 볕살이라 이불을 말리려고 들고 나온다. 빨랫줄에 척 하니 걸려 하는데 짝짓기 잠자리가 이 빨랫줄을 붙잡았다. 부디 날아가지 말아 주렴 하고 빌며 아주 천천히 이불을 건다. 짝짓기 잠자리는 흔들리는 빨랫줄을 단단히 붙잡는다. 이불을 다 널었다. 이제 집게를 꽂아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아이가 언제 뒤따라 나왔는지 빨랫줄에 널린 이불을 밑에서 쑥 잡아당긴다. 빨랫줄이 철렁 한다. 짝짓기 잠자리는 화들짝 놀라 그만 멀리 날아간다.

 이 녀석. 네 키높이에서는 짝짓기 잠자리가 안 보여서 그랬니? 빨랫줄에 넌 이불이나 옷가지는 놀잇감이 아니라구. 함부로 쑥 잡아당기면 안 돼. 이렇게 하다가 젖은 빨래가 톡 풀려서 흙바닥에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요 녀석. 혀를 쭉 빼물고 내뺀다. (4344.9.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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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꽃을 꺾어서


 읍내 장마당 마실을 가는 길목, 두 시간에 한 대 오는 시골버스를 기다린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버스가 몇 분 늦는다. 아이는 “버스가 늦네.” 하고 말하다가는 버스타는곳 둘레 풀밭에서 들꽃을 꺾는다. 꺾은 들꽃을 한손에 모아 쥔다. 이윽고 시골버스가 들어온다. 읍내로 가는 십이 분쯤 되는 길을 지나고, 읍내에 닿아 우체국에 볼일 보러 가는 길에서 몇 분 더 흐른다. 아이가 손에 쥔 꽃은 그새 고개를 폭 숙인다. 더운 날씨에 금세 시들고 만다. “꽃이 벌써 시드는구나. 흙에 놓고 가자. 꽃한테 미안하다고 말하자.” 아이는 손에 쥐던 꽃무더기를 흙자리에 살며시 내려놓는다. (4344.6.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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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밭 당근풀 어린이


 텃밭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당근풀을 바라본다. 당근씨를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모르면서 용케 심었고, 이 당근씨는 고맙게 하나하나 싹을 틔워 제법 잎이 돋는다. 더 기운을 내 주기를 바라면서 냇물에서 물을 길어 조금씩 붓는다. 그동안 비가 퍼붓느라 흙이 많이 깎였기에 손바닥으로 토닥토닥 두들기며 북을 돋운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저도 북을 돋우겠다고 나선다. 냇가에서 자라는 꽃을 한 송이 꺾어 놀다가, 한손으로는 꽃을 쥔 채 북을 돋우더니, 이내 꽃송이는 고랑에 살며시 내려놓고 두 손으로 북을 돋우며 논다. (4344.5.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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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근풀


 푸성귀로 길러서 먹는 당근이지만, 당든도 흙땅에서는 여느 풀하고 같은 당근풀이다. 이 당근풀을 씨앗을 장만해서 밭에 심어 당근밭으로 일구어 본다. 당근씨 심기를 엉터리로 해서 당근이 하나도 안 날 줄 알았지만, 씨앗은 제 온힘을 내어 뿌리를 내렸고 줄기를 올렸다. 처음에는 가느다랗고 살짝 긴 잎을 둘 내더니, 이윽고 여러 갈래로 퍼진 손가락처럼 생긴 잎을 올린다. 당근풀은 하루하루 새 기운을 내며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간다. 조금 더 기운을 내도록 둘레 다른 풀을 뽑고 물을 주어야겠다. (4344.5.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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