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간 골목 걷기 1
시월 들어 첫날 인천으로 마실을 와서 골목길을 다섯 시간 남짓 혼자서 걷다. 그야말로 걷고 또 걷고 다시 걸으며 다섯 시간을 쉬지 않고 내리 걸었다. 시월 첫날 빗줄기가 가늘게 흩뿌렸기에 여느 때처럼 사진으로 찍을 만하다 싶은 모습을 더 많이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나 흐린 날에는 흐린 날 느낌을 담으며 사진으로 옮기면 되고, 비가 흩뿌리거나 때때로 빗방울이 굵을 때에는 이러한 느낌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이으면 된다. 종아리가 퉁퉁 붓고 무릎이 시큰거리며 등허리가 저리도록 걸으며 생각한다. ‘에휴, 겨우 틈을 내어 왔는데 오늘은 날씨가 궂구나. 날이 궂으면 사진에도 궂은 느낌이 깃들고 마는데.’ 인천에서 살아가며 언제나 즐거이 마실 다니는 사진을 더는 찍을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고 만다. 이제는 인천사람이 아닌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니까 나 또한 그동안 인천 골목동네에서 마주했던 ‘골목 아닌 아파트숲에서 살며 아주 가끔 출사 나오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골목마실을 하는 셈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저녁나절, 고단하고 지친 몸을 겨우 이끌어 일산에 있는 옆지기 식구들 살림집으로 온다. 전철을 타고 멀고 먼 길을 가까스로 오다. 다리가 제법 무거워 하룻밤 인천에서 자고 이튿날 새벽이나 아침에 갈까 싶었으나, 아이를 혼자 돌보느라 힘겨울 옆지기하고 식구들을 떠올리며 이를 앙다물고 전철을 타고 간다. 인천에서는 끝역이라 앉아서 가지만, 용산역부터는 내내 서서 간다. 주안역을 지날 무렵부터는 졸음이 쏟아져 모처럼 아이보기를 안 하며 책읽기만 할 수 있으나 그예 책을 덮고 눈을 감는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느긋하게 책을 읽겠느냐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과 달리 내 몸뚱이는 눈을 붙이잔다. 노량진역까지 꾸벅꾸벅 졸며 자며 온다. 용산역에서 내려 종로3가까지 오고, 여기에서 다시 3호선을 갈아타는 동안, 전철을 기다리며 큰 배낭에 책을 받치고 쭈그려앉는다. 쭈그려앉아 책을 읽는다. 어쩌면 자리를 얻지 못하고 서서 가야 하니까 억지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셈.
마련해 놓기는 거의 반 해가 되었으나 아직 펼치지 않던 《별을 헤아리며》(양철북,2003)를 드디어 읽어 본다. 책을 처음 마련할 때에도 꽤 괜찮은 작품이리라 여겼는데, 막상 읽고 보니 참 괜찮다. 우리 나라에는 이만 하게 작품을 빚을 글쟁이가 몇이나 될까 하고 곱씹는다. 아직은 멀었다고, 아직은 힘들다고, 아직은 슬프다고, 아직은 기다려야 한다고 느낀다. 가볍게 읽거나 가르침을 베푸는 작품은 많다. 그러나 곰곰이 되새기면서 우리 터전과 사람과 목숨과 꿈과 발자국 모두를 아우르며 사랑하고 믿는 작품은 드물다. 이원수 권정생 임길택으로 살포시 이어지던 끈을 씩씩하며 즐겁고 당차게 이은 글쟁이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꼽을 수 있으려나. 아름답다 느낄 글을 쓰려면 스스로 아름답다 느낄 삶을 일구어야 하는데, 오늘날 이 나라 글쟁이 가운데 아름답다 느낄 삶을 즐거우며 곱고 신나게 보듬는 분으로 누가 있다 할 만할까. 가난하고 아프지만 가난을 좋은 벗으로 삼고 아픔을 고마운 스승으로 여기는 분으로 어느 분을 꼽을 만한가. 자가용을 타지 않을 뿐더러 자가용을 가질 만한 살림살이가 아닌 분이 누구인가. 아파트에 살지 않는데다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이웃을 슬프며 따사로이 어루만질 만한 가슴으로 지내는 분이 누구일까.
이어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내일을여는책,1997)을 들춘다. 어린이문학을 쓰는 송언 님이 서울살이를 접고 시골살이를 하면서 쓴 글을 모은 산문책. 이 책은 올 2월에 헌책방에서 만났으나 여태까지 펼칠 엄두를 못 냈다. 책을 사 놓고 여덟 달 만에 읽는 셈이네. 마흔 가까이 되어 비로소 서울을 벗어나 시골집에 전세를 얻어 시골 터전을 살갗으로 느끼는 이야기를 담는다. 송언 님 스스로 이무렵에 느끼셨는지 모를 노릇인데, 이와 같이 쓰는 글이야말로 문학이고 어린이문학이 된다. 따로 어떻게 꾸미고 자시고 해야 문학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한테 동시하고 동화만 들려주어야 어린이문학이지 않다.
김밥 두 줄을 가끔 꺼내어 조금씩 먹으며 다섯 시간을 걷는다. 마실을 마치고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갈 무렵, 도화2동 142번지 둘레 ‘한창 집이 비며 철거를 할랑 말랑 하는 골목동네’에서 퍽 오래 머문다. 두어 달 앞서 이곳을 지날 때만 하더라도 사람이 살던 동네였는데, 그사이 텅텅 비다시피 한다. 텅텅 비다시피 하면서 더없이 쓸쓸하다. 그런데 쓸쓸하기만 하지는 않다. 일찌감치 비어 버린 골목집을 치워 텃밭으로 일군 자리에서는 노랗고 큰 호박꽃이 소담스레 피어 있다. 가꾸어 주는 사람이 없는 비어 버린 텃밭에는 갖가지 들꽃이 앙증맞게 피어난다. 설마 싶어 크고 굵직하게 달린 열매가 있나 살피는데 아직 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꽃만 시원하게 많이 피어 있다. 이 호박꽃들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이 빈집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비어 있는 골목집은 모두 흙으로 지은 집이다. 요새 도시사람들은 시골로 살림집을 옮긴다고 할 때에 흙집을 짓는다며 집짓기를 배운다지. 그런데 그 흙집이 바로 도시 한복판 가난하고 조그마한 골목동네마다 있거든요. 아니, 쉰 해 예순 해를 이어온 도시 골목동네 살림집들은 으레 흙집이거든요. 흙집 겉에 시멘트만 살짝 발랐을 뿐이거든요. 기둥과 지붕은 나무예요. 골목동네 살림집을 요모조모 뜯어 보고 살피면 얼마든지 나무집과 흙집 짓는 솜씨를 익힐 수 있거든요.
흙집에 나무지붕에다가 나무창문인 집 앞에 우뚝 선다. 창호지를 댄 나무문살 작은 창문 한쪽은 어디로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 집이 비고 나서 틀림없이 동네 푸름이들이 담배 피고 술 마시러 와서는 망가뜨렸으리라. 집들이 비니까 동네 푸름이들은 이 빈집에 몰려들어 담배 피고 아무 데나 버릴 뿐 아니라 술 마시고 병을 깨뜨리기까지 한다. 한쪽만 남은 나무문살 창문은 그냥 후두둑 떨어진다. 이 창문을 어찌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내 가방에 넣기로 한다. 다시 붙일 수 없는 노릇이니까. 어제 새로 장만한 70리터들이 큰 가방에 넣어 본다. 꼭 맞게 들어간다. 얼마 뒤면 무시무시한 쇠삽날로 밀어버릴 이 골목집 자취 가운데 하나인 ‘창호지를 댄 나무문살 작은 창문’ 하나를 건사해 놓고 이곳에 어떠한 골목이웃이 어떠한 살림을 꾸리며 어떠한 꿈과 삶을 이었는가를 마음으로 품고 싶다.
텅텅 비어 버린 동네를 걷는데, 집집마다 ‘새 주소 사업’을 한다며 새로 붙인 주소패가 반짝거린다. 쓰겁게 웃다. 이렇게 곧바로 허물 집이면서 저 새 주소패는 뭣하러 붙였을까. 새 주소패를 붙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물 생각이면서 이런 짓을 왜 했을까. 새 주소패를 둘 떼어낸다. 붙인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본드 냄새가 물씬 난다. 반들거리는 새 주소패 겉에 이 주소패를 붙였던 살림집 주소와 오늘 날짜를 네임펜으로 적는다. 문이 열린 빈집으로 들어가 본다. 빈집이니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다. 살림살이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치웠다. 집 옮길 돈은 받고 옮기셨을까. 바깥 골목에서 보면 알 수 없던 골목집 누리가 펼쳐진다. 바깥 골목에서는 골목집 안쪽 마당에 이렇게 예쁜 꽃밭과 텃밭이 앙증맞게 있는지 알 수 없다. 쇠붙이 문짝 잠금쇠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 잠금쇠 또한 우리네 가난하고 수수한 여느 살림꾼들 발자국인데, 이 잠금쇠 하나를 ‘서민 역사’로 여기며 건사해 놓는 박물관이 한 군데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골목집을 허물어 아파트로 바꾼다고 할 때에 골목집 살림붙이를 찬찬히 보듬으며 모셔 놓을 박물학자라든지 전문가라든지 역사학자는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해에 갑자기 돌아가신 재능대 사진학과 박재건 교수님은 송림4동과 5동 골목동네를 쓸어버릴 때에 동네를 다니면서 문패이니 주소패이니 몇 가지를 건사해 놓으며 “이 동네가 여기 있었음을 생각하고 싶었다.”고 말씀했다.
새로 장만한 큰 배낭은 비를 맞아도 끄떡없다.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목돈을 쏟아 장만한 배낭이라 그런지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쓰던 가방은 십만 원 넘는 돈을 들였는데 그 가방은 쟈크가 망가지고 빗물이 스몄고, 이 가방은 이십만 원 넘는 돈을 들여서 그런가, 쟈크는 한결 튼튼해 보이고 빗물이 스밀 틈이 없다. 빗물막이 천을 두르면 훨씬 야무지다. 돈이란 좋은가 무서운가 고마운가 대단한가 놀라운가.
거의 다 비어 버린 골목동네를 거닐며 대문 안쪽으로 살짝살짝 들여다보이는 살림살이를 살핀다. 마루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는 아저씨 한 분 보인다. 그래, 거의 다 비어 버렸으나 이렇게 살아가는 골목이웃이 있어. 사람이 살아가는 동네라고. 사람이 있는 터전이라고. 사람이 뿌리내리고 자리잡는 쉼터라고. 막걸리이든 보리술이든 한 잔이 그립다. (4343.10.3.해.ㅎㄲㅅㄱ)
= 사진은 보름 앞서 마실 할 때 찍은 녀석들. 엊그제 찍은 사진은 며칠 뒤에나 갈무리할 수 있어서 못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