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달팽이와 개구리


 퍼붓는 빗길을 헤치며 자전거를 달려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 나비와 달팽이와 개구리를 만난다. 차에 치여 그만 숨을 거둔 나비 한 마리가 길섶 한켠에 쓰러져 있다. 비를 맞아 젖은 날개를 어쩌지 못하고 꼼짝 않는 나비가 길섶 흰 금에 앉아 있다. 달팽이가 어디부터 기어왔는지 모를 노릇인데 길섶 가장자리에서 기고 있다. 길섶 물 고인 웅덩이에서 놀던 개구리는 내 자전거가 물웅덩이를 가로지를 무렵 화들짝 놀란 듯 길 옆 풀숲으로 뛰어든다.

 자동차들은 빗길에 나비를 그냥 치거나 밟을까 걱정스럽다. 자동차들은 노란 금과 흰 금 안쪽으로 얌전하고 천천히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한테는 달팽이가 보일 노릇이 없으니 작은 돌멩이 하나 밟았다고 여기거나 아예 못 느낀 채 조그마한 목숨 하나 저승으로 보내겠구나 싶다. 그나마 개구리 한 마리는 내가 풀숲으로 보내 주었기 때문에 얼마쯤이나마 더 살아갈 수 있겠지. (4343.8.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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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별 보기


 밤에 갑작스레 큰비가 미친 듯이 퍼붓다가 새벽에 이르러 말끔히 개며 구름이 모조리 사라지는 날씨가 이어진다.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밤에는 어둡게 탁 트인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으며, 길가에 등불이 없어 달빛과 별빛을 가로막지 않으나, 한동안 밤하늘 별을 시골에서조차 찾지 못했다. 엊저녁 참 오랜만에 밤에 비가 퍼붓지 않는다. 밤에 비가 퍼붓지 않으니 후덥지근하며 끈적끈적한 날씨가 사라지는데, 이와 함께 밤하늘 별빛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안 밤하늘 별빛은 아예 잊는다고 하지만,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까만 밤하늘 빛깔과 애기별꽃 같은 별무늬를 잊는다면 얼마나 슬픈 노릇일까. (4343.8.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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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다리


 “앞으로도 (인천) 배다리에는 오실 거지요?” “따로 배다리에 온다기보다, 저는 헌책방하고 골목 때문에 와요. 인천(또는 인천 배다리)에 헌책방이 모두 사라지거나 인천에 골목길이 죄다 밀려나고 말면, 저는 인천에 올 까닭이 없습니다.” (4343.7.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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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달 빛길


 서울 지하철 강변역에 자리한 버스 타는 곳에서 충북 음성군 생극면으로 오는 시외버스는 저녁 7시 40분에 막차입니다. 버스 타는 곳에 저녁 8시 38분에 가까스로 닿아 표를 끊으려고 하니 일찌감치 끊겼다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저녁 9시에 무극(금왕읍)으로 오는 버스표를 끊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자전거 바퀴를 떼어놓고 서 있습니다. 짧은치마 차림인 아이들 다섯이 버스 앞에 서서 수다를 떱니다. 무극에 살며 도시로 나들이를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인 듯합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가 조용히 잠들어 있는 버스에서 내내 쉬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몹시 차갑게 나오는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팔과 다리를 문지른 끝에 무극에 닿습니다. 무극에 닿을 때 갑작스레 아파트숲이 왼쪽과 오른쪽에 나란히 펼쳐집니다. 참 생뚱맞다 싶을 모습이지만, 이 깊은 시골마을에 퍽 높다란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버스 짐칸에서 자전거를 내립니다. 바퀴를 붙입니다. 불을 켜고 달립니다. 바구니와 가방에는 짐이 잔뜩이라 꽤 무거워 자전거는 천천히 나아갑니다. 밤길에는 오가는 차가 퍽 적어, 내 자전거에서 불을 끄고 달리면 참 어둡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보름달이 훤하게 떠 있어 찻길이 하나도 안 어둡습니다. 보름달 빛살에 기대어 느긋하게 달리며 가뿐 숨을 내뱉습니다. 가뿐 숨을 내뱉다가도 가만가만 숨을 멈추며 자전거 바퀴 구르는 소리 아닌 산마을에서 들려올 소리가 있는가 하고 귀를 기울입니다.

 시골 버스역에서 내려 국도를 달리는 동안에는 별을 보지 못합니다. 드문드문 지난다고 하지만, 드문드문 지나는 자동차 등불 때문에 별을 볼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국도가 끝나고 우리 살림집으로 들어서는 시골길에 접어들어 참말 아무런 등불 없이 자전거 불조차 켜지 않고 싱싱 달릴 때에라야 별이 보입니다.

 별을 봅니다. 까만 밤하늘을 촘촘히 채우고 있는 별을 올려다봅니다.

 별을 올려다보며 느긋하게 땀 뻘뻘 흘리며 달립니다. 달리는 발은 느긋하지만 아무튼 땀은 뻘뻘 흘립니다. 이제 우리 집에 다 왔습니다. 아이 엄마는 부엌 쪽에 불을 켜 놓고 아이 아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있던 아이 엄마가 일어납니다. 오늘 하루에다가 어제 낮과 저녁을 아이랑 둘이 보내느라 고달팠을 아이 엄마 모습을 훤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더구나, 며칠 앞서부터 쥐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들어와 벽을 파먹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오늘은 자고 이듬날 아침에 바지런히 읍내에 나가서 쥐끈끈이 몇 사들고 와야지요.

 땀으로 범벅이 된 자전거 손잡이를 물로 헹구고 헛간에 놓습니다. 자전거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한 다음, 밤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집으로 들어와 옷을 모두 벗어 담가 놓고 찬물로 멱을 감습니다. 아, 우리 집에서 몸을 씻을 때가 가장 즐겁고 홀가분합니다. 이 찬물 맛이란. 이 조용한 시골집이란. 쥐야, 너도 밤에는 잘 자렴. 그리고 이듬날에는 부디 네 보금자리인 산으로 돌아가렴. 끈끈이에 붙들려 목숨을 잃지 말고 조용히 네 숲으로 돌아가렴. (4343.7.2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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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7-29 07:59   좋아요 0 | URL
어맛, 생극! 시댁 큰집이 생극이에요. 반갑습니다.

숲노래 2010-07-29 08:55   좋아요 0 | URL
생극은 참 작고 조용한 면이에요~
 


 나비와 지렁이


 음성 읍내로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가서 돌아오는 길에 나비 한 마리를 칠 뻔했다. 2·7 날에 음성 읍내에서 장날이 열리기에 이날에 맞추어 나들이를 하면서 수박과 무우와 애호박 들을 장만하고 퍽 무거운 가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찻길 구석자리에 앉아 하늘하늘 날갯짓하며 쉬는 나비를 보았는데, 자전거로 달리며 거의 1미터 앞에서 알아챘기 때문에 찻길 구석자리에서 그냥 달렸으면 나비 몸통을 고스란히 짓밟았겠지. 뒷거울로 뒤따르는 차가 있는지 없는지 살필 겨를조차 없이 손잡이를 틀어 아슬아슬 나비 옆 3센티미터를 비꼈다.

 그러구러 한숨을 돌리며 저수지 옆길을 달리는데, 어제 이 길을 달리며 지렁이 한 마리 차에 치여 죽은 모습이 떠올랐다. 벌써 죽은 지렁이라 하지만 나까지 주검을 밟고 지나가기는 싫어 살금살금 살피며 달리는데,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지만, 지렁이 주검은 아무런 자국이 남아 있지 않다. 지난밤에 비가 잔뜩 퍼붓기도 했지만, 비 때문에 지렁이 주검이 쓸려가지 않았다. 비 때문에 지렁이가 차에 밟히고 거듭 밟혀 묵사발이 된 모습이 많이 씻겼을 뿐이다. 왜냐하면 어제만 해도 지렁이가 처음 밟혀서 죽은 모습이 통통하게 살아 있었는데, 오늘은 아예 짓이겨진 자국이 보였기 때문.

 가파른 언덕을 낑낑대며 오르는 동안 길가에서 날갯짓하며 쉬는 나비를 한 마리 더 본다. 아까 나비는 자전거가 달리는 찻길 구석자리 흰줄에 앉아 있었고, 이번 나비는 찻길 한복판에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다. 이번 나비는 내가 칠 일이 없으나, 자동차들이 달리며 ‘스스로 친 줄조차 모르는’ 채 치여 죽을까 걱정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그나마 코앞에서 알아채는데,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다. 길가에 사마귀가 있는지 귀뚜라미가 있는지 지렁이가 있는지 나비나 나방 애벌레가 볼볼볼 기고 있는지, 무당벌레나 딱정벌레가 뜀밤질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챌 수 없는 자동차이다. 자전거 아닌 두 다리로 걷는다면 이 모든 작은 목숨을 낱낱이 알아채며 하나하나한테 인사할 수 있겠지. 줄줄줄 기어가는 개미한테도 인사할 수 있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개미까지 알아채지는 못한다. (4343.7.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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