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바닥과 고무신


 새 고무신을 신으면 보름쯤 발등 끝하고 뒷꿈치가 까진다. 제아무리 굳은살이 딱딱하게 박혀 있더라도 새 고무신에는 견디지 못한다. 까져서 피가 흐른다. 양말을 신으면 좀 다르겠지. 양말을 안 신는 맨발로 살아가면 새 고무신이 처음에는 퍽 힘들다. 그러나 내가 땅을 늘 밟으며 농사짓는 사람이었다면 발등 끝이랑 뒷꿈치가 안 까지리라 본다. 맨발로 날마다 열 몇 시간씩 흙을 밟으며 풀이랑 살았으면 새 고무신을 신으며 발이 아플 일이 없을 뿐더러, 맨발로 어디로든 홀가분하게 다니지 않겠는가.

 사흘에 걸쳐 인천과 서울을 오락가락하며 참 많이 걸어다니다가 책으로 꽉 찬 큰 베낭을 짊어지고 충주 산골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며 발바닥을 쪼물딱쪼물딱 만져 준다. 발가락 끝부터 뒷꿈치 위쪽까지 단단하면서 조금 욱신거린다.

 문득 군대에 있을 적이 떠오른다. 군대에서 훈련을 한다며 걸을 때에는 열 몇 시간을 한 차례조차 안 쉬며 걷기도 하는데, 군대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걸을 때에는 발에 물집이 잡힌다. 한겨울에도 군화 신은 발에는 땀이 찬다. 군인들 신발은 바람이 들지 않으며 두꺼운 양말을 신으니까.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와 몸을 씻고 비로소 느긋이 드러누울 때 발바닥을 만지작거리면 허연 살덩이가 말랑말랑하다. 군인은 아무리 많이 오래 걸어도 발바닥에 꾸덕살이 박히기 어렵다. 후끈후끈하며 땀이 가득 차는 좁은 데에 갇히는 발은 냄새를 끌어안을 뿐이다. 발이 숨을 쉬지 못한다.

 고무신을 맨발로 신으면 발에 땀이 차지 않는다. 금세 땀이 다 마르니까. 발은 늘 숨을 쉬고 얇은 고무 바닥 하나인 신발은 발바닥이 스스로 단단해지도록 이끈다. 이런 신발 한 켤레가 고작 3000원이니 나로서는 다른 어떤 신을 신을 수 없다. 신나게 고무신을 신으면 열 달이나 열두 달이면 뒷굽이나 바닥이나 옆이나 모두 닳아 더는 발가락을 꿰기 어렵다. 밑창이 찢어져 꿰매야 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무신인데, 이제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 아니고는 신을 일이 없을 뿐더러 농사짓는 사람들은 으레 손으로 농사짓기보다 기계로 농사를 지어 버릇하기 때문에 웬만한 농사꾼 아니면 발이 까지도록 하는 고무신을 반기거나 찾아서 즐기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야 할 테지. 진작부터 ‘한국 공장’이 아닌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 들여오는 고무신이다. 그나마 고무신을 애써 찾는 시골사람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중국 공장에서도 더 만들지 않는단다. 3000원짜리 ‘참 고무신’은 자취를 감추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5000원짜리 ‘무늬만 고무신’을 판다. 이제 내가 몇 켤레 미리 사 둔 고무신이 다 닳아 버리면 나로서는 고무신을 더는 못 신으려나. 참 고무신을 더는 장만할 수 없으면, 내 발바닥은 내가 딛는 땅을 얼마나 살가이 받아들일 수 있으려나. (4343.10.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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