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사랑의 꿈’
지난 사흘에 걸쳐 바깥마실을 했다. 애 아빠는 서울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인천에 가서 다섯 시간 남짓 골목마실을 하며 다리가 퉁퉁 부은 채 곧바로 일산으로 넘어가 옆지기 살붙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로 찾아들었다. 일산 비닐집에서 이틀을 묵고 오늘 아침 열 시 반에 길을 나서 낮 네 시 무렵에 겨우 충주 산골마을 집으로 돌아온다. 이래저래 여섯 시간이 걸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고속버스에서 잠든 아이를 안고 시골버스를 기다리는데 삼십 분이 넘도록 안 오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내가 시간표를 잘못 보았다. 충주 시내 쪽 버스 시간을 봤어야 했는데 음성 읍내 쪽 버스 시간을 보고 말았다. 그예 길에서 삼십 분 동안 아이를 안고 있던 셈. 부랴부랴 택시를 불러 타고 삯 만 원을 치러 산골집으로 들어오다. 팔과 다리 힘이 다 풀려 후들후들 떨며 아이를 방바닥에 드러눕히는데, 방바닥에 드러눕히니 비로소 깨어난다. 조금 더 자 주면 안 되련? 참 힘들어 죽겠구나. 아이는 고단하면서 또 일어나서 놀려 하고, 애 아빠는 그만 뻗어 버리고 만다. 뻗어 버렸으나 아이가 어리광에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히유. 잠들지 못하는 잠결에 아이가 배고파 하는구나 싶어 어기적 일어나 생협에서 사 온 우리밀라면 한 봉을 끓인다. 옆지기는 국물을 먹겠다고 하니, 감자 두 알과 애호박 조금과 무 조금에다가 버섯 세 송이하고 곤약 몇 조각을 썰어 넣는다. 버섯은 맨 나중에 넣는다. 새우젓과 액상물로 간을 맞추고 라면양념은 1/4을 넣는다. 생협 라면이더라도 양념은 살짝만 넣고 싶다. 건더기가 훨씬 많은 라면을 먹은 뒤 설거지를 한 다음 이듬날 먹을 쌀과 콩을 씻어 불려놓는다. 아이는 아무래도 잠들 듯하지 않아 애 아빠는 더 버티며 일손이라도 붙잡으려 한다. 인천마실을 하며 찍은 골목 사진 364장을 셈틀로 옮기며 raw파일을 jpeg파일로 바꾼다. 364장 모두 안 흔들리며 빛이 제대로 맞았다면 그지없이 좋았을 테지만, 몸은 몸대로 힘들고 날씨는 날씨대로 궂은 탓에 입맛을 다시는 사진이 자꾸 보인다. 가로로 한 번 찍고 세로로 다시 찍은 사진은 겨우 한 장을 살릴 수 있다. 몇 달 사이에 텅 비고 만 도화2동 142번지 안쪽 골목 사진 가운데, 막다른 골목에 있는 집 담벼락에 돌로 시멘트를 벗겨 글자를 남긴 “사랑의 꿈” 사진이 살짝 흔들렸다. 맞은편 벽에 몸을 기대어 찍었는데 흔들리다니. 이 사진을 찍을 때에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흔들리니 슬프다. 다시 가서 찍어야 하잖은가. 그러나 내 사진은 딱 한 번 찾아가서 찍는 사진이 아니다. 다만, 이 골목집들이 다음번에 찾아갈 때에 허물리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을까 모르겠다. 누가 “사랑의 집”이라는 글월을 새겼을는지 모를 노릇인데, 텅텅 비고 마는 동네에 해 놓는 낙서란 으레 짓궂거나 얄궂기 마련인데, 이 글월이라면 이 골목에서 살던 사람이 그예 다른 집으로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발자국이 아닐까 싶다. 작고 좁다 하는 골목집에서 오래오래 살았던 사람은 으레 느낄 테지만, 퍽 많은 식구가 올망졸망 복닥이는 집이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틀림없이 “사랑어린 집”이요 “사랑스런 집”이며 “사랑하는 집”이다. (4343.10.4.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