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는 20가지 생각
박경화 지음 / 북센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 글쓴이 : 박경화
- 펴낸곳 : 북센스(2006.1.16.)
- 책값 : 9500원


 낮부터 눈이 내렸습니다. 이제 눈은 그쳤습니다. 조용한 밤입니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차 다니는 소리도 안 들립니다. 좋습니다. 이 조용함이 좋습니다. 모든 것을 하얗게 덮은 눈을 보면, ‘아, 이제 이 눈이 다 녹을 때까지 또 꼼짝 못하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히유, 얼어붙은 눈이 녹으려면 또 한참이 더 있어야겠군’ 하는 생각이 뒤따릅니다.

 하지만 눈이 마냥 밉지 않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미운 마음이란 없습니다. 겨울이니까 눈이 와야지요. 오더라도 펑펑 와야지요. 펑펑 와서 길이 다 막히고 무릎이 푹푹 잠겨야지요. 겨울인걸요.


-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1급수 맑은 물에만 사는 물고기들이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 (34쪽)


 이제 날이 새고 아침이 밝아 오면 길을 쓸고 치우는 손길로 부산할 겝니다. 차 많이 다니는 큰길에는 모래를 뿌린다고, 염화칼슘을 뿌린다고 법석이겠지요. 눈이 오는 날, ‘이야, 흰눈이다. 눈이다. 펄펄 내리는 눈이다!’ 하면서 소리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습니다. 눈싸움을 하자고, 눈사람을 만들자고, 눈놀이를 하자고, 눈사진을 찍자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을 찾기 힘듭니다.

 생각해 보니, 눈이 펑펑 내려 길을 덮어도 사람들 지나다니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걸어다닐 때 조금 미끄럽다고는 하지만, 글쎄, 그렇게까지 미끄러웠는가 모르겠어요. 길을 쓸거나 치워야 한다면, 모두 차가 잘 다니라고 쓸거나 치우지 않을까요?


..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된 중개상과 다국적 기업들은 콩고의 광부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고 국립공원이 얼마나 파괴되었고 고릴라들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  〈24쪽〉


 눈이 펑펑 내린 날은 버스도 쉬고 기차도 쉬고 비행기도 쉬고, 모두모두 쉬면 어떨까요. 청소부도 쉬고 구멍가게도 쉬고 신문사 배달직원과 우유 아줌마도 쉬면 어떨까요. 구두닦이도 쉬고 길거리 장사꾼도 쉬고 은행도 쉬면 어떨까요. 먹고살아야 하니 쉴 수 없고, 먹고살아야 하니 차가 싱싱 달릴 수 있게 재빨리 길에 쌓이는 눈을 후다닥 치워야 할까요.


.. 덤은 많이 못 줘도 비닐봉지 인심은 풍년이다. 애써 장바구니를 챙겨 온 내 손이 부끄러워진다. 대형할인점은 아예 야채와 과일을 따로 포장해서 가격표를 붙여 준다. 때문에 장바구니를 들고 가도 별 쓸모가 없다. 장을 볼 때마다 찬장에 비닐봉지가 자꾸 늘어간다. 그럴 때마다 비닐봉지를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  〈84∼85쪽〉


 아침에 일어나면 사진을 찍어야지 생각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불을 끄고 눕는데 창밖에 환합니다. 달빛과 별빛은 없는 밤이지만 온누리를 하얗게 덮은 눈 덕분에 바깥이 환하게 보이는군요. 도시에서도 온 동네 불빛이 다 꺼진다면 세상이 온통 밝고 하얗게 보일 테지요(그럴 일은 없겠지만). 밤에 눈빛이 얼마나 하얀지, 또 밝아 온 아침에 눈이 얼마나 하얀지 느낄 수 있겠지요.


.. 외출해서 차를 기다리고 차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걷는 짧은 시간만 추위를 느낄 뿐이므로 굳이 내복을 챙겨 입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옷맵시에 신경을 쓰는 멋쟁이들은 두꺼운 내복이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원한다면 겨울철에 반드시 내복을 입어야 한다. 우리 나라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다 ..  〈113∼114쪽〉


 겨울다운 겨울을 잃는 우리들은 봄다운 봄을 잃고 여름다운 여름을 잃습니다. 지난해 가을은 여태까지 맞이한 가을 가운데 가장 ‘가을답지 않은 가을’이었습니다. 하지만 2007년 가을은 지난해보다 더 ‘가을답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우리들 씀씀이는 줄지 않으니까요. 자동차를 사려는 우리 마음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입으로만 ‘가까운 거리는 걷자’고 읊고, 몸으로는 죽어도 안 걸으려고 하니까요. 그러면서 늘 같은 말을 되뇌이겠지요.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4340.1.27.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
메리베드 로비엑스키 지음, 작은 우주 옮김 / 달팽이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환경] 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  2006.11.27 02:11

- 책이름 : 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
- 글쓴이 : 메리베드 로비엑스키
- 옮긴이 : 작은우주
- 펴낸곳 : 달팽이(2004.7.21.)
- 책값 : 12000원


.. 그는 해뜨기 전 새벽에 일어나 들판을 돌아다녔다. 학교를 빼먹고 숲속에서 지내기도 했다 ..  〈43쪽〉


 아침마다 작은 새들이 저를 깨웁니다. 새들은 창가에서 파닥거리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 찾아다니면서 소리를 내거든요. 요즘은 딱새 몇 마리 구경하는 일로 아침 한때가 즐겁습니다. 딱새는 하늘에 뜬 채로 몇 초 동안 가만히 있기도 하는데(쉼없이 날갯짓을 하며), 저 작은 몸에, 날개에, 저렇게 빠른 날갯짓으로 참 잘 나는구나 싶어 놀랍습니다.

 박새와 콩새도 자주 보이는 새 가운데 하나. 요 작은 새들은 아주 조금만 먹어도(사람과 견주어) 되겠지요. 조금만 먹어도 얼마든지 자연 삶터에서 잘 어우러지는 목숨붙이일 테지요.


.. 세상의 압박받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눈물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 (알도 레오폴드/편지) 〈63쪽〉


 아침부터 하늘에 구름이 많았고, 날이 퍽 포근했습니다. 예전 겨울이었다면 눈이 왔을 날씨인데, 요즘 겨울은 퍽 따뜻하기 때문에 비가 내립니다. 그러나 눈구름이 아닌 비구름임을 느끼는 이 드뭅니다. 이 눈(아닌 비였지만)이 따뜻하게 온 세상을 덮으면서 크고작은 날벌레들을 모두 죽여서 땅에 묻히게 하여 이듬해에 흙에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던 흐름은 차츰차츰 깨지는데, 이를 느끼는 이도 드뭅니다. 아직까지 모기가 다 죽지 않았음을 느끼기는 해도, 왜 모기가 안 죽었는지 깊이 생각하며 자기 삶을 돌이켜보고 바꾸려하는 이도 드뭅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이맘때에는 몹시 추워서 바들바들 떨었는데(올해와 견주면), 올해는 그다지 안 춥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난해보다 지지난해가 덜 추웠고, 지지난해보다 지지지난해가 덜 추웠습니다. 0도 아래로 10도쯤 떨어지는 날씨는 아무것도 아닌 지난날이었지만, 이제는 0도 아래로 1도만 내려가도 강추위가 온 듯이 느끼는 요즘 사람들입니다. 몸은 몸대로 여려빠지고, 마음은 마음대로 곪아버렸달까요.


.. 생물학자들 대부분이 개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레오폴드 교수님은 개체군이란 개념을 생각하고 있었다. … 개체군을 생각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을 때, 교수님은 생태계와 그 생태계의 일부로서의 인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 교수님은 자연의 보존이라는 범위를 넘어서 인간과 자연의 융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  〈246쪽〉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또 서울에서 시골로 돌아오는 길에, 수없이 많은 자동차와 부대낍니다. 이 자동차들을 가만히 보면, 다른 자동차한테 마음을 곱게 쓰는 사람도 보이지만, 다른 자동차를 윽박지르듯이 다니는 사람도 보입니다. 어느 쪽이 더 많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와 자동차끼리도 싸우고 윽박지르고 밀고 당기는 사람들이, 자동차와 자전거였을 때, 또 자동차와 사람이었을 때, 또 자전거와 사람이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우리한테 다가올까요.

 경주하는 자동차는 경기장에서만 달려야 할 텐데, 보통 찻길에도 함부로 끼어들어 큰일입니다. 경주하는 자전거도 경기장에서만 달려야 할 텐데, 보통 자전거길에도 함부로 끼어들어 큰일입니다. 무기는 제 나라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무기를 많이 만들어 가진 나라치고 힘여린 나라로 쳐들어가지 않은 나라란 없는 지구 역사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중요하고 맨 먼저’라고 외치면서 ‘자연은 사람들 목적에 알맞게 개발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치고 ‘자연에서 먹을거리-입을거리-쓸거리-잠잘곳’을 안 얻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4339.11.26.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박한 삶
레기네 슈나이더 지음, 조원규 옮김 / 여성신문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소박한 삶
- 지은이 : 레기네 슈나이더
- 펴낸곳 : 여성신문사(2002.2.15.)
- 책값 : 8000원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돈 아니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요즘은 도시뿐 아니라 시골도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도시사람들만 겪는 돈 문제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 자원과 에너지가 어떻게 낭비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  〈22쪽〉


 돈으로 물건을 사서 쓰는 세상은,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을 돈으로 풉니다. 자기 손으로 지어내는 물건이나 먹을거리는 아주 크게 줄어듭니다. 누구한테 무엇인가를 선물할 때에도 돈을 주고 살 뿐이지, 손수 마련하는 일이란 보기 드뭅니다. 떡국도, 만두도, 김치도 다 사서 먹으니까요.

 

 이렇게 돈으로 모든 일을 풀다 보면,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싹틀 수밖에 없고, 이러는 가운데 ‘물건도 돈으로 사고, 쓰레기도 돈으로 치우면 그만’이라는 버릇이 몸에 배어듭니다.


.. 값비싼 선물 공세를 펴는 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 시간이 너무도 적다는 반증이 아닐까. 즉, 선물로 사랑의 표현이 부족한 것을 메꾸려 하는 것이다 ..  〈51쪽〉


 적잖은 사람들이 ‘옛날이 좋았어’ 하고 떠올리는 옛모습이란, 사람다운 마음, 이를테면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있는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눌 수 있는 마음, 사람과 온갖 목숨들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마음쓰던 삶터, 대문이나 울타리가 없어도 도둑이 들지 않는 마을 문화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그리워하는 지난 옛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까닭은, 돈으로 살아가는 도시 삶에서 빠져나오기 싫기 때문이지 싶어요. 자기부터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사람들한테 펼치고픈 마음은 없이, 남들이 자기한테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일 테고요. 자동차를 몰 때는 경적을 울리기만 할 뿐, 빠르기를 늦춰 다른 차가 먼저 가도록 마음을 쓴다거나, 자전거나 걷는사람이 먼저 가거나 마음놓고 다닐 수 있도록 눈길을 두는 일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도 느낍니다.


.. 미래에는 산업생산품의 풍요가 아니라, 그런 걸 만들어내느라고 우리가 파괴해 버린 것들, 즉 자연ㆍ시간ㆍ공간ㆍ여유ㆍ건강ㆍ환경 등이 중요해진다. 이제 한적함과 고요함이 사치가 되어 버렸다. 그걸 얻으려면 매우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오늘날엔 시장을 보거나 자동차를 몰 때, 심지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조차 소란과 번잡을 참아내야 한다. 다세대 주택의 벽들은 너무나 얇아서 이웃들이 내는 별별 소리가 모조리 들린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너무도 자극을 받은 나머지 이제는 오히려 고독과 정적을 겁내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너무도 낯설어진 것이다 ..  〈27쪽〉


 장마가 걷히니 날이 푹푹 찝니다. 방 온도가 27도나 됩니다. 잠깐잠깐 집밖으로 나가서 바람을 쐽니다. 오랜 비가 내린 뒤끝이기 때문에 밤하늘 별이 대단히 잘 보입니다. 안경을 끼고 올려다보니 미리내도 얼핏 보일 듯합니다. 다른 별도 깨끗하게, 굵게 보입니다. 개 짖는 소리도 없고, 차 나다니는 소리도 없습니다. 개구리와 벌레 우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제가 사는 산속은 사람이고 자동차고 들어올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저야 집이 이런 시골이니, 밤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느끼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저 같은 사람들이 날마다 느끼는 모습을 보려고 시골로 휴가를 떠나시겠지요? 그러면 저는 맨날 ‘휴가를 즐기는’ 셈인지 모르겠네요. (4339.7.31.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글쓴이 : 전우익
- 펴낸곳 : 현암사(1993.5.15)


 1993년에 나온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1999년에 사서 읽었습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책인데, 그때 끝까지 다 읽지는 못하고 3/4쯤 읽고 덮어 놓았습니다. 그러다가 책꽂이 어디엔가 꽂아 놓고는 잊고 지냈는데, 지난주쯤 책꽂이를 크게 한 번 추스르면서 이 책을 다시 만납니다.


.. 농민이 제대로 농민 구실을 하자면 땅과 스스로와 세상을 함께 갈고 가꾸어야겠다고 느낍니다. 곡식이 제대로 자라는 데 질소, 인산, 칼리의 세 요소가 필요하듯 농민이 제대로 된 온전한 농민이 되자면 땅도 갈고 자기 스스로도 갈고 세상도 갈아야지, 줄기 자라는 질소만 듬뿍 주고 뿌리 튼튼히 뻗는 인산과 열매 충실히 맺는 칼리를 주지 않으면 짚농사만 짜드러 짓지 벼는 쭉정이만 달리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농사 풍년이 값 폭락을 가져온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  〈45쪽〉


 일곱 해 만에 다시 읽습니다. ‘그때 읽다가 덮어둔 일이 차라리 잘되었나’ 하는 생각도 얼핏 들지만, ‘그때 끝까지 마저 읽은 뒤, 이번에 새롭게 다시 읽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다 읽고 한 번 더 읽는다면, 두 번 읽는 느낌을 추스르고, 미처 못 읽고 다시 읽는다면, 이런 느낌을 다독이면 되겠지요.


.. 자연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연을 원수처럼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 자연의 리듬에 거슬리게 사는 게 잘사는 것인 양 우쭐대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연의 리듬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역사의 흐름도 막으려 들고 민심도 깔아뭉개려 들어요 ..  〈52쪽〉


 요즘 감자 캐는 철입니다. 벌써 다 거두어들인 곳도 있고, 이제 거두어들이는 곳도 있습니다. 지난날과 견주면 무척 빨리 거두는 셈이라고 하더군요. 아마 모두들 시장에 내다 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거두려고 애쓰는구나 싶습니다. 모내기도 그렇고 가을걷이도 그렇습니다. 해가 갈수록 심는 날이 앞당겨지고 거두는 날도 앞당겨집니다. 날씨가 해마다 더워지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일찍 거두어 파는 쪽’이 더 돈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쌀값이 빚이나 갚을 수 있게 해야지 거기 무슨 딴 수작이 있겠어요? 구도하시는 스님들도 공양을 들여야 염불도 참선도 하시는데, 밥 먹고 사는 사람이 쌀을 업신여기는 건 백성을 얕잡아보는 데서 나옵니다. 농민들의 추상 같은 벼락만이 빚을 떨쳐 버릴 수 있고, 민족의 추상 같은 뇌성벽력 없이는 분단의 장벽은 허물어지지 못할 것 같아요 ..  〈22쪽〉


 빚을 갚기는커녕 빚이 늘어나는 농사입니다. 그러면 도시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빚만 지는 농사, 그냥 집어치우고 땅 팔아 도시로 와서 장사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제 땅을 가진 농사꾼이 얼마나 된다고 그럴까요. 더욱이 평생 농사만 짓던 어리숙한 사람이 장사를 해서 ‘밑천 안 날리면 그나마 잘한’ 셈임을 헤아려야 합니다. 차라리 조금 빚을 지더라도 내 집이 있는 시골이 낫고, 먹을거리는 제 손으로 키울 수 있는 농사가 낫지요.

 

 농사도 안 짓는 사람들은 배불리 먹고살 뿐 아니라 돈도 조금씩 모으는 요즘 세상입니다. 그러면서 유기농이니 뭐니를 찾습니다. 한미FTA니 지난날 우루과이라운드니 뭐니를 떠나 우리 시골이 무너지는 동안 한 번도 제대로 거들떠보지 않아 온 우리들입니다. 시골사람도 시골을 떠나 무턱대고 도시로만 몰리려 했지만, 도시사람도 도시 삶이든 시골 삶이든 있는 그대로 헤아리려 하지 않고 값싸고 가벼운 놀음놀이에 빠지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입니다. 농사꾼만 잘살아도 안 되는 세상이지만(그러나 이런 세상이 언제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요?), 농사꾼 아닌 사람만 잘살아도 안 되는 세상입니다. 평생 고생한 사람이 마지막 삶이나마 보람을 얻어야 하나, 누구나 다 보람을 나누어 얻고 즐겁게 어우러질 수 있어야 좋은 세상이라고 믿습니다.

 

 전우익 님은 땅을 부치고, 나무를 심고, 씨앗을 갈무리하고, 자리를 치면서 자기 삶을 가꾸었고 세상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가꾸고 있나요? 우리 세상은 어떻게 읽고 있나요? (4339.7.4.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바랄게 없는 삶
야마오 산세이 지음, 최성현 옮김 / 달팽이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더 바랄 게 없는 삶
- 글쓴이 : 야마오 산세이
- 옮긴이 : 최성현
- 펴낸곳 : 달팽이(2003.10.9.)
- 책값 : 9000원


 비가 그쳤습니다. 해가 잠깐 났습니다. 세상이 아주 조용해진 듯합니다. 숨죽이던 새들은 다시 지저귀고 잔뜩 물을 품느라 힘겨웠던 땅들도 마음을 놓은 듯합니다. 논이고 밭이고 가득가득 넘칠 뻔하던 물도 조금씩 빠집니다. 나날이 뿌얘지는 하늘은 한결 깨끗해진 느낌입니다. 아쉽다면 무지개는 보이지 않고, 뭉개구름도 안 보인다는 대목.


.. 진짜로 존귀한 것은 물 그 자체로서, 이 지구 위에서 유일하게 자연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생물인 인간이 물을 존중하며 맑은 물 지키기에 노력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즐길 수 있고, 나아가서는 천 년 이천 년 삼라만상의 일원으로 영원히 존속해 갈 수 있는 것이다 ..  〈69쪽〉


 서울에서 지낸다면 이런 여러 느낌은 못 느끼지 싶습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지저분하고 비가 그쳐도 그친 대로 지저분한 서울이거든요. 비가 오면 길이 막힌다고 아우성이고 비가 그치면 빗물이 질척거릴 뿐 아니라 빗물이 그대로 튀기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내달리는 자동차로 넘치는 서울이에요.

 서울사람들은, 아니 서울뿐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이 나라 사람들은 샘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아니 않습니다. 시골에서도 그럭저럭 물이 맑은 곳이 아니고는 죄다 정수기 물을 마신다고 해야 할 만큼 물이 더러워졌습니다. 먹는샘물을 사마실 돈이 없다면 수도물을 끓여서 마실 텐데, 수도물을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믿을 수가 없고 믿기가 어려우니까요.


.. 염소는 젖을 얻기 위해 기른다. 농협에서 사료용 보리를 사다가 먹이면 배 이상 젖이 나온다. 그것을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돈을 주고 사는 사료로 키운 양의 젖을 마시는 것은 가게에서 젖을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다 ..  〈50쪽〉


 우리는 무엇 때문에 공업을 키우고 물건을 나라밖으로 내다 팔며 ‘아이티(IT) 강국’,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이루어야 할까요? 한동안 ‘에니메이션 고등학교’를 세운다 뭐한다 말이 많았습니다. 영화 한 편 잘 팔면 자동차 몇 만 대를 파는 것만큼 돈을 번다고 법석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컴퓨터 기술과 많은 돈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래서 흐르는 냇물을 손으로 떠서 마실 수 없다면 먹는샘물을 편의점이나 할인매장에서 사서 마시면 그만인가요? 우리 스스로 콩이고 팥이고 쌀이고 보리고 한 번도 스스로 씨 뿌려서 거두지 않으면서 ‘국산 유기농 곡식’만 ‘돈 주고 사서 먹으려’ 하고 있지 않나요? 그러면서 자유무역시장이다 뭐다 하여 이 나라 농촌이 끔찍하게 무너지고 죄다 빚더미에 올라앉아도 ‘그것은 우리 나라 농촌도 스스로 바뀌려 하지 않고 예전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라며 화살을 돌리고 있지 않습니까?

 중국산 곡식이나 물고기 들은 더러워서 사람이 먹을 것이 못 된다고 말하면서, 이 나라에서 거두어들이는 곡식과 물고기가 ‘깨끗한 물과 바람과 햇볕’을 먹으면서 살 수 있는 터전이 되도록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는 두 손 놓고 있지 않는지요?

 예전에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란 책을 읽은 적 있습니다. 일본 도쿄살이를 그만두고 외딴섬으로 들어가 조용하게 농사짓고 살아가면서 ‘이것 참 재미있구나’ 하고 느꼈던 야마오 산세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책입니다. 이이가 쓴 다른 책 《더 바랄 게 없는 삶》을 책방에서 얼결에 만났습니다. 책이 나온 때는 2003년. 어, 나온 지 벌써 세 해가 되었군요. 하지만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언론에 소개가 된 적이 없을까요? 소개된 적이 있어도 아주 조그맣게 실리고는 잊혀져 버렸을까요? 책방에서는 이 작은 책을 애써 보기 좋은 곳에 꽂아 두지 않았을는지 모르며, 우리들 책손도 이 책을 따로 끄집어내어 읽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뭐, 이 책 《더 바랄 게 없는 삶》이 대단히 깊거나 그윽한 생각이나 삶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더 바랄 것 없이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는 내(야마오 산세이) 모습’을 말할 뿐입니다. 꾸밈도 없고 가릴 것도 없습니다. 내(글쓴이)가 바라는 것이라면 맑은 물, 시원한 바람, 따뜻한 햇볕, 여기에 이 셋이 어우러진 이 땅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목숨붙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그런데 술술 읽히고 즐겁게 책을 덮을 수 있군요. (4339.4.19.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