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폭력이다 -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조윤정 옮김 / 달팽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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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13 ― 오늘날 정부와 권력자는 폭력덩어리일 뿐이다
 : 레프 톨스토이, 《국가는 폭력이다》


- 책이름 : 국가는 폭력이다
- 글 : 레프 톨스토이
- 옮긴이 : 조윤정
- 펴낸곳 : 달팽이 (2008.7.25.)
- 책값 : 12000원


 (1) 머리 아프도록 읽는 책 하나


 이제는 사라진 잡지 가운데 《샘이 깊은 물》이 있습니다. 이 잡지를 이끌어 나간 ‘설호정’이라는 분은 1992년부터 1995년 사이에 〈이 인물의 대답〉이라는 꼭지를 꾸렸고, 이 꼭지에서 설호정 편집장은 당신이 만나본 사람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만한 구석을 꼬치꼬치 파고들면서 깊이있는 이야기를 이끌어 냈습니다. 설호정 편집장한테 꼬치꼬치 대꾸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힘겹고 고단하고 짜증스러울 수 있을는지 모르나, ‘설호정이라는 사람까지도 뭔가 속시원히 풀리지 않는 대목이 보이고 느껴지기 때문에 환히 밝혀질 때까지 파고들어 캐낸다’는 흐름이었습니다.

 1992년 9월치 《샘이 깊은 물》에서는 〈이 인물의 대답〉 꼭지에서 《녹색평론》을 펴내는 김종철 교수와 만나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 자리에서 김종철 교수는 설호정 편집장이 꼬치꼬치 묻는 말에 벌컥 성을 내며 소리를 높였다고 하는데, 그래도 설호정 편집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더 가시돋힌 말을 묻고,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잡지 《샘이 깊은 물》을 읽는 사람들로서는 ‘1992년에 막 새로 나온 환경잡지 《녹색평론》은 뭐를 하려는 책인가?’ 하는 궁금함을 많이 풀 수 있습니다.

 물음을 받는 분으로서는 괴롭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괴로운 물음을 받아야 서로서로 발돋움합니다. 우리 스스로 못 느끼는 내 모자람과 어리숙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슬그머니 넘어갔거나 대충 흘려보낸 어설픔과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 있어요.

 이를테면, 김종철 교수가 너무 뜬구름잡듯 ‘철학적ㆍ추상적 이론’만 늘어놓고 있다 보니 설호정 편집장은 “사실 무슨 이념을 펼치는 데는 정권을 장악하는 게 최선 아닙니까?” 하고 한 마디를 쏘아붙입니다. 그러며 “지구의 광범위한 지역에서는 계속해서 미국 식의 소비 문화가 지속될 터인데 개인 몇 만 명이 책을 통해서건 명상이나 직관을 통해서건 각성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일 아닙니까?” 하고 덧붙입니다. 이때 김종철 교수는 성남을 참지 못하고, “그거는 그야말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세뇌된 논리입니다. 저는 종교적인 배경이 없는 사람이지만 예컨대 예수라는 존재가 하나 있었기 때문에 인류가 얼마나 변했습니까?” 하고 대꾸하는데, 설호정 편집장은 거침없이 “장기적으로는 그런 소수가 인류를 의미있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는 있기도 하겠지만, 이런 식의 개발 일변도로는 세계는 백 년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것 아닙니까?” 하고 따지고, 다시금 “모든 사람이 부처 될 만한 싹수를 가졌다고 해서 부처가 된다는 법도 없고, 또 되더라도 아주 장구한 세월이 필요할 것 같고, 그때가 되기 전에 세상은 이미 든 망조 때문에 망해 버릴 것 같다는 말입니다.” 하고 못을 박습니다.

 이에 김종철 교수는 “그건 오만한 얘기예요. 우리가 당장 부처입니다. 또 지금 지구가 망하느냐, 안 망하느냐, 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을 안 한다든지 그건 불필요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하고 말을 잇지만 그리 가슴에 와닿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들, 김종철 교수가 하는 이야기는, 일찌감치 설호장 편집장이 몸을 담았던 ‘전두환이 없앤 잡지’인 《뿌리 깊은 나무》에서 해 왔던 일인 한편, 지금 편집장으로 몸담은 《샘이 깊은 물》에서도 하기 있기 때문입니다. 설호정 편집장은 당신이 몸소 겪어 왔을 뿐 아니라 헤쳐나가고 있는 일을, ‘설호정 당신 눈과 머리’가 아닌 ‘환경잡지라는 빛깔있는 목소리로 한길을 걸어가려는 다른 사람 눈과 머리’가 무엇인가를 듣고 싶어 이렇게 물었지만, 김종철 교수는 이때까지 제대로 당신 생각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 오늘날 정부와 지배 계급은 정의 아니면 권리 비슷한 것에조차 기초해 있지 않고, 오로지 발달된 과학의 도움으로 정교하게 고안된 조직에 의존하고 있다 ..  (21쪽)


 올해는 2009년입니다. 1992년부터 열일곱 해가 흘렀습니다. 2009년 오늘날 《녹색평론》은 ‘대구 변두리’를 떠나 ‘서울 한복판’으로 일터를 옮겼습니다. 어느덧 열일곱 해가 지난 이야기인데, 열일곱 해 사이, 서울 한복판에서 환경잡지를 펴내는 《녹색평론》 김종철 교수 생각과 삶은 어떻게 거듭났을까 궁금합니다. 오늘에 와서 지난날 물음에 대꾸를 해야 한다면 어떤 말씀을 펼치실까 궁금합니다.

 설호정 편집장은 “저와 같은 패배주의자들한테 들려주실 수 있는 얘기이기는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으로 말하자면 이 책을 탐독하기 시작한 뒤로 구체적으로 훨씬 더 패배주의자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속되게 말해 고민만 늘었다는 말이지요.” 하고 말합니다. 김종철 교수는 “자꾸 사람을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건 제가 상당히 성공하고 있다는 얘기 같은데요?” 하고 묻습니다. 설호정 편집장은 “그런데 이런 책이 진실로 성공하려면 저 같은 사람이 실천에까지 이르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책에 제시되는 문제들을 끊어버릴 힘이 제겐 없습니다.” 하고 한 마디 받아칩니다.

 두 어른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아주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서, 더구나 열일곱 해 만에 다시 읽는 저는 피식 웃습니다. 쓴웃음이 저절로 새어나옵니다. 그러면서 제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제가 읊는 말마디가 나 스스로 내 삶을 고쳐 나가는 말마디인가를 돌아보게 되며, 내 말마디를 듣는 이웃이 당신 스스로 당신 삶을 고쳐 나가는 말마디로 받아들일까를 돌아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 노동자에게 땅이 없고 게다가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양식을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인간 본연의 권리조차 없다면, 그것은 그가 그런 상황을 바랐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사람들(지주들)이 노동 계급한테서 땅과 그 권리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이 비정상적인 사물의 질서는 군대에 의해 지탱된다 … 모든 정부와 통치 계급은 기존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필요로 한다. 이런 제도는 결코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마련된 게 아니며, 국민의 이익을 침해하며 오로지 정부와 통치 계급에게 봉사한다 … 군비와 전쟁을 위해 사람들에게서 징수한 세금은 군대가 보호한다고 하는 노동 생산물의 대부분을 앗아간다. 또 전 남성 인구가 평소 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서, 노동의 가능성 자체가 상실된다. 언제라도 발발할 수 있는 전쟁의 위험 때문에 사회적 삶의 개선은 헛되고 무익한 것이 되고 만다 … 정부는 외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군대는 주로 국내에서 억압적 통치를 하기 위해 필요하고, 군대에 들어간 모든 사람은 국민에 대한 정부의 폭력에 동참하는 자가 된다 … 병역 의무를 져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국가의 의미에 대해 성찰해 보아야 한다 ..  (35∼40, 44쪽)


 퍽 긴 꼭지로 마련한 〈이 인물의 대답〉이 막바지에 이를 때, 설호정 편집장은 가장 날카롭게 파고드는 말 한 마디를 묻습니다. “《녹색평론》의 이념을 선생님은 삶에서 어느 정도 실천하세요?” “대부분 못하죠. 그러니까 《녹색평론》은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실천하시는지.” “가급적이면 외식 안 하려고 하고.” “보신주의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보신주의 나쁠 거 없어요. 나한테 좋은 게 지구한테도 좋은 거예요. 또 고기 안 먹고. 제 생활은 간단하게 단순하게 살고. 여행을 잘 안 하고. 거의 안 합니다.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집하고 여기하고 학교하고밖에 왔다갔다 안 하고. 또 식구한테 빨래 자주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빨래 해결해야 되는 과제가 아파트로부터 나와야 하는 일입니다.” “선생님 가족들이 공감하세요?” “내년이면 애들이 다 우리를 벗어납니다. 대학을 가니까.” “서울로 간단 말이죠?”

 김종철 교수는 2009년에는 ‘아파트를 벗어나셨’는지, 그리고 당신 잡지에 실은 이야기 가운데 ‘거의 하나도 실천을 못했다는 대목 가운데 어느 대목을 실천하고 있으’신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이런 대목을 궁금해 하기보다는, 어딘가 뒤끝이 많이 남는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합니다. 왜 스스로 못하는 일을 ‘마치 스스로 하고 있는 듯 느껴지도록’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책을 내고 해야 할는지요. 왜 우리 스스로 즐겨하고 좋아하는 일이 아닌, 머리로만 굴리는 일을 해야 할는지요.

 저는 아파트가 싫고 텔레비전이 싫어 부모님 집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부모님께서 저한테 당신 아파트(이제는 전원주택이 되었습니다)를 물려주실는지 안 물려주실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저로서는 부모 재산을 물려받을 마음이 없습니다. 옆지기 또한 내가 내 부모한테, 또 옆지기는 옆지기 부모한테 재산을 물려받을 까닭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책이 제대로 못 읽히는 나라에서 책을 제대로 느끼도록 돕는 일을 하는 도서관 운동’을 하기 때문에 일부러 인천에 남아 있지만(인천이 우리 나라에서 책을 가장 안 읽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아닌 골목동네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자연이 아닌 기계와 시멘트와 석유로 온통 가득한 터전에서는 우리 스스로 숨이 막힙니다. 이리하여 텔레비전은 마땅한 노릇이고, 세탁기나 냉장고나 이런저런 가전제품을 처음부터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우리 몸에 알맞게 씻고 빨래를 합니다. 굳이 맛난 바깥밥을 찾아 먹으러 돌아다니지 않으나, 밖에서 밥을 먹어야 할 때에는 옳고 바르게 애쓰는 집을 찾아서 즐겁게 먹습니다.

 환경운동이란, ‘환경운동’이라는 이름이 붙기 앞서에도 언제나 있어 왔던 일이니까요. 지식 있는 분들이 환경운동을 외치고 환경모임을 열고 환경책을 펴내기 앞서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연 삶터와 사람 삶터를 고루 사랑하는 매무새를 고이 지켜 오셨으니까요.


.. 왜 이런 죄수 같은 일을 하냐고 내가 묻자 그들은 “그럼 뭘 한단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왜 36시간을 쉴 새 없이 일하는 겁니까? 작업을 교대제로 할 수는 없나요?”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요. 하지만 왜 그저 시키는 대로 하냐 이겁니다.”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죠. 보나 마나 ‘싫으면 그만둬.’라고 할 거라구요. 작업에 한 시간이라도 늦으면 당신에게 허가증을 집어던지며 나가라고 하죠. 당장 일할 수 있는 사람이 10명은 된다구요.” … 노예 주인은 말할 것도 없고 마차 주인조차도 자기 말에게 그런 일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은 비싸기 때문이다. 힘든 일을 시켜 값비싼 동물의 생명을 단축하는 것은 비경제적인 일이리라 … 실상 우리들, 즉 부자들, 자유주의자들, 인도주의자들, 사람의 고통뿐만 아니라 동물의 고통에도 매우 민감한 사람들은 그런 노동으로 덕을 보고 있으며, 게다가 더욱더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즉 그런 노동으로 더 큰 덕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우리는 완전히 평온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지 않은가 … 우리 주위에서 천천히 그리고 대개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에 관한 한, 그들의 노동 생산물로 우리가 편의와 쾌락을 얻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눈을 굳게 감고 있다 ..  (105, 108, 111∼112쪽)


 옆지기는 저와 혼인하기 앞서 《녹색평론》을 정기구독하고 있었으나 지난해에 끊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1992년) 책방에 서서 《녹색평론》을 읽었지만, ‘쉽게 누구나 하고 있는 일을 어렵고 딱딱하고 긴 글로 적는 일’은 그리 안 달갑다고 느꼈습니다.

 참다운 “푸른 이야기”라 한다면, 지식 있는 사람만 새겨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라, 지식 없는 누구나 기꺼이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푸른 이야기”라 한다면, 나부터 오늘까지 꾸준히 이어온 내 삶을 글로 담아낼 노릇이요, 아직까지 못하던 일이라면 오늘부터 신나게 펼쳐 나가려 하는 몸짓을 실어낼 노릇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이든 정치운동이든 사회운동이든, 입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란 없습니다. 몸으로 하는 운동입니다. 남녀평등을 이루려는 운동이든 장애인 권리를 지키려는 운동이든, 입이 아닌 몸으로 하는 운동입니다. 환경운동은 더더욱 밑바탕이 되면서 커다란 운동인데, 환경운동이라 할 때에는 다른 어느 운동보다도 나 스스로 내 삶이 되어 가면서 말하는 운동이어야 하고, 나부터 먼저 즐겁게 한몸으로 받아들인 이야기를 내 이웃과 식구와 동무한테 스스럼없이 말하고 함께하도록 어깨동무하거나 손을 맞잡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정부는 사람들을 어린아이의 의식 수준에서 붙잡아 두기 위해 노력했다. 칭얼대는 아이에게는 돌봐 줄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 당신들은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거두어 우리를 파탄에 몰아넣는다. 세금으로 함대를 유지하고 무장을 강화하고 전략적 철도를 건설하지만, 그것은 당신들의 야망과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 토지 재산을 보호하고, 그 결과로 지가가 상승하는 일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좁은 공간 안에 와글와글 모여 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직 세계에 넘쳐나는 자유로운 땅으로 퍼져 나갔을 것이다 … 싸움에서 유리한 자는 땅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언제나 정부의 폭력에 참여한 사람이 된다 ..  (157, 159쪽)


 책을 읽는 손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가슴이 어둡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눈에서 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그러하나 책을 내 삶에서 떨굴 수 없습니다. 안타깝고 아쉬운 대목이 많이 보이지만 《녹색평론》을 내치지 못하는 한편, 《뿌리 깊은 나무》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조용히 사라져 버린 잡지 《샘이 깊은 물》을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하나하나 찾아내어 차곡차곡 갖추어 놓고 틈틈이 다시 꺼내어 읽으며 내 오늘날을 돌아봅니다.


 (2) 몸이 아프도록 돌보는 목숨 하나


 옆지기는 엊그제부터 아기 ‘오줌 가리기’를 시키려고 애씁니다. 열 달을 넘어간 아기가 이제부터 차근차근 오줌 누기를 가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아기는 아직 변기에 앉아 쉬를 할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이웃 분들 말씀으로는 ‘바지를 벗기고 있으면’ 얼마쯤 방바닥 닦느라 애먹겠지만 이내 쉬를 가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아기도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가 준다면, 아기 기저귀 빨래에서 한 시름을 놓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기 기저귀에서 한 시름 놓인다고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다른 빨래가 새 시름으로 다가오리라 느낍니다. 아기 옷가지가 부피가 커질 테며 신발도 있을 테니까요.


.. 애국심을 조장하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 참되고 올바른 애국심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까지 들은 바가 없다 … 애국심은 자기 국민만을 사랑하는 감정이며, 자기 마음의 평정, 재산을 희생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며 적들의 침략과 학살로부터 자기 국민을 보호한다는 신조이다. 애국심은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국민들을 침략하고 학살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던 당시의 개념이다 … 애국심과 그 결과(전쟁)는 신문사에 엄청난 수입을 안겨다 주고, 다른 많은 업계도 이로부터 이득을 챙긴다. 작가나 교사, 교수 등 직업이 안전한 사람일수록 더욱 열정적으로 애국심을 찬양한다. 왕과 황제는 더 큰 명성을 얻을수록 애국심에 더 깊이 빠져든다. 지배 계층은 군대, 돈, 학교, 교회, 언론을 손안에 쥐고 있다. 그들은 학교 역사 수업에서 그들 민족이 최상의 민족이며 언제나 옳다고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이식한다 ..  (51, 57, 59쪽)


 아기 먹일 죽을 날마다 새로 끓이고, 아빠 엄마 먹을 밥 또한 날마다 새로 끓입니다. 빨래하는 데에도 한짐이요, 밥하는 데에도 한짐입니다. 그렇다고 아기가 밥을 낼름낼름 받아먹어 주느냐?

 저로서는 제 어릴 적을 떠올리지 못하지만, 저 또한 우리 아기처럼 우리 어머니를 고달프게 했을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보나 마나 제가 아기였을 때에도 어머니를 몹시 고달프게 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이웃집에서는 ‘뭘 그리 힘들게 아이를 키우느냐’고 하지만, 우리 어버이나 이웃 어르신이나 아이를 낳아 키울 때 어려움과 고단함 없던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아이 키우는 고단함이 있으니 아이 키우는 보람이 있지 않느냐 싶어요.


.. 공장 일꾼, 나아가 일반적인 도시 노동자들이 감수하는 비참한 환경은 오랜 노동 시간과 적은 보수가 아니라, 자연과 접촉하는 정상적인 환경을 빼앗기고, 자유를 빼앗기고, 다른 사람의 지시에 따라 강제적이고 단조로운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한다 … 세상의 모든 현자와 시인들은 인간 행복의 이상을 언제나 농촌 생활의 조건 안에서 찾고 있다. 또 생활 습관이 왜곡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경우, 무엇보다 농업 노동을 선호하고 있으며, 공장 일이 언제나 유해하고 단조로운 반면 농업은 건강하고 다양성을 제공하는 일이다. 농업은 자유롭고 농민들은 자기 마음대로 일하거나 쉴 수 있는 반면, 공장 일은 공장이 노동자들의 소유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기계 작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장 일은 부차적인 반면, 농사일은 일차적이다. 농업이 없으면, 공장은 존재할 수 없다 ..  (119, 122쪽)


 아침마다 똥을 누는 아기를 씻기고, 틈틈이 아기를 안고 바깥마실을 다니며 바람을 쐴 때면 팔이며 허리며 등짝이며 쑤시고 저립니다. 아직 걸음마를 떼지 못하니까요, 그래도, 아기를 안고 골목마실을 하다 보면, 우리처럼 아기를 안고 있는 동네이웃을 곧잘 만납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만, 마음으로는 ‘저쪽 집에서도 우리와 똑같거나 비슷하겠지’ 하는 생각이 됩니다. 마음으로 ‘힘들겠지만 힘내셔요’ 하는 인사를 보냅니다.

 아기 아빠는 바깥일 때문에 가끔 아기 엄마랑 아기만 집에 두고 서울마실을 하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몸이 되면 ‘이렇게 돌아다니는 일은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가?’ 하고 새삼 느낍니다. 몸이 아파 오래도록 몸져눕던 사람이 비로소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시며 숲길을 걸을 때 짜릿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듯, 아기한테서 잠깐 풀려난(?) 때에 이토록 신나고 즐거운 바깥마실이 다 있었다고 느끼면서, 집에 홀로 남아 아기랑 씨름하는 옆지기한테 미안해집니다. 그러다가 ‘나 혼자만 이렇게 신나게 다녀서는 안 되겠다’고 느끼고, 다음부터는 나 혼자 볼일을 보지 말고 온 식구가 다 함께 움직이자고 마음먹습니다. 칠월까지 대안학교 아이들하고 자전거 정비를 가르치고 배우는 자리는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때에는 늘 함께하자고 다짐합니다.


.. 사치품은 내버려야 한다. 폭력과 자본, 발명이 불필요한 물품의 생산에 치우쳐 있는 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 필수품의 경우 누구도 일정 정도 이상은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치품의 경우는 한도 끝도 없다. 수천 톤의 금으로 집을 장식할 수 있으며, 수백만 에이커의 땅을 공원으로 조성할 수도 있다 ..  (185, 196쪽)


 이렁저렁 따지면, 혼자 살 때에 얼마나 크고 너르게 홀가분함을 누리는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혼자 밥하고 빨래하고 살림 꾸리는 일이란, 얼마나 넉넉히 시간을 쓰며 내 삶을 가꾸는 셈인지 모릅니다. 혼인을 하면 저마다 제 시간을 빼앗긴다지만, 아이를 낳아 키울 때를 생각하면 우스울 뿐입니다.

 이러한 이음고리를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에, 적잖은 예술가와 글쟁이들은 ‘혼인 않고 아이 안 낳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느낍니다. 힘들고 고되니까, 힘듦과 고됨에 당신들 예술과 슬기를 빼앗기고 싶지 않아, 홀로 조용히 당신들 삶을 즐기는구나 싶습니다.

 그래, 참 바보스러운 사람들이 아이 낳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제 삶이든, 제 시간이든, 제 겨를이든 하나도 없으니까요. 제 삶이며 시간이며 품이며 땀이며 온통 아이한테 쏟아붓고 바쳐야 하니까요. 제 살을 깎아 주고 발라 주고 모조리 내놓아 주어야 하니까요.


..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어떤 구실에서든, 심지어 가장 흔한 처벌의 구실에서도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 과거의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주로 육체노동에서 벗어나 있는 고급 직종 종사자와 이들이 이끄는 도시 노동자들이었다. 반면, 다가오는 혁명의 참여자들은 주로 농촌의 대중들이 될 것이다 … 오늘날 사람들은 별개의 자유, 즉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이런저런 형태의 선거의 자유, 결사의 자유, 노동의 자유,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자유에 관해 말한다. 이것은 사람들이(지금의 러시아 혁명가들처럼) 자유에 관해 매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자유는 어떤 사람에게 그의 바람과 이익을 무시하고 어떤 행동을 하도록 요구하는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  (234, 257, 270쪽)


 아이와 함께 살면서 집살림이 버겁다고 느끼지만, 버거운 만큼 새로운 길을 엿봅니다. 아이가 없었다면 한결 단출하고 홀가분하게 살림을 꾸렸을 텐데, 이렇게 살림을 꾸렸다면 우리 두 사람이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며 지나칠 숱한 일을 알게 되고 보게 되고 헤아리게 됩니다. 아이 키우는 고단함만큼 둘레사람들 고단함을 새삼스레 돌아보고, 우리가 미처 모를 또다른 숱한 고단함은 무엇일까를 살피게 됩니다.

 아이를 돌보면서 책 펼칠 겨를이 몹시 줄어든 만큼 아무 책이나 허투루 읽으며 나한테 애틋한 말미를 함부로 버리지 않도록 하는 가운데, 글 한 줄을 쓰면서도 더 마음을 쏟도록 해 줍니다. 동무나 이웃이 저를 볼 때면 “얼굴에 살이 쏙 빠졌네요.” 하고 말을 거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아이 키우는 사람은 다 그렇잖아요. 그래도, 힘드니까 그만큼 보람이 있어요.”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3) 톨스토이 님이 남긴 《국가는 폭력이다》


 사람들한테 ‘문호(文豪)’ 아닌 ‘대문호’ 소리를 듣는 톨스토이 님 이름을 모르는 분은 얼마 없으리라 봅니다. 톨스토이 님 작품을 찬찬히 읽어 보지는 못했어도 이분 이름은 익히 알 테며, 러시아 사람들 여느 이야기를 그러모아 엮은 옛이야기 또한 온누리 사람들한테 두루 퍼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 사람한테는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하느냐〉 같은 작품은 무척 짧은 글이요 쉬운 글이면서도 어린이부터 어른 모두한테까지 ‘내 삶에서 내가 깊이 돌아보고 사랑할 대목이 어디에 있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1930년대부터 우리 말로 옮겨지며 읽힌 이야기인데, 설익은 가르침이나 어설픈 밀어붙이기가 아닌 따뜻한 사랑과 튼튼한 믿음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름다이 가꿀 길을 보여줍니다.


..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정부가 없다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폭력과 살인을 일삼을 것이다.” 왜 그렇단 말인가? 폭력의 결과로 생겨난 조직이,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세대를 넘어 이어져 온 조직이, 이제는 아무 필요도 없어진 그런 조직이 사라진다고 해서 왜 사람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행하고 서로를 죽인단 말인가? ..  (75쪽)


 톨스토이 님 산문모음 《국가는 폭력이다》를 읽습니다. 산문모음 《국가는 폭력이다》는 무척 억세고 굳은 목소리로 오로지 한 가지 말마디를 외칩니다. “한 나라는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한테 주먹다짐만 하고 있다.”고. “사람들한테는 정부가 아닌 자치만 있어야 하며, 모든 전쟁은 정부가 일으킬 뿐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려고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다.”고. “정부는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한테 나라 지키기에 몸바치도록 이끌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애국심이란 다름아닌 권력자 밥그릇 지키기요, 권력자 밥그릇을 크게 키우려고 우리 뼈와 살을 온통 발라 주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국가는 폭력이다》는 “나라와 정부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켜야 한다.”는 말마디가 얼마나 그릇되고 잘못되고 엉터리인가를 낱낱이 밝히는 책입니다.

 《국가는 폭력이다》를 읽는 동안 조지 오웰 님 산문모음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조지 오웰 님 스스로 파리와 런던 밑바닥에서 가난뱅이나 떨꺼둥이로 지내면서 ‘프랑스와 영국이 나라 안팎으로 내세우는 거짓된 이름과 껍데기’가 무엇인지를 밝힌 책으로, 톨스토이 님과 조지 오웰 님이 살았던 곳이 다르고, 느낀 바는 다르지만,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는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우리 손으로 가꾸는 길에서 자꾸자꾸 멀어지고 있으며, 우리 손으로 가시울타리를 쳐 놓고 이 안에 우리 스스로 갇혀 있다고.


.. 우리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인류를 변화시킬 생각을 하고 있지만, 정작 아무도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 참여는 희생을 요구한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지위뿐만 아니라 형제ㆍ동포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를 원한다면, 익숙해 있는 삶의 방식을 바꾸고 그동안 누리고 있던 유리한 지위를 포기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격심한 투쟁에 대비해야 한다 … 사람들이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은 새로운 형태의 체제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자기 자신과 타인의 품성을 바꾸고 개선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  (88, 174, 220쪽)


 그러면, 이 나라는 이 정부는 왜 폭력덩어리가 되었을까요. 우리들은 왜 나라와 정부가 폭력덩어리가 되도록 손을 놓고 있을까요. 아니, 우리들은 나라와 정부가 폭력덩어리가 되도록 이끄는 한편 떡고물을 얻어먹고 있지는 않는가요. 얄딱구리한 나라얼개를 뜯어고치는 데에 마음쏟기보다는, 고시에 붙어 죽는 날까지 쇠밥그릇 떵떵거리면서 살아가기만을 바라지는 않는가요.

 스스로 아름답게 꾸릴 내 삶을 찾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바보가 되어도 좋으니 돈만 있으면 그만인 내 삶이 되도록 굴러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스스로 사랑과 믿음이 가득한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 되도록 힘쓰지 않는 가운데, 이웃이고 동무이고 식구이고 밟고 타올라가며 내 밥그릇 두둑히 챙기면 좋다고 여기는 삶이 되도록 망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 사람들을 돕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스스로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 다른 모든 수단은 환상이다 ..  (223쪽)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아름다이 말을 하고, 아름다이 일을 합니다. 스스로 아름답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겉보기로는 예쁘장한 말을 할는지 몰라도 속알맹이까지 예쁘지 않을 뿐더러, 겉보기로만 훌륭해 보이는 일을 할 뿐, 조금도 안 훌륭한 일을 합니다. 내가 나를 돕지 않고서는 내가 발디딘 이 나라를 도울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내가 몸담은 이 마을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살찌우지 않고서는 내 이웃과 동무와 식구가 오순도순 살가운 보금자리를 이룰 수 없습니다. 나부터 ‘폭력덩어리’이기 때문에, 나와 같은 숱한 폭력덩어리가 하나둘 뭉치면서 ‘나라와 정부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폭력덩어리’가 망나니처럼 나대고 짓찧고 까불며 법석을 떱니다. (4342.6.2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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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짐
정상명 지음 / 이루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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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샐러리맨’이 꿈인 사람들한테 꽃 한 송이를
 [잠깐 읽기 40] 정상명, 《꽃짐》


- 책이름 : 꽃짐
- 글ㆍ그림 : 정상명
- 펴낸곳 : 이루 (2009.5.25.)
- 책값 : 1만 원



 (1) 아픔이 낳은 풀꽃세상


 1999년에 환경과 생태를 생각하는 모임인 ‘풀꽃세상’을 연 정상명 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처음부터 환경과 생태에 깊이 뜻이나 마음이나 눈길을 두고 있지는 않았다고 느낍니다. 다만 한 가지, 어릴 때부터 딱히 ‘환경과 생태를 거슬러’ 살아오지 않았을 뿐이요, 이런 매무새가 큰 아픔을 겪으면서 ‘풀꽃세상’ 모임으로 모두어졌지 않을까 싶습니다.


.. 논물 대기 공사 도중 잠시 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앵두 할머니와 앵두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슬그머니 발치에 핀 민들레 꽃대 하나를 꺾으시더니 손을 보신 후에 말없이 할머니에게 건네주었습니다. 할머니 역시 별 말씀 없이 꽃대를 받고는 곧장 입으로 가져가셨습니다. 저는 ‘민들레에 무슨 특별한 맛이 있어 그러시나 보다’ 했습니다. 제 추축은 틀렸습니다. 할머니는 두 손으로 조심스레 꽃대를 잡고는 피리를 부는 것이었습니다 ..  (48∼49쪽)


 정상명 님 딸아이 천초영 씨가 어머니인 당신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딸아이는 갑작스레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정상명 님 딸아이가 튼튼하게 살아 있었어도 어머니께서는 환경과 생태를 생각하는 모임을 열 수 있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정상명 님 따님이 싱그럽고 아름다이 살아가고 있었어도 어머니께서는 환경과 생태를 걱정하는 모임을 마련할 수 있었을까 곱씹어 봅니다.

 살아 있었다면 함께 모임을 열어 꾸렸을는지 모릅니다. 살아 있었다면 그런 모임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알콩달콩 오순도순 살아가는 데에만 마음을 쏟았는지 모릅니다.

 기쁨이 꼭 기쁨이지만은 않다고 느낍니다. 슬픔이 반드시 슬픔이지만은 않다고 느낍니다. 기쁨이 슬픔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되는 일이 흔하다고 느낍니다. 기쁨을 더 큰 기쁨이 되도록 북돋우기도 하지만, 슬픔이 외려 기쁨이 되도록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넘어지고 부딪히고 깨지고 다치면서 좀더 튼튼히 걱정없이 즐겁게 타는 길을 익히듯, 무릎이 깨지고 어깨가 까지면서 내 자전거와 이웃 자전거를 한결 너그러이 헤아리듯, 아픔이라고 꼭 아픔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숱한 아이들한테 가장 큰 아픔이라면 대학입시에서 떨어지는 일이 될 텐데, 대학입시에서 쓴맛을 본다 하여 이 아이한테 낭떠러지만 있지 않아요. 쓴맛을 보기 때문에 더욱 달콤한 맛을 보는 앞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쓴맛에만 머물며 더 고달프고 괴로운 쓴맛에서 나뒹굴 수 있겠지요.


.. 아, 그 달콤하고 싱그러운 맛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디 맛은 보라색’이라고 … 나무의 나이는 50년이 넘은 걸로 추정됩니다. 다른 나무와 달리 가래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잎사귀를 다 떨구어 지금처럼 온몸이 완벽히 드러나는 계절입니다. 제게는 그렇습니다 … 아주머니 댁 복숭아는 특별히 맛있지는 않습니다. 딱딱한 편이고 당도도 좀 떨어집니다. 그러나 저는 언덕 위의 그 천막을 한 번 찜한 후로는 절대로 다른 집으로 가지 않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제 마음을 ‘복숭아는 언덕 위의 그 천막집이다’로 정했으니 그렇게 하는 것뿐이지요. 저는 복숭아만을 먹는 게 아니고 복숭아 천막을 싸고도는 모든 풍경을 먹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51, 59, 79∼80쪽)


 문득,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당신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우리 아이가 부모인 나보다 먼저 죽은 일을 슬퍼하면’서 이 슬픔을 이겨내고 삭여내고자 환경과 생태를 생각하는 모임을 꾸릴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우리 옆지기가 옆지기 아버지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할 때에, ‘우리 아이한테 닥친 아픔을 견디어 내고자’ 환경과 생태를 생각하는 모임을 이끌 수 있을까 곱씹어 봅니다.

 글쎄요. 어떠시려나.

 모르는 노릇입니다. 자식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이 아니라도, 자식한테 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이 아니어도, 있는 돈 없는 돈 털어 밑바닥 시민모임 하나 꾸려 당신들 눈물과 웃음을 모두 쏟아부을는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따지고 보면 남 일만은 아니거든요. 저와 옆지기한테 어머니 아버지가 계시지만, 저와 옆지기 또한 우리 어린 딸아이한테 어머니 아버지 된 몸이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마치 남 일처럼 ‘내가 아버지 어머니보다 먼저 죽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머잖아 ‘우리 딸아이가 우리보다 먼저 죽으면?’ 하고 생각할 날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저는 음악을 만든 적도, 스피커를 만든 적도, 나무를 만든 적도 없습니다. 바람도 푸른 하늘도 흰 구름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비로운 자연 속에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누군가가 만든 좋은 것들을 듣고 즐깁니다. 세상을 밝히는 일에 먼지만큼도 보탠 게 없는 것만 같은데 ‘공짜’로 이 모든 것을 듣고 느낍니다 ..  (70쪽)


 엊그제 옆지기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우리 이름으로 된 집을 장만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아직 우리한테 돈이 없어서 이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고 여길는지 모르나, 앞으로 우리한테 돈이 있게 되어도 집없는 사람으로 살림살이를 잇고 싶은 마음입니다. 집 하나 장만할 돈으로, 어쩌면 정상명 님이 했듯이 우리 깜냥껏 조그마한 시민모임을 열 수 있습니다. 집 하나 장만할 돈을 벌게 된다면, 이 돈으로 도서관 지킴이 한 사람을 두고 한 주 내내 도서관을 열어 놓고 알차게 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 하나 장만할 돈이 모였을 때에 집을 장만한다면 우리는 다른 어느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리 집이 있다’로 끝납니다. ‘달삯 나갈 걱정’은 안 하지만, ‘목돈으로 더 널리 나눌 일’은 한 가지도 못하고 맙니다.


.. 사람들은 거의 모두 도시에서 이름난 좋은 직장에 다니기를 소망합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엄청 시달립니다. 코흘리개를 겨우 면한 아이들에게 영어 과외를 시킨다, 영재 교육을 시킨다, 고액 과외를 시켜 좋은 대학에 보낸다, 난리입니다. 강남의 집값이 죽자고 오르는 이유가 좋은 학교가 몰려 있어서 거기 살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지요. 그리고 공부 잘해 좋은 대학 나와서 일류 기업에 취직을 하지요. 거칠게 말하면, 코흘리개부터 시작한 공부라는 게 겨우 샐러리맨 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걸 성공으로 여기는 우리 시대가 생각해 보면 너무나 초라합니다 ..  (181쪽)


 풀꽃세상 모임을 열고, 풀꽃평화연구소를 꾸리는 정상명 님이 펴낸 산문모음 《꽃짐》을 읽으면서, 조그마한 환경모임 ‘풀꽃세상’을 새삼 돌아봅니다. 정상명 님한테는 더없는 아픔이 있어 시민모임을 열 슬기를 얻었다지만, 이러한 슬기를 얻었다 할지라도 여느 때부터 곧고 바른 생각과 몸짓으로 당신 삶을 엮어 오지 않았다면, 사뭇 다른 길을 걸었으리라고.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이 발판이 되어 크게 거듭나거나 달라지기도 한다지만, 마음속 한켠에 고운 풀씨 하나 깃들어 있지 않았다면 풀꽃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꿈꾸는 길을 걸으려 하지 않았으리라고.


 (2) 산문모음 《꽃짐》


 산문모음 《꽃짐》을 읽습니다. 아이를 보며 책을 읽자니, 214쪽밖에 안 되는 얇은 책을 덮기까지 닷새가 걸립니다. 읽다가 덮고 기저귀를 갈고, 읽다가 덮으며 아기를 어르고, 읽다가 덮으면서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


.. 저는 할머니가 빨래하시는 모습을 참 좋아했습니다 … 추억이니 그리움이니 하면서 항아리에 의미를 붙여 귀히 간직할 수도 있지만, 편안하게 무시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이 무심함은 아마도 나이가 주는 선물인지도 모릅니다 … 지금부터 30년 전에 충청도의 고요했던 소도시 대전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 채송화니 분꽃이니 하는 꽃들이 어느 집에나 풍성했고 인구가 적어 거리는 늘 비어 있었는데, 이따금 짐을 한두 덩이 실은 말 달구지가 꿈결처럼 지나가던 곳. 목척교 아래에는 맑은 물이 흘러가고 냇가 한편에서는 양잿물을 넣은 커다란 무쇠솥이 걸려 있어 무럭무럭 솟아나는 김 속에서 옥양목 빨래들이 희디희게 삶아질 때 ..  (86, 93, 205쪽)


 산문모음 《꽃짐》을 덮으면서, ‘정상명 님은 글을 썩 잘 쓰는 분이 아니구나’ 하고 느낍니다. 좀 엉성하고 어설픕니다. 왜 이러한 글을 썼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심심한 글은 아니요, 시시한 글도 아닙니다.

 수수한 이야기거리에서 수수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글입니다. 자그마한 글감에서 자그마한 아름다움을 받아들인 글입니다. 돋보이지 않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삶을 건드리는 글이요, 스스로 돋보이고자 하지 않는 자리에 선 한 사람으로서 제 삶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 결혼한 후 저희 집 아이들이 ‘국민학교’에 다닐 때도 날씨는 매우 추웠습니다. 너무 추운 날이면 애들을 학교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 강추위에 여리디여린 것들이 두 볼이 시퍼렇게 얼어터지면서까지 학교에 가서 배울 게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했지요 ..  (108쪽)


 책 겉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짐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되었습니다.” 하고 한 줄이 적혀 있습니다. 책이름 ‘꽃짐’이란 꽃송이가 짐이 되었다는 이야기일 테고, 정상명 님 당신한테 닥친 짐은 오래도록 부대끼고 지켜보고 돌아보는 동안 ‘쇳덩어리로 이루어진 짐이 아니라 꽃송이로 가득한 짐’이었다고 느꼈다는 소리이구나 싶어요.

 그래, 짐입니다. 무겁다고만 보았던 짐입니다. 그런데, 짐이었습니다. 무겁지는 않았으나 그 무게란 킬로그램 숫자로 재는 짐이 아니라, 당신 마음밭을 건드리는 짐이었어요. 당신 정상명 님 마음밭이 얼마나 넉넉한지를 돌아보도록 하는 짐이었고, 당신 정상명 님이 앞으로 이 땅에서 어떻게 이웃하고 어울리고 너른 자연하고 어깨동무를 하면 좋은가 하고 깨닫도록 일깨우는 짐이었습니다.


.. 어떤 한 작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정신세계로 들어간다는 말일 것입니다. 단돈 몇 푼을 내고 ‘위대한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분들의 평생에 걸친 인간과 생에 대한 탐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  (118쪽)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산문모음 《꽃짐》은 밋밋합니다.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예쁜 말이나 그림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뽐내려 하지 않고, 동무와 이웃 등을 밟고 올라서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모습 그대로 고이 앉아 있으려고 합니다. 그예 그 자리에 고스란히 뿌리를 내리려고 합니다.

 혼자 지려는 짐이 아니요, 남한테 들씌우는 짐이 아닙니다. 함께 짊어지자는 짐입니다. 함께 들고 가자는 짐입니다. 무거우니 함께 들자는 짐이 아니라, 가뿐하고 어여쁘기에 함께 들고 가자는 짐입니다. 싱그럽고 아름다우니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천천히 나누어 들고 가자는 짐입니다.

 아무래도, 잘난 척하지 않는 꽃짐이 되자면, 또한 스스럼없는 꽃짐이 되자면, 글이 좀 못생겨야 할 테지요. 글이 좀 투박해야 할 테지요. 글이 좀 가벼워야 할 테지요. 더없이 풋풋하게 펼쳐진 들꽃 한 송이 같은 《꽃짐》입니다. (4342.6.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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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
폴 인그램 지음, 홍성녕 옮김 / 알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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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부자나라가 되고자 티베트를 짓밟는다
 [잠깐 읽기 37] 폴 인그램,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


- 책이름 :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
- 글 : 폴 인그램
- 옮긴이 : 홍성녕
- 펴낸곳 : 알마 (2008.7.31.)
- 책값 : 19800원



 (1) 티베트를 바라보는 눈길


 사진을 찍는 분들 가운데 티베트나 몽골이나 인도에 다녀오는 분이 꽤 많습니다. 티베트나 몽골이나 인도에 다녀오면서 찍는 사진은 으레 ‘티없이 맑게 웃는 어린이’와 ‘주름이 깊게 팬 늙은 할배’와 ‘가난하고 꾀죄죄한 가운데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어여쁜 아가씨’와 ‘울긋불긋한 빛깔로 꾸며진 불교 문화 발자취’이곤 합니다. 때로는 ‘가난과 따돌림이 흠씬 묻어난 뒷골목’ 모습을 담아 오곤 합니다. 스무 해 앞서고 이와 같았고 오늘날도 이와 같으며 앞으로도 이와 같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런데 사진만 이러하지 않습니다. 티베트 이야기나 몽골 여행기나 인도 순례기는 이 사람이 쓰든 저 사람이 쓰든 한결같습니다. 다른 눈길을 느끼기 어렵고, 깊은 눈썰미를 찾을 수 없으며, 너른 눈매를 만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눈에 보이는 모습, 한자말로 하자면 ‘현상’은 잘 담아내지 않았느냐 할는지 모르나, 티베트사람 삶을 겉스쳐 훑으며 담는 ‘현상’이란 그저 ‘겉스친 현상’이지, 삶이 아닙니다. 골목길을 담는 사진이든 도심지를 찍는 사진이든 매한가지인데, 골목길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나를 느끼면서 담는 사진과 골목길 풍경을 구경꾼으로 담는 사진은 사뭇 다릅니다. 사진기를 들기 앞서 ‘그곳은 그러한 곳이야!’ 하고 지레 생각을 굳혀 버리고 ‘그런 모습을 찍어야지!’ 하는 가운데, ‘그곳이 어떻게 흘러왔고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는 못 봅니다. 못 느끼니 못 보고, 알려 하지 않으니 볼 수 없으며, 얼핏 알아도 살갗으로 스며들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수많은 골목길 사진은 거의 어느 한 가지도 ‘골목사람 눈길이나 눈높이’인 적이 없으며, ‘골목사람 삶’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골목사람 스스로 사진기를 들어 내 이야기는 내가 담는다고 하면 달라질 텐데, 골목사람은 스스로 사진기를 들지 않아 왔습니다. 사진기 들 겨를이 없었고, 사진기 장만할 돈이 없었으며, 사진기를 굳이 들어야 할 까닭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싱그럽고 즐거운 삶이요, 나날이 고단하고 힘겨운 삶일 뿐입니다. 누구한테 내보이거나 자랑하려고 꾸리는 삶이 아니며, 누구한테 숨기거나 감추거나 덮어놓는 삶 또한 아닙니다.

 우리가 알아보려 하지 않아 그렇지, 티베트는 우리 나라에도 있고 몽골은 우리 둘레에도 있으며 인도는 우리 삶자락 어디에나 있습니다.


.. 1949년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에 진입하기까지 식량생산을 위한 티베트 민족의 토지 사용은 지극히 균형과 상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중국이 보이고 있는 서구인과 같은 방자한 자연개발의 태도가 없었고, 자연적 기근은 최근까지도 전혀 알려진 바 없다 … 티베트어 교육을 격려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중국어에 통달하지 못하는 한 아무런 직업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자 언어의 사용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많은 장소에서 티베트어를 사용해도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며, 여러 곳에서 중국어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중국은 현재까지도 티베트인 부모가 아이들에게 티베트 이름을 지어 주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 중국 정부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티베트의 평균수명은 여전히 약 40세에 그치고 있다 … 의료혜택의 우선권은 중국인과 티베트 공산당원에게 주어진다. 고통당하고 있는 티베트인이 병원시설로부터 거절당하는 일은 다반사이며, 심지어는 치료가 필요한 중국인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침대에서도 쫓겨나고 있다 ..  (36, 93, 101∼103쪽)


 티베트는 식민지 나라입니다. 중국이 쳐들어와 식민지로 삼고 있는 나라입니다. 일본이 한국과 대만과 여러 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듯, 중국은 멋대로 티베트에 군화발을 들이밀고 탱크를 밀어붙여, 티베트를 아주 조각조각 뜯어먹고 있습니다.

 한국과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이 한국과 대만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히고 품을 울궈냈듯, 중국은 티베트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히고 품을 울궈냅니다. 일본이 한국과 대만에 있던 지하자원이며 문화재이며 곡식이며 나무이며 어마어마하게 빼앗아 가 버렸듯이, 티베트는 중국한테 지하자원을 빼앗기고 문화재를 빼앗기며 곡식이며 나무를 빼앗깁니다.

 유럽은 유럽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식민지를 거느리며 제 나라 살림을 키웠습니다. 중국은 중국대로 티베트를 식민지로 거느리며 제 나라 살림을 키웁니다. 그리고 한국 또한 한국대로 돈없고 힘없는 나라에 공장을 세우며 공해를 내다 팔며 돈을 버는 한편, 돈없고 힘없는 나라 사람들 품을 헐값으로 받아들여 경제발전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 공산당이 중국의 권력을 잡기 전에도 중국의 무장군대는 동부 티베트의 넓은 지역에 걸쳐 침입해 왔다 … 중국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는 식민지 해방투쟁은 격려하면서도 자국 안팎에서 티베트 민족이 제기한 요청은 계속 부정했다 … 북부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중앙사무국이 최근 실시한 세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중국의 티베트 점령의 결과로서 고문사 당한 10만 명을 포함하여 120만 명 이상의 티베트인이 사망했다. 1982년 이사이불교평화회의 국제사무국의 달지트 센 아델은 최근 30년 동안 약 4백만 명의 불교인이 캄보디아와 티베트에서 살해당했다고 추정한 바 있다. 현재 드러난 증거로 볼 때 그의 추정치는 정확한 것으로 인정된다 … 많은 티베트인이 자신들의 집이 어느 때나 수색당할 수 있고, 자신들이 체포당하여 고문당하고 처형당할지 모른다고 여기며 생활의 상당 부분을 거의 영원한 공포의 상태에서 살아야 하는 데서 오는 신경장애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  (43, 45, 74, 114쪽)


 2000년대를 넘어선 오늘날, 프랑스가 지난날 어느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는지를 짚어낼 줄 아는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독일이 세계대전을 일으킨 줄은 그럭저럭 알는지 모르나, 이 또한 왜 일으켰는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영국은 얼마나 넓게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는지,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어떠했으며, 이탈리아는 무슨 짓을 해 왔는지 헤아리는 사람은 몇 안 된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질이 왜 포르투갈말을 쓰는지 생각해 보는 사람이 적습니다. 중남미에서 왜 스페인말을 쓰는지 알아보려는 사람 또한 적습니다. ‘체 게바라’가 왜 스페인 이름을 얻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칠레사람들 가슴에 깊이 서린 노래꾼 ‘빅토르 하라’가 왜 빅토르인지 곱씹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요.

 꼭 이러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베트남 빵집에서 ‘프랑스 빵’을 무척 잘 굽는 까닭을 모르거나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우리 말에 일본 한자말이 많이 스며든 까닭에다가 일본책이 대단히 많이 옮겨지는 까닭을 곰곰이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 1950년경 티베트 전역에는 6000개 이상의 수도원ㆍ사원과 약 60만 명의 승려가 있었다. 1979년경 대부분의 비구와 비구니는 죽거나 실종되었고, 남겨진 수도원은 겨우 다섯 개에 불과했다. 그나마 남은 수도원들도 망가진 상태였다 … 중국은 티베트의 수도원과 사원을 고의적ㆍ조직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특별 팀이 여러 가지 귀중한 종교 물품을 골라 티베트 밖으로 반출하고 나면 건축물은 숙련된 솜씨로 폭파되었다. 반출된 물품의 상당수가 외국의 교환시장에서 팔려나가, 중국이 문화재보다 더 필요로 하던 외화를 벌어들였다 … 10대 중국인 살인자들이 유구한 불교문화의 유산을 파괴해도 좋다는 거의 백지위임장과 다름없는 구너력을 가지고 나라를 휘젓고 다녔기 때문에, 시민과 사회의 혼란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라싸에서 그들이 벌인 광란을 뒤로 하고 홍위병들은 콩포로 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포워 트라모에 살고 있던 나무꾼 400명의 딸들을 야만스럽게 강간했다. 소녀들은 벌거벗긴 채로 행진해야 했고, 탐징(인민재판)을 통해 처벌당했다. 이 잔혹함과 모욕에 울화가 치밀 정도로 무력했기 때문에 많은 티베트인이 자살을 택하고 말았다 ..  (48, 50, 65쪽)


 지난 2004년, 《티벳전사》라는 책 하나가 우리 말로 나왔습니다. 티베트사람이 티베트 이야기를 쓴 책 가운데 우리 말로 옮겨진 책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우리 나라에 나오는 티베트 이야기라면 하나같이 ‘티베트 불교’하고 ‘티베트 의학’뿐이지만, 이마저도 몇 권 안 되는데, 《티벳전사》는 티베트사람이 중국한테 어떻게 밟히고 있으며 어떻게 맞서는가 하는 이야기를, ‘티베트사람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처럼 우리(티베트) 문화를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부드러운 목소리는 들려줍니다. 다만, 눈여겨보는 사람이 적고, 알아보는 사람 또한 드뭅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티베트 여행이나 순례는 떠난다 할지라도 티베트 역사와 문화를 먼저 살펴보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티베트를 다녀왔어도 그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거나 흘러가는가까지 살펴보려는 사람 또한 드물어요. 중국 정부가 감시와 통제를 모질게 해서 알아채기도 힘들다지만, 알아보려고 애쓰면 못 알아보겠습니까.


.. 중국의 티베트에서의 환경정책의 비정상성을 대표하는 사건이 있다. 중국인 홍위병이 밤나무 25만여 그루를 ‘엘리트주의자’로 선포하고 모조리 벌목해 버린 사건이다 … 중국은 로프 노르 지역에서 핵실험을 감행하여 환경에 더욱 위험한 손상을 안겼다. 중국도 극심한 방사능 대기오염을 인정하고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티베트인은 허겁지겁 베이징으로 피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이미 전술한 바, 중국은 약 540억 달러 상당의 목재를 티베트에서 채취해 갔다. 또 중국은 사원에서 약탈한 종교예술작품을 외국 교환시장에서 판매하여 틀림없이 수천만 달러 이상의 외화를 거머쥐었을 것이다 … 흥미롭게도 티베트를 일컫는 중국면 ‘시짱(西藏)’은 “서쪽의 보물”을 뜻하며, 티베트인은 이것이 수세기 동안 중국이 티베트를 탐내 온 주된 이유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1985년 티베트의 광물자원의 규모를 추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결과는 수조 달러 이상이었으며, 이 수치도 일반적으로 과소평가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티베트에 매장된 풍부한 광물자원의 리스트에는 석면, 붕사, 크롬, 코발트, 석탄, 구리, 다이아몬드, 금, 흑연, 철, 철광, 옥, 납, 마그네슘, 수은, 몰리브덴, 니켈, 천연가스, 석유, 요오드, 광유, 라듐, 은, 텅스텐, 티타늄, 우라늄, 아연이 포함되어 있다 … 중국에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가치를 지닌 더 큰 자원은 수력전력이다 … 종합해 말하면, 티베트에는 거의 미개발 상태의 광대한 천연자원이 매장되어 있고, 무한에 가까운 수력전기 잠재력이 잠재되어 있다 ..  (136, 139, 142, 144, 145쪽)


 몇 해 앞서, 충북 음성군 생극면 시외버스역에서 ‘몽골에서 한국으로 와서 이주노동자로 살고 있으나, 거의 한 번도 일삯을 받아 보지 못하고 몸만 망가지고 있던 아저씨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이는 당신 여동생이 한국으로 시집을 왔기 때문에 초청비자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당신이 일하던 공장 사장이 허구헌날 욕을 하고, 또 동네사람이 ‘저놈은 한국말을 잘 모르고 이주노동자니까 막 굴려먹어도 돼’ 하면서 욕지꺼리를 내뱉고 있었음에도 ‘한국은 좋은 나라예요’ 하고 띄엄띄엄 말하면서 웃었습니다. 당신한테 착하고 반가이 마주하는 사람은 하나도 안 보이는데, 어디에서 이런 생각을 하며 눈을 반짝이며 칭찬을 하는지 도무지 알 노릇이 없었습니다.

 몽골이든 티베트이든 네팔이든 인도이든 찾아가고 순례를 하고 뭐를 하면서 ‘낮에는 하늘이 파랗디파랗게 눈부시’고, ‘밤에는 온누리 별을 여기에 갖다 놓은 듯 맑게 빛난’다고 노래를 하고, 그토록 아름다운 곳이 없다고 노래를 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 사람들이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오면 ‘찬밥꾸러기’에다가 ‘천덕꾸러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참 아리송합니다. 여행을 가서 만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순박하다’고 입을 모으면서, 왜 그 여행터 사람을 한국땅에서 마주할 때면 ‘욕’을 내뱉으면서 ‘지저분하다’느니 ‘바보’라느니 하고 깔보거나 깎아내릴 수 있지요? 때때로 텔레비전에서 몽골이나 티베트나 인도 이야기를 ‘예쁘장하게 비추어 내는 다큐멘터리’로 보여줄 때에는 ‘더없이 아름답고 깨끗한 나라’라고 말하면서도, 왜 그 나라 사람을 코앞에 마주할 때에는 싹 바뀌어 버릴 수 있지요?


 (2) 두툼한 보고서가 말하는 티베트와 중국


 500쪽이 넘는 두툼한 보고서 묶음인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을 읽습니다. 말하지 못한 티베트 이야기는 훨씬 많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이 책 하나를 읽어낸다면, 이 나라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티베트 삶과 사회와 정치를 조금이나마 훑어 볼 수 있으리라 봅니다. 달라이 라마를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을 돌아보고,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 눈치를 보면서 ‘티베트 평화’에는 손을 하나도 안 쓰는 까닭을 어느 만큼 짚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1990년에 나온 책이니만큼, 퍽 예전 자료와 숫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스무 해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09년이니, 이제까지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더 많은 자원을 중국이 울궈갔으’며, ‘더 많은 티베트 문화와 터전이 망가졌’음을 어림해 볼 뿐입니다. 그런데, 560쪽이 넘는 쪽수라 한다면, 각주와 찾아보기뿐 아니라, 2000년대 이야기라든지 요즈음 흐름을 따로 달아 놓아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두툼한 보고서이니 조금 더 두툼해져도 괜찮고, 대여섯 쪽 더 나누어 보아도 괜찮을 테니까요. 정 힘들다면 각주나 찾아보기를 덜어내더라도, 오늘날 모습을 보여주어야 이 책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이야기’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출판사는 글쓴이한테 ‘요즘 형편을 밝히는 글도 하나 달아 달라’ 할 수 있었으며, 글쓴이가 어렵다고 밝혔으면 ‘우리 스스로라도 더 알아보며 새 이야기를 붙일’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 2008년 백상예술대상 교양 작품상에 빛나는 다큐멘터리 〈차마고도〉(KBS)는 그 아름다운 영상미와 완성도 높은 음악(양방언 씨), 인상적인 내레이션(최불암 씨)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의 현실을 미화하고 티베트인이 오로지 불교에만 매달려 살고 있는 것처럼 그려냈기에, 개인적으로 ‘위험한’ 작품이라 생각한다(엔드 크레디트를 보면 아시겠지만, 중국 당국의 사전 내용검토를 받았다). 이제 티베트를 포함한 인권 문제를 ‘미학’의 차원으로 환치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치즘을 찬양했던 레니 리펜슈탈이 저지른 오류를 동시대의 한국민족이 반복하고 있다면 그것을 지적함은 한 사람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  (옮긴이 말 : 401∼402쪽)


 어쩌면, 우리로서는 이만큼 다가서는 몸짓만으로도 벅찰는지 모릅니다. 우리로서는 이만큼 알아보기도 귀찮은지 모릅니다. 우리로서는 이만큼 읽어 주기도 번거롭거나 낯설는지 모릅니다.

 먹고살기 바쁘잖아요. 먹고살기 바빠 책 하나 읽기도 벅차는데, 무슨 티베트 식민지 이야기를 읽느냐 하지 않겠습니까. 먹고살기 힘들어 내 집 살림 간수하기도 귀찮은 판에, 우리 역사도 아니고 티베트 역사를, 더군다나 식민지로 짓밟히는 역사를 뭐 하러 읽느냐 하지 않겠습니까. 먹고살기 고단하기도 하지만 엄청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터지는 마당에, 티베트야 죽을 쑤건 밥을 하건 내 알 바 아니라고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만한 책을 애써 옮겨내면서도 좀더 넉넉하고 따뜻하게 ‘티베트 오늘 삶’을 담으려는 엮음새를 보여주지 못하고, 이 책 하나 읽으며 얻는 지식조각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삭여내면 좋을까 하는 깜냥으로 다가서지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티베트인은 폴란드인과 유대인에게 게슈타포가 자행했던 고문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고문에 노출되었다. 22세의 운전기사 첸진 세랍은 3월 5일 폭동 이후에 체포되었는데, 3월 23일경에 그의 가족은 시의 시체안치소 한곳으로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의 여동생이 시신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옷뿐이었다. 그의 안면은 심각하게 손상당한 상태였고, 안구 양쪽이 모두 뽑혀 있었기 때문이다. 장례식을 돕던 남자 가운데 한 명은, 뒤에 그의 몸속에 있는 모든 뼈가 부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시신 석방 대금 600위안을 물어야 했다. 이 금액은 라싸의 빈곤한 티베트인 가족에게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  (173쪽)


 중국은 부자나라가 되고자 티베트를 짓밟았습니다. 티베트사람을 죽이고, 티베트 지하자원을 빼앗으며, 핵무기 실험을 하며 티베트땅을 더럽힙니다.

 한국은 부자나라가 되겠다며 비정규직을 만들고 정리해고를 손쉽게 해대며 이주노동자를 값싸게 들여와 함부로 부려먹고 아무렇지 않게 내동댕이칩니다. 언제나 더 많은 돈벌이에다가 자유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할인매장을 온누리 곳곳에 마구잡이로 올려세우며, 동네에서 조촐하게 장사하는 사람을 굶어죽게 내몹니다. 늘 더 많은 돈벌기에다가 자유경제건설이라는 이름으로 값비싼 아파를 온나라 구석구석에 끝없이 올려세우며, 적은 돈으로도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람들 터전을 싸그리 밀어없앱니다.

 우리 나라 군대는 세계에서 손꼽을 만큼 힘이 있습니다. 핵무기는 없어도 군사힘은 꽤 셉니다. 비록 중국과 미국과 러시아와 일본하고 견줄 만큼은 안 되지만. 중국과 미국과 러시아는 어마어마한 군사힘으로 숱한 식민지를 만들고, 일본 또한 돈으로 또다른 경제식민지를 만듭니다. 여기에 우리 나라 또한 제법 센 군사힘에다가 어느 만큼 이룩한 돈힘으로 이웃한 작고 여린 나라를 경제식민지로 삼으려 하지 않을까 근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작고 지하자원 또한 얼마 있지 않아도 ‘에너지 씀씀이’는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듭니다. 석유 소비는 일본 못지 않습니다. 우리들 끝없는 씀씀이를 댈 만한 지구자원을 얻자면, 나라안 낮은자리 사람을 더 누르는 일만으로는 모자라, ‘이라크 파병’이 아닌 ‘북녘 침략’쯤은 해야 숨통을 트지 않겠느냐고 여기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북녘이 하루빨리 남녘을 ‘도발’해 주어 하루아침에 북녘 정권을 허물어뜨리고 ‘무력통일’을 이루어 ‘남녘 경제살리기’를 하려는 무시무시한 꿈을 꾸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는 미국이 멕시코와 이라크로 쳐들어가고, 프랑스가 베트남으로 쳐들어가며, 스페인이 중남미로 쳐들어갔으며, 영국이 아르헨티나를 쳤고,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을 쳤으며, 중국이 티베트를 치는 흐름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모두들 ‘부자나라’가 되겠다면서 군대를 끝도 없이 키웠고, 군산복합체를 터질랑 말랑 하는 개구리배처럼 부풀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평화’와 ‘문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습니다. (4342.6.8.달.ㅎㄲㅅㄱ) 

 



이런 좋은 책도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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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9-06-09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벳전사> 라는 책, 맥그로드간즈의 한국인 식당 한켠에 놓여있던 것을 뒤적거린 기억이 나네요.

숲노래 2009-06-10 07:02   좋아요 0 | URL
맥그로드간즈라는 데는 어디인가요?
한국인 식당 한켠에 이 책이 놓여 있었다니...
대단하군요 ^^

티벳, 티베트... 참 이야기가
제대로 세상에 읽히면서
우리 스스로도 우리 삶을
곰곰이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잉크냄새 2009-06-10 14:17   좋아요 0 | URL
달라이라마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한 도시입니다.

숲노래 2009-06-13 09:5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
 
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다케타즈 미노루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111 ― 내 가슴속에서 살고 있는 자연 찾기
 : 다케타즈 미노루,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 책이름 :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 글ㆍ사진 : 다케타즈 미노루
- 옮긴이 : 김창원
- 펴낸곳 : 진선books (2008.1.28.)
- 책값 : 13800원



 (1) 학교와 자연


 국민학교를 다니던 무렵, 학교에서 내어주는 숙제 가운데 가장 하기 싫은 숙제는 ‘우리 동네 천연기념물 알아오기’나 ‘우리 동네 국보 알아오기’ 따위였습니다. 서울만 하더라도 천연기념물로 삼는 나무가 있으며 국보로 삼는 보배가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 땅 어느 곳에 가도 천연기념물이며 국보이며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천에서는 천연기념물도 국보도 만날 수 없었을 뿐더러, 보물로 치는 문화재를 만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아니, 천연기념물을 떠나 그 흔한 여느 새를 생각하기란 몹시 어려웠어요.

 나중에 커서 생각해 보면, 날마다 보던 갈매기를 애틋하게 여길 수 있고, 낚시하러 갯가에 가서 잡던 망둥이라든지, 동네에 있던 조그마한 논에서 잡던 미꾸라지를 살가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자연이나 사회 과목에서는 ‘우리 둘레 흔한 목숨붙이’는 그리 값할 만하지 않은 듯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개구리나 두꺼비를 사랑하는 일은 ‘자연사랑’이라 말할 수 없다고 가르쳤고, 두루미나 오색딱따구리나 미선나무쯤 들먹여야 무언가 아는 셈이고 자연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듯 이야기했습니다.


.. 라디오에서는 저기압이 북쪽 해상을 통과한다고 알리고 있었다. 내일은 틀림없이 남풍이 불 것이다. 유빙을 데려가기 위해. “훗카이도 사람들은 보물섬에서 살고 있군.”  친구는 이 말을 남기고 도쿄로 돌아갔다 … 그 당시는 강물이 깨끗하다 못해 아름다웠다. 아무도 강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 하물며 강에 오줌을 누는 천벌 받을 짓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일대에 사는 사람들은 해마다 그맘때면 자연이 베풀어 주는 혜택을 그 강을 통해 받았기 때문이다 ..  (14, 105쪽)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또 고등학생이 될 무렵만 하여도, 인천에서 안개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툭하면 안개가 짙게 끼어 아침마다 학교 가는 길을 애먹었습니다. 그래 보았자 아홉 시가 넘어가고 열 시가 가까우면 걷혔는데, 이 짙은 안개가 오래오래 드리우면서 ‘우리도 학교를 좀 쉬어 봤으면’ 하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코앞도 헤아릴 수 없도록 드리우던 안개가 바다를 끼고 있는 곳에 으레 나타난다고 말하던 교사란 없었고,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이라고 딱히 이야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마땅한 노릇인지 모릅니다. 인천사람으로서 물때를 모른다면 바보이고 바다 날씨를 모르면 멍텅구리였을 테니까요. 아주 꼬맹이가 아니고서는 다 알아야 한다고 여긴 바다 날씨였으니 굳이 이야기할 까닭이 없었고, 안개이든 뭐든 철 따라 찾아오는 모습이었을 뿐입니다. 뭉게구름이나 소나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지개를 대단히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보니까요.

 집집마다 온갖 꽃을 어여쁘게 키우기는 했으나 이런 꽃은 ‘돈으로 따질 값나가는 천연기념물에 들지 않으’니 푸대접을 해도 괜찮은 듯 가르친 학교라고 할까요. 아니, 처음부터 아예 생각할 구석이 없는 듯 우리 매무새를 길들인 학교라고 할까요.

 국민학교 3ㆍ4ㆍ5학년 때에는 방학숙제로 식물채집을 즐겨했는데, 식물채집이건 곤충채집이건 ‘흔한 풀꽃과 벌레’를 거두어 오면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해마다 ‘흔한 풀꽃’을 스무 가지에서 서른 가지 즈음 거두면서 숙제로 내었고, 다른 동무 가운데에는 흔한 풀꽃조차 대여섯 가지를 거두어 온 녀석이 없던 탓인지, 저는 늘 점수를 잘 받았습니다. 하기는. 바다로 흘러가는 개천 옆 아파트 꽃밭에서 자라던 들딸기 한 포기도 거두었고, 아빠 엄마랑 설악산 나들이를 했을 때에도 두어 가지 풀을 캐 왔고, 수봉공원과 자유공원 마실을 하면서 이 풀 저 풀 캐 오며 ‘이름 모르는 풀’이라고 척 붙여놓곤 했으니까요.


.. 말은 트랙터와 달라서 ‘따 따 따 따’하는 요란한 소리 따위를 내지 않는다. 기껏 나는 소리라야 목을 돌릴 때마다 목에 걸린 방울이 ‘땡강 땡강’ 하고 울리는 정도다. 그리고 언땅이 녹는 것이 밭의 지형에 따라 이르거나 늦어져 밭갈이가 일제히 시작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말은 경유만 넣어 주면 며칠이고 움직일 수 있는 기계와는 달라서 전날 일이 힘들었다 싶으면 쉬게 해야 했고, 어떤 때는 주인이 전날 밤 약주를 많이 들었다고 해서 오후 늦게 밭에 나오는 그런 식이었다. 여하튼 모든 것이 느긋하고 한가로웠다 … 그리고 얼레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길래 “얼레지 알뿌리를 갈아서 그것으로 경단을 만들면 어떤 맛일까요?” 하고 말을 꺼냈더니 모두들 나를 흘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때 나는 맥주 기운이 좀 돌아서 별 생각 없이 “좋아하는 것은 먹어야죠. 먹을수록 더 좋아질 테니까요.” 했더니, 그중 한 사람이 “그럼 선생님, 여우 고기 맛은 괜찮아요?”라고 해서 내가 한방 얻어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  (30, 37쪽)


 요즈음도 학교에서 식물채집이나 곤충채집 숙제를 내어주는지 궁금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이제는 식물채집이든 곤충채집이든 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사람 아닌 목숨이 홀가분하게 숨쉬고 살아갈 터전이란 거의 자취를 감추었으니까요. 아니, 우리 스스로 사람 아닌 목숨은 살아갈 수 없게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온땅을 뒤덮고 있으니까요. 아니, 우리들은 이웃사람조차 살아갈 수 없게끔 비싼집을 새로 짓고 값싼집은 허물면서 온통 아파트나라로 바뀌어 가고 있으니까요. 돈이 없으면 사람으로 치지 않고, 돈 되는 일에 마음을 쏟지 않으면 사람값을 못하는 듯 따돌리니까요.


.. 지키는 농부는 긴 장대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어 댈 뿐, 소리도 크게 지르지 않아서 옆에서 보면 쫓는다기보다는 함께 놀고 있는 것 같은 느긋한 분위기였다. 농가의 뜰은 넓다. 저쪽에서 한 무리의 다람쥐들이 우르르 달려와 볼주머니에 밀을 채우고 있으면 농부는 달아나는 시간을 주려는 듯이 천천히 다가가서 장대를 흔든다. 그러면 또 다른 놈이 저쪽에 와서 붙는다. 참새들은 흔들거리는 장대가 아예 보이지 않는 듯 먹기에 바쁘다. 아무튼 적은 많고 끈질기다. 한 농가 주인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하루에 한 가마니는 각오하고 있다고. 그러면서 “그들도 겨울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하고 덧붙였다 ..  (122쪽)


 그러고 보면 학교는 자연하고 울타리를 쌓습니다. 학교부터 자연하고 동떨어져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자연을 벗삼는 일이란 없습니다. 봄가을에 맞추어 자연 터전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하여도 아이들은 먹고 쓰고 버리는 데에만 익숙하지, 자연을 아끼고 돌보면서 너른 품을 고이 껴안고자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하는 교사부터 자연을 넉넉히 껴안지 않기도 하고요.

 입으로는 물질만능주의 서양이 ‘동양사람들 마음밭 깊은 뜻 앞에 고개를 숙인다’고도 외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 우리 넋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않고 우리 얼이 어떠한지 곱씹지 않습니다. 되레 서양보다 깊디깊이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며, 여기에 돈과 기계와 전쟁에 매입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이 아닌 이웃을 밟고 올라서는 길을 걷습니다.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사랑이 아닌 서로를 등처먹는 경쟁과 장사속이 판치도록 하고, 서로를 지키고 다독이는 믿음이 아닌 서로를 괴롭히고 편가르는 학벌과 연고제와 조직을 키웁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든 중학교를 다니든 고등학교를 다니든 나아질 낌새가 없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든 대학원을 다니든 매한가지입니다.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왔어도 지식조각은 많이 갖추지, 마음바탕이 깊어지거나 넓어지지 않아요.


.. 백조나 쇠기러기의 대량 폐사 이전에도 물새들의 죽음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 일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것은 훗카이도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냥터에서도 똑같지 않았을까? 이름 없는 새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모두들 무관심했다. 백조와 쇠기러기에 이어서 참수리, 흰꼬리수리 같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새의 희생이 발생하면서 사태는 급변했다 ..  (240∼241쪽)


 우리 교실이 그렇잖습니까. 우리 교실 어디에도 자연이 숨쉴 수 없습니다. 우리 교실 어느 구석에 꽃그릇 하나 놓여 있는가요. 꽃그릇 하나 놓여 있다 한들 날마다 사랑하고 아끼는 꽃그릇입니까, 그저 모양새로 갖다 놓은 꽃그릇입니까. 밝은 한낮에도 전기불을 켜야 하는 교실 아닙니까. 밝은 한낮에 햇살을 듬뿍 쬐면서 신나게 뒹굴고 땀흘릴 수 있는 학교는 어디에 있습니까. 새벽별을 보고 찾아와 밤별을 보며 돌아가는 학교는 언제쯤 몰아낼 수 있습니까. 아니, 이런 입시지옥 거짓 배움터를 우리 삶터에서 쫓아낼 생각은 조금이나마 하고 있습니까.


 (2) 집과 자연


 예전에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 일터 사장님은 저를 일본에 한 번 중국에 두 번 보내 주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나라밖 구경을 해 보았는데, 사진과 그림으로만 보던 나라밖 모습과 두 눈으로 들여다보며 몸으로 부대끼는 나라밖 모습은 사뭇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이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어느 도심지가 되든 건물만 우죽우죽 올라선 곳은 메마르기 그지없습니다. 도심지에서는 모두 바빠맞으며 차갑고 매몰찹니다. 그런데 그 도심지에서도 살짝 골목 안쪽으로 접어들면 모두 느긋하며 따뜻하고 넉넉합니다.

 일본 간다 헌책방거리도 좋았지만, 헌책방거리가 아닌 여느 사람들 삶터가 깃든 골목 안쪽 또한 참으로 좋았습니다. 저는 일부러 골목 안쪽으로 ‘길을 헤매고 싶은 사람’처럼 돌아다녔는데, 고즈넉한 길에 차는 한 대도 없이 걷는 내내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집집마다 문간 둘레에 마련해 놓은 꽃그릇 냄새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이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라, 북경이든 연길시이든 도심지하고 도심지에서 벗어난 곳은 크게 달랐어요.


.. 아이누족은 복수초꽃이 피면 한 해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 해의 첫 달은 4월이 되는 셈이다 … 복수초는 북쪽 지방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이다. 그래서 이 꽃을 보고 한 해가 시작한다고 생각한 아이누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다 … 하루는 하날다람쥐에게 줄 먹이를 얻으러 나갔다. 이 시기에 야생 하늘다람쥐는 버드나무의 꽃눈이나 자작나무의 꽃눈, 낙엽송이나 분비나무의 겨울눈을 즐겨 먹는다 … 연령초는 5월이면 잎이 시들고 열매를 맺는다. 달고 맛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매우 좋아하는데 청설모도 먹는 것 같다 ..  (18, 31, 54쪽)


 저는 서울내기가 아니고, 서울이라는 곳은 1994년에 처음 밟았으며, 1995년부터 2003년 가을까지 살았습니다. 이때 서울에서 살며 날마다 두어 곳씩 헌책방마실을 했고, 헌책방마실은 거의 언제나 두 다리로 걸어서 했습니다. 하루에 예닐곱 시간이나 여덟 시간 남짓도 걸어다녔습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곧잘 걸어다녔고 한강다리도 숱하게 두 다리로 넘었습니다. 헌책방은 큰길가나 번화가에 없으니, 언덕배기를 따라 골목길을 수없이 누볐습니다. 2000년대를 넘어서고 2010년대에 가까워질수록 서울은 달동네 집자리가 사라지고 아파트가 부쩍 늘어나는데, 이러는 가운데 헌책방도 숫자가 많이 줄었습니다. 헌책방을 비롯해 동네 작은 새책방도 많이 줄었고요. 학교 앞 문방구도 한두 군데 빼놓고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구멍가게 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 되어 갑니다.

 작은 집을 허물고 커다란 집만 세우기 때문인데, 작은 집은 돈이 안 되고 커다란 집은 돈이 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작은 집에서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오순도순 지내던 맛과 멋을 우리 스스로 내버리고, 커다란 집에서 방마다 따로따로 처박혀 따로따로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켜고 제 꿈나라로 빠져드는 놀이에 젖어들고 싶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꾸준히 땀흘려 번 돈으로 이웃돕기나 이웃사랑을 펼치기보다는, 내 집을 더 키우고 내 차를 더 키우며 내 씀씀이를 더 헤프게 하는 데에 빠지는 버릇에 젖어들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 우리들은 계절을 잃고 말았다. 봄의 바다가 잊혀져 가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얼마 안 가서 항구를 떠나는 고기잡이배를 한 척도 못 보는데도 생선은 여전히 가게에 쌓이는 날이 올지 모른다. 송어나 연어란 원래 토막난 몸으로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 도망갈 데가 얼마든지 있는 산속의 초지는 평소 토끼에게 안전하고 마음 놓이는 장소지만, 사람들이 그곳의 목초를 베고 거둬들이는 7월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토끼들의 낙원은 하룻밤 사이에 전쟁터로 바뀐다 ..  (48, 85쪽)


 다른 누구보다 우리 아버지가 이러합니다. 이런 아버지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느끼지만, 아버지는 저 같은 아들이 안타깝다고 느끼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들 된 저는 알맞게 벌고 알맞게 쓰며 알맞게 나누면 즐겁다고 느끼지만, 아버지 된 분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며 더 많이 누리면 좋다고 느낍니다. 더 많이 배우면 더 좋고, 자가용으로 더 빨리 달리면 더 좋으며, 더 많이 번 돈으로 더 돋보이는 아파트에 살면 더 좋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 집에도 꽃그릇은 많습니다. 우리 아버지 집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 아파트에도 꽃그릇은 많습니다. 밖에서 보면 그예 시멘트덩어리이지만, 이 안쪽에는 온갖 꽃그릇이 그득그득 채워져 있다고 할까요.

 그러나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꽃그릇이요, 시멘트 울타리 안쪽에 갇힌 꽃그릇입니다. 비바람을 머금을 수 없고, 햇볕을 고루 받을 수 없습니다. 꽃냄새이든 풀냄새를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벌나비를 부르지 않습니다. 씨앗을 퍼뜨리지도 못합니다. 새로 지어지면 새로 지어질수록 우리네 자연하고는 멀어지는 아파트요, 더 늘어나면 더 늘어날수록 우리네 자연을 무너뜨리는 아파트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흐름을 살갗으로 느끼지 않는 가운데, 우리한테 넘치는 돈을 어디에 들여서 우리 주머니를 어떻게 더 부풀리느냐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 판자 대신 모르타르와 함석으로 둘러쳐진 창고는 그 주변에 생물들이 사는 것을 차갑게 거부했다. 나무줄기에 생기기 마련이던 크고 작은 구멍들도 모습을 감췄다. 큰 나무들은 재목으로 잘렸고, 오래된 고목은 쓸모없는 나무로 취급되어 잘려 없어졌기 때문이다. 먹이가 줄어들고 보금자리를 잃은 생물들이 처하게 될 운명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대로 됐을 뿐이다 … 일반 숲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 즉 생물들의 요람 구실까지 고려하면 이처럼 귀하고 고마운 숲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크게 고마워하지 않더라도―흔한 것을 고맙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해도― 적어도 학자나 연구자, 그리고 관청의 행정관이라는 사람들이 소홀히 하는 것은 천벌 받을 일이 아닐까. 한편 일부의 연구자나 학자들에게는 중요할지 모르지만, 살고 있는 주민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대상을 보호하거나 기념물입네 하고 떠들어대는 작태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  (93, 114∼115쪽)


 우리 나라는 땅이 좁아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우리 나라가 땅이 좁아 아파트를 짓지는 않습니다. 돈이 되니 지을 뿐입니다. 돈굴리기에 좋으니 짓습니다.

 어느 아파트이든 아파트 크기만큼 동과 동 사이가 벌어져야 하며, 아파트 넓이만큼 빈터가 넓어야 합니다. 창문까지 꼭꼭 틀어닫고 전기불에서 책상머리 일만 하는 사무실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이기 때문에 1층이건 꼭대기층이건 ‘햇볕이 들어와야’ 하거든요. (그래도 그늘이 지는 동이 생기도록 짓는 아파트이긴 하지만) 볕이 들도록 지어야 하는 아파트인 가운데, 놀이터와 꽃밭과 쉼터가 있도록 짓는 아파트입니다. 여기에 자가용 댈 곳은 얼마나 넓어야 합니까. 요사이는 한 집에 자가용 두어 대는 으레 굴리고 있잖아요.

 이런 아파트 지음새를 돌아본다면, 그만한 넓이를 위로 높이 올려세우기보다는, 땅바닥에 달라붙도록 알맞게 2층이나 3층으로만 지으면 훨씬 넓은 자리를 온 동네 사람이 넉넉히 쉼터로 삼을 수 있으며, 어느 집이건 햇볕과 비바람을 있는 그대로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느 집이든 툇간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빨래를 널 수 있고, 어느 집이든 층간소음에 시달리지 않는데다가, 집구석이 아닌 골목골목 뛰쳐나와 놀 수 있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사이좋게 지내는 길을 익힙니다.

 우리가 참삶을 바란다면 자연하고 가까울 수 있는 도시로 다시 짜야 하고, 우리가 돈삶을 바란다면 오늘날 흐름과 같이 아파트만 때려짓는 도시로 치달아야 합니다.


 (3)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라는 책은


 1937년에 태어나 1963년부터 일본 훗카이도 가축진료소에서 수의사로 일하다가 1991년에 일터에서 그만둔 ‘다케타즈 미노루’라는 분이 쓴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스물여섯 살부터 쉰네 살까지 수의사로 일한 셈인데, 이분이 쓴 책에는 서른 해 가까이 산마을 깊은 데에 옹크리면서 뭇짐승을 만난 발자취며 느낌이며 생각이며 삶이며 알뜰히 묻어나 있습니다. 이분이 쓴 《새끼 여우 헬렌이 남긴 것》이라는 책은 영화로 만들어 2006년에 극장에 걸리기도 했답니다.

 다케타즈 미노루 님 책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청어람미디어)은 2007년 2월에 우리 말로 옮겨졌고, 《아기 여우 헬렌》(청어람미디어) 또한 2008년 7월에 우리 말로 나왔습니다.


.. 10년 전에는 마을 주변의 다섯 개의 호수와 늪은 물오리와 큰기러기, 도요새 등의 물새 떼들이 노니는 평범한 가을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수렵 금지가 해제되면 네 개의 호수와 늪에서는 단 한 마리의 새도 찾아보기 힘들고, 반대로 사냥 금지 구역인 도후쓰 호는 온통 새들로 북적였다. 살기를 바라는 생물들에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인간도 산다는 문제에서는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극성이었다. 밀렵에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당시에는 사냥이 금지된 호수에서 무선으로 조종하는 작은 모형보트를 달리게 하고, 놀라 날아오르는 새를 호수의 경계선 바깥쪽에서 기다렸다가 총으로 쏘는 사람도 있었다 ..  (144쪽)


 짐승을 돌보는 의사로 일했으니 누구보다 짐승을 사랑하던 분이라 할 만합니다. 글쓴이뿐 아니라 글쓴이 옆지기와 아이들도 더없이 짐승을 사랑하던 사람이었을 테고요.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글쓴이는 ‘짐승사랑’이라든지 ‘자연사랑’을 펼쳐 보였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똑같은 목숨이기 때문에, 똑같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던 이야기를 펼쳐 보였구나 싶습니다. 짐승들 살아갈 자연 터전을 사랑하자는 이야기를 넘어, 짐승이 살아가지 못하는 터전이라면 사람도 살아가지 못하는 터전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우리 스스로 아름답고 싱그럽게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겠다는 이야기를 그려 보였구나 싶어요.

 글쓴이 다케타즈 미노루 님은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도 손을 거들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내셔널트러스트도 그러하지만, 이 운동은 ‘내 땅 지키기’가 아니라 ‘내 삶 지키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 삶 지키기’는 ‘내 마음 지키기’로 하는 일이며, 내 마음 지키기란 나를 나답게 하는 수수하고 조촐한 길이 아닌가 싶어요.


.. 다음날 아침, 옆집 아주머니에게 “어젯밤은 시끄러웠죠?” 했더니 “어머나, 그랬어요? 저희 집에서는 몰랐는데요.” 한다. 20년쯤 전이라면 으레 그런 인사가 서로 통했는데 요즘 와서는 안 통한다. 다른 집들이 모두 방한과 방음이 잘 되는 밀폐된 집으로 바뀌면서 시각적인 면은 제외하고 바깥 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근대 문명은 입으로는 ‘자연과 친하게 살자’고 떠들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생활에 자연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 기술의 확립에 바쁜 것 같다. 자연은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 ..  (183∼185쪽)


 세발이까지 갖추면서 사진을 찍고, 좋은 사진 하나 얻고자 추위를 무릅쓰기도 하던 글쓴이인데, 글쓴이가 찍은 사진은 작품사진이 아닙니다. 예술사진도 아닙니다. 풍경사진 또한 아닙니다. 자연사진이라 말하려 한다면 자연사진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자연사진보다는 삶사진이라고 해야 올바르지 싶습니다. 글쓴이는 언제나 자연하고 ‘살았’거든요. 언제나 자연에서 뭇목숨붙이를 제 이웃으로 삼으며 함께 ‘살았’거든요.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담은 자연이기 때문에 ‘자연사진’이라고만 글쓴이 사진을 바라보면 한 가지만 읽어내고 맙니다. 또한, 이런저런 어여쁘고 애틋한 짐승 모습을 담아낸 짐승사진이라고만 들여다보면 이때에도 한 가지밖에 읽어내지 못합니다.


.. 하지만 요즘 어린이들은 이런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다. 그런데도 요즘 시대는 모든 것이 지식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결국 어린이들 마음속에 있는 동물들은 도망가 버린다. 뭔가 새로운 것을 뒤쫓는 것이 과학이요, 연구라는 발상 속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어린이들은 자연의 불구가 되고 만다. 어디에나 있는 자연의 감동을 맛보지 못하고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 ..  (255쪽)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는 ‘자연일기’입니다. 어김없이 자연에서 지내온 일기입니다. 글쓴이 또한 자연 가운데 하나임을 느끼며 살았던 이야기입니다. 글쓴이 스스로 자연을 지킨다는 어설픈 외침이 아닌, 스스로 자연으로 녹아들며 하루하루 즐겼던 삶자락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말나눔입니다. 잔잔한 수다라고나 할까, 따사로운 옛이야기라고나 할까, 푸근한 글줄, 곧 시라고 할까요.

 우리 누구나 자연일기를 쓸 수 있으며, 우리 누구나 자연삶을 즐길 수 있고, 우리 누구나 자연임을 책 하나에 오롯이 담아 나누어 줍니다. 자연은 우리들 가슴 어디에나 고요히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려 하는 만큼 깨어날 자연이며, 우리가 깨달으려 하는 만큼 거듭날 자연이고, 우리가 부대끼려 하는 만큼 아름다워지는 자연입니다. (4342.6.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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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
한무영 지음 / 그물코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06 - 착한 사람은 빗물을 받아 먹는다
 : 한무영,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



- 책이름 :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
- 글 : 한무영
- 펴낸곳 : 그물코 (2009.5.10.)
- 책값 : 1만 원


 (1) 비를 생각하다


 엊저녁부터 내린 비는 아침이 되어 멎습니다. 말끔하게 갠 하늘이지만 해는 나지 않습니다. 해까지 나면 빨래를 해서 널 텐데, 빨래를 해서 밖에 내다 넌다 하여도 비가 오나 안 오나 마음이 쓰일 만한 하루입니다.

 낮나절에 방송국에서 취재 나온 분이 있습니다. 제가 이참에 새로 낸 책을 읽고 방송 풀그림에 내보내고 싶다 하십니다. 이런 말 저런 말을 묻다가 마지막에 ‘요즈음 살면서 좋았던 일이 무엇이 있나요?’ 하고 묻습니다. 갑작스런 물음이지만, 제 느낌 그대로 “아기 기저귀를 빨아서 햇볕 쨍쨍할 때 빨랫줄에 탁탁 털어서 널면 아주 짜릿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하늘이 두루뭉술해서 밖에 내다 널지는 못할 듯하네요. 이따가 해가 살짝이라도 비춰 주면 좋을 텐데.” 하고 이야기합니다.

 방송국 리포터 되는 분은 ‘손빨래를 하는 짜릿함’이 가슴에 뭉클하게 느껴진다며, 당신께서 집으로 돌아가서 한번 손빨래를 해 보아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적어도 양말이라도 빨아 보시면 다르게 느끼실지 몰라요.” 하고 한 마디 붙입니다. 마음속으로 ‘참 고맙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 아이들에게 날마다 주스와 요구르트를 주면서 산성을 걱정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음료수보다 훨씬 산성도가 약한 빗물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것은 왜일까요?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  (19쪽)


 비 갠 골목길을 자전거를 타고 잠깐 휘 돌았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사진찍는 모임’ 분들이 서울에서 스무 분 남짓 인천을 찾아왔습니다. 이분들이 오기 앞서 먼저 슥 돌았고, 제 일터인 도서관으로 잠깐 돌아와서 몇 가지 볼일을 본 다음 다시 이분들과 어울릴 텐데, 빗물을 머금은 골목꽃은 한결 싱그럽다고 느낍니다.

 다른 날에도 빗물 머금은 골목꽃과 골목풀은 더욱 싱그럽다고 느꼈습니다. 낡은 스티로폼 상자도 버리지 않고 잘 간수하여 꽃그릇으로 쓰는 골목 이웃인데, 비가 오면 큰 통을 골목 한켠에 놓아 두고 빗물을 받곤 합니다. 집에서 수돗물을 호스로 이어 물을 주는 분들도 많지만, 빗물을 받아 물을 주는 분도 제법 많습니다.

 큰 통에 받은 빗물은 꽃이 먹는 밥이 되기도 하지만, 골목길을 쓸고 닦을 때에 쓰는 물이 되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면, 비가 오면서 저절로 골목길 물청소가 되는 셈인데, 이렇게 물청소가 되고 며칠 지나면서 자동차들이 내뿜고 흩날리는 온갖 먼지로 다시 더럽혀지면, 이 더럽혀진 골목을 씻어내는 데에 쓰인다고 할까요.

 한 동네에 온삶을 바쳐 살아온 골목 이웃들은 으레 빗물을 받아서 씁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당신이 처음 태어나거나 자라던 시골마을에서도 마땅히 빗물을 받아서 쓰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떨어지는 빗물을 아깝다고 여겼으며, 이 통 저 그릇 온통 마당에 내놓고는 빗물을 받느라 부산했다고 생각합니다. 하기는, 아파트가 아니고서야 어느 골목집이든 예나 이제나 빗물을 받느라 바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비록 인천 골목길은 ‘서울로 올려보낼 물건을 만드는 공장들’마다 내뿜는 먼지와 연기 때문에 퍽 매캐하고 먼지가 많다 하여도.


.. 도시가 발달하고 사람들이 모이면서 도심 거리는 어디나 할 것 없이 온통 콘크리트 건물과 포장된 도로뿐입니다. 풀 한 포기 자라거나 흙 한 줌 날리는 땅을 보기가 힘든 것이 우리 나라 도시의 모습입니다. 그로 인한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도시의 홍수 피해입니다. 폭우가 쏟아지면 그 빗물이 포장도로 밑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하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쳐 홍수 피해를 더하는 것이지요 … 나무가 클수록 뿌리가 깊듯이 건물이 높을수록 지하도 깊어지겠지요. 깊어질수록 지하층 방수를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흔히 사용하는 공법은 지하 벽면 둘레를 막고 지하수를 한 곳에 모아 뽑아내 하수도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도시에 건물이 한두 채입니까. 거의 모든 건물에서 이런 식으로 지하수를 뽑아내 버리니 지하수위가 내려가고 하천이 메마르며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이 당연하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지하수라인은 도시에서 가장 깊은 건물의 바닥과 같은 높이가 되어 버립니다. 즉 도시의 모든 지하수위가 떨어지는 것이지요. 도시에 수많은 건물이 들어서면서 눈에 보이는 스카이라인을 해치는 것은 신경을 쓰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수라인에 대해서는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  (33, 67쪽)


 요즈음은 아기를 돌보느라 빗길 자전거질은 잘 안 합니다. 빗길을 신나게 달리다 자칫 고뿔이라도 걸리면 아기를 돌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다 아기한테 고뿔이 옮을 수 있고요.

 빗길을 한참 달리면 자전거도 망가집니다. 빗길을 달린 다음에는 자전거에 묻은 흙탕을 잘 닦고 말려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빗속을 자전거로 달리는 맛이란 맑은 날 달리는 맛하고 사뭇 다릅니다. 빗속을 우산을 받고 거니는 맛하고 빗속을 맨몸으로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거니는 맛하고 사뭇 다르듯이.

 생각해 보면, 우리 형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우산을 쓴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뽀르르 달려가 우산을 받쳐 주기라도 할라치면 걸음을 재게 놀리며 우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냥 비를 쫄딱 맞았습니다. 저도 우산을 안 챙긴 날은 비를 쫄딱 맞았습니다. 그러다가 가방에 든 책까지 적신 적이 잦지만, 책도 말리고 몸도 말리고 옷도 말리면 그만입니다. 어쩐지 비가 올 때에는 비를 맞아야 하지 않느냐고 몸으로 느꼈다고 할까요. 형한테 옮았는지 모르지만.


.. 댐을 높인다면 얼마나 더 높여야 하며, 그때 지역주민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하천의 본류에만 댐을 만들면 하천 이외의 지역이나 지천에서 일어나는 작은 규모의 하수도 침수는 또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 많은 지자체들이 하천을 복원할 때 청계천을 본보기로 삼고 싶어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복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천을 복원하고 관리하는 데는 민과 관이 힘을 합하여 돈이 적게 들고,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  (60∼61, 82쪽)


 나중에 신문배달 일을 할 때에는 비를 새삼스레 느낍니다. 자전거 타고 신문을 돌리는데 우산을 받고 돌릴 수 있겠습니까. 내 몸은 옴팡 젖어들어도 신문에는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습니다. 장마철만 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여느 날보다 두 시간씩 일찍 일어나서 두 시간씩 늦게 일이 끝나 죽을맛이었고, 신문사지국에는 비 냄새로 가득했는데, 맑은 날 신문 돌리던 일은 거의 떠오르지 않지만, 비오는 날 신문 돌리던 일은 이제까지 하나도 안 잊힙니다.

 새벽 네 시까지는 비소식이 없어 느긋하게 돌렸는데 여섯 시 즈음부터 갑자기 쏟아져서, 애써 돌린 신문이 죄 젖는 바람에 다시 돌린 일. 지하에 있던 신문사 지국에 물에 잠길 뻔한 일. 지국장 님 댁을 비롯해 이문동 반지하집이 모조리 물에 잠겨서 지국장 님 댁에 있던 가구며 옷이며 지국으로 옮겨다 놓고 대피하던 일. 허리춤까지 잠긴 물길을 자전거로 헤치면서 신문을 돌리던 일. 비가 오면 가뜩이나 신문으로 무거운 자전거가 브레이크도 잘 안 들어 비탈길에서 내려오며 조마조마하던 일. …….

 옆지기가 아기를 배기 앞서 둘이 장대비를 주룩주룩 맞으면서 한 시간 남짓 골목마실을 하던 일도 떠오릅니다.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 되면서도 빗길을 느끼며 걷는 골목 맛은 다른 그 어느 날 느끼던 골목 맛하고 견줄 수 없었습니다. 온몸 가득 빨려들고 스며드는 빗줄기로 몸과 마음과 눈을 한꺼번에 씻어내곤 했습니다.
 





 (2) 물을 생각하다


 이달부터 옮겼는데, 우리 살림집과 도서관이 깃든 오래된 건물은 수도가 샙니다. 이리하여 물값이 삼사만 원 훌쩍 넘게 나오곤 했습니다. 집임자는 줄줄줄 새는 물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달삯에서 이 애먼 물값을 덜어 주지도 않습니다. 고쳐 주기는커녕, 물값을 덜어 주기는커녕. 돈이 많은 사람들은 다 이 모양인가 싶으면서도, 돈이 많아서 이 모양이라기보다 사람된 길을 걸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니냐 싶었습니다. 참 사랑을 나누고 참 믿음을 나누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니랴 싶었습니다.

 당신 사는 아파트에서 물이 샌다면 어찌 했겠습니까. 그 애먼 물값이 어찌 되는지 얼마나 가슴 아프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나 물값만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 물값이야 내주지요 뭐. 사만 원? 아주 짜증스러운 값이지만 내주지요 뭐. 그렇지만, 이 물값보다도 ‘애써 수도국에서 걸러낸 물이 아무 보람 없이 버려진다’는 데에서 안타깝고 슬픕니다. 서울 청계천에서 전기로 수도물을 끌어와서 흘려버리는 일하고 똑같잖아요. 아무 데에도 안 쓰고 흘려보낼 물을 뭣하러 수도국에서 걸러내어 수도관을 타고 흐르게 합니까. 물 자원이 아깝게 버려지는 일을 그치게 하는 데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라밖에는 물 한 모금 없어서 목말라 죽는 사람들이 있는데, 건물임자는 떼부자이면서도 ‘새는 물관’ 고치는 몇 푼에 돈을 들이지 않으니, 달삯을 얹혀 사는 사람이 어떻게 손을 쓰나요.


.. 빗물 이용은 빗물이 더러워지기 전에 받아서 사용하자는 것이고, 빗물 ‘재이용’은 더러워진 빗물을 정수 처리한 다음에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더러워지기 이전의 빗물을 이용하는 데는 거의 돈이 들지 않습니다 … 우리 나라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 관리를 잘 못하는 나라라고 해야 맞습니다 … 환경부의 관련법은 수질이나 물 절약과 관련된 문제들을 중심에 놓고 다루고 있지만, 가뭄이나 산불 방지, 홍수는 다루지 않습니다. 건교부의 관련법에서는 홍수만을 위주로 다룰 뿐, 하천 환경을 좋게 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재해특별법 역시 자연재해만을 한정시켜 다루고 있지요. 그것과 연관된 다른 사안들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  (29∼30, 37, 53쪽)


 저는 늘 손빨래를 합니다만, 손빨래를 하면 물을 아주 조금만 써도 넉넉합니다. 비누거품 헹군 물을 잘 갈무리해서 걸레를 빨아도 되고, 새로 나온 빨래를 담가 놓은 다음 애벌헹굼을 할 때에 쓰면 됩니다. 그렇게 애벌헹굼을 조금씩 하면서 새 빨래 비누거품을 가시고, 세벌이나 네벌헹굼쯤 될 때에 새 물을 받아서 헹굽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벌이나 네벌쯤 되는 헹굼물은 다시 갈무리해서 다음 빨래를 할 때에 씁니다. 어떻게 보면 버려지는 물이 하나도 없는 셈이라 할 텐데, 이렇게 헹군 물로는 씻는방 바닥이나 벽을 닦은 다음에 개수구로 흘려보냅니다. 또는 씻는방 거울을 닦는다든지.

 정 몸이 힘들다면 세탁기를 써야 합니다. 그러나 몸이 힘들지 않으면서 세탁기를 쓰는 사람은 죄를 짓는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물을 허투루 내버리는 셈이 아니랴 싶습니다. 더욱이, 기계 아닌 우리 몸을 써서 빨래를 하면 손발 운동이 착착착 잘 됩니다. 따로 헬스클럽 같은 데에 돈 갖다 바치면서 다닐 까닭이 없습니다. 헹굼물로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치고 집치우기를 하면 더더욱 운동이 잘 됩니다. 집에서 빨래 한 가지만 하여도 우리 몸에는 군살이 붙지 않아요. 여기에다가 자전거로 일터나 학교를 오간다면 우리 몸매는 아주 날렵하고 훌륭히 가꿀 수 있을 테지요.

 저는 자전거를 타니 자전거를 닦습니다만, 차를 닦는 분들은 어마어마하게 물을 써대며 차 껍데기를 번쩍번쩍 빛나게 합니다(자전거를 닦을 때에는 물이 거의, 아니 한 방울도 안 듭니다). 그런데 차 껍데기는 왜 번쩍번쩍 빛나도록 닦아야 하나요. 비오면 알아서 닦이는 차 껍데기 아닌가요. 애먼 물을 따로 들여서 써야 하나요. 차 껍데기를 얼마나 깨끗하게 해야 하고, 우리는 수도물을 얼마나 많이 써야 하나요.


.. 빗물을 모으고 관리하는 이유는 내 필요와 목적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남을 위해, 즉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만일 내 집 지붕에 떨어진 빗물을 모으지 않으면, 하류에 있는 다른 사람 집은 넘치는 빗물로 잠겨 버릴 것입니다 ..  (49쪽)


 우리 나라는 기술이나 과학이나 또 무엇무엇이나 거의 ‘가장 앞(최첨단)’을 달린다고들 합니다. 온 나라에 새로 짓는 아파트를 보면 갖가지 전자시설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시설 가운데 ‘전기 없이 쓸’ 수 있는 시설은 무엇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기름 없이 쓸’ 만한 시설은 한 가지라도 있는가 알쏭달쏭합니다. 계단을 타는 사람도 없는데 20층 30층까지 계단을 놓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옥상이든 벽이든 창문 어디에든 햇볕을 받아들여 전기를 뽐아낼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집집마다 들어갈 전기까지는 아니라 하여도 승강기나 골마루 등불쯤은 햇볕전지판으로 갈음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이라는 책에도 얼핏 나오지만, 아파트 옥상에 ‘빗물 모음통’을 마련해, 집집마다 뒷간 물 내리는 데에 쓴다면 물이며 자원이며 전기며 한껏 줄이거나 아낄 수 있습니다.


.. 우리 나라는 여름에 잠깐 집중해서 비가 오는데 여기에 맞춰 크고 비싼 시설을 만드는 것이 과연 좋은 모습일까요? … 대개, 계속해서 물에 잠기는 지역에 거대한 빗물 펌프장을 만드는데 이때 돈이 수백억 원이나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돈을 들인 시설을 일 년에 며칠이나 사용합니까? … 비워 두는 날이 많은 댐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쏟아붓고, 댐을 짓기 위해 살던 곳이 물에 잠기게 된 주민들의 원망을 듣습니다 … (117, 131∼132쪽)


 그렇지만 나 몰라라처럼 되어 있습니다.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짜여 있습니다. 내 돈 내가 쓴다는 생각으로 굳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맙니다. 아예 등을 돌리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나요. 귀를 막아 버리고 눈을 감아 버리는데 어찌 손짓 발짓 하나요. 돈이 넘쳐서 펑펑 쓴다는데 어떻게 말리는가요.
 





 (3)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이라는 책


 서울대학교에서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로 일하며 빗물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한무영 님이 책 두 권을 한꺼번에 펴냈습니다. 하나는 《빗물을 모아쓰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이고, 다음 하나는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입니다. 한무영 님은 그동안 《수돗물의 미생물학》과 《WHO 음용수 수질 가이드라인》과 《정수시설의 종합설계 및 유지관리》와 《하수와 우수의 관리를 위한 환경친화적 기술》 같은 책을 펴내 왔습니다.

 저는 이분이 해 온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빗물을 살피는 학자가 있음도 처음 알았는데, 한무영 님이 낸 책 두 가지를 읽으면서 ‘지구 물 문제’에서 빗물 문제를 빼놓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셈이겠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빗물을 제대로 알아가는 길은 물을 제대로 알아가는 길이며, 물을 제대로 알아갈 때 우리 삶터를 좀더 또렷하게 받아들이거나 알아챌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빗물이 깨끗한 물인지, 깨끗하지 않다면 왜 깨끗하지 않은지, 빗물이 지저분하다면 왜 지저분한지, 그리고 지저분하면 얼마나 지저분한지를 ‘제대로 모르’면서 살아왔다고 느꼈습니다.


.. 서울대학교에 새로 지은 기숙사에는 200톤 규모의 빗물 저장 시설을 본보기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약 5개월 동안 날마다 6톤 정도의 물을 사용했는데 그 가운데 1000톤의 물을 화장실 물로 사용해 수도요금을 크게 줄였습니다. 사무용은 1톤에 1100원을 부담하므로 달마다 22만 원으로 쳐서 5개월 동안 11만 원을 절약한 것이지요. 만약 이 물을 수도요금이 1.6배 정도 비싼 가정용으로 사용했다면 약 200만 원 정도 줄어든 셈입니다 … 수돗물을 아끼면 개인은 수도요금을 적게 내는 이득이 있는데, 사회는 더 큰 이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즉 빗물을 이용하면 댐의 취수량이 줄고, 물을 정수 처리하는 양이 줄어 그 비용 또한 절감되며, 운반비용 역시 줄일 수 있습니다 ..  (86∼87쪽)


 오늘날 삶터에서는 무엇이든지 ‘자원’이라 하고, 자원은 ‘관리’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리하여 정부에서는 사람도 ‘자원’으로 다루려고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이름으로 고치기까지 했습니다. 이를 놓고 적잖은 사람들이 거세게 나무랐지만 말마디 나무람으로 그치고 더 크게 나아가지 못했으며,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이름을 바꾸어 놓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이름이야 어떻게 붙든 큰 일은 아닙니다. 얄딱구리한 이름이 붙어 있더라도 교육 행정을 옳고 바르게 할 수 있으면 되니까요.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있는 기틀을 닦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스레 바라보고 껴안고 어깨동무할 수 있게끔 가르치는 터전을 세우면 되니까요.

 그런데 사람을 자원으로 여기며 다루는 우리 나라는 교육 기틀을 제대로 다스리고 있는 나라라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람부터 사람답게 다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운데 사람 아닌 숱한 자원은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껴안으면서 즐기고 돌보고 가꾸는 길을 걷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우리 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1283밀리리터 정도인데 대부분 여름 장마철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여름에 전체 강수량의 약 35퍼센트인 400억 톤의 빗물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이지요. 이 아까운 빗물만 잘 모아 두어도 섬과 산간 지역의 물 부족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입니다. 반면 독일은 연평균 강수량이 700밀리리터이지만, 평소에 독일사람들은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비가 일 년에 걸쳐 고르게 오기 때문이며, 이를 충분히 모아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물은 늘 넉넉하게 흐르고 지하수 또한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요. 독일의 집집마다 빗물을 받아 쓰는 모습은 너무나 일상적인 일입니다 ..  (42쪽)


 우리 삶을 돌아봅니다. 우리들 하루하루를 돌아봅니다. 우리가 날마다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매무새를 돌아봅니다. 여느 사람들 집부터 일터까지, 학교와 관공서까지, 골목과 큰 찻길까지, 우리들 살림살이는 어찌 이루어져 있는가 돌아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보금자리와 마을을 어떻게 추스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독일에서는 집집마다 빗물을 받아 쓰는 모습이 아주 ‘흔한 삶으로 자리잡았다’고 하는데, 독일사람은 빗물 받아서 쓰기에서만 ‘훌륭한 삶매무새’를 보여주지는 않을 테지요. 다른 자리에서도, 다른 삶자락에서도 이와 마찬가지 매무새를 보여주고 있을 테고요.

 그리고, 우리 나라는 빗물 받아서 쓰기에서만 젬병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나라는 다른 자리에서도, 다른 삶자락에서도 젬병입니다. 거의 날마다 터지는 비정규직 문제나 이주노동자 문제만 보아도 쉬 알 수 있습니다. 입시지옥을 보아도 손쉽게 알 수 있습니다. 돈에 따라 계급이 갈리고, 가방끈에 따라 신분이 나뉘는 사회 얼거리를 보아도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빗물을 알뜰히 받아서 쓰기 앞서, 먼저 참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아니, 우리 스스로 먼저 참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빗물이야 마땅히 알뜰히 받아서 쓰고자 애쓰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4342.5.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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