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
폴 콜먼 지음, 마용운 옮김 / 그물코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82 ― ‘환경파괴’는 이명박 아닌 우리가 하고 있다
 : 폴 콜먼,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



- 책이름 :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
- 글쓴이 : 폴 콜먼
- 옮긴이 : 마용운
- 펴낸곳 : 그물코 (2008.8.20.)
- 책값 : 12000원



 (1) 도시에서 듣는 소리


.. 이제 몇 년이 지나면 밤이고 낮이고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소리만 계속 들릴 것이며, 이곳 주민들은 평화의 소리를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  (269쪽)


 지난달(또는 지난해. 2008년이니까) 첫머리에 옆지기 식구들이 사는 일산에 아기와 함께 찾아갔습니다. 며칠 머물며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나눈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만 하루이틀 길어지면서 ‘성탄절까지는 있어야지’가 되었고, ‘새해까지는 있어야지’가 되었으며, ‘아버님(장인 어른) 생일까지는 있어야지’가 되었습니다. 그렁저렁 지내는 사이 어느덧 한 달 가까이 머물게 되었고, 저 혼자 인천과 일산을 오가면서 집살림을 꾸리고 고양이한테 밥을 주고 겨울에 집이 얼지 않게 보일러 돌리고 하면서 바빴습니다. 그러던 어제, 옆지기 어머님이 차를 몰아 우리 식구를 인천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외곽순환도로와 고속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오는데, 창문을 닫아 놓고 있음에도 우리 차에서 나는 소리와 옆을 싱싱 달리는 차에서 나는 소리가 어우러져서 참 시끄러웠습니다. 차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소리를 질러야 했습니다.


..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도록 도와주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언론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  (208쪽)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에도 옆사람과 이야기하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차소리가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웃한 다른 손님들이 내는 소리가 몹시 크기 때문입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오면, 맞은편에서 건네는 말이 잘 안 들려서 애를 먹는데다가, 내 목소리를 들려주려고 소리를 높여야 하니 괴롭습니다. 자가용이든 전철이든 버스이든, 길에 나와서 무슨 탈거리에 몸을 싣고 움직이는 삶이 이어지다 보면, 저절로 우리 목소리는 커지고 짜증이 묻어날밖에 없다고 새삼 느낍니다. 가만히 있어도 귀가 막히는 느낌입니다.


..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어디쯤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지만, 어디를 가든지 이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흥미로운 정경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골목에서 길을 일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  (168쪽)


 아기를 안고 옆지기와 함께 골목마실을 할 때면, 도시에서 그나마 귀가 뚫리면서 시원합니다.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깊숙한 골목을 거닐 때에는 나즈막한 목소리로도 넉넉히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더러, 골목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살며시 들을 수 있습니다. 골목집 텔레비전 소리가 골목으로 흘러나오고,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보일러 움직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도마 소리와 물 끓는 소리가 들리며, 마루를 뛰는 아이들 소리가 들립니다. 많지 않아도 참새 소리를 듣고, 때에 따라서 어치와 박새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길고양이가 소리 없이 담과 지붕을 넘어다니며 먹이를 찾거나 우리와 마찬가지로 동네 마실을 하는 가벼운 소리를 느끼기도 합니다. 빨래줄에 걸린 채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 소리를 듣고, 할머니들 지팡이 짚고 걷는 소리를 듣습니다.


.. 2001년 11월 10일, 루마니아에서는 말이 끄는 수레가 주요한 교통수단인데, 나는 이것이 아주 정겹다. 사람들이 손을 흔들거나, 미소를 짓거나, 서로를 찬찬히 살펴볼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며 감탄할 수도 있다 ..  (154쪽)


 인천집으로 오니, 늘 듣던 전철소리를 집안에서 다시 듣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나마 겨울이라 문을 꼭 닫고 있어 조금은 작게 들립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아 텔레비전 소리가 없습니다. 라디오도 듣지 않아 라디오 소리도 없습니다. 오로지 아기 칭얼대는 소리, 아기 젖 빠는 소리, 아기 꽁꽁대는 소리와 어울리는 애 아빠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있습니다. 한 달 가까이 옆지기 식구들 집에서 지내다 보니, 아기를 그리워하게 된 아기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와 손전화로 아기한테 말 거는 소리가 있습니다. 아기 엄마는 아기 할머니와 손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기 아빠는 글쓴다며 언손을 비빕니다. 슥삭슥삭 손 비비는 소리가 우리 사는 작은 방 한 칸에 살며시 감돕니다.


.. 네덜란드는 벨기에보다 자전거도로가 더 많았고, 누구나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듯 보였다. 자전거도로가 형편없고, 차 운전자들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영국 런던이 이곳을 본받아 자전거도로를 확충했으면 좋겠다. 요즘 런던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대기오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마치 스타워즈 영화에 나오는 다스 베이더처럼 보인다. 이곳 네덜란드에서는 어린 아기 때 자전거 손잡이에 장착된 의자에 앉기 시작하여, 자라면서 자전거 뒷자리에 앉다가, 나중에는 작은 자전거를 타고 부모와 나란히 달린다. 네덜란드에서는 모든 것들이 아주 안전해 보였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또 자전거 타기는 환경보호에 아주 좋다 ..  (138쪽)


 아기는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는 혼자 뒤집기를 합니다. 눕히면 싫어하고 어깨죽지를 잡고 일으켜세워 주어야 좋아합니다. 그렇게 일으켜세워 주고 있으면, 지 혼자 방방 뜁니다. 아직 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뛰기를 좋아하다니. 하긴, 서지도 못하면서 앉지도 않고 서려고 하니까.

 이제 좀더 자라고 돌이 될 무렵이면, 또는 돌을 조금 지날 무렵이면, 우리 집 자전거에도 아기 태우는 바구니를 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잣거리 나들이를 다니건 골목마실을 하건, 자전거 바구니에 아기를 앉히고 자전거를 끌면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달리면, 아이는 바람소리를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고, 바람소리와 바람결을 느끼는 아이는 무슨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할까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지게 되면, 아이는 페달 밟는 소리와 바퀴 구르는 소리와 바큇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도 차츰차츰 익숙해지리라 생각합니다.


 (2) 우리 둘레에서 보는 모습


 서울 서교동에 자리하고 있던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 내내, 동네를 도는 경찰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서교동에 깃들어 지내는 ‘대통령 아들 집을 지키는’ 사람들이었고, 둘씩 짝을 지어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습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동교동 골목을 지날 때면 으레 경찰들을 마주했습니다. 동교동에는 ‘대통령 되신 분이 살던 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네 골목 안쪽에 자리한 우리 집 둘레로도 경찰들이 틈틈이 짝을 지어 지나다닙니다. 동네를 지켜 주고자 돌아다니는 일은 고마운 한편으로, 구멍가게에 간다든지 골목 사진 찍으러 돌아다닐 때마다 늘 마주쳐야 하니 퍽 껄끄럽습니다. 저이들은 ‘내가 구멍가게에 가는 회수마저 세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조용한 동네 골목에 이들이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거닐거나 담배를 태우며 서성거리면 거북스럽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여기에 살든 저기에 살든, 또 저곳으로 가든 그곳에 있든 경찰이며 군인이며 아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집회와 시위를 막아야 한다는 전경도 많지만, 휴가를 나오는 군인 또한 꽤나 많아요. 크고작은 도시며 시골이며 군부대 없는 데가 없고, 미군부대도 퍽 많이 남아 있는데다가 서울 한복판에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 청와대 가는 길목이나 광화문 미 대사관 둘레는 온통 경찰과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 대사관 앞을 굳이 지나갈 일이 없지만, 어쩌다가 걸어서 지나가야 할 때면 등골이 오싹하거나 소름이 돋습니다.

 여느 때에도 부러 군인옷을 입는 분들(거의 해병대)이 많은 가운데 의경은 둘씩 여럿씩 짝을 지어 길을 다 차지하고 서 있거나 막아서기 일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는 ‘민주주의’ 나라라고 이야기됩니다.


.. 대체 어디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큰 아파트 단지를 새로 만드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한 지역주민이 “돈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가까이에서 즐기기 위해 도시를 떠나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하고 설명했다. 이 얼마나 슬픈 아이러니인가! 사람들이 자연을 즐기며 살기 위해 산비탈이 사라졌고 숲을 파괴한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 수많은 건설공사는 일부 사람들만 부유하게 만든다. 때로는 이러한 건설사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를 살린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을 당선시키기도 한다 … 계룡산에 도로와 터널을 건설하려면 국민세금 수천억 원이 들어갈 것이다. 이동시간을 줄여서 더 오랜 시간 동안 일하기 위해 국민세금을 들여 도로를 만든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일만 좇는 삶은 어디로든 빨리 가기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  (264, 266쪽)


 프랑스 학자는 우리네 아파트 건설을 바라보면서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파트 문명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책이 먼저 나왔음직하지만, 우리네 지식인들 또한 아파트 문명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뿐 아니라 신나게 즐기고 있기에, 한국판 《아파트 공화국》이란 나오기 아주 힘듭니다. 더욱이 이 책을 칭찬하거나 높이 사는 분들 또한 아파트 삶에서 떠나거나 벗어나려 하지 않아요. 아니, 아파트 삶에서 벗어난다기보다, 아파트를 얻으면서 할 수 있는 돈굴리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한국 종교인은 《아파트 전도 이렇게 해 보자》나 《놀라운 아파트 전도 어프로치》 같은 책을 써냅니다. 사람들이 아파트에 많이 살게 되니 마땅히 아파트에 찾아가서 종교를 퍼뜨리는 데에 마음을 쏟겠지요. 참 대단하구나 싶으면서도, 무섭습니다. 참 끔찍하기도 하고요. 참 너무한다 싶으면서, 어리석구나 싶고, 우리는 스스로를 옭매는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면서 살밖에 없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 어디를 가든 아파트만 보이니, 프랑스 학자는 《아파트 공화국》을 쓰고, 종교인은 《아파트 전도 ……》를 쓰며, 이 나라 여느 아파트 주민은 아파트 값이 떨어지지 않고 꾸준히 올라 주기를 바라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이들 그림에는 아파트만 그려지고, 어른들이 아이한테 읽히거나 보이려고 쓰고 그리는 동화책과 그림책에도 아파트만 그려질 테지요.


.. 해안 대도시를 만나게 되면서 일본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은 다 사라졌다. 맨 처음으로 나타난 도시는 나고야였는데, 이곳은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 도요타 같은 큰 기업과 공장들이 많이 있었다. 조밀하게 서 있는 건물과 고속도로는 콘크리트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이곳 온도는 다른 곳보다 몇 도나 더 높은 것 같았다. 길가에는 나무나 그늘도 거의 없어서 걷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으며, 다시 걷기에 합류하게 된 고이치와 나는 열사병에 걸리게 되었다. 이제까지 세계 곳곳을 다녀 보았지만 열사병에 걸린 것은 처음이었는데 … 수많은 트럭과 자동차들이 다니는데, 크고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컴퓨터까지 장착한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에는 보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거의 없었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일본에서는 보행자보다 자동차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거대한 도시들은 지나칠 정도로 화려했으며, 오직 소비만이 삶의 방식이었다. 도쿄는 한마디로 ‘약에 취한 디즈니’ 같은 곳이었으며, 미래의 암울한 세계를 그린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  (228쪽)


 쌀을 씻어 담그고 마늘을 까며 아침을 마련하는데, 집 앞 길가에서 교통경찰이 주차단속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집 앞 길로 시내버스 하나가 지나가는데, 앞길은 두찻길입니다. 어느 한쪽이든 차가 서 있으면 버스가 지나가기 힘듭니다. 그런데 자동차 모는 이는 한쪽만 차를 세우지 않고 두 쪽 모두 세워 버립니다. 그러면 다른 차는 어찌 지나가라고 그럴까 싶지만, 차를 세워 놓고 볼일 보는 이들은 이런 데에는 마음쓰지 않습니다. 더구나 차만 못 지나가게 될 뿐 아니라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나쁜데 말입지요.

 그래도 이 길은 버스라도 다니니 교통경찰이 단속을 합니다. 골목길 안쪽에 세워 둔 차를 놓고 단속하는 일은 본 적이 없습니다. 시내에서도 찻길 한쪽에 세워진 차를 단속하는 일이 드물어요. 찻길을 닦은 까닭은 한쪽을 차대는 곳으로 쓸 생각이었기 때문이 아닐 텐데, 전국 어디이든 찻길 한쪽은 어김없이 차대는 곳이 되고 맙니다. 이에 따라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이나,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이나,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나, 전동휠체어 타는 사람이나, 모두 다니기에 안 좋습니다.

 온통 자동차이고, 온통 자동차와 얽힌 교통 흐름이며, 온통 자동차에 쏟아붓는 나라살림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판이면서도 고속도로에 들이붓는 정책과 돈과 품은 그치지 않습니다. 지구자원이 말라간다고 하면서도 고속도로 새로 닦는 일은 멈추지 않고, 외려 더 늘어납니다.


..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그곳 관리 한 사람이 “콜먼 씨, 지금 밖에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한가족이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을 만나려고 몇 달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들어오게 할까요?”라고 물어 보았다. 나는 물론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할머니에서 아들 손자에 이르는 한가족이 왔는데, 할머니는, “우리는 몇 달 전에 텔레비전에서 당신을 보고는 직접 만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가난한 농사꾼 가족이지만, 지금 이 땅에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지 잘 알아요. 내가 젊었을 때에는 신발은 없었지만 물은 풍부했어요. 하지만 이제 신발은 신을 수 있지만, 물을 긷기 위해 12킬로미터나 걸어가야 해요.”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 환경문제는 이들에게 생존의 문제였다 ..  (68∼69쪽)


 이제는 아기를 낳아 기르니 똑똑히 알고 있는데, 지난날 머리로만 ‘천기저귀 쓰기와 종이기저귀 쓰기가 어떻게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가’를 따졌을 때에는, 천기저귀를 쓰면 물을 아주 많이 쓰게 되는 줄로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종이기저귀는 ‘빨래할 일’이 없으니 물을 안 쓰게 된다는 대꾸에 딱히 맞서지 못했어요. 그러나 손수 천기저귀 빨래를 하노라면, 기저귀 한 장을 빠는 데에 손바닥 한 뼘 길이가 되는 작은 대야에 반쯤 담는 물이면 넉넉합니다. 종이기저귀를 쓰자면 공장을 돌려야 하고 비닐로 물건을 싸야 하는데다가 마트에 쟁여 놓으며 전기불을 가득 켜 놓아야 합니다. 종이기저귀 사오는 이들은 자가용을 끌고 마트에 가서 수레에 담아서 산 다음 카드로 긁어서 사고 다시 자가용을 끌고 집으로 가지고 옵니다. 다 쓴 종이기저귀는 쓰레기봉투에 담는데, 쓰레기봉투도 종이기저귀와 똑같은 흐름을 거쳐서 만든 다음 놓입니다. 더욱이 쓰레기봉투에 담긴 종이기저귀는 청소부가 하나하나 들어서 치워야 하고 쓰레기묻는 데로 가져가서 묻습니다.

 이런 흐름을 살필 때, 천기저귀 한 장에 들어가는 물과 자원 씀씀이하고, 종이기저귀 한 장에 들어가는 물과 자원 씀씀이를 견주면 어찌 될까요. 우리가 마트에서 사들이는 값은 ‘꽤 싼 편’일지 모르지만, 이 싼값 뒤에 숨은 엄청나게 큰 돈과 품과 자원 씀씀이가 있음을 우리들 모두 잊고 있습니다.


..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던 기회는 어느 초등학교에서 2백 여 명의 학생들 앞에서였다. 이야기가 끝나고 질문 시간에 어느 어린 남자아이가 손을 들더니 “배가 고픈 적은 없었나요?” 하고 물어 보았다. 나는 “물론 있지”라고 대답하며 루이지애나에서 하마터면 뱀을 밟을 뻔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가 그 뱀을 어떻게 잡아먹을까 궁리하는 중에 뱀이 도망가 버린 이야기를 하자 아이들의 눈이 접시만큼 커졌다. 학교를 떠날 때 교장 선생님이 모자를 주셨는데, 그 안에는 동전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당신이 다시는 굶지 말라고 아이들이 점심값을 모아 주었소.” 나는 멕시코에서 한 번도 배를 곯은 적이 없었다. 멋진 집과 많은 봉급, 예금통장, 주식과 채권을 가진 미국사람들이 더 부유할까? 아니면 소박하지만 활력과 인정이 넘치는 멕시코사람들이 더 부유한 것일까? ..  (52쪽)


 (3) 걸으면서 고향과 세상을 지키려는 사람


 영국사람 폴 콜먼은 두 다리로 지구를 걷고 있습니다.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을 지난 2008년 8월에 한국에서 낼 때까지 자그마치 서른아홉 나라 사만칠천 킬로미터를 두 다리로 걸었습니다. 이 책이 나온 뒤 여러 달이 지났으니, 폴 콜먼 님은 틀림없이 또 어느 나라에선가 ‘평화사랑’과 ‘환경지키기’를 온몸으로 보여주고자 뚜벅뚜벅 걷고 있으리라 봅니다. 당신 스스로 늘 느낀다고 하듯, 평화를 사랑하는 일은 말로 할 수 없으며, 환경을 지키는 일 또한 입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온몸으로 해야 합니다. 온삶을 바쳐서 이루어야 합니다.

 밥 한 그릇에 평화와 우주가 담겼으면, 어느 한때 한 번 비우는 밥그릇만 헤아릴 일이 아니라, 날마다 비우는 밥그릇을 늘 헤아려야 합니다. 밥그릇을 받을 때에도 헤아릴 평화와 우주이지만, 밥그릇으로 얻은 기운으로 살아가는 여느 때에도 한결같이 헤아릴 평화와 우주예요. 그러니, 평화사랑이라면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고이 잇는 일이 됩니다. 환경지키기도 이와 함께 온삶에 걸쳐서 하게 됩니다.

 ‘지구환경의 날’ 하루에만 할 수 없는 환경지키기입니다. 환경부에서 해 줄 환경지키기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환경 이야기를 교과서로 배운다고 해서 알 수 있는 환경지키기가 아닙니다. 새벽과 밤에 청소부가 길거리 쓰레기를 치운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환경지키기입니다. 환경부담금을 내면 환경지키기가 이루어질까요. 탄소배출을 꾸준히 줄이는 일은 환경지키기와 얼마나 이어져 있을까요. 맥주 한 병과 볼펜 한 자루와 버스표 한 장에도 간접세금이 붙어 있듯, 이런 물건과 차편 하나에도 생태환경이 얽혀 있습니다. 똑같은 길을 가더라도 걸어갈 때와 자전거를 타고 갈 때와 자가용을 타고 갈 때와 버스나 전철을 타고 갈 때가 사뭇 다릅니다. 똑같은 밥을 먹더라도 손수 짓거나 길러 먹을 때와 생협에서 사다 먹을 때와 재래시장에서 사다 먹을 때와 마트에서 사다 먹을 때가 크게 다릅니다.


.. 한국은 생물다양성협약과 습지보호를 위한 람사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인데도 이토록 중요한 습지이자 야생동식물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2008년 람사협약 당사국총회를 개최하기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도대체 사람들이 어떻게 이러한 정부를 선택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 내가 전 세계 곳곳을 다녀 보았지만,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이토록 많은 건설 공사가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 과거에는 신성하게 여겨지던 전국의 산들이 커다란 굴착기와 폭약으로 마구 훼손되고 있었다 … 4번 국도를 따라 대구로 들어가는 길은 한국에서 걸은 최악의 길이었다. 차들이 하도 많이 다녀 소음이 어찌나 심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려면 고함을 질러야 할 정도였다 … 수천억 원이 들어갈 공사에 몇 사람은 즐거워하겠지만, 과연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15분 빨리 가려고 대구 시민들의 안식처이자 자연환경의 보고를 파괴해도 좋은 것일까? … 부산에도 커다란 터널 공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경부고속철도 터널이 관통하게 될 금정산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도 아름다운 산들을 파헤치고 터널을 뚫는 것이 한국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인 것 같았다 ..  (254, 266, 269, 270쪽)


 통신사에서 공짜 전화기를 준다 한들, 이 전화기가 참말 ‘공짜’일까 생각할 노릇입니다. 우리 주머니에서 곧바로 나가는 돈이 없다고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마실 물과 공기는 지저분해집니다. 우리가 디디는 땅은 거칠고 메말라 갑니다.

 어느 텔레비전 풀그림에서 ‘오렌지를 한 방울도 짜넣지 않고 색소와 화학조합물만으로도 오렌지쥬스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이런 풀그림을 보는 우리들 삶이 달라지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미국에서 교통경찰이 차 짐칸에 콜라를 상자째 넣고 다니면서 사고 현장에 흐르는 피를 말끔히 닦아내고 있음을 아는 이들이 많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콜라를 사다 마시고 있는데, 우리들 삶이 어느 만큼 거듭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달콤하고 살벌한 음식의 역사》 같은 책이 곧잘 나오지만, 햄버거집이나 피자집이 문닫는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되레 나날이 아이들은 햄버거와 피자를 더 좋아하고 즐긴다는 소리만 듣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아이들이 햄버거와 피자를 좋아하기 앞서, 어른들부터 햄버거와 피자를 즐겨먹고 있는걸요.

 청소년 범죄가 늘어나는 까닭은 어른 범죄가 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입시지옥이 풀리지 않는 까닭은 어른들이 가방끈에 따라 사람을 푸대접하거나 업신여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얼굴과 몸매에 온마음을 쏟는 까닭은 어른들이 사람을 얼굴과 몸매에 따라 재며 값을 매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나어린 주제에 돈을 밝히는 까닭은 어른들이 허구헌날 돈타령만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며 학교에서며 돌림뱅이 짓을 하는 까닭은 어른들이 사람을 사람 그대로 마주하지 않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눌 뿐더러 이주노동자를 살빛에 따라 갈라 놓는데다가 학력과 갖은 연줄에 따라서 계급을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한국을 걸으며 아주 인상적인 것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곳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망치는 도로와 아파트를 건설하는 모습은 보기에 흉했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한국보다 몇 배나 큰 나라만큼 도로가 많이 건설되고 있었다 …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파괴적인 일에 대해 책임져야 할 주체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다. 우리의 정부와 소비 형태를 선택한 것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일 당장 석유가 고갈된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 그렇다면 한국이나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이 왜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않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도록 정부와 산업계에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출근시간을 줄이고 제품을 수송하며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더 많은 도로를 건설하라고 요구한다. 결국 우리는 더 많은 차를 구입하고 교통량은 더욱 증가하게 된다. 이런 소비 행태를 통해 우리는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등을 끄지 않은 채 놔두거나, 모든 길거리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화려하게 장식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력회사는 더 많은 댐과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  (282∼283쪽)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을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책에 담긴 이야기는 더없이 훌륭하고 아름답지만, 이렇게 훌륭한 이야기를 훌륭한 그대로 받아들일 가슴이 이 땅에 얼마나 있을까 하고.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름다운 그대로 받아먹을 마음자리가 이 땅에 얼마나 있겠는가 하고. 죽는 날까지 아무 걱정 없이 탱자탱자 놀면서 살 수 있던 폴 콜먼이 모든 돈과 놀음놀이를 벗어던지고, 베낭에 나무 한 그루 꽂고는 뚜벅뚜벅 걷는 까닭을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곱씹을 넋이 이 땅에 얼마나 있는가 하고. (4342.1.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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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 지구온난화 시대에 도시와 시민이 해야 할 일
정혜진 지음 / 녹색평론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도시에서 착하게 사는 길을 어떻게 찾을까
 [잠깐 읽기 16] 정혜진,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 책이름 :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 글쓴이 : 정혜진
- 펴낸곳 : 녹색평론사 (2007.11.7.)
- 책값 : 1만 원



 (1) 내가 찾는 길


 옆지기가 스탠 냄비를 장만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노래하기에, 개수대 밑에 쟁여 놓기만 하고 안 쓰던 스탠 냄비를 꺼냅니다. 혼자 살던 예닐곱 해 앞서, 옛동무와 어머니한테서 받은 스탠 냄비인데, 혼자 먹고살면서 쓰기에는 크고 무겁다고 느껴서 고이 모셔 두기만 하고 있었는데, 이 냄비들을 꺼내니 옆지기가 깜짝 놀랍니다. 왜 이 좋은 스탠 냄비를 여태 쓰지 않고 그렇게 두었느냐고.

 뒷통수를 긁적입니다. 어떤 냄비를 써야 하는가를 잘 몰랐고, 냄비 하나가 우리 밥차림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를 제대로 살피지 않아 왔습니다.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서 모르기도 했으나, 저 스스로 알아보려고 하지 못했습니다. 선물해 주는 냄비는 으레 값비싼 녀석이었습니다. 저는 늘 값싼 냄비를 쓰고 있었습니다. 혼자 살면서 저 비싼 녀석을 쓸 까닭이 없으리라 생각했고, 또 아깝다고 여겼으며, 선물 받은 모양새 그대로 모셔 두기만 했습니다.

 그동안 쓰던 양은 냄비며 법랑 발린 지짐판이며 모두 개수대 밑으로 들어가고, 이제까지 개수대 밑에서 잠자던 네다섯 개나 되는 스탠 냄비가 밖으로 나옵니다. 전기밥솥도 그만 쓰기로 하고 냄비로 밥을 하고, 기름을 두르지 않고 달걀을 부치고 볶음밥을 합니다. 물을 안 넣고 감자와 고구마를 찝니다. 찐빵을 찌거나 구을 때에도 물을 붓지 않고 기름을 두르지 않습니다. 찌개를 끓일 때 스탠 냄비는 훨씬 빨리 달궈지고 더욱 오래 따뜻함이 이어갑니다. 끼니에 맞춤하게 짓는 밥은 여태까지 먹던 밥맛과는 견줄 수 없이 맛있습니다.


..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거나 절약하는 행위는 지역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에너지를 덜 쓰려면 외곽에 있는 쇼핑몰보다 동네 슈퍼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혼자 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이웃 혹은 직장 동료와 카풀을 하면 에너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쓰게 된다. 좀더 걷고 자동차를 덜 쓰면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고 지역사회 전체적으로는 공기가 더 맑아지며 교통 혼잡 비용이 줄어든다. 절약해서 남는 돈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면 지역사회 전체 문화 수준도 올라간다 … 거대 기업이 들어와서 단지 사업의 목적만을 위해 옥수수를 싹쓸이할 때에는 농산물값 폭등까지 이어지지만, 도시 공동체 사람들의 삶의 양식도 함께 바뀔 때에는 노는 땅이 에너지 작물을 키우는 땅이 되고, 깨끗한 기름을 쓸 수 있고, 폐기름을 줄이게 되며, 공기도 깨끗해진다는 것이다 ..  (6, 62쪽)


 곰곰이 돌아봅니다. 내가 바꾸지 못한 삶은 무엇이고 내가 바꾼 삶은 무엇인지. 나는 어디에 마음을 기울이고 어디에는 마음을 못 기울이고 있는지. 내 스스로 바꾸지 못하겠다며 손을 흔드는 삶은 무엇이고, 미처 깨닫지 못할 뿐 바꾸려 한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삶은 무엇인지.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라는 책에 ‘자동차 별거기’라고 해서 나이먹은 분으로서 자동차를 멀리하고 자전거를 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자전거 타기만큼은 좀더 찬찬히 생각하면서 이 하나는 바꾸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던 때, 신문배달로 먹고살며 짐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긴 했으나, 서울 시내 헌책방을 찾아나설 때에는 전철을 탔습니다. 이문동에서 안암동까지는 자전거로 갔어도, 혜화동이나 종로부터는 전철로 움직였습니다. 아직 서울이 낯설기만 한 시골도시 사람은 짐자전거로 멀다고 느껴지는 길을 선뜻 나서지 못했습니다. 다섯 해쯤 서울에서 지내다가 신문배달을 그만두고 출판사로 자리를 옮기니 자전거하고 멀어집니다. 집과 일터가 퍽 멀기도 했지만(동대문구 이문동에서 강서구 방화동) 자전거로 오가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신문배달 하던 때에는 달삯이 아주 적기는 했어도 내 자전거가 있었기에 따로 자전거 장만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니 내 자전거는 없으나 일삯은 예전과 견주면 일고여덟 갑절이라서, 살림돈 십만 얼마와 책값과 필름값 삼십만 원을 빼고 모두 은행에 맡겼고, 자전거 없이 보내던 삶은 오래지 않아 끝내고 처음으로 제 돈을 주고 제 자전거를 장만합니다.

 자전거를 장만하면서 서울시내 꼼꼼길그림도 함께 장만하면서 길을 눈에 익힙니다. 이제는 전철이 아닌 자전거를 몰며 헌책방 나들이를 다닙니다. 종로구 평동에서 신촌으로 오가는 길은, 전철은 빙 돌아서 가는데다가 버스 타는 곳은 집에서 너무 멀어서 으레 사십 분이나 걸리곤 했는데, 자전거로 움직이니 짧으면 8분, 길어도 12분이면 넉넉했습니다. 이제, 웬만한 곳은 모두 자전거로 움직이는 버릇이 붙고, 대중교통인 버스나 전철마저 가까이하고픈 마음이 조금씩 사라집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인천에서도, 옆지기와 함께 돌아다닐 일이 아니라면 혼자서 자전거를 몰고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인천과 서울을 오갈 때에도 자전거를 타면 전철로 갈 때와 거의 같거나 좀더 빠릅니다(동인천에서 마포큰다리까지 50분, 광화문까지는 1시간 2분). 다만, 자전거를 타면 책을 못 읽을 뿐입니다.

 그래, 이 하나, 자전거 타기만큼은 아주 잘 바꾸었다고 느낍니다. 모르는 일인데, 신문배달을 자전거로 했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가 많이 익숙해졌고, 신문배달 짐자전거로 웬만한 오르내리막을 두루 꿰다 보니 자전거로 서울 시내 돌아다니면서 아무런 어려움을 못 느끼지 않았나 싶습니다.


.. ‘저탄소 도시’나 ‘친환경 에너지 도시’처럼 온실가스 배출 감축,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 확대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 지구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도시민은 지구 표면의 2%에서 자원의 75%를 소비한다 … 어떤 지자체에서는 화석연료의 안락에 길든 도시 생활을 바꾸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설치에만 열을 올린다. 그런 단체장은 진정한 의미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들은 아직도 ‘눈에 보이는 한 건’을 원하고 있다 ..  (34∼35, 58쪽)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자전거 다음으로는 옷이 있을까. 신문배달 하던 때에는 늘 헌옷 모으는 통에서 옷을 주워서 입었지(예전에는 옷 모으는 통이 열려 있었습니다). 또, 가까운 대학교에서 행사를 할 때마다 나눠 주는 옷을 슬쩍 끼어서 얻어입기도 하고(우리 신문 독자인 학생들이니까). 형이 안 입는 옷을 치수가 많이 크지만 고맙게 물려입기도 하고. 길에서 2000원에 파는 반바지 몇 벌 사다가 입고, 청바지 두어 벌은 길에서 5000원에 파는 녀석으로 장만했고. 출판사 사장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 당신 아들내미가 안 입는 옷을 한 보따리 안겨 주기도 했고.

 그 다음으로는 가게에서 주는 비닐봉지를 안 받고 천가방을 챙기며 다니는 버릇. 한 번 쓰고 버리는 나무젓가락을 새것으로 안 쓰고, 다른 이가 쓰고 버린 것을 주워서 씻어 말린 다음 가방에 챙겨넣고 다니면서 쓰는 버릇. 길바닥에 널부러진 종이조각이나 광고명함 주워서 책갈피로 쓰는 버릇. 둘레에 많이 버려지는 이면지를 내 공책이나 편지지로 삼는 버릇. 그리고 ……, 음, 세탁기 안 쓰고 손빨래 하기? 텔레비전 안 모시고 살기? 운전면허증을 아예 안 따기? 값싸고 질긴 고무신 신고 다니기? 음식물쓰레기가 아예 나오지 않게끔 포도알 포도껍질 사과알 사과속까지 냠냠짭짭 먹으면서 먹을거리 다스리기? 손전화기는 마르고 닳도록 쓰고 쓰다가 망가져서 더는 못 쓰게 되어서야 바꾸어 주기? 밑 닦을 때 휴지는 한 칸이나 두 칸만 쓰기?


 .. 차를 타고 달릴 땐 사람들이 아닌 차만 보였던 걸까. 새로울 것도 없는 사람 사는 풍경이 마치 신기한 이국 풍경인 듯, 자가용을 타지 않는 나는 그동안 내 눈에 보이지 않던 풍경을 새삼스레 즐겼다 … 질적으로 검소한 것은 소비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지 않고 필요한 기술이나 서비스에 돈을 쓰는 것을 뜻한다. 무분별한 소비로 괜히 쓰레기만 만들지 말고, 창의적인 기술과 서비스에 제값을 지불하자는 것이다 ..  (38, 65쪽)


 다음으로, 무엇을 쓰고 사는가 손꼽아 봅니다. 무엇보다 첫째로는 책. 둘째로는 필름. 셋째로는 술. 넷째로는 ……, 넷째, 넷째가 있나. 모르겠네. 이밖에 돈 나가는 데라면 집삯과 전기삯과 물삯 따위인데. 몇 군데 시민단체에 보내는 돈 얼마, 길에서 만나는 동냥꾼한테 건네는 돈 얼마, 성당에 내는 돈 얼마.

 그렇군. 쓸 데가 많지 않으니 처음부터 많이 벌 생각도 안 하는 듯하군.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에는 비앙키 자전거 하나 갖고픈 꿈을 키웠는데, 이제 이 꿈은 이루지 못할 물거품이나 뜬구름이지. 아이를 키우려면 돈 부지런히 벌어야 한다지만,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을 뿐, 아이를 어디 학원에 넣을 일 없지 아이를 연예인처럼 예쁘장하게 꾸밀 일 없지 하니, 딱히 무엇을 더 쓰거나 누려야 할까 싶고.

 그저 재개발이니 재생사업이니 하면서, 우리처럼 밑돈 없는 사람이 겨우 깃들어 사는 골목집을 밀어내는 정부정책이나 없으면 더 바랄 일이 없습니다.


.. 인도는 분명히 차를 위한 공간이 아닌데도 도시 곳곳의 인도들이 차들로 점령당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신경질만 내고 나면 그만이다. 자전거에서 내려 잠시 차도로 내려갔다가 다시 인도로 올라가면 되니까. 그런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전동휠체어를 모는 노인들, 그리고 큰 유모차를 미는 엄마들은 … 걷다가 인도에 주차된 차들을 만나면 자전거를 탈 때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도대체 차를 이곳에 주차한 이 사람은 예의라는 게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일까 … 차를 몰든 안 몰든 똑같이 낸 세금으로 닦아 놓은 도로를 그들은 질주하면서, 역시 세금으로 만든 인도까지 그들이 점령한다. 똑같이 세금 내면서 차를 몰지 않는 이들은 도로에 세금 퍼주고, 차량으로 인한 대기오염은 공유하고, 인도까지 운전자들에게 점령당한다. 그런데도 인도를 점령한 운전자들은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  (148∼149쪽)


 늘 골목마실을 하면서, 틈틈이 동네 이웃을 만나면서, 꾸준히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맛보는 기쁨과 즐거움과 보람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느낍니다. 돈을 많이 움켜쥐고 있다고 해서 더 많이 누릴 수 있지 않다고 느낍니다. 5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든 50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든 500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든, 자전거 타는 기쁨은 매한가지입니다. 보증금 없이 10만원짜리 달삯집에 살든, 보증금 천만 원에 달삯 없는 집에 살든, 싯가 이십억짜리 아파트에 살든, 또 몇 억에 이르는 아파트에 살든, 사람 사는 모양새는 다를 바 없을 뿐더러 사람 사는 즐거움이 벌어지지도 않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니 자꾸만 남 앞에서 우쭐거리고픈 옷을 입고 차를 몰고 집을 얻지 않으랴 싶습니다. 마음이 허거프니 자꾸자꾸 남 위에 올라서면서 이웃나눔과 어깨동무하고는 멀어지면서 살지 않으랴 싶습니다. 마음이 메마르니 숱한 물질문명을 누리는 일이 세상 사는 기쁨인 줄 잘못 알면서, 자기 스스로 자기 몸마저도 망가뜨리지 않으랴 싶어요.

 자가용 끌고 출퇴근하면서 ‘운동이 모자라’ 헬스클럽에 가는 일은 얼마나 자기 삶을 좀먹는 일인가요. 몸 갉아먹으면서 한 해에 억대 연봉을 받는 일을 한다지만, 이렇게 일하면서 갉아먹힌 몸을 추스르느라 적잖은 돈을 보양식에 쓰고 어디 물 좋고 공기 좋은데 놀러가서 쉬는데 쓰고 있으니, 고작 며칠은 쉴는지 모르지만 정작 훨씬 긴 자기 삶은 쉼없이 휘몰아치며 두 손에는 아무것도 안 남고 말지 않습니까.

 더 빨리든, 더 많이든, 더 크게든, 누군가 더 천천히 가야 하기에, 또 더 적게 가져야 하기에, 또 더 작게 웅크려들어야 하기에 누릴 수 있습니다. 이웃을 눌러야 더 빨라집니다. 동무를 꺾어야 더 많아집니다. 살붙이를 멀리하거나 등쳐야 더 커집니다. 이와 같은 삶이, 이처럼 무언가 누리는 듯 보이는 삶이, 참으로 우리한테 도움이 되거나 웃음꽃이 피어나게 해 주고 있는지, 차분하게 돌아보거나 곱씹을 수 있어야지 싶은데.


.. 술값 몇 만 원 아끼는 것과 전기요금 몇 만 원 아끼는 것은 간접비용의 차원이 다르다. 술값에는 간접비용이 별로 없다. 과음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전기요금의 뒤에는 원자력 발전소 뒤치다꺼리 비용, 송배전 인프라 비용 등이 있다. 숨어 있는 비용을 계산한다면 술값 몇 만 원과 전기요금 몇 만 원은 결코 같은 몇 만 원이 아니다. 그런데 당신과 다른 단순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몇 만 원을 같은 금액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두뇌회전을 즐기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 당신의 계산이 필요하다 ..  (212∼213쪽)


 (2) 스스로 길찾기를 막고 만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몇 해 앞서 《태양도시》라는 책을 펴낸 정혜진 님은 대구에 있는 〈영남일보〉 기자입니다. 우리 나라 기자가 보여주는 여느 모습을 돌아볼 때, 정혜진 님처럼 생태와 환경에 눈길을 깊이 두면서 ‘우리가 지금 삶터에서 좀더 아름다운 쪽으로 나아지는 길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몹시 남다르면서 훌륭하다고 느껴집니다.

 여러 달 앞서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사기는, 나오자마자 책방에 달려가서 샀는데, 책을 사서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이 무거웠습니다. 무거움은 자꾸만 더해 갔고, 나중에는 응어리까지 맺히면서 풀리지 않습니다.

 책을 다 읽고 책꽂이 한쪽에 꽂아 놓습니다. 여러 달 잊고 지냅니다. 그리고 다시 끄집어내어 펼칩니다. 정혜진 님 책을 두 권째 읽는 동안, 어딘가 아쉽다는, 아니 어딘가 가슴으로 와닿지 않는다는, 어쩌면 귀로 듣고 눈으로 읽는 이야기로는 반갑거나 놀라울는지 모르나, 정작 우리 스스로 어떻게 길찾기를 하면서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르게 꾸려가는 삶을 일구면 좋은가 하는 생각을 얻기가 어려웠는데, 그 실마리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펼칩니다.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알아야 한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과다한 온실가스 배출이다. 이건 너무 많은 안락을 추구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문제의 원인을 부시나 다른 사람에게 돌릴 일이 아니다. 당신이 편하게 살아온 만큼 당신도 책임이 있다. 그러니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성’이 출발이다 ..  (199쪽)


 정혜진 님 말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한테 ‘지구온난화’는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는 왜 생겨났을까요. ‘온실가스 배출’ 때문일까요? 그러면 온실가스 배출이란 무엇일까요? “너무 많은 안락을 추구하다” 보니까 생겨났다고 할 만할까요? 그러면 우리가 여태까지 누려온 “너무 많은 안락”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안락’을 누리면서도 조금도 ‘안락을 누린다’고는 여기지 않으며 ‘더 많은 안락’을 좇게끔 길들여져 있을까요? 왜 우리 사회와 교육과 문화와 정치와 경제 모두 ‘더 많은 안락’으로만 나아가고 있을까요? 정혜진 님이 몸담은 언론사 〈영남일보〉는, 우리 사회가 어떠한 쪽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기사를 실어서 대구 사람들한테 읽히고 있을까요? 정치가 어디로 나아가도록, 경제가 어떻게 꾸려지도록, 문화가 어떻게 뿌리내리도록, 교육이 어떻게 펼쳐지도록 바라면서 기사를 풀어내고 있을까요?

 우리들은 틀림없이 ‘뉘우쳐야(반성)’ 합니다. 지금처럼 꾸리는 삶이 얼마나 우리 스스로를 좀먹는지 뉘우쳐야 합니다. 지구를 무너뜨리거나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어서 뉘우친다기보다, 무엇보다 내 삶을 망가뜨리고 내 삶터를 엉망으로 흔들며 내 몸과 마음을 내 손으로 갉아먹고 있음을 못 느끼며 살고 있는 지금 흐름을 뉘우쳐야 합니다.


..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지만,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없어서 안 쓰고, 낭비할 수 없어 아끼던 그런 시대는 지났다. 기후변화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 우리의 딜레마일지도 모른다. 몇몇 훌륭한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시의 풍요를 ‘건전하게’ 누리는 수준일 것이다 ..  (마무리글 / 229쪽)


 그러나 뉘우침은 첫걸음이 아니지만, 마지막 걸음도 아닙니다. 뉘우침을 넘어서 ‘삶을 두루 돌아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눈’을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뉘우침’을 한다면 마땅히 ‘지금 누리는 것 가운데 꽤 많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회개와 고해성사는 있는데 달라지는 삶이 없다’면, 이러한 회개와 고해성사는 거짓 회개와 껍데기 고해성사일 뿐입니다. 회개를 못하고 고해성사 또한 할 용기가 없을지라도, 다문 한 가지나마 자기 삶을 바꾸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됩니다. 하루에 한 가지가 어려우면 한 달에 한 가지, 한 달에 한 가지조차 어려우면 한 해에 한 가지씩 자기 삶을 바꾸어 나가면 됩니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 우리 삶에서 ‘놓아도 되는 대목’은 놓으면서 바꾸어야 비로소, 어떤 정책이나 대책이나 대안을 나라나 지자체에서 세우지 않아도 저절로 서민 스스로 ‘문화도시’도 이루고 ‘착한 도시’도 이루며 ‘깨끗한 도시’도 이루는 가운데 ‘살기 좋은 도시’가 마련됩니다.

 그런데 정혜진 님 책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할 수 있는 길찾기를 처음부터 금을 그어 놓고서 “아끼는 삶 = 과거로 돌아가는 것”인 듯 풀이를 내려 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곳곳에 밑줄을 긋기는 하지만 선뜻 가슴으로 스며들지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건전하게’ 누리는 삶이란 어떤 삶인지 또렷하게 밝혀 보이지 않고 ‘건전’이라는 낱말을 섣불리 쓰고 마니까, 입에서 까끌까끌하게 맴돌기만 할 뿐, 제 몸으로 스며들지는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는 “예전 시대로 돌아갈” 까닭이 없습니다만, “예전 시대에서 훌륭한 대목은 기꺼이 배워야” 합니다. 예전 시대에서 잘하던 대목, 예전 시대에서 놀랍게 이루어 낸 대목은 앞으로도 고개숙여 배워야 합니다. 새로운 대체에너지만이, 새로운 대안운동만이, 새로운 기술개발과 유럽 선진국 사례 모으기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 아닙니다. 나중에 세 번째 책을 엮어낼 꿈을 품으신다면, 모쪼록, 앞선 두 책을 넘어서 주기를, 아니 앞선 두 책을 정혜진 님 스스로 밑줄을 그어 가면서 물음표를 찍고 찬찬히 읽어 보아 주기를 바랍니다. (4341.10.2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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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Green 리빙그린 - 먹을거리와 에너지 위기 시대에 살아남는 친환경 생활 지침
그레그 혼 지음, 조원범.조향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알려고도 안 하니 세상이 안 바뀝니다
 [잠깐 읽기 13] 그레그 혼, 《Living Green》



- 책이름 : Living Green
- 글쓴이 : 그레그 혼
- 옮긴이 : 조원범, 조향
- 펴낸곳 : 사이언스북스 (2008.8.11.)
- 책값 : 11000원


 (1) 지구 환경을 무너뜨리는 사람은 누구


.. 매일 50∼100종의 야생 동식물이 인간들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 세계 인구의 5퍼센트에 불과한 미국인이 세계 자원의 25퍼센트를 소비한다. 소비된 자원의 대부분은 결국 쓰레기 매립장에 폐기물로 버려지거나 태워진 후 대기 중으로 날아가 우리의 건강과 환경을 장기간에 걸쳐 황폐하게 한다 … 현대적인 생활 방식에 따라 사는 평균적인 미국인 한 사람은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스를 한 해 평균 24톤 이상 배출하고 있다 ..  (29쪽)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쉰에서 백 가지에 이르는 들풀과 들짐승이 죽어 사라지는 까닭은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미국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사람처럼 살려는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 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Living Green》에 나오듯 날마다 백 가지에 이르는 들풀과 들짐승이 죽어서 사라지는데(예전에는 훨씬 많이 사라졌으나 요즈음은 ‘사라질 만한 생물종이 벌써 많이 사라졌’기에 이만한 숫자로 줄어들었습니다), 세계 인구가 100이라 한다면 미국사람은 5퍼센트 숫자로 25퍼센트라는 숫자나 되는 자원을 쓰고 있으니,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여덟 곱절이 넘는 자원’을 쓰는 셈이며, 한국이나 일본이나 유럽 같은 ‘과소비’ 나라를 빼고서 헤아린다면, 이른바 ‘제3세계’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하루에 한 가지 들풀이나 들짐승조차 죽이지 않으나, 미국사람은 날마다 쉰 가지쯤 죽이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사람들 자원 소비량을 따져 보아야 할 텐데, 우리들 한국사람도 날마다 열 가지쯤 되는 들풀과 들짐승을 죽이고 있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인간들 때문에 야생 동식물이 사라진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미국사람들 때문에, 또 미국사람과 같은 살림살이를 꾸리는 한국사람들 때문에 야생 동식물이 사라진다’고 말해야 올바르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런 숫자나 부피를 살갗으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도시 소비자’는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가용을 몰면서 일터를 오가거나 볼일을 보는 동안 꽃 하나가 죽고 나무 하나가 시들며 들짐승 한 마리가 보금자리를 빼앗깁니다. 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 그예 저승으로 가고 맙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 조금 적게 죽인다고 하지만, ‘죽이는 꼴’은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해도,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일터에서 일하고, 정 어쩔 수 없으면 일터와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겨야 합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있는 논밭을 일구며 살듯, 도시에서도 우리들은 대중교통을 타고 오갈 거리에 있는 일터가 아니라, 집 가까운 곳 일터를 얻거나, 일터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애먼 기름을 먹는 교통 흐름을 줄이고, 사람(바로 우리)들 때문에 애꿎게 죽어 나가는 풀과 짐승 보금자리를 지킵니다(말은 참 쉽다고 하지만, 더 많은 벌이가 아닌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벌이가 좀 적더라도 생각과 매무새를 고친다면, 더 나아진 삶에서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도 한결 넉넉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제 스스로 이렇게 살아가면서, 사람다운 길이 무엇인가 하고 깨닫고 있습니다).


.. 재품에 들어가는 재료를 따져 볼 때 즉석 식품은 값이 턱없이 비싸다. 또한 동일한 재료를 사용해 건강에 좋은 다양한 음식을 직접 만드는 데 그리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  (67쪽)


 저는 손빨래를 하고, 손수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면서 찬거리를 마련하고, 손수 다듬어서, 손수 밥을 하고 손수 밥상을 차리고 손수 설거지를 합니다. 그제 저잣거리에서 버섯 한 근을 오천 원어치 산 다음 미역국을 끓이는 데에 반을 넣고, 감자와 빨간무와 양파를 썰어서 함께 무치는 데에 반을 넣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이틀치 네 끼니를 먹을 수 있더군요. 두 식구가. 모두 여덟 끼니치가 나온 셈이니 한 끼마다 버섯을 배불리 먹어도 한 사람 앞에 600원 조금 더 치른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버섯밥집에 가서 버섯찌개를 시켜서 먹었다면, 두 사람 한 끼니에 만 원을 훌쩍 넘었을 터이며, 찌개에 버섯보다 버섯 아닌 푸성귀가 훨씬 많이 들어 있었을 겝니다. 더욱이 갖가지 화학조미료를 잔뜩 뿌렸을 터이니 우리 몸에 좋을 턱이 없습니다.

 버섯을 다루는 밥집까지 찾아가는 데에 드는 시간, 밥이 나오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 밥을 먹으며 치르는 돈,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모두 헤아려 보면, 제 두 발로 저잣거리를 찾아가서 버섯을 산 뒤 집에 와서 손질해서 미역국을 끓이고 무침을 마련하는 데 들어간 품이나 시간이 훨씬 적습니다(‘탄소배출량’까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밥집에 가서 밥을 시켜서 먹기 때문에 밥집에서 따로 전기를 돌리고 간판불을 켜고 물을 쓰고 직원을 쓰며 가게를 꾸미고 하는 것들도 따로 돈이 들어간 일이라서, 돈 몇 푼 치르고 밥을 사먹은 셈이라고만 쉬 넘길 수 없습니다). 몸에는 더욱 좋고 맛은 훨씬 나으며 돈은 아주 조금만 써도 넉넉합니다.


.. 일회용 기저귀는 쓰레기 매립지에 묻히는 여러 쓰레기들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양을 차지한다. 미국에서만 매년 180억 개의 일회용 기저귀가 사용된다. 그리고 500만 톤의 배설물이 처리되지 않은 채로 기저귀와 함께 쓰레기 매립지로 향한다 ..  (84쪽)


 이웃 할머니가 당신 손주 키울 때 쓰던 기저귀를 물려주셨고, 옆지기 어머님이 당신 막내아들(내 처제)을 키울 때 쓰던 기저귀를 물려주셨습니다. 천으로 된 이 기저귀들은 날마다 마흔 장쯤 빨아야 아기 똥오줌에 댈 수 있습니다. 우리는 1회용 기저귀를 써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1회용 기저귀를 쓴다고 치면, 며칠에 한 번쯤, 큰 상자를 하나씩 들여야지 싶습니다. 1회용 기저귀가 오줌을 여러 번 받아들여서 덜 갈아 주어도 된다고 하지만, 오줌을 누었을 때 바로바로 닦이고 기저귀를 갈 때와 여러 번 누도록 그대로 둘 때하고, 아이가 받는 느낌은 사뭇 다를밖에 없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1회용 기저귀를 쓰게 되면, 이 1회용 기저귀는 곧바로 쓰레기가 되어 땅에 묻혀 버리니, 아이가 살아갈 터전을 더럽히는 셈입니다.

 날마다 1/4씩 빨래를 하는 데에 쓰면서 한 달쯤 보내다 보니까, 엊그제부터 어깨죽지가 결리고 등 힘살이 모두 굳어집니다. 오늘은 기저귀를 빨 때 몹시 힘겹습니다. 그래도 아기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하고 옥상마당에 널어 놓고 말린 다음 거두어들이는 동안, 이 일이 고되거나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얼른 빨래를 마치고 아기와 옆지기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옆지기 팔다리를 주무르고 아기가 잘 자거나 노는지 지켜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밥때가 되면 얼른 미역국을 끓이거나 덥히고 찬거리 하나 마련합니다. 아기는 우리가 평화로이 밥을 먹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에, 밥을 차려도 삼십 분쯤은 밥숟갈을 못 뜨는데, 말을 못하는 아기한테 우리 삶을 맞춰야지, 우리한테 아기를 맞출 수 없으니,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들 어머니가 우리를 어떻게 키우셨을지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는 아버지는 돈벌러 일 나가고 어머니 혼자서 집에서 살림 다하고 밥 다하고 빨래 다하면서 아기까지 돌보았을 텐데, 몸풀이나마 제대로 하면서 그 일을 다 치러 내셨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우리 몸이 수월해지거나 가벼워지는 쪽을 찾는 일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구태여 기계와 전자제품을 쓰기보다는, 자연 그대로 아이가 느껴 주기를 바라고, 어머니와 아버지 손을 오래오래 많이 타면서 아이가 자라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우리 삶터에 하나라도 더 많은 쓰레기가 나오도록 하는 삶이 아닌 가운데 아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몸으로 느낍니다.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은 책이나 지식으로 가르칠 수 없고, 아이 어버이인 우리 두 사람이 어떤 마음과 매무새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아이 스스로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입으로만 떠드는 ‘자연스러운 삶’을 꾸리면서 도시에서도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몸으로 부대끼고 치러 내면서 자연스러울 삶을 찾아나가야, 이런 어버이들 부대낌이 아이한테 하나하나 스며든다고 느껴요.

 어버이 된 사람이 먼저 열리고 너른 가슴으로 살아야 아이도 열리고 너른 가슴으로 살아갈 테니까요. 어버이 된 사람이 먼저 착하고 곱게 살도록 힘써야 아이도 착하고 곱게 살아가는 매무새를 기를 테니까요. 어버이 된 사람이 우리 삶터를 1회용품과 갖가지 전기제품으로 무너뜨리지 않아야 아이도 자기 몸과 자기가 디딘 땅을 더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2) 알려고 해도 바꾸기 어려운 세상인데


 ‘푸르게 푸르게’ 살아가려는 마음을 품게 된 어느 미국사람이 쓴 《Living Green》을 읽습니다. 글쓴이는 아주 똑똑하고 돈도 많이 벌고 이름값도 드높은 분입니다. 그러나 똑똑함은 지식이 많음일 뿐이었고, 돈이 많음은 어마어마한 자원을 써서 주머니만 불리는 일이었으며, 이름값이 드높음은 말짱 헛것이나 뜬구름이었다고 깨닫습니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몸이 아프고 저리고 쑤신 다음에야 비로소 깨닫고, 자기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돌아보면서, ‘돈벌이와 이름값 올리기와 도시에서 물질문명 누리기’를 저버리지 않는 가운데 ‘푸르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아봅니다.


.. 나는 양상추가 펼쳐져 있는 거대한 들판에 서서 밝게 빛나는 녹색 잎사귀로 꾸며진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생각했다. 이 광대한 녹색 들판에 감탄하다가 나는 농장 인부들이 긴 소매 옷을 입고 두꺼운 장갑과 고무장화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 중 일부는 얼굴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다 … 농장 주인 말에 의하면 상추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최대 50가지 종류의 살충제와 살균제 그리고 제초제를 평균 12번 정도 밭에 뿌린다고 했다. 고무장화와 장갑은 바로 여러분과 내가 매일 먹는 화학 물질로부터 농부를 보호하기 위한 장비였던 것이다! … 내가 화학제품을 사용한 상추를 사기 때문에 농약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고 토양이 오염되는 것이다 ..  (44쪽)


 며칠 앞서 ‘국민과의 대화’를 했던 대통령 이명박 씨가 ‘탄소배출량’ 이야기를 해서 깜짝 놀랐는데, 탄소배출 문제를 꺼내기는 했지만,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자기는 무엇을 할 생각인지는 하나도 들려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탄소배출을 엄청나게 늘릴 ‘뉴타운 개발’을 시골 구석구석까지 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농촌도 뉴타운으로 한 곳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게 하고 공장도 짓고 쇼핑센터도 세우고 뭣도 해야 발전이 된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하는 동안 쏟아져나올 탄소는 어찌하게 될까요. 논밭과 산을 허물고 아파트를 지어서 나오는 탄소배출량만큼 ‘나무를 심으면 된다’고 말씀하시던데, 나무가 조용히 잘 자라던 땅에 있던 나무를 베어낸 뒤, 어디에다 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요? 이미 심겨진 자리에 또 심을까요? 나무와 나무 사이는 몇 미터 떨어뜨려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나무 백만 그루를 심을 땅이 우리 나라에 있을까요? 아니, 우리 나라에 나무 심을 땅이 남아 있기나 한지요. 그리고 나무만 심는다고 환경사랑이 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람사조약에 가입을 해 놓았을 뿐 아니라 세계람사대회를 치르기로 한 한국이면서, ‘새만금 메우기를 대법원에서 인정’해 버린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정부 정책에서도 환경생각이 없었고, 법조계 분들도 환경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법조계만 탓할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언론계는 어떠하며, 교육계는 어떠할까요. 재계는 어떠하고 과학계는 어떠할까요. 건설업 하는 분들은 어떠하며, 여느 시민이라고 하는 우리들은 어떠한지요. 우리들 스스로 얼마나 환경생각을 하면서 자기 삶을 꾸려 나가고 있을까요.


.. 이것이 왜 문제인가? 왜냐하면 지구 온난화는 단지 이론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  (181쪽)


 이야기책 《Living Green》을 덮으면서, 예전에 읽은 《즐거운 불편》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오늘저녁이면 다 읽게 될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이라는 책이 자꾸만 겹쳐집니다.

 그러나 《모래 군의 열두 달》(알도 레오폴드)이나 《씨앗의 희망》(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이나 《회색곰 왑의 삶》(어니스트 톰슨 시튼)이나 《수달 타카의 일생》(헨리 윌리엄슨)이나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이나 《슬픈 미나마타》(이시무레 미치코)나 《복합오염》(아리요시 사와코) 같은 줄거리나 마음결을 바라면서 《Living Green》을 읽지 않았습니다. 또, 바랄 수 없으며 바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Living Green》을 쓰신 분은 ‘미국사람으로서 자기 소비 문화를 버릴 생각이 없는 가운데, 될 수 있는 만큼 환경파괴를 줄이는 길을 찾기’로 걸어간 보기 드문 분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환경파괴를 일삼고 있는 자기 삶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모두인 형편을 돌아본다면, 이만큼 알아보고 생각하고 자기 삶도 조금은 고치는 삶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그렇기는 한데, 《Living Green》에는 ‘즐거운 불편’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조금 더 돈을 치르면 얼마든지 더 환경사랑이 된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린 헬스, 그린 홈, 그린 퓨처”로 나뉘어진 《Living Green》에서 말하는 ‘푸름(그린/녹색)’은 ‘좀더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문화로 바꾸어야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도 한겨울에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삶을 자기 아이들(글쓴이한테는 손자)한테 물려줄 수 있다’는 생각을 보여주기만 합니다.

 나라안에도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 해》(박경화) 같은 훌륭한 책이 있습니다만, 이 책도 ‘자기 실천’에서는 그다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정혜진)라는 책은 《Living Green》과 견주어 ‘자동차를 하이브리드로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삶이란 없기에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기도 하고, 글쓴이 나름대로 환경 이야기를 쓰는 기자로서 입으로만 떠들지 않겠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삶터는 ‘녹색 소비’만으로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구 온난화는 단지 이론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라면, ‘녹색 소비’만으로는 세상을 올바르게 돌려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풀빛을 닮지 않으면, 스스로 풀빛이 되지 않으면, 스스로 도시사람이나 시골사람을 넘어서면서 ‘풀사람’이 되지 않으면, 지구 삶터 지키기나 가꾸기는 이룰 수 없습니다. 환경사랑은 쓰레기 줍기부터 실천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쓰레기 안 버리기가 먼저요, 쓰레기 안 만들기가 먼저요, 삶터를 푸르게 가꾸기가 먼저입니다. 삶터를 푸르게 가꾸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번 더 많은 돈으로 나무를 심겠다’는 ‘탄소상쇄’는, 우리 삶터 밑뿌리는 곪은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면서 잎과 꽃만 예쁘게 키우려는 마음결하고 매한가지입니다.

 그나마, 알려고 애쓰니 이만한 책 《Living Green》을 쓰고, 이만한 책이라도 읽고서 다문 한 가지라도 ‘녹색소비’를 해 준다면 우리 삶터는 아주 티끌만한 크기로라도 달라질 테지만, 날마다 수십 수백 가지 목숨붙이가 죽어 사라지는 마당에, 터럭만큼 나아지게 하는 삶으로는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지구는 너무 더러운 땅덩이가 되고 맙니다. (4341.9.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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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 희망제작소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총서 2
최엄윤 지음 / 이매진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63 ― 도시가 고향인 분한테 바치는 선물
 : 최엄윤, 《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



- 책이름 : 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
- 글쓴이 : 최엄윤
- 펴낸곳 : 이매진(2007.9.21.)
- 책값 : 9000원



 (1) 골목 문화


 촬영작가로 일하는 분하고 인천 골목길을 걷습니다. 촬영작가는 ‘인천 배다리에서 용쓰듯 살아가는 한 사람’을 찍으려 한다면서 찾아왔고, 용쓰듯 살아가는 한 사람은 촬영작가를 데리고 골목마실을 합니다.

 비가 오는 낮, 한 사람은 비옷을 입고 비옷 안쪽에 사진기를 가리며 걷습니다. 한 사람은 모자를 눌러쓰고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걷습니다. 인천시장이 ‘송도 새도시와 청라 새도시를 1자로 죽 잇는 길’을 낼 생각으로 뚫으려고 하는 ‘너비 50미터 넘는 산업도로 공사 예정터’ 울타리가 높이 가로막은 골목길을 걷습니다. 숱하게 걸은 이 길을 또 걷습니다. 서울 옥수동과 금호동 쪽에서 살다가 중학교 적부터 아파트에서 살았다는 촬영작가한테 이 오래된 골목길은 옛생각을 떠오르게 해 줄지, 아니면, 그냥 사진으로 담아내기에 그럴싸하게 다가갈 모습일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가는 고즈넉한 동네로 느껴질 모습일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있는 그대로 느끼기를 바라면서 함께 거닐 뿐입니다.

 울타리는 어른 키보다 높아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울타리 바로 옆으로 죽 잇닿은 골목집마다 크고작은 텃밭을 가꿉니다. 텃밭이 없으면 꽃그릇에 꽃과 풀을 심어서 가꿉니다. 가지가 달리고 고추가 맺히고 상추가 웃자라며 깻잎이 우거집니다.

 산업도로 공사터를 들여다볼 개구멍을 찾는데 모두 막혀 있습니다. 시청 공무원이 어느새 나와서 죄다 막아 놓았군요. 다시 뜯어내지 못하게 아무 야물딱지게 조이고 동여 놓았습니다.

 이 동네에서 ‘바로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볼썽사나운 울타리를 쳐 놓아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게 합니다. ‘곧 재개발로 쓸어낼 동네에서 안 떠나고 사는 사람들’한테는 ‘햇볕 쬘 권리’조차 없구나 싶습니다. 한 몫 사람 대접을 바랄 수 없구나 싶습니다.





.. 문화 활동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스스로의 가치마저 쉽게 외면해 버리는 대표적 공간 중 하나는 바로 ‘철거지역’이다. 근대문화의 가치들에 대한 평가는 전혀 없고 부동산의 가치만이 존재할 뿐 아니라, 대부분 철거지역은 도시 빈민이 밀집한 지역인 경우가 많아 문화 활동 공간 역시 전무하다 ..  (9쪽)


 금곡동과 창영동을 지나 큰 찻길을 건너 유동으로 접어듭니다. 골목에서 찻길로 나오니 시끄럽습니다. 차 다니는 소리가 귀가 멍멍합니다. 차를 모는 분들은 차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못 느끼지 않으랴 싶습니다. 차에서는 노래를 듣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볼 테지요. 이런저런 소리에 갇혀서, 차가 뿜어내는 소리와 차가 뱉어내는 방귀와 먼지와 차가 쏟아내는 뜨거운 기운이 거님길을 오가는 사람한테 옴팡 뒤집어씌워지는 줄 느끼지 못합니다.

 유동을 가로질러 율목동으로 접어들 무렵, 무슨 모임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듯한 할머님과 마주칩니다. 길을 내어 드리고 옆으로 지나갑니다.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만한 좁은 골목을 지납니다. 낮은 천장을 따로 줄기를 뻗는 덩굴을 보고, 여름내 고추를 말리려고 마련해 둔 길다란 말림대를 봅니다. 올망졸망 붙어 있는 집들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텔레비전 소리일지 밥하는 소리일지 식구들이 얘기하는 소리일지 아이들한테 숙제하라고 채근대는 소리일지 전화하는 소리일지 어렴풋하게 헤아려 봅니다.

 차 다니는 길로 나옵니다. 두찻길로 된 두 찻길을 따라 하염없이 서 있는 차들, 그리고 이처럼 서 있는 차 사이로 삐쭉빼쭉 머리 디밀며 빠져나가려는 차들. 그리고 이 차들한테 치이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비키면서 길을 건너는 사람들.

 살금살금 길을 건너면서, 시멘트벽을 하얗게 바른 골목집 앞에 자라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낯익은 잎사귀인데 무슨 나무인지 아리송하다고 느끼려는 이때, 푸른빛 싱그러운 뾰족뾰족 가시가 눈에 뜨입니다. 밤송이입니다.


.. 다시 한 번 여쭈었다. 왜 재개발에 동의할 마음이 없으신가요? 그제야 할머니들이 말씀하시는 이유는 첫째, 재개발을 하면 서로 얼굴을 못 본다는 것이다 … 둘째, 이천맨션이 아무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 셋째, 이천맨션의 위치가 백화점, 재래시장, 시내 중심부에서 가깝고 다양한 버스노선이 있어 매우 편리하다는 것이다 ..  (27쪽)





 밤나무구나. 이름으로만 ‘밤나무골(栗木)’로 남은 율목동이 아니라, 이렇게 밤나무를 기르는 집이 있구나.

 이 골목집은 언제부터 밤나무를 길렀으려나. 바닥은 온통 시멘트로 발라져 있어 흙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골목집에 깃든 분은 열 스물 남짓 되는 온갖 꽃그릇에 흙을 옮겨담아서 갖가지 풀과 꽃과 나무를 기릅니다. 율목동 골목집 밤나무도 땅이 아닌 꽃그릇에서 자랍니다. 그러면서도 풋밤송이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있습니다.

 참 용하지. 어쩜 이렇게 야무지게 밤송이를 달 수 있을까. 이 집은 밤을 사다 먹지 않겠지. 집에서 길러 먹는 밤맛하고 사다 먹는 밤맛이 같을 수 없으니까.


.. 이천동에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재미는 화분들이다. 골목은 공동의 정원이라고 했던가? 많은 주민들이 개인의 화분을 골목에 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정서를 전해 준다.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은 찾을 수 없다. 그저 우리의 골목일 뿐이다 ..  (37쪽)


 좀더 안쪽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깊은 골목에는 바깥 소리가 모두 막혀 있습니다. 아주 호젓합니다. 호젓한 골목으로 들어서니 그리 넓지 않은 골목 담벼락을 따라서 꽃그릇이 한 줄로 죽 이어져 있습니다. 자동차가 지나다닐 만한 넓이로 된 골목에는 꽃그릇이 거의 하나도 없지만,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에는 꽃그릇이 수두룩합니다. 이곳에 자전거가 지나다닐 일도 없이 사람만 드문드문 오갈 터이니, 한 사람 지나갈 너비만 남기고 쪼르르 꽃그릇을 놓을 만하구나 싶습니다.

 흙땅이 없으니 풀이 자랄 수 없고, 풀이 자랄 수 없으니 싱그러운 바람결을 마실 수 없는 도시이지만, 골목마실을 하며 꽃그릇으로 이루어진 꽃골목을 지나면서는, 늘 소담스러운 바람을 들이쉬고 냄새를 맡습니다.




.. 어느 날 재개발의 무지막지한 폭격이 우리를 공격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우리는 오늘을 즐겁게 살며 도시의 옛 고향, 이천동에 문화의 작은 씨앗들을 뿌려갈 것이다 ..  (99쪽)


 율목공원 조금 못 미친 제법 가파른 골목길. 한쪽은 계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계단이 없다면 겨우내 얼어붙는 길에 모두 미끄러지겠지요. 길게 이어지는 계단 한쪽에 플라스틱통이 놓여 있고, 이 통에는 고양이밥으로 보이는 사료가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 길고양이 굶지 말라고 밥을 놓아 두었네요.

 계단을 하나둘 밟으며 올라갑니다. 낮은 빌라 앞에 마련한 꽃밭 앞에 꽃그릇이 한 줄로 놓였고, 이 꽃그릇은 ‘이마트 끈’으로 버팀나무를 엮여 있습니다. 무슨 꽃을 심으셨나 둘러보는데 보라빛 도라지꽃이 보입니다.

 아직 익으려면 더 있어야 하는 토마토 꽃그릇을 봅니다. 무궁화 심어 놓은 꽃밭을 지납니다. 덩굴풀에 매달린 풋열매를 봅니다. 이제는 꽃망울을 떨군 봄꽃들은 푸른 잎사귀만 남겨 놓습니다.

 율목동 고갯마루에 자리잡은 구멍가게 앞에는 낡은 장판으로 바닥을 댄 평상이 하나 있습니다. 평상에는 꽃그릇 두엇 놓여 있고, 꽃그릇 옆으로 소주병 하나 막걸리병 하나 놓여 있습니다. 골목집 어딘가 사는 분이 잠깐 들러서 한 병씩 들이킨 다음 조용히 자리를 뜨셨나 보군요.

 이럭저럭 걷는 사이 신흥동2가 골목. 걷는 길에는 이곳이 ‘율목동’인지 ‘유동’인지 ‘신흥동2가’인지 ‘신흥동1가’인지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모두 똑같은 골목이며 이웃집입니다. 길그림책으로는 뚜렷하게 금으로 갈라진 길이고, 행정을 맡는 공무원한테는 동호수와 번지수로만 나누어질 집일 터이나, 이 언덕받이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숫자나 금으로 나눌 수 없는 삶터입니다.

 신흥동2가 22번지 골목네거리에 섭니다. 오른쪽으로는 지은 지 몇 해쯤 된 아파트숲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집을 허물고 주차장을 짓는다는 공사터가 보입니다. 그 건너편 집 지붕에 모여 있는 고양이 너덧 마리 보입니다. 웬 고양이가 저렇게 모여 있을까 생각하면서 사진기를 들어서 몇 장 찍으려는데, 할머니가 불쑥 고개를 내밀며 빗자루를 저어서 고양이를 쫓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쫓기지 않고 옆으로 살짝 다시 옆으로 폴짝 하면서 놉니다. 할머니가 저를 알아보고 손짓하며 부릅니다.





.. 건축이 예술로서의 가치가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건축물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일 것이다 … 역사적 유적을 보존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일이겠지만, 우리는 1950년대 이후의 근대사에 대해서는 기간이 짧다고 하여, 그 보존을 허술히 한다. 특히 한 마을이 사라져 버리는 일은 단 몇 개월도 걸리지 않는 일이 돼 버렸다 ..  (121, 122쪽)


 ‘야생동물보호협회 같은 데에서 일하는 분’이 아니냐 생각해서 부른 할머니는, 당신이 이 집에서 사는 스물 몇 해 동안 ‘처음에는 이쁘다고 기르다가 길에 내다 버려서 외톨이가 된 불쌍한 고양이’한테 밥 주는 일을 해 왔다고 합니다. 아까 본 고양이밥도 이분이 놓은 밥통이었습니다.

 이웃집에서는 왜 고양이 기르냐며 욕을 해댄답니다. 고양이를 내다 버린 어느 집에서는 ‘자꾸 밥 주지 말라’고 하더니, 어느 날에는 할머니가 준 밥에 몰래 세제를 풀어서 굶주리던 고양이를 싹 죽여 버리기도 했답니다. 어미고 새끼고 그냥 세제물 먹고 죽었답니다.

 우리를 붙잡고 한참 고양이 이야기를 하시던 할머니는 몸소 우리를 이끌어서 당신이 밥 주는 자리를 하나하나 알려줍니다. 율목공원 안쪽에 숨어서 밖으로 나올 생각을 못하는 고양이 세 마리도 소개합니다. 공원 바로 앞 빌라에 사는 젊은 부부가 내다 버렸다고 합니다. 이 고양이들은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풀숲에서 쫄딱 맞는다고 합니다.




 (2) 아파트 집값


 고양이 할머님은 ‘야생동물보호협회’ 연락처를 알고 있지만 아직 전화를 걸어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도심지에 버려진 길고양이가 한두 마리가 아닐 텐데, 이 고양이를 거두어 갈 수도 없을 테고, 또 어떤 마음좋은 수의사라고 해도 길고양이마다 붙잡아서 불임수술을 시켜 줄 수 있겠느냐며, 그예 고양이 밥주기만 부지런히 하신답니다. 이야기를 듣는 저로서도 할머니한테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 깃든 길고양이 두 마리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이 길고양이는 좀처럼 우리 집을 떠날 생각을 안 합니다. 벌써 저희끼리 집을 나가서 꿋꿋하게 살아갈 법도 하건만.

 밤마다 집 밖으로 다녀 보기도 했을 테지만, 아무래도 길고양이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팍팍하거나 힘겹다고 느껴서, 우리 집에서 주는 먹이를 냠냠짭짭하면서 남은 삶을 보내지 않으랴 싶습니다.

 할머니는 ‘아직은 이 동네에 살고 있으니 고양이한테 밥 주고 살지만, 이 동네를 다 재개발해서 아파트로 새로 지으면 고양이는 어디 가서 사느냐’고 걱정입니다.


.. 어느새 한국의 아파트들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의 올림픽 정신처럼 급성장해 이제 15층은 고층아파트 축에 끼지도 못한다. 20년도 안 된 도시를 부수어 금세 새로운 아파트를 지어 올리고 이 아파트들은 곰팡이처럼 빠른 속도로 전국적으로 퍼져서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  (25∼26쪽)


 할머니가 들려주는 걱정을 듣다가 가슴이 움찔합니다. ‘고양이 걱정’? 그래, 고양이 걱정. 길고양이뿐 아니라 길개도.

 장난감처럼 수십만 원씩 주고 샀다가 아무 미련 없이 내다 버려서 떠돌이 삶을 보내는 짐승들. 이 짐승들한테 우리가 무엇을 해 주고 있는가 가만히 돌아봅니다. 불쌍하다면서 없는 살림 털어서 밥을 주고 있는 분들이 몇몇 있지만, 이분들한테 ‘쓸데없는 짓해서 동네 더럽히지 말라’며 욕을 해대는 분들이 퍽 많습니다. 동사무소와 구청에서는 길고양이와 길개가 ‘쓰레기봉투 찢어 놓아서 못살겠다’면서 모조리 붙잡아서 안락사를 시킨다고 합니다.

 골목 동네를 재개발한다고 할 때에는, ‘많지는 않아도 모자라지도 않게 꼭 알맞는 만큼’ 살림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대책 하나 세우지 않고 밀어붙입니다. 지금은 서른 평짜리 집에서 느긋하게 살지만, 아파트로 재개발 하면 열 평짜리 전세집에도 못 들어갈 만하게 바뀌어 버리는 골목사람들 앞날을 헤아리는 공무원이나 개발업자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마당에, 길가에 자라는 꽃과 풀과 나무를 걱정하는 사람, 그리고 길에서 살아가는 개와 고양이와 비둘기 들을 근심하는 사람이 나올 수 없을 테지요. 공무원과 개발업자한테 그런 따순 마음을 바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골목사람 스스로도 이렇게 가녀린 짐승과 푸나무한테 마음을 기울여 주기를 바랄 수 없었을까 싶습니다.





.. 더구나 이 구역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은 고령의 일용직 노동자들로 보증금 100∼200만 원에 5∼1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내면서 생활하는데, 재개발로 철거가 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 쪽방 등지를 찾아가야 하는 형편이다. 결국 도시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주민들의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 당국의 장삿속만 보인다는 이야기다 ..  (33쪽)


 율목동 언덕받이에서 내려옵니다. 경동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고욤나무집 옆을 지나다가, 좀더 안쪽 깊숙이 가 볼까 하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몇 시간째 쉬잖고 걸어서 다리가 꽤 아프고 발가락도 부었습니다. 그러나 어그적어그적 걷습니다.

 비오는 날임에도 빨래를 밖에 널어 놓아 비를 쫄딱 맞힌 몇 집을 봅니다. 에그머니. 다시 빨아야 할 텐데.

 아는 사람만 아는, 아니 이곳 골목사람만 아는 골목인 경동 5번지 안쪽으로 슬그머니 들어옵니다. 오가는 사람은 이 골목에 사는 사람뿐이라 매우 조용한 길입니다. 발자국 소리를 더 죽이면서 사뿐사뿐 걷습니다.

 한 집에서 내다 놓은 긴 나무걸상 옆에 섭니다. 촬영작가한테 말문을 엽니다. “이 나무걸상은 스티커를 붙여놓았으면 쓰레기예요. 그렇지만 이렇게 잘 닦아서 길 한쪽에 내놓으면 좋은 쉼터가 돼요. 이런 골목길 때려부수고 아파트 지은 다음에 돈 수 억 들여서 근린공원이라고 짓잖아요. 그 근린공원은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술담배 피는 우범지역이 되다시피 하지만, 이 골목길 작은 쉼터는 어느 곳도 우범지역이 되지 않아요. 아파트숲 근린공원에는 아이들을 꾸짖거나 가르치는 어른도 없지만, 아이들이 무서워서 꾸짖지도 않거나, 그저 남 일로 여겨 나 몰라라 하지요. 그러나 이곳 골목길에서는 아이들이 그렇게 마구 놀면 바로 뛰어나와서 예끼놈 하면서 꾸짖어요. 아이들을 가르치지요. 여기는 남이 아닌 우리가, 자기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가꾸고 깨끗하게 가꿉니다. 그런 대목이 골목길하고 아파트가 달라요. 지금 우리 세상은 모두들 돈만 바라보고 있어서, 집을 지어도 사람이 살 만한 집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돈이 될 만한 집이냐 아니냐로 따집니다. 세상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우리들이 골목에서 문화를 이루며 살아가던 모습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이 마음을 간직해 줄 수 있으면서 아파트에서 살아간다면 좋겠어요. 여기 앞에 송림동 달동네를 허물며 주공아파트 2700세대를 지으면서 그곳 꼭대기에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라고 지었어요. 달동네 집을 다 허물고 수십 억 들여서 달동네 집을 다시 만들어 놓고 박물관이라고 꾸몄지요. 서울 송파구 거여동도 그곳 달동네를 싸그리 밀어붙인 다음에 송파구에서는 거기다가 ‘달동네 박물관을 복원’한다고 하더군요. 웃기지 않아요? 돈벌려고 아파트 짓는다며 때려부수는데, 그 때려부순 집을 되살려서 박물관을 만든다니까.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그 달동네 집을 고이 간수하고 손질해 놓으면 돈도 안 들고, 살아 있는 박물관이 돼요. 그리고 그곳 달동네에서 민박을 치면서 ‘민속마을’처럼 꾸미면 돈도 벌 수 있어요. 골목집 사람들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어요. 돈 한푼 들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돈을 벌 길이 있는데, 이런 길로는 안 가요. 다 함께 나누려는 길이 얼마든지 많은데 그런 길을 찾는 데에는 머리를 안 기울이고, 몇몇 기득권이 더 큰 돈을 벌어들이는 데에는 그 뛰어난 머리를 모으고 있어요.”


.. 프랑스에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대체적으로 그 가족들은 몇 세대에 걸쳐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집은 물론 가족들의 작은 소품들까지 몇 대를 이어 전해져 내려오면서 가족의 역사를 보존하는 모습 속에서 집을 방문한다는 것이 마치 작은 개인 박물관을 구경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집이란 이처럼 그 속에 살고 있는 혹은 살았던 사람들의 이미지와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진 작은 그릇이다 … 집의 분위기는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경험과 흔적들이 집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과 어울리면서 이루어진다 … 대구, 서울, 부산, 인천 등등 전국 큰 도시들에는 어김없이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사람이 다니는 길보다는 차들이 다니는 길이 더욱 넓어지고, 인공공원을 조성하면서도 난개발로 생태환경을 점점 파괴해 가는 모순적인 모습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이다 … 오래된 낡은 건물 하나가 도시 역사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도시민들의 삶의 발자취가 묻어나고 그것이 오늘에도 이어지는 도시의 다양한 표정들이 바로 문화 도시를 위한 기초인 것이다 ..  (117, 120쪽)





 정보산업고등학교를 마주보고 선 골목집 옆으로 걷습니다. 골목집 벽과 문에 판박이가 붙어 있습니다. 아마 이 집 꼬맹이들이 새겨 놓았겠지요. 또는 이 동네 꼬맹이들이 새겨 놓거나.

 꼬맹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된 뒤에도 이 집에서 살아간다면, 자기들이 어릴 적 해 놓은 자국을 보면서 쑥스러워 할까요. 아니면 자랑스러워 할까요. 다른 곳으로 집을 옮겨 살다가 오랜만에 옛 동네를 찾아와 보다가 이 판박이를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때 느낌은 어떠할까요.


.. 우리에게 집이란 그저 돈의 가치로 환산될 뿐, 그 아파트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설계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나타나지 않는다 ..  (132쪽)


 태어난 곳이 아파트이고 자란 곳이 아파트인 아이들한테는 고향이란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증에 새겨지는 숫자로 그칩니다. 짧으면 몇 해, 길어도 스무 해가 지나지 않아서 자기 고향이자 옛집인 ‘아파트’는 모두 헐리기 때문입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파트인 아이들한테는 놀이터가 없습니다. 아파트도 사람 사는 곳이지만, 사람이 걸어서 움직이기 좋도록 짓지 않고, 자동차가 드나들기에 좋도록 꾸며 놓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차에 치일까 걱정이 되어 코딱지만한 아파트 놀이터에조차 놀지 못하게 막습니다.

 태어나 자라는 동안 아파트 밖으로 가 보지 못한 아이들한테는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이나 이웃사랑을 ‘책 읽히며 따로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수도꼭지 틀면 물이 촬촬 넘치고, 단추 하나 누르면 뜨신 물이 여름겨울 가리지 않고 흘러나옵니다. 통에 휙 집어던지면 잘 빨려서 말려 나오는 빨래기계가 있고, 돼지코만 꽂으면 알아서 바닥을 쓸고 닦는 청소기계가 있습니다. 누워서 똑딱 하고 누르면 아프리카며 중남미며 미국이며 일본이며 유럽이며 …… 못 가는 나라가 없습니다. 손전화 들고 쑹얼쑹얼 하면 먹고픈 모든 밥이 집으로 척척척 금세 날라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어쩌다가 한 번 맡는 날이 돌아와도 지겹고 더럽다며 꺼리는 아파트에서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이 세상에는 돈만 있으면 왔다!’임을 깨닫습니다.


.. 경제의 논리로 아파트의 무덤 속에 혹은 고향을 떠나 변두리 어딘가로 계속 떠돌고 있는 수많은 오늘의 도시인들은 바로 도시의 문화적 빈민일 것이다 ..  (149쪽)





 (3) 작은 책 《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은 큰 선물


 20대 젊은 날 절반을 프랑스에서 공연과 극장에 푹 빠진 채 살았다고 하는 최엄윤 님은, 몇 해 앞서부터 대구 이천동 골목길 한쪽에 방을 얻어서 살고 있습니다. 몇 해째 조촐하게 ‘마을잔치’를 열면서 마을사람들하고 마을사랑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러는 동안 겪고 듣고 보고 깨달은 생각을 갈무리해서 조그마한 책 《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을 써냈습니다.


.. 결국 어른들은 집과 이웃을 잃고, 젊은 세대들이 새 마을을 형성하는 것이다 … 이웃이 사라지는 것은 결국 환경파괴, 즉 생태계를 파괴하는 모습과도 같다 ..  (29쪽)


 그대로 프랑스에 머물면서 공연과 극장을 더 즐기면서 남은 삶을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무엇이 최엄윤 씨를 한국땅으로 돌아오도록 이끌었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한국땅에서도 서울이라는 남녘땅 한가운데 아닌 대구로, 또 대구에서도 골목길 한켠 자그마한 집으로 깃들이게 했을까 궁금합니다.


.. 불행하게도 남도극장에 관한 기록은 인터넷 검색을 해도 발견할 수 없다. 물론 책으로 기록된 건 전무하다 … 이전에는 사람들이 살면서 많은 추억들을 쌓아가던 곳, 아무도 찾지 않는 지하 창고의 낡은 물건들처럼 이제 일상의 추억들은 유물처럼 어딘가에 묻히게 될 것인가? 아니면 흔적도 없이 아파트의 높은 콘크리트 아래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인가? ..  (51, 55쪽)


 그런데, 최엄윤 씨는 그 대구 이천동 골목집에서 오래오래 깃들일 수 있을까요. 앞으로도 이 대구 이천동 골목집을 알뜰히 꾸미고 사랑스럽게 돌보면서 이웃사람과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배우고 익혀 온 여러 가지를 마을사람한테 나누어 주고, 마을사람들이 한삶을 거쳐 얻고 느껴 온 여러 가지를 고이 받아먹으면서 한 동네 이웃으로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제가 사는 인천은 관청과 학교와 전철역과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높은 아파트와 공장을 빼고는 거의 모두 갈아엎어서 높은 아파트와 커다란 쇼핑센터로 바꾸는 막삽질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엄윤 씨가 사는 대구도 인천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깃들인 서울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이라는 이 작은 나라에 ‘시멘트ㆍ물ㆍ모래ㆍ자갈’이 얼마나 많이 있다고, 이 자원을 섞어서 아파트 올려세울 기계 움직일 기름이 얼마나 많이 있다고, 아파트로 지은 다음 아파트를 돌릴 기름과 전기가 얼마나 넘실넘실 넘쳐난다고, 이렇게 온통 온누리 ‘아파트 공화국’이 되도록 뒤흔들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모르겠습니다. 어느 하나 알지 못하겠습니다. 우리한테 얼마나 넓은 아파트가 있어야 하는지를 모르겠고, 우리한테 얼마나 값나가는 아파트가 있어야 하는가를 모르겠습니다.

 골목집은 마흔 해 쉰 해뿐 아니라 백 해도 거뜬히 견디면서 고즈넉한 집자리로 이어왔습니다. 아파트는 스무 해 채우기도 벅찰 만큼 막 짓고 막 부숩니다. 아파트에 사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새 집으로 옮기고 집살림 갈무리하고 다시 싸서 또 옮기고 하느라 바빠야 합니다. 한 집에 오래오래 머물면서 자기 삶을 돌아보거나 가꾸거나 껴안을 틈이란 없는 아파트입니다. 그러한 데에도 우리는 아파트에서만 살아야 하나요. 우리 자신도, 우리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이 낳아서 기를 아이들까지도? (4341.7.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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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엄윤 2008-11-0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을 읽은지 긴 시간이 지났고 이제야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근근이 이어오던 소박한 마을잔치가 이제 두해를 넘기고 있습니다. 올봄에 새롭게 거리를 거닐면서 작년겨울 스산한 삶을 견디지 못한 이웃 할머니의 죽음를 몇개월이 지나서야 알게되기도 했었습니다. 좀더 자주 좀더 많이 어울리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쓸쓸함에 할말을 잃었던 시간도 어느덧 두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 길 위에 있으면서도 아직 제 정체를 찾지 못하는 제게 오래도록 이웃들과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주셨었죠..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조용한 움직임이기 때문에 어떤 활동으로도 드러나지않기 때문에 때론 나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하다 지치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웃은 좀 더 많아졌고 서로의 눈빛이 좀더 따뜻해 졌고 거리엔 예술의 흔적들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추운 계절이 왔습니다. 건강하세요.
 
곤충.책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 윤효진 옮김 / 양문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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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51 ― 수수한 애벌레한테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비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곤충ㆍ책》



- 책이름 : 곤충ㆍ책,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대
- 글ㆍ그림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 옮긴이 : 윤효진
- 펴낸곳 : 양문(2004.10.20.)
- 책값 : 12000원



 (1) 내 삶터에 함께 있는 꽃과 풀


 망초가 있고 개망초가 있습니다. 살구가 있고 개살구가 있듯, 둘은 조금 다릅니다. 개망초가 먼저 꽃을 피우고, 망초는 조금 늦게 꽃을 피웁니다. 이 풀꽃 이름을 놓고 이런저런 옛이야기가 있는데, 얼마나 믿을 만한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다만 한 가지, 우리들한테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풀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농사꾼들도 무척 싫어하는 잡풀 가운데 하나입니다. 뽑아도 뽑아도 다시 돋는 망초, 꺾어도 꺾어도 다시 자라는 망초. 끈질기디끈질기기 때문에 풀약을 치지만, 풀약에도 꿈쩍을 않는 망초입니다.

 이러한 망초이지만, ‘망초’는 느즈막이 꽃을 피우고(7월이 넘어야), ‘개망초’는 일찌감치 꽃을 피웁니다(6월이 되기 앞서). 먼저 꽃을 피운 개망초는 자기 씨를 널리널리 퍼뜨립니다. 느즈막이 꽃을 피운 망초는 일찌감치 개망초한테 자리를 빼앗겨 차츰차츰 구석으로 몰립니다. 구석으로 몰리다 못해, 도시에서는 골목길 담벼락 밑자락 틈바구니에 겨우 보금자리를 틀곤 합니다. 개망초는 손바닥 만한 땅뙈기라도 있으면 먼저 차지를 해 버립니다. 개망초가 한창 꽃을 피워도 푸른 꽃잎만 내보이는 망초를 보고서, ‘오호라, 넌 여기에서도 잘 자라는구나.’ 하고 줄기를 쓰다듬어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 질기네. 어쩜 저런 데서도 살아나나.’ 하면서 징그럽게 여기는 사람만 많습니다.

 조그마한 꽃을 피우는 망초와 개망초. 바쁜 걸음으로 지나치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자그마한 꽃을 피우는 망초와 개망초. 때때로 한갓지기도 하여, 또는 공원 걸상에 잠깐 앉기도 하여, 사람들은 이 풀이 피워낸 꽃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이때마다 ‘이야, 조그마한 꽃이 퍽 예쁜데?’ 하면서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조그맣고 예쁘장한 꽃이 무슨 풀인 줄 모릅니다. 그리고 이 꽃이 무엇이었는가를 알게 되면, ‘뭐야, 그랬단 말야?’ 하면서 고개를 모로 돌리곤 합니다.


.. 무르익은 파인애플의 모습이다. 껍질이 엄지손가락만큼 두꺼워 깎아내고 먹어야 하는데, 자칫 어설프게 깎았다가는 날카로운 가시에 혀를 다칠 수도 있다. 포도, 살구, 까치밥나무열매, 사과, 배를 뒤섞어 놓은 것처럼 맛이 절묘하다 ..  (18쪽)


 지난 일요일 아침, 형과 함께 동인천 뒤편 골목길을 거닐었습니다. 우리 모두한테 고향인 인천이고, 어릴 적 참말로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놀던 곳인 동인천 둘레입니다. 저는 지난해에 인천으로 돌아와서 거의 날마다 이곳 골목길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처음 인천으로 돌아와서 다닐 때에는, 어릴 적 그토록 신발이 닳도록 다닌 길이 잘 떠오르지 않아 낯설기도 했지만, 하루이틀 다시 걷고 또 걷는 가운데 예전 일이 하나둘 떠올랐고, 어릴 적 걷던 일도 차츰차츰 생각났습니다.

 늘 걷는 골목이지만, 늘 새삼스럽다고 느낍니다. 철 따라 골목길 꽃이 다르고, 꽃이 다 진 뒤에도 날마다 느낌이 달랐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꼭 한 해를 보내고 난 뒤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도 새삼스럽습니다.

 송현동 골목길을 거닐다가, 늘 지나가는 길을 거닐다가, 낯익인 듯 낯익지 않은 듯한 열매나무를 보았습니다. 뭐지? 앵두인가? 그러나 잘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살그머니 열매를 만져 봅니다. 말랑말랑합니다. 앵두 같은데. 그러나 앵두가 열매 맺힐 때 이런 모습이었나? 형은 “앵두는 아닌 듯한데. 앵두 열매를 보면 다르게 생겼잖아?” “그런가?”


.. 이 아메리카 버찌는 유럽의 버찌와는 맛이 틀리다. 하얀 꽃과 붉은 꽃을 같이 피운다. 나무의 크기도 네덜란드나 독일에서 자라는 버찌나무보다 크지 않다. 만약 이곳이 이윤에 덜 눈이 멀고 느긋한 농장주들이 지배하는 곳이라면 이 버찌들도 좀더 완숙한 맛을 내게 되지 않을까 ..  (32쪽)




 나중에 집에 와서 도감을 살펴보고, 찍은 사진을 둘레에 보여주니 ‘앵두가 맞다’고 합니다. 그래, 앵두. 그러나 척 보고도 앵두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앵두인 듯 아닌 듯 느끼는 가운데에도, 앵두나무 줄기가 이렇던가, 앵두잎이 이렇던가 하면서 고개를 몇 번이고 갸우뚱했습니다. 정작 앵두를 먹으면서 살아도, 또 ‘앵두 같은 내 입술 예쁘기도 하지요’ 하는 노래를 어릴 적부터 익히 들었어도, 앵두나무를 코앞에 두고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날, 형과 골목길을 거닐던 날, 앵두나무 꽃그릇에서 오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토마토 꽃그릇’을 보았습니다. 처음 토마토 꽃그릇을 보면서도, 이 꽃그릇에서 자라는 녀석이 토마토인지 아닌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노란 꽃이 어여삐 피기는 했는데, 무슨 꽃일까 한참 헤아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헤아리다가, 바로 옆에 꽃이 지고 열매가 맺은 앙증맞은 토마토 열매를 보고서는, 비로소, 아하, 깨달았습니다.


.. 나는 유별나게 생긴 이 애벌레가 어떻게 변신할지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그런데 1700년 8월 10일 볼품없는 나방으로 변해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처럼 아름답고 특이하게 생긴 유충에서는 별 볼일 없는 녀석이, 평범하게 생긴 유충에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비와 나방이 탄생하는 일은 흔하다 ..  (50쪽)


 거리마다 은행나무가 가득입니다. 요사이는 벚나무를 아주 많이 심어서, 봄마다 사람들은 벚나무 구경을 갑니다. 가을이면 은행나무를 쿵쿵 찧으면서 은행 열매 거두려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태껏 한 번도 은행꽃을 못 보았습니다. 가지치기를 하도 해대는 바람에 은행꽃이 피었는지 안 피었는지 알아볼 수 없기도 했을 테지요(키높이에서는 은행 열매가 보이지도 않으니, 은행꽃이 피어도 여느 사람 키높이로는 알아보기 어려울 테니까요). 벚나무가 그렇게 곳곳에 피고 지고 하는데, 정작 버찌 열매는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다지 안 큰 벚나무도 많아서 벚꽃은 눈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왜 버찌는 구경할 수 없는지. 누군가 미리 따 가기 때문일는지. 들새가 모조리 따먹어서 버찌를 구경할 수 없었을는지.


.. 수리남에는 형형색색으로 다양한 종류의 포도나무가 사방에 우후죽순처럼 자란다. 가지를 꺾어 땅에 꽂아두기만 해도 6개월만 지나면 어느새 탐스런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린다. 만약 매달 심는다면 1년 내내 포도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1년에도 몇 차례씩 포도 수확이 가능한 수리남으로 포도주를 챙겨 온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  (98쪽)


 성당 나들이를 다녀온 옆지기가 쥐눈이콩 한 봉지를 사 옵니다. 우리는 서리콩도 먹고 까만콩도 먹고 푸른콩도 먹습니다. 어릴 적, 집에서 어머니한테 배우면서 콩을 심어 거두어서 먹곤 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사먹는 콩맛도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국민학교 1학년 그 어린 날, 제가 손수 심고 날마다 가꾸어서 열매를 맺어 손수 콩깍지를 까서 밥에 넣어 먹은 그 콩맛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으며 군침이 도는 콩맛입니다.

 그때, 콩 열매만 먹는 줄 알고 콩잎 먹는 줄은 몰랐습니다. 고추를 먹으면서도 고추잎을 먹는 줄 안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깨와 깻잎을 이어서 생각한 지도 몇 해 안 되었습니다. 호박과 호박잎, 무와 무잎, 그리고 김치와 날배추잎, 이 모두를 한동아리로 바라보고 받아들이지 못해 온 삶이었다고 할까요.

 도시내기니 어쩔 수 없다지만, 도시내기라고 해서 이렇게 살아가야만 한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배속만 채우는, 슬픈 삶이라고 느낍니다. 흙이 어떤가에 따라서 콩맛이 달라지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콩맛이 달라지며, 쬔 햇볕에 따라서 콩맛이 어찌 달라지는가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저 무슨 콩이 영양소가 어떠하다는 수치와 정보만으로 콩밥을 먹는다면, 너무 딱한 삶이 아니랴 싶습니다.





.. 플로스 파보니스는 높이가 280센티미터 정도이며 노란 꽃과 붉은 꽃을 피운다. 씨는 출산 진통을 겪는 임산부를 위해 사용된다. 네덜란드인들 밑에서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 여성 노예들은 아이를 지우기 위해 이 씨를 사용한다. 자신의 삶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다. 서아프리카의 기니나 앙골라에서 끌려온 흑인여성 노예들은 보다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야 한다. 무자비한 착취가 계속되는 한 이들의 낙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  (127쪽)


 논이 있고 밭이 있는 시골에서 밥 한 그릇 받을 때하고, 논도 없고 밭도 없는 도시에서 자동차 씽씽 달리는 길에 둘러싸인 채 전기불 아래에서 밥 한 그릇 받을 때하고는 아주 크게 다릅니다. 해와 바람과 물과 흙으로 빚어낸 밥 한 그릇과 돈 몇 푼으로 얻는 밥 한 그릇이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훌륭히 갈무리된 도감과 그림책을 보면서 익히는 꽃 이야기, 풀 이야기, 나무 이야기하고, 우리가 손에 흙을 묻히면서 심고 가꾸는 꽃과 풀과 나무 이야기하고 같을 수 있겠습니까. 꽃집에서 소담스레 만들어 주는 장미꽃다발도 틀림없이 곱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집에서 씨앗을 받아서 심는 꽃 한 송이도 틀림없이 곱습니다.


 (2) 《곤충ㆍ책》과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수리남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를 찬찬히 헤아리면서, 풀과 나무에 깃들어 살아가는 벌레 또한 가만히 살핀 이야기를 담은 《곤충ㆍ책》이 있습니다. 1600∼1700년대 수리남 자연 삶터를 담았다고 할 만한 책입니다. 그래서 2000년대 오늘날 수리남과 견주면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거의 300∼400이라는 햇수이니까요. 열 해만 되어도 강산이 바뀐다고 했거늘, 삼백과 사백이라는 숫자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그동안 사라지는 푸나무가 있을 테며 새롭게 생겼다고 할 만한 푸나무가 있습니다. 삼백 해와 사백 해라는 세월 동안 달라지는 우리들 사람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삼백과 사백이라는 숫자를 놓고도 달라지지 않거나 고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백 해가 아닌 오백 해나 천 해가 가도록 바뀌지 않는 우리들 사람 삶 또한 있습니다.


.. 출판을 통해 큰 이익을 보려는 생각은 없다. 그저 들어간 비용만 회수되면 족하다. 나는 책을 만드는 데 비용을 아낌없이 지출했다. 곤충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족감과 즐거움을 주려는 일념으로 저명한 장인에게 동판화의 제작을 의뢰했고, 가장 질 좋은 종이를 사용했다.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그것으로 나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고 더 이상의 기쁨은 없을 것이다 ..  (12쪽)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수리남 사람들 삶터는, 식민지로 부리던 살갗 하얀 사람들 때문에 크게 바뀌었습니다. 수리남사람 스스로 즐거웁거나 기쁘도록 농사를 짓고 문화를 가꾸고 마을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수리남사람이 먹고마실 먹을거리를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수리남사람끼리 신나게 어울리며 애틋하게 사랑을 나눌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수리남 삶은, 또 삶터는, 또 자연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요. 나아지고 있습니까. 나아졌다고 할 만할까요. 앞으로는 나아질 수 있을는지요. 우리하고는 너무 먼 나라이니까, 우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이니까, 그곳이 어찌 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을 일인지 모르고, 또 우리들은 우리들 일로도 너무 바빠서 그런 곳까지 헤아릴 까닭이 없을지 모릅니다만, 수리남 사람과 자연 삶터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요.


.. 메리안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리남 식민사회를 지배하는 오만한 사탕수수 농장주들과 갈등관계에 놓인다. 그는 흑인을 비인간적으로 착취하는 농장주들을 비난했고, 그들은 메리안을 돈도 되지 않는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는 괴상한 여자라고 비웃었다. 노예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태도나 노예를 데리고 열대림을 누비는 행동이 그들에게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메리안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농장주들을 의식하지 않았고, 또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 메리안은 아무리 혐오스러운 생물일지라도 가까이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 주목받지 못하는 미물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그로 하여금 열대의 자연을 더욱 놀랍고 감동적으로 체험하게 했다 ..  (헬무트 데케르트/189∼190쪽)


 어쩌면, 《곤충ㆍ책》을 그리고 쓴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라고 하는 사람한테도, 더구나 1600∼1700년대 그때에, 게다가 여자라는 몸으로 미루어보건대, 수리남이라고 하는 식민지 나라에, 또한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고 있지 않던 ‘수리남 벌레들 탈바꿈’에 눈길을 두는 일은 몹시 철없는 짓이고 어처구니없는 짓이며 시간과 돈이 남아도니 하는 짓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자기 스스로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사랑할 만한 일이 무엇이고, 자기가 애틋하게 바라볼 만한 일이 무엇이며, 자기가 몸바쳐서 이루어내면 좋을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식민지 지배자들 편견과 끔찍한 날씨와 말라리아와 어려운 살림살이 모두를 견디어내거나 이겨내면서 책 하나를 빚어냈습니다. 《곤충ㆍ책》을. 그리고 새로운 꿈도 꾸었어요. “(도마뱀은) 죽은 동물이나 물고기를 구하지 못하면 개미나 파리를 먹기도 한다. 만약 이 책이 독자의 호평으로 많은 판매수익까지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이런 동물의 일대기를 추적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싶다(24쪽).”는 꿈을. (4341.6.6.쇠.ㅎㄲㅅㄱ)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1647∼1717)

동판화가이자 역사가이자 지리학자이자 서지학자로 이름을 날린 ‘마테우스 메리안’이 낳은 딸. 그렇지만 마테우스 메리안 후광은 식구들한테 조금도 퍼지지 못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을 낳은 어머니는 ‘마테우스 메리안이 나중에 얻은 여자’였고, 아버지라는 사람이 죽자 그 집안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보잘것없는 신분에 하잘것없는 살림에 아무것도 없는 형편으로 스스로 모든 삶을 일군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독일 마르크돈 500마르크짜리에 얼굴을 새기기도 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이이가 조그마한 벌레 삶을 헤아리며 그림으로 남기던 때에는, “애벌레나 구더기들이 더러운 쓰레기에서 생겨난 악마”라고 여기던 때. 마녀로 도장찍혀 죽을 수 있었고,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오랜 경험과 지켜보기로 빚어낸 책과 그림을 놓고 ‘거짓말’이라고 깎아내리는 터무니없는 말을 들으면서 쓴맛을 견디어내야 했다. 그러나 자기 연구와 예술을 지키고 가꾸조가 가시밭길을 꿋꿋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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