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성 곤충기
조복성 지음, 황의웅 엮음 / 뜨인돌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환경책을 왜 읽는가
 [환경책 읽기 34] 조복성, 《조복성 곤충기》

 


- 책이름 : 조복성 곤충기
- 글 : 조복성
- 엮은이 : 황의웅
- 그림 : 이제호
- 펴낸곳 : 뜨인돌 (2011.8.19.)
- 책값 : 15000원

 


 (1) 《파브르 곤충기》와 ‘자연책 읽기’


 《파브르 곤충기》라는 대단하다 싶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무척 널리 읽힙니다. 아이들한테는 ‘필독 추천 명작 도서’로 손꼽히고, 온갖 판으로 많이 옮겨지기까지 합니다.

 

 《파브르 곤충기》와 함께 《파브르 식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벌레 이야기요, 하나는 푸나무 이야기입니다. 으레 벌레 이야기만 알려졌으나, 푸나무 이야기를 나란히 읽어 보면, 파브르라 하는 사람이 지구별 어여쁜 목숨붙이를 얼마나 사랑하면서 아끼려 했는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동물학이고 식물학이고 무슨무슨 학문이고를 떠나, 가장 크게 돌아보면서 가장 깊이 살필 대목이란 바로 사랑이에요. 크고작은 벌레들 표본을 많이 모았대서, 벌레들 한살이를 두루 꿰뚫는 논문을 많이 내놓았대서,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대서, 이런저런 책을 숱하게 내놓았대서, 벌레를 비롯한 숱한 목숨붙이를 제대로 알거나 올바로 안다고 할 수 없어요. 사랑하지 않는다면 알지 못하는 셈입니다.
 

.. 우리 나라에 사는 소똥구리 세 종류는 전부 이른아침부터 늦은저녁까지 멈추지 않고 소똥을 빚는다. 열심히 일하다가 가끔 쉴 때는 소똥을 한 조각 떼어먹기도 하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초콜릿을 먹듯 달고 맛있게 먹는다. 녀석이 똥을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쩝쩝거리는 소리가 실제로 귀에 들리는 듯하다 … 이렇듯 매서운 탓에 말벌의 성질이 포악하고 독단적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말벌은 애정이 넘치는 화목한 집단을 이루며 일을 매우 조직적으로 분업화해 조화롭게 살아간다 ..  (20, 62쪽)


 학자는 학문을 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런데 이 학문이란 책을 파헤치거나 책을 쓰기만 하는 학문일 수 없어요.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생각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학문이어야 합니다. 살리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결·흐름·무늬가 없다면, 학문할 뜻이 없습니다.

 

 이는 학문 자리뿐 아니라, 공무원 자리에서도 똑같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아이를 낳아 집에서 보살피는 어버이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어디에서나 언제나 삶·사람·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삶을 살피고 사람을 돌아보며 사랑을 생각하면서 해야 할 학문이요, 행정이며, 교육이고, 아이키우기입니다.

 

 《파브르 곤충기》와 《파브르 식물기》는 무엇보다 이 삶·사람·사랑을 알뜰히 눈여겨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벌레 지식이나 푸나무 정보를 다루지 않아요. 벌레와 푸나무를 찬찬히 바라보고 살피며 헤아리는 까닭은, 벌레와 푸나무를 더 잘 알고 싶기 때문이 아니에요. 벌레와 푸나무를 참다이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찾고 싶기 때문이며, 이 벌레와 푸나무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착하고 예쁘게 어우러지는 길을 열고 싶기 때문입니다.


.. 녀석(바퀴)은 책 표지에 침을 뱉어 놓는 이상한 습성이 있는데, 이 또한 표지를 만들 때 바른 풀을 부풀게 해서 먹어치우려는 교활한 꾀다. 아무리 아름답게 장식된 책이라 해도 이놈한테 한번 걸렸다 하면 순식간에 형편없이 변하고 만다 ..  (38쪽)


 아이들한테 책을 더 읽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굳이 초등학교이건 어린이집이건 유치원이건 학원이건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중·고등학교를 안 다녀도 됩니다. 아이들은 대학생이 될 까닭이 없고,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가져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자가용을 몰지 못한대서 아이답지 못하겠습니까. 아이들이 영어를 못한대서 사람답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은 언제나 아이답게 자라야 합니다. 아이들은 늘 사람다이 살아야 합니다.

 

 참다게 살아갈 수 있으면서 해야 하는 학문입니다. 착하게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사랑할 수 있으면서 맡는 공공기관 행정직, 이른바 공무원입니다.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열면서 정치를 하든 교육을 하든 문화를 하든 예술을 하든 과학을 하든 할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회사원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전문가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 또한 회사원으로 살아야 하지 않아요. 어른 누구나 전문가가 될 까닭이 없어요.

 

 사람다운 사람이어야 하고,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즐거이 누려야 합니다. 고운 꿈을 멋지게 이루면서, 맑은 말과 밝은 눈빛으로 사랑을 꽃피우면 넉넉합니다.


.. 옛날부터 늘 우리 곁에서 함께 살던 나방이 요즘에 와서야 화제가 된 사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우리 땅에 사는 곤충에 관심이 없었음을 말하는 것 같아 애석하기도 하다 ..  (98쪽)


 아이들이 《파브르 곤충기》를 읽어야 한다면, 아이들이 벌레들 살아가는 지구별을 사랑하는 길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벌레들 살아가는 지구별이란 바로 사람들 살아가는 지구별이요, 사람들이란 ‘너와 나와 우리’가 서로 얼크러지는 사람들입니다. 너와 나와 우리가 모여 사람들이 됩니다. 너와 나와 우리가 다 함께 아름다운 삶을 참말 아름다이 여미도록 북돋우는 길이 참살길입니다.

 

 사람을 아끼는 사람은 벌레를 아낍니다. 사람을 아끼는 사람은 푸나무를 아낍니다. 푸나무를 아끼기에 사람을 아끼고, 벌레를 아끼기에 사람을 아껴요.

 

 《파브르 곤충기》를 남긴 사람이든, 《시튼 동물기》를 남긴 사람이든, 그리고 《조복성 곤충기》를 남긴 사람이든, 서로서로 한동아리로 흐르는 넋이자 얼이요 꿈이고 빛입니다.

 

 지식이 아닌 삶입니다. 정보가 아닌 사랑입니다. 학문이 아닌 살림입니다. 권위나 권력이 아닌 어깨동무요 두레예요.

 

 지식을 쌓자며 책을 읽는다면, 스스로 바보가 되겠다는 소리입니다. 학문을 이루겠다며 책을 파고든다면, 스스로 얼간이가 되겠다는 셈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꿈을 열고 싶으니까 책을 읽습니다. 나와 너와 우리가 이어지는 고리를 살가이 깨달아 착한 빛줄기를 드리우고 싶기에 책을 펼쳐요. 아이들한테 《파브르 곤충기》를 읽히고 싶다면, 아이들을 낳거나 아이들하고 함께 지내는 어른들부터 이 책을 찬찬히 새겨읽은 다음, 아이들한테는 ‘종이책’ 아닌 ‘흙책’과 ‘풀책’을 이야기보따리로 들려주며 함께 부대껴야 합니다.

 


 (2) 《조복성 곤충기》는 환경책


 《파브르 곤충기》는 1800년대 끝무렵부터 나와서 1907년에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1907년이라 한다면 한국에는 서양책이 거의 옮겨지지 않던 때입니다. 일본에서는 《파브르 곤충기》를 언제부터 일본말로 옮겨서 읽었을까요. 일제강점기에 교사로 일하고 학문을 파헤치던 조복성 님은 이무렵 《파브르 곤충기》 같은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요. 이 책이 한글이나 일본글로 없다 하더라도, 일본사람이 일본 벌레붙이를 살핀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요.

 

 2011년에 오랜만에 빛을 본 《조복성 곤충기》는 1948년에 나온 《곤충기》와 1975년에 나온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를 간추려 한데 모은 책입니다. 1948년에 나온 《곤충기》와 1975년에 나온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는 도서관에서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고, 헌책방에서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책입니다. 이 땅에서 이 나라 이 겨레 벌레붙이를 살피고 파헤치며 다룬 아름다운 책이지만, 이 책들을 눈여겨보거나 되살리거나 보듬으려는 손길이 너무 얕았어요.


.. 파리가 낳은 구더기는 자연에서 온갖 쓰레기와 썩은 것들, 심지어 배설물까지 마다하지 않고 말끔히 청소해 준다 … 사람들이 더럽다고 욕하고 혐오스러워 하는 곤충들도 저마다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겪어 내야 하는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 (사슴벌레는) 악착스럽게 다른 곤충을 잡아먹지도 않는다. 단지 참나무에서 스며 나오는 진액을 빨아먹고 둥치에 구멍을 뚫어 새끼를 치며 즐겁게 살아가는 평화주의자다 ..  (35, 47, 73쪽)


 새로 붙인 그림이 실린 《조복성 곤충기》는 예쁘장합니다. 조복성 님은 당신 이야기책이 이렇게 되살아날 줄 알았을까요. 조복성 님한테서 학문을 배운 이들은 당신 스승 책을 되살리려고 꿈꾼 적이 있었을까요.

 

 예쁘장한 책을 천천히 읽습니다. 앞으로도 이 책이 예쁜 손길을 받으면서 예쁜 사랑을 고이 이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읽습니다. ‘필독 추천 명작 도서’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사람들한테 좋은 사랑을 두루 나누는 길잡이 구실을 한다면 참으로 기쁘겠다고 빌면서 읽습니다.

 

 《조복성 곤충기》는 환경책입니다. 이 나라 생태·환경을 한눈에 알아보도록 돕는 책입니다. 이 나라 생태·환경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좋을까를 돌아보면서 적바림한 책입니다.

 

 우리 가까이에 흔하게 있으나, 흔히 알아채지 못하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깨달으면서 올바로 알아차리자고 이끄는 책입니다. 삶을 슬기로이 일구면서 내 땅 내 마을 내 터전을 슬기로이 보살피자는 뜻을 널리 나누려는 책이에요.


.. 놈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오랫동안 살 수 있다. 벼룩과 이가 한 달 동안 먹지 않고 사는 데 비해 빈대는 무려 반년이나 버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추위에 견디는 힘이 뛰어나 영하 33℃의 추운 날씨에도 얼어죽지 않는다. 요즘처럼 춥고 배고픈 때, 우리 나라 사람들도 이런 저항력을 지녔다면 얼마나 좋으랴! … 곤충들의 외모는 자연스럽고 순진함과 고상함을 겸하고 있다. 또한 모든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니, 그것을 이해하고 그들을 본받으면 어떨까? ..  (48∼49, 89쪽)


 동짓날 추운 바람을 따스한 집에서 몸을 녹이며 긋습니다. 이 추운 날 한국땅에는 틀림없이 한뎃잠을 자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작은 보금자리가 있으나 따순 이불 한 장 없어 고단한 사람이 있어요. 값비싼 보금자리에서 따스한 사람이 있고, 아무런 보금자리 없이 슬픈 사람이 있습니다. 멀디먼 나라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 곁에 있는 고단하거나 아프거나 슬픈 사람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이러면서 내 삶이 얼마나 참답고 사랑스러운가를 살피면 좋겠어요.

 

 나는 무엇을 누려야 즐거운 하루일까요. 나는 어떤 밥을 어떻게 차려서 먹어야 고마운 하루인가요. 나는 어떤 옷을 입으며 뽐내야 예쁜 모습일까요. 나는 어떤 돈벌이를 하면서 얼마나 은행계좌를 늘려야 넉넉한 삶일까요.

 

 아이들이 《파브르 곤충기》를 읽든 《조복성 곤충기》를 읽든 쇠똥구리나 개똥벌레나 사슴벌레를 만날 일이란 없습니다. 깊은 멧골이나 시골로 놀러가더라도 요사이는 항공방제라는 이름으로 수목원에까지 농약을 마구 뿌립니다. 흙을 밟을 만한 데는 온통 농약투성이입니다. 흙이 없는 데는 온통 시멘트바닥이거나 아스팔트바닥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땅에서 잘도 경제개발을 하고 경제활동을 한다는데,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국회의사당에서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참 그럴듯하게 밀어붙이는데, 나무 한 그루 심지 않는 지식인과 공무원과 건설회사 일꾼은 어마어마하게 큰 돈을 들여 온나라 물줄기를 시멘트로 발라대는데, 《파브르 곤충기》를 읽든 《조복성 곤충기》를 읽든 무엇을 바꾸거나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내 살림집에서 벌레붙이 하나 만나기 힘든데, 아이들 다니는 학교나 학원에서 바퀴벌레나 개미 몇 마리 말고는, 더러 나방 조금 아니면 마주치기조차 힘든데, 이런저런 책을 읽는들 얼마나 값지거나 뜻있거나 사랑스러울는지요.

 

 개똥벌레가 어떻다느니, 개똥벌레랑 반딧불이는 같은 이름이라느니, 파리가 알을 몇 개쯤 낳고, 이 가운데 몇 개쯤 까며, 애벌레는 얼마만에 어른파리가 되는지를 지식이나 정보로 안다 한들 스스로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요. 한미자유무역협정과 4대강사업을 지식과 정보로 아는 이들 가운데 ‘당차게 자가용을 버리고 시골로 살림집 옮겨 흙을 파먹고 살겠다’고 외치는 이는 몇이나 되는가요.


.. 꿀벌은 유용한 꿀을 주는 덕에 아끼다가도 독침이라도 한 방 잘못 쏘는 날에는 곧바로 상대 못할 버러지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또 인간은 흰개미를 자연의 분해자로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가도 정작 자신의 물건을 갉아대기라도 하면 나쁜 곤충이라며 학대를 서슴지 않는다 ..  (166∼167쪽)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을 뽑도록 지켜보고 한 표 권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거나 이 다음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크게 잘못입니다. 《파브르 곤충기》나 《조복성 곤충기》를 읽는 일은 아름답습니다. 즐겁고 기쁘며 신납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를 베푸는 책읽기로만 그친다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독후감 쓰기 숙제를 내주거나 독후표창을 해 준들 부질없습니다.

 

 설명서를 읽고 빨래기계를 돌려 빨래를 해내는 일이 나쁘지 않아요. 다만, 식구들 옷가지를 내 손으로 조물조물 주무르고 비비면서 빨래하는 일보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늙고 아프며 힘 못 쓰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큰도시 넓은 아파트 방에 모시는 일이 나쁘지 않아요. 다만, 시골 흙집에서 늘 흙을 만지고 파란 빛깔 하늘 맑고 시원한 물을 마시는 터전에서 언제나 곁에서 보살피며 함께 흙을 파먹고 살아가며 모시는 일처럼 아름답지 않습니다. 자가용 타고 할인매장에서 물건 값싸게 사들이는 일이 나쁘지 않아요. 다만, 식구들 다 함께 시골 논둑길을 거닐며 장마당 천천히 오가며 이야기꽃 피우는 일만큼 아름답지 않아요.

 

 조복성 님은 학문하는 길을 씩씩하고 당차게 걸었습니다. 다만, 학문만 하는 길은 안 걸었습니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길을 걸었고, 벌레붙이를 바라보며 당신 한삶을 늘 되새기는 한편, 사랑스레 지구별을 돌보는 꿈을 빚으려고 땀흘렸어요.

 

 사람 하나 태어나서 죽기까지 책은 손수레로 다섯 차례 나를 만한 부피면 넉넉합니다. 넉넉할 뿐더러 넘칩니다. 《조복성 곤충기》는 다섯 수레 책 가운데 하나로 놓으면 즐겁습니다. 책은 다섯 수레만큼만 읽으면서 삶을 아리땁게 일굴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4344.12.23.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네 숲은 깊다 - 도시에서 찾은 자연과 생태
강우근 지음 / 철수와영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아이들과 흙 만지며 숲에서 놀아요
 [환경책 읽기 32] 강우근, 《동네 숲은 깊다》


- 책이름 : 도시에서 찾은 자연과 생태, 동네 숲은 깊다
- 글·그림 : 강우근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1.11.25.)
- 책값 : 13000원


 어버이한테서 땅을 물려받지 않고서야 흙을 일구며 살아가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흙일꾼으로 푸른 날과 젊은 날을 누리기는 어렵습니다.

 시골자락 논이랑 밭이랑 멧자락 사들이는 값은 그닥 비싸지 않습니다. 서울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도시에서 땅 한두 평 사들이는 값이면 시골자락 너른 논밭과 살림집을 장만할 수 있어요.

 그러나 오늘날 삶흐름을 돌아본다면, 오늘날 아이들은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어린이집부터 대학원까지 ‘흙 일구는 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흙을 일구는 보람을 가르치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가르치는 어른들은 흙을 일구는 뜻을 헤아리지 못해요. 교사나 교수 가운데 흙삶을 스스로 누리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머지, 아이들하고 흙을 만지며 일하는 즐거움을 나눌 수 없습니다.

 농업고등학교가 몇 군데를 빼고 몽땅 사라집니다. 학교이름에 농업이라는 낱말이 남더라도 농사일을 힘껏 가르치지 못합니다. 흙을 일구는 일보다는 교과서를 훨씬 오래 많이 자주 깊이 가르쳐요. 흙을 일구는 나날을 늘 느끼도록 이끌지 못해요.

 농업고등학교에 앞서 농업중학교가 없습니다. 농업중학교에 앞서 농업초등학교가 없어요. 농업초등학교에 앞서 농업유치원이나 농업어린이집이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나더라도 어린이일 적부터 흙을 가까이 사귀지 못합니다. 시골 어린이집조차 영어를 가르치지, 호미질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뜻있다는 어린이집이더라도 낫질을 가르치지 않아요. 한글과 영화와 그림책 지식에 얽매입니다.
 



.. 냉이 하나 캐려고 구덩이까지 파지만 뿌리는 절반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나물 캐는 걸 흙 파는 놀이마냥 재미있어 한다 … 텃밭 둘레에서는 심지도 않았는데 자라나는 들나물을 언제나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텃밭은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다. 텃밭 가꾸기를 시작한 것도 흙장난을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 목련 풋열매는 낙서하기에 딱 좋다. 풋열매를 산딸기 열매 담았던 통에 가득 채워 아파트 옆 옹벽으로 가서 신나게 낙서를 했다 ..  (17, 39, 92쪽)


 오늘날 한국땅 시골마을에는 어르신들이 흙을 일굽니다. 한국땅 시골마을 어르신들은 당신 딸아들을 알뜰히 가르쳐 박사를 만들고 학자를 만들며 교수를 만듭니다. 의사랑 판사랑 검사를 만듭니다. 대통령을 만들고 국회의원을 만들며 군수를 만들어요.

 박사랑 국회의원을 만든 시골마을 어르신들은 일흔 여든 나이에도 흙을 일굽니다. 구부정한 허리를 다시 펴지 못해 그예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마지막날까지 손에서 호미를 놓지 않습니다. 손으로 흙을 만집니다. 손톱 밑에는 흙때가 박힌 채 빠지지 않습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 합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박사와 석사와 기술자와 교수들은 한강·낙동강·금강·섬진강뿐 아니라 온 나라 모든 물줄기에 삽질을 해서 물길을 똑바로 편 다음 물가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걷는 길이랑 자전거 타는 길이랑 운동기구 갖다 놓는 일’을 합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기자들은 서울로 몰려들어 신문을 만들고 방송을 만듭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교사랑 교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몸담으며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가르칩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공무원은 공공기관이라는 곳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키면서 돈을 법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흙을 만지는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인데,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우며 함께 살아가는 흙일꾼 딸아들은 더더욱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사람은 용케 굶어죽지 않습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곡식을 거두고 짐승을 치며 물고기를 낚으며 김을 말리지만, 모두들 도시로 몰려들어 아파트를 빼곡하게 올리고 자동차를 뛰뛰빵빵 몰면서, 용케 굶어죽지 않고 돈만큼은 알뜰살뜰 벌어들입니다.
 



.. 냉이 잎은 크기도 모양도 참 여러 가지다. 어떤 것은 지칭개 같고 어떤 것은 망초 같고 또 어떤 것은 개갓냉이 같기도 하다. 스스로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하기에 냉이는 이렇듯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되었을 게다. 나물을 한 봉지쯤 캐다 보면 꽃다지와 망초와 냉이쯤은 어느덧 자연스레 가릴 수 있게 된다 … 도룡뇽은 어항 바닥에 깔아 줄 모래를 쓸어 담으면서 휩쓸려 들어왔나 보다. 모래에 쓸려서 깔따구 애벌레도 잔뜩 딸려 왔다. 하루살이 애벌레, 날도래 애벌레도 쓸려 왔다. 물달팽이, 물벼룩도 보이고, 히드라도 보이고, 모래에 쓸려 온 게 참 많다. 개울 속 모래는 물속 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이구나. 그러니 강바닥 모래를 마구 파내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인가 ..  (18, 60∼61쪽)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신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흙일을 배웠겠지요.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신 딸아들한테 흙일을 안 가르쳤겠지요. 당신 딸아들한테 흙일을 가르치지 않으며 허리가 구부정해질 무렵, 군사쿠테타와 함께 찾아온 새마을운동 바람에 휩쓸리면서 풀약과 비료를 듬뿍 치고 비닐을 덮어씌운 다음 기계로 휘휘 밀고 닦는 농사짓기를 새로 배웠겠지요.

 풀약과 비료를 치고 비닐을 덮으며 기계로 밀고 닦는 농사짓기는 굳이 딸아들한테 가르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이런 농사짓기는 농협 공무원이 훨씬 잘 가르치겠지요. 이만 한 재주라면 대학교 농업과학과 같은 데에서도 얼마든지 가르치겠지요.

 즈믄 해인지 만 해인지 알 길 없는 기나긴 나날에 걸쳐 흙일꾼 아버지 어머니가 흙일꾼 딸과 아들을 낳았습니다. 쉰 해가 채 안 되는 짧은 오늘날 참말 흙을 일구는 길이 꽉 막히면서 송두리째 사라집니다.

 풀약을 치면 풀이 죽습니다. 풀약을 쳐도 벼나 옥수수나 콩이나 보리나 밀이나 서숙은 죽지 않는다지만, 이들 곡식에는 풀약이 배어듭니다.

 풀약을 치면 사람들 즐겨먹는 곡식 둘레에서 스스로 씨를 퍼뜨려 돋는 숱한 나물이 죽습니다. 포도나 능금이나 배 같은 열매는 아주 풀약에 찌들며 알이 굵고 달콤해진다지만, 칡이나 쑥이나 냉이나 씀바귀는 풀약을 한 번 맞으면 그대로 말라죽습니다.

 그러고 보면 배추나 무나 당근이나 토마토나 오이는 풀약을 듬뿍 쐽니다. 그래도 용케 안 죽습니다. 풀약을 듬뿍 먹은 곡식이랑 푸성귀를 먹는 사람들 또한 용케 안 죽습니다.

 다만, 용케 안 죽을 뿐, 오늘날 여느 사람치고 병원 문턱 뻔질나게 드나들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나이들어 보험 걱정 않는 사람 꼽기 힘듭니다. 요즈음 아이들치고 아토피 없는 아이나 젊은이는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새로운 병은 자꾸 늘고, 새로운 예방주사 자꾸 생기지만, 아픈 사람은 끊이지 않아요. 아프며 고단한 사람은 그치지 않아요.
 



..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찬 동네에서 걷기 좋은 길은 드물다. 풍경도 삭막하다. 걷다가 쉴 만한 곳도 찾기 힘들다 … 아파트 둘레 풀들은 대개 다 귀화식물이네. 이런 잡초들은 쓸모없고 성가신 풀 같지만 벌레들한테는 밥이 되고, 집이 된다 … 낙엽 속에서 겨울잠 자는 벌레처럼 낙엽 이불을 덮고 조용히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누워서 본 숲의 모습은 색다른 느낌이다 ..  (52, 73, 122쪽)


 그림쟁이 강우근 님이 빚은 이야기책 《도시에서 찾은 자연과 생태, 동네 숲은 깊다》(철수와영희,2011)를 읽습니다. 북한산 밑자락에서 살아가며 그림을 그린다는 강우근 님인데, 강우근 님은 서울에 깃든 아파트에서 두 아이랑 옆지기랑 살아가며 그림을 그립니다. 으레 자연을 그리고 으레 아이들 삶을 그림으로 옮기는데, 강우근 님 집자리랑 살림자리는 도시요 아파트입니다.

 아파트에서, 게다가 서울자락 아파트에서 살아가며 어떻게 자연 그림이랑 어린이 그림을 그리나 아리송합니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아파트에서 살든 숲속에서 살든,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며 생각을 어찌 가누느냐에 따라 그림결이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자연을 품에 안는 사랑을 곱게 건사할 수 있으면, 아파트로 빼곡한 곳에서도 냇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풀벌레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바람이 이파리 흔드는 소리를 들어요. 구름이 흐르는 소리와 빗물이 아파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햇살이 슬퍼하는 소리와 무지개가 끙끙 앓는 소리를 듣겠지요.

 《동네 숲은 깊다》는 책이름처럼 도시자락 동네에 사람이 애써 만든 숲 또한 사랑스러운 자연이요 깊은 자연이며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이야기를 담아요. 꼭 시골땅을 장만하고 시골집을 일구어야 자연사랑이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보여줘요. 메마르고 팍팍한 도시에서 한결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꿈을 들려줘요. 텔레비전에 휘둘리고 부질없는 쇠삽날 막공사 정책에 길드는 사람들이 애틋하게 어루만지고 싶은 사랑을 나눕니다.
 



.. 개울을 뚝딱뚝딱 도로 만들 듯이 만들려고 한다. 개울에 사는 벌레 한 마리 삶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니 포클레인으로 파내고 물만 흘리면 개울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숲도 만들고 개울도 만들고 강도 만들고 … 집에 돌아오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 (우리 아이) 나무하고 단이가 텃밭에 가지 않으려고 버틴 것은 그 시간에 텔레비전에서 하는 스포츠 중계를 보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은 커서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없다 ..  (87, 142쪽)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더라도 숲을 사랑하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숲을 사랑하는 넋을 심습니다. 이 아이 어버이는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도시에서 일거리를 찾더라도, 이 아이는 홀로서기를 할 나이가 꽉 찰 무렵 제 어버이보다 한결 씩씩하게 흙땅을 찾아 흙집을 짓고 흙일꾼이 되는 흙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더라도 푸나무를 아끼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푸나무 아끼는 얼을 물려줍니다. 이 아이 어버이는 도시에서 얽매이며 도시에서 떠돌더라도, 이 아이는 제금날 나이가 될 무렵 제 어버이는 생각으로만 품던 꿈을 아이 삶으로 이루면서 어려운 가시밭길이든 힘겨운 자갈밭이든 다부지게 걸어가며 싱그러운 흙내음 살가이 들이마실 수 있어요.
 



.. 요즘 아이들은 놀 줄을 모른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런데 아이들은 놀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놀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  (머리말)


 《동네 숲은 깊다》처럼 도시에서 동네를 사랑하는 길을 슬기로이 다스릴 줄 알면 좋겠습니다. 도시에서 동네를 사랑하는 길을 아름다이 닦으면 반갑겠습니다. 서른 해나 마흔 해 뒤 다시 허물어 짓는 아파트는 부디 끝장낼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아파트에서 사느냐 마느냐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사랑을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삶터에서 어여삐 꽃피우는 보금자리를 이루며 즐기어 나누느냐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동네 숲은 깊다》에서 한 가지 아쉽다면, “낙엽이 많이 졌다(121쪽)”, “낙엽은 이쪽으로 떨어질 듯하다가(122쪽)”, “낙엽이 떨어져 쌓이는(122쪽)”처럼 ‘낙엽(落葉)’이라는 낱말을 자꾸 쓰는데, ‘낙엽’ 씀씀이가 올바르지 않습니다. “나뭇잎이 떨어져 땅에 앉으면” 이때에 ‘낙엽’이라 일컫습니다. “길에 낙엽이 많다”처럼 쓸 수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한국말은 ‘낙엽’ 아닌 ‘가랑잎’이에요. 나무에 달릴 때에는 나뭇잎이요, 나무에서 똑 하고 떨어질 때에는 가랑잎이 됩니다. ‘네잎클로버’ 아닌 ‘네잎토끼풀(56쪽)’을 이야기할 줄 아는 강우근 님인 만큼, 아무쪼록 ‘가랑잎’과 ‘나뭇잎’을 알맞게 가려쓸 줄 알면 더 기쁘겠습니다. (4344.11.21.달.ㅎㄲㅅㄱ)
 

 

(마지막 사진은 여섯 달짜리 둘째가 잡아 주었다 ㅋ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의 공간 아나스타시아 3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한병석 옮김 / 한글샘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스레 살아갈 터는 어떻게 얻는가
 [사랑하는 배움책 1] 블라지미르 메그레, 《사랑의 공간》(한글샘,2007)



- 책이름 : 아나스타시아 3, 사랑의 공간
- 글 : 블라지미르 메그레
- 옮긴이 : 한병석
- 펴낸곳 : 한글샘 (2007.10.20.)
- 책값 : 1만 원


 (1) 우리 식구 살아갈 보금자리


 인천과 충주에서 살 때에 늘 다른 사람 집에 얹혀 지냈습니다. 내 집이 아닌 다른 사람 집에서 살더라도 내 하루는 달라지지 않는달 수 있으나, 내 마음껏 내가 바라는 대로 꾸미거나 보살피지 못해요. 우리 식구한테 맞추어 고치거나 손질할 수 없습니다.

 내 집을 마련해서 살아야겠다고 느끼며 고흥으로 옮깁니다. 아직 짐을 옮기지 못했고 계약만 합니다. 더 일찍 계약하고 더 일찌감치 손질해서 짐을 옮기려 했으나, 우리가 들어가서 살아가려 하는 마을 집임자는 당신 고향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깊은 시골로 들어가지만, 집임자는 깊은 시골을 벗어나 도시에서 살림을 꾸립니다.

 우리는 97평에 1000만 원 하는 집과 땅을 장만해서 오래오래 뿌리내려 우리 아이들도 앞으로 저희 아이들을 낳아 살아갈 수 있는 터를 닦을 생각입니다. 이웃한 74평에 500만 원 하는 땅을 얻어서 두고두고 책을 건사하는 작은 도서관을 일구어 우리 아이들이 언제나 책누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가난한 살림에 목돈 1500만 원이란 몹시 빠듯합니다. 이만 한 돈은 누군가한테서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헤아리면, 여느 도시사람한테 1500만 원 돈은 참 작아요. 전세를 놓아 집 빌리는 돈만큼도 안 된다 할 자그마한 돈입니다. 웬만한 자가용 한 대 값조차 안 될 뿐더러, 요즈음 대학교 등록금 한 해치하고 반밖에 안 되는 돈입니다.

 그러니까, 시골에서 집과 땅을 장만해서 살아가려 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적은 돈을 들이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기쁜 보금자리를 일굴 수 있다는 뜻입니다.


.. 강물아! 너는 대도시들이 중요하다 생각하니? … 강물아! 너는 그 도시의 크기를, 그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니? … 네 물을 따라 과거에는 소리 없이 조각배가 다녔지만 지금은 디젤 증기선이 다닌다 … “사람들 모두가 한 가지 같은 목적을 갖도록 시스템 전체가 요구했지, 그런 식으로 사람들 모두에게 폭력을 가한 거야. 꺾으려 한 거지.”..  (14∼15, 159쪽)


 시골 어른들은 우리가 어떻게 먹고살려 하는지 걱정합니다. 올 2011년 10월 13일, 미국 의회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통과했다지요. 한국 의회에서도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통과하도록 한다지요. 마을 이장님 댁에 머물며 집 계약을 하는 동안, 이장님 댁 텔레비전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 이야기가 흐릅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다 맺고 국회 결의까지 끝내면, 자동차와 전자제품 수출은 관세가 없어져 아주 좋아진다지만, 한국땅 농어업은 깡그리 무너진다고 합니다. 시골 흙일꾼과 고기잡이 말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새소식을 들려주는 사람들 말입니다.

 곧,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정치꾼 모두 ‘한국 시골마을 깡그리 죽이는 줄 뻔히 알’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는다며 부산을 떠는 셈입니다. 왜냐하면, 돈벌이가 되는 일이란 자동차 팔아먹기라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밥을 안 먹는 도시사람은 없습니다. 시골사람은 풀과 쌀을 먹을 뿐 고기 먹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흙일꾼이 일구는 곡식을 사다 먹는 사람도 도시사람이요, 흙일꾼이 키운 돼지와 소와 닭을 사다 먹는 사람도 도시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들 도시사람은 ‘좋은 곡식’과 ‘좋은 고기’를 마땅한 값을 치러서 사다 먹으려 하지 않아요. ‘더 값싼 곡식’과 ‘더 값싼 고기’를 돈 조금 치러서 사다 먹으려 할 뿐입니다. 한쪽 입으로는 유기농과 친환경을 외치지만, 정작 유기농과 친환경으로 일군 곡식과 고기를 제값을 치러서 사다 먹으려 하지 않아요.


.. “책은 소리를 내지 못해요. 책은 악보 역할을 하는 거예요. 독자는 마음속으로 읽는 소리를 자기도 모르게 발음하게 돼요 … 사람이 만든 기계는 마음속에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 “당신에게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의 사고가 충분히 깨끗하지 못해서 그래요.” … “과학을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과학의 업적은 처음엔 한정된 소수가 점유하죠. 자기들만의 사사로운 이해를 위해 사용하고요 … 사람은 누구나 자기 주변에 사랑의 공간을 지어서 자기 자식에게 선사해야 합니다. 자식에게 줄 사랑의 공간을 마련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은 죄악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점을 깨닫고 행한다면 온 지구가 사랑이 환히 빛나는 우주의 한 점이 될 것입니다.” ..  (45, 46, 66, 72쪽)


 여든이 가까운 마을 어른 한 분은 한미자유무역협정 새소식을 들으면서 이제 소는 그만 키워야겠다고 말씀합니다. 다른 어른들은 맞장구를 치면서 형님 이제 소 그만 하셔요 하고 말씀합니다. 마을 어른은 소 사료 한 푸대에 만육천 원이라 하면서, 소를 안 하고 싶어도 소를 팔려 하면 도무지 값을 안 치니 팔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틀림없이 팔려고 키우는 소라 할 텐데, 마을 어른은 소가 좀 예뻐야지 소가 예쁘니까 키우지 하는 말을 덧붙입니다. 시골살이를 하며 목돈을 얻는 소라 할 테지만, 딸아들이 무럭무럭 자라던 지난날이든 딸아들이 도시로 떠난 오늘날이든 마을 어른한테 소는 일소이자 한식구입니다.

 나는 우리 네 식구 살아갈 시골마을로 전라남도 고흥을 꼽았습니다. 다른 ‘좋다 하는’ 마을이 많다 하지만, 굳이 전라남도 고흥을 찾았습니다. 둘레에 아는 사람이 없고, 내 어버이나 다른 살붙이 가운데 이곳에서 살아가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아무런 줄도 끈도 없는 터입니다. 오직 한 가지 있다면, 나와 옆지기가 이곳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예쁘게 살아갈 만하다고 느끼고, 우리 딸아들이 무럭무럭 크기에 좋은 터라고 느끼며, 딸아들이 저희 어버이랑 내내 함께 살든 도시로 나가서 살든, 딸아들이 나이들고 힘들 무렵 언제라도 고이 안겨 예쁘게 삶을 돌볼 만한 터라고 느껴요. 두 번째 고향이나 세 번째 고향 같은 데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 집안 사람들 누구나 일하며 쉴 좋은 보금자리가 될 터라고 느껴요.

 고속도로 안 지나가고 기차길 없으며, 이 나라에 흔하디흔한 골프장이 한 군데도 없어요. 공장은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던데, 시멘트 만드는 공장이 아주 외진 데에 한 군데 보였어요. 읍내가 있고 면내가 있으나, 이곳 분들은 너나없이 흙과 바다와 하나되어 살아가요. 자동차가 어지러이 다니는 데가 없어요. 제주나 해남이나 남원이나 보성처럼 관광지로 이름나지 않아요. 여수나 목포나 거제나 광양처럼 커다래지며 시끌벅적하지 않아요. 조용하게 폭 싸인 작은 시골이고, 오붓하게 자연을 어깨동무할 수 있는 예쁜 시골이에요.


.. “더러워진 곳은 누가 청소하고? 다른 사람이? … 자기 주변을 더럽히는 자가 깨끗한 곳에 오면 쓰레기도 같이 가져올 거야. 더럽힌 곳을 먼저 치워. 그러면 자기 죄도 씻을 수 있어 … 러시아에서 탄 냄새 나는 굴뚝의 공장들이 일 없이 멈춰 서 있는 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우연히 그런 게 아니야 … 당신이 살던 곳, 지금 사는 곳도 옛날엔 창조주가 보살피던 숲이었지. 그 복된 낙원 오아시스를 오늘 어떻게 만들어 버렸지? 숲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큰 의미가 없어. 오히려 황폐한 버려진 땅에 자기 손으로 채소를 가꾼 다츠니키들. 이들을 알아줘. 밭의 풀 한 포기 한 포기가 다 그들을 사랑하고, 우주의 따스함을 선사하려 애쓰지 … 당신 곁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비추세요.” ..  (225∼226쪽)


 지난 석 달 동안 고흥군 군내버스를 타고, 또 고흥군 군립도서관 계장님 자동차를 얻어 타며 이곳저곳 돌아다녔어요. 요 며칠은 제 자전거를 몰며 이곳저곳 둘러보았어요. 읍내이든 면내이든 더없이 차분하면서 갖출 것을 알뜰히 갖추어요. 놀러 오는 사람이 드문드문 있을 테지만, 우리 식구처럼 살러 오는 사람이 쏠쏠히 있어요. 흙과 바다를 껴안고 살아가는 고흥땅 어버이 품을 떠나 큰도시 학교와 일터를 찾아 떠나는 젊은이가 훨씬 많기는 하지만, 큰도시 학교와 일터를 찾는다면서 떠나고 나면 시끄러운 소리와 매캐한 바람을 마시며 지내는 이들은 머잖아 깨달을 수 있겠지요. 어쩌면 못 깨닫고 말아 고향마을로 못 돌아올는지 모르는데,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고, 풀벌레가 울면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며, 가을날 나락이 익는 소리와 길가 가득 나락을 말리는 내음을 느끼는 터에서 숲과 바다와 들을 헤아리며 몸과 마음이 맑아져요. 몸과 마음이 맑아질 때에 내 삶이 살아나요. 싱싱하게 살아숨쉴 수 있어요. 싱그러이 꿈꿀 수 있어요.

 올가을 어김없이 감이 주렁주렁 맺혀요. 올가을 지난해와 똑같이 가을걷이를 해요. 마을 할매들은 품앗이로 마늘을 심어요. 밭자락에 한 가지 푸성귀만 심을밖에 없지만, 내 식구 먹을 텃밭에는 온갖 푸성귀 골고루 자라요. 아이들이 도시에 나가 살도록 학교에 보내느라 애써야 했기 때문에 논이든 밭이든 한 가지 곡식과 푸성귀만 심어 돈을 벌어야 하겠지요. 이렇게 흙을 일구며 아이들을 ‘도시사람 되도록’ 가르쳤겠지요.

 우리 식구는 집을 마련하고 도서관 새로 열 건물을 짓고 나면 다른 논밭을 장만할 돈이 없어요. 우리 식구는 이곳 시골마을에 들어오더라도 흙을 일구는 살림은 꾸리지 못해요. 그래도 집 둘레로 집보다 넓은 텃밭이 있고, 도서관 둘레로 도서관보다 넓은 흙땅이 있어요. 아이들하고 이 자리에 푸성귀를 심고 나무를 심을 수 있어요. 그냥 풀밭으로 두고는 아이들 흙놀이터로 삼ㅇ을 수 있어요. 고마운 마을이고 고마운 집이며 고마운 흙이에요. 고마운 선물인 흙이며 바람이며 햇볕이며 이웃이며 천천히 느끼면서 받아들이는 나날을 한 해 두 해 꾸리다 보면, 언젠가 짚 앞 논배미 하나 얻어서 나락을 꽂아 볼 수 있을 테고, 집 둘레 다른 빈집을 얻어 밭으로 돌본다든지, 울타리 빙 둘러 나무를 심을 수 있겠지요. 좋은 터에 보금자리를 닦을 수 있으면 좋은 꿈이 잇달아 피어납니다.


 (2) 사랑스레 살아갈 터


 블라지미르 메그레 님이 아나스타시아한테서 이야기를 듣고 찬찬히 생각을 받아적은 책 셋째 권 《사랑의 공간》(한글샘,2007)을 읽습니다. 진작에 다 읽을 수 있었으나, 우리 네 식구 새 보금자리를 어떻게 어디에서 꾸려야 좋을까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아주 천천히 삭이며 읽습니다. 몇 쪽을 읽은 다음 오래도록 생각에 잠깁니다. 몇 쪽을 더 읽고 나서 차분하게 내 삶을 돌아봅니다. 내가 사랑할 삶을 돌아봅니다. 한식구로서 모두 아끼며 좋아할 삶을 헤아립니다.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사랑할 만한가를 가눕니다. 옆지기가 아끼면서 좋아할 삶을 생각합니다.

 《사랑의 공간》은 책이름 그대로 ‘사랑스레 살아갈 터’를 말하는 이야기책이면서, 사람들마다 다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 다르게 살아가는 동안 다 다르게 일굴 아름다운 사랑이 깃들 보금자리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달아 찾을 수 있다고 들려주는 길동무책입니다.


.. 아나스타시아는 말했다. 내가 아들과 어울리려면 나 스스로 일정 수준의 깨끗한 생각을 가져야 하고 속내가 정화돼야 한다고 했다 … “모든 사람들이 받는 교육의 틀로 그 아이를 몰아넣으면서 어찌 그 애가 불운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부모들은 모두 자기 아이들이 커서 행복하길 바라지만 아이들은 커서 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져. 그리 행복하지 않아 … 블라지미르, 주변을 더 주의깊게 살펴봐. 풀, 나무, 꽃들이 자라지. 여기에 물 주는 시간을 미리 날짜 별로 시간 별로 정할 수 있을까?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데, 누군가가 물 주는 날짜와 시간을 지혜롭게 미리 처방했다 해서, 당신은 꽃에 물을 주지는 않겠지.” … “아이들을 방해하지 말고, 하느님이 바라시는 모습으로 그들을 생각해야 해 … 부모의 의무는 그 창조의 빛을 온갖 꾸며낸 독선의 지혜로 가리지 않는 것이야 … 문이 닫힌 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맹이 없는 논쟁은 무한히 계속할 수 있어. 그러나 문을 열기만 하면 모두가 다 훤히 알게 되고 논쟁의 여지가 없어져. 모두 각자의 진리를 볼 수 있으니까.” ..  (18, 152, 153쪽)


 나부터 스스로 예쁜 어버이로 살아갈 때에 아이들 또한 예쁜 아이들로 저희 어버이를 맞아들입니다. 나부터 스스로 착한 어버이로 지낼 때에 아이들 또한 착한 아이들로 저희 어버지를 바라보아요.

 바란다면 꿈을 꾸고, 꿈을 꾼다면 그대로 살아갈 노릇입니다. 바라는 나날을 꿈꾸며 천천히 이루면 됩니다. 싱그럽고 푸른 먹을거리를 바라기에 싱그럽고 푸른 먹을거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고 꿈을 꿉니다. 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신나게 걷습니다.

 좋은 책 하나 읽고 싶다면 좋은 책 하나란 어떤 줄거리를 어떻게 담은 책인가를 곰곰이 꿈을 꿉니다. 곰곰이 꿈을 꾸고 나서 책방마실을 할 때에 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을 사로잡는 책한테 다가갑니다. 내 지갑을 기쁘게 열어 내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이끄는 사랑스러운 책을 장만합니다.

 좋은 집을 바라는 우리들은 좋은 마을에서 좋은 마을사람으로 뿌리내릴 길을 헤아립니다. 좋은 마을에서 우리부터 좋은 사람으로 지내며 좋은 보금자리가 되도록 일구자고 꿈을 꿉니다. 바라면서 꿈이 생기고, 꿈이 생기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살아낼 기운을 얻습니다.


.. “고마워. 착하다. 넓은 마음, 사랑 감사해. 사람들은 알게 될 거야. 반드시 가슴으로 느낄 거야. 지구에서 푸른 빛, 사랑의 빛을 절대 거두지 마.” … “우선은 노랫말 없이 해 보거라, 아네츠카. 새소리를 듣고, 졸졸거리는 물소리, 나뭇잎의 살랑임, 그리고 바람이 세차게 나뭇가지에서 우는 소리를 목소리로 따라해 보거라. 풀에서도 여러 가지 소리가 나지. 원하기만 하면 사방에서 여러 가지 깨끗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 ..  (85, 100쪽)


 아이들을 학교에 넣어야 한다면 아이들한테 무엇을 바라는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어른으로 자라나며 아이들 스스로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가부터 찬찬히 짚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회사원 되기를 바라나요. 아이들이 예술쟁이가 되기를 바라나요. 아이들이 의사나 판사가 되기를 바라나요. 아이들이 저희 삶을 사랑하며 저희 어버이를 아끼고 저희 이웃을 보살필 줄 아는 예쁜 젊은이로 살아가기를 바라나요.

 나는 우리 아이가 흙과 햇볕과 물과 바람과 푸나무를 사랑하면서 아이 삶을 마음껏 누리기를 바랍니다. 아이 먹을거리를 아이 손수 기르고, 아이가 지내는 나날을 아이 스스로 글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마음껏 담아서 펼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사랑스러운 마을에서 사랑스러운 몸가짐으로 사랑스러운 삶을 일구는 나날을 고스란히 아이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꽃피우는 한편, 아이 춤과 노래와 이야기로 여미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좋은 삶을 누리면서 좋은 사랑을 길어올리면 돼요. 좋은 꿈을 북돋우면서 좋은 빛줄기를 나누면 돼요. 좋은 밥을 먹으면서 좋은 삶을 보듬으면 돼요. 어버이 된 나는 아이들한테 돈을 물려줄 수 없어요. 아이들이 씩씩하게 디디면서 흐뭇하게 어우러질 보금자리 하나 마련해서 지킬 수 있어요.


.. “새싹은 잘 보이지 않아. 모두한테 바로 보이는 게 아니야. 마음에 튼 싹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 “영혼이 건강하고 풍부한 사람은 어떤 부와도 비교할 수 없어요.” … “때가 되면 인류는 깨달을 거야. 대학자들이 할머니를 찾아 채소밭으로 올 거야. 배고픔에 지쳐 토마토를 좀 달라고 애원하게 될 거야. 학자와 그가 만든 것들은 오늘 할머니에게 필요없어. 노인은 학자들이 만든 것들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아. 노인은 학자 없이도 잘 살 수 있지만 학자는 노인 없이는 못 살아. 그는 허상의 껍데기 세계 속에, 곽 막힌 세상에 사는 거야. 할머니는 자연의 흙에, 삼라만상의 모두와 함께 하는 거야. 우주에게 할머니는 필요하지만, 그는 필요없어.” ..  (178, 188, 213쪽)


 아이는 아직 참 작고, 어버이인 나는 아직 몸뚱이가 크니까, 나는 아이를 안거나 업으며 시골길을 거닐 수 있습니다. 이제 첫째 아이는 네 살을 지나 다섯 살이 될 테니, 이 아이를 안거나 업으며 길을 거닐면 등허리와 팔이 꽤 저립니다. 아이가 더 크면 더 힘들거나 더 저릴 테지요.

 힘들 때에는 힘들다고 느끼면서 좋습니다. 가뿐할 때에는 가뿐하다고 느끼며 좋아요. 내 몸뚱이에서 솟는 따스함을 아이한테 주고, 아이 몸뚱이에서 피어나는 따뜻함을 어버이가 받습니다. 삼백 살이 넘은 굵직한 느티나무를 살며시 껴안습니다. 아버지가 느티나무를 가만히 껴안으며 숨소리를 느끼려 하니, 아이도 느티나무를 가만히 껴안으며 귀를 댑니다.

 어버이가 마시는 물을 아이가 마십니다. 어버이가 마시는 바람을 아이가 마십니다. 어버이가 디딘 땅에서 아이가 살아갑니다. 어버이가 손에 무엇을 쥐느냐에 따라 아이가 손에 쥘 무언가는 늘 바뀝니다.


 (3) 아나스타시아 집안이 아이와 살아가는 길


 《사랑의 공간》에서는 아나스타시아 집안이 예부터 아이를 어떻게 낳고, 아이와 어떻게 살며, 아이 스스로 어떤 길을 걷도록 돕는가 하는 이야기를 살포시 나눕니다.

 아이를 낳으려 하는 어버이는 어떻게 살아가고,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어떤 일을 하며,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는 어디에서 보금자리를 사랑스레 일구는가 하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눕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트는 새벽동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아나스타시아는 예부터 당신 집안이 이렇게 흘러왔다고 느끼면서 깨달은 이야기가 있으면,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은 우리 집안이 예부터 어떻게 흘러왔다고 느끼면서 깨달을까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내 어버이는, 내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는, 내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는 먼 옛날 어디에서 어떤 일놀이를 누리면서 당신 아이들하고 어우러졌을까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하며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들 먹을거리를 마련해서 함께 먹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들 잠자리에서 생각에 잠기고, 아이들과 시골길을 거닐거나 첫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다니며 생각에 잠깁니다.


..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누구도 왜 다름아닌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설명하지 못해요.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중요한 사람은 단 한 명, 자기가 선택한 사람입니다 … 블라지미르는 과거의 자신을 멋지게 치장하려 하지 않았어요.” ..  (36, 43쪽)


 내 어버이들은 무엇을 할 때에 즐거웠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어떤 일을 즐겼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먼 뒷날에 새로 태어날 아이들을 얼마나 헤아렸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고속도로를 생각해 보았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공장을 꿈꾸어 보았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운동경기나 정치제도나 제도권교육이나 수출이나 토목공사나 관광단지 들을 헤아린 적이 있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돈을 얼마나 바랐을까요. 내 어버이들 손에는 굳은살이 어느 만큼 박혔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이웃을 어떻게 사귀었을까요. 내 어버이들 살던 집은 누가 어떻게 짓고 손질했을까요.


.. “부탁입니다. 여러분들! 직업을 하루 빨리 바꾸세요. 창조주의 위대한 조물인 지구를 해치는 모든 직업을. 부탁입니다. 여러분! 지구에 계속 해를 가하면 지구상의 누구도 행복할 수 없어요.” ..  (252쪽)


 사랑을 누릴 만한 일을 해야 사랑을 누립니다. 사랑이 꽃피울 만한 일을 해야 사랑이 꽃피웁니다. 사랑이 자랄 만한 놀이를 함께 해야 사랑이 자랍니다. 사랑이 무르익을 만한 보금자리를 돌보아야 사랑이 무르익습니다.

 돈을 바라며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는다면 돈이야 벌겠지요. 경제성장이야 이루겠지요. 그리고, 돈을 벌고 경제성장을 이루는 만큼 우리 삶 한구석이나 우리 삶 구석구석이 와르르 무너지겠지요. 고속도로를 새로 깔면 자동차야 더 빨리 싱싱 달릴 테지만, 그만큼 자동차 배기가스와 고무바퀴 먼지가 날릴 뿐 아니라, 싱그러운 숲자락이 사라져요.

 이야기책 《사랑의 공간》은 아나스타시아 집안 사람들이 무엇을 사랑하면서 살아왔는가를 보여줍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버이 두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가를 온몸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4344.10.26.물.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10-2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특히 감기가 심해서
멍하니 된장님의 글을 읽다가 갑자기 울컥해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요즘 지쳤나봐여, 살아갈 터에 대한 글이 유난히 뭉클하게 다가오네요.

숲노래 2011-10-28 16:34   좋아요 0 | URL
좋은 터에서 살아가면서
어른과 아이가 모두
몸이랑 마음을
사랑스레 쉴 수 있으면 넉넉하리라 믿어요.

차근차근 마녀고양이 님네
보금자리를 돌보아 보셔요~

차츰차츰 기운 차리시리라 믿어요~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흙을 만져야 내 몸이 살아난다
 [책읽기 삶읽기 77] 데이비드 몽고메리,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삼천리,2010)



 혼자 책을 짊어지며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언제나 ‘책을 둘 곳’을 헤아리면서 내 살림집을 찾았습니다. 책을 둘 만한 넉넉하고 볕 잘 드는 곳인가를 생각했고, 여러 책방을 가까이 찾아가기에 괜찮은 목인가를 돌아보았습니다. 내 몸이 느긋하게 쉴 곳인가는 거의 살피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살 만한 집인가보다 책이 깃들기에 좋은 데인가를 보았습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요즈음은 달리 생각합니다. 책은 어떻게든 곰팡이가 피지 않는 데에 둘 수 있기를 바라면서, 네 식구 깃들 사랑스러운 터전을 헤아립니다. 네 식구가 먼저 사랑스레 살아갈 만한 터전이어야 좋은 보금자리로 여겨 옮기지, 네 식구가 살가이 지내기 힘든 데라면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없는 살림으로는 꿈처럼 바라는 곳으로 가기 힘듭니다. 짐차를 불러 옮기는 값부터 만만하지 않으나, 좋은 시골자락 터란, 땅과 집을 장만해서 옮겨야지, 빌려서 들어가면 애써 잘 꾸며 살 만하게 고치면, 금세 집임자나 땅임자한테 쫓겨납니다. 이러다 보니 선뜻 꿈을 꾸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해요.

 어찌해야 좋을까를 놓고 여러 달 망설이고 알아봅니다. 이곳으로 우리 깜냥껏 옮길 만한지 가늠하고, 저곳에서 우리를 불러 주는데, 우리가 옮겨도 될 만한가 어림합니다. 어느 쪽이 되든 마땅한 집터와 책터를 찾기까지는 퍽 품을 들여야겠지요. 오래오래 눌러살 생각이라면, 네 식구가 모조리 가볍게 짐을 싼 뒤 ‘우리가 좋아할 만한’ 마을로 찾아가서 방을 하나 얻은 다음, 좋은 살림집을 찾기까지 눌러지내야겠지요.


.. 흉작일 때 아무런 구제책이 없는 소작농들은 기근 동안 음식을 구경할 수 없었지만, 시중에는 먹을거리가 많았다. 생계 수단을 잃은 농민들은 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살 수 없었다 … 기근이 이어지는 동안 정부들은 곡물을 수출했고, 그렇게 20세기로 접어들었다. 소비에트 농부들은 1930년대에 굶주림에 시달렸다. 중앙정부가 농부들이 수확한 것으로 도시를 먹이고 해외시장에 내다 팔아서 번 돈으로 산업화의 비용을 댔기 때문이다 … 기근이 이어지는 동안 19세기 말 무렵에 유럽 나라들은 대개 수입 식품으로 국민들을 먹였다 ..  (154∼155쪽)


 옆지기와 함께 읽는 ‘아나스타시아’를 떠올립니다. 러시아 타이가 잣나무숲에서 살아가는 아나스타시아는 식구들이 살아갈 보금자리는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둘째로 좋거나 셋째로 좋은 데가 아닌 가장 좋다고 여기는 곳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해요.

 첫째로 좋다고 여길 만한 데라기보다 둘째나 셋째로 괜찮다고 여길 만한 데로 옮기려고 생각하던 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넷째나 다섯째 자리라 하더라도 마음을 느긋하게 내려놓을 데라면 되리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첫째가 아니고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한 번 받은 고마운 목숨을 살아가는 나날인데, 돈 걱정이나 집 걱정에 앞서, 아름다운 삶이 되는가 아닌가를 따져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하루하루 자라면서 보고 들으며 부대낄 좋은 보금자리인가 아닌가를 아로새겨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늘 즐거운 터전이어야 합니다. 낮에 신나게 뛰놀고 밤에 새까만 별하늘을 올려다볼 터전이어야 합니다.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있고, 너른 멧자락과 파란 바다를 이웃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길이 잘 뚫린 데라든지, 이름나거나 훌륭하다는 학교가 가까이 있다 한들 부질없습니다. 아이 삶을 보건대, 이런 물질과 문명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한테는 지식이 덧없습니다. 아이 삶이 가장 대수롭습니다. 날마다 숨쉬고 마시며 먹는 자연이 가장 대수롭습니다.


.. 흙의 침식이 고대사회들을 무너뜨렸고 오늘날의 사회도 심각하게 뒤흔들 수 있다는 무시 못 할 증거 앞에서도 지구적인 흙의 위기와 식량 부족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경고는 허공으로 흩어진다. 이미 1980년대 초반에 농업경제학자 레스터 브라운은 현대 문명이 석유보다 먼저 흙을 다 써 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이어진 그런 불안한 예측들을 한귀로 흘려 버리면서 전통적인 자원경제학자들은 흙의 침식이 식량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을 지나쳤다. 그러나 침식 탓에 농경지에서 흙이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흙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그런 관점은 먼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다. 흙의 유실이 중대한 문제로 떠오르는 때가 2010년이냐 2100년이냐 하는 논쟁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  (246쪽)


 이야기책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삼천리,2010)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서양사람들은 흙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오늘날에도 아직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동양사람들은 흙을 거룩하게 여겼습니다. 오늘날에는 동양사람들 가운데 퍽 많은 이들이 서양사람들처럼 흙을 하찮게 여깁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흙을 하찮게 여깁니다. 도시에서 보금자리를 얻어 지낸다고 할 때부터 흙을 하찮게 여기고 맙니다.

 흙은 문명도 물질도 과학도 아닙니다. 흙은 오로지 자연이고 삶이며 목숨입니다.

 사람은 문명이나 물질이나 과학이라는 옷을 입으면, 몸을 덜 쓰거나 땀을 안 흘리면서 돈은 넉넉히 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사람이라 하더라도 밥을 먹어야 하고 숨을 쉬어야 하며 물을 들이켜야 합니다. 밥·숨·물이 없이 어떤 사람이 몇 초나 살아숨쉴 수 있겠습니까. 밥·숨·물이 없는데 돈·힘·이름으로 무얼 할 수 있는가요.


.. 우리는 우리 두 발과 집, 도시, 논밭을 떠받치고 있는 땅에 대해서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  (8쪽)


 이야기책 《흙》은  수많은 보기를 오랜 발자국을 더듬으면서 하나하나 알뜰히 짚습니다. 바보스레 살아온 서양 문명 사회를 낱낱이 꼬집거나 나무랍니다. 384쪽에 이르는 줄거리는 한결같습니다. 머리말에 한 줄로 적은 말마디처럼, 《흙》은 예나 이제나 “우리 두 발과 집, 도시, 논밭을 떠받치고 있는 땅에 대해서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슬프며 안타까운 사람들 근심스럽고 안쓰러운 삶자락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흙을 먹고 흙을 입으며 흙에 몸을 누여 살아가는 목숨입니다. 흙을 잊는다면 사람은 사람 구실을 못 합니다. 흙하고 멀어지면 몸은 자질구레한 못난 것들이 스며들어 무너지기 때문에 자주 아프고 오래 앓습니다. 흙을 만져야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습니다. 적어도 텃밭을 돌보거나 조그마한 꽃그릇을 건사해야 사람다움을 살포시 잇습니다. (4344.9.10.흙.ㅎㄲㅅㄱ)


―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씀,이수영 옮김,삼천리 펴냄,2010.11.26./19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리내는 잣나무 아나스타시아 2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한병석 옮김 / 한글샘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으로 부르는 소리를 듣는가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3] 블라지미르 메그레, 《소리내는 잣나무》



- 책이름 : 소리내는 잣나무
- 글 : 블라지미르 메그레
- 옮긴이 : 한병석
- 펴낸곳 : 한글샘 (2007.10.20.)
- 책값 : 12000원


 (1) 소리 듣기


 나는 내 귀가 받아들이는 소리를 좋아합니다. 온누리 모든 소리가 하나같이 듣기 좋다고는 여기지 않으나, 내가 즐거이 살아갈 터전에서 고맙게 들을 수 있는 소리라면 모두 좋아합니다.

 멧자락 한켠에 깃든 시골집에 머물며 멧자락을 둘러싼 숲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한테는 자가용이 없기 때문에 ‘터지는 소리(폭발음)’를 우리 스스로 낼 까닭이 없고, 들을 까닭이 없으며, 퍼뜨릴 까닭이 없습니다. 참말 자동차 소리는 무시무시합니다. 시끄럽습니다. 자동차가 한 번 지나가기만 하더라도 멧골자락이 조용해집니다. 멧골자락 다른 소리들은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랑 자동차 부르릉거리며 달리는 소리에 주눅이 듭니다. 다른 어느 소리도 받아들이지 않아요.

 우리 집에는 보일러가 있습니다. 보일러 또한 ‘터지는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보일러 터지는 소리는 풀벌레나 멧새나 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잠재우지 않습니다. 보일러가 돌건 말건 풀벌레나 멧새나 개구리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살포시 둘레 목소리와 노랫소리하고 녹아들어요.


.. “사람이 우울한 상태에 있으면 병을 고치기 어렵고, 약도 도움이 안 돼. 그런데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면 병은 금세 사라져 … 육신의 병이 나타나는 이유는 사람이 스스로 자연과 멀어진 때문이기도 하고 또 스스로 품는 어두운 감정 때문이기도 해. 그뿐 아니라 질병이란 훨씬 더 큰 고통에 대한 경고이거나 그것을 막는 것이기도 하지 … 하느님은 당신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거야. 통증으로 말씀하시지. 이 고통은 당신의 고통이지만, 그의 것이기도 해. 하지만 당신은 진통제를 먹어 가며 계속 자기 방식대로 살지. 통증이 무엇 때문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아 … 다른 모든 진리도 사람들은 다 알아. 행하지 않을 뿐이야.” ..  (32, 38, 69, 70쪽)


 사람들 발자국 소리나 이야기 소리 또한 풀벌레가 울던 소리를 잠재웁니다. 사람들이 떠들거나 복닥거리는 소리가 나면 풀벌레이든 멧새이든 개구리이든 소리를 뚝 그칩니다. 사람들 스스로 얼마나 느낄는지 모릅니다만, 자연하고 하나로 얼크러지려는 사람이 아니라 한다면 풀벌레이든 멧새이든 개구리이든 그저 가만히 기다립니다. 이놈들이 얼른 이곳에서 사라져 주기만을 기다립니다.

 나는 사람들 발자국 소리나 이야기 소리를 딱히 싫어하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사람들 말소리가 구수하거나 따사롭거나 살갑지 않습니다. 둘레에 어떤 목숨붙이가 어떤 보금자리에서 어떤 삶을 잇는가를 헤아리지 않는 사람들 목소리는 ‘같은 사람’으로서 듣기에도 영 못마땅합니다.

 멧골집에서 볼일을 보러 큰도시로 나간다든지, 먹을거리를 좀 장만하려고 읍내 장마당에 나간다든지 하면, 금세 소리가 바뀝니다. 마을길로 접어들면 풀벌레나 멧새 소리는 잦아듭니다. 두찻길밖에 안 되는 한길이라지만, 읍내로 이어지는 시골길에 접어들면 ‘오가는 자동차가 아주 적어’도 풀벌레나 멧새나 개구리가 마음껏 노래하지 않습니다. 그예 쥐죽은 듯한 소리라고 할까요.

 읍내에 닿으면, 시골자락이라 하더라도 여느 자연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다른 큰 도시처럼 귀를 쩌렁쩌렁 울리면서 따갑게 퍼지는 소리까지는 아니나, 보드라우면서 맑은 소리가 이곳 읍내를 감돌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오가고, 가겟집에서 소리가 흘러나오며, 뜻없는 사람들 뜻없는 말소리가 울려퍼집니다.


.. “당신은 받은 게 그리 많음에도 왜 행동하지 않아? … 진리를 아는 것은 그것을 큰 소리로 말하는 데 있지 않아. 그건 생활양식에 있는 거야.” … “영혼이 어느 정도 무감각해지고 어떤 심연의 어둠에 빠져야 주위에 일어나는 일을 의식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을까?” … “내가 한 말 모두를 당신이 계속 의심한다면 내가 무슨 증거를 대도 당신은 그걸 알 수 없거나 의심할 거야.” ..  (165, 170, 194, 262쪽)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를 떠올립니다. 고향집 인천에서든, 옆에 붙은 서울에서든, 이러한 데에서 지낼 때에는 자연이 나누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너무 고요했습니다. 깊은 밤 아무런 자동차가 오가지 않을 때조차 풀벌레라도 울어 주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달빛이나 별빛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도시입니다. 달빛조차 볼 수 없고 별빛조차 느낄 수 없으니, 달빛소리나 별빛소리를 어떻게 듣겠어요. 가끔 비둘기 소리를 듣는다거나 참새 소리를 듣지만, 이나마 들을 수 있으면 참 고마운 노릇입니다. 거의 하루 내내 자동차 시끄러운 소리에다가 가겟집 소리에다가 뜻없는 말소리만 가득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며 나눌 사랑어린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귀에 대고 “사랑해.” 하고 속삭인대서 사랑어린 소리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어린 소리란 나비 날갯짓 소리입니다. 사랑어린 소리란 바람이 풀잎을 흔드는 소리입니다. 사랑어린 소리란 개구리가 논물에서 헤엄치는 소리입니다. 사랑어린 소리란 도토리가 톡 떨어지며 또르르 구르는 소리입니다.

 귀가 있대서 모든 사람이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귀가 있지만 소리를 듣는다기보다 소리에 무디어지곤 합니다. 눈이 있대서 모든 사람이 모습을 보지 않습니다. 눈이 있으나 모습을 보기보다 모습에 무뚝뚝해지곤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풀내음을 옳게 맡지 못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을 흙내음에 싱그러운 기운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즈막 사람들은 물내음에 온몸을 정갈히 다스리지 못합니다.

 뜬소리이든 막소리이든 두 귀로 얼마든지 주워담을 수 있습니다. 삶소리이든 자연소리이든 두 귀로 마음껏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무엇을 꿈꾸고 어디를 바라보며 어떤 사랑을 일구려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소리 하나로 이루려는 꿈이 무엇인가에 따라 사람들마다 걷는 길이 바뀌겠지요. 아파서 눈물짓는 지구별 울음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으나, 아프기에 한숨짓는 이웃사람 울음소리에 귀를 막거나 한귀로 소리를 흘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리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소리는 누구나 듣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소리이지만, 느끼지 못할 만큼 몹시 바쁜 도시자락이요, 이제는 시골자락이래서 느긋하거나 넉넉한 소리결이 되지 못합니다. 누구나 듣는 소리이건만, 들을 때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할 만큼 아주 힘든 도시자락이면서, 언제부터인가 시골자락마저 포근하거나 따사로운 소리마디가 되지 못합니다.


..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요.” “마음으로 감사하다 할 수 있지.” “소리도 없이요? 누가 그걸 듣는다고?” “마음으로 듣는 사람은 듣는 법이지.” … “사랑이 들어 올릴 수 있는 자만이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네 … 자네와 대화하면서 그 애는 생각을 늦추지 않고 오히려 더 빨리 했다네.” … “교만은 부자연스러운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그게 산 영혼을 가리는 거야. 바로 이 때문에 과거의 철학자들과 오늘의 천재들이 별반 짓는 게 없는 거야. 첫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자만에 싸여 처음에 받은 걸 다 잃어버리는 거야.” ..  (219, 220, 227쪽)


 눈으로 보는 사람은 눈으로 봅니다만,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않기 일쑤입니다. 마음으로 듣는 사람은 마음으로 듣습니다만, 내 마음에 들리면서도 믿지 않기 일쑤예요. 소리들이 슬프게 눈물을 흘리면서 시나브로 죽습니다.


 (2) 이야기 듣기


 아나스타시아 두 번째 이야기 《소리내는 잣나무》(한글샘,2007)를 읽습니다. 아나스타시아 이야기를 글로 써서 책으로 내는 블라지미르라는 사람은 이 책에서 더할 나위 없이 ‘바보스러운 사람인 듯’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블라지미르라는 사람이 하는 짓은 참말 하나같이 바보스럽거든요. 참을 코앞에서 마주할 뿐 아니라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거짓을 눈앞에서 맞이할 뿐 아니라 온몸으로 치르면서도 옳게 깨닫지 못합니다. 참에 눈멀고 거짓에 속아넘곤 합니다. 참을 뒤로 젖히고 거짓에 손을 담그곤 합니다.

 그러나, 블라지미르라는 사람이 바보짓을 일삼는대서 블라지미르라는 사람이 바보이지는 않습니다. 블라지미르라는 사람이 껍데기를 벗기까지는 이런 일을 겪어야 하니까 바보스레 부대낄밖에 없습니다. 바보스레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깨지거나 넘어지면서 비로소, 좀 늦게 알아챕니다.

 잘 살피면, 블라지미르는 ‘좀 늦게 알아채며 뉘우친다’ 하더라도 옳게 받아들이면서 깨닫습니다. 블라지미르처럼 ‘바보스럽지 않다’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속아넘어가지 않을 뿐, 참다이 살아가거나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곤 합니다.

 나는 어느 쪽이 더 낫거나 덜 떨어지는지 모릅니다. 어느 쪽을 더 낫다고 여겨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마음그릇에 걸맞게 다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다 다른 삶을 다 달리 아름다이 일구는 뜻을 찾기 마련입니다. 러시아에서는 러시아대로 아름다운 삶길을 찾고, 한국에서는 한국대로 아름다운 삶길을 찾으며, 칠레에서는 칠레대로 아름다운 삶길을 찾으면 돼요.


.. “블라지미르, 내가 살 곳은 여기야. 여기에 있어야만 난 나의 소명을 다 할 수 있어. 부모가 지은 사랑의 공간보다 더 큰 힘을 주는 것은 세상에 없어 … 앵두나무는 죽지 않았던 거야. 앵두나무의 생각과 열의, 그리고 감정이 너무나도 순수했고, 그래서 죽지 않은 거야. 누구도 무엇도 순수한 사랑을 없앨 수 없어.” … “더 이상 사람들을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아담과 이브의 사과로 유혹은 그만해야 해요. 이제 사람들이 느껴 볼 수 있게 해 주어야 해요. 과거에 사람이 느낀 대로, 사람의 능력이 어땠는지 사람이 누구인지 한 번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해요.” … “새벽의 장관은 감상해야 하는 것이지, 왜 그런지 따지고 캐기 시작하면 황홀한 감동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아무런 결과도 없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논리일 뿐이야.” ..  (33, 53, 221, 222쪽)


 한국땅 곳곳에 고인돌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아이들은 학교를 다닐 때에 고인돌 이야기를 배웁니다. 그러나, 고인돌이 왜 고인돌이요 이 고인돌에 어떠한 빛이 깃들었는가를 가르치지 않으며 배우지 않습니다. 그저 크기를 재고 연대를 따지며 무슨무슨 부족이니 씨족이니 겨레이니 하는 ‘역사’ 지식조각을 그러모을 뿐입니다.

 돌이켜보면, 고인돌 하나만 이러하지 않습니다. 역사책에 담기는 이야기는 온통 지식조각입니다. 조각조각 찢긴 지식입니다. 살아가는 슬기나 살아가는 아름다움이나 살아가는 빛줄기를 담은 역사책은 없습니다. 다른 교과서라 해서 이와 같은 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지식조각으로 이루어지는 교과서이고, 이 지식조각 교과서를 머리에 쑤셔넣겠다는 학교입니다.

 옛사람은 왜 고인돌을 빚었는지 헤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책이고 교과서요 역사이면서 학교입니다. 옛사람이든 ‘오늘사람’이든 ‘앞사람’이든,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보살피는 참길을 착하게 일구는 나날을 즐기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돌아보도록 이끌지 않는 책이고 교과서요 역사이면서 학교예요.

 어머니는 아기한테 젖을 물립니다. 아기가 커서 젖을 떼면 어머니(이든 아버지이든) 자리에 서는 사람들은 아이한테 밥을 차려 줍니다. 어머니는 아기한테 왜 젖을 물릴까요. 어버이 되는 사람들은 왜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줄까요.

 밥은 왜 먹어야 하나요. 밥을 먹으며 목숨을 잇는 우리들은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 사람인가요. 어떤 목숨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가요. 어떤 삶을 내 손으로 일구는가요. 어떤 사람을 사귀려 하는가요. 어느 곳에서 내 보금자리를 곱게 돌보려 하는지요.


.. “손이 사랑으로 땅을 만진 것이지. 기계가 아닌 바로 사람의 손으로 자기 토지의 흙을 다정하게 만져 주었지. 땅은 느꼈어.” … “책은 표지를 잘 만들려면 화가가 있어야 하는데, 마음을 담아내야 하오. 의미와 목적에 맞아야 하오.” … “콘크리트 벽에 싸여 태어나는 자기 아이한테 여자가 줄 게 뭐가 있을까? 그녀는 아이한테 어떤 세상을 준비해 놓았을까? 아이가 태어나 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생각이라도 해 봤을까? … 엄마가 창조하고 선사한 이 사랑의 공간에서라면 그 존재는 어떤 것도 무서울 것이 없는 거야 … 모유를 먹는 갓난아기에게 모유와 함께 지난 세월의 깨달음과 지혜를, 심지어는 태초의 것까지 전달할 수가 있는 것이지.” ..  (80, 141, 199, 200, 201쪽)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흙일꾼들이 ‘풀베는 기계(예초기)’를 써서 풀을 깎는 모습을 보면 몹시 슬프면서 아픕니다. 풀은 끔찍하게 목덜미가 잘리면서도 풀내음을 남깁니다. 죽음과 두려움이 서리는 풀내음인데, 풀은 참말 풀이라서 죽음과 두려움이 서리는 풀내음이라 하더라도 사람 코에는 푸른 빛깔입니다. 참 대단하지요. 풀은 이렇게 끔찍하게 죽으면서도 푸른 빛깔을 남겨요. 사람은 숨을 거둘 때에 이 흙에 무엇을 남길 만한가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이 누리에 어떤 빛깔을 아로새기는가요.

 풀베는 기계에 목덜미가 잘리는 풀은 ‘기계에 잘려 둘레로 흩뿌려질’ 때에 마치 총알처럼 휭휭 날아가 박힙니다. 풀은 스스로 총알이 되고 싶지 않았을 테지만, 기름을 먹는 기계 칼날에 목덜미가 잘리면서 마치 총알처럼 되고 맙니다. 기계로 풀을 베는 자리 둘레로 지나가던 사람이 이 풀조각 총알을 맞으면 살이 찢기거나 아주 따갑습니다. 기계로 풀을 베는 사람은 한여름에도 두툼한 바지에 두툼한 긴소매 옷을 입으며, 얼굴은 수건이나 가리개를 뒤집어씁니다. 옆에서 누가 소리를 치며 불러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기계소리가 워낙 크고, 기계에 잘리는 풀이 내는 소리가 대단히 크거든요.

 풀약을 먹고 말라죽고 만 길가를 지날 때면 언제나 죽음이 번진 냄새를 맡습니다. 기계에 목덜미가 잘린 풀밭을 지날 때에도 노상 죽음이 퍼진 냄새를 맡습니다. 낫으로 풀을 베거나 호미로 풀을 캔 자리를 지날 때에는 죽음내음을 맡지 않습니다. ‘손으로 만진 땅’과 ‘기계로 만진 땅’은 땅거죽부터 느낌이 사뭇 달라요.


.. “잣나무도 같아. 느끼고 이해하는 사람만이 많은 걸 들을 수 있는 거야 … 하지만 그 안락이란 오류고 허상이야. 사람은 세상의 로봇이 되고 말아. 삶의 본질을 사색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시간이 항상 부족해. 자기 삶에 대해서도 숙고할 시간이 없어. 사람은 프로그램된 로봇과 같은 거야. 지금 당신은 직접 눈과 귀로 보고 듣지만 믿지는 못하고 있어 … 사랑하려면 먼저 이웃을 알아야 해. 모르는 사람을 사랑할 순 없지 … 지구의 한편에서 기후변화가 일어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는 신호라고 받아들였지. 그곳이 쉴 수 있게 … 자연과 달리 이런 매커니즘, 기계들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해. 자신을 재생산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고장이 나면 나무와 달리 스스로 복원되지도 않아. 때문에 이 기계장치를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고, 사실상 많은 사람들을 바이오로봇으로 만들어 버렸어. 바이오로봇은 진리를 스스로 깨닫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조종이 아주 쉬워.” ..  (247, 250, 254, 256쪽)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둘째 권을 읽으면서 곰곰이 되짚습니다. 아버지라는 자리에서 살아가는 몸으로 돌아보자면, 나는 우리 두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야 할 만한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옳게 건사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보금자리에서 새 목숨을 즐거이 누리도록 해야 하는가를 참다이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이들이 태어나서 살아갈 집’을 참다이 살피지 않는대서, 내가 참다이 살피지 않은 일을 둘러댈 수 없습니다. 다른 여느 사람들을 슬프게 바라보기 앞서, 나는 나부터 내 삶을 슬프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슬픈 내 삶을 옳게 깨달아, 기쁜 내 삶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3) 사랑 듣기


 사람을 살찌우는 밥은 가공식품이 아닙니다. 사람을 살찌우는 밥은 사랑어린 밥입니다. 사랑어린 손길로 사랑어린 ‘목숨 깃든 먹을거리’를 손질해서 마련한 밥일 때에 비로소 사람을 살찌울 수 있습니다.

 ‘어머니 손맛’이나 ‘맛집 멋집’이 사람을 살찌우지 않습니다. 사랑어린 손길로 지은 밥일 때에 목숨을 새로 짓습니다. 어머니가 차려 주든 아버지가 차려 주든, 또 할머니가 차려 주든 할아버지가 차려 주든, 사람을 살찌우는 밥이라 할 때에는 반드시 사랑이 어려야 합니다. 미움이든 시샘이든 꿍꿍이셈이든 깃들어서는 안 됩니다. 돈벌이 꾀하려는 마음이든 이름값 높이려는 마음이 깃들어서는 안 됩니다. 내 밥솜씨를 자랑하려는 밥차림이란 사람을 살찌우지 못합니다. 멋들어진 밥집으로 모셔서 밥 한 끼니 올린다 해서 사람을 살찌우지 못해요.


..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애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주로 읽어. 왜 그렇지?” “그건, 그런 책은 읽으면서 생각할 필요가 거의 없기 때문이야. 성경은 깊이 생각하며 읽어야 하고, 여러 문제에 대해 스스로 답해야 해.” ..  (65쪽)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하고, ‘우리가 품어야 할 생각’에는 꼭 사랑이 감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할 사람이어서는 산 목숨이 아닌 죽은 목숨입니다. ‘사랑이 감도는 따사롭고 너그러운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비로소 산 목숨이요 산 사람입니다.

 깊이 생각한대서 깊다 할 만한 생각을 얻지 않습니다. 사랑스레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스레 널리 헤아려야 합니다. 사랑스레 따사로이 껴안아야 합니다. 사랑스레 글줄을 적바림해야 합니다. 사랑스레 붓질을 하고, 사랑스레 사진기 단추를 눌러야 합니다.

 사랑스레 부를 노래요, 사랑스레 출 춤입니다. 사랑스레 껴안을 옆지기요, 사랑으로 품에 안는 아이들입니다.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자동차를 타거나 전철을 탑니다. 이러한 탈거리를 몰아야 한다면, 힘들겠지만 사랑을 실어 운전대를 잡아야 합니다. 이러한 탈거리에 몸을 실었으면 내 사랑을 고이 펼치면서 찻삯을 치러야 합니다. 셈틀 자판을 또닥거리며 일하는 회사원이라 하더라도 셈틀 단추를 켜서 불을 넣을 때에 내 따순 사랑을 실어야 합니다. 따순 사랑이 없다면, 텃밭을 일구면서도 살진 푸성귀를 얻지 못합니다. 따순 사랑이 없을 때에는, 제아무리 멋들어진다는 사랑노래를 부른다는 이름난 노래꾼이라 하더라도 가슴으로 벅차오르는 기쁨을 들려주지 못합니다.


.. “택일이라고요? 아이는 아무 때나 나오잖아요.” “아무렇게나 잉태하니까 아무 때나 나오지. 엄마는 언제고 아기의 탄생을 당기거나 늦출 수 있어.” … “그녀한테 왜 내가 필요하죠? 실험용? 무슨 목적이죠?” “그 애는 그냥 사랑한 거야, 블라지미르. 언제나 그렇듯 진정으로. 자네가 사는 세상에서 여자에게 기쁨을 주는 그런 사람을 택하지 않아서 그 애는 행복하다네. 우월한 지위에 자신을 놓지 않은 것일세. 자기가 다른 모든 여자와 같은 것이 기쁘다네.” ..  (187, 191쪽)


 아나스타시아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이 ‘아나스타시아가 이 이야기책에 담은 사랑’을 느끼면서 ‘사랑을 느낀 내가 내 둘레 살붙이부터 내 이웃과 동무 모두한테 예쁘게 사랑을 나누는 길’을 잘 살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나누려 할 때에는 참말 사랑을 나눕니다. 사랑을 나누려 하지 않았으면 언제까지나 사랑을 나눌 수 없습니다. (4344.9.6.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