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야생으로 - 시튼의 야생동물 이야기 6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장석봉 옮김 / 지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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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다시 야생으로
- 글쓴이 : 어니스트 톰슨 시튼
- 옮긴이 : 장석봉
- 펴낸곳 : 지호(2004.2.27.)
- 책값 : 11000원



 이 책 하나 34 ― ‘멧돼지, 너구리, 박쥐’는 우리 이웃
 :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다시 야생으로》를 읽고



 (1) 사진과 삶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을 기꺼이 내걸어 주면서 사진잔치를 열어 주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저녁도 얻어먹고 술도 얻어마십니다. 저녁 먹는 밥집에서 나물 반찬을 많이 내어줍니다. 달래무침이 보이고 원추리무침이 보입니다. 쉬 맛볼 수 있다면 쉬 맛볼 수 있는 나물이지만, 쉬 맛보기 어렵다면 쉬 맛보기 어려운 나물입니다. 아직 봄이 아니라 이런 나물을 맛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만, 비닐집에서도 키우고 중국에서도 사들이고 있을 테지요.

 원추리무침을 냠냠짭짭 하다가 문득, 이 원추리무침이 원추리무침인 줄 아는 분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추리가 봄에 노랗게 고운 꽃을 피우는 줄 아는 분은 또 얼마쯤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제 그 말들도 콜리베이가 자신들과 같은 동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절대로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운 야성의 피가 흐르는 말이라는 것을. 자줏빛으로 물든 평원에 밤이 찾아왔을 때 녀석은 야생마 무리 속에 섞여 있었다. 어둠 속에서 길고 힘든 여행을 한 끝에 드디어 고향을 찾은 것이다 ..  (29쪽)


 밥집 나물 반찬을 여러 그릇 비웁니다. 그렇게까지 맛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으나 나물 반찬이었기에 자주 손이 갑니다. 좀 시고 달고 짠 맛이 있습니다. 양념을 많이 하신 듯합니다. 버섯칼국수를 먹는데, 여기에 넣는 양념도 아주 목과 혀를 건드릴 만큼 맵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사람이나 맵다고 느끼지, 다른 분들은 괜찮다고 말합니다.

 저와 옆지기는 나물을 먹을 때 따로 무치지 않습니다. 그냥 날것 그대로 물에 헹구기만 해서 먹습니다. 무도 배추도 날것 그대로 먹습니다. 정구지도 그냥 먹으면 더 맛납니다. 시금치도 얼갈이도 흙만 씻어내고 먹습니다. 이렇게 먹으면서 풀맛이 참 달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배부르게 먹지 못합니다. 익힌 푸성귀는 배부르도록 먹으면서도 더 먹게 되지만, 날 푸성귀는 많이 먹지도 못하게 되고 꼭 배에 알맞도록만 먹게 됩니다.


.. 그곳에는 인간이 마련해 주는 맛있는 목초도 없고 곡물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야생의 질긴 풀과 드넓은 평원, 그리고 그곳으로 불어오는 바람뿐이다. 그러나 콜리베이는 이곳에서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는 것을 얻었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  (31쪽)


 사진잔치를 여는 곳에서 여러 분들하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분이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진기로 담아내는 모습은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에서 어느 한 순간을 훔치는 일’이 아닐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한 말씀 올립니다. “어떤 사진은 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한 순간을 훔치는 사진일 수 있을 테지만, 제가 사진을 찍으면서 느끼기로는, 제가 그분 삶에서 한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내면서 그 순간을 선물해 드리는구나 싶어요.” 하고.

 한 분이 말씀합니다. “디지털사진으로 찍기보다는 필름사진도 함께 찍어 보면, 사진을 찍는 맛을 남달리 느낄 수 있”다고. 저는 필름과 디지털 두 가지 모두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느낀 대로 한 말씀을 올립니다. “필름사진이라고 해도 똑같이 기계이고, 디지털사진이라고 해도 똑같이 손이 많이 가게 되어요. 둘은 좋은 대목과 아쉬운 대목이 다르게 있으니, 이 다름을 잘 느끼고 헤아리면서 찍으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이제는 필름사진 쓰는 이가 많이 줄어서 예전처럼 여러 가지 필름을 고루 쓰지 못해 아쉬워요. 디지털은 무엇보다도 돈 나가는 소리가 적게 들려서 좋기도 하지만, 필름보다 좀더 자유롭게 흐름을 죽 이어가면서 담을 수 있는 좋은 대목을 살리면 한결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하고.


.. 5월의 숲은 먹을 게 풍족하다. 일찍 피는 작은 꽃들에는 대개 양분의 저장소인 구근이 있다. 꽃이 없어지면 그 다음에는 딸기가 식량이 되었다. 하지만 독이 있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자비로운 만물의 어머니는 그런 식물은 아주 고약한 냄새나, 얼얼한 맛이 나거나 아니면 따끔따끔하게 만들어 놓아서 숲에 사는 현명한 돼지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 어미는 독이 있는 식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새끼들은 어미를 따라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아 보면서 그런 식물에 대해 알아갔다 ..  (37쪽)


 그러게.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요즈음 우리 둘레에서 사진기 없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손전화에는 기본으로 사진 기능이 담겨 있습니다. 스스로 ‘작가’라는 이름만 안 붙이고 있을 뿐이지, 누구나 사진을 찍거나 즐기면서 살아간다고 느껴요. 그런데 참말로 사진을 즐기는 사람은 몇 사람쯤 될는지요. 사진을 그저 찍어대기만 하고, 못 즐기면서 지내지는 않나요. 사진 찍는 재미를 느끼지 않을 뿐더러, 느끼려는 마음도 없지는 않나요.

 일을 하는 재미나 즐거움, 놀이를 하는 재미나 즐거움, 사람을 만나는 재미나 즐거움, 책을 읽는 재미나 즐거움, 무엇보다 우리한테 주어진 목숨 하나 부여잡고 살아가는 재미나 즐거움을 얼마쯤 헤아리는 우리들일까요.


.. 그렇다면 야생동물들이 사용하는 치료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숲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일광욕, 냉수욕, 따뜻한 진흙욕, 단식, 물 치료, 구토, 설사약, 먹이나 사는 장소를 바꾸는 것, 휴식. 그리고 다친 부위를 혀로 핥는 것들이다. 그러면 치료법을 처방하고 치료 시간을 정해 주는 의사는 누구일까? 단 하나, 그것은 “몸의 갈망”이라는 의사이다 ..  (71쪽)


 서울에서 인천으로 돌아가는 전철길, 건너편 마주앉은 아주머니 한 분이 삼십 분이 넘도록 손전화로 이야기를 합니다. 큰 목소리로. 아주머니가 건 손전화 건너편 사람과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가를 우리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셨을까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꾸벅꾸벅 졸다가 엉뚱한 데에서 내리지 말라는 뜻일까요.

 왱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립니다. 덜컹거리는 전철 소리로도 버거운 귀는 수다 소리에 시달리고 들볶이며 아파 옵니다. 어지러워서 눈을 감습니다. 눈을 감아도 소리는 들립니다.


.. 이 강인한 멧돼지 전사가 싸워 이기는 것을 보고 그는 마치 자기가 이긴 것처럼 느꼈다. 그는 그 멧돼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다. 녀석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 그는 이 멧돼지 부부가 서로에게 보내는 애정도 보았다.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유대감을 말해 주는 어린 새끼들도 보았다. 당신은 동물에게는 육체적인 사랑밖에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물들의 사랑은 인내하고 함께 싸우고 또 인내하면서 유지된다 ..  (126∼127쪽)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서 이부자리를 깔고 안쪽으로 파고들어도 전철 소리는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가 깃든 집 바로 앞이 철길이거든요. 오 분에서 칠 분마다 한 번씩 전철이 오가며 덜컹덜컹 하는 소리가 집안까지 들려옵니다. 밤에는 일찍 자지 않도록, 새벽에는 늦잠 자지 않도록 깨워 주는 전철 소리입니다.

 우리가 이 집에서 살아가는 동안 이 전철 소리는 늘 함께하는 벗인 셈입니다. 우리 형편으로는 조용하며 값싼 집을 얻을 수 없으니, 도시 재개발로 이 동네를 쓸어버리지 않는다면 오래오래 벗삼을 전철 소리입니다.


.. 너구리가 우리에게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이런 내용일 것이다. 너구리는 따뜻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들의 상징이다. 그리고 만약 이 나라의 우둔한 의원들이 흉악한 정책을 펴서 텅 빈 나무들과 함께 너구리가 모두 사라지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땅이 온통 돈과 배금주의에 정복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지만 부디 나는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세상을 뜨고 싶다 ..  (131쪽)


 잠깐 바람이나 쐴까 하고 장바구니를 들고 가게 마실을 갑니다. 집 둘레 구멍가게가 아닌 동인천역 앞쪽에 있는 조금 큰 가게로 갑니다. 그곳에는 번데기깡통을 하나에 550원에 팔아요. 동네 구멍가게는 1000원, 할인마트는 850원, 그 가게는 550원. 약과 열 개들이도 가게마다 값이 달라, 어느 곳은 1000원 어느 곳은 1300원 어느 곳은 1800원입니다.

 집을 나서니 밤바람이 제법 찹니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은 시립니다. 코를 훌쩍이면서 걷습니다. 열한 시를 갓 넘긴 밤길에 비틀비틀 걷는 사람이 보이고, 술꾼을 태우려고 기다리는 택시가 보입니다. 길을 거니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가게에는 손님이 얼마나 들었을까나.

 몇 가지 먹을거리를 고르며 셈을 치릅니다. 제가 뻔히 장바구니를 들고 값 치른 물건을 담고 있는데에도 “봉투 드릴까요?” 하고 묻습니다.


.. 겨울이 없는 곳에는 멋진 봄도 없는 법이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땅에서만이 매년 찾아오는 꿀벌과 제비꽃의 기적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법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그곳에는 매서운 눈과 서리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야자나무가 무성하고 일 년 내내 따뜻한 땅일지라도 봄의 비밀스러운 힘은 나타났다 ..  (231쪽)


 장바구니를 손목에 끼고 돌아가는 길. 이제 때는 늦어 지하상가는 쇠문을 내립니다. 이렇게 되면 건널목이 없는 요 동네에서는 찻길 가로지르기를 해야 합니다. 느즈막한 이맘때 찻길을 가로지르는 우리들을 보고도 교통순경은 붙잡지 않습니다. 저희들도 알 테지요.


.. 사실 그는 자신의 말을 동물들이 알아듣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친절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은 동물들도 이해할 것이라고는 느꼈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  (312쪽)


 밤하늘 별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 집에 닿습니다.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등불이 그닥 안 많은 이 골목길에서도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도시는 하늘이 아닌 땅에 별이 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 했다는데, 참말 우리네 땅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네 땅에 놓여 있는 이 많은 별들은 서로를 얼마나 비추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나 모르겠어요. 밤하늘 빛나는 별은 길잡이가 되기도 했고 길동무가 되기도 했는데, 도심지 땅에 내린 별은 누구한테 도움이 되고 있을까요. 누구한테 길을 일러 주고 누구와 동무를 삼고 있을까요.


 (2) 한 해 천만 원


 어제, 사진잔치 자리에는 대학교 다니는 어린 학생도 몇 사람 있었습니다. 밥자리에서 잠깐 등록금 이야기가 나와서 물어 보았습니다. 요즘은 한 해에 등록금이 얼마쯤 나가는지. 인문대학인데 한 학기에 360만씩 낸답니다. 그러면 한 해에 720만 원. 책값이며 밥값이며 찻삯이며 하면 천만 원은 우습지 않게 들겠네.


.. 스라소니는 무시무시한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그리고는 악마처럼 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미 멧돼지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였다. 어미 멧돼지에게 겁을 준다고? 어린 새끼가 “엄마, 엄마, 도와줘요!” 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도! ..  (92쪽)


 하하, 천만 원이라니. 그러면 대학교를 네 해 만에 잘 마친다면 사천만 원이라는 소리? 이야, 사천만 원이라니. 아이 하나에 사천만 원이면, 아이가 둘이면? 셋이면?

 어이구, 어버이 된 사람은 허리가 휘어서 어찌 사나. 이렇게 엄청나게 아이들 배움값을 치러야 하니, 그렇게 들인 돈을 ‘본전 뽑기’ 해야겠다면서 눈이 돌아갈밖에 없겠네. 본전에다가 이자를 붙여서 돌려받아야겠다고 생각할밖에 없겠네. 돈 버느라 바쁘고 돈 갚느라 힘겹고 돈 끌어들이느라 눈이 벌걸밖에 없겠네.

 이런 세상이라면, 대학교가 학문을 참다이 파고들기란 꿈 같은 소리가 되겠네. 대학교 졸업장으로 한 사람 마음밭을 알뜰히 다스려 주는 일이란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되겠네. 대학까지 다니며 얻거나 이룬 열매를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나누거나 베풀자는 이야기는 미친놈 방귀 소리로나 여기겠네.


.. 내면의 충동에 의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짝짓기를 했다. 자기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어딘가 조용한 장소를 찾았다. 그곳에는 구멍이 난 커다란 나무가 아직도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다. 그 귀중한 땅은 그 귀중함이 인간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름다움이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너구리 부부는 만물의 어머니가 이끄는 대로 새끼를 낳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배운 것보다 좀더 많은 것들을 새끼들에게 가르쳤다. 세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  (168∼169쪽)


 한 달 이삼십만 원 벌기에도 빠듯한 내 처지를 돌아보자니, 뒷날 아이를 낳아서 기르게 된다면 대학교는커녕 제도권 초중고등학교나 제대로 넣을 수 있을는지, 없을는지. 돈으로 굴러가야 하는 학교 틀거리라면, 이런 학교 틀거리에서 아이들한테 안겨 주고자 하는 지식이란 무엇일는지. 돈에 엄청나게 기울어져 있는 학교 틀거리라면, 이런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마음에는 무엇이 싹트고 자라서 동무들끼리 어떻게 어울리며 살아갈는지.


.. 어미는 자기 어미에게 배웠던 것들을 새끼에게 주로 실습을 통해 가르쳐 주었다 ..  (217쪽)


 하긴, 그렇구나. 꼭 이래서만은 아니지만, 우리 옆지기는 ‘우리가 가르치면 되지요’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학교에 떠넘기면 안 된다고, 학교 교사한테 떠맡기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가 배워야 할 것들은 누구보다 우리들, 어버이 된 사람이 먼저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버이 스스로 먼저 제대로 살피고 돌아보고 추스르면서 배울 수 있어야, 아이들도 기꺼이 배우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버이 스스로 즐겁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지식이라면 아이들한테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어버이 스스로 고맙게 새길 수 없는 지식이라면 아이들 삶과 얼과 넋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고 이야기를 합니다.


.. 박쥐 한 마리가 잡아먹는 벌레의 수는 하루 밤에만 수백 마리에 달한다. 그러므로 집 주위의 벌레가 완전히 소탕되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 박쥐가 날아다니는 벌레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인간의 적에게 매서운 타격이 가해진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아탈라파(박쥐)를 우리에 가뒀던 소년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와 관련해서는 이것 말고는 밝혀진 것이 없었다. 파리 때문에 생긴 전염병이 집을 습격했고, 그 병마가 떠난 뒤 새롭게 생긴 작은 흙무더기가 두 개 생겼다. 옆에 나무 탑이 하나 있는 조용한 묘지였다 ..  (248, 249, 258쪽)


 지난주에 보건소에 찾아갔습니다. 인천 중구와 동구에 있는 보건소에 차례차례 갔습니다. 먼저 중구 보건소에서는, 우리 주소지가 중구가 아니라며 동구로 가 보라고 말합니다. 우리 집에서는 중구 보건소가 코앞에 있어서 가까운데. 한참 걸어서 동구 보건소로 가니, ‘산부인과에서 임신증명서를 떼어 와야’ 기초진료를 해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중구 보건소로 가서 알아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중구 보건소에서는 동구로 가라고 하고, 동구에서는 임신증명서를 떼어서 중구로 가라고 하고. 허허 참.


.. 무정한 만물의 어머니이자 동시에 만물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자신의 자식들 중에 가장 강한 아이를 영원히 사랑한다. 그 위대한 어머니가 지금 아탈라파에게 다가왔다 ..  (284쪽)


 (3) 《다시 야생으로》라는 책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이 쓴 《다시 야생으로》를 다 읽어냅니다. 읽는 동안 여러 차례 눈물을 쪼르르 흘렸습니다. 집말이 되고 싶지 않아 끝끝내 들말로 돌아간 짐승 이야기, 자기 어미를 곰한테 빼앗긴 앙갚음을 끝내 해내면서 자기 짝과 새끼를 지켜낸 멧돼지 이야기, 들너구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박쥐가 사람 삶터에서 쫓겨나는 이야기, 들기러기 식구들이 죽는 날까지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이야기, 사람한테 붙잡혀 동물원에 갇혀서 구경거리 신세가 되는 원숭이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어나갑니다.


.. 육식만 하는 곰은 무시무시한 피부병에 자주 걸린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곰은 더욱 심하다 ..  (76쪽)


 시튼 님 《다시 야생으로》를 우리 말로 옮긴 장석봉 씨는,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 역시 그의 다양한 재주를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어찌 재주만으로 이런 이야기와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 그는 뛰어난 관찰력을 갖춘 자연학자이기도 했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가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도 언급해 두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따뜻한 마음씨로 자연 삶터와 들짐승을 꾸밈없이 바라보고 아낌없이 껴안으면서 살았기에 이런 글을 그리고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 다른 요정들과 달리 인간에게 매우 우호적이다. 녀석은 동굴이나 나무 구멍에서 사는데, 낮에는 항상 몸을 숨기고 있고 또 겨울에는 지하에서 잠을 자든지 아니면 따뜻한 지방으로 슬그머니 옮겨간다. 깃털은 없지만 비행에는 놀라운 재능을 타고났다. 게다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말을 할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달빛 속에서도 모습을 감출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라면 그런 놀라운 능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결코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198∼199쪽)


 돌이켜보면, 우리 스스로 마음을 따숩게 추스르지 않으니 사회 문제와 범죄가 끊일 수 없습니다. 대학교도 나오고 대학원도 나온 똑똑한 분들이지만, 정작 그분들 마음에 따스함이 깃들고 있지 않으니, 정치 권력을 붙잡아도 기득권 지키는 데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영어만 잘하는 재주꾼, 지식만 가득한 재주꾼, 가방끈만 긴 재주꾼, 그렇지만 머리통만 굵어서 몸통은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재주꾼인 우리들로 바뀌어 간다면, 우리 세상은 아름다움하고 차츰차츰 멀어지기만 합니다. 한 달에 천만 원 버는 부자한테 ‘여보쇼, 그 돈 좀 사회에 내놓으시오’ 하고 말하기 앞서, 한 달에 오십만 원 버는 우리들부터 ‘다문 만 원이나 오천 원이나마 덜어내며 사회에 내놓는’ 매무새로 살아가야지 싶습니다. (4341.2.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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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겠습니다 - 땅과 아이들을 살리는 먹을거리 교과서
요시다 도시미찌 지음, 홍순명 옮김 / 그물코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잘 먹겠습니다
- 글 : 요시다 도시미찌
- 옮긴이 : 홍순명
- 펴낸곳 : 그물코(2007.5.31.)
- 책값 : 6000원


 이 책 하나 31 ― 밥을 먹습니까, 돈을 먹습니까?
 : 요시다 도시미찌, 《잘 먹겠습니다》



 (1) 내 밥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밥을 먹기 앞서 두 손을 모으거나 고개를 숙이며 비손을 올립니다. 우리 옆지기는 천주교를 믿기에 천주교 틀에 따라 비손을 합니다.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땅을 믿기에, 먹을거리를 내어준 흙과 뭇 목숨붙이들한테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한 다음 ‘잘 먹겠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 부디 옛날 어른들의 먹는 지혜에 귀기울여 주세요. 우엉도 대충 씻어 뿌리 잔털까지 먹었습니다. 우엉은 껍질에 맛이 있습니다 ..  (79쪽)


 조금 앞서 아침을 들었습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베풀어 준 흰김치, 양조장집 아주머니가 베풀어 준 무채, 지난주에 성당에서 얻은 빨간무, 이웃 아주머니가 나누어준 달걀을 반쯤 익힌 것, 가게에서 사 온 콩과 누런쌀로 지은 밥, 이렇게 밥상을 차려서 먹었습니다.


.. 모든 먹을거리는 뿌리를 찾아보면 흙에서 나왔습니다. 흙이 변해서 된 우리들은 흙에서 가꾼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어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 튼튼한 아이를 키우고 활력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려면 먼저 그 바탕이 되는 흙을 건강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7∼9쪽)


 술안주 삼아서 가끔 과자부스러기를 먹을 때가 있는데, 과자는 대여섯 봉지를 먹어도 배부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여 방귀가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집에서 손수 쌀을 일고 씻고 안쳐서 지은 콩밥에다가 한두 가지 푸성귀나 김치로 밥을 먹으면 반 그릇으로도 배가 부르고, 한 그릇을 다 비우면 더는 밥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녁까지 배가 고프지 않고, 저녁에 밥을 먹을 때에도 반 그릇쯤 먹으면 속이 넉넉합니다. 이튿날 아침이면, 냄새 살짝 구수하고 푸른빛 슬며시 도는 똥이 시원하게 나오면서 방귀는 거의 안 뀌게 됩니다.


.. 자기들이 흙과 미생물과 연결되어 서로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친근감이 나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체험이 없으면 자연 환경문제를 아무리 가르쳐도 다만 지식의 조각으로 끝나고 말 두려움이 있습니다 ..  (19∼20쪽)


 책상 앞에 앉아서 글쓰는 일을 해야 할 때면 힘이 많이 들어서 때때로 입이 심심합니다. 요즈음은 귤이 나는 철이니 썰렁한 부엌에 귤을 한 바구니 모셔 놓고서 두 알씩만 방으로 가지고 와서 천천히 벗겨서 먹습니다. 불은 잠자는 작은 방만 땝니다. 거의 ‘외출’로 맞추어 놓으니 불을 땐다고 할 수 없고, 잠자는 방바닥에는 이불이 늘 깔려 있습니다. 한참 일하다가 허리가 아프면 이불로 들어가 옹크리기도 하고 다리를 쭉 뻗어 보기도 합니다. 불을 때지 않아도 이불 속에서는 따뜻해서 손도 녹이고 몸도 풀어 줄 수 있어 좋습니다.


.. 고기, 달걀, 우유는 조금씩 소중하게 먹는 것이 좋습니다. 싼 고기, 달걀, 우유는 값을 낮추기 위하여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동물들을 기릅니다. 그런 동물들은 허약하고 병에 걸리기 쉬우므로 약품을 써서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약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가축과 연결된 우리들은 어떨까요? ..  (83쪽)


 우리 집으로 놀러오는 분들이 감이나 능금이나 배를 들고 오곤 합니다. 이럴 때 감이나 능금이나 배를 흐르는 물에 씻은 뒤 쟁반에 담아서 내옵니다. 우리 식구는 감씨는 못 먹지만 능금씨나 배속까지 오독오독 씹어서 먹습니다. 껍질은 열매에서 가장 맛있는 곳이니 마땅히 그냥 먹습니다. 손님한테 내어준다고 해서 껍질을 벗기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곳을 쓰레기로 버릴 수 없으니까요. 가장 맛있는 곳이니 “껍질째 드시면 훨씬 맛있어요. 열매는 껍질 맛으로 먹어요. 씨앗도 얼마나 맛있는데요. 감이나 능금이나 배가 다시 태어나자면 바로 고 작은 씨앗 때문에 다시 태어나잖아요. 새로운 열매가 될 유전자와 영양분을 담뿍 안고 있는 씨앗이니 오도독 깨물어 먹으면 우리 몸에도 좋답니다.”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 인간도 닭장의 닭처럼 완전히 격리된 방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  (22쪽)


 그렇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껍질이나 씨앗이나 배속을 남기는 분들이 거의 모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고, 꺼려지기도 해서 그렇기도 하고, 쓰고 텁텁해서 입맛에 안 맞아서 그렇기도 하겠지요. 땅콩조차 껍질을 벗겨서들 먹고 있으니까요.





 (2) 선배와 후배와


 지난주 토요일, 개봉역 둘레에 우뚝우뚝 솟은 아파트 가운데 ‘로즈빌’이라는 곳 22층에 사는 고등학교 선배네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아파트 이름 ‘로즈빌’이란 무슨 뜻일까 한참 머리를 굴렸지만, 돌머리로는 그 뜻을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24층까지 우뚝 솟은 아파트들인데,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가 매우 좁습니다. 햇볕이 들지 않겠군요. 놀이터는 놀이기구 몇 가지가 있지만 흙 한 줌 없습니다. 참 썰렁하네, 하고 느꼈지만, 다른 아파트도 이와 비슷하겠지요.


.. 역시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 넘쳐나는 정보 홍수에 밀려 생명이나 앞날에 관한 귀중한 정보는 여간해서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 사람들은 그것을 싸다고 삽니다. 서로가 자기 돈벌이를 위하여 사는 사회, 청소년 흉악범죄는 그런 사회를 토양으로 자라난 검은 꽃입니다 ..  (29쪽)


 저도 어릴 적에 아파트에서 열세 해 살았습니다. 5층짜리 아파트였는데, 동과 동 사이는 5층 아파트 높이만큼 띄엄띄엄이었습니다.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지만, 바닷가 항구 바로 옆에 있던 우리 아파트는, ‘전쟁이 나서 포탄을 맞아서 쓰러져도 옆 동이 닿지 않아야 한다’는 잣대가 있어서 그런 잣대에 따라서 지었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놀이터는 두 군데 있었는데, 두 놀이터는 따로따로 아파트 한 동 넓이와 똑같을 만큼 무척 넓었습니다. 그래서 이 놀이터에서는 11:11 공차기 놀이나 9:9 공놀이를 즐길 수 있었어요. 놀이터 바닥은 모두 모래였습니다.


.. 파리는 정화된 세계에 사는 우리들에게 함께 생활할 수 없는 보기 싫은 생물이지만, 지구에게 또 우리들에게 없어서 안 되는 귀중한 생명입니다. 병충해도 파리와 마찬가지로 지구를 청소하는 일꾼입니다 ..  (34쪽)


 승강기를 타고 22층으로 지이잉 올라갑니다. 승강기는 ‘장애인도 바퀴걸상을 밀고 탈 수 있을 만큼’ 넓습니다. 이런 편의시설은 참 좋군요. 그런데, 바퀴걸상을 타고다니는 장애인들이 이 로즈빌 아파트에서 전세라도 얻어서 살 수 있을 만한 살림일는지.


.. 예전에는 사람의 똥오줌을 통에 숙성시키고 농사꾼은 그것이 완전히 정화했는지 손끝으로 찍어 맛보고 나서 거름으로 썼습니다. 그런 거름으로 키운 채소에 병충해는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기생충이나 병원균은 덜 숙성된 사람의 똥오줌을 직접 채소 가까이에 뿌렸을 때 크게 생겨났던 것입니다 ..  (45쪽)


 선배와 형수는 큰상 가득 먹을거리를 차려 줍니다. 두 사람 다 바깥일을 다니느라 시간도 없을 텐데, 참말 힘들겠습니다. 상차림도 일이지만, 나중 뒷갈무리도 일이잖아요. 형수님한테 슬쩍 여쭈니, “평소에는 안 쓰지만, 오늘 같은 날은 자동세척기 쓰니까 괜찮아요.” 합니다.


.. 초등학생은 아직 괜찮지만 고등학생, 대학생이 될수록 먹을거리는 황폐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먹는 지식을 가르쳐도 실천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없으니까 먹을거리도 아무거나 먹게 되는 것이겠지요 ..  (63쪽)


 동기 녀석 부부와 후배 녀석 부부, 혼자 사는 후배 하나, 이렇게 하여 아홉 사람이 큰상에 둘러앉아 젓가락질과 숟가락질을 합니다. 부지런히 술잔을 부딪힙니다. 예전에는 ㅊ소주만 마시던 사람들이 요즘에는 다른 ㅊ소주를 더 마시게 된다며, ‘ㅈ회사 불쌍해서 어쩌나’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뭐, 둘 다 어마어마하게 팔릴 텐데.

 고기와 회는 밖에서 사 왔지만 다른 찬거리는 집에서 마련하신 듯. 참으로 고맙게 받아먹습니다.

 저와 옆지기를 뺀 다른 사람들은 돈벌이 이야기, 주식 이야기, 자동차 이야기 들을 주고받습니다. 다들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선배는 “야, 결혼하고 나서 여지껏 책 한 권도 못 사 읽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선배는 책이 있는 방(서재)도 따로 있잖아요. 요새 그렇게까지 책 있는 방 마련해 놓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고 대꾸해 줍니다.

 작지 않은 차, 큰 텔레비전, 헹굴 때 속이 들여다보이는 세탁기, 단추만 누르면 알아서 씻기는 설거지 기계, 슥 밀기만 하면 쓸고 닦고 해 주는 청소기 ……, 참으로 많은 전자 설비를 쓰는 우리들은, 집안살림이나 바깥일을 보면서도 손쓰거나 시간 들일 일이 참으로 줄었습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자기 틈 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렇게 온갖 전자 설비를 쓰면서 아껴진 시간으로도 ‘더 많은 돈을 벌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힘들고 바쁜가 봐요.


.. 먹는다는 것은 먹혀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의 응원을 받아 힘껏 사는 것입니다 ..  (74쪽)


 넌지시 물어 봅니다. “아이가 크면 나중에 학교 보낼 생각이에요? 학교 보내면 바보 될 텐데.” 선배는, “학교 왜 안 보내? 보내야지.” 하고 말하고, 동기 녀석은 “나는 안 보낼까 봐.” 하고 말합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다가 유치원까지 하면 열두 해는 훨씬 넘고 열대여섯 해쯤 되겠지요. 이만한 세월 동안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영어? 한문? 상식? 또 뭘 배우지요? 논술? 태권도? 컴퓨터? 그리고 또?

 수능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면 처음부터 수능 시험문제만 가르칠 일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이름있는 대학교에 가야 한다면, 그런 대학교에 가서 좋을 일이 무엇일까요. 나중에 돈 많이 주는 큰회사에 일자리 얻으려고? 그러면 처음부터 돈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시키면 될 노릇이 아닐는지.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다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수 아이들을 가르치면 될 텐데. 다들 대학교 나오고 어쩌고 하면서 다른 집 아이들 과외는 잘만 시킨 지식인들인데, 그런 지식으로 자기 아이 하나 못 가르칠까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고, 돈벌이에 너무 푹 빠져서도 그러한지 모르며, 돈벌이보다도 일에 잔뜩 매이면서 자기 삶을 안 찾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아이들을 학교에 ‘버려’ 놓거나 ‘가두어’ 놓으며 햇볕 한 줌 바람 한 줌 못 쬐게 할까요.

 모두 다 똑같은 시멘트집 아파트에 살면서 집과 학교와 학원 사이를 자가용이나 학원버스로 오가며 땅 한 번 아이들 스스로 못 밟게 하는 이런 모습이, 부모가 할 노릇일는지요.


.. 영양사는 숫자를 맞추려 먹을거리 재료를 사방에서 모을 것이 아니라, 지금 지역에 있는, 농약이 적은 제철의 건강한 먹을거리 재료를 조사하여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 아이들이 물리지 않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  (64쪽)


 저녁 열한시 즈음 자리를 접기로 합니다. 우리 식구는 전철을 타고 돌아가도 되는데, 인천 사는 후배가 자기 차로 같이 가자고 이야기합니다. 대리운전 부르면 된다고.


.. 왜 아픈 사람은 자꾸 늘고 새로운 병원체가 나타나는지? 왜 집중력이 약한 어린이가 늘고 돌발성 범죄가 느는지? 왜 사람은 툭하면 싸우는지? 앞날이 어두운데 왜 사회구조는 바뀌지 않는지? 이 모든 현상의 바탕 원인에 대해 말로 하기 어렵지만, 우리들이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언제부터인가 사람은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도 얼마 전까지 잊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들도 어린이들도 지도자도 대부분의 사람이 잊어버렸습니다 ..  (98쪽)


 후배 녀석도 머잖아 색시를 만나 혼인을 하겠지요. 후배 녀석도 예식장에서 혼인을 할 테고, 청첩장 받아서 예식장을 찾아가면 뷔페로 밥 한 끼니 차려놓겠지요. 서양 예복을 입고 사진 촤라락 찍은 뒤, 케익을 자르고 나서, 비싼 한복으로 갈아입고 폐백을 올린 다음, 다른 동무들이 꾸며준 웨딩카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가서 나라밖 어디로 나들이를 한 주쯤 다녀올까요.





 (3) 작은 책, 《잘 먹겠습니다》


 고작 105쪽에 지나지 않는 작은 책, 《잘 먹겠습니다》를 지지난달에 사서 이달 첫머리에 다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책상맡에 그대로 올려둔 채 틈틈이 집어서 되읽습니다. ‘땅과 아이들을 살리는 먹을거리 교과서’라는 작은이름이 붙은 조그마한 이 책은, 일본에서 ‘농사체험 학습’을 할 때 교과서처럼 쓴다고 합니다.

 일본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하고 마찬가지로, 논밭에서 풀을 뽑으라 하면 잡풀이 아닌 곡식 풀을 땀 뻘뻘 흘리면서 뜯는답니다. 날마다 ‘어머니가 부엌일 하며’ 밥상에 차려 주니 먹기는 먹었겠지만, 벼가 어떤 모양인지, 보리가 어떤 모습인지, 수수가 어떤 생김인지, 감자풀과 고구마풀은 무엇인지 하나도 가려내지 못할 테지요. 고구마케익은 맛있다면서 먹어도 고구마줄기 하나는 못 찾겠지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다는 울릉도 호박엿’ 이야기는 흔히 들었겠지만, 그 호박이 얼마만한 크기와 빛깔로 꽃을 피우는지는 모르겠지요. 고기를 구으며 깻잎은 즐겨먹었어도 깻잎이 깨를 심어서 거두는 잎이고, 깨가 얼마나 자잘한 알갱이로 열매를 남기는지 모를 테지요.


.. 우선 알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소비행동에 주의하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지역기업이 자라납니다. ‘뭐야! 사회를 바꾸는 것은 먼저 자기부터라고 알고 있는데, 그때 왜 거기서 포기했을까, 그때 왜 좀 분명히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중에 후회해도 이미 늦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야깃거리로 삼아야 합니다. ‘왜 학교의 교육위원회에서는 이런 것을 전해 주지 않을까?’라고 상대를 비판하기 전에 우선 그렇게 생각한 당신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  (31쪽)


 우리들은 무엇을 ‘안다’고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고등학교 졸업장은 우리 아이들한테 ‘너희한테 지식이 얼마만큼 있고, 너희가 이 사회에서 얼마만큼 너희들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줄까요. 대학교 졸업장이 있으면, 혼자힘으로 꿋꿋하게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졸업장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사람 쓰레기’일 뿐일까요.


.. 병원균이 세포를 침범한다기보다 건강치 못한 부위에 병원균이 모여들었을 뿐입니다 ..  (37쪽)


 오늘은 12월 25일, 예수님오신날입니다. 예수님오신날에 눈이 오면 ‘하얀 성탄절’, 영어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만,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12월 25일은 따뜻합니다. 2008년은 어찌 될까요. 2009년은? 2010년쯤 뒤부터는 우리 나라도 ‘반소매 옷을 입고 맞이하는 예수님오신날’이 되지 않을는지요. (4340.12.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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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 글ㆍ사진 : 호시노 미치오
- 옮긴이 : 이규원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5.7.23.)
- 책값 : 12800원


 이 책 하나 29 ― 사랑하는 자연 품에 안긴 사진여행꾼
 : 호시노 미치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1) 그림 그리는 동네 젊은이와


 “오랫동안 있으면 좋겠는데.”
 도서관을 찾아온 동네 젊은 친구가 한 마디 합니다.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 스무 해 뒤에도 이 자리에서 꼿꼿하게 도서관을 지키고 있으면 더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자기는 아직 젊어서 많이 모르지만, 좋은 뜻을 품고 일하는 사람들이 잠깐으로 그치지 말고 오래도록 목숨을 이어나가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그 지방의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거기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서, 풍경은 결코 나와 참된 언어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런 여행은, 하면 할수록 세계가 그저 좁아지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그를 좋아하게 되면 풍경은 비로소 폭과 깊이를 띠게 된다 ..  (261쪽)


 앞으로 스무 해면 2027년. 스무 해 뒤 저는 쉰이 넘는 나이. 쉰 살이라. 제 나이 쉰 살에 무슨 일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있을까를 한 번도 내다본 적은 없습니다. 아니, 내다볼 겨를이 없이 언제나 이 자리에서 이 한동안을 잘 보내자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괜찮게 보낸 하루였어’ 하는 마음으로 보낼 수 있으면, 이렇게 보낸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될 테고, 그 한 해 두 해가 모여서 열 해가 되겠지요.


.. 물보라를 뿜어 올리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고래가 자연이라면, 그 고래에 작살을 던지는 에스키모 사람들의 생활도 역사 자연인 것이다 …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생물의 다양성이야말로 무엇보다 소중할 것이다 ..  (244∼246쪽)


 어쩌면, 나도 저 젊은 친구 나이였을 때 나보다 앞서서 사회운동을 하고 문화운동을 하던 손윗사람들을 보면서 “앞으로도 오래오래 지금 일을 이어가시면 좋겠어요” 하고 말하거나 “스무 해 뒤에도 웃으면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고 말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좋은 일이니까, 훌륭한 일이니까, 이런 일을 하는 보람을 듬뿍 느끼면서 힘을 잃지 말고 우리 같은 어린 싹들한테 앞날을 헤아리는 믿음을 선사해 주고 앞선 사람들이 다부지게 걸어가면서 제 꿈을 펼 수 있음을 널리 보여주기를 바라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다치지 말라고, 지치지 말라고, 어깨 떨구지 말라고, 떠나지 말라고, 앞으로 내가 당신들 나이가 될 때 나 같은 사람들이 외로이 헤매지 않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 노인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때때로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 지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뭔가를 생각하는 거라면, 112년을 살아온 사람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고 싶었다 ..  (212쪽)


 동네 젊은이는 벽그림 그리기를 하며 살아갑니다. 주말에는 부모님이 꾸리는 밥집에서 오토바이로 밥 나르기를 한답니다. 오늘도 “작업하다가 와서 옷이 좀 그래요.” 하고 씨익 웃습니다. 젊은 친구가 입은 옷은 군인옷. 해병대 다니며 입던 야상. 야상에는 벗겨지지 않을 만큼 페인트가 묻어 있습니다.

 도서관에 들어와서 “미술책도 있나요?” 하고 묻기에, 속으로, ‘허허, 원 참, 자기가 서 있는 왼쪽에 있는데, 안 보이나?’ 하고 생각하며 웃습니다. “음, 어떤 미술책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에 아이들 그림책부터 해서 죽 있어요.” 하고 손으로 가리킵니다. 그리고, “요새는 아무나 붓질 할 줄 알면 아이들 그림책을 그린다고 하는데, 진짜 제대로 그리는 아이들 그림책을 보면, 밑바탕부터 아주 잘 되어 있는 분들이 그리기 때문에, 줄 하나에도 깊이가 느껴져요.” 하고 덧붙이면서, 키츠 그림책과 벵상 그림책과 스캐리 그림책을 하나씩 들추면서 보여줍니다. 스캐리 그림책은 일본에서 펴낸 열 권짜리 전집도 있기 때문에, “이분은 처음에는 이렇게 부드러우면서 빛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만화 그림처럼 되어 가고, 나중에는 모두그림으로 하나로 모아서 재미난 이야기를 엮어내는 책을 만들었어요.” 하고 말하며 작품을 여럿 보여줍니다.

 1940년대에 나온, 의사가 그린 남녀 성기 해부학 그림책도 보여주고, 독일 조각가가 사람몸을 찰흙으로 빚는데 뼈와 힘살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빚어서 붙인 뒤 마무리를 짓는 모습을 사진으로 하나하나 담아서 보여주는 책도 보여줍니다. “선생님은 과정을 중시하나 봐요?” “글쎄, 예술은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보통은 마무리한 작품만을 두고 이야기하지만요.”


.. 밥은 왜 41년 간이나 이 땅을 떠나지 않았을까. 가문비나무 이야기가 그 물음에 힌트를 주는 것 같다. 밥에게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자연조차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며, 지금 살고 있는 이곳, 그리고 마침내는 죽어갈 이곳 쉬솔릭이 흥미로운 것이다 ..  (26쪽)


 “혹시, 김환기라고 하는 분 책도 있나요?” “김환기, 김환기, 음, 어디엔가 있는데. 이건 이쾌대 님 책이고, 이쾌대 님은 일제강점기 때 그림을 그린 분이에요. 우리들한테는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어디에 있는데 잘 안 보이네요. 저도 꽂아만 놓고 머리에만 기대기 때문에 잘 못 찾기도 해요.” “따로 입력해서 정리하지는 않으시나 봐요?” “네, 일부러 안 하고 있어요. 그렇게 정리해 두면 저부터도 찾기 좋겠지만, 사실 책을 본다고 할 때에는 그렇게 목록이 주어지면, 다들 ‘보는 책’만 또 보게 되잖아요. 하지만 목록을 따로 마련해 놓지 않으면 자기가 바라는 책을 찾으면서 다른 여러 가지 책도 함께 보게 되어요. 책을 본다고 할 때에는 그렇게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둘레 책들까지 해서 두루 보도록 하는 일이 좋다고 생각해요.”


 (2) 아침신문을 보고


 일터인 도서관이 있는 인천 배다리 둘레에 ‘너비 50미터 길이 2.41킬로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놓으려는 인천시 종합건설본부는, 머지않아 ‘지금 멈춰진 공사를 다시 밀어붙이겠다’는 이야기를 신문사 기자한테 말한 듯합니다. 우리들 동네사람(주민)한테는 그런 이야기를 입도 벙긋하지 않았는데.

 그저께 아침, 인천에서 나오는 신문을 보니, “수 차례 민원인들과 타협을 시도했지만 진척이 없어 (공사 재개) 통보를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신문기자한테 들려준 인천시 종합건설본부 쪽에서는 언제 한 번 제대로 된 ‘주민설명회’를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동네 샛길도 아닌, 산업자재 그득 싣고 수출입 화물을 수십 톤씩 싣고 다니는 큰 짐차가 들락거릴 산업도로를 동네 한복판에 놓는다면, 이 동네 문화며 삶터는 그예 무너져내릴 테지만, 이런 엄청난 밀어붙이기 막공사를 거두어들이려는 움직임은 아직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동네사람들 ‘민원 때문에 공사진행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이야기를 신문사 기자들한테 흘리고 있습니다.


.. 들판에서 곰을 만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체험일까. 저기 한 마리 곰이 있을 뿐인데도 광대한 풍경은 묘한 긴장감을 띠게 된다. 며칠 뒤 툰드라 저쪽에서 검은 이리가 나타났다. 백야의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이리는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먼 거리인데도 이리는 문득 나를 알아차리고 섬광처럼 달려서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  (56쪽)


 문득 궁금해집니다. 지금은 산업도로 밀어붙이기를 동네사람들 힘으로 가까스로 ‘공사 잠정 중단’까지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사 잠정 중단’을 하고 나서 ‘아무런 타협안’도 우리들한테 내놓은 적이 없습니다. 길을 내 버리면 사람들 삶은 와장창 깨지는데, 여기에서 무슨 타협안이 있을 수 있을까요. 또, 어떤 타협안을 우리들한테 이야기했다고 신문사 기자는 종합건설본부 공무원들 말을 거리낌없이 실을 수 있었을까요. 어차피 공사터를 닦아 놓았으니 ‘길은 그냥 내되 산업도로 구실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여기에 길이 놓이면, 동네에서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통학로가 끊어져서 위험해질 뿐 아니라, 소음과 먼지에 무던히도 시달려야 하는데, 어차피 길을 내도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 문제이지, 공사를 밀어붙이는 공무원들은 이 동네에 안 살기 때문에 상관이 없는 일일까요.


.. 지난 1백 년 동안 알래스카 북극권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새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하나는 선교사, 상인, 광산업자, 생물학자, 교육자 따위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개 자신이 전에 살던 지방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이 땅에 고스란히 가지고 들어왔다. 또 한 부류는 이 땅에 벌써부터 존재하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이어받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알래스카에서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겉으로 쉬 드러나는 데 반해,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거의 알려지는 일이 없다 ..  (35쪽)


 아침에 한 번, 낮에 한 번 우체국 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인천 종합건설본부 사람들한테 이 길은 왜 있어야 할까요. 동네사람들은 그런 길 없어도 된다고, 아니 그런 길이 나면 동네가 옴팡 무너지고 망가진다고 하는데, 인천시장을 비롯해서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원과 구의원들은 왜 이런 동네사람들 목소리는 안 들으려고 할까요. 이들 행정을 맡고 정치를 맡은 이들은 어떤 목소리를 들었기에 여기에, 동네 한복판에 산업도로를 놓아서 ‘지역균형발전’과 ‘경제발전’을 이룩하겠다는 소리를 읊을 수 있을까요. 또 이런 소리는 어찌하여 지역신문 기사로 꾸준히 실릴 수 있을까요.


.. 아직 습기로 눅눅한 강가 둔덕 위에 벌렁 눕는다. 이른봄의 향기로운 흙냄새. 연보랏빛 야생 크로커스가 봉오리를 부풀리고 있다. 부드러운 햇살 속에서 멍하니 구름을 바라보고 있자니, 심장 뛰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린다. “어이― 시간아, 어릴 적의 너를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이렇게 외쳐 보고 싶지 않은가 ..  (103쪽)


 산업도로 예정터는 우체국에서 십오 미터쯤 옆. 이곳에 4층짜리 건물이 있었는데, 얼마 앞서 그 4층짜리 건물 4/5를 허물었습니다. 참말 길을 뚫으려고 저 건물도 허는가 하고 가슴이 쿵쾅쿵쾅. 그러고 두 주 뒤인 오늘 아침, 큰 기중기차 한 대가 와서 철근놓기를 합니다. ‘어, 뭐 하나?’ 하고 가만히 바라보니까, 길을 낸다는 것 때문에 그 건물 4/5는 잘려나갔지만, 비스듬하게 건물 붙이기를 해서 잘린 곳 가운데 1.5/5쯤을 새로 올리려고 하는 듯합니다.


.. 이 마을의 교회는 십자가만 없다면 다른 민가와 구분이 가지 않는 통나무 오두막이다. 다른 마을에서 온 신부님은 한참 젊은 사람이었다. 까만 가운 밑으로 하얀 운동화와 청바지가 비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  (149쪽)


 사람 사는 곳에 길이 안 날 수 없고, 사람이 사니까 길을 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에서 새로 놓는 길은 얼마나 사람이 다니도록 마음을 쓰면서 놓는 길일까요. 지금 우리 나라에서 자꾸만 놓으려고 하는 길은 얼마나 사람한테 도움이 되고 즐거울 만한 길일까요.

 사람들 주머니를 털어서 모은 돈으로 사람들이 장비를 움직여서 길을 닦고 사람들이 모는 자동차가 오가는 길이지만, 정작 사람 냄새는 하나 없는 길, 사람 느낌은 깃들 수 없는 길은 아닌지요.


 (3) 그림쟁이


 벽그림 그리는 젊은 친구는 도서관 책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림쟁이 김환기 님이 자기한테 작은할아버지라고 하기에 김환기 님이 쓴 《그림에 부치는 시》라는 책 하나를 빌려줍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우리 친척이라고 해서 인터넷으로 알아보았는데, 사진을 보니까 할아버지하고 진짜 똑같이 생겼더라고요. 이 책에 있는 표지 그림하고도 진짜 똑같네요.”


.. 자연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자손을 남긴다고 한다. 이리의 습격을 받는 카리부 무리는 미처 도망치지 못하는 약한 놈을 희생시켜서 무리 전체의 강인함을 유지한다고 한다. 지극히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지만, 자연은 정말 그렇게 교과서대로 움직일까? 의외로 우연성이 지배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자연은 약한 자까지도 포용해버리는 넉넉한 품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204쪽)


 젊은 친구한테 김환기 님 도록 하나를 찾아서 보여주었습니다. 젊은 친구는, “아, 그런데,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 하고 말합니다. “저도 그 도록을 갖춰 놓기는 했지만, 저도 그 그림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요. 무슨 모더니즘이라고 하던가, 그런 그림인데.”


.. 비록 어린아이들이지만, 한 생명을 끝장내고 손으로 직접 살점을 만지면서 뭔가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를 비롯한 모든 생명이 다른 생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 고기를 입안에 넣음으로써 그 카리부의 생명을 자기가 잇게 된다는 것 ..  (42∼43쪽)


 “김환기 이분이 글도 쓰셨어요?” “네, 글도 쓰셨지요. 그리고 글을 잘 쓰셨지요. 책을 보면 사이사이 그림도 끼워넣었어요. 참 좋아요.” “이 책 빌려 주셔도 돼요?” “음, 친구가 나중에 돌려주기만 하면 되지요.” “와, 고맙습니다.”


.. 알래스카의 새로운 토지 분할로, 그들의 집은 어느새 국립공원 경계선 안에 들어가 있다. 알래스카가 아직 미개척지였던 시절, 자유를 찾아 이 땅에 들어와 들판에 정착한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 날 불쑥 불법침입 통고장이 날아든다 ..  (62쪽)


 “가만히 보면, 우리 도서관에는 그림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다른 갈래 책도 그렇지만. 그냥 제가 좋아해서 하나하나 사서 읽은 책들이고, 그러다 보니까 좀 좁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이런 책들은 다른 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책이 많기도 하니까, 재미있게 봐 주세요.”

 젊은 친구는 제가 추천해 주는 책들을 걸상에 앉아서 차분하게 하나하나 넘깁니다. 어쩌면 처음 보는 새로운 그림들이라서 마음을 쏟아서 보는지 모르고, 어쩌면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나는 이 그림들이 우리 젊은 친구한테 새로운 눈을 틔워 주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작은할아버지한테 흐르던 피가 자기한테도 흐르고 있음을 느끼며,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그림밭으로 나아가려는 피끓음을 하는지 몰라요.


.. 카리부를 다 옮겼을 때 나는 케니스에게 물었다. “케니스, 혼자 있을 때는 어떻게 카리부를 훈제실까지 옮겨요?” 케니스는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쉬차, 조금씩 끌고 가면 돼. 끌다 보면 어느새 둑 위에 와 있어.” ..  (196쪽)


 “오늘 구경 잘하고 갑니다. 책도 잘 읽을게요.” 젊은 친구는 부모님 집에서 따로 나와서 혼자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다닌다고 하는데, “오토바이 타면 서울에도 가고 부천에도 가고 좋아요. 일하다가도 페인트 떨어지면 바로 타고 가서 사 올 수 있고요.”

 제가 젊은 친구 나이였을 때는 두 다리로 달리면서 다녔습니다. 저 젊은 친구가 지금 제 나이를 넘어서며 자기 손아랫사람을 만날 때에는, 저 친구한테 손아랫사람 되는 이는 어떻게 세상을 부대끼며 만날까요.


 (4) 《바람 같은 이야기》라는 책


 한 해 남짓 읽어 온 《바람 같은 이야기》를 덮습니다. 이제 제 책상맡에서 떠나보낼 때가 되었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이 책을 쓰고 사진을 찍은 ‘호시노 미치오’ 님은 바람처럼 와서 바람처럼 사라진 삶을 보냈다고 느낍니다. 더운 곳에서는 시원한 바람으로, 추운 곳에서는 따스한 바람으로.


.. 편리한 문명생활과 등을 돌리고, 불편한 한 팔로 카리부를 한 걸음 한 걸음 둑 위로 끌고 올라가는 케니스.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언젠가 케니스가 나이 더 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죽어 가겠지.” ..  (198쪽)


 사진이 좋아 사진을 찍고, 어느 날 보게 된 알래스카 사람들 삶터 사진에 흠뻑 빠져서 바지런히 일해서 돈을 모으면 그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알래스카로 떠났다는 호시오 미치오 님. 흘러흘러 떠도는 것만이 바람이 아니며, 고여고여 한 자리에만 맴도는 것만이 바람이 아님을 온몸으로 말하면서, 글 몇 자락과 사진 몇 장으로 우리들하고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를 나누고자 스스로 바람이 되어 버린 이 사람. 다음에 또 봐요. (4340.12.14.쇠.ㅎㄲㅅㄱ)


 《노던라이츠》(청어람미디어,2007)
 《여행하는 나무》(갈라파고스,2006)
 《숲으로》(진선출판사,2005)
 《곰아》(진선출판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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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밥상 - 유기농 대표농부 10집의 밥상을 찾아서
안혜령 지음, 김성철 사진 / 소나무 / 200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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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농부의 밥상
- 글 : 안혜령
- 사진 : 김성철, 이혜영
- 펴낸곳 : 소나무(2007.2.5.)
- 책값 : 11000원


 

 이 책 하나 30 ― ‘아파트 밥상’을 떠나 ‘농사꾼 밥상’으로
 : 안혜령 씀, 《농부의 밥상》



 〈1〉 나누는 밥


 새벽 일찍 잠에서 깹니다.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드니 새벽 일찍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밤늦게까지 일손을 붙잡는다든지 술 마시거나 논다고 법석을 떤다든지 하면, 마땅히 새벽에 일어나지 못합니다.

 옥상마당으로 나와서 새벽별을 올려다봅니다. 새벽달도 봅니다. 새벽하늘은 아직 어둡습니다. 이 어둠을 뚫고 전철이 지나갑니다. 아, 이 새벽에 훨씬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군요. 전철을 모는 기사가, 전철을 타는 사람들이.


.. 이 푸성귀들은 모두 이 집 텃밭에서 자라는 것들이다. 맘먹고 재배하는 왕고들빼기를 빼면, 나머지는 한 번 씨뿌려 둔 채 굳이 돌보지 않아도 절로 잘 자란다 … 이렇듯 갖가지 푸성귀를 철따라 두루두루 먹으려면 무엇보다 “심기를 골고루” 해야 한다. 식물도 사람처럼 일대기가 있어 맛있는 때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  〈15∼16쪽〉


 잠깐 새벽바람을 쐰 뒤 방으로 들어옵니다. 부엌으로 가서 전기밥솥을 열고 밥 한 숟가락을 뜹니다. 우걱우걱. 며칠 된 밥은 말라비틀어지고 있습니다. 밥을 할 때면 한두 끼니 먹을 만큼만 해야 하는데. 콩과 누런쌀 불리기에 시간이 걸린다는 핑계로 자꾸 여러 끼니 먹을 만큼 하다 보니, 며칠 묵히면 이렇게 되고 맙니다.


.. 더 갖기를 원하지도 않거니와, 있는 것 허투루 버리는 일도 없다. 이들이 오기 전 이곳에 살던 동광원 수녀들이 쓰던 걸레를 장금실 씨는 4년을 더 썼고, 찌글찌글한 양은 밥상 하나 물려받은 것을 20년째 탈없이 쓰고 있다 ..  〈20∼21쪽〉


 그제 낮, 이웃한 막걸리집에서 김장을 하신다기에 쭐래쭐래 찾아가서 일손을 조금 거듭니다. 저는 옆에서 사진을 찍고, 옆지기는 팔을 걷어붙이며 배추속 넣기를 합니다. 막걸리집 아주머니와 아저씨뿐 아니라 당신들 자식과 며느리까지 찾아와 해거름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허리 아프도록 일을 합니다.

 막걸리집(낮에는 밥집으로만 하는 곳) 손님들 먹일 김치이면서, 당신들도 함께 먹을 김치이기 때문에 허투루 담지 않습니다. 젓갈도 넉넉히, 양념도 넉넉히.


.. 부인이 아쉬워할 때마다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도구며 연장 뚝딱 만들어내는 그 재미가 공예품 만들어내는 것 못지않으니, 실제로 밖에서는 작품 대접 받는 옛 물건들이 이 집에서는 구석구석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살림살이다 ..  〈41∼44쪽〉


 저녁 나절, 자전거 모임으로 알게 된 아주머니가 놀러옵니다. 선물이라면서 큰 반찬통을 하나 내밉니다. 반찬통에는 잡채가 가득 담겼습니다. 어젯밤 한 시부터 부지런히 무치셨다고. 아이고, 선물이라 해도 이렇게나 많이. 맛을 보니 우리 입에 찰싹 달라붙도록 싱겁습니다. 잔치집에서 으레 먹는 잡채처럼 달거나 짜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잡채 한 젓가락에 김치 한 점에 밥 한 숟가락이면 속이 든든하겠어요.

 지지난주, 동네에 자리하고 있는 ‘지역 공동체 예술’ 운동을 하는 분들이 갓김치를 한 접시 선물해 주셨습니다. 당신들로서는 처음으로 손수 심은 푸성귀를 손수 거두어서 손수 해 본 김치였다는데, 손수 거두고 무치고 해서 그런지 아주 맛있다고 합니다. 저는 벌건 김치는 손을 못 대지만, 옆지기는 맛있다고 이야기합니다.


.. 또 하나, 죽전산 이 골짜기가 이삼 년 안으로 사라지는 것도 근심스러운 일이다. 이미 마을 입구에 진을 치고 있는 ‘효문공업단지’라는 것이 드디어 이 골짜기까지 확장해 들어오게 되었으니, 이삼 년 안에 이 댁은 근 삼십 년 만에 다시 이삿짐을 싸야 할 형편이다. 집이야 새로 구하면 될 터이나, 이십 년 동안 정성을 들인 논밭이 사라질 것이 마음이 아프다. 땅을 새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거니와, 가뜩이나 몸이 아프고 보면, 그야말로 “그놈의 농사” 이참에 그만두어야지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서운함을 이기지 못해 “농사 조만치라도 짓는 데 가야 짚공예도 하지” 생각도 한다 ..  〈58쪽〉


 하루 내 김치 담그느라 애쓴 옆지기도 달래고, 또 도서관으로 놀러온 자전거 모임 사람들하고 길게 이야기도 나누려고 신포시장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닭집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는데, 닭집 아저씨가 가재를 덤 안주로 건넵니다. 닭집 아저씨는 ‘우리가 시키지 않은’ 안주를, 그것도 ‘차림판에 없는’ 안주를 슬그머니 한 접시 내밀어 주시곤 합니다. 요리 솜씨 좋은 아저씨는 늘 웃으면서 칼질을 합니다. 오징어데침을 부탁하면 당신 가게 옆에 있는 물고기집에 가서 싱싱한 놈으로 사 와서 그 자리에서 손질해서 데쳐 줍니다. 저잣거리에 자리한 술집이니 이렇게 할 수 있겠지요.





 〈2〉 밥과 아파트


 그제, 도서관에 놀러온 한 분이 귤을 한 상자 자전거 짐받이에 묶어서 가지고 오셨습니다. 짧지 않은 거리를 가볍지 않은 귤상자를 매달고 오시다니.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으로 귤을 까서 먹습니다. 냠냠짭짭 하다가 문득, 우리가 철따라 먹는 귤이며 능금이며 배며 딸기며 땅감이며 수박이며 참외며 복숭아며 살구며를, 우리 나라에서 얼마나 거두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요즈음은 철을 따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열매들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나는 열매만으로도 우리 나라 사람들 배를 채울 만큼 될까요?

 인터넷 찾아보기를 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 식량자급률은 25%쯤이라는군요. 쌀을 빼면 5%가 안 된다고 합니다. 해마다 떨어졌으니, 앞으로는 더 떨어지면 떨어졌지, 올라가지 않으리라 봅니다. 농사꾼이 되려는 사람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시골사람도 도시로만 나오고, 도시사람이 시골로 찾아가 농사꾼이 되려고도 하지 않는 한편, 도시에서 텃밭농사라도 짓는 사람은 너무 드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들은 감자며 양파며 파며 무며 배추며 호박이며 오이며 고추며 부추며 버섯이며 시금치며 얼갈이며 철없이 사서 먹고 있습니다. 집에서 밥을 하지 않고 바깥밥을 사먹는다고 해도, 밥집에서도 어디에선가 푸성귀와 곡식을 사 와서 할 테지요. 회사를 다니는 분들이 도시락을 싸 오지 않아서, 집에서 먹는 ‘쌀 부피(쌀 소비량)’가 많지 않다고는 하지만, 밖에서 사먹는 ‘쌀 부피’는 적지 않아요. 어쩌면, 밖에서 사먹는 ‘쌀 부피’가 더 많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나라 농사꾼들이 거두어들이고 있는 쌀만으로도 우리 나라 도시사람들 밥그릇을 댈 수 있을까요. 그나마 ‘쌀 한 가지’만 놓고 보았을 때.


.. 몸이 안 좋거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할 때 만든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은 음식 해 본 사람은 누구라도 경험한 바가 있을 것이니, 그이는 나아가 식구들 몸과 마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음식을 할 때면 늘 밝은 마음을 가진다 ..  〈77쪽〉


 인터넷으로 ‘식량자급률’ 숫자를 살펴보다가, 이 나라 신문 매체 가운데 한 곳도 빠짐없이 “낮은 식량자급률 걱정”과 “식량안보 대책”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도 봅니다. 그런데, 낮은 식량자급률과 식량안보를 걱정하는 모든 신문 매체가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를 외치지는 않습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뿐 아니라 ‘쌀시장 개방’ 문제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다른 나라와 맺는 협정뿐 아니라, 나라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막개발을 놓고도 생각할 일입니다. 지금 온 나라는 ‘아파트 새로 짓기’가 엄청나게 물결치고 있습니다. ‘고속도로 새로 깔기’ 또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인천에서 도시엑스포를 하고, 2012년에는 여수에서 또다른 엑스포를 한다지요. 2014년에는 인천에서 아시아경기대회를 한답니다. 행정수도를 충청도로 옮긴다면서, 충청도 논밭을 시멘트로 갈아엎고 새로운 공공기관 건물과 공무원들 깃들 아파트를 올려세울 계획이 나와 있습니다. 인천에서는 도시엑스포니 아시아경기대회니 하면서, ‘지은 지 몇 해 안 되는 아파트와 몇 가지 공공시설’ 있는 자리를 빼고 모두 쓸어없앤 뒤 새로운 아파트로 올려세우는 정책을 안상수 시장이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엑스포니 운동경기 세계대회니 하는 것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우리 나라 시골과 산골까지도 아파트가 밀려들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논밭을 가리지 않습니다. 시멘트집은 강둑과 바닷가를 가리지 않습니다.


.. 산 끼고 바다 끼어 물산이 풍부한 지역인데, 안주인 최정화 씨는 “먹는 데 그렇게 신경 안 쓴다”고 말한다. “여기서 나는 걸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간혹 손님들이 사 오는 고기를 맛보기도 하고, 바닷가에서 생선 좀 사다 먹는 일도 있지만, “밭에서 나는 것도 다 못 먹는데, 고기까지 먹는다는 것은 없는 사람한테 부끄러운 일”이라 “배추, 고추, 된장, 고추장만 있으면 오케이”라고 한다 ..  〈84∼85쪽〉


 한쪽에서는 ‘식량주권이 사라진다’고 입으로 외치고 손으로 글을 쓰는 우리들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식량주권을 지킬 논밭을 아파트로 바꾸려’고 몸으로 움직이고 머리로 돈벌이 셈을 하는 우리들입니다.


.. 옷을 서로 나눠 입고, 그 옷이 다 낡고 해지도록 외출복에서 평상복 또는 아동복, 작업복, 기름 닦는 걸레로 재활용되니, 소비가 미덕인 시대 정신에는 역행하는 것일지 모르나, 이름뿐인 생태주의보다 삶의 내용이 훨씬 알차다 ..  〈116쪽〉


 《즐거운 불편》(달팽이,2004)이라는 책을 쓴 일본 신문기자 ‘후쿠오카 켄세이’ 님은, 소비사회에서 아무 생각 없이 ‘많은 돈을 벌어서 많은 돈을 쓰고 많은 기계문명을 누리고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자기 몸과 마음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가 돌아보고자 ‘불편하게 살기’로 마음먹고 하나씩 몸으로 옮겼습니다. 이분이 맨 처음 몸으로 옮긴 일은 ‘자전거 타기’이고, 맨 마지막 몸으로 옮긴 일은 ‘농사짓기’입니다. 우리로 치면, 서울에 살고 서울에 있는 큰 신문사를 다니는 사람인데,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기만이 아니라 농사짓기까지 해냅니다. 마지막 ‘즐거운 불편’을 이루어내면서 우리들한테 한 마디 합니다. ‘하나도 어렵지 않다’고, ‘하나씩 이루어 갈수록 즐거웠다’고, ‘무턱대고 목표에 이르려고 할 때면 나나 식구들이나 힘들었지만, 식구들과 함께 목표에 이르려고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 그야말로 이런 즐거운 불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마지막까지 이루어 가는 동안 ‘불편’이 떨어져 나가서 ‘즐거운 삶’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3〉 학교와 아파트


 국민학교 적 동무가 숭의야구장 건너편에서 체육사를 합니다. 다음해에 다섯 살이 되는 딸내미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 딸내미를 유치원에 보내고 싶은데, 동네에 마땅히 보낼 만한 곳이 없답니다. 녀석과 제가 나온 국민학교, 또 녀석네 어머님이 1회 졸업을 한 국민학교에 부설유치원이 있어서 그곳을 알아보니, ‘학교 선생님네 아이들만 받아요’ 한답니다. 답동성당을 끼고 있는 이름난 유치원은 집하고 가깝기는 하지만, 워낙 이름난 곳이라 먼 데에서 찾아와 줄서서 기다리는 곳이니 엄두가 안 납니다. 어렵사리 알아본 곳은 주안에 자리한 곳으로, 버스로 데려다준다고 하지만, 집에서 유치원까지 40분 거리. 내 동무 이야기라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모든 젊은 부부네 일이라고 느낍니다.


.. 공동체 회원이라고 해서 늘 마음이 하나일 수는 없다. 특히 돈이 되니까 유기농하겠다고 하는 이들을 대할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예컨대 강순희 씨는 “아직 미비한 것이 많다”지만 제 집에 없거나 모자라는 식품은 물론이고 일상용품까지 몽땅 한살림에서 구입해 쓴다.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 짐작되는데, 그이가 이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은, “내 곡식은 비싸게 팔아먹겠다 하면서 남의 것은 비싸다고 안 먹는” 것이 결코 더불어 사는 자세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독거리면서 같이 가야” 된다는 마음이 너글너글하다 ..  〈151쪽〉


 인천 중구와 동구는 오래된 동네입니다. 개발업자들 말을 빌면 ‘구 도심’입니다. 동네사람들 말을 빌면 ‘오래된 삶터’입니다. 학교장과 공무원들이 보기에는 ‘땅 팔고 아파트 많은 곳으로 옮겨 가면 학교 장사가 잘될’ 듯하여, 초중고등학교 가리지 않고 하나둘 ‘아파트 새로 많이 올려세운 곳’으로 옮기는 곳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 동네에 오래도록 깃들고 있던 작은 집을 허물고 30층짜리, 50층짜리 아파트를 올려세우겠다는 목표를 세우고들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자꾸만 다른 구로 옮겨 버리면서 이 동네에 아파트를 50층짜리로 새로 올려세운다고 할 때, 이 아파트에 와서 살 사람은 ‘아이가 없어야’겠어요. 아이가 있으면 유치원조차 보낼 수 없으니까요.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자꾸만 옮겨가니까요. 학교는 또 나중 문제라서, 그때가 되면 서울 강남 어디메에서 일어났듯이, ‘상고를 헐고 인문고로 바꾼다’는 소리, ‘서민들 작은 집을 쓸어내고 학교로 바꾼다’는 소리를 내놓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 김치를 담든 된장을 담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성”이다 … 담배며 고기보다 더 나쁜 것이 가공식품이라고 생각한다. 정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농약과 방부제, 온갖 화학조미료가 듬뿍 든 가공식품은 다른 무엇보다도 “피를 탁하게 하기” 때문이다 ..  〈174쪽〉


 제 삶터인 인천만 동네 쉼터라 할 수 있는 공원이 없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일산 같은 곳에는 호수공원이 있고 분당 같은 곳은 강줄기를 따라서 공원이 마련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이런 데 말고, 바로 집 앞에 마련된 쉼터, 차소리와 차방귀 없이 느긋하게 쉴 수 있는 한편,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놀 수 있는 빈터는 얼마나 될까요. 아파트 놀이터는 사라지고, 아파트 주차장만 엄청나게 커진 오늘날,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또 어른들은 무슨 재미를 누릴까요. 집안에 들여놓은 ‘최신식 전자기기’들로? 인터넷으로? 풀 HD TV로? 널따란 아파트 집구석에 꾸며놓는 놀이기구나 책꽂이로?

 새로 짓는 아파트들 목숨이 기껏해야 스무 해나 서른 해입니다. 이 새로 지은 아파트들은 하나같이 ‘아토피 피부병’에 걸리기 좋은 집들입니다. ‘새집병’이 생길밖에 없는 아파트들인데, 이런 새 아파트들 값이 장난이 아니옵니다. 이런 집들에서 겨우 숨붙여 살 만하게 될 때면, ‘자, 이제 재개발합시다! 재개발하면 돈 돼요!’ 하고 외치고들 있습니다. 건축업자들이야 ‘돈 돼요! 돈!’ 하고 외친다지만, 이런 아파트에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돈이 된대요! 돈이!’ 하면서 얼싸안고 있습니다.


.. “숨통이 트인 삶”을 살게 되면서, 그는 돈은 벌지 못했지만 그 대신 자연 안에서 누리는 자유로운 삶이라는 더 큰 선물을 얻었으니 ..  〈203쪽〉

 





 〈4〉 《농부의 밥상》이라는 책


 《농부의 밥상》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농사꾼들이 즐겨먹는, 아니 날마다 먹는 밥상을 죽 돌아본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농사꾼들은, 남다른 뜻이 있어서 남다른 일을 하는 분들인데, 이분들이 아닌 여느 농사꾼들 밥상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덧붙여, 농사꾼이 아니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농사꾼 마음’을 잘 간직하고 있는 분들 밥상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요.


.. 어렸을 때 입맛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푸짐이ㆍ꽃님이ㆍ아루ㆍ보리, 이름도 어여쁜 네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는 제 기억대로 만든 음식들을 상에 올린다 ..  〈224쪽〉


 우리가 차리는 밥상에 놓인 밥그릇과 반찬그릇은 바로 우리들이 먹으려고 차려 놓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먹이려고 차려 놓습니다. 우리 어버이들을 먹이려고 차려 놓습니다. 때때로 이웃사람들한테 나누어 주기도 하니, 나와 내 식구와 내 둘레사람들 모두 먹을 수 있는 밥과 반찬입니다.


.. 보약이 어디 산나물뿐이겠는가. 진수성찬이라는 것과는 무관하나, 밭에서 길러 제철에 먹는 싱싱한 채소들도 여태껏 병원 신세 져 본 적 없이 건강한 이 집 식구들의 보약일 게다 ..  〈89쪽〉


 우리들이 날마다 하는 일은 얼마나 우리 삶을 가꾸고 있을까요. 우리 아닌 사람들, 그러니까 적어도 우리 집 식구들, 우리 동무들, 우리 이웃들한테도 도움이 되고 보람도 되며 즐거움도 나눌 만한 일이 되고 있을까요.

 우리들이 날마다 즐기는 놀이는 얼마나 우리 삶에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고 있을까요. 우리 아닌 사람들, 그러니까 적어도 우리 집 식구들, 우리 동무들, 우리 이웃들한테도 웃음과 눈물이 나며 재미있어서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즐길 만한 놀이가 되고 있을까요. (4340.1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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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크는 아이들 -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자라는 숲 속 유치원 이야기
이마이즈미 미네코.안네테 마이자 지음, 나카무라 스즈코 그림, 은미경 옮김 / 파란자전거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숲에서 크는 아이들
- 글 : 이마이즈미 미네코, 안네테 마이자
- 그림 : 나카무라 스즈코
- 옮긴이 : 은미경
- 펴낸곳 : 파란자전거(2007.3.24.)
- 책값 : 8500원



 이 책 하나 24 ― 골목집 꽃밭길과 숲속 학교
 : 독일에는 《숲에서 크는 아이들》이 있네


 〈1〉 초등학교 교과서 ‘자연 사랑’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만들어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배우는 《생활의 길잡이》라는 교과서를 보았습니다. 교과서 한 권을 본다고 해서, 요즈음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나 샅샅이 살필 수 없습니다. 다만, 살갗이라도 핥을 수 있을까요.

 7단원 ‘자연 사랑’을 펼칩니다. 첫 주제는, “자연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까닭을 알아봅시다”입니다. “지구를 병들게 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하고 묻고, “우리가 지구 환경을 보전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해 봅시다” 하고 묻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쪽에서는 “나무를 심자!”는 제목으로 글 하나 싣습니다. “우리 나라는 전체 차량의 37%에 해당하는 약 2백만 대의 차량이 디젤 자동차이니 그만큼 공기 오염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하고 말하면서.

 나무를 심는다고 공해 문제가 풀릴 턱이 없지만, 나무를 심을 수 있다면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나무를 어디에 심을 수 있을까요. 교과서에서는 “공기 오염을 줄이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로수를 많이 심는 것은 어떨까요? 특히, 가로수로 과일 나무를 심는다면 거리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교과서로서는 온힘을 다해 밝힌 ‘더러워진 공기 깨끗하게 하는 방법’을 말한 셈이라 하겠으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이 아니라 ‘어떤 방법’인지 낱낱이 들어서 말해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가로수를 많이 심”자고 교과서는 말합니다만, 거리나무는 누가 심을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심을 수 있나요? 자동차 북적이는 길거리 어디에 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요? 아스팔트를 깨고? 거님길 돌판을 깨고? 이미 자라고 있는 나무를 뽑고? 길거리에서 나무를 심을 만한 자리는 있을까요?


.. 아이들은 모두 물놀이를 아주 좋아합니다. 페릭스도 정원에서 있는 수돗가에서 물놀이를 자주 하지요. 그런데 냇물에서의 물놀이는 집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어 보입니다. 파블로나 베스는 벌써 장화 신은 발로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냇가에 들어갔네요 ..  〈25쪽〉


 우리 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살아가는 도시 어느 곳에도 ‘아이들이 나무를 심을 만한 조그마한 땅뙈기’는 없습니다. 동네 골목길에도 나무를 심을 자리란 없습니다. 도시에서 이 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산다고 할 수 있는 아파트 꽃밭에 나무를 심을 틈이 있을까요? 다세대주택이 바글바글 몰려 있는 비탈길 동네에 나무 심을 빈 땅이 있을까요?


.. 집에서는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할지 항상 아빠하고 엄마가 정하지만, 숲속 유치원에서는 뭐든지 다 같이 결정합니다 ..  〈29쪽〉


 ‘자연 사랑’ 단원에서는 “장바구니 사용하기”도 말합니다. “어머니들이 시장에 갈 때에 비닐 봉지 한두 개씩만 절약한다면, 우리 나라 전체로 볼 때에 엄청난 양이 절약됩니다. 어머니들이 시장에 가실 때에 꼭 장바구니를 가져가도록 말씀드리는 것도 작지만 환경 보호를 위해 해야 할 우리의 몫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저잣거리에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일을 떠올려봅니다. 저는 늘 장바구니뿐 아니라, 헌 비닐봉지를 갖고 다닙니다. 그러나 저잣거리를 거닐며 하나둘 사들이는 찬거리나 푸성귀나 먹을거리 어느 것도 ‘가게에서 비닐랩을 씌워 놓았’습니다. 벌써 한 번 비닐랩에 씌워진 물건을 살 때 비닐봉지 하나 적게 쓰는 일도 우리 삶터를 지켜 주는 좋은 일이곤 합니다. 하지만 비닐랩은 어쩌지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을 때, 족발이나 다른 먹을거리를 주문해 먹을 때, 밥집에서는 비닐랩을 얼마나 씌워서 가져다주는지요.

 우리 스스로 줄일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만, 정작 크게 마음쓰고 바꿔야 할 곳, 뿌리깊은 골칫거리를 고쳐나가지 않는다면, 우리들 몸짓은 그저 헛시늉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더욱이, 저잣거리에 물건 사러 가는 사람을 오로지 ‘어머니’로만 못박은 대목이 껄끄럽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죽 살피면서, ‘집안일은 어머니(여자) 몫, 집안에서 아버지(남자)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보는 몫’으로 나눠져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 그뿐인가요? 나무열매들도 빨강, 파랑, 검정 다채로운 빛깔을 뽐냅니다. 땅바닥을 내려다보니 선명한 황록색 잎사귀들이 아름답게 펼쳐 있습니다. 새의 깃털처럼 우아한 이 땅꼬마 풀고사리들이 숲속에서는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려 냅니다.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니, 숲은 단순히 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는 어두컴컴한 곳이 아니네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무들과 풀들이 모여 숲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제 잘 알겠습니다 ..  〈34쪽〉


 초등학교 교과서를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중학교 교과서는 어떨까? 고등학교 교과서는 어떨까? 설마…….

 두렵습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보면서 지식을 외워야 할 교과서가 어떤 모습으로 짜여져 있는지 들춰보기 두렵습니다. 아니, 이 두려운 교과서로 열두 해씩이나 제도권교육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오로지 대학교만 바라보도록 되어 있는 틀에서 찌들고 시들면서 싱싱함을 잃어가는데, 싱싱함을 잃어가는 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두렵습니다. 이 아이들이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사회에 나오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람과 부대끼며 어떤 일을 어떤 자리에서 할까요.


.. 천천히 먹고 여유 있게 쉬었기 때문인지 페릭스는 다시 힘이 솟았습니다. ‘야, 이제 놀아야지! 그런데 장난감도 없는데 뭘 하지?’ 집이라면 정원 모래밭에서 놀아도 되고 트럭이나 미니카 같은 장난감도 있지만, 숲속에는 나뭇잎과 나무, 풀, 나뭇가지, 흙, 돌멩이 같은 것밖에 없습니다. 새로 온 아이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  〈42쪽〉





 〈2〉 골목집 꽃그릇


 도서관 일을 마치는 저녁나절, 사진기 하나를 들고 골목길 나들이를 떠나곤 합니다. ‘도심 정화 재개발 사업’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밀려나거나 무너질 판에 놓인 여느 사람 살림집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놓습니다. 시와 개발업자는, 골목집 사람들한테 ‘입주권’이나 ‘이주 비용’을 도와준다고 말하지만, 입주권이 있다 한들, 골목집 사람들은 ‘새로 지을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 수 없습니다. 아파트 값도 치러내지 못하지만, 관리비 낼 만한 형편도 아닙니다. 지금 지내고 있는 골목집에서는, 많지 않은 돈으로도 달세를 내고 살림살이를 장만하며 오순도순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골목집 사람들이 어깨동무하고 있던 조그마한 공동체를 무너뜨리면, 이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자리를 마련해 어떻게 먹고사나요. 시나 개발업자 눈으로는 지붕 낮고 꾀죄죄해 보이는 게딱지집일지 모르지만, 이 게딱지집에 사는 이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포근하고 넉넉한 궁궐입니다. 한 사람한테는 발 뻗고 개운하게 잘 수 있는 방 한 간, 새힘을 얻을 밥을 해먹고 설거지를 할 수 있는 부엌 한 자리만 있으면 됩니다. 여기에, 제 먹을거리 얼마쯤 손수 마련할 수 있는 자그마한 텃밭이 있으면 더 좋겠지요.


.. 주차장에는 부모님들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침과 같이 페릭스 엄마는 자동차를 타고 왔고, 베스 엄마는 수레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왔지요. “자동차보다 수레 달린 자전거가 더 멋져.” 페릭스는 베스의 자전거가 부러웠습니다 ..  〈48쪽〉


 골목집 사람들은 시멘트로만 뒤덮인 길바닥 한켠에 크고작은 꽃그릇을 그러모아 내놓습니다. 헌 스티로폼 상자도 알뜰히 모아 놓습니다. 부지런히 몸을 놀려 흙을 한 주먹씩 퍼 온 다음 헌 꽃그릇과 스티로폼 상자에 차곡차곡 모읍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놓고, 때때로 당신들이 눈 똥오줌도 모아서 작게 두엄더미를 만들어 꽃그릇 흙과 섞곤 합니다. 이렇게 해서 골목길 바닥에는 흙 한 줌 없지만, 날마다 푸른 새숨을 내뿜어 주는 싱그러운 꽃밭길로 다시 태어납니다.


.. 아이들은 낙엽을 모아서 땅바닥에 늘어놓고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누가 이런 색을 칠하지? 도대체 누가 이런 모양을 만드는 걸까. 숲의 요정일까?” 페릭스가 물었습니다. “나무 스스로 이렇게 아름다운 색을 만든단다. 나무는 살아 있기 때문이지. 사람이나 동물처럼 말야.” ..  〈73쪽〉


 지난 4월부터 올망졸망 터져나온 꽃망울이 시월을 넘기며 마지막으로 노랗고 붉은 꽃내음을 남깁니다. 드문드문 있는 거리등불 어두운 골목을 거닐면서도 풀냄새와 꽃냄새를 느낍니다. 무릎을 꿇어 풀하고 키높이를 맞추고 꽃하고 눈높이를 맞춥니다. 사진 찍던 손을 거두어 꽃잎을 쓰다듬습니다. 가로세로 50센티미터를 겨우 넘을 만한 작은 꽃그릇에서 나무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봅니다. 한두 평 될까 말까 한 작은 마당에 심은 감나무에서 발그스름하게 익어 가는 감을 올려다봅니다. 저 감나무는 저 집하고 역사를 함께했을까요? 저 작은 집을 마련한 분이 ‘우리도 이제 우리 식구들 따숩게 지낼 집 하나 마련했다고’ 하면서 기쁜 마음에 어린나무 얻어와 마당 한켠에 심어서 이렇게 키워냈을까요?


.. 귀를 기울여 보니 나뭇잎들이 스치며 사락사락 속삭이는 소리, 바람이 낙엽을 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끔은 퍼드덕거리는 새의 날갯짓 소리도 들렸고요.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 다정다감한 숲의 너른 품에 포근히 안겨 있는 듯했습니다. 아침에 엄마한테 혼났던 것도, 친구들과 싸운 것도 잊어버릴 만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  〈76쪽〉


 시골에 갈 때마다, 산에 갈 적마다 흙을 한 봉지씩 담아 와서 옥상에 텃밭을 마련한 분들을 봅니다. 하루이틀이 아닌 한두 해에 걸쳐서 흙을 조금씩 모아 오셨고, 이렇게 모은 흙으로 옥상 텃밭을 일굽니다. 흙과 함께 벽돌도 하나둘 모았습니다. 다른 사람 손이 아닌 당신들 손으로 꾸민 옥상 텃밭에는 온갖 푸성귀가 무럭무럭 자라서 당신들 밥상에 올려놓고도 남을 만큼 됩니다. 고추농사를 짓는 텃밭이 되었다가는 콩농사를 짓는 텃밭이 됩니다. 어느새 3층 다세대집을 웃자랄 만큼 키큰나무가 된 오동나무를 보면서, 이야, 오동나무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까지 컸구나, 하고 놀랍니다.


.. 다른 아이들도 뒤영벌이 다시 꽃에 살포시 앉는 것을 기다렸다가 설레는 맘으로 만져 보았습니다. 곤충을 쓰다듬어 보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왠지 뒤영벌과 친구가 된 것처럼 모두 기분이 좋았습니다 ..  〈125쪽〉


 아파트에서 사는 분들은 꽃이며 풀이며 집안에 들여놓고(또는 툇마루에 내놓고) 지냅니다. 골목집에서 사는 분들은 꽃이며 풀이며 나무며 집밖에 내놓고 지냅니다. 생각해 보면, 아파트는 집 바깥에 꽃이나 풀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아파트 꽃밭이 있으나, 이 꽃밭은 관리인이 꽃나무 몇 가지와 잔디를 모셔 놓는 자리이지, 상추나 시금치나 무나 배추를 심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골목집은 집 바깥에 꽃이나 풀을 내놓을밖에 없습니다. 집안이 좁으니까요. 골목집 바깥 꽃그릇에는 온갖 푸성귀와 꽃이 자랍니다. 그러나 이 푸성귀를 뜯어 가는 사람이 없고, 예쁜 꽃이 자랐다고 해서 꽃그릇을 훔쳐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 숲은 눈으로만 보고 즐기는 곳이 아니라, 코로 냄새를 맡으며 즐길 수도 있는 곳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답니다 ..  〈122쪽〉


 달동네 집을 죄 밀어내고 번듯번듯 높직높직 올려세운 아파트 옆을 지나갈 때면 몸이 움츠러듭니다. 아파트 둘레는 ‘아파트사람들 자가용’이 들락거리기 좋도록 길을 닦았기 때문에,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오가느라 걷기 안 좋습니다. 게다가 씽씽 내달리기까지 합니다. 빵빵거리기도, 앞등 불빛을 깜빡거리거나 사람 눈높이로 쏘기도 합니다.

 자동차는커녕 자전거도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을 지나갈 때면 몸을 활짝 폅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어오지 못하는 조용한 골목길. 드문드문 옛날 나무전봇대를 만납니다. 인천에 터잡은 중국사람들 살림집을 봅니다. 예전에 틀림없이 다른 살림집이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계단짬에 잠깐 앉아 다리를 쉽니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달동네 언덕받이입니다. 그다지 멀잖은 곳에 바다가 보입니다. 도심지 살림집과 길거리 등불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기불은 언제까지 켤 수 있을까요.





 〈3〉 우리 어른들은 무슨 학교를 바라는가


 《숲에서 크는 아이들》은 독일에 있는 ‘숲속 유치원’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책입니다. 아이들은 시멘트나 쇠붙이 따위로 지은 딱딱한 건물이 아닌, 부드럽고 무른 흙과 풀이 있는 숲에서 함께 어울리고 부대끼며 배웁니다.

 참 부럽습니다. 우리로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교육 터전입니다. 지금 우리한테 숲이 얼마나 남아 있나요? 온누리 구석구석 아파트를 짓는다며, 지역자치정부는 공장을 세워 돈벌이를 해야 한다면서, 인천시장만 해도 그나마 남은 몇 안 되는 곳까지 파헤쳐 경제자유도시니 영어도시니 뭐니 만든다고, 여기에다가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를 때 쓸 경기장이니 선수촌아파트니 지하철 2호선이니 또 짓는다고 어마어마하게 공사판 법석을 피웁니다.

 지금은 국제공항이 들어섰지만, 이 자리는 오랜 소금밭이었습니다. 도시사람들이 좋아하는 ‘조개구이’에 쓰이는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는 드넓은 갯벌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영종도와 용유도 앞바다는 망둥이도 잡던 곳이었으며, 몇 만 마리에 이르는 철새들이 머물다 가는 쉼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오로지 사람 좋을 대로만 생각하면서 날짐승과 바닷짐승 보금자리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 아이들이 함께 누리고 즐길 ‘바다 놀이터’ 또한 빼앗은 셈입니다. 가까이 보면 인천사람이지만, 인천 둘레 바닷가로 놀러와서 갯벌과 밀물썰물 달라짐을 느끼면서 자기 마음에 깃든 자연을 키울 남녘나라 사람들 삶터를 잃었어요.


.. 아이 엄마는 냇가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 짐작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  〈49쪽〉


 《숲에서 크는 아이들》에 나오는 ‘숲속 학교’는 돈으로 닦아세우거나 올려세울 수 없는 학교입니다. 돈을 들일 까닭도 없는 학교입니다. 우리 삶을 바꿀 수 있으면, 우리 생각을 돌려놓을 수 있으면,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학교이고, 언제 어느 곳에서도 알뜰히 돌보거나 가꿀 수 있는 학교입니다.

 참말, 우리 터전에서는 숲속 학교란 꿈꾸기 어려운 곳이라 할 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조금은 남아 있잖아요. 숲속 학교뿐 아니라 ‘바다 학교’를 가꿀 수 있고, ‘들(논밭) 학교’와 ‘산 학교’를 껴안을 수 있어요.


.. 요즈음 엄마 아빠와 함께 숲에 산책하러 가는 일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숲은 아무리 가도 물리지 않는 곳이니까요. “저건 전나무, 저건 가문비나무예요.” 페릭스는 아빠에게 가르쳐 주기 바빴습니다. “어떻게 아니?” 아빠는 언제나 신기해 하며 물었습니다 ..  〈136쪽〉


 이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돈’을 선물하고 싶다면, 숲속 학교든 바다 학교든 찾아내어 가꿀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일류대학교 졸업장’을 선물하고 싶다면, 숲속 학교든 들 학교든 돌보며 지킬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풋풋한 젊음을 키워 가는 아이들한테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선물하고 싶다면, 숲속 학교든 산 학교든 어깨동무하며 웃고 뒤놀 터전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4340.10.2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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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한 아침 2007-11-2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번역한 책을 이렇게 리뷰해주시니 새롭고 기쁩니다. 제 블로그에 이 글을 옮겨 놓겠습니다.

숲노래 2007-11-2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세상은 참 좁네요 ^^;;;
어줍잖은 글 읽어 주시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