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책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 윤효진 옮김 / 양문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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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51 ― 수수한 애벌레한테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비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곤충ㆍ책》



- 책이름 : 곤충ㆍ책,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대
- 글ㆍ그림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 옮긴이 : 윤효진
- 펴낸곳 : 양문(2004.10.20.)
- 책값 : 12000원



 (1) 내 삶터에 함께 있는 꽃과 풀


 망초가 있고 개망초가 있습니다. 살구가 있고 개살구가 있듯, 둘은 조금 다릅니다. 개망초가 먼저 꽃을 피우고, 망초는 조금 늦게 꽃을 피웁니다. 이 풀꽃 이름을 놓고 이런저런 옛이야기가 있는데, 얼마나 믿을 만한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다만 한 가지, 우리들한테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풀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농사꾼들도 무척 싫어하는 잡풀 가운데 하나입니다. 뽑아도 뽑아도 다시 돋는 망초, 꺾어도 꺾어도 다시 자라는 망초. 끈질기디끈질기기 때문에 풀약을 치지만, 풀약에도 꿈쩍을 않는 망초입니다.

 이러한 망초이지만, ‘망초’는 느즈막이 꽃을 피우고(7월이 넘어야), ‘개망초’는 일찌감치 꽃을 피웁니다(6월이 되기 앞서). 먼저 꽃을 피운 개망초는 자기 씨를 널리널리 퍼뜨립니다. 느즈막이 꽃을 피운 망초는 일찌감치 개망초한테 자리를 빼앗겨 차츰차츰 구석으로 몰립니다. 구석으로 몰리다 못해, 도시에서는 골목길 담벼락 밑자락 틈바구니에 겨우 보금자리를 틀곤 합니다. 개망초는 손바닥 만한 땅뙈기라도 있으면 먼저 차지를 해 버립니다. 개망초가 한창 꽃을 피워도 푸른 꽃잎만 내보이는 망초를 보고서, ‘오호라, 넌 여기에서도 잘 자라는구나.’ 하고 줄기를 쓰다듬어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 질기네. 어쩜 저런 데서도 살아나나.’ 하면서 징그럽게 여기는 사람만 많습니다.

 조그마한 꽃을 피우는 망초와 개망초. 바쁜 걸음으로 지나치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자그마한 꽃을 피우는 망초와 개망초. 때때로 한갓지기도 하여, 또는 공원 걸상에 잠깐 앉기도 하여, 사람들은 이 풀이 피워낸 꽃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이때마다 ‘이야, 조그마한 꽃이 퍽 예쁜데?’ 하면서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조그맣고 예쁘장한 꽃이 무슨 풀인 줄 모릅니다. 그리고 이 꽃이 무엇이었는가를 알게 되면, ‘뭐야, 그랬단 말야?’ 하면서 고개를 모로 돌리곤 합니다.


.. 무르익은 파인애플의 모습이다. 껍질이 엄지손가락만큼 두꺼워 깎아내고 먹어야 하는데, 자칫 어설프게 깎았다가는 날카로운 가시에 혀를 다칠 수도 있다. 포도, 살구, 까치밥나무열매, 사과, 배를 뒤섞어 놓은 것처럼 맛이 절묘하다 ..  (18쪽)


 지난 일요일 아침, 형과 함께 동인천 뒤편 골목길을 거닐었습니다. 우리 모두한테 고향인 인천이고, 어릴 적 참말로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놀던 곳인 동인천 둘레입니다. 저는 지난해에 인천으로 돌아와서 거의 날마다 이곳 골목길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처음 인천으로 돌아와서 다닐 때에는, 어릴 적 그토록 신발이 닳도록 다닌 길이 잘 떠오르지 않아 낯설기도 했지만, 하루이틀 다시 걷고 또 걷는 가운데 예전 일이 하나둘 떠올랐고, 어릴 적 걷던 일도 차츰차츰 생각났습니다.

 늘 걷는 골목이지만, 늘 새삼스럽다고 느낍니다. 철 따라 골목길 꽃이 다르고, 꽃이 다 진 뒤에도 날마다 느낌이 달랐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꼭 한 해를 보내고 난 뒤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도 새삼스럽습니다.

 송현동 골목길을 거닐다가, 늘 지나가는 길을 거닐다가, 낯익인 듯 낯익지 않은 듯한 열매나무를 보았습니다. 뭐지? 앵두인가? 그러나 잘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살그머니 열매를 만져 봅니다. 말랑말랑합니다. 앵두 같은데. 그러나 앵두가 열매 맺힐 때 이런 모습이었나? 형은 “앵두는 아닌 듯한데. 앵두 열매를 보면 다르게 생겼잖아?” “그런가?”


.. 이 아메리카 버찌는 유럽의 버찌와는 맛이 틀리다. 하얀 꽃과 붉은 꽃을 같이 피운다. 나무의 크기도 네덜란드나 독일에서 자라는 버찌나무보다 크지 않다. 만약 이곳이 이윤에 덜 눈이 멀고 느긋한 농장주들이 지배하는 곳이라면 이 버찌들도 좀더 완숙한 맛을 내게 되지 않을까 ..  (32쪽)




 나중에 집에 와서 도감을 살펴보고, 찍은 사진을 둘레에 보여주니 ‘앵두가 맞다’고 합니다. 그래, 앵두. 그러나 척 보고도 앵두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앵두인 듯 아닌 듯 느끼는 가운데에도, 앵두나무 줄기가 이렇던가, 앵두잎이 이렇던가 하면서 고개를 몇 번이고 갸우뚱했습니다. 정작 앵두를 먹으면서 살아도, 또 ‘앵두 같은 내 입술 예쁘기도 하지요’ 하는 노래를 어릴 적부터 익히 들었어도, 앵두나무를 코앞에 두고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날, 형과 골목길을 거닐던 날, 앵두나무 꽃그릇에서 오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토마토 꽃그릇’을 보았습니다. 처음 토마토 꽃그릇을 보면서도, 이 꽃그릇에서 자라는 녀석이 토마토인지 아닌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노란 꽃이 어여삐 피기는 했는데, 무슨 꽃일까 한참 헤아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헤아리다가, 바로 옆에 꽃이 지고 열매가 맺은 앙증맞은 토마토 열매를 보고서는, 비로소, 아하, 깨달았습니다.


.. 나는 유별나게 생긴 이 애벌레가 어떻게 변신할지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그런데 1700년 8월 10일 볼품없는 나방으로 변해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처럼 아름답고 특이하게 생긴 유충에서는 별 볼일 없는 녀석이, 평범하게 생긴 유충에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비와 나방이 탄생하는 일은 흔하다 ..  (50쪽)


 거리마다 은행나무가 가득입니다. 요사이는 벚나무를 아주 많이 심어서, 봄마다 사람들은 벚나무 구경을 갑니다. 가을이면 은행나무를 쿵쿵 찧으면서 은행 열매 거두려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태껏 한 번도 은행꽃을 못 보았습니다. 가지치기를 하도 해대는 바람에 은행꽃이 피었는지 안 피었는지 알아볼 수 없기도 했을 테지요(키높이에서는 은행 열매가 보이지도 않으니, 은행꽃이 피어도 여느 사람 키높이로는 알아보기 어려울 테니까요). 벚나무가 그렇게 곳곳에 피고 지고 하는데, 정작 버찌 열매는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다지 안 큰 벚나무도 많아서 벚꽃은 눈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왜 버찌는 구경할 수 없는지. 누군가 미리 따 가기 때문일는지. 들새가 모조리 따먹어서 버찌를 구경할 수 없었을는지.


.. 수리남에는 형형색색으로 다양한 종류의 포도나무가 사방에 우후죽순처럼 자란다. 가지를 꺾어 땅에 꽂아두기만 해도 6개월만 지나면 어느새 탐스런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린다. 만약 매달 심는다면 1년 내내 포도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1년에도 몇 차례씩 포도 수확이 가능한 수리남으로 포도주를 챙겨 온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  (98쪽)


 성당 나들이를 다녀온 옆지기가 쥐눈이콩 한 봉지를 사 옵니다. 우리는 서리콩도 먹고 까만콩도 먹고 푸른콩도 먹습니다. 어릴 적, 집에서 어머니한테 배우면서 콩을 심어 거두어서 먹곤 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사먹는 콩맛도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국민학교 1학년 그 어린 날, 제가 손수 심고 날마다 가꾸어서 열매를 맺어 손수 콩깍지를 까서 밥에 넣어 먹은 그 콩맛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으며 군침이 도는 콩맛입니다.

 그때, 콩 열매만 먹는 줄 알고 콩잎 먹는 줄은 몰랐습니다. 고추를 먹으면서도 고추잎을 먹는 줄 안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깨와 깻잎을 이어서 생각한 지도 몇 해 안 되었습니다. 호박과 호박잎, 무와 무잎, 그리고 김치와 날배추잎, 이 모두를 한동아리로 바라보고 받아들이지 못해 온 삶이었다고 할까요.

 도시내기니 어쩔 수 없다지만, 도시내기라고 해서 이렇게 살아가야만 한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배속만 채우는, 슬픈 삶이라고 느낍니다. 흙이 어떤가에 따라서 콩맛이 달라지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콩맛이 달라지며, 쬔 햇볕에 따라서 콩맛이 어찌 달라지는가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저 무슨 콩이 영양소가 어떠하다는 수치와 정보만으로 콩밥을 먹는다면, 너무 딱한 삶이 아니랴 싶습니다.





.. 플로스 파보니스는 높이가 280센티미터 정도이며 노란 꽃과 붉은 꽃을 피운다. 씨는 출산 진통을 겪는 임산부를 위해 사용된다. 네덜란드인들 밑에서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 여성 노예들은 아이를 지우기 위해 이 씨를 사용한다. 자신의 삶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다. 서아프리카의 기니나 앙골라에서 끌려온 흑인여성 노예들은 보다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야 한다. 무자비한 착취가 계속되는 한 이들의 낙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  (127쪽)


 논이 있고 밭이 있는 시골에서 밥 한 그릇 받을 때하고, 논도 없고 밭도 없는 도시에서 자동차 씽씽 달리는 길에 둘러싸인 채 전기불 아래에서 밥 한 그릇 받을 때하고는 아주 크게 다릅니다. 해와 바람과 물과 흙으로 빚어낸 밥 한 그릇과 돈 몇 푼으로 얻는 밥 한 그릇이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훌륭히 갈무리된 도감과 그림책을 보면서 익히는 꽃 이야기, 풀 이야기, 나무 이야기하고, 우리가 손에 흙을 묻히면서 심고 가꾸는 꽃과 풀과 나무 이야기하고 같을 수 있겠습니까. 꽃집에서 소담스레 만들어 주는 장미꽃다발도 틀림없이 곱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집에서 씨앗을 받아서 심는 꽃 한 송이도 틀림없이 곱습니다.


 (2) 《곤충ㆍ책》과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수리남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를 찬찬히 헤아리면서, 풀과 나무에 깃들어 살아가는 벌레 또한 가만히 살핀 이야기를 담은 《곤충ㆍ책》이 있습니다. 1600∼1700년대 수리남 자연 삶터를 담았다고 할 만한 책입니다. 그래서 2000년대 오늘날 수리남과 견주면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거의 300∼400이라는 햇수이니까요. 열 해만 되어도 강산이 바뀐다고 했거늘, 삼백과 사백이라는 숫자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그동안 사라지는 푸나무가 있을 테며 새롭게 생겼다고 할 만한 푸나무가 있습니다. 삼백 해와 사백 해라는 세월 동안 달라지는 우리들 사람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삼백과 사백이라는 숫자를 놓고도 달라지지 않거나 고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백 해가 아닌 오백 해나 천 해가 가도록 바뀌지 않는 우리들 사람 삶 또한 있습니다.


.. 출판을 통해 큰 이익을 보려는 생각은 없다. 그저 들어간 비용만 회수되면 족하다. 나는 책을 만드는 데 비용을 아낌없이 지출했다. 곤충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족감과 즐거움을 주려는 일념으로 저명한 장인에게 동판화의 제작을 의뢰했고, 가장 질 좋은 종이를 사용했다.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그것으로 나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고 더 이상의 기쁨은 없을 것이다 ..  (12쪽)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수리남 사람들 삶터는, 식민지로 부리던 살갗 하얀 사람들 때문에 크게 바뀌었습니다. 수리남사람 스스로 즐거웁거나 기쁘도록 농사를 짓고 문화를 가꾸고 마을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수리남사람이 먹고마실 먹을거리를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수리남사람끼리 신나게 어울리며 애틋하게 사랑을 나눌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수리남 삶은, 또 삶터는, 또 자연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요. 나아지고 있습니까. 나아졌다고 할 만할까요. 앞으로는 나아질 수 있을는지요. 우리하고는 너무 먼 나라이니까, 우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이니까, 그곳이 어찌 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을 일인지 모르고, 또 우리들은 우리들 일로도 너무 바빠서 그런 곳까지 헤아릴 까닭이 없을지 모릅니다만, 수리남 사람과 자연 삶터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요.


.. 메리안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리남 식민사회를 지배하는 오만한 사탕수수 농장주들과 갈등관계에 놓인다. 그는 흑인을 비인간적으로 착취하는 농장주들을 비난했고, 그들은 메리안을 돈도 되지 않는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는 괴상한 여자라고 비웃었다. 노예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태도나 노예를 데리고 열대림을 누비는 행동이 그들에게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메리안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농장주들을 의식하지 않았고, 또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 메리안은 아무리 혐오스러운 생물일지라도 가까이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 주목받지 못하는 미물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그로 하여금 열대의 자연을 더욱 놀랍고 감동적으로 체험하게 했다 ..  (헬무트 데케르트/189∼190쪽)


 어쩌면, 《곤충ㆍ책》을 그리고 쓴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라고 하는 사람한테도, 더구나 1600∼1700년대 그때에, 게다가 여자라는 몸으로 미루어보건대, 수리남이라고 하는 식민지 나라에, 또한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고 있지 않던 ‘수리남 벌레들 탈바꿈’에 눈길을 두는 일은 몹시 철없는 짓이고 어처구니없는 짓이며 시간과 돈이 남아도니 하는 짓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자기 스스로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사랑할 만한 일이 무엇이고, 자기가 애틋하게 바라볼 만한 일이 무엇이며, 자기가 몸바쳐서 이루어내면 좋을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식민지 지배자들 편견과 끔찍한 날씨와 말라리아와 어려운 살림살이 모두를 견디어내거나 이겨내면서 책 하나를 빚어냈습니다. 《곤충ㆍ책》을. 그리고 새로운 꿈도 꾸었어요. “(도마뱀은) 죽은 동물이나 물고기를 구하지 못하면 개미나 파리를 먹기도 한다. 만약 이 책이 독자의 호평으로 많은 판매수익까지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이런 동물의 일대기를 추적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싶다(24쪽).”는 꿈을. (4341.6.6.쇠.ㅎㄲㅅㄱ)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1647∼1717)

동판화가이자 역사가이자 지리학자이자 서지학자로 이름을 날린 ‘마테우스 메리안’이 낳은 딸. 그렇지만 마테우스 메리안 후광은 식구들한테 조금도 퍼지지 못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을 낳은 어머니는 ‘마테우스 메리안이 나중에 얻은 여자’였고, 아버지라는 사람이 죽자 그 집안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보잘것없는 신분에 하잘것없는 살림에 아무것도 없는 형편으로 스스로 모든 삶을 일군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독일 마르크돈 500마르크짜리에 얼굴을 새기기도 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이이가 조그마한 벌레 삶을 헤아리며 그림으로 남기던 때에는, “애벌레나 구더기들이 더러운 쓰레기에서 생겨난 악마”라고 여기던 때. 마녀로 도장찍혀 죽을 수 있었고,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오랜 경험과 지켜보기로 빚어낸 책과 그림을 놓고 ‘거짓말’이라고 깎아내리는 터무니없는 말을 들으면서 쓴맛을 견디어내야 했다. 그러나 자기 연구와 예술을 지키고 가꾸조가 가시밭길을 꿋꿋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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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23
우자와 히로후미 지음 / 소화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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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47 ― 아름다운 지구가 왜 더러워지는지 아십니까
 : 우자와 히로후미,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



- 책이름 :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
- 글 : 우자와 히로후미
- 옮긴이 : 김준호
- 펴낸곳 : 소화(1997.1.6.)



 (1) 날씨와 공무원과 내 몸


 무르익은 봄을 알리는 비가 오는가 싶더니, 봄비가 아닌 겨울비 같은 찬비가 내렸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걸맞는 따뜻한 봄비가 아니었습니다. 따뜻함을 싹 가시게 하는 찬비였습니다. 그렇게 제법 긴 날이 흐른 뒤 밤새 짙은 안개가 끼더니 날이 살며시 포근해집니다.


.. 이와 같은 기후의 변화에 의해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농업, 입업, 어업이다. 농작물이나 수목의 생육은 그 토지 고유의 기상 조건에 의해 크게 좌우되며, 또한 어패류의 생식도 바다의 온도가 조금만 변화해도 커다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  (17쪽)


 지난겨울을 생각하면, 겨울 같지 않은 포근함이 오래도록 이어지다가 갑자기 한 번 온도가 뚝 떨어지더니, 그 뒤로는 두 달 가까이 날씨가 한 번도 풀리지 않는 꽁꽁겨울이었습니다. 이 겨울이 풀리는가 싶더니 보름 만에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조금 더웁기까지 했습니다. 봄이란 없이 곧바로 여름이 다가오느냐 싶다가, 굵은 비 몇 차례 들은 뒤 어느 만큼 알맞는 날씨로 자리잡습니다. 선뜻 여름 들머리로 가지 못하고 있는 날씨입니다만, 집에서는 거미와 바퀴와 모기가 깨어납니다. 파리도 바깥에서 날아듭니다. 들새는 들새대로 어린 새끼를 치면서 먹이를 찾느라 바쁩니다. 도서관이나 집에 앉아 있으면서도, 바깥에서 들려오는 새끼새 가냘픈 소리가 들려옵니다.

 봄꽃은 골목길마다 활짝활짝 피어납니다. 벌써 져 버린 꽃이 있고,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이 있으며, 막 피어나려는 꽃이 있습니다. 이제 비로소 따뜻함을 물씬 느끼면서 사는 새날이구나 하며 한숨을 돌릴 즈음인데, 이러다가 들이닥친 차가운 비에다가, 모진 바람에다가, 쿵쾅쿵쾅 울리는 벼락이라니.


.. 중국, 인도를 비롯해서 발전도상국이 모두 미국과 같은 대량의 화석 연료를 사용한다고 하면 심각한 사태가 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발전도상국에 대해서 화석 연료의 사용을 늘리지 말라고 말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선진공업국이 화석 연료의 소비를 대폭으로 줄이는 노력을 함으로써, 비로소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  (71∼72쪽)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주섬주섬 겨울옷을 찾아서 입습니다. 벗었던 속속옷도 다시 입습니다. 옷장에 집어넣었던 두꺼운 겉옷도 꺼내어 입으십니다. 저는 반바지차림 그대로 돌아다닙니다. ‘배다리 산업도로 무효화’ 집회터에도 반바지차림으로 갑니다. 새벽부터 비바람을 옴팡 뒤집어씁니다. 낮이 되자 골이 띵합니다. 집회터에 더 버티고 서 있기 어렵다고 느껴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 시간 반쯤 누워서 쉽니다. 두 시 오십 분쯤 일어나 동구청으로 갑니다. 동구청에서 인천시 도로건설과 공무원과 종건본부장 들이 찾아와서 주민과 만나는 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시간을 한 시간 뒤로 미루었다고 합니다. 토론자리를 마련하면서 시공사한테 ‘공사중단’ 지시를 내리지 않아서 주민들은 집회터에 그대로 비바람 맞으면서 있다고 합니다.

 네 시 반쯤 되어서야 금창동사무소로 옮겨서 토론자리를 엽니다. 긴소매 웃옷을 걸치고 동사무소로 찾아갑니다. 시에서 일하는 높은자리 공무원 분들은 말씀을 아낍니다. 주민들이 조목조목 따지는 이야기를 듣고도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스터디를 많이 했다고 했는데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을 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인천시 공무원)는 원칙을 지킵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합니다. 주민들이 ‘그 원칙이라는 게 뭔가요?’ 하고 물으니, ‘공사를 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하고 대답해 줍니다. 그리고 ‘이미 보상비가 들어갔기에 도로부지를 다르게 쓸 수 없다’고 덧붙입니다. ‘인천시 스스로도 이 길을 놓아야 할 까닭(타당성)이 없음을 깨달았으면서도 왜 정치를 펼쳐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느냐’고 주민들이 묻습니다. 이 말에는 ‘그렇게 되면 인천시 다른 곳하고 형평에 어긋난다’고 하면서, ‘우리 집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연수동은 왕복 12차선이지만 걸어서 학교를 다니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여기에서만 통학에 문제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주민들이 거의 한목소리로 ‘고등학생하고 초등학생이 같습니까. 산업도로를 놓으려는 이곳에는 초등학교가 네 군데나 직접 붙어 있습니다. 이 길이 왕복 6차선으로 줄인 길이라고 하시는데, 폭이 50미터가 넘습니다. 이 길을 초등학생보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하고 소리높여 따집니다. 인천시에서 나온 높은자리 공무원은 말이 없습니다.


.. 선진공업국에서는 낭비를 미덕으로 물질적 쾌적함과 풍요를 탐욕스러울 정도로 추구하고 있다. 지구 환경에 커다란 스트레스를 주며 지구온난화를 비롯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음에도 거의 반성다운 반성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77쪽)


 저는 옆에서 시 공무원들 말과 주민들 말을 수첩에 받아적습니다. 세 시간 가까이 받아적습니다. 엄지손가락이 볼펜대에 눌려서 아픕니다. 골은 더욱 띵하고 다리는 뻑적지근합니다. 혼자서 받아적고 사진 찍고 왔다갔다 하노라니 어서 이 토론자리가 끝나고 집에 가서 쉬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세 시간이 다 되어 가는 토론자리는 마무리가 될 낌새가 없습니다. 시에서 오신 분들은 아무런 다짐을 해 주지 않습니다. 다음에 언제 다시 만날지, 스스로도 잘못이라고 느낀 대목이 있으니 다시 검토를 하겠다든지, 무슨 실마리가 될 만한 이야기는 한 가지도 내놓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화를 참지 못하고 터뜨립니다. “여보시오, 지금 여기 동구에 육십오세 이상 노인이 몇 사람이 사는지 아십니까?”

 속으로 외칩니다. ‘아, 모를 테지요. 아니, 생각을 아예 안 할 테지요. 이 공무원 분들은 길닦는 전문가라고 스스로 내세울 뿐, 길이 나는 곳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어떻게 어울리며 사는 사람들인지는 조금도 살피지 않는데요. 도로과 공무원들은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았고, 교통영향평가도 하지 않았어요.’

 ‘길을 내야 한다면서, 정작 길이 지나가는 곳 터전은 어떠하고, 이곳에 깃들이고 있는 사람들 삶은 어떠한지를 살피지 않는 시 공무원들이에요. 흔히들 쇠밥그릇이라고 말을 하지만, 쇠밥그릇이라기보다는 ‘동네 형편을 조금도 모르는 책상물림’이에요.’


.. 무쓰오가와라 개발 계획 때문에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적절한 직업을 얻지 못하고 대부분이 집을 떠나 돈벌이를 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무쓰오가와라 개발 계획은 록카쇼무라의 농민을 말 그대로 지옥에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  (169쪽)


 모든 것을 숫자로만 따지는 공무원입니다. 동네사람 한 달 벌이를 숫자로만 따집니다. 이 동네 사람들이 얼마쯤인지 숫자로만 따집니다. 이 동네 사람이 사는 집을 돈이라는 숫자로만 따집니다. ‘만족도 조사’라고 있다면, 이 또한 숫자로 금을 죽죽 긋습니다. 숫자 아닌 사람들 목소리를, 손과 발을, 얼굴과 몸뚱이를, 가슴과 마음을, 눈과 머리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그 숫자놀이 가운데 ‘소음공해 기준치’를 여러 달에 걸쳐서 따졌을 때, 진작에 훨씬 넘어서며 말썽이 있다는 보고서가 있는데, 이러한 보고서 숫자는 아예 펼치지 않습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무슨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무슨 말을 적을 수 있을까. 이 공무원들한테는 동네 골목길에 심긴 꽃나무와 푸성귀는 ‘몇 푼어치’ 안 되는 것들이라서, 이 꽃과 나물을 싹 밀어내고 얼마쯤 갚아(보상) 주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구나 싶습니다.  집값 얼마 갚아 주고, 집 옮기는 돈 얼마 보태어 주고, 어여 이곳을 떠나 주기만을 바라는구나 싶습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갑니다. 몸살이 납니다. 이튿날 하루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드러눕습니다. 그 다음날 입술이 부르틉니다. 그 다음날 입안이 헐고 붓습니다. 밥을 못 먹고 말도 못 하며 한 주를 보내고 나니 비로소 몸살과 붓기가 가라앉습니다.


 (2) 자동차와 길과 사람과 삶


 돈 뽑으러 은행을 다녀옵니다. 건널목 푸른불이 들어와서 건너려는데 옆에서 큰 차가 빠르기를 늦추지 않고 싱 달려오더니 사람을 칠 듯합니다. 움찔 놀라면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운전사를 바라봅니다. 차가 끼이익 멈춥니다. 틀림없이 푸른불로 신호가 바뀌었고 사람들이 건너고 있지만 이 자동차는 그냥 내달렸습니다. 치일까 걱정되면 푸른불이라 해도 비키라는 뜻인가요.

 오늘뿐 아닙니다. 다른 때에도 으레 이렇습니다. 어디를 가든, 인천이 아닌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대전에서도 꼭같은 일을 겪습니다. 조금 넓은 골목길을 걷고 있으면 뒤에서 차소리가 들립니다. 옆지기와 느긋하게 손잡고 걷고 싶으나 손을 놓고 길가 담벼락에 찰싹 붙어야 합니다. 골목에서도 사람은 깨갱이고 자동차는 빠방입니다.


.. 자동차는 이중의 의미에서 지구온난화의 요인이다. 우선 자동차의 생산 공정에서 직접 간접으로 화석 연료의 소비를 필요로 한다. 승용차를 1대 생산하는 데 평균 884kg(탄소환산)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배출한다. 두 번째로 자동차를 사용할 때는 당연히 석유를 필요로 한다. 그때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일본의 경우 소형승용차 1대당 1년 간 평균 649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  (76쪽)


 우리 집 둘레로 문방구 도매상이 줄줄 잇닿아 있습니다. 이 도매상 앞에는 늘 차들이 뒤죽박죽입니다. 물건을 싣느라, 또 부리느라 북적북적입니다. 시내버스가 지나가는 두찻길인데, 차가 한 줄로만 서 있어도 막히고 두 줄로 서 있으면 거의 꼼짝을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 볼일을 보아야 한다는 짐차들은 시내버스가 빵빵 울려도 비켜 줄 생각을 않습니다. 집안에서 이 빵빵질 소리와 운전기사가 외치는 소리를 낱낱이 듣습니다.

 차댈 곳이 마련되지 않는 가운데 도매상거리를 이루도록 허가를 내준 구청 공무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신지.


.. 자동차가 가져온 가장 커다란 해독은 말할 것도 없이 교통사고에 의한 희생이다 …… 현재 자동차의 교통사고로 일본 전체에서 매년 1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백만 명 가까운 부상자가 나오고 있다. 인간의 희생이라는 점에서 볼 때 자동차에 의한 피해는 한신대진재가 매년 두 번 일어나는 셈이다 …… 또한 자동차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운동 부족에 빠지며 오염된 대기 속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건강을 해치는 위험도 높아진다 …… 문화의 발전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나, 자동차를 이용하면 이와 같은 관계를 갖는 기회가 적어지고 ..  (86∼88쪽)


 낮 두어 시 무렵, 초등학교 앞은 노란 차들로 가득합니다. 학원마다 아이들을 데려가려고 법석입니다. 학교 마치고 곧바로 집까지 걸어가는 아이들도 있을 터이나 무척 많은 아이들은 학원버스를 타고 학원돌기를 합니다. 이 아이들은 언제쯤 얼마 동안 집과 학교 둘레 골목을 거닐어 볼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만나는 이웃 어른은 부모와 학원 교사와 학원차 운전기사를 빼고 누가 또 있을까요.


.. 일본의 도로는 원래 보행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폭도 좁으며, 구부러진 길이 대부분이다. 옛날에는 어린이들은 길에서 놀거나 즐겁게 통학을 하며 지냈다. 그러나 자동차가 좁은 길에 침입해 왔을 때, 어린이들의 통학은 대단히 위험하게 되어, 길에서 노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어린이 공원은 자동차의 보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  (117∼118쪽)


 그제,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시위 대학생 물결을 마주칩니다. 대학생들은 한목소리로 ‘비싼 등록금’과 ‘미친소병 소고기 문제’를 외칩니다. 알록달록 깃발을 들고 종로거리를 걷는 대학생들이 퍽 많았으나, 훨씬 많은 대학생들은 이 시위 물결에 함께하지 않습니다. 서울 아닌 곳에서 배우는 대학생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시위대가 종로거리를 지나가니 닭장차도 바쁘게 움직입니다. 닭장차가 움직이니 여느 차와 버스는 꼼짝을 못하고 멎습니다. 교통경찰이 넓은 길 한복판에 나와서 여느 차 움직임을 막고 닭장차가 지나가도록 길을 틉니다. 어느 시민도 투덜거리지 않습니다. 교통방송에는 무슨 이야기가 흐르고 있을는지.


.. 노인이나 어린이들이 육교를 오르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세계에서 문명국이라 불리는 나라 중 이와 같은 육교가 눈에 띄는 곳은 없다 ..  (118쪽)


 종로에서 명륜동까지 걸었습니다. 창경궁을 옆으로 끼는 길을 걸었습니다. 차소리가 아주 큽니다. 차소리가 없다면 고즈넉한 길일 테지만, 이 기나긴 길을 걷는 내내 옆사람하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잠깐 다리쉼을 하고 싶어도 걸상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고 배기가스와 차소리로 고달프기 때문에, 어딘가 들어갈 때까지는 쉼없이 걸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아주 드뭅니다. 띄엄띄엄 한둘만 보입니다. 이 길을 걷는 우리는 바보였나.

 누구라도 걷고픈 마음이 안 생길 테지요. 차가 싱싱 달리는 길가에는, 차소리로 시끄러운 길 둘레에는, 싱그러운 바람이 아닌 자동차 배기가스를 들이마셔야 하는 거님길에는, 어느 누가 걷고플까요.


.. 보행자는 언제 자동차에 치일지 모르는 길을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허파 가득히 들이쉬면서 걷는 셈이다 …… 주택도 직접 차도에 면한 경우가 많은데, 반드시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무 등을 심고, 사람들의 생활이 자동차의 배기가스ㆍ소음ㆍ진동으로부터 보호되도록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  (122쪽)


 책방 나들이를 하며 책을 잔뜩 사들이니까, 또 사진장비를 이고 지느라 어깨가 고단하니까, 둘레에서 ‘웬만하면 작은 차 하나 사라’는 말을 끊임없이 합니다. ‘운전면허도 없습니다’라 말하면 ‘왜 운전면허가 없어? 면허부터 따야겠네’ 하고 덧붙입니다. ‘차를 왜 몰아야 할까요?’ 하고 되묻거나 ‘차에 넣는 기름은 어찌하나요?’ 하고 되물으면 ‘무거운 짐으로 몸을 괴롭히지 않아서 좋다’고 대꾸해 주고, ‘더 부지런히 일해서 돈벌면 되잖아’ 하고 대꾸해 줍니다. 그러면 저는 ‘무슨 일을 해야 돈벌이가 되어 차를 굴릴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쭙니다. ‘책 많이 팔면 되잖아?’ ‘어떤 책을 많이 팔아야 할까요? 사람들은 어떤 책을 많이 읽을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 차 없는 사람은 차 없는 자유를 누릴 수 없는 노릇.

 더운 여름날 부채질로 더위를 나고 있으면, 그 흔한 선풍기 하나 안 놓느냐는 타박을 듣습니다. 추운 겨울날 불때기를 적게 하면서 겨울나기를 하면, 기름 아깝다 하지 말고 보일러 돌리라는 꾸중을 듣습니다. 냉장고 안 돌리며 틈틈이 동네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며 푸성귀를 사먹으면, 김치 어떻게 먹느냐고 마트 가서 쟁여놓고 좀 먹으라는 핀잔을 듣습니다. 텔레비전 안 켜고 연속극 하나 안 보며 살면, 요즘 세상에 원시인 될 일이 있느냐며 눈총을 받습니다.

 대학교도 나와야 하는데, 어차피 나오려면 이름있는 대학교를 나와야 합니다. 회사원이 되어야 하는데, 어차피 하려면 연봉 몇 천만 원이나 억대는 되어야 합니다. 자동차를 굴려야 하는데, 작은 차로는 멋대가리없으니까 되도록 큰 차로 뽑아야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연속극뿐 아니라 뉴스며 영화며 스포츠며 뭐며 두루 꿰어야 합니다.


.. 미국에서는 자동차 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 도시의 형태도 도시간의 교통 체제도 모두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전제가 되고 있다 ..  (138쪽)


 머리가 어지러워서 두 손을 듭니다. 두 발까지 들고 싶습니다. 고등학교만 마치고는 세상을 살아가면 안 될까요. 아니, 중학교나 초등학교만 마쳐도, 아니, 제도권 학교는 안 다닌 채로 세상을 살아가면 안 되는가요. 한 해 삼천만 원도 아닌 천만 원도 아닌, 한 달로 치면 삼사십만 원만 벌면서 살아가서는 안 되는지요.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삶이 아니라, 알맞는 만큼만 벌어서 알맞는 만큼만 쓰며 살면 안 됩니까. 텔레비전도 안 보고 라디오도 안 듣고 신문도 안 읽으면 세상에 어두운 바보인가요.

 이웃 아주머니가 한 마디 쏩니다. “그러면 산에 가서 살지, 여기서 왜 살아?”

 싱긋 웃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어디 산 같은 산이 남았나요?” 하고 대꾸하고 싶으나 속으로 삭입니다.


 (3)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라는 책


 ‘성장이론가­’로 이름을 날린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가 1996년에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책을 펴냅니다. ‘경제성장’을 파헤치는 교수님이 어인 ‘지구온난화’ 책을 다 내느냐 싶은데,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는 책끝에 붙이는 말에 “지구에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 덕분이다.(181쪽)”고 말합니다.

 그렇군요. 글쓴이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는 머리로 알고 머리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군요. 날마다 숨쉬지 않으면 안 되는 공기(대기)가 얼마나 사람한테 소중한가를, 또 사람과 이웃한 자연 삶터에 소중한가를 깨닫고 있군요. 숨 안 쉬고 살 수 있겠습니까. 숨은 안 쉬어도 경제성장만 해도 되겠습니까. 숨은 덜 쉬면서 돈을 많이 벌면 우리 삶이 넉넉해집니까. 숨은 못 쉬어도 자동차만 굴릴 수 있으면 우리 삶은 기쁨이 넘칩니까. 숨은 막혀도 수십 억짜리 아파트 푹신걸상에 앉아 리모콘 단추를 누를 수 있으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습니까.


.. 지구온난화 문제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도 이해될 수 있다면 하는 꿈을 품고 있었던 차였다 ..  (11쪽)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습니다. 숨을 쉬어야 합니다. 물을 마셔야 합니다. 밥과 숨과 물이 있어야 비로소 삽니다. 이 세 가지는 어느 누구한테라도 가장 좋은 밥이어야 하고, 가장 깨끗한 숨이어야 하며, 가장 맑은 물이어야 합니다. 밥ㆍ숨ㆍ물이 더러운 가운데 어떤 물질문명을 누릴 수 있는가요. 밥ㆍ숨ㆍ물이 지저분한 가운데 어떤 과학기술이 꽃피울 수 있는가요. 밥ㆍ숨ㆍ물이 형편없는 가운데 어떤 개발을 하고 어떤 돈벌이를 할 수 있습니까.

 재개발(뉴타운)은 밥ㆍ숨ㆍ물이라는 테두리에서 먼저 헤아려야 합니다. 밥ㆍ숨ㆍ물을 엉망으로 무너뜨린다고 한다면, 재개발은 함부로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서울과 부산을 이으려는 큰물길로 경제효과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밥ㆍ숨ㆍ물을 망가뜨리게 된다면, 억지로 정치힘을 써서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나라밖에서 유전자조작 먹을거리(GMO식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까닭은, 우리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네 밥ㆍ숨ㆍ물을 흐트리기 때문입니다. 값이 싸다고 해서 구정물을 마실 수 없고, 값이 눅다고 하여 농약으로 씻은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나와 내 이웃 모두 자기 몸을 살찌우고 마음을 가꿀 수 있는 밥과 숨과 물을 곁에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학문도 문화도 예술도 이곳에서 비롯해야 합니다.


.. 사회적 공통자본의 문제를 더욱 중요시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인간적 존엄을 지켜 시민적 자유를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정적인 사회를 추구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  (144쪽)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는 책 하나입니다. 나부터 아름답게 거듭나고 내 이웃이 함께 아름다워지자는 책 하나입니다. 돈을 바라서 읽는 책이 아닙니다. 돈을 바라서 마시는 물이 아닙니다. 돈이 되니까 읽자고 하는 책이 아닙니다. 돈에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 몸뚱이라면 얼마나 불쌍하고 서글픕니까.

 창영초등학교 앞 분식집에 들러서 핫도그 하나 사먹다가, 새로 마련하신 듯한 튀김떡볶이가 있어서 여쭈었더니 하나 집어서 먹어 보라고 합니다. 안 되지요, 하면서 500원어치를 시킵니다. (4341.5.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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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미나마타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44 ― “죽으면 나도 해부되겠지요.”
 : 이시무레 미치코, 《슬픈 미나마타》



- 책이름 : 슬픈 미나마타
- 글 : 이시무레 미치코
- 옮긴이 : 김경인
- 펴낸곳 : 달팽이(2007.6.5.)
- 책값 : 12000원



 (1) 영화 한 편 보려고


 황윤 감독이 찍은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인천을 뺀 나라안 큰도시 모두에서 지난 3월부터 걸렸습니다.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걸렸는데, 그때는 충주에 살고 있었기에 좀처럼 짬을 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전국 개봉관에서 건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러면 우리 동네에서도 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 인천만 빠진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에서만 걸더군요.

 그러다가 엊그제 4월 15일부터 드디어 인천에서도 자리 하나 얻어서 겁니다. 황윤 감독 인터넷방에서 소식을 보고는 부랴부랴 인천 개봉관 인터넷방에 들어가 봅니다. 그러나 상영 소식이 없습니다. 아침 아홉 시 반에 전화를 겁니다. 받지 않습니다. 하루 지나 16일 낮에 다시 겁니다. 인천 개봉관에 걸린 지 이틀이 되도록 인터넷방에는 소식이 없기에 “황윤 감독님 〈어느 날 그 길에서〉를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인터넷방에는 올라오지 않아서요. 지금 상영하고 있나요?” “네, 그런데 상영 주최가 달라서 인터넷에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응? 상영 주최? 상영 주최가 다르든 말든, 지금 이곳에서 하고 있으면 알림글 한 줄이라도 달아 놓아야 하지 않나? 주최가 달라도 자기 극장에 걸고 있으면, 시간표라도 적어 놓아야 사람들이 찾아가지, 시간표도 없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알고서 이 영화를 본다고. 더우기, 영화를 틀어 주는 시간은 낮 두 시와 저녁 여섯 시. 회사원들이 일 마치고 찾아가서 보기에도 뻘쭘한 때. 살림하는 분들이 밥차리다가 찾아가서 보기에도 어중간한 때.


.. 아이들은 엄마의 뱃속에서 이미 유기수은에 중독된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났던 것이다 … 생선이라곤 먹어 본 적도 없는 젖먹이 아기가 미나마타병일 거라고는 엄마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진단이 내려질 때까지, 시내 병원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고, 그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배며 어구들을 내다 팔아야만 했다 ..  (23쪽)


 히유, 그래도 먼 데까지 비싼 찻삯과 품과 시간을 안 들이고도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영화를 볼 수 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할 테지요. 며칠까지 영화를 걸어 주느냐고 여쭙니다. “아마 4월 말일까지는 걸 거예요.” “그러면 4월 30일까지는 사람들이 찾아가서 볼 수 있지요?” “그럴 겁니다.”

 뜨뜻미지근하다 못해 쌀쌀맞다 싶은 안내전화를 끊습니다. 오늘(16일)은 늦었고 내일(17일) 짬을 내어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먼저 큐헤이가 죽을 줄 알았지. 나도 한숨도 못 자고. 눈도 안 보여, 귀도 안 들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인간 같지도 않은 소리로 울어대면서 날뛰는 거예요. 아이고, 이제 제발 죽자, 이게 지옥이 아니고 뭐냐, 우리가 있는 여기가 지옥이지……. 우물을 조사하고, 된장단지를 검사하고, 심지어는 단무지까지. 소독을 한답시고 몇 명이나 다녀갔는지 몰라요 … 물건을 살 수 있기를 하나, 물도 받으러 안 가면 안 되지. 가게에 가도 겁먹은 가게 주인은 동전도 제 손으로 안 받아요 … 다시 태어나고 일곱 번 다시 태어나도 못 잊지. 물도 못 얻어먹던 그 한을” ..  (42∼43쪽)


 17일 낮 한 시. 이제 가방을 챙겨 극장으로 가야 할 때. 도서관에서 하던 일을 마치고 살림집으로 올라갑니다. 옆지기는 누워 있습니다. 흔들어 보지만 꿈쩍을 않습니다. 요사이는 밤새 배속 아기가 꿈지럭거려서 잠을 못 잔다고 하는데, 몸이 고단하여 못 일어나는 듯. 그렇다면 어떡하나. 내일과 모레와 글피는 꼼짝없이 도서관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다음주에? 다음주에는 아무 일 없으려나?


.. 선생님은 노인을 위로하며, “할아버지 안 추우세요?” 하고 묻는다. 노인은 그 소리를 듣고 퉁명스럽게 “어나”라고 대답한다. 미나마타병에 걸린 일흔네 살까지, 태어나서 한 번도 그는 병에 걸려 본 적이 없었고, ‘의사선생님’에 몸을 맡겨 본 적도 없었다 ..  (54쪽)


 고이 잠든 옆지기를 그대로 둔 채 옥상마당으로 나옵니다. 눈부신 햇볕을 눈을 안 찡그리며 쬐며 섭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듯하다고, 이불빨래 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널찍한 뒷간으로 들어갑니다. 뒷간이자 씻는방. 이 집은 겨울에 몹시 추운 대목이 얄궂지만, 씻는방이 넓어서 이불빨래하기에는 매우 좋습니다. 따순 물 쓰자면 보일러 돌리는 기름값에 땀이 비질비질 나지만, 그래도 집에서 걱정없이 씻을 수 있는 대목은 그지없이 즐겁습니다. 처음 이 집을 계약할 때에도 겨울추위가 걱정이었으나, 빨래할 때 바닥에 죽죽 펼쳐놓고 할 수 있다는 대목과 이불빨래 신나게 할 수 있다는 대목이 아주 좋았어요.


.. “그 당시 바다색이, 뭐라고 하면 좋을까, 생각만 해도 기분 나빠. 바다가 저리 된 줄도 모르고 참 잘도 고기잡이를 나갔네 그려. 뭐랄까, 바다가 걸쭉해졌다고나 할까……. 도대체 그때, 회사는 뭘 만들고 있었던 걸까요? 이물질이 질펀하게 떠 있는 바다를 가르고 나가면 배도 끈적끈적한 이물질로 묵직해져 오죠. 기분 나쁜 물질을 흘려보낸 게 분명해. 우리같이 머리 나쁜 사람들이야 뭐가 뭔지 모르지만, 그런 물질은 빨리 대학교 선생님들한테 가져가서 봐달라고 했어야 옳았어요” ..  (76∼77쪽)


 밟고 비빕니다. 꾹꾹 밟는 만큼 비눗물이 넘실거립니다. 깨끗한 물을 틀어서 새로 받고 또 밟고 비비고, 다시 헹구고 또 물을 받고, 또 밟고 …… 이불을 헹군 물은 씻는방 바닥에 널찍하게 뿌리면서 바닥솔로 신나게 쓱쓱싹싹 합니다. 이불을 빨 때는 씻는방 바닥 닦기도 함께 하는 셈.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면 아기를 씻기면서 이불을 빨 생각이고, 이불을 헹구면서 아이한테 솔을 쥐어주고 바닥 닦이를 시킬 생각입니다. 그러자면 적어도 너덧 해는 지나야 하겠지만.


.. “시집와서 3년도 안 돼 이런 희귀병에 걸리고 말았으니 애석타. 나 혼자서는 단추도 못 채워 … 나 다시 한 번,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 부모님이 일해서 먹고 살라고 주신 몸인데. 병 같은 거 앓아 본 적이 없었는데. 난, 전에는 손이고 발이고, 어디가 됐든 끄떡없었는데 … 지금쯤이면 보리 갈 땐데. 보리도 갈아야 하고 거름도 내야 하는데 … 일 생각만 하면 맘이 맘이 아니네. 그러고 또 숭어철인데. 이렇게 병원 침대에 누워 있어도, 안절부절 애가 타서 죽겄네 … 일하고 싶어라, 내 이 손발로 … 나는 세 살 적부터 배 위에서 커서, 바다는 우리 집 앞마당이나 진배없어요 … 바다에 가고 싶네 … 우리는 처음에 폐병환자 옆 병동으로 보내졌는데, 그 폐병환자들조차도 우리를 싫어했어. 미나마타에서 희귀병에 걸린 사람들이 왔다, 옮는다더라 하면서. 그러더니 우리가 있는 병동 앞을, 그 폐병환자들이 입을 손으로 막고 숨도 안 쉬고 내빼듯 지나가는 거야. 자기네가 진짜 전염병인 주제에” ..  (126∼137쪽)


 어느덧 이불빨래는 끝납니다. 물은 다 짜지 않고 고무대야에 담은 채로 밖으로 가지고 나옵니다. 담벼락에 널어야 하니, 이불이 머금은 물기를 조금씩 담벼락에 쏟습니다. 담벼락을 얼추 물로 닦아낸 뒤 이불을 넙니다. 조금 뒤 이불 아래쪽을 쭉쭉 잡아당겨 물을 쪽 뺍니다. 자, 이제 제 몫은 다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오로지 햇볕한테 맡기면 됩니다.

 기지개를 켭니다. 덜컹덜컹 전철 소리를 듣다가는 아래층으로 내려옵니다. 젖은 고무신은 창턱에 올려놓아 말립니다.


..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까? 나 역시, 다른 것으로 말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면 원이 없겠네. 다시 한 번 영감하고, 배를 저어 바다에 나가고 싶어. 내가 측면 노를 젓고 영감은 앞 노를 젓고. 어부의 아내가 되려고 아마쿠사에서 시집왔는데” ..  (154쪽)


 책상 앞에 앉습니다. 쓰다가 만 글을 다시 쓸 생각입니다. 너저분한 책상에 쌓인 책도 좀 갈무리를 해 봅니다. 보내야 할 편지도 마무리를 짓습니다. 오늘은 책방 나들이를 잠깐 해야겠습니다. 아차,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다 빠졌다는 동무네 집에도 찾아가서 바람도 넣고 자전거 손질도 좀 해 주어야겠습니다. 햇볕도 좋은데, 슬금슬금 걸어가며 찾아가 볼까 싶습니다.


.. “여보, 새댁, 미나마타병은 가난한 어부가 걸린다, 그러니까 쌀밥도 제대로 못 먹고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걸린다고들 하는데, 난 정말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겠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봐요, 나처럼 평생을 고기 낚는 배 한 척, 아내 한 사람, 나는 집사람 하나만을 내 여자라고 믿고 … 도쿄에는 사람 수보다 차가 더 많아서 어디 다니지도 못한다더구먼. 집도 사람도 너무 많아져서 햇빛도 제대로 안 든다면서. 그래서 거기 사는 사람들은 다 가늘디가는 버섯같이 된다대. 도쿄사람들은 그러니까 불쌍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거라고. 말 들으니까 도쿄 어묵은 썩은 생선으로 만든다는데, 새댁 그거 알어? 익혀서 먹어도 식중독에 걸린다더라고. 그러고 보니 도쿄에 사는 사람들은 평생 신선한 생선 맛도 모르고 햇빛도 제대로 못 쐬고, 불쌍하게 살다 가겄네. 우리가 봐도 도쿄사람들은 정말 불쌍해. 도미도 청어도 물들여서 팔고 있다잖어? … 새댁, 그거 알아요? 물고기는 하늘이 주신 거라고. 하늘이 내려주신 것을 공짜로 우리가 필요한 만큼 잡아서 그날 하루를 사는 거여” ..  (179∼181쪽)


 이러는 동안 옆지기가 부시시 일어나서 ‘왜 안 깨웠느냐’고 한 마디 합니다. 그러다가 ‘깨웠어도 못 일어났을 거’라고, 몸이 많이 무겁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함께 옥상마당으로 올라갑니다. 말리고 있는 이불을 뒤집습니다. 햇볕이 아주 좋아서 저녁이 되기 앞서 다 마를 듯합니다.

 다시 전철 소리를 듣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전철 소리가 너무 큽니다. 전철 회사에 이 끔찍한 소음 공해를 따질 수 없을까 옆지기한테 이야기를 하니, 옆지기는 전철보다 아래층 도매상에서 자동도르레를 쓰면서 내는 소리가 더 크다고, 저 소리를 이 집 임자한테 따지고 싶다고 대꾸를 합니다.

 앞에서는 차 소리, 옆에서는 전철 소리, 아래에서는 도매상 도르래 소리. 여기에다가 머잖아 인천에 아시안 게임을 치른다며 온 동네를 재개발지구로 삼아서 파헤치려고 하는 쇠삽날 소리까지 하면.


.. 신문기자나 잡지사 기자들이 찾아들었다. 그들은 정말 많은 것들에 대해 묻는다. 그들은 메모지와 펜을 먼저 꺼내든다. ‘저, 생활수준은?’ ‘네?’ ‘그러니까 말입니다, 밭은 몇 평이고 배는 몇 톤짜립니까?’ ..  (201쪽)


 아침나절에 날카로운 고양이 소리를 들었는데, 요즈막이 고양이들 발정기가 아니냐 싶습니다. 엊그제 옆동네를 거닐며 발정난 고양이를 한 마리 보았습니다. 몹시몹시 괴로워하며 날카롭게 니앙니앙니앙 하더군요.

 동네 비둘기는 우리 집과 이웃집 창턱이나 옥상 담벼락에 앉아서 구우구우 웁니다. 옛날 집 창턱은 들새가 앉기에 넉넉합니다. 빈집 창턱은 들새가 사람 걱정 없이 해바라기를 하면서 쉴 만한 터입니다. 겨울에는 힘들지만 여름에는 요 창턱에서 새근새근 잠들 수 있어요.


.. “나무에도 풀 한 포기에도 영혼은 있다고 나는 믿어요. 물고기에게도 지렁이에게도 영혼은 있다고 믿는데. 우리 유리한테는 그것이 없다니, 그게 말이 돼요?” “하아∼ 세상에 없던 병이라잖어.” “병하고는 달라요. 대여섯 살 한창 예쁠 나이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을 빼앗겼는데 … 유리는 이미 빈껍데기라고, 영혼은 이미 남아 있지 않은 인간이라고, 신문기자가 그렇게 썼데요. 아마도 대학 선생님 소견이겠지요. 그렇담 여보, 유리가 뱉어내고 있는 저 숨은 대체 뭐지요? 풀이 뱉어내는 숨인가? ……” “그만 좀 해, 여보.” “안 할게요, 안 할게요. 영혼이 없는 아이라면, 유리는 무엇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요?” ..  (219∼220쪽)


 저와 옆지기가 보려고 하는 황윤 감독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치여 죽은 짐승(영어로 하면 ‘로드킬’)’ 삶터를 담아낸 97분짜리 작품입니다. 영화 본 사람들 이야기와 소개를 살피면,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우리 나라 ‘국도’에서 치여 죽은 수천 마리에 이르는 짐승들을 몸소 찾아나서며 담아냈습니다. 자가용으로만 움직이는 분들은 잘 못 느끼고,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고다녀도 거의 느끼지 못하지만, 시골에서 살거나 시골길을 자전거로 돌아다니면 날마다 ‘치여 죽은 짐승 주검’을 셀 수 없이 많이 만납니다. 제가 충주에서 살며 서울로 자전거로 오갈 때에는, 날마다 열셋∼스물둘에 이르는 ‘새로운 주검’을 늘 보았습니다.

 국도를 달리는 차는 빠르기를 줄이지 않아요. 100킬로미터도 아닌 120킬로미터나 140킬로미터 빠르기로 내처 달리기만 합니다. 길가에 자전거가 달리건 할매 할배가 걷건 그예 빵빵질을 하거나 위협운전을 합니다. 사뿐사뿐 다니는 운전자도 많지만, 아슬아슬 달리는 몇몇 운전자 때문에 많은 사람들 간이 콩알만해지고 옆마을 마실을 느긋하게 다니지 못해요. 그나마 짐승들은 씽씽 달리는 차에 치이면 어떻게 되는 줄 하나도 모른다고 느낍니다. 치이고 밟히고 죽고. 이렇게 죽어서도 또 밟히고 자꾸 밟혀서 아예 떡이 되어 버리고.


.. 햐쿠켄 배수구가 있는 코이지섬 근처에 멸치나 미역이 이상번식해서, 채취하는 사람이 많다는 소문은 우리 마을까지 금세 전해지게 마련이다. 미나마타병 미역이라도 봄의 미각. 그렇게 믿는 나는 그 미역으로 된장국을 끓인다.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된장이 응고되어 미역 된장무침이 만들어진 것이다. 입에 넣으면 그 된장이 걸쭉하니 기분 나쁘게 잇몸에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미역은 뽀득뽀득 마찰음을 낸다. ‘회사는 밤이 되면 냄새나는 기름 같은 것을 바다에 흘려보내. 밤낚시 나가서 물속에서 팔을 집어넣으면 그놈의 것이 살에 딱 들러붙는데, 끈적끈적한 것이 꼭 살갗이 벗겨지는 것 같다니까!’ 어민들이 희귀병 발생 당시에 주고받았던 말을, 나는 멍청히 입을 벌린 채 기억해 낸다 ..  (235쪽)


 국도를 자전거로 달리면서 짐승 주검을 볼 때마다, 이 짐승들은 온몸을 내던져서 ‘빠르기에 목매다는 사람들’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느꼈습니다. 짐승들은 ‘우리는 이렇게 죽지만, 우리를 죽이는 너희들은 목숨 값어치를 아느냐’고 자꾸자꾸 되묻는다고 느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없이 죽어 가지만, 우리를 죽이는 너희들은 이 땅에서 얼마나 시간을 아끼고 큰차를 즐기면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고 캐묻는다고 느꼈습니다.


 (2) 삶과 전통


.. 젊은이들이 마을에, 그러니까 어부로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  (15쪽)


 가만히 생각하면, 저는 굳이 〈어느 날 그 길에서〉 같은 영화를 안 보아도 됩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치여 죽는 짐승’ 이야기를 여태껏 줄기차게 보면서 사람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세상흐름을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까요. 막개발 삽날이 아닌 사랑스러운 동네 문화를 북돋우려고 일손을 거드는 움직임이라면,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 이야기를 온몸으로 살고 있는 셈이라고도 느낍니다.

 다만, 지금 살고 있는 인천에서 우리 이웃들하고 이 영화를 함께 보면서, 지금 우리들이 사랑하고 아끼는 동네 문화를 꺾으려고 하는 인천시장 마음 씀씀이를 좀더 깊이 헤아려야겠다고 느낍니다. 머리로 아는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인 영화 이야기를 이웃 아주머니와 할머니들한테 해 주면서, 함께 영화 보러 가자고 이끌 수 있습니다. 영화 전단지라도 몇 장 챙겨 보여드리면서 시간 날 때 영화 보러 가시라고 이끌 수 있습니다.


.. “위로금 인상이라……, 그게 없으면 목에 풀칠하기도 어렵지요. 우리 큐헤이는 병에만 안 걸렸어도 이제 어엿한 어른인데. 남자애들은 중학교만 올라가도 이 근방에선 어엿한 어부가 아니던가요. 그런데 위로금은 아직 아이라고 고작 일 년에 3만 엔 ..  (29쪽)


 그동안 치여 죽은 이들은 들짐승이요 산짐승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골길에서만 들짐승과 산짐승, 때때로 시골 아지매와 할배였습니다. 한국사람 거의 모두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개발(뉴타운) 바람에 밀려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죽음과 마찬가지’인 더 아래인 밑바닥으로 나동그라집니다.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빼앗깁니다. 서민들 사는 집터는 ‘낡고 허름하니 빨리 없애야 할 나쁜 것’이라는 딱지를 함부로 붙이는 판입니다. ‘재개발 이익을 동네 주민한테 돌려 주겠다’고 한들, 우리 삶이 돈 몇 푼으로 무엇이 나아집니까. 어느 날 갑자기 천만 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만큼, 그 천만 원에 값하도록 우리는 살림터에서 떠나야 합니다. 천만 원을 냉큼 챙기는 그때 우리 집터 임자는 우리가 아니라 개발업자와 시청 공무원입니다. 천만 원에 눈이 돌아가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 앞날은 오로지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이라는 생각에 젖어듭니다. 그런데 기껏 그 천만 원으로 어디 가서 집 얻고 사나요.


.. “그런데 후생성이라고 찾아가 봤자 아무도 몰라요. 미나마타에서 왔다고 해도, 미나마타라는 데가 어디 있는 동네냐고. 규슈에 있는 벽촌으로, 지도를 꺼내서 어디 있는 데냐며 짚어 보라고 하고. 게다가 그 미나마타 중에서도 맨 끄트머리에 있는 츠키노우라니 유도니 모도니 아무리 말해도, 상대도 안 해 주는 거라. 전혀 듣지를 않아요. 들어줘도, 도쿄사람 특유의 콧소리로, 아, 그래, 그래요? 하면서 흘려듣기만 하더라 이거예요” ..  (91쪽)


 우리 나라 ‘온산병’이나 ‘원진병’, 이웃 일본 ‘이타이이타이병’이나 ‘미나마타병’, 그리고 미국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뜨려서 생긴 ‘원폭병’, 우리 나라 탄광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걸리고 연탄공장 옆에 살던 사람이 걸리던 ‘진폐증’, 더욱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기름배 사고 들은 하나같이 우리들이 돈에 매이고 돈만 바라보면서 터져나옵니다.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는 일, 무기를 끊임없이 만드는 일, 무기 팔아먹는 일 또한 제 배만 불리고 이웃 배는 굶어도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합니다. 우리가 정작 참다운 삶과 아름다운 삶에 눈을 두고 있다면, 무기개발과 군대거느리기에 그토록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지 말고, 사회문화와 보건복지에 아낌없이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 “바다 속 풍경도 육지하고 똑같이, 봄도 가을도 여름도 겨울도 있다우. 나는 바다 속에는 반드시 용궁이 있다고 믿어. 꿈처럼 아름다울 거야. 바다에 질리거나 하는 일은 죽어도 없어” ..  (140쪽)


 무지개를 볼 수 없다고 푸념을 하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우리가 날마다 타고다니는 자동차(대중교통까지) 문제를 먼저 풀 생각을 해야 합니다. 흰구름과 뭉게구름을 볼 수 없는 하늘을 탓하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나무젓가락과 종이잔부터 해서, 온갖 쓰레기를 어떻게 줄이거나 안 나오도록 살아갈 수 있는가를 찾아야 합니다. 빗물을 그릇에 받아서 먹던 지난날이 그립다고 하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전기제품을 돌리면서 꾸리는 살림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면서 꾸리는 살림이어야 합니다.

 벼농사를 지어야만 땅살리기가 아닙니다. 텃밭농사를 지어야만 땅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우리들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에 눈길을 두고, 우리가 함께할 만한 일에 어깨동무를 해야지요.


.. “여보 새댁, 우리 부부는 누더기 같은 옷이지만 찢어진 것은 기워 입고, 하늘이 먹여주신 것을 먹고, 조상을 섬기고, 신들을 믿음으로 받들고, 다른 사람 원망하지 않고, 남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면서 살아왔다오” ..  (182쪽)


 새 대통령 이명박 씨가 벌이는 ‘서울-부산 물길’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습니다. 아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명박 씨가 놓으려는 ‘서울-부산 물길’ 막기에만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이명박 씨한테서 ‘서울-부산 물길’을 앗아가 버리면, 이이는 그 다음으로 무슨 일을 하려고 할까요. 여태껏 돈을 들여서 공사를 벌여 더 많은 돈을 거두어들이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분인데, 이분 머리에서 무슨 생각이 나오게 될까요.

 이명박 씨뿐 아니라, 이명박 씨가 거느리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이명박 씨와 이명박 씨 둘레사람뿐 아니라, 우리 나라 공무원과 개발업자들도 그렇습니다. 대한주택공사가 해 온 일이 무엇이며, 산업자원부가 해 온 일이 무엇이고, 건설교통부가 해 온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땅장사 집장사를 넘어서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한결 나은 삶을 바라는 우리들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더 나은 삶인지를 꾸준하게 말하는 가운데 ‘서울-부산 물길’이 터무니없는 생각임을 깨닫도록 해 주어야지 싶습니다. 바보스럽게 살면서 바보인 줄 모르는 바보한테 우리 모두 즐거울 길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함께 아름다운 쪽으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미나마타병이었다고, 죽어도 말 안 할 생각이여. 벌써 옛날에 거기를 떠나왔고, 우리 고향 미나마타라고 하면 갈 곳이 없어진다고” ..  (254쪽)


 제주 물맛이 좋아 ‘삼다수’라는 먹는샘물을 팔려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다면, 제주 물맛이 좋으면, 우리 사는 이곳에서 마시는 물도 제주섬 물맛 못지않게 시원하고 싱그러울 수 있도록 동네 삶터를 가꾸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집집마다 정수기를 들여놓고 즐기는 물맛이 아니라, 흐르는 물을 손으로 떠먹으면서 싱긋 웃을 수 있는 맛을 느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자연 삶터를 찍으려고 멀리멀리 ‘깨끗한 나라’로 비행기 타고 떠나는 데에 돈을 쓰지 말고, 우리 삶터가 오래오래 아름다운 자연 삶터가 되도록 ‘돈을 이 나라 이 땅에서 쓰면서 우리 삶터를 가꾸어야’ 할 노릇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심정으로, 시민들은 골목골목이며 사거리며 텔레비전 앞에서 열을 올려가며 말하고 있었다. 미나마타병 환자 111명과 미나마타시민 4만5천 명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하는 말들이 들불처럼 확산되더니, 갈수록 대합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 ‘질소공장을 지켜라! 회사를 지켜라!’와 같은 구호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  (275, 278쪽)


 (3) 덮을 수 없는 책, 《슬픈 미나마타》


 어른들이 읽을 만한 ‘미나마타병’ 이야기책은 《하라다 마사즈미-미나마타병》(한울,2006)과 《하라다 마사즈미-끝나지 않은 수은의 공포》(대학서림,2006) 두 권이 있습니다. 어린이책으로는 《하라다 마사즈미-미나마타의 붉은 바다》(우리교육,1995)가 있습니다. 세 권 모두 한 사람이 쓴 책입니다. 여기에 1927년 쿠마모토현 아마쿠사군에서 태어난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아주머니로 집안살림을 꾸리는 가운데 1969년에 펴냈던 《슬픈 미나마타》(우리 나라에는 2007년에 옮겨짐)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에 앞서 ‘미나마타병’을 다룬 책이 더 있는가 헤아려 보면, 《구와바라 시세이/구와바라 가즈꼬 옮김-미나마타의 아픔》(을지서적,1990) 한 권이 있습니다. 제 다리품이 모자란 탓이 있을 텐데, 여태까지 제가 알아본 ‘미나마타병 이야기’를 다룬 책은 이 다섯 권이 모두입니다.


.. 미나마타병을 잊어버려야 한다면서, 결국 제대로 된 해명도 없이 과거 속으로 묻어버려야 한다는 풍조, 지금도 알게 모르게 매몰되어 가고 있는 그 암흑 속에 소년만이 우두커니 혼자 남겨져 있다 ..  (31쪽)


 이 다섯 권 가운데 꾸준하게 읽히는 책은, 어린이책으로 나온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 한 가지입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님이 보도사진으로 담아낸 《미나마타의 아픔》은 일본 사회에서나 큰 울림을 이루어냈을 뿐, 한국 사회에서는 터럭만한 울림도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하라다 마사즈미 님 두 가지 번역책은 적잖이 전문책이라 할 만하지만,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이들조차 거의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 어민들은 상처입고 지치고,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는 더없이 고독해 보였다 ..  (110쪽)


 그래도 아이들을 믿어 볼 수 있을까요. 어린 날부터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을 아이 가운데 하나라도 뒤엉킨 우리 세상과 뒤틀린 우리 사회를 깨달아서, 차근차근 고쳐 나가는 데에 힘을 쏟으리라 믿어 볼 수 있을까요.


.. “죽으면 나도 해부되겠지요.” 어부의 아내 사카가미 유키의 목소리 ..  (151쪽)


 교수님도 하지 않고 지식인도 하지 않으며 의사들은 등을 돌리는 가운데 기자 또한 하지 않던 ‘미나마타병 참모습 캐기’를, 집살림을 하는 아주머니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온몸으로 다부지게 부딪히면서 《슬픈 미나마타》라는 책 한 권을 여미어 놓았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병든 몸으로 혼자 살아갈 힘도 벅찬 할아버지가 옥구실 같은 동화를 수없이 남겼습니다(권정생). 동화 할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이 땅과 이웃 땅 들풀 같은 아주머니들이, 우리 가슴을 시리게 하는 알뜰한 이야기책을 꾸준하게 엮어내고 있습니다. 전문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평교사 한 사람이 우리 말과 글을 올곧게 추스르는 이야기책을 수없이 남겼습니다(이오덕). 평교사 한 분만큼은 아니지만 이 땅과 이웃 땅 들꽃 같은 헌책방 일꾼들이, 먼지구덩이를 파헤치고 뒤지면서 오래도록 빛이 나는 고운 책들을 꾸준하게 되살려 내고 있습니다.


.. “할아버지 댁의 할머니도 미나마타병이 아닌가요?” 이렇게 묻기는 쉽다. 하지만 미나마타병은 문명과 인간의 존재의 의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205쪽)


 수은공장(질소공장)에서는 미나마타병을 일으켰습니다. 그렇지만 수은공장 사장은 끝까지 ‘우리는 지역발전에 힘을 썼을 뿐이다’면서 핑계를 대었습니다. 나라에서는 아무 책임을 안 지려고 발뺌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수은공장이 있습니다. 수은공장 못지않게 다른 온갖 공장에서는 우리 공기와 물과 흙을 더럽히는 쓰레기들을 쏟아냅니다. 제대로 걸러내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채 돌아가는 공장이 수두룩합니다. 쇠붙이 다루는 공장 옆에 1분만 서 있어 보십시오. 숨이 막히고 코가 뚫어질 듯 아픕니다. 자동차 배기가스는 공장보다 더하다고 할 만한 공해물질을 쏟아놓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추 하나로 텔레비전을 켜고 세탁기와 전자레인지와 청소기와 에어컨을 돌리고 겨울을 여름같이 살고 있습니다. (4341.4.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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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
박희병 지음 / 그물코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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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 하나 41 ― 돈 아닌 ‘사람’이 가꾸는 고향마을
 : 박희병, 《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을 읽으며


- 책이름 : 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
- 글쓴이 : 박희병
- 펴낸곳 : 그물코(2007.7.25.)
- 책값 : 8000원



 (1) 천막농성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 깃든 동네 한복판을 쑤석거리려는 산업도로를 반대하는 뜻으로 펼쳐 놓은 천막농성터에 나와 있습니다. 어느덧 열아흐레째(3월 17일). 인천시는 자기들이 밀어붙이려는 산업도로가 주민들 반대에 막히어 공사 삽날이 멈추게 되자, 살그머니 말을 돌려서 여론을 바꾸려고 애를 씁니다. 동네 한복판에 놓으려고 하는 길은 ‘산업도로’가 아닌 ‘6차선 간선도로’라 말하고, 방음벽 세우면 걱정거리가 없다고 하면서.

 처음부터 ‘6차선 간선도로’를 내야 하는 곳이 아니었음에도 ‘산업도로에서 간선도로로 목적을 바꾸었으니, 이런 길은 내야 하지 않느냐?’고 주민들 앞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 길이 나야 공해가 줄어든다니까요?” 하는 말과 “이 동네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길이라니까요?” 하는 말에는 그만 질려 버립니다. 찻길이 나야 공해가 줄어든다니, 찻길이 나야 동네가 발전한다니 …….

 천막농성터를 찾아온 인천 동구 구청장님은 말합니다. “어차피 이 동네는 재개발과 재생사업을 할 텐데, 그런 간선도로 놓아 보았자 중복투자가 되니 쓸모가 없다”고. 구청장님은 “나한테는 권한이 없어요. 그리고 시에다가도 이런 길은 내지 말아야 한다고 요청하는 공문도 보냈습니다.” 하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여쭈어 봅니다. 몇 해 앞서 보낸 공문 말고, 요즘에도 그런 요청을 공문으로 시에 올린 적이 있느냐고. 구청장님은 “요사이에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해 줍니다.

 구청장님은 ‘일개 구청장한테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하다면, ‘일개 주민’은 어떤 힘이 있는가요. 위에서 내려보내는 명령과 지시가 있으면, 힘이 없는 ‘일개 구청장’은 곧이곧대로 따라야 하고, ‘일개 주민’은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들여야 하나요.


.. 벼가 익으면 이른 아침부터 벼를 베었다. 낫으로 한 동씩 한 동씩 정성껏 베었다. 한 손으로 벼포기를 잡고 벼 밑동을 싹둑싹둑 베었다. 벤 벼는 논바닥에 눕혀 놓았다. 벼 베는 일은 허리가 아프고 힘든 일이지만 일 년의 보람이 여기에 있었다 ..  (벼 베기/152쪽)


 구청장님 말이 아니더라도 가난한 동네 사람들 몇몇 힘으로 나라힘(공권력)을 뒤집기는 어렵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옳지 않은 일을 앞에 두고서 힘이 딸린다고, 힘이 모자란다고, 힘이 없다고 하여 물러설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들 삶터가 포크레인 삽날에 찢기고 갈리게 되는 모습을 마냥 불구경 하듯 손 놓고 바라볼 수 없습니다.

 내 모든 이야기와 발자국이 남아 있는 고향인데, 이 고향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모습을 뒷짐 지고 구경할 수 없습니다. 시멘트로 떡바른 아파트가 성냥갑처럼 촘촘히 올라서며 햇볕을 막아 버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습니다. 우리 뒷사람들이 ‘당신(앞사람)들이 말하는 옛날 자취와 역사와 문화란 무엇이냐?’고 따질 때, ‘우리(뒷사람)들한테 시멘트 아파트만 달랑 남겨 놓고서 우리보고 무엇을 보고 느끼고 꿈꾸며 자라라고 하는 셈이냐?’ 하고 따질 때, 미안합니다 한 마디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흐흐흐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앞사람)는 여기에서 태어나서 이와 같은 집에서 살았고 이러한 골목길에서 뛰놀았으며 이런 역사가 깃든 학교에서 공부했단다’ 하고 들려주고 싶습니다. 공장 굴뚝보다는, 도시락 싸들고 나들이를 올 수 있는 나무그늘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자동차 배기가스보다는 걱정없이 자전거를 타고다닐 수 있는 사람길을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돈으로 이룩한 지엔피 숫자보다는, 땀방울과 웃음울음으로 쌓아올린 책 하나를 남겨 주고 싶습니다.


.. 추수를 끝낸 논에 가 보면 너무도 허전하였다. 그 많던 개구리며 물방개며 소금쟁이며 미꾸라지는 싹 종적을 감추고, 벼 밑동만이 논바닥 까만 흙 위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추수가 끝난 논을 혼자 밟으며 노는 일은 너무나 유쾌한 일이었다. 그 속에는 개구리, 물방개, 소금쟁이의 기억들이 서랍 속의 물건들처럼 빼곡히 들어차 있었따 ..  (추수한 뒤의 논/35쪽)


 (2) 내 고향 네 고향


 일곱 살 앞서는 거의 떠오르지 않지만, 일곱 살 때부터는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그 무렵 살던 다섯 층짜리 아파트는 연탄으로 때던 곳이었고, 1층 집으로 들어가려면 계단 다섯을 밟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2층부터는 일곱 계단이었다고 생각하는데, 한 칸씩 밟고 올라가기보다는 멀리서 달음질을 해 오며 폴짝 뛰어오르기를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네 칸 뜀뛰기가 되었고 드물게 다섯 칸 뜀뛰기가 됩니다. 제자리뛰기를 하면 거의 세 칸 뜀뛰기가 되고, 네 칸을 밟을락 말락 하다가 뒤로 자빠질 뻔하기도 하고 앞으로 콩 넘어지며 무릎이 깨지기 일쑤입니다. 4층에 있는 우리 집으로 갈 때면 형하고 잡기놀이 하듯 신나게 뛰어올라갑니다. 이때부터는 셋셋하나, 또는 셋둘둘, 또는 셋넷, 또는 둘셋둘.

 거꾸로 4층집에서 내려갈 때에는 한꺼번에 일곱 칸 뛰기를 해 보는데 이럴 때면 무릎이 아프기도 하여 셋넷 나누어 뛰기로 내려오곤 합니다. 때때로 나무로 된 손잡이를 잡고는 계단밟기를 않고 아래쪽 손잡이를 밟고 다시 아래쪽 손잡이를 잡은 뒤 그 아래쪽 손잡이를 밟고 하기를 되풀이. 손잡이에 한쪽 엉덩이를 깔고 미끄러져 내려오기도 합니다.

 어머니 일을 도와서 신문돌리기를 할 때에도 뜀뛰기 놀이 하듯 쉬지 않고 달립니다. 겨드랑이에 끼고 달리는 신문이 무거워 1층 난간 손잡이에 신문을 올려놓고는 한두 부만 집어서 후다닥 올라가 우유주머니에 넣거나 문틈에 끼우거나 문 아래로 밀어넣습니다. 신문 보는 집마다 ‘넣어 달라고 하는 방법’이 달라서, 작은 쪽지에 이런저런 방법을 적어 놓고는 그때그때 보면서 넣습니다. 5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신문이 한 부씩 사라질 때가 있어서 나중에는 무거워도 통째로 들고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합니다. 신문돌림꾼이 지나가는 때를 알고는 슬쩍 한 부 훔쳐가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 흙이 있는 데는 어디든지 땅강아지가 있었다. 마당에도 있고 담부랑 밑에도 있고 집 뒤에도 있고 집 앞에도 있고 밭에도 있고 길에도 있고 강변에도 있고 묵은땅에도 있고 논두렁에도 있고 숲에도 있었다 ..  (땅강아지/138쪽)


 열다섯 동으로 이루어진 다섯 층짜리 아파트에는 큰 놀이터가 둘 있었습니다. 한쪽은 모래밭으로만 제법 길게 이어져 있어서, 이곳에서는 공차기도 하고 공치기도 합니다. 먼저 와서 찜 하는 아이들이 차지하고 놀곤 해서(어차피 같이 놀게 되기는 하지만), 학교 마치고 집으로 올 때면 집에 책가방 던져놓기 앞서 먼저 찜해 놓는 아이가 있기 마련. 넓은 모래밭을 차지하지 못하면, 바로 건너편에 있는 조금 좁은 모래밭을 차지. 이곳도 차지하지 못하면, 1동부터 8동 사이로 퍽 널찍하게 나 있는 찻길이 놀이터. 여기도 차지하지 못하면, 차가 가장 적게 서 있는 동과 동 사이가 놀이터.

 중학교에 들어선 1988년까지도 집에 차를 모는 사람이 드문 우리 동네라서, 우리들 놀이터는 언제나 넓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차도 많지 않은 아파트마을에 웬 빈터를 그리 넓게 마련했는가 모를 일인데, 인천 시내에 있는 다른 5층짜리 아파트도 동과 동 사이 빈터는 모두 넓었어요.


.. 아무리 추워도 사흘만 견디면 다시 따뜻한 날이 온다는 희망 때문에 긴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나흘이 따뜻하면 사흘이 아무리 추워도 견딜 만하였다. 견뎌내기만 하면 다시 따뜻한 날이 온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하였다 ..  (삼한사온/127쪽)


 이렇게 모래밭 놀이터를 차지하면서 공차기를 할 때는, 발이 푹푹 빠지니 제대로 달릴 수 없지만, 그래도 좋다며 신이 나서 달리고 찹니다. 야구놀이를 할 때에는 뜬공 잡기 힘들고 튄공 잡기 버겁지만 좋다고들 뛰고 치고 북적댑니다.

 하드볼이 아닌 테니스공으로 했으니 유리창 깰 일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요즈음 아파트처럼 툇마루 통유리를 한 집이 몇 군데 없었기에 파울을 치면 툇마루 안쪽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 이때는 공을 친 아이가 그 집을 찾아가서 딩동딩동 단추를 눌러서 공 꺼내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허구헌날 여러 차례 공 꺼내기 해 주어야 하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는 우리들 개구쟁이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공을 안 꺼내 주겠다고 하면서 욕설이나 큰소리가 나왔고, 공 들어간 집이 1층이나 2층이면 몰래 담벼락을 타고 들어가서 꺼내오곤 하는데, 그러다가 수위 아저씨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죽도록 얻어맞거나 안 붙잡히도록 내빼기.

 동과 동 사이에서 야구를 할 때는 포수가 없이 벽을 포수 삼고 분필로 스트라이크존을 그립니다. 여기에 들어가면 스트라이크. 안 들어가면 볼. 그런데 벽치기 야구를 할 때에도 걸림돌이 있습니다. 벽치기 대상이 되는 1층 집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창문을 열고 “딴 데 가서 놀아!” 하고 빽 소리를 지르니까요.

 벽치기 야구를 할 때에는 으레 2층이나 3층 또는 4층이나 5층까지도 공이 들어갑니다. 어쩌다가 옥상에 공이 올라가면 이때에도 수위 아저씨가 있나 없나 두리번두리번 살핀 뒤 살짝 옥상문 열고 들어가서 공을 주워 옵니다. 위험하다고 해서 옥상에는 못 올라가게 하지만, 이 옥상에 올라가서 공을 주울 때면 우리 아파트마을 오른편에 있는 경인고속도로 들머리가 내려다보이고, 왼편에 있는 제2부두가 내려다보입니다. 공을 줍고 나서 한참 동안 큰 짐차와 컨테이너차를 구경합니다. 타워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집어서 큰 짐배에 싣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다가 저 멀리 수위 아저씨가 저를 보고 꽤액 하고 소리를 치면, 부리나케 옥상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서 어디엔가 숨습니다. 이윽고 다른 동무들이 ‘아저씨 갔다’는 신호가 나오면 조용히 나와서 다시 벽치기 야구놀이를 하고.


.. 웬만한 마을 바위는 모두 이름이 있었다.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들은 대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자식은 부모에게서 듣고 부모는 그 부모에게서 듣고 부모의 부모는 또 그 부모에게서 듣고 부모의 부모는 또 그 부모에게서 듣고 이런 식으로 들어 알기도 했을 테지만, 어릴 때부터 마을사람들한테 들어 알기도 했을 것이다 ..  (바위/101쪽)


 모래밭에서 동 대항 야구놀이를 하던 어느 날, 우리 형이 타자로 나온 모습을 보고는 뒤에서 응원한다고 촐싹거리다가 야구방망이에 귀가 맞아서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기도 했습니다. 이날 형은 집에서 구두주걱이 부러지도록 얻어맞고, 야구놀이는 파장이 되고, 저는 너덜거리며 아픈 귀를 잡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고 엉엉 울기만 하고.

 열흘쯤 앞서 오랜만에 형과 형 옛동무를 만나서 신포시장에서 순대 한 접시 시켜 놓고 소주를 마시다가 옛날 제 귀 떨어진 이야기를 했습니다. 형은 “야, 너 때문에 내가 집에서 얼마나 맞은 줄 알아?” 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합니다만, 그때 아버지한테 얼마나 모질게 혼이 났을까요. 참 미안한 옛일입니다.


.. 한쪽 다리로 나무를 밟고 큰 도끼를 어깨 너머까지 힘차게 들었다가 휙 내리치면 나무가 딱 벌어지며 쪼개지는 것이었다. 한 번에 쪼개지지 않는 나무도 있었는데, 그런 나무에는 반드시 옹이가 있었다. 옹이는 나무의 상처였다. 아버지는 “상처가 있는 나무는 단단하단다”라고 하셨다 ..  (장작/40쪽)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가 깃든 5층짜리 아파트는 헐려서 없어지고 22층인가 23층짜리 새 아파트가 이 자리에 우람하게 올라섰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끔 이 앞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있던 기름집도 함께 사라지고 기름집 자리에는 맥도널드가 2층짜리 건물로 들어섰습니다. 예전 집자리 건너편 정석빌딩은 지금도 그대로. 예전 집자리 왼편에 있던 한국은행 인천지점은 지금도 그대로. 새로 올라선 높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옛 이웃은 지금도 몇 집 있으나, 우리 집을 비롯한 거의 모든 이웃은 다른 데로 살림을 옮겼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인천을 떠난 사람도 있을 테고, 우리 나라를 떠난 사람도 있을 테지요. 멀리멀리 떠나간 사람들이 자기 어린 나날을 보낸 집자리로 돌아와 볼 일이 있을까 모릅니다만, 예전 집자리로 돌아와 본다 한들, 어린 날을 돌이킬 수 있는 ‘무엇인가’는 거의 한 가지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흥 남여 중학교로 가는 울타리도 없고, 울타리에 자라던 까마중도 없으며, 제일제당에서 인천 앞바다로 흘려보내는 쓰레기물 흐르는 개천은 뚜껑이 덮이어 뚜껑 밑으로 쓰레기물이 흐르는지 민물이 흐르는지 똥물이 흐르는지 아무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그때나 이제나 이곳 하늘을 날고 있는 갈매기를 만납니다. 공장과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와 먼지밖에 없는 곳임에도, 갈매기는 이곳, 바닷가 마을을 잊지 않고 찾아와 줍니다. 몸에 좋을 턱이 없는 새우깡이나마 던져 주는 이 없고, 지친 날개 쉬며 느긋이 앉을 너럭바위 어디에도 없이 모텔만 줄줄줄 늘어선 이곳이지만, 갈매기는 한결같이 찾아와 줍니다.

 바다를 앞에 끼고 살아가는 인천사람이지만 갈매기 바라보는 사람이 없는데.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찾아오는 바깥사람들도 갈매기를 바라보지 않는데.


 (3) 《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을 책꽂이에 꽂으며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천막 둘레로 지나갑니다. 먼저 초등학생들이 지나갑니다. 재잘재잘 쫑알쫑알. 곧 중학생들이 지나갑니다. 천막 둘레에 걸어 놓은 걸개천 글씨를 읽으며 지나갑니다. 이제 어둠이 깔리면 고등학생들도 지나갈 테지요.


― 나무를 보고 있으면, 말이 없는 것이라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갈참나무/136쪽)
― 두릅을 먹으면 두릅나무에 왜 가시가 많은지 알 것 같았다.  (두릅/133쪽)
― 나무를 모르면 그 눈꽃이 그 눈꽃이지만, 나무를 알면 눈꽃이 저마다 달랐다.  (눈꽃/96쪽)
― 같은 밥을 늘 같이 먹으니 누렁이는 얼굴이며 성품이 우리와 같았다.  (누렁이/83쪽)
― 산골마을에는 교회나 절 같은 건 없어도 밤하늘의 별들 때문에 평화로웠다.  (별/47쪽)



 산골마을에서 어린 날을 보냈던 박희병 님은 당신 어린 날을 돌아보면서 책 하나를 적어내려 갑니다. ‘오늘날 박희병’을 이루어낸 뿌리가 무엇인가를 되짚으면서 책 하나 끄적여 내놓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면서 우리 옛문학 이야기를 틈틈이 책으로 써 내다가, 뜬금없이 당신 옛 고향 발자취를 더듬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어쩌면 뜬금없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까뭉개며 없애려고 하지만, 없어져서는 안 될, 아니 찬찬히 되살아나야 좋을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엮어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고향마을이 될 터전을 자꾸자꾸 짓뭉개거나 밟아 없애려고 하기에, 이러다가는 우리 모두 죽음길로 갈밖에 없다는 걱정이 커지면서 내놓았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거의 모두 도시에 지어진 높고 우람한 아파트에서 살며 부모나 학원 차를 타고 집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지냅니다. 흙 밟을 일이 없지만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 밟을 일도 드뭅니다. 이런 가운데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앞으로 스무 해쯤, 또는 서른 해나 마흔 해쯤 뒤, 자기가 자랐던 어린 날 고향을 떠올리면서 어떤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까요. 자연과 담을 쌓는다기보다 아예 ‘자연이라고 하는 국물도 건더기도’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돌아보면서 끄적일 이야기는 누구한테 얼마나 아름다움과 즐거움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요.


.. 똥물을 주면 채소는 몸이 실해져 벌레가 잘 달라붙지 않고 잎에서는 당장 윤기가 났다. 사람은 자기가 먹은 것을 똥으로 누고 똥은 다시 먹을 것이 되고 먹은 것은 또다시 똥으로 되고 똥은 또다시 먹을 것이 되니 결국은 제한테서 나와 제한테로 돌아가는 듯 싶었다. 마을 어딜 가도 늘 똥냄새가 났으나, 그래서 그 냄새는 싫지 않았다 ..  (똥바가지/118쪽)


 천막농성 열아홉 날이 저물고 스무 날이 다가옵니다. 지난 3월 3일 낮, 인천시 종합건설본부장은 천막농성 터로 한 번 찾아왔습니다. 그날 그분은 우리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거 강제로 포크레인 가지고 때려부수면 그만이라니까!”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태껏 동네사람들하고 ‘막공사 산업도로’ 문제로 열린 토론마당을 한 번도 마련하지 않고 ‘시에서 2020년까지 내다보면서 마련한 계획이니 이대로 해야 한다’는 방침만 통보하고 있는 마당에, 종합건설본부장이라는 자리에 앉은 분 말로는, 더욱이 천막농성터에 찾아온 분이 꺼낼 말로는, 그다지 알맞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 이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뜨거운 무엇이 머리끝까지 솟구쳐올랐고, 헛웃음을 웃으며 돌아가는 종건본부장 겉옷자락 꽁무니를 볼 때에는 소름이 돋았으며, 주민과 만나서 이야기를 할 마음이 없다는 뜻을 다시금 알게 된 뒤에는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일구어 가는 우리 고향이요 우리 문화요 우리 사회요 우리 세상이 아니라, 돈(경제) 논리 하나만으로 삽날을 앞세워 파헤치고 무너뜨린 다음에 다른 돈보따리를 들고 와서 새로운 집을 지으면 된다고 하는 마음씀은 그지없이 불쌍하고 못난 지식쪼가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높은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얻은 지식이, 그동안 나라밖 여러 곳을 다니며 듣고 보았다는 경험이, 여태 정부 부처 여러 자리에서 나라일을 주물러 왔다는 움직임이 고작 이만큼밖에 안 되느냐 싶으니 눈물이 다 날 노릇이었습니다.

 길은 돈으로 내고 아파트도 돈으로 짓는다지만, 길은 누가 다니고 아파트에는 누가 살지요? 두 다리가 아닌 자동차로만 움직이는 사람은 얼마나 사람다운 사람이며, 온 몸뚱이가 아닌 돈으로 사들여 잠만 자고 떠나는 아파트는 얼마나 사람 깃들일 만한 집입니까? (4341.3.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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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와 테러리스트 - 앙굴리말라 이야기
사티쉬 쿠마르 지음, 이한중 옮김 / 달팽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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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부처와 테러리스트
- 글 : 사티쉬 쿠마르
- 옮긴이 : 이한중
- 펴낸곳 : 달팽이(2005.1.27.)
- 책값 : 6500원



 이 책 하나 35 ― 바보 기자와 어리석은 공무원한테 책 선물
 : 사티쉬 쿠마르, 《부처와 테러리스트》를 읽고



 (1) 기자와 공무원


 월요일인 어제, 2월 25일 아침 아홉 시 사십팔 분, 연합뉴스 인천지사에서 일하는 기자한테서 전화가 옵니다. 이분이 쓴 ‘배다리 산업도로 공사재개’ 기사가 오로지 인천시에서 보도자료로 돌린 글에 바탕을 두고 쓰느라, 주민들 목소리를 하나도 담지 않기도 했으나, 이보다도 사실관계를 찬찬히 살피지 않고 썼기에 인터넷편지로 ‘정정보도 요청’을 했어요. 기자는 자기가 주민 목소리를 담지 않은 대목과, 자기가 쓴 기사와는 달리 ‘인천시가 주민하고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않은 한편, 이야기를 나누려 애쓰지도 않았다’는 대목, 또 공사진행율을 수치로 따져서 말할 때 당신들로서는 그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대목 들을 말합니다.

 그분으로서는 고침 기사를 쓸 수는 없구나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전화 한 통 넣어 주니 고맙습니다. 우리 동네 한복판, 아니 인천이라는 곳이 지금 모습으로 자리잡는 동안 뿌리내리고 살아온 오래된 서민 동네 한복판에 너비 50∼70미터에 이르는 산업도로를 우격다짐으로 뚫어내겠다고 하는 인천시 공무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우리 동네 사람들하고 ‘그래, 무엇이 문제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안다, 안다. 그대가 누군지 안다. 하지만 그대는 내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죽어 줄 수 있다는 걸 모르는가?” 부처는 잠시 한숨을 돌리더니 말했다. “난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죽는 것은 아무도 해롭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이는 건? 남들을 죽이니 어떤 기분이 들지, 앙굴리말라? 죽이는 것에 관해 자신의 감정을 깊이 한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  (25쪽)


 공무원은 누구 때문에 일하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공무원은 어디에서 일하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공무원은 왜 일하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공무원이 되면 ‘먹고살기 힘든 요즘 세상에 안정된 일자리와 넉넉한 노후보장’이 되니 좋은가요. 위에서 내려보낸 일을 말없이 따르기만 하면 되는가요.

 관청 어느 곳마다 ‘민원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민원실’에서는 어떤 ‘주민 목소리’를 듣고 고치려고 하는지요. 주민들이 살기 팍팍하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한테 있어야 할 것은 수천 억이나 수 조에 이르는 돈을 쏟아부으며 새로 닦는 찻길이 아닌데, 그 어마어마한 돈을 우리 주머니에서 뽑아낸 세금으로 닦을 까닭이 없는데, 그 엄청난 돈으로는 지역 문화를 북돋우고 지역 사회를 가꾸고 지역 복지와 교육을 일으키는 데에 써야 할 텐데, 이런 목소리는 ‘민원’이 아니라고 여겨서 입 닫고 귀 막고 눈 감고 있어도 되는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보다 찻길이 더 많은 세상이 되어 버리면, 사람이 걱정없이 걸어다닐 길이 아니라 주차장만 잔뜩잔뜩 만들어 버리면, 우리들이 이 땅에 목숨붙이 하나로 태어난 보람과 기쁨은 어디에서 어떻게 맛볼 수 있을는지요.


.. “사랑의 힘을 발휘해 보라. 본성의 힘은 칼의 힘보다 강하다. 사랑의 힘은 그대 안에서 자라는 것인 반면, 칼의 힘은 바깥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 칼의 힘은 남들의 나약함과 굴종과 무기력에 의존한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모든 사람들에게 힘을 주지.” ..  (32∼33쪽)


 어제 아침 연합뉴스 기자한테 전화를 받은 뒤, 부지런히 짐을 챙겨 인천시청으로 갑니다. 아침 11시에 시청 기자실에서 ‘산업도로 강행하려는 인천시를 규탄하며, 다시금 인천시장 면담을 요청’ 하는 기자회견을 하기에. 동네사람 가운데 하나이면서,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는 시민기자인 하나로 찾아갑니다.

 인천시청은 퍽 뻘쭘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닐 무렵, 인천 중구에서 지금 자리로 옮겨 왔는데, 그때에나 이제에나 교통 편이 아주 나쁩니다. 버스도 잘 다니지 않아요. 더욱이 버스는 시청 뒷문에 멈출 뿐입니다. 시청으로 찾아갈 때 앞이 아닌 뒤에서 버스를 내려서 찾아가도록 하는 곳이 인천 말고 다른 데에 또 있을까요?

 옆지기가 버스를 타면 멀미를 하기에 인천지하철을 타고 갑니다. 돌고 돌아 인천시청역에서 내리니 우람하게 지은 땅밑 건물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인천지하철에는 짐칸이 없어, 타고 오면서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고 투덜투덜거렸는데, 전철에서 내려 높직한 계단을 하염없이 밟고 오르면서, ‘지하철역 안에 이렇게 대리석으로 꾸미는 데 들어간 돈이 어디에서 나왔는데?’ 하는 푸념이 끊이지 않습니다. 앉아서 다리쉼 할 자리도 거의 보이지 않으면서 그예 큼직큼직하게 이것 꾸미고 저것 꾸미고 …… 누구한테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건물인지.

 버스와 마찬가지로 시청 뒷문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인천지하철. 시청 앞은 오로지 자가용만 몰고 가서 내리도록 짜 놓았습니다. 예전에 한 번 버스를 타고 시청 앞으로 오며 이십 분 가까이 걸었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버스정류장부터 시청 앞문까지 얼마나 멀든지.


.. “그렇다면, 지금 현재 불행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데 어찌 미래에 행복해질 생각을 한단 말인가? 어찌 엉겅퀴 씨앗을 뿌리고 장미를 기대할 수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언전하게 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순간이다.” ..  (42쪽)


 시청으로 들어갑니다. 가운데문은 닫혀 있습니다. 수위실과 맞닿은 왼쪽 쪽문 하나만 열립니다. 가운데에 버젓이 있는 큰문이 왜 닫혀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시청 경찰 여러 사람이 가운데에 우뚝 서서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을 샅샅이 훑어봅니다.

 기자실은 2층. 기자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왼쪽으로 돌아서 가라고 합니다. 나중에 보니 가운데 계단도 있어요. 그런데 이 가운데 계단은 ‘인천시장 전용 계단’으로 느껴집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시장실에 들르려고 하니 시청 경찰 대여섯이 우리를 막아서며 ‘어디를 가느냐? 시장은 지금 밥먹으러 가고 없다’면서 붙잡습니다. 다른 경찰 하나는 ‘내려가는 계단은 저기에 있다. 저쪽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가운데에 널찍하고 좋은 계단이 있는데, 왜 구석진 곳에 조그맣게 있는 꽉 막힌 계단으로 가야 하나요?

 오늘도 지난달처럼, 또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인천시장 얼굴은 못 봅니다. 시장 비서 얼굴조차도 구경하지 못합니다. 시청 경찰 얼굴만 잔뜩 보고는 돌아서야 합니다.


.. “연꽃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연꽃은 화를 낼 줄도 모릅니다. 연꽃은 누구를 기쁘게 할지, 누구를 불쾌하게 할지 모릅니다. 연꽃은 판단하지 않습니다. 연꽃은 성인에게도 죄인에게도 기쁨을 줍니다. 인간은 왜 연꽃처럼 될 수 없을까요?” ..  (59쪽)


 기자회견 자리를 물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옆지기가 말합니다. ‘기자라는 사람이 다들 저런가?’ 하고. 당신도 아까 한 마디를 하려다가 참았다는데, 인천에서 인천 이야기를 쓰는 기자들이 인천 이야기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합니다. ‘여태껏 배다리 산업도로 이야기가 한두 번 나오지 않았는데, 올 때마다 똑같은 대답을 해 주어야 한다’면서, 어쩜 이럴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하게 웃습니다. 한 마디 대꾸합니다. “인천시장도, 인천시 공무원도 배다리에 한 번도 안 와 보지만, 기자들도 배다리에 한 번도 안 와 보잖아요. 공무원도 주민하고 만나려고 안 하지만, 기자도 주민하고 만나려 안 하잖아요.”

 허허허. 허전하고 텅 비어 가는 마음 따라 눈물이 살그머니 맺힙니다.


.. “꿀벌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 다니며 한 번에 조금씩만 꽃 속의 꿀을 얻는다. 꿀벌이 해를 끼친다고 불평하는 꽃은 없다.” ..  (68쪽)


 기자로 일하는 분들 가운데 대학교 안 나온 사람 하나 없으리라 봅니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분들 가운데 대학교 안 나온 사람 하나 없으리라 봅니다. 선배 공무원도, 선배 기자도 학교교육 튼튼히 받고, 여러 가지 지식과 상식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왜 이렇게밖에 일을 못할까요.

 기자든 공무원이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쉽게 일해서는 안 되는 자리일 텐데요. 책상머리에서 일해서는 안 되는 기자이자 공무원 아닌가요. 전화통만 붙들면서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는 안 되는 기자이자 공무원 아닌가요. 어떤 정책을 꾸려나가면서, 간담회든 공청회든 설명회든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십 차례 이어나가면서, 또 몸소 주민을 찾아다니며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잘잘못을 가다듬어야 하지 않나요. 기사 한 줄에 자기 목숨을 걸듯 꼼꼼히 살피고, 바로 그 한 줄을 올바르게 적어내려가려는 매무새로 바삐 뛰고 움직이고 돌아다녀야 하지 않나요.

 그러나 기자와 공무원 탓만 할 수 없습니다. 이분들이 학교 다니며 배우는 동안, 이분들을 가르친 또다른 분(교사, 교수)들이 이분들을 올곧게 이끌지 못했거든요. 지식보다 삶을, 지위나 계급보다는 사람을, 돈보다는 사랑을, 권력보다는 믿음과 나눔을 섬기라는 뜻을 몸으로 곰삭이도록 다스리지 못했잖아요.


 (2) 사람과 살면서 사람을 못 보면


 새벽 한 시 오십 분에 잠에서 깹니다. 일어나서 오줌을 누고 바깥을 바라보니 온통 하얗습니다. 하얀 밤입니다. 이 하얀 밤, 언손을 녹이며 신문을 돌리고 우유를 돌리고 골목길을 비질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될까요. 소복소복 내리는 눈에 첫 발자국을 남기거나 두 번째나 세 번째 발자국을 남길 이들 얼굴은 얼마나 꽁꽁 얼어붙어서 바알갈까요.

 창가에 기대어 골목길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몇 장 찍습니다. 이 깊어가는 밤, 발자국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돌아다녀 볼까. 기자들이 이 동네를 손수 밟지 않는다고 안쓰러워하지 말고 내가 이 동네를 밟으면 되니까. 공무원들이 정작 자기가 일하는 동네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기만 할 뿐 아니라 알려고도 안 하는 몸가짐을 슬퍼하지 말고 내가 이 동네를 더 알아가면 되니까.


.. “전하, 폭력은 폭력을 낳습니다. 복수와 정의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어디선가 폭력이 일으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서는 정의보다 위대합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친절과 자비를 베푸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진정한 용서와 자비는 야만적인 행위를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용서해 줄 수 있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  (57쪽)


 사흘 춥고 나흘 따뜻하다던 옛날씨는 말 그대로 옛날씨이고, 내내 춥다가 살포시 풀리려던 날씨였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쌀쌀해지더니 비가 한 차례, 눈이 한 차례.

 온도가 떨어진 이 밤, 방온도는 1∼2도를 오락가락. 보일러를 돌리고 싶으나 기름이 바닥나고 있어서 살짝 한 번 돌린 뒤 끄고. 집에 도시가스가 들어온다면 보일러를 돌렸을지 모르겠다고 생각. 어쩌면, 도시가스로 불을 때는 집은 ‘기름이며 가스며 얼마나 쓰이는가를 살갗으로 못 느끼는 채 돈만 벌어서 불값을 치르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렇다고 자기가 잡아먹는 자원이 얼마나 되는가를 살갗으로 못 느끼지는 않을 터이나, 깊이깊이 느끼기는 어렵지 않을까. 주머니 걱정에 앞서 자원 걱정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들은 따숩게 겨울나기를 한다지만, 바로 우리들이 낳아서 기를 다음세대는 어찌하지? 기름이 바닥나고 가스도 모자랄 스무 해 뒤는, 쉰 해 뒤는 어찌하지? 우리가 낳을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은 어찌하지? 우리는 다음세대뿐 아니라 다음다음세대한테 아무런 책임을 안 지고, 지금 이 자리에서 이대로도 좋고 즐겁다고 생각하며 살아도 되는지?


.. “그대의 마부가 화살에 맞았는데 그대는 누가 활을 쐈느냐고 알아보겠느냐?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어느 대장간에서 만든 것인지, 누가 만들었는지, 화살촉이 쇠로 만든 것인지 구리로 만든 것인지를 먼저 알아보겠느냐?” ..  (87쪽)


 기자회견 자리에서, 주민대책위 부위원장 아저씨와 헌책방 아주머니 한 분이 거의 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여기에 길을 낸다고 들인 800억(이 돈은 시에서 밝힌 돈이지만, 800억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느냐 하는 내역을 공개하지 않습니다.)이 큰 돈이고 조금만 더 하면 공사가 끝나는데 왜 반대하느냐고도 말하는데, 앞으로 길게 내다보면 훌륭한 투자를 한 셈이 됩니다. 지금은 이만큼이지만, 지금 잘못된 결정을 내려서 밀어붙이면 앞으로는 더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망가져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돈을 들여서 어떻게 보면 도심지 퍽 넓은 자리에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 이 빈 자리는, 인천을 인천시장이 명품도시를 바라는 그 뜻대로 참으로 인천다운 인천 모습을 가꾸며, 인천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숲을 가꿀 수 있으며, 인천이라는 곳 역사와 문화를 살리는 데에 아름답고 훌륭하게 되쓸 수 있습니다’ 하고.

 저도 잠깐 말미를 얻어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이 산업도로 공사 예산으로 수천 억이 잡혀 있는데, 앞으로 몇 천 억을 더 들여서 세금을 더 내버리기보다는, 그 돈으로 배다리를 비롯해 이 동네 살림집을 조금만 손질하면 서울 인사동보다 멋진 문화마을로 가꿀 수 있어요. 이곳에 와서 영화를 찍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파이란〉이라든지 〈고양이를 부탁해〉라든지, 이곳은 50∼60년대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편, 인천상륙작전 때 폭탄 안 맞고 살아남은 30년대 건물도 제법 있어요. 동인천역 앞에는 옛날 양조장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문화유산이 지금은 노래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 건물은 아파트 짓겠다고 허물면 그냥 사라져요. 다시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문화유산을 그냥 노래방 건물로 있게만 해도 될까요? 인천에서 앞으로 2014년에 아시안경기를 치르며 숙소가 모자라서 아파트를 새로 지어야만 한다고 하는데, 배다리 둘레 창영동 금곡동 송림동 송현동 율목동 숭의동 도원동 화수동 화평동 들 해서, 이곳에 있는 집을 살짝살짝 고치면 얼마든지 민박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은 이 집 그대로 귀중한 근현대 문화유적지 터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지금 사는 대로 보람을 느끼게 하고, 이 동네는 동네대로 아시안경기 때 숙소로 쓰도록 하면서 나라밖, 인천 바깥 사람한테 인천이라는 곳이 어떠한 곳인가를 말하도록 할 수 있어요. 우리는 그런 넓고 큰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겁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앙굴리말라의 말이 진심이라 하더라도 카스트제도와 그의 극악무도한 행동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왜 앙굴리말라가 카스트제도를 비난해야 하는지, 그것을 왜 자기 범죄에 대한 변명거리로 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대부분의 ‘돔’ 사람들과 불가촉천민들은 법을 잘 따르지 않는가.” ..  (119∼120쪽)


 밤 두 시 반,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 인터넷방에 들어가 봅니다. 어제 기자회견 자리에 와 준 기자들이 올린 기사가 너덧 올려져 있습니다. 이 깊은 밤에 잠을 쫓아가며 애쓰는 분이 있군요. 기사를 하나하나 살핍니다. 허허. 거참. 이거야 원. 기자회견문이라고 나눠 준 종이에 적힌 말을 제대로 옮겨적지도 못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뜻도 담지 못하고, 산업도로라는 길이 어떻게 주민 삶과 삶터를 무너뜨리는지를 짚어내지 못하고. 그래도 기사를 써 주기라도 했으니 고맙다고 절을 해야 하는지. 길게 한숨을 쉽니다. 찬방에 입김이 길게 뻗습니다.

 사람을 마주하며 사람을 이야기했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인데. 잘못 생각했나요? 잘못 보았나요? 서로 보는 눈이 다른가요? 우리한테는 보이는 사람이, 누군가한테는 돈으로 보이나요? 우리한테는 보이는 골목집이 누구한테는 재개발 이익으로 보이나요?


 (3) 《부처와 테러리스트》라는 책


 처음 나왔을 때는 읽지 않고 지나쳤던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사티쉬 쿠마르. 요 몇 해 사이에 한국땅에서 부쩍 이름값을 높이는 인도사람. 꽤 많은 이들이 사티쉬 쿠마르를 읽습니다만, 《부처와 테러리스트》는 그다지 안 읽히는 듯합니다. 이분 사티쉬 쿠마르는 입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사는 사람이고, 지식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닙니다. 더 많은 돈이나 적은 돈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자기 몸뚱이로 사는 사람입니다. 돈이 아닌 온몸 부대낌과 온마음 쏟아부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먹고살자면 돈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하지만, 돈이 쓰이는 곳을 살피면, ‘물건을 사는 일’입니다. 돈으로 사는 물건이 아닌 우리 손으로 만드는 물건이 된다면, 또 돈으로 사는 먹을거리가 아니라 우리 손으로 일구는 먹을거리가 된다면, 또 돈으로 사는 집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짓고 돌보는 집이 된다면, 우리한테는 ‘적은 돈’조차 아닌, ‘한푼 없어도’ 넉넉한 삶이 됩니다.


..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앙굴리말라, 내가 그걸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  (34쪽)


 국민학교였나 중학교였나, 자연인가 과학 시간인데, 아, 중학교 1학년 때로 떠오릅니다. 그때 과학(물상 시간이었지 싶습니다)을 배우는데, 첫머리에 ‘체험’ 이야기가 나왔어요. ‘과학은 실험을 거쳐 알아내는 체험’이라고. 이론으로만 따져서는 과학이 되지 못하고, 반드시 실험을 거쳐서 현실에서 이루어내야 비로소 과학으로 자리를 잡는다고.

 따지고 보면, 과학만 실험과 체험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인문학도 실험과 체험이 뒤따라야 합니다. 여성학은 어떻습니까. 환경학은 어떻습니까. 교육학과 사회학은, 예술학은 어떠한가요. 어느 학문이 실험과 체험 없이 바탕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요.

 실험과 체험, 온몸 부대낌 없이 신문기사 하나 나올 수 있습니까. 온마음 쏟아부음 없이 서민을 헤아리는 정책 하나 나올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이하여 야무지게 살아가는 사람을 알아보고 이들 이야기를 기사로 다루지 못하는가요. 우리는 어찌하여 낮은자리 사람들을 헤아리며 이들이 어깨동무하고 잘살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치지 못하는가요.


.. “난디니야, 나를 그저 따르기만 하지는 말아라.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 말을 그냥 받아들이지는 말아라. 그것을 직접 자기 삶 속에서 시도해 보아라. 내가 말한 것이 그대의 경험, 그대만의 진실과 공명할 때에 비로소 받아들여라.” ..  (89쪽)


 이야기책 《부처와 테러리스트》는 저마다 다 다른 땅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한테 무엇이 참으로 소중하며 가장 마음을 기울이면 좋은가 하는 물음 하나 내놓습니다. 다만, 풀이법은 내놓지 않습니다. ‘이런 길도 있느니라’ 할 뿐 ‘이 길로 가야 하지는 않느니라’ 하고 넌지시 옷소매를 잡습니다. ‘내가 간 이 길이 나한테는 좋았다고 당신도 무턱대고 이 길을 가지 말라’고 합니다. 길찾기는 저마다 다 다른 자기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 새롭게 가꾸고 일구어야 오래오래 싱그럽고 반갑고 단단할 테니까. (4341.2.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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