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 - 약부터 집까지 협동조합에서 산다
김태열.김현경 외 지음 / 그물코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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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도와 아름답게 살아갈 길이란
 [환경책 읽기 23]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


- 책이름 :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
- 글·사진 : 김태열, 김현경, 우미숙, 전홍규
- 펴낸곳 : 그물코 (2010.10.1.)
- 책값 : 4000원



 (1) 살아가는 터전


 읍내 마실을 하면서 쥐끈끈이를 삽니다. 끈끈이 둘 든 봉지는 500원 합니다. 이 봉지를 둘 삽니다. 우리 멧기슭 집에 기어드는 쥐들이 파 놓은 구멍을 여기 막고 저기 막고 하지만 아직 찾지 못한 어느 틈을 파고들며 자꾸자꾸 들어오고 또 들어옵니다. 오늘 새벽까지 아홉 마리째 잡습니다. 쥐들은 잡히고 거듭 잡히지만 집 바깥으로 나갈 생각을 않습니다. 방으로 나와 돌아다니다가 저들이 판 구멍 앞에 놓은 끈끈이에 붙들려 숨을 거둡니다.

 쥐는 사람 때문에 살 자리를 잃어 자꾸 사람 사는 집으로 기어드는지, 아니면 쥐는 처음부터 사람 사는 집 한켠에 기어들어 밥거리를 얻는지 궁금합니다. 여느 멧짐승이나 멧새는 멧자락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살면서 사람이 일구는 논이나 밭으로 먹이마실을 나온다지만, 쥐만큼은 사람 살림집 안쪽까지 파고들려고 합니다.

 시골집이니까 쥐가 있고 거미가 있으며 갖은 벌레가 있겠지요. 도시에 머물던 때에도 거미가 있었으나, 거미보다는 개미와 바퀴가 훨씬 많았습니다. 도시에서는 골목마다 골목고양이가 많아 쥐가 살아날 틈이 얼마 없었을까요. 시골자락에서는 집마다 고양이를 섣불리 못 기를 뿐더러, 길러도 집에서 목줄을 해 놓아야 하니 쥐들이 살 판 난 셈일까요. 시골마을에서 고양이를 목줄 안 하고 길렀다가는 마을 닭을 모조리 잡아 죽인다 해서 기를 수 없습니다.

 쥐는 쥐대로 흙땅에서 굴을 파고 살 때에 가장 아름답고, 사람은 사람대로 이 흙땅에 집을 지어 살 때에 가장 곱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서로 제자리를 잘 지키며 건사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살붙이가 자가용을 안 몰고 온갖 전기 제품을 안 쓴달지라도 둘레 숱한 사람들은 갖은 물질문명을 누릴 뿐더러, 더 커다란 시멘트 아파트에다가 땅장사를 그치지 않습니다. 끔찍한 토목공사에 쓰라는 세금을 내고 싶지 않아도 이 나라는 간접세가 워낙 커서, 우리 살붙이가 뭐 하나만 해도 4대강사업뿐 아니라 거님길 돌을 갈아엎는 데까지 부질없는 돈이 자꾸 쓰이고 맙니다.

 사람들은 사람 스스로 사람 삶터를 아기자기하게 돌보거나 아리땁게 여미지 않아요.


.. (볼로냐는) 주요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도시 전체가 번거롭지 않다 ..  (9쪽)


 인천 골목동네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동네가 복닥복닥 시끄럽지 않아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공장이 지나치게 많고, 바닷가로는 나가 보기 까다로워 꽤 못마땅했습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 옆지기를 만나 아이를 낳으며 살던 동안, 호젓한 안골에서 살뜰한 이웃하고 사귀며 수수하게 살림을 꾸릴 수 있어 기뻤습니다. 그러나 인천 또한 도시인 까닭에 달삯을 많이 치러야 할 뿐더러, 이곳에서 먹고살자면 더 많은 돈을 끝없이 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터라 몸과 마음이 느긋이 쉬기 힘들었습니다.

 시골 살림집으로 옮겨 살아가면서 생각합니다. 벌써 여러 해 앞서 시골로 살림을 옮긴 ‘그물코’라는 출판사가 있는데, 서울에서 다달이 80만 원 달삯을 내고 일꾼을 둘 두면서 책을 펴낼 때에는 책을 더 많이 팔기도 하고 이렁저렁 버티기는 했으나 빚이 늘기만 했다는데, 시골로 옮기고 나서는 빚이 차츰 줄면서 그렁저렁 먹고산답니다. 우리 살림집도 그러한데,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 달삯 걱정을 안 합니다. 술 마실 일도 드물지만, 술 사러 읍내나 면내로 나다니기 벅찹니다.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다녀올 때에 가끔 보리술 한두 병을 장만하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장만하고픈 마음이 딱히 들지 않습니다. 한 병에 기껏 1600원인데, 이 돈으로 아이가 먹을 밥거리를 하나 더 장만한다든지, 능금이나 귤이나 묵을 사 오든지 하자고 생각합니다. 어제는 읍내 장마당에서 밤이랑 두부랑 조개젓이랑 사들였습니다. 한창 밤이 익어 톡톡 떨어질 때에는 산에서 줍기도 하지만, 밤철이 지난 뒤에는 읍내 장마당에 나가 사서 먹습니다.

 읍내 장마당은 닷새에 한 번 섭니다. 장마당이 열릴 때마다 꼬박꼬박 찾아가지는 않습니다. 우리 세 식구는 하루에 두 끼니를 먹을 뿐더러, 감자랑 고구마랑 밥이랑 무랑 김치랑 해서 얼마든지 배부릅니다. 아이가 까까 노래를 할 때에 늘 못 들은 척하고 있다가 가끔가끔 자전거에 수레를 붙여 아이랑 마실을 하며 한둘쯤 사 옵니다.

 아마 우리한테 자가용이 있다면, 아이가 까까 노래를 부를 때마다 부릉부릉 몰아 휭 하고 읍내이든 면내이든 시내이든 찾아가서 잔뜩 사들였을는지 몰라요. 우리가 도시에서 그대로 남아 지낸다면 아이는 아빠 손을 잡아끌면서 ‘저기 가게에 가자’고 졸라댔을 테고요. 가게 하나 보자면 걸어서 두 시간 남짓 가야 하고, 자전거로도 삼십 분은 달려야 하니까, 집 바깥으로 마당에만 나온다든지 산에 간다든지 하면 아이는 까까 노래를 더 안 부릅니다. 아마, 못 부르지 않나 싶어요.


.. 겉으로 보기에 도시 미관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풍경이지만, 낡고 더러워도 허물고 다시 짓지 않으며, 오래된 것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는 모습에서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옛것에 대한 고집이 보인다 ..  (10쪽)


 저는 일찍부터 헌책방마실을 즐기면서 우리 나라 곳곳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헌책방이 깃든 동네 골목’을 요모조모 누비곤 했습니다. 나라안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헤아려 보면, 멋스럽기는 부산 골목이나 목포 골목이 참 멋스럽다 할 만하지만, 살내음 짙기로는 인천 골목만 한 데는 못 보았습니다.

 제가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 이렇게 느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고개를 갸웃갸웃했지만, 옆지기랑 아이랑 함께 살아가며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흙 한 줌 없이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꽉꽉 막힌데다가, 인천은 ‘서울과 경기도 곳곳으로 올려보낼 물건을 만드는 공장’이 수두룩합니다. 일본이 이 나라를 식민지로 내리누를 때에는 조선 나라 물건을 빼내는 항구요, 나라밖 물건을 서울로 들여보내는 길목이었습니다. 인천사람이 인천에서 뿌리내리며 옹기종기 살도록 북돋우던 적이란 없고, 늘 서울로 보내거나 서울로 갈 물건과 사람이 거치는 자리이다 보니, 시설이든 문화이든 터전이든 엉망진창이거나 아예 없곤 합니다. 그야말로 빈터요 빈몸이에요. 이런 데에서 살림을 꾸리는 사람들은 도시에서는 더 밑바닥 가난쟁이요, 시골에서 살기 벅차 도시로 흘러온 또다른 밑바닥 가난쟁이입니다. 서로서로 힘들고 빠듯한데, 좀처럼 햇볕 쬘 틈이 없습니다. 이런 나날을 수없이 보내고 거듭 보내면서 작은 땅뙈기 하나 소담스러운 줄 온몸으로 깨달으며 손바닥 텃밭을 일구고, 꽃그릇 농사를 짓습니다. 집 안쪽이든 골목이든 어디이든 땅 한 뼘 놀리지 않아요. 푸성귀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심습니다. 때로는 꽃씨를 함께 심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집이든 다 아이를 낳아 키우잖아요. 아이를 키우는 집은 꽃씨를 심어 함께 키웁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제금을 난 뒤에도 꽃씨를 심어 키우는 버릇은 그대로 이어집니다. 할마시 할아바시가 되어도 골목골목 꽃잔치가 이루어지는 밑바탕은 이런 데에 있어요. 오래되었다는 인천 중구와 동구 골목골목에 아기자기한 꽃내음이 조촐히 펼치지는 뜻은 이런 뿌리에 있습니다.

 비거나 헐린 집터마다 곧바로 돌을 골라 텃밭을 일구는 데는 인천뿐입니다. 이들, 돌을 골라 텃밭을 일구는 동네사람은 ‘빈 집터 땅임자’가 아닙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집이 하나 비며 무너지면, 이 무너진 집 나무를 땔감으로 쓰든 기둥으로 삼든 뭐로 하든 알뜰히 쓰고, 돌은 돌대로 바닥을 다지는 데에 쓰든 울타리를 쌓든 하고, 바로 이 집자리 바닥을 갈고 일구어 씨를 심습니다. 동인천북광장을 만든다며 집을 잔뜩 밀어버린 한켠에서는 ‘제대로 보상하며 목숨줄을 지켜 달라’ 외치는 분들이 천막농성을 하는데, 이분들 천막 앞 빈터에도 어김없이 텃밭이 있습니다. 어느새 건물 부스러기를 모조리 (손수) 치운 다음 돌을 고르고 흙을 갈아 배추며 무며 상추며 잔뜩 길러내요.


.. 도시에서 구하기 힘든 지역 특산물과 친환경 먹을거리를 구입할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으며, 조합원 할인가격으로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곳. 가까운 사람들과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색다른 문화공간인 암바시아토리 ..  (117∼118쪽)


 ‘에버랜드’라는 이름을 쓰는 곳이 예전에 ‘자연농원’이지 않았나 싶은데, 이곳 용인땅 에버랜드라는 데에서는 해마다 튤립잔치이니 장미잔치이니 벌입니다. 하나같이 큰돈을 들여 튤립이니 장미이니 어마어마하게 심어 놓고 숱한 일꾼이 땀흘려 돌보며 예쁘장하게 꾸밉니다.

 저는 이 꽃잔치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았습니다. 내 살림집하고 너무 멀기도 할 뿐더러,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빠듯하기도 하지만, 아이를 돌보고 키우면서 엄두를 내지도 못하는데, 구태여 그토록 먼 데까지 꽃마실을 갈 까닭이 없기도 합니다. 서쪽 바다 꽃지라는 데에서도 무슨 꽃잔치를 해마다 벌이는 듯한데, 이런 데에도 애써 찾아가지 않아요. 왜냐하면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에는 몇 걸음만 거닐면 골목골목 꽃잔치였거든요. 인천 중구 내동 붉은벽돌집 2층에 깃들 때에는 1층에 사는 집임자 할매와 할배가 온 집안을 꽃누리로 돌보았습니다. 2층에 사는 우리가 조그마한 앞마당에 빨래나 이불을 널 자리가 없을 만큼 온통 꽃누리였어요. 어느 골목을 가든 이 같은 꽃누리를 쉬 마주합니다. 자동차가 들어서지 못하는 골목이라면 더 놀랍고 어여쁜 꽃누리예요. 흔히들 ‘차가 못 들어가는 골목’에 어떻게 사느냐고, 짐을 어찌 나르거나 옮기느냐 걱정하지만, ‘차가 안 들어가는 골목’에서 살아가는 분은 굳이 당신 살림집을 옮기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곳이 그예 좋으며 넉넉한 살림자리인데 차가 들어오느니 마느니가 아니라, 살아가기 좋도록 꾸미느니 마느니를 헤아립니다.


 (2) 일하는 터전


 엊저녁, 아이 아빠는 아이랑 잘 안 놀아 주었습니다. 아이 아빠는 몸이 고단하기도 했으나, 식구들 먹여살릴 밥벌이 글을 쓴답시고 아이가 심심해 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아이 아빠가 이렇게 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새로 써내려 하는 책 밑틀을 다져야 하기 때문에 여러 시간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며 마음 한켠으로는 ‘내가 아무리 좋다 할 만한 글을 쓴달지라도 이렇게 아이하고 놀지 못한다면 이런 글이 무슨 보람이 있는가?’ 하고 뉘우칩니다. 잠자리에 누우면서 아이한테 미안하다 말합니다.

 아이를 겨우 재워 놓고 아빠 또한 힘들게 잠들면서 다시 생각합니다. 이런 매무새라면, 아이랑 적게 놀고 아빠 일만 더 붙잡는 매무새라면,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똑같이 바보스러운 삶이 아니겠느냐고. 새벽에 더 일찍 조용히 일어나 후다닥 글을 쓰든, 아이하고 실컷 놀아 주고 나서 아빠가 따로 글을 쓸 말미를 얻든 할 노릇이 아니겠느냐고.


.. 협동조합 안에서는 어떤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심각한 고용불안이 일어나지 않는다 … 이들의 공통점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다 … 산업화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을 물리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개인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서로 협동하는 것이 모두가 고르게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13, 23쪽)


 골목에 깃드는 살림이라면 골목을 넉넉히 품에 안아야 즐겁습니다. 바다에 깃드는 살림이라면 바다를 넓게 가슴으로 맞아들여야 기쁩니다. 멧자락에 깃드는 살림이라면 멧길과 멧기슭과 멧자락을 곱게 온마음으로 얼싸안아야 사랑스럽습니다.

 논농사를 지을 수 있고 밭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논밭농사 다 할 수 있고, 한 가지만 하면서 다른 한 가지는 둘레 농사꾼한테서 얻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몫을 다 해내기는 어렵고, 한 가지씩 차근차근 하면 됩니다. 아마, 아이 아빠인 저부터 이렇게 차근차근 한 가지씩 해야겠지요. 아직 시골집으로 옮긴 지 다섯 달째이니, 서두르지 말되 너무 늘어지지 않도록 다스려야겠지요. 어제도 콩알을 깠어야 했는데 못 까고 지나갔어요. 그제는 조금 깠으나 아직 까야 할 콩이 퍽 많습니다. 늦여름에 시골집에 깃드느라 텃밭 하나 알뜰히 일구지 못했는데, 엎친 데 덮친다고 우리 살림이 시골로 옮기고 나서부터 큰비가 끊이지 않고 몰아치면서 텃밭 푸성귀를 제대로 건사하기 힘들었어요.

 그래도, 이웃 농삿집 살림을 들여다보면, 이런 말은 핑계입니다. 큰비가 끊이지 않건 비바람이 쉬지 않건, 참다이 농사짓는 이들은 이런 날씨에도 얼마든지 곡식과 푸성귀를 거둡니다.


..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협동조합을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주식회사 만드는 것이 더 쉽지요. 행정업무나 자본과 조직을 컨트롤하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자기 삶을 걸고 (진정한) 사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이 협동조합을 만듭니다. 협동조합을 선택한 것은 경제적인 면을 본 것이 아니고, 개인이 생각했던 목표를 이루는 것과 함께 문화적·사회적·정치적인 면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을 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  (33쪽)


 그나저나 시골에는 다 늙은 사람만 가득합니다. 좀 젊다 싶은 사람은 참 드뭅니다. 젊다 싶은 사람도 드물고 어리다 싶은 사람도 드물어요. 읍내로 나가 보면, 어린 중·고등학교 남녀 학생들이 짧디짧은 치마에 허벅지에 꼭 끼는 바지를 입고 주머니에 두 손 쿡 쑤셔박은 채 낄낄깔깔 떠들어대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곧잘 보지만, 스무 살부터 서른 살 나이에 이르는 젊은이는 웬만해서는 찾아보지 못해요. 어린이도 참 보기 힘들어요. 시골 읍내에서도 학원에 가랴 집안에서 셈틀놀이를 하랴 바쁠는지 모르지만, 마음껏 뛰노는 어린이를 마주하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인천에서도 엇비슷했어요. 제주에서도 다르지 않았어요. 부산에는 사람이 아주 많으니 이렇게까지 느끼기는 힘들지만, 부산에서도 부산에 깃들며 뿌리를 내리기보다 서울로 나아가려는 사람이 꽤나 많습니다. 온나라 어리거나 젊은 사람은 모조리 서울로만 몰려드는 듯해요. 저마다 제 고향마을을 살찌우지 못하거나 고향마을에서 아름다이 살아갈 꿈을 보듬지 못해요. 좁디좁은 서울에서 서로 아웅다웅하거나 툭탁질을 합니다. 더 올라서려 하고, 더 움켜쥐려 하며, 더 악착같이 굽니다.

 키 161센티미터인 사람이 있으면 161.1센티미터인 사람이 있고 170센티미터나 150센티미터인 사람이 있어요. 다 다른 대로 좋거나 나쁠 구석이 따로 없습니다. 다 다른 대로 그예 예쁜 사람입니다. 다달이 200만 원쯤 벌어야 할 까닭이란 없고, 다달이 190만 원을 벌든 180만 원을 벌든 170만 원을 벌든 …… 100만 원을 벌든 90만 원을 벌든 …… 50만 원을 벌든 40만 원을 벌든 무엇이 다르려나요.

 우리는 저마다 어느 만큼 사람답게 살아가느냐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하지 않으려나요. 서로서로 어느 만큼 착하고 참다우며 어여삐 얼크러지느냐를 느낄 줄 알아야 하지 않으려나요.

 겨루기·점수내기·돈내기·힘내기·이름내기·장사내기·집내기…… 들을 하는 곳에서는 사랑이 씨를 내리지 못합니다. 이런 데에서는 믿음이 줄기를 올리지 못합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아름다움이 꽃피우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사람이 가장 많다는 서울에 ‘생활협동조합’이 얼마나 되나요. 부산에는? 대구에는? 인천에는? 대전에는? 울산에는? 광주에는? 이런 큰도시에 생협이 얼마나 있나요. 아니, 생협을 알기나 아는가 궁금합니다. 스스로 진보라 생각하는 분들은 얼마나 생협 운동을 하는가요. 스스로 보수라 여기는 분들은 얼마나 생협 운동을 아끼는가요.


.. “우리는 작기 때문에 서로에게 힘이 되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이고, 일을 하면서 생기는 위험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  (55쪽)


 한국땅에서는 전기자동차이든 물자동차이든 ‘기름 안 먹는’ 자동차는 나오기 어렵고 팔리기 힘들다고 느낍니다. 아니, 처음부터 자동차를 장만하지 않으면서 살림과 삶을 가꾸기는 힘겹다고 느껴요. 자동차 한 대를 만들기까지 자원을 어떻게 쓰는지 살피는 사람이 드물고, 자동차를 굴릴 기름을 얻기까지 어떠한 길을 거쳐야 하는가 헤아리는 사람이 드물며, 자동차가 오갈 길을 닦는 동안 이 나라 삶자락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돌아보는 사람이 드물어요.

 고속도로가 새로 뚫려 시원시원 빨리빨리 달리니 좋은가요. 그렇다면 이 고속도로 닦는 데에 돈이 얼마나 들었고, 이 돈은 어디에서 나왔으며, 이 길을 닦느라 이 나라 자연은 얼마나 시름시름 앓아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는가요. 자동차가 더 빨리 씽씽 달리는 만큼, 이 나라 공기는 얼마나 더러워지는지 헤아려 보았는가요. 자동차가 달리거나 서 있을 자리는 늘어나지만, 아이들이 뛰놀 자리는 사라지고, 어른들이 어울릴 자리 또한 없어지는 줄 알기는 하나요. 자동차 달리는 고속도로랑 자동차 서 있는 주차장 자리를 ‘내 논밭으로 삼아 조그맣게 농사를 지으’면 우리 삶과 삶터가 어떻게 달라질는지 꿈이나 꾸어 보았는가요.


 (3)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라는 작은 책


 4000원짜리 작은 책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를 읽습니다. 쪽수는 딱 130쪽, 사진이 꽤 많이 실렸기에 글은 한결 적어 한 시간은커녕 삼십 분조차 안 들이고도 후딱 읽어치울 만한 작은 책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를 가볍게 읽습니다. 웬만한 소설책 하나 만 원 이만 원 오락가락하는 판에, 값이 아주 싸다는 만화책조차 이제는 한 권에 4200원을 하는 판에, 에계계 값이 고작 4천 원밖에 안 하네, 하는 책 하나 기쁘게 읽습니다.

 김태열·김현경·우미숙·전홍규, 이 작은 책에 글을 쓴 네 분이 당신 글을 조금 더 알차게 여미었으면 훨씬 좋았겠구나 싶지만, 좀 덜 여문 글일지라도, 이분들은 이탈리아 볼로냐까지 다녀오며 그곳 협동조합 삶자락을 들여다본 그대로 이야기 하나로 엮어 꾸밈없이 나누어 줍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협동조합 이야기이니까요. 아주 잘난 사람만 이런 이야기를 할 만하겠습니까. 글 아주 빼어나게 잘 쓰고, 생각 무척 깊다는 사람이어야만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엮을 만하겠습니까.

 아직 어리숙하거나 모자라다지만,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좋은 넋과 사랑을 얻었으니, 이 좋은 느낌을 이 나라 이웃하고 동무하고 나누면 한결 즐거워요.


.. 협동조합이 이곳(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번성하게 된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통적으로 계급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  (22쪽)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에 담긴 ‘이탈리아에서 협동조합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찬찬히 귀담아듣다 보면, 협동조합이란 조금도 어렵지 않을 뿐더러, 어려움하고는 동떨어진 채, 참으로 즐거운 일이요, 협동조합이란 무엇보다 즐거움하고 맞닿은 일이구나 싶습니다. 어떤 꿈 하나 뚜렷하게 이룬다든지, 이를테면 사회나 정치를 뜯어고치겠다는 부푼 꿈으로 협동조합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협동조합을 이루는 바탕힘은 다른 데에 있구나 싶어요.

 바로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하며 울고 웃는 삶’입니다.

 나와 내 아이 사이에 계급이나 계층을 둘 수 있겠습니까. 나와 내 어버이 사이에 계급이나 계층으로 울타리를 세울 수 있는가요. 내 살가운 동무하고 나 사이에 높다란 울타리를 쌓을 수 있습니까.

 서로 예쁘게 어울릴 길을 찾아야지요. 서로 살갑게 손잡는 길을 걸어야지요.

 돈이 있다고 협동조합을 잘 꾸리지 않아요. 사람이 더 많다고 협동조합을 알차게 꾸리지 않아요. 거룩한 뜻이나 훌륭한 값을 바라보기에 협동조합을 힘차게 꾸리지 않아요.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삶’과 ‘사랑’과 ‘사람’을 아끼는 매무새로 협동조합을 일굽니다.


.. “다른 공연을 하면 돈도 많이 벌고 얼굴도 알릴 수 있지만, 어린이를 위한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  (47쪽)


 내 아이를 사랑하겠다는데 돈이 더 많아야 할 까닭이 없어요. 내 짝꿍을 사랑하겠다는데 더 큰 돈으로 큼지막한 선물을 사다 주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하겠다는데 집이나 자동차나 외국여행 따위를 바쳐야 할 까닭이 없어요.

 서로 도와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생각하면 됩니다. 서로 어깨를 겯고 한 걸음씩 나아갈 길을 찾으면 됩니다.

 품앗이도 좋고 두레도 좋아요. 울력도 좋고 도리기도 좋아요. 대단하게 할 생각이 아니면 돼요. 시끌벅적 할 생각이 아니면 돼요.

 나를 사랑하는 참길을 생각해 주셔요. 내 벗을 사랑하는 착한 길을 살펴 주셔요. 내 살붙이를 사랑하는 고운 길을 씩씩하게 걸어 보셔요. (4343.1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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