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 - 2016 영광군민 한책읽기운동 선정도서 선정, 아침독서 선정, 2013 경남독서한마당 선정 바람그림책 6
이세 히데코 글.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깥마실을 하느라, 책 사진은 고흥으로 돌아가서 붙입니다~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8

 


아름답게 피어나는 소리
―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
 이세 히데코 글·그림
 김소연 옮김
 천개의바람 펴냄, 2012.6.29.

 


  모든 소리는 마음으로 듣습니다. 마음을 여는 사람이 소리를 듣습니다. 마음을 열지 않은 몸이라면, 스스로 받아들이고픈 소리가 아니라 둘레에서 울리는 소리가 스며듭니다.


  마음을 열지 않을 적에는 숲에 깃들어도 멧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듣지 못합니다. 마음을 열지 않으니 들에 서더라도 들풀과 들꽃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마음을 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구름이 들려주는 노래와 해님이 방긋 웃는 노래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퍼지지 않는다면, 오늘날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꾸 마음을 닫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닫은 채 지식만 꺼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열려 하지 않으면서 지식과 학력과 재산과 권력 따위를 앞세워 모든 노래를 잠재우거나 짓밟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 같이 연주하지 않을래?” 그 아이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언덕 위 풀밭에서 첼로 케이스를 열었다. “여기에서!” ..  (5쪽)


  나는 고3 입시 수험생이던 스물 몇 해 앞서도 시멘트감옥과 같은 교실에서 바람소리를 들었습니다. 교단에서는 교사가 한참 분필질을 하면서 침을 뱉지만, 내 마음은 창문 바깥에서 흐르는 구름을 느낍니다. 내 마음은 구름을 타고 멀리멀리 조용하면서 아름다운 어느 시골을 달립니다.


  고3 수험생으로서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면, 아주 마땅히, 교사들이 읊조리는 수업을 놓칩니다. 십 분이나 이십 분쯤 수업은 안 듣고 창밖 하늘만 헤아리다가 문득 깨어나면 아차 싶으면서도, 수업을 못 들은 일이 아깝지 않습니다. 수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교과서나 참고서를 나중에라도 뒤지면 외울 수 있어요. 그러나, 아침 아홉 시와 아침 열 시와 아침 열 한 시에 창밖에서 흐르는 바람소리는 바로 이때에 마음을 열어 누리지 않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몸뚱이는 시멘트감옥에 갇혔지만 마음은 늘 하늘을 날았어요. 내가 살아서 숨쉬는 목숨인 줄 느끼려면, 시험문제 하나 더 푸는 일보다 내 숨소리가 어디에 닿고 내 마음빛이 어떠한가를 살펴야 해요.


  그러나 딱히 무언가를 잘 알거나 깨우쳐서 입시 수험생이면서도 이렇게 지내지는 않았습니다. 가슴에서 무언가 답답했어요. 가슴으로 어딘가 막혔어요. 풀어야 하는데 풀 길이 없고, 풀어야 할 응어리를 풀도록 북돋우거나 이끌거나 도운 이웃이나 어른이 없어요.


  중·고등학생은 교과서와 참고서만 들여다보면서 대학바라기로 살면 되나요? 대학바라기 되어 대학교에 들어가면, 이때부터 스스로 하고픈 일을 실컷 할 수 있나요? 그렇지만 막상 대학생이 되고 보니, 어떤 일이든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잖아요? 대학생이 되니, 이때부터 취업을 생각하라며 집회나 시위 현장에는 얼씬하지도 말라고, 도서관에 가려면 토익 공부를 해야지 도서관에 꽂힌 책을 읽지는 말라고 그러잖아요?


  대학생이 된 수많은 젊은이들은 누구도 공부를 하지 않아요. 고등학생 때하고 똑같이 수험공부는 할는지 몰라도, 삶공부와 사랑공부와 꿈공부를 하지 않아요. 어느 대학교이든 소설책만 잔뜩 꽂아 놓지, 삶과 사랑과 꿈을 스스로 익히도록 돕는 책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요. 이 나라 대학교는 도서관이라기보다 도서대여점이라고 해야 할 만해요. 그러니 나는 이런 대학교에 머물 수 없어, 혼자서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몇몇 동무한테 함께 그만두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다들 ‘여태 집에서 들인 돈이 얼마인데 그만두느냐’면서, 그만두면 집에서 쫓겨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쫓겨나지 말고 집을 나오면 되지 않니’ 하고 물으니, 모두들 그저 웃기만 해요.


.. “작은 새의 노래, 들어 봐. 바람 소리, 이건 강물 소리.” ..  (6쪽)


  고흥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이나 부산으로 달릴 적에 늘 생각해요. 너덧 시간 동안 시외버스에서 버스 엔진과 바퀴와 텔레비전이 내는 소리가 울려퍼지지만, 고속도로가 가로지른 시골마을과 숲과 들과 냇가에서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요. 내 마음은 버스와 텔레비전이 아닌 창밖으로 이어져요. 저 숲에서는 어떤 목숨이 어떤 삶을 이을까 하고 생각해요. 저 들에서는 어떤 들풀이 살몃살몃 고개를 내밀까 하고 생각해요.


  도시로 마실을 나와 길을 거닐 적에도 꽉 막힌 시멘트길과 아스팔트길에서조차 어느 틈바구니 있는지 없는지 살펴요. 살그마니 고개를 내민 들풀이 있는지 눈여겨봐요. 북적거리는 시내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조그마한 들풀을 보면 쪼그려앉아 살살 쓰다듬어요. 네가 이 도시를 살리는구나, 하고 인사를 하면서 노래를 불러요. 네가 이 도시에 있는 이웃들한테 푸른 숨결 앞으로도 싱그러이 나누어 주렴, 하고 고개숙여 인사를 해요.


.. 그 아이의 주변에 새가 날고 있다. 프롤의 소리를 듣고 있는것이겠지? 나는 볼 수 없는 강아지를 꼭 껴안고 있다. 아저씨가, 조용하게 미소짓고 있다. 저녁놀을 조용히 보고 있는 것 같다. 천 개의 첼로가, 천 개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  (31쪽)


  이세 히데코 님 그림책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천개의바람,2012)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일본에서 2000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1995년에 일본 고베에서 일어난 엄청난 지진 뒤에 생긴 이야기 한 가지를 담습니다.


  일본에서는 몇 해 앞서 후쿠시마에서 아주 끔찍한 일이 있었어요. 1995년 고베뿐 아니라, 우리로서는 일제강점기라고 할 퍽 지난날에 관동대지진이 있기도 했어요. 1945년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지기도 했어요. 이때에, 일본에서 우악스럽고 바보스러운 전쟁 미치광이가 꽤 많이 죽었지요. 그런데, 이런 때에 전쟁 미치광이뿐 아니라 착하고 얌전하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느 수수한 사람도 아주 많이 죽었어요.


  전쟁은 사람을 가리지 않아요. 전쟁은 어른과 아이를 따지지 않아요. 전투기나 폭격기에서 떨어뜨리는 무시무시한 폭탄은 마을을 가리지 않아요. 이웃을 등치거나 괴롭히던 사람이든, 이웃한테서 시달림 받던 사람이든, 조용히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든, 핵폭탄도 크고작은 온갖 폭탄도 아무것도 안 가려요. 그예 모두 다 죽일 뿐입니다.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전쟁이 피어나는 소리가 아닌, 사랑이 피어나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윽박지르거나 다그치는 소리가 아닌, 쓰다듬거나 어루만지는 소리를 노래 한 가락으로 들려주고 싶습니다. 내 마음에도, 이녁 마음에도, 살몃살몃 고운 노랫소리가 피어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살금살금 맑은 봄노래가 피어날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열어요. 마음을 열었으면 웃어요. 웃었으면 노래해요. 4347.2.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treeje 2014-02-19 14:14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여러 분들의 소개로 많이 접했는데,
함께살기님의 아름다운 느낌글 읽으니, 이젠 읽어야겠습니다~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4-02-20 00:00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에 '일본판'으로 이 책을 장만했어요.
한글판과는 사뭇 다른 '그림책 빛결'이
참 곱구나 하고 느꼈어요.

곧, 일본판 사진을 올리겠습니다~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쪽빛문고 11
가코 사토시 지음, 고향옥 옮김, 김웅서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6

 


바다와 사람과 지구별
―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가코 사토시 글·그림
 고향옥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 2009.9.30.

 


  일본에서 1969년에 처음 나온 그림책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청어람미디어)는 한국에서 2009년에 번역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책을 1980년대에 해적판으로 본 일이 떠오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바닷속 모습을 어느 책인지 그림책인지 몰래 훔쳐서 썼지 싶어요. 한국에서는 1999년 12월 31일까지 세계저작권을 지키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나온 책이든 일본에서 나온 책이든 몰래 펴내곤 했습니다. 한국에서 펴낼 만하다면 그만큼 한국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면서 좋다고 할 만하겠지요. 안 좋은 책을 애써 번역해서 낼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아름다운 책을 아름다운 손길로 가다듬고 묶어서 펴내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아름다운 책을 안 아름다운 손길로 몰래 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1980년대를 살던 아이들이, 또 1970년대나 1990년대를 살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한국땅 어른들이 몰래 훔쳐서 펴낸 그림책을 모르겠습니까.


.. 얕은 바다에는 이밖에도 재미있는 생물이 많이 살고 있답니다. 그러나 얕은 바다는 언젠가 메워져 공장이 들어서거나 깊이 파여 항구가 되어 그 모습이 확 바뀌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  (7쪽)


  마흔 해만에 제대로 번역한 그림책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를 찬찬히 읽으며 생각합니다. 번역글은 매끄럽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을 읽을 사람은 바다학자 아닌 어린이입니다. 이 그림책은 과학자 아닌 어린이한테 맞추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책에 담을 낱말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야겠지요. 이를테면, “내해는 육지로 둘러싸여 있어 파도가 많이 일지 않아 조용합니다(8쪽).” 같은 글은 “안바다는 뭍으로 둘러싸여서 물결이 크게 일지 않아 조용합니다.”처럼 손질해야 올바릅니다. 어쩌면 오늘날 한국 어린이한테는 ‘뭍’보다 ‘육지’ 같은 한자말이 익숙할는지 몰라요. 어른들은 아이한테 ‘물결’이라는 한국말은 안 가르치고 ‘파도’라는 한자말만 쓸는지 모릅니다.


  생각해 볼 일이에요. 물결이든 파도이든 ‘많이’ 일지 않습니다. 크게 일거나 작게 입니다. ‘둘러싸여 있어’와 같은 글꼴은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둘러싸여’처럼 적어야 한국 말투입니다. 낱말도 낱말이지만 말투를 제대로 추스를 수 있어야 해요. “굴은 조개의 한 종류입니다(9쪽).” 같은 글을 헤아려 보셔요. “굴은 조개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나 “굴은 조개 가운데 하나입니다.”처럼 손질해야 올바릅니다.

 


.. 물고기를 더 많아지게 하거나 더 크게 자라게 하는 바다목장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도 바닷속에서 일을 하거나 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바닷속, 바다 밑바닥은 육지 위와 똑같이 자꾸자꾸 열리고 있습니다 ..  (17쪽)


  그림책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는 아이들이 바다를 가까이 마주하면서 살가이 보듬도록 이끕니다. 바닷속으로 십 미터 백 미터뿐 아니라 천 미터까지도 깊이 들어가면서 돌아보는 그림책이에요. 바닷가 모래밭이랑 갯벌부터 지구별을 두루 살피는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은 너른 눈길과 깊은 마음길을 가다듬을 만합니다.


  참 잘 빚은 그림책이라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좋은 대목을 많이 엿보면서도 꼭 한 가지에서 걸립니다.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다를 사람한테 쓸모있게 개발하자’는 쪽에서 바라봅니다. 바다 깊은 곳과 바닷가에 공장을 짓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며 온갖 기계로 파헤치는 쪽에서 바라봐요. 갯벌이 어떤 노릇을 하고, 물결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짚지 않습니다. 물과 뭍이 서로 어떻게 얽히면서, 지구별 숨결이 서로 어떻게 잇닿는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바다 자원’과 ‘바다 개발’이라는 눈높이로만 바라보기에, 기계를 많이 써서 바닷고기를 잔뜩 낚은 탓에 바닷고기 씨가 말라 ‘양식장’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얼거리를 제대로 밝히지 않습니다. ‘바다 자원을 관리’하면서 ‘현대 문명이 끝없이 치닫는 흐름’을 아주 좋거나 바람직한 쪽에서 바라봅니다.

 


.. 여러분도 바다를 조사하고 탐험해 보고, 바다를 사랑해 주세요 ..  (39쪽)


  바다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바다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어깨동무할 때에 사랑이 될까요. 바다는 어떠한 곳일까요. 뭍은 어떠한 곳일까요. 지구별은 어떠한 곳일까요. 우리 어른들은 바다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보듬을 때에 아름다울까요. 우리 아이들은 바다에서 무엇을 느끼면서 무럭무럭 자랄 적에 아름다울까요.


  바다를 왜 조사하고 탐험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바다를 조사하거나 탐험하는 사람은 바다를 어떻게 하고 싶은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바다에 끝없이 쓰레기를 버릴 뿐 아니라, 바닷속에서까지 핵폭탄 실험을 하는 과학자와 산업국가 정책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바다를 더럽히는 목숨은 오직 사람뿐입니다. 바다에서 자원을 개발하는 목숨도 오직 사람뿐입니다. 사람들은 지구별에서 바다를 어떻게 건드리는 목숨일까요? 사람들은 지구별에서 바다를 어떻게 바꾸고 싶을까요?


  바다는 사람한테 개발되고 싶을까요. 바다는 사람 손길에 길들고 싶을까요. 바다는 한낱 양식장 노릇을 하는가요. 바닷가에 공장과 발전소와 군부대를 잔뜩 만들어 놓는 정책은 바다를 제대로 알거나 사랑하거나 지키거나 돌보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을까요. 4347.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타클로스는 할머니
사노 요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5

 


선물을 하는 마음이란
― 산타클로스는 할머니
 사노 요코 글·그림
 이영미 옮김
 나무생각 펴냄, 2008.12.17.

 


  아마 어디에서나 ‘산타클로스’는 할아버지라고 일컫지 싶습니다. ‘산타 할아버지’라고만 말하지, ‘산타 할머니’라고는 말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돌이켜보니, 저 또한 《산타클로스는 할머니》(나무생각,2008)라는 그림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여느 사회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리라 싶습니다.


.. “뭔가 잘못 안 것 같은데, 나는 산타클로스를 구하고 있어요. “물론 산타클로스인 줄 알고 왔습니다.” 할머니는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  (6쪽)


  사노 요코 님은 ‘산타 할머니’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선보입니다. 하늘나라에서도 하느님은 ‘산타 = 할아버지’라는 틀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씩씩한 할머니는 왜 산타가 할아버지이기만 해야 하느냐고 따집니다. 하느님은 하늘나라에서 아뭇소리를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두 손을 모아 빌 뿐입니다. ‘산타 할머니’도 이녁한테 주어진 일을 잘 하면서 아이들한테 고운 선물 두루 나누어 주기를 바라기만 합니다.


.. “어때요, 할 만합니까?” 지붕 위에서 마주친 베테랑 산타클로스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아무래도 난 타고난 산타클로스 같아요. 난 알겠어요.” “뭘 안다는 거요?” 할머니는 대답도 없이 순록과 함께 휑하니 사라져 버렸습니다 ..  (17쪽)


  산타 할아버지들은 주어진 일을 주어진 대로 잘 해냅니다. 산타 할머니도 이녁한테 주어진 일을 주어진 대로 잘 해냅니다. 그러나, 산타 할머니는 한 가지를 알아요. 한 가지를 알기 때문에 모든 일을 주어진 대로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새 선물’ 못지않게 ‘헌 선물’도 받고 싶거든요. 산타 할머니는 이녁 손주한테 ‘헌 선물’을 주기로 해요. 아이들 마음을 읽었기 때문에, 아이가 ‘새 선물’ 못지않게 바라는 선물을, 그러니까 ‘헌 선물’을 마음으로 빌고 바란다는 뜻을, 사랑스럽고 살갑게 읽었기에 ‘하느님이 나누어 주라고 맡긴 새 선물’은 냅두고 ‘할머니가 손수 마련한 헌 선물’을 건넵니다.

 


.. “천국에서 훨씬 예쁜 새 인형을 들고 왔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내가 알아버렸는걸.” 할머니 산타클로스는 능숙한 솜씨로 망가진 인형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알아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순록이 기다리다 지쳐 혼자 하늘로 올라가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  (24쪽)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마음으로 아이 생각을 읽습니다. 아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가 어떠한가를 알아챕니다. 빙그레 말없이 웃고는 아이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는 어버이입니다. 아이 또한 어버이 사랑을 마음으로 읽으면서 알아요. 어버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이루어 준 선물을 말없이 알아채고는 빙그레 웃어요.


  사랑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옮습니다. 사랑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은 마음에서 태어나 마음에 뿌리를 내립니다.


  그림책 《산타클로스는 할머니》는 조용히 알려줍니다. ‘베테랑 산타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맡긴 일을 척척 잘 해내겠지요. 그러나 사랑은 척척 잘 해내는 솜씨로는 빛내지 못해요. 다 다른 아이들이 꾸는 다 다른 꿈을 읽을 때에 사랑이 자라요.


  온누리 들판에서 자라는 모든 꽃이 장미꽃이 되면 예쁠까 하고 생각해 보면 돼요. 이 꽃이 있고 저 꽃이 있으니 이 꽃 저 꽃 모두 예쁘면서, 장미는 장미대로 예쁩니다. 온누리 숲에서 자라는 모든 나무가 소나무가 되면 멋있을까 하고 헤아려 보면 돼요. 이 나무가 있고 저 나무가 있으니 이 나무 저 나무 모두 멋있으면서,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멋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이 흐르면서 봄내음이 천천히 퍼집니다. 이제 두 달을 기다리면 새해에 새로운 제비떼 찾아들어 우리 집 처마 밑에서도 새롭게 새끼를 까고는 날마다 새로운 노래를 들려주겠지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다립니다.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알라 코코 아기 코알라 코코 시리즈 1
페라 드 바커르 지음, 이은석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3

 


주고받으면서 즐거운 사랑
― 코알라 코코
 페라 드 바커르 글·그림
 이은석 옮김
 문학동네 펴냄, 1999.7.10.

 


  아이들은 따스한 어버이 품을 좋아합니다. 졸릴 적에도 안아 주기를 바라고, 힘들 적에도 안아 주기를 바랍니다. 노래하거나 책을 읽을 적에도 안고 함께 노래하거나 책을 읽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품에 안겨 따스하고 즐겁습니다. 어버이도 아이를 안으며 따스하고 즐겁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이를 안고 서로 따스하며 즐겁습니다. 더운 여름날에도 아이를 안고 살살 부채질을 하면서 함께 땀을 식힙니다. 안기는 아이 못지않게 안는 어버이가 따스하면서 즐겁습니다. 안기려는 아이는 안는 어버이한테 따스하면서 즐거운 마음을 베풀어 줍니다.


.. 코코는 꼭 껴안아 주고 싶은 코알라예요. 코코도 엄마에게 꼬옥 안기고 싶어해요. 하루 종일 말이에요. 하지만 그러면 안 돼요. 엄마는 바쁘거든요 ..  (3쪽)

 


  사랑받으면서 즐겁습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할 적에 즐겁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면서 즐겁습니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즐겁습니다. 사랑받는 이는 사랑받아 즐겁고, 사랑하는 이는 누군가를 사랑해서 즐겁습니다.


  선물을 받으면서 기뻐요. 누군가한테서 선물을 받으며 기뻐요. 그리고, 선물을 하면서 기쁩니다. 누군가한테 선물을 하면서 기쁩니다. 받을 때 못지않게 줄 적에 기쁩니다.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면서 서로 기쁩니다.


  삶이란 주고받음이라고 할까요. 가는 말이 고우면서 오는 말이 곱듯, 콩을 심은 곳에 콩이 나듯, 사랑이 따사롭게 흐르고 아름다운 꿈이 넉넉하게 흐릅니다. 고운 이야기가 새록새록 자라고, 예쁜 웃음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 “아이, 나도 할 수 있어.” 코코는 개구리를 따라 펄쩍 뛰었어요. 하지만 코코는 개구리보다 훨씬 무겁잖아요. 연꽃 이파리를 밟자마자 ..  (17쪽)


  페라 드 바커르 님 그림책 《코알라 코코》(문학동네,1999)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새끼 코알라는 어미 코알라한테 찰싹 달라붙으면서 지냅니다. 어미 코알라는 새끼 코알라를 꼬옥 안으면서 지냅니다. 그런데, 그림책에서는 어미 코알라가 ‘다른 할 일이 있어 바쁘다’고 나옵니다. 어미 코알라가 새끼 코알라를 안아 줄 수 없는 때가 있다고 나와요. 아무래도, 사람살이에 빗대느라 이렇게 그렸구나 싶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어버이들은 바깥일을 많이 하니, 바깥일을 하느라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지 못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코알라한테 빗대어 들려주려는구나 싶습니다.

 


.. “근데 코알라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코코는 시무룩하게 말했어요. 그러자 엄마가 코코를 끌어안았어요. “우리가 잘하는 게 뭔지 아니? 바로 꼬옥 껴안는 거야.”  ..  (25쪽)


  예부터 어느 겨레에서나 어버이는 아기를 등에 업고 집일도 하고 바깥일도 했습니다. 아기를 포대기로 업고는 절구를 찧고 베틀을 밟았습니다. 할 일이 많더라도 어버이가 아기를 떼놓고 다니는 일이 없었습니다. 할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늘 아기를 돌보거나 건사하면서 일을 했어요.


  곰곰이 헤아려 보니,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른들이 하는 일은 ‘아기나 아이를 곁에 두고 할 수 없’습니다. 교사로 일하는 어른이 아기나 아이를 교실에 함께 두고서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해요. 회사원으로 일하는 어른이 아기나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회사일을 하지 못해요.


  아기나 아이는 어버이하고 억지로 떨어진 채 지내도록 하는 오늘날 사회입니다. 아기나 아이가 어버이 사랑과 따스한 품을 누리지 못하도록 떨어뜨리고는 ‘복지’와 ‘교육’을 한다고 내세우는 오늘날 문명이요 문화입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누려야 할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받아야 하나요. 아이들은 사랑 아닌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없도록 하는 얼거리라면, 이러한 얼거리는 우리한테 얼마나 아름답거나 즐거울까요.


  사람도 코알라도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도 코알라도 어버이가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림을 가꿉니다. 사람도 코알라도 어버이와 아이가 서로 안고 보듬으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주고받으면서 즐거운 사랑을 꽃피울 때에 삶이 환하게 빛납니다. 4347.2.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4-02-12 22:32   좋아요 0 | URL
"아기나 아이는 어버이하고 억지로 떨어진 채 지내도록 하는 오늘날 사회입니다. 아기나 아이가 어버이 사랑과 따스한 품을 누리지 못하도록 떨어뜨리고는 ‘복지’와 ‘교육’을 한다고 내세우는 오늘날 문명이요 문화입니다"


맞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 가장 소중한 것이 내 팽개쳐지는 일. ~~

그래서 슬픕니다.


숲노래 2014-02-12 23:54   좋아요 0 | URL
모두들, 무엇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를 헤아릴 수 있다면...
육아복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깨달으리라 느껴요.

나라에서 유치원 보육비를 줄 노릇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조금 더 느긋하고 평화로우면서
즐겁게 삶을 일구어야 하지 않으랴 싶어요.

하양물감 2014-02-13 08:31   좋아요 0 | URL
생각하게 하네요.
제가 읽었다면, 아마도 아이에게 혼자 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을텐데...
다른 시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아이가 학교에서 나오면 제 직장으로 데려와 함께 있다가 퇴근합니다.
그것이 가능한 공간이라는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게 여겨집니다.

숲노래 2014-02-13 11:28   좋아요 0 | URL
오, 아주 좋겠네요.
그렇게 아이가 어머니 아버지 곁에서 함께 하루 일을 마무리하면서
움직일 수 있는 일이란, 학교에서보다 훨씬 크고 넓은
무언가를 배우도록 한다고 느껴요.

아이도 어른도 언제나 '혼자'이면서
서로를 아끼고 살아가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굳이 떼어놓지 않아도
스스로 '혼자' 살 길을 찾는구나 싶기도 하고요.
 
나무꾼과 늑대 내 친구는 그림책
야마구치 도모코 지음, 조은란 옮김, 호리우치 세이이치 그림 / 한림출판사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3

 


외딴 숲속에서 살아가려면
― 나무꾼과 늑대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야마구치 도모코 글
 주은란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7.2.15.

 


  북녘은 어떠할는지 모르지만, 남녘에서는 깊은 두멧자락에서 살아도 멧짐승이 덮칠까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이제 남녘에서는 사람을 다치게 할 만한 멧짐승이 없습니다. 범도 곰도 없으며, 늑대도 이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 헤아려 보면, 범이나 잡아먹을 짐승이 거의 없다 할 만하고, 늑대나 이리가 잡아먹을 짐승 또한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러면, 먼먼 옛날 시골에서 살던 옛사람은 두멧자락 삶이 두려웠을까요? 깊은 두멧자락에 외따로 떨어져 살던 옛사람은 범이나 곰이나 늑대나 이리를 두렵게 여기면서 살았을까요?


.. 집 안은 온통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나무꾼은 서둘러 문을 열었습니다. 바로 그때, 늑대 한 마리가 찾아와 ..  (4쪽)

 


  옛사람이 살던 집은 오늘날처럼 샤시문이 없습니다. 옛사람이 살던 집은 오늘날처럼 벽돌담이나 쇠대문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돌로 쌓은 울이 있습니다. 기와집이면 모르되, 흙과 풀로 지은 집에는 따로 대문이 없습니다. 울바자라든지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을 뿐입니다. 탱자나무 울타리조차 없이 싸리울이 있기도 하고, 싸리울조차 없기도 합니다. 그러면, 방과 마루를 드나드는 문은? 창호종이 한 장 얇게 바른 문입니다. 문고리로 닫는다 하지만, 사람이나 큰 짐승이 쿵쿵 때리면 부서지는 나무문입니다. 게다가 벽이란 흙으로 바른 벽이니, 벽을 쿵쿵 쳐도 흙이 우수수 무너지겠지요.


  더 헤아려 보면, 여느 시골마을 옛사람 살던 흙집에는 구렁이가 함께 살아갑니다. 지붕을 짚으로 이으니, 서까래에 구렁이라든지 뱀이 살아갑니다. 서까래에서 살아가는 구렁이가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집을 덮친다는 이야기는 어느 마을에서나 흔해요.


  그러니까, 옛사람 시골집은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쳐들어오려면 쉬 쳐들어오는 집이요, 부수려면 손쉽게 부술 만한 집입니다.


.. 갑자기 나무꾼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무꾼은 소리쳤습니다. “가트리느, 이 녀석에게 수프를 듬뿍 끼얹어요!” ..  (11쪽)

 


  요즈음 시골집도 뒷간은 으레 바깥에 있습니다. 집 안쪽에 뒷간이 있는 시골집은 없습니다. 서양집처럼 새로 짓거나 나중에 칸을 늘려 수세식 변기를 놓으면 집안에도 뒷간이 있는 셈이지만, 예나 이제나 시골집은 집 바깥에 뒷간이 있습니다. 게다가 집하고 제법 떨어진 자리에 뒷간을 둡니다.


  캄캄한 밤에 똥이 마려우면 집에서 나와 뒷간으로 가야겠지요. 울 하나 제대로 없는 집에서 등불 또한 하나 없는데 찾아가는 뒷간이란! 밤하늘 별이 와락 쏟아지는 밤마실 될 테지요. 다만, 아이들은 밤에 뒷간 가는 길이 무섭겠구나 싶어요. 뒷간이라 하더라도 거적을 덮었을 뿐이니, 밤에 뒷간에서 볼일을 보다가 범이나 늑대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하고 벌벌 떨 만해요.


  그래도 옛사람은 옛사람대로 호젓하고 깊은 두멧시골에서 잘 살았습니다. 종이 한 장으로 바른 문이니 겨울이면 방에서도 자리끼가 꽁꽁 얼었을 텐데, 겨울 추위를 그럭저럭 났어요. 겨울에도 기저귀를 빨고, 겨울에도 밥을 지으며, 겨울에도 아이들은 손과 코가 발개지도록 바깥에서 뛰놀며 자랐습니다.


  숲에 범이 있더라도 숲에서 놉니다. 늑대나 여우가 나타나더라도 거리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디를 가도 숲인데 숲에 범이나 늑대가 있대서 무섭게만 여기면, 살아갈 수 없어요. 논과 밭에서 어떻게 일하겠어요. 나무를 어떻게 하겠어요. 풀을 어떻게 뜯겠어요. 방아를 찧고 절구를 찧으며 멧돌을 돌려야 하는데, 바깥에서 하는 일이 무섭기만 하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큰 짐승한테 잡아먹히는 토끼도 숲에서 범과 늑대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노루도 사슴도 숲에서 범이랑 늑대랑 함께 살아가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커다란 짐승이 있다면 작은 짐승도 함께 살고, 사람을 잡아먹을 만한 짐승이 있어도 어른과 아이는 씩씩하게 숲살림을 꾸립니다.

 


.. 나뭇꾼이 숲 속에서 나무를 자르고 있는데, 화상을 입어 머리가 벗겨진 늑대가 15마리 정도나 되는 늑대 무리를 데리고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  (16쪽)


  야마구치 도모코 님 글하고 호리우치 세이치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나무꾼과 늑대》(한림출판사,200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이 쓴 이야기를 읽으면, 예전에 프랑스 파리라는 곳에 늑대가 몹시 많았다고 합니다. 파리사람은 늑대가 무서워 도시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기도 한 적이 있다고 해요. 그러면, 프랑스에서 도시 아닌 시골에서 살던 사람은 집 바깥으로 나가기가 더욱 두려웠겠지요. 시골사람은 흙을 일구며 살아야 하니 들과 숲에서 일해야 하거든요. 그림책 《나무꾼과 늑대》를 읽는 내내 옛날 유럽사람 삶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사람들 삶을, 사랑하는 짝꿍과 단출하게 시골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삶을, 푸른 바람을 마시고 맑은 냇물을 먹으면서 살아가던 사람들 삶을 가만히 그립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그러니까 프랑스 옛이야기에 나오는 ‘숲속 나무꾼’과 ‘숲속 각시’는 늑대를 무서워 했을까요? 이네들 살던 숲에도 범이 있었을까요? 이네들은 왜 문을 벌컥 열어 놓고 밥(스프)을 끓였을까요?


  이야기를 곰곰이 살피면, 집안에 늑대가 들어왔어도 딱히 놀라지 않습니다. 덜덜 떨지 않습니다. 이 녀석을 어떻게 내쫓나 하고 차분하게 생각합니다. 나무꾼은 숲속에서 홀로 나무를 베다가 열다섯 마리나 되는 늑대떼를 만납니다. 이때에도 나무꾼은 덜덜 떨지 않습니다. 얼른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숨은 뒤 차분하게 생각합니다. 이 아슬아슬한 고비에서 벗어날 길을 슬기롭게 찾습니다.


  늑대가 집 둘레에서 어정거린대서 바깥일을 안 하지 않습니다. 늑대가 있건 말건 봄에는 숲딸기를 따러 다니겠지요. 늑대가 보건 말건 냇물에서 빨래를 하겠지요. 늑대가 다니건 말건 버섯을 따고 나물을 뜯겠지요.


  외딴 숲속에서 살아가는 마음이란, 숲과 내가 하나라고 여기는 마음이리라 느낍니다. 외딴 숲속에서 살아가는 사랑이란, 숲과 나를 함께 아끼는 사랑이리라 느낍니다. 나무꾼과 각시는 늑대가 다시는 얼씬도 못하도록 혼찌검을 냅니다. 도란도란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오순도순 예쁘게 살아가요.


  먼먼 옛날부터 시골이 시골로 이어지던 삶이었을 테니, 프랑스에서는 “나무꾼과 늑대” 이야기를 빌어, 씩씩하고 즐겁게 꾸리는 살림살이를 넌지시 알려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숲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숲을 아끼고 사랑하라고, 숲과 내가 늘 한몸인 줄 느끼라고, 숲에서 만나는 모두를 이웃과 동무로 삼으라고, 늘 차분하면서 슬기롭게 살아가라고 하는 넋을 아기자기하게 엮어서 들려주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나저나, 이 그림책 번역 가운데 “나무를 자르고 있는데(16쪽)” 같은 말마디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무꾼은 나무를 도끼로 ‘벱’니다. 그림책에도 도끼가 나옵니다. 나무를 벤다고 해야지요. 장작을 팬다고 해야지요. 어떻게 나무를 ‘자를’ 수 있을까요. 늑대가 “화상을 입어 머리가 벗겨(16쪽)”졌다고도 나옵니다만, 아이들 그림책에 쓰는 말씨를 돌아본다면, “뜨거운 국에 데어 머리가 벗겨”졌다고 손질해야 올바르지 싶어요. 우리 말을 찬찬히 잘 살피면 훨씬 멋스러운 그림책입니다. 4347.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