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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과 늑대 ㅣ 내 친구는 그림책
야마구치 도모코 지음, 조은란 옮김, 호리우치 세이이치 그림 / 한림출판사 / 2007년 2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3
외딴 숲속에서 살아가려면
― 나무꾼과 늑대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야마구치 도모코 글
주은란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7.2.15.
북녘은 어떠할는지 모르지만, 남녘에서는 깊은 두멧자락에서 살아도 멧짐승이 덮칠까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이제 남녘에서는 사람을 다치게 할 만한 멧짐승이 없습니다. 범도 곰도 없으며, 늑대도 이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 헤아려 보면, 범이나 잡아먹을 짐승이 거의 없다 할 만하고, 늑대나 이리가 잡아먹을 짐승 또한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러면, 먼먼 옛날 시골에서 살던 옛사람은 두멧자락 삶이 두려웠을까요? 깊은 두멧자락에 외따로 떨어져 살던 옛사람은 범이나 곰이나 늑대나 이리를 두렵게 여기면서 살았을까요?
.. 집 안은 온통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나무꾼은 서둘러 문을 열었습니다. 바로 그때, 늑대 한 마리가 찾아와 .. (4쪽)
옛사람이 살던 집은 오늘날처럼 샤시문이 없습니다. 옛사람이 살던 집은 오늘날처럼 벽돌담이나 쇠대문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돌로 쌓은 울이 있습니다. 기와집이면 모르되, 흙과 풀로 지은 집에는 따로 대문이 없습니다. 울바자라든지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을 뿐입니다. 탱자나무 울타리조차 없이 싸리울이 있기도 하고, 싸리울조차 없기도 합니다. 그러면, 방과 마루를 드나드는 문은? 창호종이 한 장 얇게 바른 문입니다. 문고리로 닫는다 하지만, 사람이나 큰 짐승이 쿵쿵 때리면 부서지는 나무문입니다. 게다가 벽이란 흙으로 바른 벽이니, 벽을 쿵쿵 쳐도 흙이 우수수 무너지겠지요.
더 헤아려 보면, 여느 시골마을 옛사람 살던 흙집에는 구렁이가 함께 살아갑니다. 지붕을 짚으로 이으니, 서까래에 구렁이라든지 뱀이 살아갑니다. 서까래에서 살아가는 구렁이가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집을 덮친다는 이야기는 어느 마을에서나 흔해요.
그러니까, 옛사람 시골집은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쳐들어오려면 쉬 쳐들어오는 집이요, 부수려면 손쉽게 부술 만한 집입니다.
.. 갑자기 나무꾼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무꾼은 소리쳤습니다. “가트리느, 이 녀석에게 수프를 듬뿍 끼얹어요!” .. (11쪽)
요즈음 시골집도 뒷간은 으레 바깥에 있습니다. 집 안쪽에 뒷간이 있는 시골집은 없습니다. 서양집처럼 새로 짓거나 나중에 칸을 늘려 수세식 변기를 놓으면 집안에도 뒷간이 있는 셈이지만, 예나 이제나 시골집은 집 바깥에 뒷간이 있습니다. 게다가 집하고 제법 떨어진 자리에 뒷간을 둡니다.
캄캄한 밤에 똥이 마려우면 집에서 나와 뒷간으로 가야겠지요. 울 하나 제대로 없는 집에서 등불 또한 하나 없는데 찾아가는 뒷간이란! 밤하늘 별이 와락 쏟아지는 밤마실 될 테지요. 다만, 아이들은 밤에 뒷간 가는 길이 무섭겠구나 싶어요. 뒷간이라 하더라도 거적을 덮었을 뿐이니, 밤에 뒷간에서 볼일을 보다가 범이나 늑대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하고 벌벌 떨 만해요.
그래도 옛사람은 옛사람대로 호젓하고 깊은 두멧시골에서 잘 살았습니다. 종이 한 장으로 바른 문이니 겨울이면 방에서도 자리끼가 꽁꽁 얼었을 텐데, 겨울 추위를 그럭저럭 났어요. 겨울에도 기저귀를 빨고, 겨울에도 밥을 지으며, 겨울에도 아이들은 손과 코가 발개지도록 바깥에서 뛰놀며 자랐습니다.
숲에 범이 있더라도 숲에서 놉니다. 늑대나 여우가 나타나더라도 거리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디를 가도 숲인데 숲에 범이나 늑대가 있대서 무섭게만 여기면, 살아갈 수 없어요. 논과 밭에서 어떻게 일하겠어요. 나무를 어떻게 하겠어요. 풀을 어떻게 뜯겠어요. 방아를 찧고 절구를 찧으며 멧돌을 돌려야 하는데, 바깥에서 하는 일이 무섭기만 하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큰 짐승한테 잡아먹히는 토끼도 숲에서 범과 늑대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노루도 사슴도 숲에서 범이랑 늑대랑 함께 살아가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커다란 짐승이 있다면 작은 짐승도 함께 살고, 사람을 잡아먹을 만한 짐승이 있어도 어른과 아이는 씩씩하게 숲살림을 꾸립니다.
.. 나뭇꾼이 숲 속에서 나무를 자르고 있는데, 화상을 입어 머리가 벗겨진 늑대가 15마리 정도나 되는 늑대 무리를 데리고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 (16쪽)
야마구치 도모코 님 글하고 호리우치 세이치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나무꾼과 늑대》(한림출판사,200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이 쓴 이야기를 읽으면, 예전에 프랑스 파리라는 곳에 늑대가 몹시 많았다고 합니다. 파리사람은 늑대가 무서워 도시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기도 한 적이 있다고 해요. 그러면, 프랑스에서 도시 아닌 시골에서 살던 사람은 집 바깥으로 나가기가 더욱 두려웠겠지요. 시골사람은 흙을 일구며 살아야 하니 들과 숲에서 일해야 하거든요. 그림책 《나무꾼과 늑대》를 읽는 내내 옛날 유럽사람 삶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사람들 삶을, 사랑하는 짝꿍과 단출하게 시골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삶을, 푸른 바람을 마시고 맑은 냇물을 먹으면서 살아가던 사람들 삶을 가만히 그립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그러니까 프랑스 옛이야기에 나오는 ‘숲속 나무꾼’과 ‘숲속 각시’는 늑대를 무서워 했을까요? 이네들 살던 숲에도 범이 있었을까요? 이네들은 왜 문을 벌컥 열어 놓고 밥(스프)을 끓였을까요?
이야기를 곰곰이 살피면, 집안에 늑대가 들어왔어도 딱히 놀라지 않습니다. 덜덜 떨지 않습니다. 이 녀석을 어떻게 내쫓나 하고 차분하게 생각합니다. 나무꾼은 숲속에서 홀로 나무를 베다가 열다섯 마리나 되는 늑대떼를 만납니다. 이때에도 나무꾼은 덜덜 떨지 않습니다. 얼른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숨은 뒤 차분하게 생각합니다. 이 아슬아슬한 고비에서 벗어날 길을 슬기롭게 찾습니다.
늑대가 집 둘레에서 어정거린대서 바깥일을 안 하지 않습니다. 늑대가 있건 말건 봄에는 숲딸기를 따러 다니겠지요. 늑대가 보건 말건 냇물에서 빨래를 하겠지요. 늑대가 다니건 말건 버섯을 따고 나물을 뜯겠지요.
외딴 숲속에서 살아가는 마음이란, 숲과 내가 하나라고 여기는 마음이리라 느낍니다. 외딴 숲속에서 살아가는 사랑이란, 숲과 나를 함께 아끼는 사랑이리라 느낍니다. 나무꾼과 각시는 늑대가 다시는 얼씬도 못하도록 혼찌검을 냅니다. 도란도란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오순도순 예쁘게 살아가요.
먼먼 옛날부터 시골이 시골로 이어지던 삶이었을 테니, 프랑스에서는 “나무꾼과 늑대” 이야기를 빌어, 씩씩하고 즐겁게 꾸리는 살림살이를 넌지시 알려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숲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숲을 아끼고 사랑하라고, 숲과 내가 늘 한몸인 줄 느끼라고, 숲에서 만나는 모두를 이웃과 동무로 삼으라고, 늘 차분하면서 슬기롭게 살아가라고 하는 넋을 아기자기하게 엮어서 들려주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나저나, 이 그림책 번역 가운데 “나무를 자르고 있는데(16쪽)” 같은 말마디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무꾼은 나무를 도끼로 ‘벱’니다. 그림책에도 도끼가 나옵니다. 나무를 벤다고 해야지요. 장작을 팬다고 해야지요. 어떻게 나무를 ‘자를’ 수 있을까요. 늑대가 “화상을 입어 머리가 벗겨(16쪽)”졌다고도 나옵니다만, 아이들 그림책에 쓰는 말씨를 돌아본다면, “뜨거운 국에 데어 머리가 벗겨”졌다고 손질해야 올바르지 싶어요. 우리 말을 찬찬히 잘 살피면 훨씬 멋스러운 그림책입니다. 4347.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