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
박재철 글.그림 / 길벗어린이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0

 


겨울 끝자락 2월에 먹는 봄풀
―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
 박재철 글·그림
 천둥거인 펴냄, 2006.8.2.

 


  설 언저리에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는 전남 고흥 우리 시골집에는 드디어 봄풀이 돋습니다. 봄풀은 진작 돋기는 했지만, 이제 오늘부터 밥상에 올릴 만큼 제법 돋습니다. 아침으로 먹을 밥과 국을 모두 끓이고 나서 빈 그릇을 들고 마당으로 나와서 갈퀴덩굴 어린 줄기를 뜯습니다.


  보름쯤 앞서 올망졸망 조그마한 싹이 돋은 갈퀴덩굴을 바라보면서 ‘기운 내렴. 올해에도 즐거우면서 고맙고 맛나게 먹을게.’ 하고 인사했습니다. 뵥뵥 가볍게 뜯은 갈퀴덩굴을 그릇에 담습니다. 한 끼니 먹을 만큼 뜯습니다. 냄새를 맡고 물로 가볍게 헹굽니다. 아이들 먹이고 나도 먹습니다. 큰아이가 묻습니다. “이 풀 뭐야?” “갈퀴덩굴.” “먹어도 돼?” “먹는 풀이니까 밥상에 올렸지.”


  갈퀴덩굴이 돋으며 텃밭 흙이 해마다 천천히 살아납니다. 갈퀴덩굴이 자라며 우리 집에 뱀이 얼씬거리지 않습니다. 갈퀴덩굴을 뜯어서 먹으며 싱그러운 봄내음 듬뿍 누립니다. 갈퀴덩굴이 숙숙 줄기를 올리면, 다른 봄풀도 찬찬히 오르면서 우리 집 밥상은 갖가지 풀빛이 어우러집니다.


.. 여름에는 풀이 정말 빨리 자라나 봐. 며칠 전에 풀을 뽑았는데 우리 밭은 다시 풀밭이 되었어. 그런데 그냥 풀밭이 아닌걸. 여기저기 꽃들이 피어 있어 ..  (8쪽)

 

 

 


  2월 3일부터 올해 ‘집풀’을 처음 뜯습니다. 지난해 12월 끝무렵까지 우리 ‘집풀’을 실컷 고맙게 얻었습니다. 겨울 한복판인 12월 끝무렵과 1월 한 달을 빼고는 집 안팎에서 돋는 풀을 누리면서 풀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집 옆밭과 뒷밭과 뒤꼍에 나무들 우람하게 자라면, 나무 사이로 자라는 풀을 겨울 한복판에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가 이 집에 들어오기 앞서 살던 분들이 이 밭 저 땅에 쓰레기를 워낙 많이 파묻었고 농약과 비료를 많이 쓰신 탓에, 흙을 살리자면 여러 해 걸려요. 그래도 한 해 가운데 열 달 남짓 집풀을 뜯어서 먹을 수 있으니 즐겁습니다. 상추나 배추나 시금치 같은 풀은 아니지만, 갈퀴덩굴부터 까마중알과 까마중잎까지, 2월부터 12월까지 누리는 풀은 한결같이 싱그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밭에 씨앗을 뿌려야 얻는 풀이 아닙니다. 배추씨나 무씨나 당근씨는 따로 뿌리거나 심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민들레나 고들빼기나 씀바귀나 냉이나 비름나물이나 소리쟁이나 미나리나 쑥이나 정구지나 살갈퀴나 돌나물이나 괭이밥이나 토끼풀이나 갓풀이나 유채풀이나 꽃다지나 꽃마리나 코딱지나물이나 별꽃나물이나 봄까지꽃풀 들은 씨앗을 하나도 안 뿌립니다. 이 풀 저 풀 모두 스스로 씨앗을 드리우고 스스로 줄기를 올려요.


  아주까리도 방동사니도 보리뺑이도 지칭개도 박주가리도 저마다 곱게 드리우면서 살며시 고개를 내밉니다. 까마중 씨앗을 뿌려야 까마중이 자라지 않아요. 이 풀 저 풀 서로서로 얼크러지면서 예쁘게 돋습니다. 갯기름나물도 후박나무 곁에서 고운 잎사귀 내밀고, 젓가락나물이며 도깨비바늘이며 이쁘장하게 새잎 내놓습니다.


.. 아빠와 난 우리 밭에서 딴 깻잎, 상추, 오이, 배추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어. 난 밥보다 삶은 감자와 옥수수가 맛있었어 ..  (30쪽)

 

 

 

 


  박재철 님이 이녁 딸아이와 누린 한 해 들놀이 이야기를 갈무리한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천둥거인,2006)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봄이’는 봄부터 여름과 가을을 누리고는 겨울을 즐깁니다. 들에서 들풀과 들꽃을 만납니다. 풀밭에서 풀벌레하고 사귑니다. 딱정벌레를 만지고 거미를 지켜봅니다. 가랑잎을 만지고 나뭇잎 스치는 바람노래를 듣습니다.


  봄이는 들에서 들빛을 마십니다. 봄이네 아버지인 박재철 님은 아이와 함께 아이 눈높이로 들빛을 지켜보면서 들숨과 들넋을 그림 하나로 옮깁니다.


.. 아침마다 어김없이 찾아와서 잠을 깨우는 새가 있어. 삐익 삐익 삑 시끄러운 소리로 울어대는 직박구리 한 쌍이야 ..  (52쪽)


  아이가 먹는 들밥은 어른이 함께 먹는 들밥입니다. 아이가 마시는 들숨은 어른이 함께 마시는 들숨입니다. 아이가 누리는 들놀이는 어른이 함께 누리는 들놀이입니다.


  어른이 자가용을 몰면 아이도 커서 자가용을 몰고 싶습니다. 어른이 흙을 만지면서 웃으면 아이도 언제나 흙을 만지면서 웃고 싶습니다. 어른이 나무 한 그루를 포근히 안으면서 소근소근 사랑어린 말을 속삭이면, 아이도 언제나 나무 한 그루를 따사로이 안으면서 속닥속삭 살가운 말을 속삭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는 ‘교과서 진도’하고 다릅니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학습 효과가 나지 않습니다. 이 책을 곁에 두면서 학습 능력을 높인다든지 환경사랑하고 이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들빛은 교육이나 학습이나 문화가 아니거든요. 들풀과 들꽃은 환경보호가 아닙니다. 우리 목숨이요 우리 숨결이며 우리 지구별입니다.


  환경을 지키거나 보호하려는 뜻에서 읽는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목숨이요 숨결인지 돌아보면서, 우리가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을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찾으면 좋을까 하는 이야기를 찾도록 돕는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입니다.

 

 

 


.. 밭두렁에서 아주머니 둘이서 뭔가 열심히 찾고 있었어. 뭘 하고 있는 걸까? 아주머니들은 질경이를 뜯고 있었어. “아줌마, 질경이는 뜯어서 뭐 해요?” “호호! 소금물에 데쳐서 기름에 볶아 먹으면 맛이 좋단다.” ..  (76쪽)


  들에서 자라는 들유채를 뜯으면 들맛과 유채맛이 섞인 들유채맛을 누립니다. 비닐집에서 비료와 농약을 주어 돌본 시금치를 사다 먹으면 비닐맛과 비료맛과 농약맛이 어우러진 영양소를 먹겠지요.


  숲에서 큰숨 들이켜면 숲바람을 마십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목숨이 어우러진 숲노래를 함께 마십니다. 숲빛을 먹고 숲꿈을 안습니다. 숲풀을 만지고 숲꽃을 바라봅니다.


  살아가는 즐거움을 들마실을 하면서 천천히 느낍니다. 사랑하는 기쁨을 들놀이를 누리면서 찬찬히 깨닫습니다. 삶과 사랑이 어우러지는 빛을 들꽃 한 송이 톡 따서 귓등에 꽂으면서 빙그레 짓는 웃음으로 알아차립니다. 4347.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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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2-04 08:47   좋아요 0 | URL
"우리가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을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찾으면 좋을까 하는 이야기를 찾도록 돕는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입니다."
- 학생들이 여러 과목을 공부하고 있지만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죠.
이건 어른들에게도 중요한 것이고요. ^^

숲노래 2014-02-04 08:56   좋아요 0 | URL
그러나 정작 학교에서는 하나도 안 가르쳐요.
시골에서조차
모내기와 가을걷이 때에 방학을 안 하거든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까지,
그리고 초등학교 낮은학년일 때까지,
딱 이맘때까지만 겨우 이러한 책을 읽히고 그치니..
여러모로 아쉬워요..
 
색동저고리 파랑새 그림책 84
이승은.허헌선 글.인형 / 파랑새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1


 

사랑받는 아이들
― 색동저고리
 이승은·허헌선 글·인형
 김준아 사진
 파랑새 펴냄, 2010.3.30.


 

  일곱 살 큰아이가 입는 바지 가운데 한 벌은 무릎에 구멍이 있습니다. 설날을 맞이해 찾아간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큰아이가 좋아하는 옷을 입혔는데, 그만 무릎에 구멍이 있는 줄 살피지 못했습니다. 아니, 여느 때에 이 바지 무릎에 난 구멍을 기우지 못했습니다. 빨래를 할 적마다 기워야지 생각하다가 잊고 지나갔습니다. 큰아이가 구멍난 옷을 입고 뛰놀 적마다, 갈아입혀 빨래를 하고 나서 기워야지 생각하다가 또 잊고 지나갔습니다.


  할머니는 큰아이 무릎을 보고는 “자, 꼬매자.” 하고 말씀하고는 그 자리에서 척 기워 줍니다. 그래, 맞아, 이렇게 해야지, 하고 깨닫습니다. 꼭 깨끗이 빨고 나서 기워야 하지 않아요. 다른 옷으로 갈아입힌 뒤에 기워야 하지 않아요. 빨고 나서 기우자고 생각하니 자꾸 잊습니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힌 뒤에 기우자 여기니 늘 지나쳐요. 처음 보았을 때 기우고, 처음 깨달았을 때에 바로 손을 쓸 노릇이에요.


  큰아이는 할머니가 무릎을 기워 준 옷을 다시 입고는 빙그레 웃습니다. “할머니가 꼬매 주셨다!” 하면서 좋아합니다. 앞으로 두고두고 자랑하며 다니겠다고 느낍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한 살 적이나 두 살 적 겪은 일도 곧잘 떠올리면서 “예전에 그랬다구.” 하고 말하니, 앞으로 무척 오랫동안 오늘 일을 되새기겠다고 느낍니다.


.. 돌이네 집은 몹시 가난했어. 엄마는 삯바느질과 빨래 일감을 손에서 놓을 새가 없었지. 그래도 함께 있을 때는 도란도란 웃음이 끊이지 않았어 ..  (2쪽)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쁘거나 많아 우리 아이 바지 구멍 하나 못 기웠는가 하고 생각하다가, 그동안 큰아이 바지 구멍을 못 기웠기에 할머니 손길을 받을 수 있다고 달리 생각합니다. 빈틈이 너무 많은 나머지, 빈틈이라기보다 아예 구멍과 같은 살림꾸리기라 할 텐데, 빈틈도 있고 구멍도 있으니, 곁에서 고운 님들이 따사로운 손길을 베풀어 줍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뿐 아니라 이웃들 손길도 받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길도 받습니다. 이 사람이 내밀고 저 사람이 건네는 고운 손길을 듬뿍 받습니다.


  우리 식구한테는 자가용이 없습니다. 자가용이 없으니 아버지가 이끄는 자전거에 두 아이가 타고 함께 마실을 가거나,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닙니다. 자가용이 없는 만큼, 자가용이 있는 이웃이 가끔 태워 주곤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자동차를 탈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한 달에 두 번쯤, 때로는 한 번쯤 자동차를 탑니다. 두 아이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에만 나가더라도 “와, 차 탄다!” 하면서 좋아합니다. 시골집에서 거의 날마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바람이 불건 되게 춥거나 덥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 누빌 수 있으니 즐겁습니다.


.. 돌이와 분이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지만 꾹 참고 집으로 돌아왔어. “와! 오빠 잘 만든다!” 돌이는 분이에게 멋진 가오리연을 만들어 주었어 ..  (11쪽)

 

 

  가만히 돌이켜봅니다. 우리 식구한테는 자가용도 없지만, 아기수레도 없습니다. 아기수레 없이 두 아이를 안고 업으며 다녔습니다. 두 아이가 아직 똥오줌 못 가리던 때에는 천기저귀와 옷가지를 가방 가득 챙겨 짊어지면서 다녔습니다. 전철에서도 오줌기저귀뿐 아니라 똥기저귀를 갈았습니다. 시외버스와 기차에서는 으레 기저귀갈이를 했습니다. 시외버스에서 비닐봉지에 똥받이를 한 적이 있고, 오줌받이도 한 적이 있습니다. 전라남도 고흥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어디를 가든 먼길이기에, 시외버스에서 볼일을 봐주어야 할 때가 있어요.


  한여름에 아이들 기저귀와 옷을 가득 담은 가방을 메고 아이를 품에 안고 걷자면 몹시 덥고 고단합니다. 그러나, 덥고 고단할 뿐 싫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따사로운 숨결을 품에 안았고, 즐거운 짐을 등에 짊어졌어요. 어버이 품에 안긴 아이는 걱정없이 마실을 다닙니다. 어버이 품에 안기며 자라는 아이는 어느새 두 다리로 서고 걸으면서 어버이 품을 벗어납니다. 이러다가도 “안아 줘.” 하며 두 팔을 벌립니다.


  함께 바람을 쐬며 걷습니다. 함께 햇볕을 먹으며 걷습니다. 함께 풀내음을 맡고, 함께 나무빛을 바라보며, 함께 꽃내음과 꽃빛을 즐깁니다.


  자가용이 없으니 골목마실을 합니다. 자가용이 없으니 들마실을 합니다. 자전거를 타니 이웃마을로 달리는 동안 여름바람과 겨울바람 실컷 마십니다.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로 찾아가서 실컷 모래놀이와 물놀이를 합니다.

 

 

 

.. 엄마는 자투리 천을 이리저리 맞춰 보고 고운 빛을 골라 마름질을 시작했어. 아껴 입던 새 저고리도 잘라 내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바느질을 했지 ..  (18쪽)


  이승은·허헌선 두 분이 만든 인형으로 이야기를 꾸미고, 김준아 님이 사진을 담은 《색동저고리》(파랑새,2010)를 읽습니다. 이야기책 《색동저고리》에 나오는 아이들은 몹시 가난합니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세 식구끼리 살아갑니다. 설날에 고운 때때옷 못 입습니다. 설날에 아이들은 둘이서 놀며 어머니가 바깥일 마치고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떡국 한 그릇조차 없이 손가락을 빼물다가 돌이와 분이는 스르르 곯아떨어집니다. 추운 겨울날 이불조차 덮지 못하고 어머니를 기다리다 잠든 두 아이입니다.


  해 지고 어두운 저녁에 느즈막히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두 아이가 서로 기대어 잠든 모습을 보고 애틋합니다. 버선을 벗기고 이부자리로 옮겨 눕히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가난하기에 설빔을 마련하지 못한다지만, 삯바느질을 하며 남은 자투리 천이 많은 줄 떠올립니다. 자투리 천 가운데 고운 빛깔 천을 골라 알맞게 자릅니다. 색동저고리 한 벌이 태어납니다.

 


.. 하늘로 둥실 떠올랐어! 엄마의 사랑을 입고 훨훨 무지개처럼 하늘로 날아오른 거야 ..  (28쪽)


  아이들은 사랑을 먹으며 자랍니다. 어버이가 베푸는 사랑을 받아먹으며 아이들이 자랍니다. 아이들은 더 푸짐한 밥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자가용을 몰거나 돈이 많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저희한테 사랑을 나누어 주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사랑 담긴 밥상을 받고 싶습니다.


  어버이 사랑스러운 손길이 깃든 옷을 입는 아이들은 옷자락을 앙증맞은 손으로 살며시 쓰다듬곤 합니다. 이 옷자락에 깃든 어버이 손길을 저희 손으로 느끼곤 합니다. 손끝에서 손끝으로 옮는 사랑이요, 마음에서 마음으로 퍼지는 사랑입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할 때에 즐겁습니다. 서로 돌보고 어깨동무할 때에 웃습니다. 설빔은 새옷자랑이 아닙니다. 설빔은 사랑나눔입니다. 새옷을 입었으니 좋은 설날이 아니라, 사랑을 받으며 활짝 웃는 설날입니다. 사랑으로 여는 새해 첫날입니다. 4347.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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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동생이 생겼어요 - 아기고양이 그림책
오노 요코 글, 이모토 요코 그림, 송해정 옮김 / 지경사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39

 


큰아이는 동생을 미워해야 하나?
― 나도 동생이 생겼어요
오노 요코 글
이모토 요코 그림
지경사 펴냄, 1998.8.30.

 

 

오노 요코 님 글과 이모토 요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나도 동생이 생겼어요》(지경사,1998)는 그림이 무척 곱습니다. 그림만 보자면 보드라우면서 따사롭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에 나온 글을 아이한테 읽어 주자니 여러 대목에서 걸립니다. 동생 다섯이 한꺼번에 생긴 ‘형 고양이’가 ‘동생 고양이’를 ‘몰래 내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나오거든요. 동생 때문에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못 받는다고 여겨, 어디에든 버리려 하고, 숲에서 늑대한테 먹이로 주려 하며, 냇물에 풍덩풍덩 빠지기를 바라기까지 합니다. 마지막에는 동생들끼리 놀게 하고는 냅다 꽁무니를 빼기까지 해요.

 


이렇게 하다가 형 고양이는 마음이 몹시 무거워 다시 동생 고양이한테 돌아가지만, 마지막에 동생 고양이들과 손을 맞잡고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온통 동생 고양이를 미워하고 시샘하며 몰래 따돌리거나 괴롭히려 하는 이야기만 그득합니다.


형 고양이가 동생들 ‘때문에’ 여러모로 아쉽거나 서운하거나 싫은 마음이 들는지 모릅니다. 형 고양이 마음을 잘 드러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태여 동생 고양이들을 ‘내다 버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는지, 더군다나 자꾸자꾸 되풀이해서 이야기해야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 “엄마, 나도 안아 줘.” “응석꾸러기 까로야, 이제는 형이 되었으니 어리광은 그만 부려야지.” .. (5쪽)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동생이 생기면서 형이나 누나나 언니나 오빠 되는 아이가 서운해 하거나 섭섭해 하거나 아쉬워 하는 마음을 잘 담아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느 집안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삶이 다르고, 사랑이 다르며, 빛이 다릅니다. 다 다른 만큼 다 다른 이야기가 감돌 만하니, 이렇게 동생을 미워하다가 나중에 이르러 무언가 깨닫는 얼거리로 그림책을 빚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형이나 누나나 언니나 오빠 되는 아이는 참말 동생을 서운해 하거나 섭섭해 할까요. 사랑을 빼앗긴다고 생각할까요. 어머니한테서 제대로 사랑을 못 받는다고 여길까요. 어머니는 동생을 낳으면 형이나 누나나 언니나 오빠 되는 아이를 안 사랑하거나 덜 사랑할까요.


.. “까로야, 동생들 데리고 산책 좀 하고 오지 않을래?” 엄마가 까로에게 부탁했어요. 동생들은 까로의 뒤를 아장아장 따라왔어요 .. (9쪽)


동생이 태어나면 어머니는 큰아이뿐 아니라 작은아이를 안아야 하니, 두 아이를 안느라, 예전에 한 아이만 안던 삶과는 다릅니다. 숫자로 치면, 큰아이는 사랑을 덜 받거나 못 받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두 번 안거나 두 시간 안아야 더 깊거나 큰 사랑인가요? 한 번 안거나 한 시간 안으면 더 얕거나 작은 사랑인가요?


큰아이한테 동생이 생기면 어머니는 두 아이를 골고루 안습니다. 동생은 처음에는 아주 갓난쟁이인 만큼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합니다. 천천히 자라면서 천천히 서고 천천히 걷습니다. 이러다가 큰아이처럼 걷고 달릴 수 있습니다. 이동안 어머니는 동생한테 조금 더 마음을 쓰기 마련인데, 어머니가 큰아이 안아 주는 시간이나 횟수가 줄어든다 하더라도, 동생이 형이나 누나나 언니나 오빠를 안는 시간이나 횟수가 늘어납니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안고 돌보며 아낍니다.

 

 

 

 

 

 

 

.. “자, 형을 꼭 잡아.” 까로는 동생들을 잘 붙잡아 주었어요. ‘동생들이 강물에 빠지면 숨도 못 쉴 거야…….” .. (21쪽)


아이들도 모두 알아요. 어머니는 동생을 안으면서 큰아이를 안는 느낌과 마음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큰아이도 동생을 안거나 돌보면서 어머니가 그동안 저(큰아이)를 안던 느낌과 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그림책에 빠진 대목을 알 만합니다. 이 그림책 첫머리에 ‘형 고양이’가 ‘동생 고양이’를 안거나 돌보는 이야기가 하나도 안 나옵니다. 절반 넘게 흐르고서야 비로소 냇물을 건너며 형 고양이가 동생 고양이를 안아요.


큰아이가 느낄 서운함을 보여주려고 잇달아 ‘미워하는 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다만, 이런 모습을 그린다 하더라도, 큰아이가 그동안 어머니한테서 얼마나 깊고 크며 넓고 따사롭게 사랑을 받았는가를 돌아볼 만한 이야기와 그림이 깃들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무턱대고 동생들을 미워하거나 못살게 굴려는 마음만 보여주면, 이 그림책을 읽히기 몹시 힘듭니다. 이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도 매우 힘듭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아직 혼자서 모든 글을 다 읽어내지 못해, 이 그림책을 함께 읽을 적에는 책에 적힌 글을 다 안 읽습니다. 훌렁훌렁 건너뛰거나 바꿔서 읽어 줍니다. 책에 나온 이야기라고만 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책에 나온 이야기를 아이가 듣고 읽으면, 큰아이가 저도 모르게 ‘동생을 이렇게 버릴 수도 있네’ 하고 생각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읽거나 볼 책을 빚는 어른은 아주 깊이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거나 볼 책을 빚을 어른은 두 번 세 번 자꾸자꾸 헤아리면서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보고 배웁니다. 아이들은 모두 받아들이고 받아먹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 사랑을 더욱 따사롭게 그림책에 담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받아먹을 꿈과 믿음과 노래를 한결 맑고 환하게 그림책에 싣기를 빕니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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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 사계절 나이테 그림책 사계절 그림책
조혜란 글 그림 / 사계절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38

 


콩닥콩닥 보드랍고 싱그러운 숨결
― 참새
 조혜란 글·그림
 사계절 펴냄, 2002.4.25.

 


  마루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설 적에 으레 처마 밑에서 딱새 두 마리 부웅 소리를 내면서 휘익 날아갑니다. 마당 한쪽에 있는 제법 우람한 후박나무 가지 사이로 숨습니다. 숲속에 깃들지 않고 우리 집 처마 빈 제비집에 깃들었으면서 무엇이 무섭다고 마루문 열고 마당으로 내려설 적마다 부웅 소리를 내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딱새는 우리를 무서워 하지 않을는지 몰라요. 그저 재미 삼아서 이렇게 부웅 소리를 내며 날아갈는지 모릅니다.


  볕이 좋아 이불을 마당에 널면서 턴다든지, 다 마친 빨래를 들고 마당에 널 적에는 후박나무 가지나 전깃줄에 앉아서 저 사람이 무얼 하는가 하고 빤히 쳐다봅니다. 더 멀리 가지도 않고 날아가지도 않습니다.


  처마 밑 제비집에 제비들이 지낼 적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었어요. 마루문을 열고 나올 적마다 부웅부웅 날아가서 괜시리 미안스럽게 하면서 멀리 날아가지는 않아요. 헛간 지붕에 앉거나 전봇대에 앉기 일쑤입니다. 이러면서 저 사람이 왜 마당에 나오고, 마당에 나와서 무엇을 하는가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 새로 이사 온 동네에는 참새가 참 많았어요. 참새들은 마을 가운데서도 맨 앞줄에 있는 우리 집을 가장 좋아했어요 ..  (3쪽)

 


  딱새는 제비처럼 노래를 자주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뒷간에서 똥을 눌 적이라든지, 마당에 놓은 평상에 앉거나 누워서 바람소리를 들을 적에 곧잘 노래를 가만히 들려줍니다. 딱딱딱 하는 딱새 노래는 새로운 빛입니다. 제비들 재재거리는 소리와 또 다른 빛입니다. 박새와 참새하고도 다른 빛입니다. 까치와 까마귀하고도 다른 빛이에요.


  누렁조롱이나 소쩍새가 우리 집까지 찾아올 일은 드물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이런 큰 새가 바라는 먹이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언젠가 꾀꼬리와 물총새와 지빠귀가 우리 집에 넌지시 찾아올 수 있기를 기다려요. 직박구리가 후박알이나 초피알 먹으려고 찾아온 적이 있는데, 이 새와 저 새 모두 즐겁게 찾아와서 둥지도 짓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 하루는, 동네 아이들이 우리 집으로 와서 처마 밑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어요. 예쁜 자갈도 같고 조그만 달걀도 같은, 주근깨가 잔뜩 나 있는 그것은 참새알이었어요 ..  (7∼8쪽)


  새가 함께 살면 벌레를 잡습니다. 새가 깃드는 집에서는 새노래를 누립니다. 새가 모든 벌레를 다 잡지는 않습니다. 아마 모든 벌레를 다 잡으면 벌레 씨가 말라서 새로서도 먹이가 없겠지요. 얼마쯤은 두고서 잡아먹지 않으랴 싶어요. 가까운 곳에 있는 벌레만 먹지 않고 이곳저곳 두루 날아다니면서 골고루 잡아먹는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온갖 새들이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와서 초피나무와 후박나무에서 잎사귀 갉아먹는 벌레를 곧잘 잡아먹는데, 용케 살아남았는지 일부러 살렸는지 꽤 여러 마리가 그대로 잎을 갉아먹으면서 고치를 만들더라고요. 봄부터 가을까지 제법 많은 나비가 깨어납니다.

 


.. 이불을 뒤집어쓰니 새끼 참새와 우리 남매만이 세상에 있는 것 같았어요. “우리에게 참새가 있는 걸 알면 동네 아이들이 부러워하겠지?” ..  (19쪽)


  조혜란 님 그림책 《참새》(사계절,2002)을 읽습니다. 조혜란 님이 어릴 적에 겪은 일을 그렸지 싶습니다. 조혜란 님이 어릴 적에 새로 옮겨 살던 풀집에 마을 아이들이 틈틈이 찾아와서 처마에 손을 넣고는 참새알을 훔쳐서 삶아먹었다고 합니다. 조혜란 님은 이런 마을 아이들을 보고도 “하지 말라!”고 말리지 못했지 싶어요. 오히려 “나도 참새알 갖고 싶다!”는 생각만 키웠지 싶어요.


  마을 아이들은 ‘이웃집’에 함부로 들어가서 처마를 뒤졌어요. 달리 바라보면, ‘이웃집 밭’에 함부로 들어와서 무도 뽑고 배추도 뽑은 셈입니다. 이웃집 밭에서 자라는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 감을 따먹은 셈입니다.


  시골이니 저마다 밭이 있고 나무가 있어요. 제 집 밭에서 무랑 배추를 뽑아서 먹으면 돼요. 제 집 감나무를 타고 올라서 감을 따먹으면 됩니다. 왜 이웃집 처마를 뒤져야 했을까요. 왜 이 아이들은 이웃집 처마를 버젓이 뒤질까요. 이 아이들은 ‘서리’가 아닌 못된 짓을 일삼은 셈 아닐는지요.


  어쩌면 먹을거리가 없어 배고픈 나머지 이곳저곳 뒤지다가 마침 좋은 데를 찾았다고 할 수 있어요. 다들 기와지붕으로 바꾸는데 조혜란 님 집만 풀지붕이 그대로인 만큼, 이곳을 찾아올밖에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둥지를 뒤져 새알을 얻고 싶다면 숲으로 가야지요. 이웃집 아닌 숲으로 가고, 숲속을 누비면서 풀을 뜯고 열매를 따야지요.

 


.. 우리 집에는 더 많은 참새들이 드나들었어요. 짹짹짹 조잘재잘 더 시끄럽고, 더 많은 참새똥이 떨어졌어요. 그래도 나는 처마에 대고 “우리 집에서 나가!” 하고 소리치지 못했어요 ..  (33쪽)


  콩닥콩닥 보드랍고 싱그러운 숨결이 죽습니다. 이웃 아이들은 참새알을 삶아먹고, 조혜란 님과 동생은 새끼 참새를 훔쳤다가 그만 죽이고 맙니다. 조혜란 님은 어른이 되어 이날 일을 잊지 못한 채 그림책으로 남깁니다. 이웃 다른 아이들은 어릴 적 일을 얼마나 떠올리려나요. 이웃 다른 아이들은 어른이 된 뒤 이때 일을 얼마나 가슴에 새겼을까요. 그저 고픈 배를 채우고자 참새알이고 다른 새알이고 몽땅 훑어서 삶아먹었을까요. 작은 새도 콩닥콩닥 보드랍고 싱그럽게 뛰는 숨결인 줄 찬찬히 헤아리거나 살폈을까요.


  참새는 예나 이제나 우리 둘레에서 살아갑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무리를 지어 조그마한 숨결을 힘차게 건사합니다. 사람들 둘레에서 ‘우리도 너희하고 이웃이야’ 하고 종알종알 노래하면서 겨울을 함께 나고 봄을 기다립니다. 4347.1.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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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1-25 14:22   좋아요 0 | URL
그림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보관함으로 쏘옥~ ㅎㅎ

숲노래 2014-01-25 18:11   좋아요 0 | URL
수수한 삶을 투박하게 잘 그렸어요~
 
빨강 빨강 앵두 - 동요로 배우는 말놀이 우리 아기 놀이책 17
전래동요 지음, 권문희 그림 / 다섯수레 / 200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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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37


하얀 앵두꽃에 빨간 앵두알 노래
― 빨강 빨강 앵두
 전래동요
 권문희 그림
 다섯수레 펴냄, 1999.11.15.

 
  앵두꽃이 살짝 바알간 빛을 뿜으면서 하얗게 터집니다. 아직 푸른 잎사귀 벌어지지 않은 앵두나무에 꽃부터 활짝활짝 웃습니다. 겨울난 앵두나무에는 꽃봉오리 가득하고, 앵두나무를 마당 한켠에 두는 집은 하루 내내 앵두꽃을 바라보며 웃음이 넘치겠구나 싶습니다.


  앵두꽃이 지면서 앵두알이 천천히 익습니다. 앵두꽃이 지면서 푸른 잎사귀 하나둘 돋습니다. 어느새 푸른 잎사귀 그득한 앵두나무 되는데, 곧이어 푸른 잎사귀를 온통 뒤덮을 만큼 새빨간 열매 다닥다닥 맺힙니다. 앵두열매 빨간 빛이 꽃처럼 영급니다.


  조그마한 앵두알에는 꽤 큰 씨앗이 있습니다. 멋모르고 앵두알을 아삭 깨물면 아야 하고 이가 아플 수 있습니다. 앵두알은 입에 넣고 살살 속살을 훑은 뒤 씨앗을 퉤퉤 뱉어야 합니다. 앵두씨를 풀밭에 뱉으면 이 씨앗이 흙 품에 안겨 앵두풀로 돋은 뒤 어린 앵두나무로 올라올 수 있을까요.


  앵두열매 맺히면 새와 벌레가 끝없이 찾아옵니다. 맛난 앵두열매를 먹으려고 사람도 새도 벌레도 부산합니다. 사람은 앵두씨를 건사해서 이곳저곳에 뱉거나 뿌립니다. 새는 앵두알 쏘옥 삼킨 뒤 이곳저곳 날아다니면서 씨앗을 똥과 함께 뽕 떨굽니다. 앵두나무 한 그루 이곳에 있으면 해마다 어린 앵두나무가 곳곳에 새롭게 뿌리내릴 수 있어요.


  옛날부터 불렀다고 하는 노래에 권문희 님이 그림을 얹은 《빨강 빨강 앵두》(다섯수레,1999)를 아이와 함께 읽습니다. 네 살 작은아이와 읽으면 네 살 작은아이는 군말이 없을 텐데, 일곱 살 큰아이와 읽으니 문득 한 마디 묻습니다. “왜 얘(그림책에 나오는 누나)는 앵두를 한 알만 따?” “왜 두 알 안 따?” “두 알 따서 동생 하나 주고 얘 하나 먹으면 되잖아?”

 


  일곱 살 큰아이가 묻는 말을 듣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옛날부터 아이들 입과 입으로 이어온 놀이노래라 할 ‘앵두’ 노래일 텐데, 그동안 ‘한 알만 따서 동생 입에 넣는다’는 흐름으로 부를 수 있겠지만, 노래란 똑같이 불러서 노래가 아닙니다. 옛날부터 이어온 노래도 마을마다 조금씩 살을 붙이고 아이마다 새롭게 살을 얹어서 부릅니다. 고장마다 고을마다 ‘똑같은 노래’도 ‘다 다르게’ 불러요. 모심기노래가 다르고 베틀노래가 달라요.


  우리 집 큰아이는 ‘새빨간 앵두 두 알을 따서 동생 한 알 주고 나 한 알 먹지.’ 하고 앵두 노래를 부르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새빨간 앵두 넉 알을 따서 동생 한 알 주고 나 한 알 먹으며, 어머니랑 아버지한테도 한 알씩 주어야지.’ 하고 앵두 노래를 부르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새빨간 앵두 가만가만 바라보며 우리 집 찾아오는 멧새가 한 알씩 사이좋게 나누어 먹도록 해야지.’ 하고 앵두 노래를 부르겠구나 싶습니다.


  옛노래를 옛노래대로 즐기면서, 오늘은 오늘대로 아이들 맑은 꿈과 사랑을 실어 새롭게 이야기를 얹는 ‘놀이노래’와 ‘삶노래’로 거듭날 수 있으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앵두잎 빛깔이 그리 ‘푸르지’ 않은 대목이 아쉽습니다. 새빨간 앵두알과 짙푸른 앵두잎은 서로 몹시 환하게 어우러져요. 그림결이 보드랍고 예쁘기는 하지만, 잎빛을 그릴 적에 더 마음을 기울이기를 바라요. 앵두나무 잎사귀 빛깔이 얼마나 푸르고 밝은지 잘 드러내면 도시 아이들도 앵두나무를 한결 새롭게 헤아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덧붙여, 책 뒤쪽에는 살며시 바알간 기운 감도는 앵두꽃을 그려 넣으면, 어떤 꽃에서 이렇게 예쁜 열매가 맺히는가를 도시 아이들과 어버이 모두 더 깊이 살피도록 이끌리라 생각해요. 4347.1.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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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1-24 11:27   좋아요 0 | URL
사름벼리는 이제 스스로 물음을 던질 수 있을 만큼 자랐군요.
어제 올리셨던 글을 읽고 저도 생각해보았답니다. 왜 한알만 딴다고 했을까. 아마 아가 입에 넣어주려니 한알만 따지 않았을까, 혹은 식물의 열매라도 욕심내지 않고 한알만 조심스레 따는 아이들 마음을 그렸을까...어른이라면 과연 한알만 땄을까. 저도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보았답니다.

숲노래 2014-01-24 11:43   좋아요 0 | URL
일부러 사진을 붙이기도 했는데,
앵두가 열릴 적에는 그야말로
나뭇가지가 출렁출렁 휘 늘어지도록 달려요.
이렇게 새빨간 앵두가 열리면
동네에서는 앵두 따서 먹느라 바빠요.

마을 할매와 할배도, 높다란 나뭇가지 밑에 경운기 받치고는
하염없이 따서 드시더라구요.

옛날 노래에는 '한 알'을 상징처럼 그렸을 텐데,
막상 앵두나무 밑에서는
다들 '나이를 잊'고 신나게 따서 먹으니,
일곱 살 아이도 궁금해 하면서 묻더라구요.
"왜 한 알만?" 하면서.

페크pek0501 2014-01-24 14:52   좋아요 0 | URL
“왜 얘(그림책에 나오는 누나)는 앵두를 한 알만 따?” “왜 두 알 안 따?” “두 알 따서 동생 하나 주고 얘 하나 먹으면 되잖아?”
- 아, 귀여워라...

귀여움도 느끼고
아름다운 사진으로 눈이 호강하고 가네요. ^^

숲노래 2014-01-24 19:56   좋아요 0 | URL
올해에도 한 달 반 지나면
앵두꽃이 곱다시 피어나서
즐겁게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해요.
새봄을 두근두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