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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글리의 형제들 - 정글북 첫 번째 이야기 ㅣ 마루벌의 새로운 동화 17
루드야드 키플링 지음, 크리스토퍼 워멀 그림, 노은정 옮김 / 마루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4
숲말을 잊은 채 살아가면
― 모글리의 형제들
루디야드 키플링 글
크리스토퍼 워멜 그림
노은정 옮김
마루벌 펴냄, 2007.5.19.
길을 가다가 벌한테 쏘였습니다. 나도 쏘이고 일곱 살 아이도 쏘였습니다. 유채꽃 노란물결 그득한 논자락 옆을 걷는데, 갑자기 벌이 내 머리카락에 걸려 파닥거리면서 콕 하고 침을 쏩니다. 일곱 살 큰아이 머리카락 사이에도 벌이 걸립니다. 큰아이더러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 이르고는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에 따라 머리카락을 헤집어 벌을 겨우 꺼내어 날립니다. 그런데 이 벌이 다시 내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옵니다. 얘야, 어쩌다 네가 내 머리카락에 걸린 듯한데 다른 데로 가야지, 머리카락 사이는 거미줄과 같아서 이런 데에 끼면 네가 괴롭단다.
한 마리를 빼내니 다른 벌이 내 머리 둘레로 윙윙거리면서 또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머리통을 제법 세게 쿡 쏩니다. 야야, 참 아프구나, 네가 말벌이 아닌 꿀벌이니 그럭저럭 견딜 만하지만, 네가 침을 쏘며 내 뒷덜미에 침이 박힌 줄 느끼겠네. 너희는 너희 침을 이렇게 쏘면 어찌 살려고 그러니. 어쩌면 너희가 부러 침을 쏘아서 내 몸 어딘가 아픈 데를 고쳐 줄 마음이니.
.. 달빛은 늑대 식구가 오순도순 사는 굴의 저 안쪽까지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 “이 밤중에, 알몸으로 쫄쫄 굶은 채 혼자서 우리한테 온 아이예요. 게다가 우리를 겁내지도 않잖아요!” .. (8, 21쪽)
시골에서 경관사업을 한다면서 유채씨를 논마다 잔뜩 뿌립니다. 봄이 되어 유채씨는 싹을 트고 이곳저곳 노랗게 꽃물결이 춤춥니다. 지난해까지는 유채꽃 사이에 벌집을 놓은 사람이 없었는데, 올해에는 누군가 벌통을 되게 많이 갖다 놓았습니다. 게다가 마을 어귀 버스 타는 곳 바로 옆에 있는 논에 벌통을 놓았어요.
이 벌은 우리 집까지 드나들곤 합니다. 마을 이웃집에도 이 벌이 드나들 테지요. 우리 마을에서 벌통을 놓았을까요. 다른 마을에서 벌통을 놓았을까요. 유채꿀을 얻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왜 마을사람이 뻔히 지나다니는 길목에 벌통을 놓았을까요.
곁님이 큰아이 머리에 박힌 침을 둘 뽑고 벌을 쫓아냅니다. 처음에는 조금 부었으나 붓기가 차츰 가라앉습니다. 하루가 지나니 아픈 자리는 많이 가라앉지만 그래도 따끔함은 가시지 않습니다. 두서너 방을 쏘였으니 이만큼이지, 벌떼가 달려들어 쏘면 어마어마하겠다고 느낍니다. 벌떼가 달려들면 그야말로 어디 냇물을 찾아서 뛰어들든지, 도랑물에 고개를 처박든지 할 노릇이네 하고 느낍니다. 조그마한 벌이지만, 벌 한 마리가 쏘는 침이 아프고, 벌떼가 달려들면 어떤 사람도 꼼짝할 수 없겠구나 싶습니다.
.. 이런 규칙이 생겨난 것은, 인간을 죽이면 코끼리를 타고서 총을 쏘아대는 백인들과 징을 든 갈색 피부의 사람들 수백 명이 횃불과 불화살을 갖고 정글로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글의 모든 것이 고통을 받고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 아빠 늑대는 모글리에게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과 정글에 있는 것들이 갖고 있는 의미를 알려주었습니다 … 모글리에게는 풀잎의 바스락거림, 훈훈한 밤공기의 숨결,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올빼미의 울음소리, 나무에 내려앉은 박쥐 발톱에 나뭇가지가 긁히는 소리, 웅덩이에서 튀어오르는 갖가지 작은 물고기들의 텀벙거리는 소리도 모두 의미 있는 것이었어요 .. (13, 31쪽)
지구별에는 온갖 목숨이 얼크러져 살아갑니다. 사람은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뭇목숨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구별에서 사람이 ‘별임자’인 듯 여깁니다. 어쩌면 사람은 ‘별임자’일 수 있습니다. 지구별에는 따로 임자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별임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별임자는 어떤 몫을 맡을 때에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사람은 지구에서 별임자다운 삶을 가꾸거나 꾸린다고 할 만한가요. 사람은 지구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림을 꾸리거나 일구는가요.
사람은 사람끼리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이웃인 사람을 어느 만큼 아끼거나 사랑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사람끼리 오순도순 아기자기한 삶을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꿈을 빚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지구별에 평화를 내리누르는 전쟁이 자꾸 불거지거든요. 지구별에 사랑을 가로막는 푸대접과 따돌림과 괴롭힘이 자꾸 춤추거든요.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입시지옥과 취업지옥이 끔찍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디나 경쟁이요 피튀기는 싸움터와 같습니다. 갖가지 위계질서와 신분질서가 득실거립니다. 사람은 스스로 사람다움을 잃기도 하고 잊기도 하며 저버리기까지 합니다. 사람은 ‘아름다운 목숨’이나 ‘따사로운 숨결’을 잃거나 잊거나 저버리곤 합니다.
.. “난 정글을 본 적이 없었어. 그저 인간들이 쇠창살 너머로 던져 주는 고기를 먹고 살았지. 그런데 어느 날 밤, 나는 내가 흑표범 바기라는 것, 그리고 인간의 노리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앞발을 들어 엉성한 자물통을 단번에 부수고 뛰쳐나왔어.” .. (40쪽)
루디야드 키플링 님이 쓴 글에 크리스토퍼 워멜 님이 그림을 넣은 《모글리의 형제들》(마루벌,2007)을 읽습니다. ‘정글북 첫 번째 이야기’라는 이름이 붙으며 나온 그림책인데, 2007년에 첫째 권이 나왔으나 2014년이 되도록 둘째 권이 나오지 못합니다. 키플링 님이 선보인 이야기에 새빛을 드리운 워멜 님 그림이지 싶은데, 한국에서는 이 같은 그림이 사랑받기 어렵기에 둘째 권이 못 나오는가 싶기도 합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어느새 숲도 들도 자취를 감출 뿐 아니라, 냇물도 바닷물도 제 빛과 숨결을 잃으니 이러한 책이 사랑받기 어렵지 싶기도 해요.
아이들은 도시에서 들빛을 보지 못해요. 아이들은 시골에서도 숲빛을 누리지 못해요. 요즈음 아이들은 풀을 베거나 나무를 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불을 때거나 밥을 짓지 않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소를 몰지 않고 닭을 치지 않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나무를 타거나 흙을 만지지 않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별을 보거나 햇볕에 까맣게 타지 않습니다.
.. “정글이 내게 문을 닫아 버렸으니 나는 너희의 말과 우정을 잊어야겠지. 하지만 나는 너희가 그리울 거야. 피만 섞이지 않았을 뿐 나는 진짜 너희의 형제였어. 너희는 나를 배신했지만, 나는 어른이 되더라도 인간의 편에 서서 너희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 (56쪽)
숲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숲말’을 할 줄 모릅니다. 다만, 오늘날 아이들은 일찍부터 영어를 할 줄 알고 한자를 읽을 줄 압니다. 들이 베푸는 노래를 듣지 못한 채 크는 아이들은 ‘들놀이’를 할 줄 모릅니다. 다만, 오늘날 아이들은 게임을 할 줄 알고 손전화를 솜씨 잇게 다를 수 있습니다. 냇물과 바닷물을 벗삼아 놀지 않는 아이들은 해와 바람과 비와 흙과 풀을 읽지 못합니다. 다만, 오늘날 아이들은 상표와 캐릭터와 연예인과 스포츠를 훤히 뀁니다.
숲말을 잊은 채 살아가면 숲을 모릅니다. 숲을 모르는 사람은 숲을 쉬 망가뜨립니다. 밀양뿐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 송전탑을 때려박기만 하는 사람은 숲을 모를 뿐 아니라, 숲을 사랑하지 않아요. 숲을 모르면서 안 사랑하니, 숲을 가꾸지 않아요. 숲에서 누릴 푸른 바람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어른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아이들은 앞으로 무슨 꿈을 꾸면 즐거울까요. 어른들은 앞으로 어떤 사랑을 속삭이면 즐거울까요. 아름답게 살아갈 지구별은 누가 어떻게 가꿀 수 있을까요. 4347.4.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