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울컥 - 화가 이장미의 드로잉일기
이장미 글.그림 / 그여자가웃는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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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02



함께 놀면서 그림을 그려요

― 순간 울컥

 이장미 그림·글

 그여자가웃는다 펴냄, 2013.12.5.



  여름이 무르익는 유월 이십육일입니다. 신나게 뛰도는 우리 집 두 아이는 볼이 빨갛습니다. 이 여름에 땀이 나도록 뛰어놉니다. 에그 덥지도 않느냐. 물을 먹이고 낯을 씻깁니다. 그러고는 부채질을 해 줍니다. 아이들은 뛰놀 적에 부채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땀을 흘립니다. 아이들은 뛰놀면서 손부채질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깔깔 웃고 뒹굽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내가 꼭 이 아이들처럼 뛰놀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아이들보다 훨씬 개구지게 뛰놀았을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내가 떠올리는 내 어린 날은 언제나 땀에 흠뻑 젖은 옷이었어요. 땀을 얼마나 흠뻑 흘리면서 뛰놀았는지, 나도 동무들도 한창 놀다가 옷을 비틀어서 땀을 죽죽 짜곤 했습니다. 나도 동무들도 새까만 머리에서 땀이 핑핑 튀었어요. 팔뚝과 허벅지로도 땀이 줄줄 흐릅니다. 신은 땀으로 옴팡 젖어서 미끌미끌합니다. 나중에는 신이 거추장스러워 양말도 신도 벗고는 맨발로 뛰놉니다. 온몸이 땀투성이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놀면서도 놀이를 그치지 않아요.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언제나 땀범벅이 되면서 놉니다.



.. 어느새 구름이 머리 위에 가득했다. 조카 정기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가, 지인의 동네에서 우리 동네를 찾아온 환상적인 구름을 감상했다 ..  (25쪽)




  요즈음에는 땀범벅이 되도록 뛰노는 아이들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아니, 한국에서는 어렵습니다.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경기를 한다면 제법 땀투성이가 될 테지만, 운동경기가 아닌 놀이를 하며 땀을 줄줄 흘리는 아이들을 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아이가 땀범벅이 되도록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볼 어버이가 무척 드물는지 모릅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머리카락은 땀으로 흠뻑 젖고, 옷도 땀으로 축축해서 살갗에 찰싹 달라붙도록 뛰놀게끔 가만히 놓아 줄 만한 어버이가 얼마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요즈음 아이들은 뛰놀 겨를이 없이 학원과 학교에 매달려야 해요. 요즈음 아이들은 어버이가 잔뜩 사서 안기는 그림책과 동화책을 들여다보느라, 또 만화책까지 보느라 너무 바쁩니다.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해야 하고, 이것저것 만들기라느니 독후감이라느니 할 일이 아주 많아요. ‘일’이 많아서 책상맡을 떠나기 어렵고, ‘일’에 치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인터넷게임이나 손전화게임을 하면서 짜증을 풀밖에 없습니다.



.. 깜짝 놀랐다. 일어나 보니 정기가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엄마의 말로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났단다. 따지고 보면 정기의 본격적인 방학은 오늘부터 시작이다. 학원까지 방학에 들어갔으니까. 소풍 가기 전날처럼 설레서 일찍 일어난 걸까 ..  (72쪽)





  이장미 님이 토막글과 함께 토막그림으로 빚은 그림책 《순간 울컥》(그여자가웃는다,2013)을 읽습니다. 이 책은 그림책입니다. 다만, 어린이가 읽는 그림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린이가 높은학년쯤이라면 읽을 만합니다. 꽤 재미있거든요. 틀에 박히지 않은 생각으로 글과 그림을 펼칩니다. 틀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살아가려는 꿈을 글과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참말 그렇지요. 울컥, 왈칵 하고 터져나옵니다. 글이 터져나오고 그림이 터져나와요. 이야기가 터져나오고 사랑이 터져나옵니다.



.. 며칠 전부터 정희에게 합장을 하며 부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마의 가운데 부분이 긁혀서 생긴 상처가 불상의 백호 같아서 장난스레 부르게 된 건데, 자꾸 부처님이라고 하니 자꾸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있다. 오늘은 나에게 책을 사 주시고 밥도 사 주셨다 ..  (102쪽)




  함께 놀면서 그림을 그리면 재미있습니다. 함께 놀면서 노래를 부르면 즐겁습니다. 함께 놀면 어느새 사랑이 싹틉니다. 아련한 첫사랑은 바로 놀이동무입니다. 애틋한 첫꿈은 바로 놀이터예요.


  함께 노는 두 아이는 때와 곳을 잊습니다. 함께 노는 두 아이는 때와 곳을 넘어서면서 꿈을 꿉니다. 두 아이한테는 돈이 대수롭지 않고 이름값이나 힘이나 부동산 모두 대수롭지 않습니다. 함께 어울리고 함께 마주하며 함께 웃는 하루가 대수롭습니다.


  그림이란 무엇일까요. 잘 그려야 그림이 아닙니다. 엄청난 작품이 되어야 그림이 아닙니다. 그림은 모름지기 삶입니다. 그림은 언제나 삶을 사랑하는 눈빛입니다. 그림은 한결같이 삶을 사랑으로 빚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 요즘엔 최첨단 전자제품보다 한 송이의 꽃이 핀다는 사실이 더 놀랍고 신기하다 ..  (171쪽)





  어른들은 그림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이한테만 그림책을 갖다 안기지 말고, 어른 스스로 그림책을 읽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그림책을 열 번 백 번 천 번 되풀이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림책에 깃든 넋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삶을 바꾸어야지요. 쳇바퀴처럼 도는 삶이 아니라, 어른이 낳은 아이를 마음 깊이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삶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아이 교육을 유치원이나 학교에 떠넘기지 말아요. 아이 교육을 집에서 해요. 아이 교육을 교사나 전문가한테 맡기지 말아요. 아이 교육을 어버이 스스로 해요.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요. 아이와 함께 텃밭을 일구어요.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요. 아이 손을 잡고 들길과 숲길을 걸어요. 아이와 나란히 엎드려서 그림을 그려요. 아이와 빙그레 웃으면서 노래를 불러요. 아이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춤을 추어요.


  그러면 됩니다. 삶을 사랑하면 됩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낳은 어버이’인 바로 내 숨결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림은 바로 삶을 사랑하는 빛이 천천히 꽃처럼 피어나면서 태어납니다. 4347.6.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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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 나는 누구와 어떤 따뜻한 그림백과 43
재미난책보 지음 / 어린이아현(Kizdom)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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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01



너와 나 사이에는 하나

― 따뜻한 그림백과 043 : 사이

 김경진 그림

 재미난책보 글

 어린이아현 펴냄, 2013.12.30.



  나는 어릴 적부터 ‘사이’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 둘레 어른들은 나한테 ‘사이’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내가 떠올리는 어릴 적 삶은 국민학교(초등학교)부터인데, 이 언저리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 둘레 어른들은 내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숨결인지 아닌지 알려주지 않았아요. 내 둘레 어른들은 내가 수많은 목숨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빛인지 아닌지 가르치지 않았어요.



.. 세상에는 나와 남이 있어요 ..  (2쪽)



  19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갔고 1993년까지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1994에 대학교에 들어간 뒤, 1995년에 그만두려 했으나 이해에 군대에 간 뒤 1997년 12월 31일에 사회로 돌아와서 1998년 가을에 대학교를 그만두었어요. 이동안 나는 학교라는 곳에서 사랑을 배우거나 꿈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꿈이나 사랑이라는 낱말은커녕 꿈이나 사랑을 가꾸는 ‘삶’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내가 꿈을 처음 생각한 때는, 아니 처음 생각한 때가 아니라 처음 느낀 때는 2006년입니다. 이때에 나는 이오덕이라고 하는 분 유고를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1월 1일부터 한 가지를 다짐했어요. 나한테는 운전면허증이 없어 늘 시외버스를 타지만, 이해 2006년에는 시외버스조차 안 타고, 또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가더라도 전철을 안 타고, 자전거만 타기로.


  그렇지만, 2006년 한 해에 전철을 아예 안 타지 않았습니다. 아마 다섯 차례 탔지 싶어요. 시외버스는 참말 한 차례도 안 탔지 싶은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오나 늘 자전거를 탔어요. 그리고, 한 해 내내 자전거로 움직이면서 깨달았어요. 아, 자전거로도 얼마든지 다닐 만하네 하고요. 자전거로 하루에 50킬로미터를 출퇴근하더라도 다닐 만하다고 느꼈어요. 2006년 이해에 나는 날마다 120킬로미터쯤 자전거로 달리면서 지냈어요. 2006년에 나는 충청북도 음성에서 살았고, 볼일을 보러 서울에 주마다 한 차례씩 자전거로 오갔습니다.



.. 남들끼리는 서로 싸워요. 우리가 조금 더 가지면 남은 그만큼 덜 가지게 되기 때문이에요 ..  (16∼17쪽)



  날마다 자전거로 백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달리면 여러모로 재미있습니다. 이동안 아름다운 이웃도 만나고 끔찍한 이웃도 만납니다. 아름다운 이웃은 나한테 말없이 내가 자전거로 잘 달리도록 돕습니다. 끔찍한 이웃은 갑자기 내 자전거 옆이나 앞으로 끼어들면서 내가 죽을는지 모르도록 괴롭힙니다.


  이즈음 나는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일부러 나를 치고 뺑소니를 친 자동차가 여럿 있어서 나는 ‘자동차에 치여 하늘을 붕 날다가 길바닥에 꽝 하고 떨어질’ 적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어요. 어깨뼈가 으스러지거나 무릎이나 손목이 나가서 꼼짝을 못할 뿐이었습니다. 2011년까지 여러모로 뒤앓이를 치렀어요. 어깨를 못 쓰고 팔을 못 쓰고 손목을 못 쓰고 무릎을 못 쓰는 채 지냈어요.


  그러면, 이제 내 몸이 나았을까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는 2014년 요즈음에도 자전거를 탑니다. 요즈음은 내 자전거 뒤에 샛자전거와 수레를 붙여서, 일곱 살 큰아이와 네 살 작은아이를 태우고 다닙니다. 샛자전거에는 큰아이가 앉고 수레에는 작은아이가 앉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마실을 다니면 무척 좋아해요. 두 아이는 모두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까르르 웃고 노래합니다.



.. 나는 사람들하고만 이어져 있는 건 아니에요. 내가 서 있는 땅, 내가 마시는 공기와 물,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도 이어져 있어요 ..  (25쪽)



  김경진 님 그림하고 재미난책보에서 빚은 글이 어우러진 《따뜻한 그림백과 043 : 사이》(어린이아현,2013)를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이란 무엇일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는 무엇일까요. 한자로 적는 ‘人間’이 아니라, 한국말로 적는 ‘사람’에서 사이는 무엇일까요.


  한국말에서 ‘사이’는 ‘틈’이요 ‘겨를’이며 ‘말미’입니다. 한국말에서 ‘사이’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빈 자리’입니다. 아니, 한국말에서 ‘사이’는 ‘쉼터’예요.



.. 모를 땐 남이지만, 알고 나면 모두가 우리예요. 세상에 남은 없어요 ..  (30쪽)



  너와 내가 쉽니다. 너와 내가 즐겁게 쉽니다. 너와 내가 즐겁게 웃으면서 쉽니다. 그렇지요. 쉬는 두 사람은 빙그레 웃을 뿐 아니라 밥을 나눕니다. 함께 쉬는 두 사람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함께 쉬는 두 사람한테는 울타리, 이른바 국경이나 경계가 없습니다.


  그래요. 우리한테는 ‘사이’가 있어야지요. 우리는 사이를 아껴야지요. 우리는 서로서로 사이를 보듬으면서 아름답게 살아야지요. 너와 나는 남이 아닙니다. 너와 나는 하나입니다. 내가 보기에 너는 남일는지 모르나, 이렇게 말하려 하면, 네가 보기에 내가 남이 될 테지요.


  너와 나를 가르려 하면 서로 ‘적’이 되어요. 너와 내가 하나인 줄 알면 서로 ‘삶’이 되어요. 삶이기에 사이입니다. 삶이기에 사이이면서 사랑입니다. 삶이기에 사랑이면서 사이요 꿈입니다. 어버이와 아이 사이에 아름다운 빛을 노래하는 그림책이 있으면 참으로 따사로우리라 생각합니다. 4347.6.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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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아저씨네 정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35
게르다 마리 샤이들 지음, 베너뎃 와츠 그림, 강무홍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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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00



삶을 가꾸는 빛이 되는 말

― 조지 아저씨네 정원

 베너뎃 와츠 그림

 게르다 마리 샤이들 글

 강무홍 옮김

 시공사 펴냄, 1995.12.25.



  전쟁은 언제나 모든 사람을 괴롭힙니다. 전쟁이 사람들을 즐겁게 한 적은 이제껏 한 차례도 없습니다. 어떤 전쟁이든 모든 사람을 괴롭힙니다. 게다가, 군대 장교까지 괴롭히는 전쟁입니다. 군인들도 전쟁 때문에 괴롭습니다. ‘적군’이라는 사람을 총으로 쏘아서 넘어뜨리거나 칼로 베어서 쓰러뜨리더라도 군인은 즐겁지 않습니다. 우리 편이 이기든 지든 군대 장교는 즐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즐거움은 내가 남을 죽이거나 남이 나를 죽일 때에 태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적군으로 삼으면, 너도 나를 적군으로 삼습니다. 내가 너를 죽이고 싶다고 말하듯이 너도 나를 죽이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전쟁입니다.


  무기가 있으면 저쪽이 나를 적군으로 안 삼을까요? 아니에요. 우리한테 무기가 있으니 저쪽은 우리를 적군으로 삼습니다. 그러고는 우리보다 센 무기를 갖추려 해요. 이렇게 되면 우리 쪽에서는 저쪽을 더 적군으로 삼으면서 저쪽보다 더 센 무기를 갖추려 합니다. 이리하여 저쪽은 우리보다 더 센 무기를 갖추려 하기 마련이고, 서로서로 전쟁무기를 갖추는 데에 힘을 쏟다가 그만 펑 터져요. 이것이 전쟁입니다. 전쟁무기를 잔뜩 쌓았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써야지요. 적군을 죽이는 훈련을 받았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써야지요.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전쟁을 벌입니다. 전쟁무기가 없기 때문에 언제나 전쟁이 없는 평화입니다.



.. 꽃과 새와 동물들의 말을 아저씨만큼 잘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딴 사람들은 자동차 엔진이 망가지거나 텔레비전이 고장나는 것은 잘 알아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나 꽃들이 속삭이는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거든 ..  (3쪽)




  국가보안법은 나라를 지키지 않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독재권력을 지킵니다. 국가보안법은 이 나라에 평화가 아닌 전쟁이 감돌게 하면서 사람들을 억누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나라에 전쟁무기가 있다면 국가보안법도 언제까지나 있을밖에 없습니다. 이 나라에 전쟁무기가 사라지도록 할 때에 비로소 국가보안법을 없앨 수 있습니다. 국가보안법과 함께 국가정보원이라는 데가 있어요. 이곳 또한 평화를 바라지 않아요. 국가정보원은 언제나 전쟁을 바라요. 누군가를 적군으로 삼아야 하는 국가정보원입니다. 적군이 없다면 국가정보원도 국가보안법도 있을 턱이 없습니다. 적군이 있어야 전쟁무기를 만들 수 있고, 전쟁무기 만드는 회사가 돈을 벌며, 전쟁무기 다스리는 군대 장교가 돈을 벌지요.


  거듭 말하자면, 전쟁은 장사입니다. 전쟁무기는 장사꾼 놀음놀이입니다. 사람들이 평화를 잊도록 내모는 장사가 전쟁이요, 사람들이 사랑을 잃도록 몰아세우는 놀음놀이가 전쟁무기입니다.


  지구별 어느 역사를 보더라도, 전쟁무기를 만드는 곳마다 전쟁이 있을 뿐입니다.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는 곳에는 어디에나 평화가 있을 뿐입니다. 전쟁무기가 있으니 평화를 지키지 않아요. 전쟁무기가 있으니 이웃으로 쳐들어가서 식민지로 삼습니다. 일본도 중국도 한국도, 전쟁무기가 많았을 적에는 늘 이웃을 괴롭혔어요. 이웃나라 땅을 빼앗는 전쟁무기입니다. 이웃나라 사람을 죽이거나 노예로 부리려는 전쟁무기입니다.


  그러니까, 전쟁과 전쟁무기란 사람들을 노예로 삼는 연장입니다. 전쟁과 전쟁무기가 있어야 사람들을 들볶거나 괴롭히면서 길들일 수 있습니다. 전쟁과 전쟁무기를 앞세워, 곧 군대와 경찰과 비밀요원을 내세워, 사람들을 늘 두려움에 떨게 하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독재정권이 시키는 짓을 쳇바퀴 돌듯이 하도록 내몹니다.



.. 조지 아저씨가 부지런히 물을 뿌려 주면, 꽃들은 고개를 까딱하며 말했어. “아저씨, 고맙습니다.” 조지 아저씨도 답례로 고개를 끄떡이며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란다” 했지 ..  (6쪽)





  그림책 《조지 아저씨네 정원》(시공사,1995)을 읽습니다. 베너뎃 와츠 님 그림이랑 게르다 마리 샤이들 님 글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이야기책입니다. 조지 아저씨라는 분은 조그마한 뜰을 가꿉니다. 조그마한 뜰에서 밥을 얻고 삶을 누리며 이야기를 짓습니다.


  아, 이 조그마한 뜰은 바로 숲입니다. ‘집숲’입니다. 집이 되는 숲이요, 집으로 가꾸는 숲입니다. 숲에 깃든 집이 되니, 조지 아저씨는 언제나 사랑 하나만 헤아리면서 즐겁게 웃습니다.


  조지 아저씨는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하고 말을 섞습니다.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는 조지 아저씨한테 말을 겁니다. 조지 아저씨는 늘 빙그레 웃으면서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하고 도란도란 이야기잔치를 누립니다.


  조지 아저씨한테는 총도 칼도 없습니다. 아니, 조지 아저씨는 총도 칼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지 아저씨한테는 오직 하나만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조지 아저씨는 풀하고 사랑을 속삭이고 나무와 사랑을 주고받지요. 조지 아저씨는 한결같이 사랑을 담아 벌레와 새하고 어깨동무를 해요.



.. 조금 있다가 달이 떠올랐지. 조지 아저씨는 정원을 거닐며 한숨을 푹 쉬었단다. 딱총나무에 둥지를 튼 나이팅게일이 소리쳤어. “슬퍼하지 마세요! 제가 가장 잘하는 노래를 불러 드릴게요.” 조지 아저씨가 말했지. “그래, 그러렴. 기왕이면 우리 꼬맹이 데이지꽃한테도 들리게 큰 소리로 부르렴.” ..  (12쪽)




  삶을 가꾸는 빛이 되는 말은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나아가는 노래요 웃음이고 이야기입니다.


  삶을 죽이거나 무너뜨리는 어둠이 되는 짓은 전쟁입니다. 전쟁으로 나아가는 전쟁무기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삶을 찾고 싶은가요? 삶을 무너뜨리고 싶은가요? 삶을 가꾸고 싶은가요? 쳇바퀴를 돌듯이 노예처럼 흐르는 하루를 똑같이 되풀이하고 싶은가요?



.. 조지 아저씨는 곧바로 촉촉한 땅에 데이지꽃을 심었어. 데이지꽃은 고맙다는 뜻으로 다시 꽃잎을 활짝 펼쳤지. 아저씨는 데이지꽃의 마음을 알았지. 아저씨는 부드럽게 “이제 푹 자렴.” 하고, 딱총나무 아래에 있는 벤치에 누웠어 ..  (22쪽)



  그림책 《조지 아저씨네 정원》은 아주 쉽고 보드라운 말씨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꽃하고 말을 섞고 싶으면 꽃을 사랑하면서 꽃이랑 한마음이 되면 너끈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꽃과 노래하고 싶으면 꽃을 바라보면서 꽃하고 한뜻이 되면 넉넉하다는 이야기를 알려줍니다.


  전쟁을 하고 싶으면 전쟁무기를 만들어야지요. 전쟁을 그치고 싶다면 전쟁무기를 모두 녹여서 호미와 낫과 쟁기로 바꾸어야지요. 전쟁을 하고 싶으면 아이들을 군대에 보내거나 ‘군대 조직과 똑같은 얼거리로 흐르는 제도권 학교와 회사’에 보내야지요. 전쟁을 그치고 평화로운 터전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으면 아이들한테 사랑을 노래하고 꿈을 들려주며 빛을 함께 맞잡는 길로 나아가야지요. 4347.6.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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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친구가 샘내는 책 1
우슐라 두보사르스키 지음, 앤드류 조이너 그림, 노경실 옮김 / 푸른날개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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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9



‘퐁’과 ‘풍덩’ 사이에서

― 풍덩

 우슐라 두보사르스키 글

 앤드류 조이너 그림

 푸른날개 펴냄, 2009.9.1.



  오스트레일리아라는 곳에서 사는 두 사람이 빚은 그림책 《풍덩》(푸른날개,2009)을 읽습니다. 우슐라 두보사르스키 님 글과 앤드류 조이너 님 그림이 어우러집니다. 숲속에 있는 못에 능금이 한 알 퐁 떨어지면서 생긴 일을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숲짐승한테 낯선 소리를 듣고는 어쩌면 크게 잘못되거나 저희를 괴롭힐 누군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걱정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숲속 짐승이 아니더라도 이처럼 놀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들도 그렇지요. 쿵 하고 떨어지거나 쨍그랑 하고 깨질 적에도 사람들은 놀라요. 또는, 사람들 귀에 익숙하지 않은 어떤 소리가 크게 나면 두려움에 떨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소리가 나든 큰 소리가 나든 궁금하게 여기면서 살그마니 살필 수 있어요.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아닌 궁금함이라면 근심이나 걱정이 없어요. 이때에는 즐거움이나 새로움이라는 느낌으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 파란 하늘, 호숫가에는 잘 자란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가지 끝에 매달린 동그랗고 빨간 사과. 바람이 살랑살랑. 빨간 사과가 흔들흔들흔들 ..  (4쪽)



  그림책 《풍덩》을 보면 온갖 짐승이 귀엽게 나옵니다. 여우는 꽃을 꺾습니다. 토끼는 못가에서 케익을 먹습니다. 토끼가 케익을 먹는다니? 말이 되나? 네, 말이 안 됩니다. 토끼가 어떻게 케익을 먹나요. 게다가 숲에 무슨 케익이 있겠어요? 그런데, 곰은 더 웃깁니다. 곰은 해바라기를 하면서 얼음커피인지 얼음콜라인지 마셔요. 게다가 빨대까지 꽂은 유리잔인지 플라스틱잔을 손에 들지요.


  능금이 못에 떨어진 소리에 놀란 짐승을 보아도 재미있거나 웃깁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이니 캥거루가 나올 만하지만, 캥거루하고 코뿔소와 코끼리가 나란히 나와요. 무늬범과 범과 원숭이와 박쥐가 나란히 나옵니다. 여기에 말코손바닥사슴이 함께 나옵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보면서 ‘어우러지지 않는 숲짐승’ 모습을 놓고 따질 일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박쥐가 밤이 아닌 낮에 나오더라도 놀라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원숭이가 사람처럼 등을 꼿꼿이 펴고 두 발로 걸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리라 봅니다.



.. 여우가 달아나는 토끼들을 불렀습니다. “얘들아, 왜 그렇게 달려가니?” 토끼들은 멈추지 않고 소리쳤습니다. “여우야, 너도 빨리 달려!” “호수에서 무시무시한 풍덩 소리가 났어!” ..  (8쪽)



  못에 능금이 떨어지며 내는 소리와 얽힌 옛이야기는 아마 겨레나 나라마다 다 있지 싶어요. 그림책 《풍덩》은 오스트레일리아답게, 또 요즈음에 맞게, 새롭게 꾸민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그림결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게 엮었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나는 토끼들이 ‘당근이나 능금을 속살만 얼추 베어서 먹은 뒤 버린’ 모습이 못마땅합니다. 참말 토끼가 이렇게 먹을까요? 토끼가 왜 당근을 ‘위쪽 잎사귀가 하나도 없는’ 채 먹을까요? 수퍼마켓에서 파는 모습 같은 당근을 먹는 토끼일까요?


  토끼는 풀짐승입니다. 토끼는 풀을 먹습니다. 토끼는 풀을 남기면서 먹지 않습니다. 다 먹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토끼는 ‘케익은 빈틈없이 다 먹’지만, 당근과 능금은 속살만 베어 먹고 버립니다.



- 호숫가에서 즐겁게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23쪽)

→ 못가에서 즐겁게 점심을 먹습니다


- 나도 달아나는 게 좋겠어 (9쪽)

→ 나도 달아나야겠어


- 덩달아 달아나기 시작했지요 (11쪽)

→ 덩달아 달아납니다


- 동물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풍덩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13쪽)

→ 동물들은 한숨도 쉬지 않고 풍덩이 무서워 달아났습니다



  물에 빠지며 나는 소리는 여럿입니다. ‘퐁’과 ‘풍’이 있으며 ‘풍덩’과 ‘퐁당’이 있습니다. 능금 한 알은 어떨까요. 능금 한 알은 무거울까요, 가벼울까요. 토끼들이 능금알을 한손에 쥐고 가볍게 먹는다면, 능금알은 ‘안 무겁다’고 여길 만하겠지요. 그러면, 능금알이 물에 빠진다고 할 적에 나는 소리는 ‘크지 않’겠지요.


  다만, 그림책에서는 생각날개를 펼쳐 ‘능금이 못에 떨어지며 나는 소리가 아주 클 뿐 아니라 무시무시하다’고 여기도록 보여줄 수 있습니다. ‘풍덩’쯤 되어야 숲짐승이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내뺄 만할 테니까요. 그러나, 능금알은 ‘퐁’ 소리가 나도록 물에 떨어질 뿐입니다.


  이 그림책은 어린이문학을 하는 분이 옮겼으나, 아이들 눈높이에 걸맞지 않은 낱말과 말투가 곳곳에 있습니다.



- 동물들은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13쪽)

→ 동물들은 그저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 곰은 화가 나서 (17쪽)

→ 곰은 부아가 나서


- 하지만 지금 당장 곰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다는 (21쪽)

→ 그렇지만 바로 여기에서 곰한테 잡아먹히기보다는


- 녀석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23쪽)

→ 녀석은 참말 어디 있느냐


- 물속으로 떨어지는 소리인 것을 알게 됐거든요 (27쪽)

→ 물속으로 떨어지는 소리인 줄 알았거든요



  우리 어른들은 한자말로 자꾸 ‘호수(湖水)’를 말하지만, 한국말은 ‘못’입니다. 곰은 ‘화(火)’가 아닌 ‘부아’나 ‘골’이 납니다. “먹고 있었습니다”나 “달아나기 시작했지요” 같은 말투는 부디 어린이문학부터 걸러내야지 싶습니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올바로 익히도록 돕는 그림책 노릇을 하도록 마음을 기울여 주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그대로 배웁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본 아이들은 능금이나 배나 돌을 물에 떨어뜨려 볼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떨어뜨릴 적에 ‘퐁’이나 ‘풍’ 소리가 나더라도, 막상 이런 소리를 이 소리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림책에서 본 대로 ‘풍덩’이라고만 말할 수 있어요. 때로는 ‘퐁당’일 텐데, 소리를 엉뚱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풍덩’은 사람쯤 되는 커다란 짐승이 물에 뛰어들 적에 나는 소리입니다.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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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38
이동진 글.그림 / 봄봄출판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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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8



고향과 시골

―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이동진 글·그림

 봄봄 펴냄, 2014.4.25.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인천입니다. 수많은 살림집이 다닥다닥 붙은 곳이 내 고향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공장이 잔뜩 몰린 데가 내 고향입니다. 서울로 보내는 물건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늘 매연과 쓰레기물이 쏟아집니다. 나와 동무는 늘 매연을 마셔야 했고, 쓰레기물 냄새를 맡아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동무들과 놀면서 공장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 동네나 학교 둘레에는 공장이 참 많지만, 놀 적에는 오직 놀이만 생각해요. 구슬땀을 흘리면서 놀고, 비지땀을 쏟으면서 흙투성이가 됩니다. 운동회 연습을 하느라 두어 시간씩 학교 운동장에서 뒹굴어야 할 적에는 잠자리처럼 홀가분하게 하늘을 날면서 놀고 싶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 여름 내내 시원한 들에 나가 살던 딱새가 가을이 오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떼 지어 돌아온 참새도 까치도 모두 우리 마을에서 추운 겨울을 날 것입니다 ..  (3쪽)



  국민학교를 다닐 때에는 아침 낮 저녁으로 온통 놀이였는데, 중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놀이가 사라집니다. 중학교를 다니는 동무들은 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동무는 ‘놀이’를 등돌린 채 술이나 담배나 당구로만 빠져듭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놀이는 없이 대학입시만 있고, 대학입시라는 굴레에서 빠져나오려는 몸짓만 있어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간 아이들은 무엇을 할까요. 대학교 아이들한테는 놀이가 있을까요. 갓 스무 살이 되면서 ‘어른 허락’이 없이도 술과 담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만 있지 싶습니다. 대학교를 마친 뒤에도 이와 같아요. 아이들은 중학교 문턱에 한발을 디딜 때부터 놀이가 없어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초등학교부터 놀이가 없지 싶습니다. 학교 이름은 ‘국민’에서 ‘초등’으로 바뀌었으나, 어릴 적부터 한자급수 자격증을 따도록 내몰리고, 영어를 더 빨리 배워야 한다는 등쌀에 시달리며, 갖가지 학원을 쳇바퀴처럼 돌아야 합니다.


  초등학교에 앞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놀이가 없지 싶어요. ‘놀이 체험’은 있을 테지만, 놀이가 없어요. 아이들끼리 복닥거릴 빈터가 없고, 아이들끼리 만나서 어울릴 마당이 없습니다.




.. “바람이 차다. 유라 옷 단단히 입혀라.” “알았어요. 다녀올게요.” 골목길에 노란 은행잎이 뚝 뚝 떨어집니다 ..  (10쪽)



  집과 동네와 학교에서 놀이가 사라지면서, 고향을 고향으로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느긋하게 지낼 틈이 없으니, 고향에 있더라도 고향을 느끼지 못합니다.


  고향이란 어떤 곳일까요. 태어난 곳이면 고향이 될까요. 어릴 적 뛰놀던 즐거운 이야기가 깃들지 못하는 곳을 고향으로 여길 만할까요. 입시교육만 받다가 서울로 떠나는 아이들한테 고향이 있을까요.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언제나 학원만 빙글빙글 돌던 아이들한테 고향은 어떤 빛이거나 내음이거나 노래가 될까요.



.. 동네 어귀, 우리 마을을 지켜 주는 나이가 오백 살도 더 먹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이 줄넘기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  (17쪽)




  이동진 님이 빚은 그림책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봄봄,2014)를 읽습니다. 그림책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는 시골자락 이야기가 흐릅니다. 짚을 얹은 지붕에 박이 열리고, 누런 소가 있으며, 오줌장군을 지게에 짊어진 아저씨가 있습니다. 밭일을 하는 아버지가 있고, 솥을 건 아궁이에 불을 때는 어머니가 있어요.


  이러한 그림은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새마을모자를 쓴 아저씨를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그림책에 나오듯이 경운기와 비닐집은 오늘날 시골에도 있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듯이 동생을 포대기로 업은 누나를 오늘날 시골에서 볼 수는 없습니다.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뿐 아니라, 들에서 들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오늘날 시골에서 볼 수 없어요. 노을을 바라보거나 가을빛을 한껏 누리는 아이를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찾아볼 수 없지요.


  우리한테 고향은 어떤 곳일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랐으나 입시교육만 받다가 도시로 떠난 아이들한테 고향은, 또 시골은 어떤 곳일까요.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오직 입시교육만 받다가 그저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지내는 아이들한테 고향은, 또 시골은 어떤 자리일까요.


  오늘날에는 고향을 어떤 곳이라고 얘기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시골에서는 손으로 모를 심거나 나락을 베는 일도 드문데, 무엇을 고향이나 시골로 삼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 산마루에 걸린 저녁 해가 쑥쑥쑥쑥 단숨에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하늘에 숯불을 쏟아부은 듯 빠알간 노을을 남겼습니다 ..  (24쪽)



  생각해 보면, 고향과 시골을 몽땅 잃은 채 살아온 나날은 아주 짧습니다. 우리 스스로 고향과 시골을 모두 등돌린 채 살아온 나날은 몹시 짧습니다. 기껏 백 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직 쉰 해가 안 되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시골은 나날이 더 줄어듭니다. 시골에 골프장과 관광단지와 공장과 발전소와 송전탑이 자꾸 들어섭니다. 아름다운 시골 들이나 숲은 사라지고, 어디에나 비닐밭이요 농약논입니다. 비닐을 안 쓰는 밭을 구경하기 어렵고, 농약을 안 뿌리는 논을 찾아내기 힘듭니다. 메뚜기와 잠자리를 어디에서 볼까요. 제비와 박쥐를 어디에서 보나요. 소쩍새나 뜸부기가 둥지를 틀 수 있는가요. 여우와 범은 어디로 갔을까요.


  참말 요새는 허수아비도 안 세웁니다. 농약을 뿌리면 새도 농약을 먹고 죽으니 굳이 허수아비를 세울 일조차 없습니다. 요새는 농협에서 헬리콥터를 띄워 농약을 뿌리기에 참새가 낟알을 쪼아먹을까 걱정하지 않고, 메뚜기가 낟알을 갉아먹을까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닐과 농약이 춤추는 시골에 젊은이와 어린이가 자취를 감춥니다.


  그림책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모습이리라 느낍니다. 1980년대 첫무렵까지 이와 같은 모습이었으리라 느낍니다. 아련하면서 아득한 빛이고 무늬입니다. 되찾거나 되살릴 길이 없지 싶은 모습이고 삶입니다.


  어느 쪽이 더 아름답거나 덜 아름답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고향이 고향다움을 잃고 시골에서 시골빛이 사라지는 흐름에서 고향과 시골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 하나 있으니 반갑습니다. 부디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아이들이 노을을 누리기를 바라고, 어른들도 하루에 몇 분이나마 짬을 내어 아이들과 하늘빛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4347.6.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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