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3.31.


《스티나의 허풍쟁이 할아버지를 찾아서》

 레나 안데르손 글·그림/김동재 옮김, 청어람아이, 2015.8.31.



해가 나오다가 구름이 덮는 하루이다. 해가 지고 나서는 구름이 걷히고 별이 나온다. 별이 제법 많지만 쏟아지지는 않는다. 낮하늘과 밤하늘이 어디로 갔을까. 볕바른 곳은 딸기꽃이 하얗고, 그늘진 곳은 딸기꽃망울이 여문다. 제비꽃은 그늘이 지건 볕이 바르건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보랏빛을 밝힌다. 비릿나물도 떡잎이 나오고 조금씩 벌어진다. 《스티나의 허풍쟁이 할아버지를 찾아서》는 아이가 두 할아버지 사이에서 어떻게 사랑받는지를 부드럽게 들려준다. 아이는 두 할아버지 사이에서뿐 아니라 바다하고 숲 사이에서 온하루를 노래하고 놀면서 사랑받는다. 할아버지도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도 할아버지를 사랑한다. 바다하고 숲도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도 바다하고 숲을 사랑한다. 아름답게 하루살림을 담아낸 그림책을 덮고서 돌아본다.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어느 만큼 짚거나 알거나 살필까? 허울로는 ‘사랑’이라는 낱말을 내세우지만, 정작 ‘사랑 척’이나 ‘사랑 시늉’이지는 않을까? 해와 바람과 비와 별이 우리를 사랑하는 줄 알아보는 이웃을 그린다. 해와 바람과 비와 별을 사랑하면서 온누리에 사랑씨앗을 심는 이웃을 그린다. 서울(도시)에서 살더라도 해사랑과 별사랑을 하는 이웃은 틀림없이 있으리라.


#Stinaochstortruten #LenaAnderson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4.1.


《백조 액추얼리》

 코다마 유키 글·그림/천강원 옮김, 애니북스, 2008.12.20.



해날이다. 해가 가득해서 ‘해날’이라고 적다가, 일본말 ‘일요일’을 ‘해날’로 풀어낼 적에 겹칠 텐데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레 가운데 하루를 가리킬 적에도, 해가 넘실거릴 적에도, 소리가 같은 ‘해날’을 쓰면서 해사하게 웃어도 어울리겠다고 느낀다. 뜨끈뜨끈 즐거운 하루이다. 딸기꽃은 늘어나고, 앵두꽃은 지고, 모과꽃이 벌어지고, 흰민들레도 하나둘 늘고, 텃노랑민들레도 죽죽 오르고, 쑥도 곧 뜯을 만하다. 〈책숲 1009〉를 글자루에 넣어서 읍내 나래터로 짊어지고 가서 부친다. 날이 확 풀리고 맑은데다가 바람까지 잔잔하니, 읍내로 마실을 나온 할매할배가 많다. 《백조 액추얼리》를 되읽었다. 꽤 잘 나온 그림꽃이다. ‘날개옷’ 이야기를 마음으로 읽고 느껴서 담아냈다. 그림꽃님이 선보인 다른 그림꽃을 뒤늦게 알아보면서 예전 그림꽃도 추슬러서 새로 읽는다. 우리가 오늘 짓는 말과 살림은 몇 해를 이을 만한 손길을 담을는지 어림해 본다. 두고두고 이을 사랑이 흐르는 말과 살림인가? 조금 반짝하다가 버려도 될 말과 살림인가? 나는 뜬말(유행어)을 아예 안 쓴다. 막말(욕)도 할 까닭이 없다고 본다. 모든 말은 누구나 스스로 마음에 대고서 심는 말이니, 늘 살림말과 사랑말과 숲말을 가려서 쓸 뿐이다.


#羽衣ミシン #小玉ユキ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 내음을 맡는 열세 가지 방법 - 냄새의 언어로 나무를 알아가기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책넋·책살림 2024.5.13.

까칠읽기 4


《나무 내음을 맡는 열세 가지 방법》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2024.4.24.



나무 내음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 깊이 스며 있다

→ 나무 내음은 우리 삶에 스민다

→ 우리 삶은 나무 내음이 깊다

8쪽

: ‘스미다’는 ‘깊이’ 있다는 뜻이다. 깊이 들어가기에 ‘스미다’이니, “깊이 스며”는 겹말이고, “스며 있다”는 옮김말씨이다. ‘우리의’에서 ‘-의’는 군더더기이다. ‘일상생활’은 일본말이다.



과수원과 숲의 냄새를 우리 집에 가져다준다

→ 과일밭과 숲냄새를 우리 집에 퍼뜨린다

8쪽

: 냄새는 ‘퍼지’거나 ‘퍼뜨린’다. 과일밭과 숲에서 냄새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얄궂은 옮김말씨이다.



코를 킁킁거리며 우리의 사촌인 나무와의 감각적 관계 속으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라

→ 코를 킁킁거리며 우리와 이웃인 나무와 만나자

→ 코를 킁킁거리며 우리 이웃인 나무를 만나자

9쪽

“나무와의 감각적 관계 속으로 +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라”를 돌아본다. 나무와 만날 적에는 느껴(감각)야겠지. “느끼는 사이를 이루도록 여행 준비”를 하자고 글멋을 부릴 수 있겠지. 그런데 “코를 킁킁거리며”라는 말에 이미 “감각적 관계 속”이라는 뜻이 스민다. “코를 킁킁거리”면서 “우리 이웃”인 “나무를 만나자”고 하면 된다.



향기 분자 수십 가지, 어쩌면 수백 가지의 찰나적 인상을 묘사하기 위해 형용사와 비유가 동원되지만

→ 향기알 가지가지, 어쩌면 온갖 가지로 이 한때를 그림씨로 담아내고 빗대지만

→ 향기씨앗 갖가지, 어쩌면 숱하게 이 댓바람을 그려내고 견주지만

15쪽

: 옮긴이는 ‘내음’과 ‘향기’를 섞어서 쓴다. 우리말은 ‘내·내음·냄새’이고, 맡기에 즐거운 내음을 ‘향긋하다’로 나타낸다. 우리말 ‘향긋하다’하고 한자말 ‘향기’는 소리 ‘향’이 같지만, 뿌리는 다르다. 나무 한 그루를 알아가려고 하듯이, 우리말 한 마디를 알아보려고 마음을 기울인다면, 문득문득 어느 한때를 알맞게 그리고 빗대어 볼 만하다.



친구들과 유쾌하게 어울리던 기억을 소환한다

→ 동무와 즐겁게 어울리던 일이 떠오른다

16쪽

: ‘소환’은 일본말이라고 여길 만하다. 일본말이기에 안 써야 할 까닭은 없다. 그저 이 글월에서는 어릴 적에 동무하고 즐겁게 어울리던 일을 ‘떠오른다’나 ‘떠올린다’로 적을 적에 ‘어울릴’ 뿐이다.



이 연결은 또한 생태적이고 역사적이다

→ 이 또한 숲빛으로 오래 이어왔다

→ 이 또한 푸르게 여태 이어왔다

18쪽

: 일본말씨인 ‘-적’을 붙이고 싶다면 어쩔 길이 없지만, 숲에서 자라는 나무를 헤아리자는 책이라면, 좀 푸른말과 푸른길을 생각해야지 싶다.



여름의 온기가 찾아오면

→ 여름이면

→ 여름에 더우면

→ 여름이 오면

23쪽

: 더운 철이라서 ‘여름’이다. 일본말씨에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차라리 “여름의 열기”가 맞을 텐데, 이 자리에서는 “여름이 오면”이나 “여름이면”으로 적으면 된다.



미국피나무의 향기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벌을 비롯한 곤충을 위한 것이다

→ 미국피나무는 사람이 아니라 벌과 풀벌레한테 향긋하다

→ 미국피나무는 사람보다는 벌과 풀벌레한테 향긋하다

27쪽

: 어느 나무이건 사람한테도 이바지하고 벌한테도 이바지한다. 꼭 누구를 콕 집어서 이바지하는 나무이지 않다.



인도와 교외 주택 사이의 좁고 긴 풀밭에서 신선한 목재 칩 더미 앞에 무릎을 꿇는다

→ 거님길과 모퉁이집 사이 좁고 긴 풀밭에 있는 나무조각더미 곁에서 무릎을 꿇는다

31쪽

: 일본말 ‘인도’는 ‘거님길’로 바로잡아야 알맞다고 퍽 예전부터 숱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손질했다.



세 그루가 더 벌목되었다

→ 세 그루가 더 잘렸다

→ 세 그루를 더 베었다

32쪽

: 나무 자리에서 보면 ‘잘리다’이다. 사람 자리에서 보면 ‘베다’이다. ‘-되다’는 잘못 쓰는 옮김말씨 가운데 하나이다.



이제 생태적으로 더 협소한 토대 위에 지어져야 한다

→ 이제 더 줄어든 풀숲에서 지어야 한다

→ 이제 더 졸아든 풀빛으로 지어야 한다

35쪽

: 풀숲이 줄어든다. 푸른 터전이 사라진다. 무엇을 지을 적에는 ‘터전’에서 짓는다. “터전 위”에서 안 짓는다. “협소한 토대 위에”는 옮김말씨하고 일본말씨가 섞인 슬픈말씨이다.



전 세계의 나무들이 우리 삶에서 어우러진다는 사실을 우리의 코와 혀에 일깨운다

→ 온누리 나무가 우리 삶에서 어우러지는 줄 코와 혀로 느낀다

47쪽

: 말짜임이 어긋난다. 이 글은 ‘사실을’을 임자말로 삼는데, ‘나무가’로 임자말을 바로잡아야 알맞다. “사실을 … 일깨운다” 같은 옮김말씨를 “나무가 …을 하는 줄 (사람이) 느낀다”로 손보아야, 이 글 앞뒤 이야기하고 어울린다.



나무들이 하늘로 뿜어내는 거대한 날숨은 비의 단초가 된다

→ 나무가 하늘로 날숨을 잔뜩 뿜어내기에 비구름이 모인다

67쪽

: 우리말씨로는 ‘-들’을 안 붙이기 일쑤이다. “비가 온다”라 한다. “비들이 온다”라 안 한다. “나무가 우거진 숲”일 뿐 “나무들이 우거진 숲”이라 안 한다. “잎이 푸르다”일 뿐, “잎들이 푸르다”가 아니다. “-의 단초가 된다”는 일본말씨하고 옮김말씨가 섞였다.



백미러에 매달린

→ 뒷거울에 매달린

71쪽

: 일본말 ‘백미러’를 섣불리 쓰지 말자. 이미 ‘뒷거울’로 고쳐써야 알맞다고 서른 해쯤 앞서부터 둘레에서 이야기한다.



…… …… 손볼 곳이 수두룩하다. 두 손을 들었다. 나무하고 풀하고 꽃이 사람 곁에서 어떻게 푸르게 우거지는지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기를 빈다. 어느 나무도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어느 풀도 일본말씨를 안 쓴다. 어느 꽃도 옮김말씨를 안 섞는다. 이웃말은 이웃말결대로 살피면서, 우리말은 우리말결대로 살리는 손길로 나아갈 적에 비로소 나무내음도 풀내음도 꽃내음도 온누리를 포근하게 어루만지리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
박순주 지음 / 정은문고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책넋·책살림 2024.5.13.

까칠읽기 3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

 박순주

 정은문고

 2024.3.25.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박순주, 정은문고, 2024)를 부산 어느 마을책집에서 읽었다. 처음에는 사려고 집었다가, 서서 다 읽고는 얌전히 내려놓았다. 몇 가지를 짚어 본다. 먼저 ‘고서점’은 일본말이다. 우리말은 ‘헌책집’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헌책방’이 올림말로 나온다. ‘헌책집’이라는 낱말은 이곳을 오래 드나들던 책손하고, 이곳을 오래 꾸린 책집지기가 썼다. 나는 1992년부터 헌책집을 드나들었는데, 이른바 일제강점기부터 헌책집을 드나든 할배라든지, 서른 해 남짓 헌책집을 꾸린 어르신은 ‘입말’로 ‘책집’이나 ‘책가게’라는 이름을 쓰셨다. 그리고 이분들은 ‘헌책집·헌책가게’처럼 ‘헌-’을 앞에 붙여서 쓰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수수하게 ‘책집·책가게’라고만 했다. 다만, 나는 처음에는 고지식하게 ‘표준국어대사전 올림말’인 ‘헌책방’이라는 낱말만 썼다가, 한참 뒤에 이르러서야 ‘헌책집’이라는 입말로 바로잡았고, ‘손길책집·손빛책집’처럼 새롭게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미 헌책집지기를 그만두거나 돌아가신 숱한 어르신한테서 “예까지 와서 책을 사는 분들은 그냥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아니야. 다들 한가닥 하는 지식인이거나 학자 분이시지. 그런데 이분들이 책을 살 때면 왜 이렇게 값을 후려치려고 하는지 몰라. 그래서 우리 집(책집)도 간판에 한자로 ‘고서점’이라고 적었어. ‘헌책’이나 ‘헌책집’이라고만 하면 어쩐지 무시하더라고. ‘헌책’이라고 하면 값싸게 50원이나 100원짜리 책이라고 여기고, ‘고서’라고 하면 10만 원이나 100만 원 책값을 불러도 안 비싸다고 여기더라고.” 같은 말을 익히 들었다.


나는 가난한 책벌레라서 일본마실은 엄두도 못 냈다. 아니 ‘책값을 안 쓰’면 일본마실이야 어렵잖이 할 수 있었다. 날마다 우리나라 온갖 책집을 여러 군데 들러서 책값을 써대니, 날개를 타고서 이웃나라로 마실할 짬이란 아예 없었다. 이러다가 2001년부터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과 자료조사부장 두 가지를 맡아서 했는데, 일터에서 ‘일본 출장’을 딱 한 판 보내 주었다. 출장을 보내 준다기보다는, 일터지기(출판사 대표)가 일본으로 ‘책을 사러 다녀오’는 길에 짐꾼 노릇이었다. 요새는 날개에 짐을 마음껏 못 싣지만, 2001년에는 ‘스스로 짊어질 수 있으면 200킬로그램’이 넘어도 짐으로 부칠 수 있었고, 돈을 더 안 받았다. 다시 말하자면, 2001년에 도쿄 간다 책골목으로 ‘짐꾼으로 출장’을 다녀올 적에 200킬로그램이 넘는 책꾸러미를 혼자 이고 지고 날라서 나리타나루로 갔고, 김포나루에 내려서 우리 일터까지 옮겼다. 이 짐꾼 노릇으로 쌔빠지는 줄 알았지만, 처음으로 일본책집을 돌아보았고, 간다(진보초) 책골목이 어떠한 책빛인지를 비로소 알아보고는 “사장님, 해마다 짐꾼으로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쭈었지만, 이듬해부터 ‘공항 수하물 요금’이 바뀌어서 더 일본마실을 못 했다. 왜냐하면 2001년 9월에 미국에서 터진 어느 일 탓에, ‘공항 수하물 규정’이 까다롭게 바뀌었고 ‘무게 제한’이 생겼다.


이러다가 2018년에 드디어 목돈을 스스로 모아서 두걸음째 간다 책골목을 누릴 수 있었고, 열여덟 해가 흘렀어도 한결같이 빛나는 책숨을 고루 느끼면서 “우리나라는 서울 청계천도 부산 보수동도 인천 배다리도 대전 원동도 청주 중앙시장도 광주 계림동도 대구 대구시청도 전주 홍지서림 둘레도, 나라뿐 아니라 지자체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하나도 안 살렸구나” 하고 느꼈다. 그러나 나라하고 지자체가 도와야 살아나지 않는다. 일본하고 우리나라는 ‘우리 스스로’ 책 곁에 어떻게 서느냐 하는 품새부터 다르다. 일본 책집지기 곁에는 ‘수수한 책벗’이 수두룩하다. 우리나라 책집지기 곁에는 ‘수수한 책벗’이 너무 적다. 우리나라에서 ‘책 좀 읽는다’는 분들치고서 ‘그분이 살아가고 일하는 마을에 있는 작은 헌책집을 한 달에 하루라도 드나들면서 책빛을 품는 분’이 드물어도 너무 드물다. 한 달에 하루는커녕 몇 해에 한 걸음조차 안 하는 ‘책 좀 읽는다’는 분이 넘친다.


생각해 보자. 도서관에 놓인 책이 헌책집에 꽂힌 책보다 먼지가 많이 쌓이고 손때를 더 많이 타서 지저분한 줄 몇 사람이나 눈치를 챌까? 헌책집지기는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책을 닦고 먼지를 턴’다. 이따금 ‘책먼지를 안 닦고 안 터는 헌책집지기’가 있다. 책먼지를 굳이 안 닦고 안 터는 헌책집지기는 “그냥 사람들이 더 싸게 사가기를 바라서 그냥 둬요.” 하시더라. 우리나라 도서관지기는 “책을 닦고 손질하기”를 하는 일에 어느 만큼 품을 들일까? 아예 안 하지는 않으리라만, 헌책집지기처럼 품을 들이는 곳을 아직 못 봤다. 헌책집에는 ‘책을 사러’ 오는 사람이 드나든다. 그래서 정갈하게 닦고 손질한 책은 이내 사라진다. 도서관에는 ‘책을 빌려 읽으러’ 오는 사람이 북적인다. 그래서 그야말로 손때를 많이 타고, 학교도서관을 보면 ‘책이 아닌 넝마’가 뒹굴기 일쑤이다.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는 너무 겉만 훑었다고 느꼈다. 겉훑기인 책을 굳이 사야 할 까닭이 없었다. 빛꽃(사진)도 아쉽다. 책집지기한테서 이야기를 듣는 얼거리에 치우친 나머지, 막상 다 다른 책집마다 어떻게 다 다른 책을 건사해서 다 다른 책손을 맞이하는가 하는 대목을, ‘글쓴이 스스로 느끼고 읽고 알아보면서 담아내지 못 했’다.


나는 1998년부터 오늘날까지도 ‘책집 빛꽃(사진)’을 찍는다. 나는 가고 또 가고 자꾸 가는 책집에서 늘 새롭게 찍는다. 여러 헌책집에서 그곳 하나를 찍은 사진만 이미 1만이 넘어가기 일쑤이다. 그렇지만 그 헌책집을 다시 찾아가면 또 새롭게 찍을 빛(모습)을 느껴서 다시 찰칵찰칵 담는다.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는 책을 너무 서둘러서 내려 한 티가 흐른다. 글도 빛꽃도 오래오래 지켜보면서 오래오래 단골로 드나드는 마음으로 여미고 담을 적에는 확 다르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다 다르게 책집마실을 해보자. 철마다 다르게 빛살을 느끼고 책을 만난다. 아침에 가 보고 낮에 가 보고 저녁에 가 보자. 때마다 다르게 빛발을 알아채고 책을 마주한다. 그리고, 어느 책집 한 곳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닐곱 시간쯤 가만히 머물면서 책을 읽어 보자. 이렇게 예닐곱 시간쯤 어느 책집에 머물면서 “이 책집에 깃든 책을 샅샅이 읽어” 가 본다면, 이동안 “아, 이곳을 빛꽃으로 담을 적에는 어떤 결을 살피면 되겠구나” 하고 다 다르게 느끼게 마련이다.


아이를 빛꽃으로 담을 적에도 매한가지이다. 아이는 하루 내내 끝없이 노래하고 춤추면서 다 다른 빛이다. 아이를 찰칵찰칵 찍을 적에는, “아이 하루”만으로도 두툼한 사진책 한 자락이 태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 헌책집뿐 아니라 일본 헌책집을 놓고서도 똑같다. 더구나 간다 책골목 아닌가? 2024년에는 간다 책집이 몇 곳인지 잘 모르겠으나, 내가 2001년에 책숲마실을 하던 무렵에는 헌책집이 161군데였고, 2018년에 책숲마실을 하던 때에는 150군데 즈음이었다. 적게 잡아도 100은 훌쩍 넘는다. 그렇다면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는 이 많은 헌책집 가운데 몇 군데 이야기를 담아내려 했는가? 100이 훌쩍 넘는 헌책집이 다 다르게 모이면서도 다 다른 하나로 어울리는 책빛을 어느 만큼 느긋하게 지켜보고 살펴보면서 얹으려고 했는가?


이리하여 나는 이 책에 ‘별 하나’조차 아깝다고 느낀다. 왜 이렇게 책을 서둘러서 냅니까? 왜 이렇게 헌책집을 겉훑기만 하고서 섣불리 글과 빛꽃으로 담습니까? 내가 헌책집을 1992년부터 다니면서 헌책집지기와 이웃 책손한테서 배운 숱한 살림 가운데 하나를 옮기면서 이 글을 맺으려 한다. “젊은이!” “네?” “젊은이는 여기 단골인가?” “단골이요? 턱도 없지요. 이제 겨우 열 해쯤 다녔을 뿐인데요.” “그래? 그렇지. 그러면 누가 책집 단골일까?”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으니 어르신이 가르쳐 주십시오.” “자, 보라고. 날마다 여기를 드나들어도 책을 안 사는 사람이 있어. 이 사람은 단골일까?” “음, 좀 생각해 봐야겠는데요.” “자, 그러면 여기에 가끔 와서 책을 한 트럭씩 사는 사람이 있어. 이 사람은 단골일까?” “아, 그런 사람은 단골이 아니지요.” “어느 책집을 놓고서 ‘단골’이라는 이름을 쓰려면 말이야, 적어도 스무 해에 걸쳐서 꾸준히, 그러니까 이레에 하루씩은 찾아와서 그 책집에서 2000권은 사서 읽어야 해. 그리고 제대로 ‘단골’이라는 이름을 쓰러면, 그 책집을 서른 해에 걸쳐서 꾸준히 드나들면서 그곳에서 사읽은 책이 3000권이 넘어야 해.” “아, 그럴 만하겠네요. 저는 이곳에서 산 책은 이미 3000권이 넘기는 했지만, 아직 스무 해쯤 더 다녀야 비로소 단골일 수 있겠네요.”


ㅅㄴㄹ


진보초 고서점 거리를 왔을 때가 기억난다. 오래된 습한 공기에 섞인 쾨쾨한 종이 냄새와 찌든 담배 냄새, 아직도 생생하다 …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된 곳임을 후각에서부터 상기시키는 그 특별한 냄새 말이다. (11쪽)


레트로한 분위기에 반해 젊은이들을 비롯해 남녀노소가 찾아온다. (33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남성성 #젠더 #퀴어 #동물 #AI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 기획, 김엘리 외 지음 / 서해문집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책넋·책살림 2024.5.13.

까칠읽기 2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김엘리와 여섯 사람·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

 서해문집

 2024.1.5.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읽었다. 여러 고장 마을책집을 다니다가 눈에 띄어서 반갑게 집어들었으나, 한숨을 내쉬면서 제자리에 놓았다. 석 벌째 되읽을 즈음에는 잊어버릴까 했으나, 넉 벌째 되읽고서는 좀 잔소리를 해야겠다고 느꼈다. 이를테면, ‘시골’에 안 살아 보고서 시골을 다루는 글을 ‘연구 논문’으로 냈다면 어떤 셈일는지 생각해 보자. 요즈음에는 ‘농민 기본소득’을 말하는 분이 제법 있고, 책으로도 나오는데, ‘시골’에서 살아가며 ‘땅(논밭)’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농민 기본소득’은 그저 구름떡이다. 그림떡조차 아닌 구름떡이다. 나는 2011년부터 전남 고흥 두멧시골에서 살아가는데, 이 두멧시골에서 살기 앞서까지 ‘땅 없이 빌려서 논밭을 부친 할매 할배’를 제대로 살피지 못 했다. 시골에서 살기 앞서까지 스스로 참 모르고 살았네 싶어 창피했다. 마을 할매나 할배 스스로 “난 머슴이었어. 종이었지.” 하고 읊으면서 사발로 불술(소주)을 들이켜는 어른을 으레 만났다. 시골살이를 하겠다면서 깃드는 여러 이웃과 젊은이도 비슷하다. 목돈을 쥐고서 시골로 오는 분은 드물다. 집도 빌리고 땅도 빌려서 ‘시골지기’로 살려는 분이 많다. 그렇다면, 집도 땅도 없이 ‘주민등록’만 시골인 ‘귀촌자’는 무엇일까? 이들 ‘귀촌 농부’는 ‘소작인’과 마찬가지라서 ‘무직자·실업자’에 든다. ‘농민’으로 들지 못 한다. 틀림없이 땅을 부치지만 ‘빌려짓기’를 하는 이들은 ‘농민’ 통계에 안 잡히고, 아주 마땅히 ‘농민 기본소득’ 울타리에 못 들어간다. 땅있는 분들은 너른땅을 쪼개기롤 해서 ‘서울로 떠난 딸아들’이나 여러 피붙이한테 나누어 돌리면, 이들은 너른땅 하나로 ‘농민 기본소득’을 몇 곱으로 받는다. 땅 없는 어버이 품에서 태어난 시골 어린이도 매한가지이다. ‘농촌 기본소득’이라는 이름과 얼거리로 뜯어고쳐야, 오랜 나날 머슴·종으로 고달팠던 흙지기 어르신한테 이바지하고, 시골살이를 하는 젊은이를 돕고, 시골에서 나고자란 아이들이 시골에 뿌리를 내리는 길에 밑받침을 이룬다.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돌아보자. 글쓴이가 굳이 싸움터(군대)를 다녀와야 싸움터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다. 또한, 싸움터를 누구나 아무 때나 드나들 수 있지도 않다. 얼결에 싸움터에 끌려갔어도 ‘노닥자리(땡 보직)’에서 지낼 수 있다. 곰곰이 보면 ‘군대 땡 보직’이 꽤 많다. ‘땅개(육군 소총수)’로 뒹구는 젊은 사내가 수두룩하지만, 여러모로 보면 오히려 적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땅개로 구른 슬픈 사내’를 20대·30대·40대·50대·60대·70대, 이렇게 나이에 따라서 두루 만나고 이야기를 귀담아듣는다면, 이 책은 얼거리도 줄거리도 사뭇 다르리라. 아무리 글감을 훌륭히 잡더라도, 책상맡에서 글자락만 붙들고서 싸움터와 싸울아비 삶길을 적으려고 한다면, 샛길로 빠지거나 ‘저놈은 군대를 모르는 채 썼네’ 하는 핀잔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이런 보기 하나를 들 수 있다. 나는 1995년 11월 6일에 강원도 양구군 동면 멧골짝(대암산·도솔산·대우산)으로 들어가서 늘 맨눈으로 금강산을 바라볼 뿐 아니라 펀치볼을 발밑에 두고서 한겨울에는 -47℃라는 온도계 숫자를 읽으면서 “압록강이나 중강진 북녘 또래는 얼마나 추울까?”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달랬는데, 도솔산 막사는 “365일 가운데 해가 드는 날이 7일”뿐이던 곳이라, 한 해 내내 마른옷을 입은 적이 없고, 눈이 내리면 사람이 쓸어낼 수 없어서 장갑차가 눈더미를 밀어내 주는데,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군부재자투표’를 ‘각티슈 상자’에 넣어서 했고, 나는 군생활 내내 김치를 먹은 적이 없다. ‘최하급부대’에는 김치도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도 ‘부식’으로 아예 안 왔다. 김치는 구경도 못 했으나 양배추는 멧더미처럼 받았고, 우리 부대 취사병은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김치 흉내’를 냈다. 이런 곳에서 1997년 12월 31일에 드디어 살아남아서 밖으로 나왔는데, 내가 머물던 막사는 1998년 3월에 닫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혹’한 막사라서 ‘정권이 바뀌기 앞서 얼른 없애(증거인멸)’기로 했다더라.


우리나라 싸움터는 이등병 적에는 누구나 피해자로 구르다가 상병을 거치면서 오히려 가해자로 뒤바뀌는 슬픈 굴레이다. 왜 이런 굴레일는지, 이 모진 굴레를 어떻게 풀어야 할는지 안 살피거나 너무 얕게 건드리고서 넘어간다면, 또 이 바보스럽고 안타까운 굴레에 시달린 사람들 마음을 다독이면서 새길로 풀어내려는 이야기를 짜지 않는다면, 군대를 다룬 연구 논문은 하나같이 허방다리일 수밖에 없다. 내가 있던 군부대에는 〈우정의 무대〉를 찍으러 안 왔다. 너무 깊고 멀 뿐 아니라, 웬만한 ‘비무장지대 지오피’는 촬영금지이다. 군대를 마친 뒤에 여러 또래한테서 〈우정의 무대〉 증언을 술자리에서 겨우 들었다. 〈우정의 무대〉를 찍은 여러 또래는, 땡볕이 내리쬐는 연병장에 양반다리로 꼼짝없이 앉아서 새벽부터 밤까지 화장실조차 못 가면서 “웃는 얼굴로 손뼉을 크게 치는 흉내(연극)”를 해대야 하는 짓에 시달리느라, “야, 차라리 완전군장을 하고 일주일 동안 먹지도 자지도 말고 걸으라고 할 때가 낫더라. 〈우정의 무대〉 녹화가 군생활에서 가장 힘들었어!” 하고 들려주었다. 민소매에 깡똥바지나 짧은치마 차림인 ‘걸그룹’이 나올 적에 호들갑을 떨면서 좋아하는 척하지 않으면 끝없이 다시 찍어야 했단다. 그러니까, 방송사는 ‘젊은 군인’을 얼간이로 뒤집어씌우면서 온나라 사람들을 속여먹은 셈이다.


‘군인·군대’라고만 하면, 어떤 일이고 곳인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낱말책에서 뜻풀이를 살핀들 두 갈래를 하나도 알 길이 없다. ‘군인’이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쓰러뜨려서 나라를 지키는 몫을 맡는 사람”이라 해야 맞고, ‘군대’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쓰러뜨리는 솜씨를 익힌 사람을 모아서 나라를 지킨다고 여기는 곳”이라 해야 맞다. 이른바 모든 ‘군대 훈련’은 “더 쉽고 빠르게 많이 사람을 잘 죽이는 솜씨”를 길들이는 짓이다. ‘군대 : 합법 살인 지대’요, ‘군인 : 합법 살인자’인 얼개이다. 이 얼개를 안 읽거나, 이 밑뜻을 몸으로 겪은 바 없다면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처럼 책상머리에서 붓대만 굴리는 먼나라 수다만 어렵게 꼬아서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싸움터(군대)를 보면, 숱한 ‘돈·이름·힘’이 없는 밑바닥 사내가 총알받이로 구른다. ‘돈·이름·힘’이 있는 놈은 운전병을 비롯해서 한갓진 자리를 맡는다. ‘군인·군대’는 ‘평화’하고 한참 동떨어졌다만, ‘군인·군대’가 터럭만큼이라도 ‘평화’에 이바지한다면, 순이(여성)는 운전병이나 정훈병이나 취사병이나 의무병이나 서무병을 맡을 수 있겠지. 군수공장이나 정비공장에서 순이도 일할 수 있다. 다만, ‘군인·군대’는 “다른 사람을 죽이고 쓰러뜨려서 나라를 지킨다”는 줄거리가 깊은 곳인 터라, 우리 삶터에 조금도 알맞거나 아름답지 않다. 날마다 “사람 죽이는 솜씨”를 ‘훈련’이라는 허울로 길들이는데, 이런 군대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숱한 돌이(남성)가 넋나가지 않고서 어떻게 버틸까? 붕뜬 말만 길게 늘어놓으면, 오히려 순이돌이가 서로 싸우는 불씨가 될 뿐이다. 우리부터 스스로 순이돌이가 어깨동무를 하면서 ‘평화’를 참답게 풀고 맺는 길을 찾을 노릇이고, “사람 죽이는 솜씨”에 길들면서 몸과 마음이 다치고 젊은날을 헛되이 버려야 한 딱한 ‘돈·이름·힘’이 없는 작은이를 보듬는 길을 열 때라야, 비로소 이 나라와 온누리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을 틔운다. 부디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기를 빈다. 군대 이야기는 ‘기록’이 아닌 ‘증언’으로 엮어야 맞다고 본다. 왜 그렇겠는가? 군대 민낯과 속낯은 ‘증언’ 아니고는 찾아볼 길이 없도록 깡그리 숨기고 감추고 가리면서 사람들 눈코귀입을 틀어막는걸.


ㅅㄴㄹ


[표준국어대사전]

군인(軍人) : 군대에서 복무하는 사람. 육해공군의 장교, 부사관, 병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 융병·융사

군대(軍隊) : 일정한 규율과 질서를 가지고 조직된 군인의 집단 ≒ 군·사도


[숲노래 낱말책]

군인 : 다른 사람을 죽이고 쓰러뜨려서 나라를 지키는 몫을 맡는 사람 (합법 살인자)

군대 : 다른 사람을 죽이고 쓰러뜨리는 솜씨를 익힌 사람을 모아서 나라를 지킨다고 여기는 곳 (합법 살인 지대)



군대에 가는 여성과 성소수자의 존재가 드러날 때에야 비로소 곱씹어진다

→ 싸움터에 가는 순이와 나란사랑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곱씹는다

→ 싸움터에 가는 순이와 무지개사랑이 있어야 비로소 곱씹는다

4쪽


국민의 군대이지만 국민은 군대에 관해 안전하게 말하지 못했다

→ 우리 싸움밭이지만 우리는 싸움밭을 느긋하게 말하지 못했다

→ 우리 싸움터이지만 우리는 싸움터를 근심없이 말하지 못했다

4쪽


군인들을 위한 유흥거리로서의 엔터테인먼트

→ 싸울아비를 달래는 놀거리

→ 총칼바치를 다독이는 놀잇감

2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