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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넘게 끙끙거린 끝에 겨우 책이야기 하나 마무리지었다. 읽은 지는 좀더 되었지만, 느낌글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를 놓고 갈팡질팡하느라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늘 마무리지은 책은 《청소녀 백과사전》(김옥/나오미양). 참 오랫동안 붙잡고 있어야 한 책이라서 막상 느낌글을 다 쓰고 난 뒤에도 책꽂이에 선뜻 못 꽂았지만, 다음 책을 또 하나 찾아서 붙잡아야 할 테지. 세상에는 참으로 좋은 책이 여러 가지 있는 만큼, 딱 하나에만 매일 수 없는 법이니까.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책 하나를 떠나보낸 뒤, 느낌글을 인터넷새책방 〈알라딘〉 게시판에도 올려놓는다. 길이가 제법 길어서 붙여넣기를 하는 데에도 몇 분 걸린다. 느낌글을 올린 뒤, 그동안 올린 다른 글을 가만히 살펴본다.

 흠, 그동안 올린 다른 느낌글을 보노라니 거의 모두 별 다섯을 붙여놓았다. 〈알라딘〉에서는 별 다섯을 잣대로 책느낌을 매기도록 되어 있다. 문득, 나는 왜 별 다섯을 이렇게 많이 붙여놓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글쎄.

 책이름을 하나씩 읊어내려가다가, 아하,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친다. 별 셋, 별 둘을 붙일 만한 책도 얼마든지 느낌글을 쓸 수 있겠지. 하지만 어차피 내 시간과 품과 땀을 들여서 쓸 느낌글이라면 ‘별 다섯(더러 별 넷)을 붙일 책만 추려서 쓰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나 혼자 읽는 책이라면 별 셋짜리건 별 하나짜리건 얼마든지 읽을 수 있지만, 굳이 다른 사람들도 읽도록 쓰는 느낌글이라면 ‘바쁘게 사는 이 세상 사람들한테는 별 다섯을 즐겁게 붙입니다!’ 하고 외칠 만한 책이어야지 하는 생각. (4340.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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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서점 -

- 대방 헌책방 -


 “나는 새장 속에 갇힌 새여. 평생 한 곳에 묻혀서 바뀌지 않는. 자네는 참 자유롭게 사는구먼.” ― 서울 연세대 건너편 〈정은서점〉 아저씨

 “나도 10년 전에는 헌책방 찾아다니는 게 취미였는데, 요새는 나갈 수가 있어야지. 앞으로 꿈이 있다면, 오토바이 뒤에 수레 같은 거 붙이고 헌책방 찾아 돌아다니는 거예요.” ― 서울 대방동 〈대방 헌책방〉 아저씨

 
 헌책방 아저씨들 겨드랑이에 새로운 날개가 돋아나 홀가분하고 시원하게 온 세상을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날이 찾아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꼭. (4340.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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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우리 아이 책벌레 만들기
폴 제닝스 지음, 권혁정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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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책벌레 만들기
- 글쓴이 : 폴 제닝스
- 옮긴이 : 권혁정
- 펴낸곳 : 나무처럼(2005.9.10.)
- 책값 : 1만 원


 어머니 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했거나, 나중에라도 책을 가까이했다면, 딸이나 아들된 사람들도 책과 가까이하리라 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을 가까이했거나, 나중에라도 텔레비전을 가까이했다면, 딸이나 아들 되는 사람도 비슷하게 영향을 받을 테고요.

 지난 열 해 사이, 어린이책이 참 많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린이책하고는 눈꼽만큼도 인연이 없던 출판사들도 어린이책을 펴내는가 하면 따로 부서를 꾸리거나 아예 새끼출판사를 차리는 곳도 있습니다. 그만큼 이 나라 어린이권리가 높아져서 어린이책을 이토록 많이 쏟아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요즘 어린이책은 웬만하게라도 찍어내면 기본은 팔리기 때문에 책 펴내 돈을 버는 데에는 딱 알맞습니다.


― 아동작가들은 좋은 이야기는 어른까지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63쪽)


 어린이책을 쓰는 사람은 어른입니다. 어린이책을 사는 사람도 거의 어른입니다. 하지만 읽는 사람은 거의 아이들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도움이 될 만한 책, 그러니까 교훈도 일깨우고 지식도 건넬 수 있는 책을 살피며 책을 사 줍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지, 아이들 눈높이에 걸맞는지까지는 못 살핍니다. 어른들이 보기에 괜찮다 싶은 책을 만들고 읽힐 뿐, 아이들이 참말로 즐겁게 받아들일 만한지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또한, 아이들 마음과 생각을 아름답고 올바르게 가꾸고 이끌 만한지는 더더구나 헤아리지 않습니다.


― 먼저 책을 사랑하는 마음부터 철저하게 가르쳐야 한다. (19쪽)


 왜 그럴까요? 다 까닭이 있겠지요. 어린이책을 쓰는 분들, 어린이책을 엮는 출판사 분들, 어린이책을 사 주는 어버이들은, 어릴 적부터 ‘어린이책을 가까이하지 않은 사람이기 일쑤’라서 그렇습니다. ‘나중에라도 어린이책을 가까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책은 교훈과 재미로만 엮을 수 없어요. 아이들 감성을 건드린다고 해서 읽힐 만한 책이 아닙니다. 발달단계나 지능지수를 살피며 읽히는 책이 어린이책일 수 없습니다.

 어린이책도 ‘책’입니다. 어린이도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린이책을 쓰거나 엮거나 사 주는 우리 어른들은 이 두 가지를 너무 손쉽게 잊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생각을 안 하는지 몰라요. 어린이책에 반드시 담겨야 할 이야기는 ‘책’에 담길 이야기와 마찬가지이며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기 마련입니다.


―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쓴 글을 읽을 때 철자가 틀린 단어도 그대로 읽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글의 가치를 줄어들게 하지는 않는다. (132쪽)


 어린이책을 쓰는 분들은 ‘자기가 쓴 책을 빼고 다른 어린이책을 몇 권이나 읽’어 보았을까요. 어린이책을 엮어서 펴내는 분들은 어떨까요. 어린이책을 사 주는 어버이들은 어떻지요? ‘아이들한테 읽힐 목적’만 앞세운 나머지, 자기 스스로 ‘어린이책을 책으로 즐기는’ 마음은 없지 않나요? 아이들 눈높이를 ‘낮게’ 보면서 아이들도 우리(어른)와 똑같은 ‘사람’임을 잊은 채 이야기를 엮어 나가지 않는가요?


― 당신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는 사랑받기를 원한다. 이런 사실을 책 읽는 상황에 주입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15쪽)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들을 곧잘 만납니다. 초등학교 교사를 가장 자주 만납니다. 이분들을 뵐 때마다 꼭 한 마디를 합니다. “어린이책 좋아하셔요?” 언제나 듣는 대답, “글쎄요.” 교육대학교 다니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꼭 한 마디를 합니다. “어린이책도 읽고 있나요?” 늘 듣는 대답, “시험 치기 바빠요.”

 교사가 되기 앞서 어린이책 한 권 제대로 읽은 사람은 몇쯤 될까요. 자기가 딸아들을 낳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기 앞서 어린이책 한 권 제대로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자기가 어린이책을 쓰는 작가가 되기 앞서, 어린이책을 펴내는 출판사 직원이 되기 앞서 어린이책 한 권 찬찬히 살피고 헤아린 사람으로 누가 있을는지.

 하지만 교보문고만 가 보아도 어린이책 자리는 북적북적 저잣거리가 따로 없습니다.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새 어린이책이 쏟아져 나옵니다. 어버이들은 이 책들을 부지런히 가방에 주워담고 카드로 책값을 직 긋습니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무섭게 “너, 오늘은 몇 권 읽어.” 하는 명령을 듣겠지요. 히유.

 적어도 이 나라에서 초등교육을 맡는 교사들이라도, 또 어린이책을 펴낸다고 하는 출판사 분들이라도, 또 어린이책 작가라고 자기 소개를 쓰는 분들이라도 《책벌레 만들기》 같은 책 하나 차분히 읽어 본다면, 세상이 이렇게까지 돌아가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4340.2.1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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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녀 백과사전 낮은산 너른들 2
김옥 지음, 나오미양 그림 / 낮은산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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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청소녀 백과사전
- 글 : 김옥 / 그림 : 나오미양
- 펴낸곳 : 낮은산(2006.10.30.)
- 책값 : 8800원


이 책 하나 12 ― 청소녀 백과사전
: 내 백과사전에는 무슨 이야기가 적힐까

 
 시골집에 있을 때면 입을 꾹 다물고 지냅니다. 이웃집이 없고(지난 섣달그믐날 그만 불이 나서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찾아오는 사람 없는 한편, 작은 방에서 홀로 책하고 씨름하며 살고 있거든요. 저라고 무슨 할 말이 없겠습니까만, 그저 새하고 별하고 해하고 바람하고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눌 뿐입니다. 때때로 천장에서 뛰어다니는 새앙쥐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한테는 제 속에 담은 말, 이를테면 ‘내 백과사전’에 담기는 말은 털어놓지 못합니다.


.. 내 나이 올해로 열세 살, 먹을 만큼 먹었다 ..  〈106쪽〉


 쉬가 마려워 신을 신고 밖으로 나가 풀밭에 볼일을 봅니다. 둘레가 퍽 밝다고 느껴져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달이 밝게 빛납니다. 아직 반쪽짜리 달이지만, 온 마을과 들판과 산을 하얗게 덮고 있는 눈 때문에 저리 밝게 보이네요. 얼어붙은 밤하늘이라는 말을 곧잘 들었는데, 오늘 밤하늘이 꼭 그 모습입니다. 달빛이 비쳐 하늘로 올라가는지 달 말고 다른 별은 잘 안 보입니다. 구름도 없는 이 밤, 멧새들은 일찌감치 서로 몸을 바싹 붙이며 잠들었지 싶습니다. 새벽만 되어도 창밖에서 부지런히 지저귀며 하루를 여는데.

 조용하군요. 지나가는 차가 없고 걸어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참 조용하군요. 해 떨어지고 밤이 되니 더 조용합니다. 어제그제 눈이 내려 읍내 마실을 못했으니 집구석에서 입을 열 일도 없습니다. 자리에 드러누워 밝은 노래를 틀어 놓고 흥얼흥얼 따라할 때, 밥을 먹을 때 잠깐잠깐 입을 엽니다.


.. “엄마도 화장하고 파마도 하잖아.” “나하고 너하고 같아? 나는 어른이고 너는 학생이잖아.” “그럼 엄마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딸 밥도 잘 안 챙겨 주는 거는 엄마 노릇 잘하는 거야?” 나는 울면서 소리쳤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누군 구누야 엄마가 좋아서 엄마 인생을 사는 거지. 나는 바보처럼 공부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해 보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살 거야. 그리고 절대로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엄마 눈이 휘둥그레졌다 ..  〈22∼23쪽〉


 1995년 4월, 부모님 집을 떠나 서울 이문동으로 살림을 옮기던 때가 떠오릅니다. 집에서 학교를 다니기에는 너무 멀고 찻삯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 즈음 저는 집에 붙어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집에서 크게 울려퍼지는 텔레비전 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새로 살림을 꾸리는 곳에는 텔레비전이 없어 좋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돌린 뒤, 신문사지국 형들과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간 다음, 학교도서관과 구내서점에서 시간제 일을 하고, 저녁에는 학교 앞 헌책방에 들른 뒤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여섯 달을 보낸 뒤 11월에 군대로 끌려갔습니다(우리 나라 군대는 강제징집제니까).


.. 의욕에 넘친 나는 사인펜을 들고 1면을 향해 돌진하다 말고 멈칫 했다. 가족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  〈52쪽〉


 군대 가기 보름쯤 앞서 부모님 집으로 잠깐 돌아옵니다. 하지만 잠깐도 못 있고 이날 곧바로 집을 다시 나갑니다. 아버지하고 크게 싸웠거든요. 싸움 빌미는 제가 벗어 놓은 옷(신문배달을 하며 입던 땀에 전 옷)을 아버지가 “이런 걸레를 아무 데나 두면 어떡해?” 하면서 제 속을 긁었기 때문. “걸레를 걸치는 사람도 걸레겠죠.” 하고 대꾸를 했고, 아버지는 “뭐야?” 하면서 주먹을 휘두릅니다. 저는 아버지 주먹을 막으며 밀칩니다. 아버지는 힘없이 나가떨어지고, 옆방에 있던 형이 나와 “야, 아버지한테 뭐 하는 거야?” 하며 제 따귀를 올려붙입니다. “그래, 내가 나가면 다 되겠네.” 하고 그 길로 부모님 집을 나왔습니다.


.. 수학여행 가서 지킬 일에 대한 교장 선생님의 기나긴 당부 말씀이 끝나고 드디어 버스에 올라탔다. 철이랑 나는 ‘맨 뒷자리에서 만나.’ 하는 눈빛을 서로 나누었다. 하지만 차에 먼저 타 있던 선생님은 통로에 버티고 서서 말했다. “여자는 오른쪽, 남자는 왼쪽. 키 순서대로 앉고 맨 뒷자리는 비워 둬라.”  좋다가 말았다. 키가 작은 나는 앞자리고 키가 큰 철이는 뒤쪽에 앉게 되어 우리는 견우 직녀처럼 떨어지고 말았다 ..  〈138쪽〉


 입대를 하루 앞두고 다시 부모님 집으로 돌아옵니다. 군대에 간다는 말은 안 했거든요. 아버지한테 “저를 보기 싫으면 안 보셔도 되지만, 앞으로 두 해 동안 볼 일이 없으실 테니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겁니다.” 하고는 큰절을 한 뒤 집을 나섭니다. 한참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가 아파트 툇마루에 서서 저를 배웅하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고 계신가? 고개를 돌리고 걷다가 다시 뒤돌아보니 어머니는 그대로 계십니다.


.. 평범하고 조용한 그 아이. 하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 애가 진짜 내 영웅이다. 나는 얼른 단짝인 애리 손을 꼭 잡았다. 지금이 바로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때 아닐까? ..  〈131쪽〉


 혼자 기차역에 가서 혼자 기차를 타고 훈련소에 닿습니다. 표를 두 장 끊었지만 같이 갈 사람이 없습니다. 수원쯤이었나, 어느 할머니가 힘겹게 올라타기에 “제 옆자리는 비었으니까 앉으셔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훈련소 둘레에는 부모며 애인이며 동무들이며 온갖 사람들하고 함께 온 사람들로 득시글득시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뭔 저런 꼴값을 떠나 하고 생각. 훈련소에 들어가 한 달 남짓 얻어맞고 구르고 흙과 땀에다가 갖은 욕을 먹습니다. 잘하면 욕, 못하면 욕에다가 주먹다짐. 문득문득 ‘이렇게 구르느니 바로 하사관 지원해서 나중에 이 훈련소 조교들한테 똑같이 앙갚음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생각을 할 틈조차 거의 없이 뺑뺑이로 한 달은 훌쩍 지나갑니다. 그리고 자대배치를 받아야 하는 날.


.. 비밀 정원이 우리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집은 손바닥만한 뜰조차도 없는 작은 아파트이다 ..  〈163쪽〉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운이 지지리 없다고 해야 할지, 저를 비롯한 얼마 안 되는 훈련소 동기들만 논산에 다시 남아 두 주 동안 새로운 훈련을 받게 됩니다. 새로 받는 훈련은 ‘주특기훈련’. 제가 서 있던 줄은 무반동총(106) 주특기훈련을 받습니다.

 운이 좋다고 한다면, 훈련병으로 한 달이 지났으니 어깨에 빨간 계급장 한 줄(요즘은 까만 계급장으로 바뀌었습니다)을 달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중에 들어온 훈련생들 앞에서 우쭐댈 수 있습니다(참 웃긴 일이지만). 운이 지지리 없다고 한다면, 두 주 동안 주특기훈련을 더 받는 우리들은 거의 모두(퍼센트로 따지면 99%) 최전방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것. 제 운명은 최전방으로 떨어졌는데, 그 최전방에서도 가장 앞에 있는 곳으로 가고야 맙니다.


.. “치, 그런 게 어디 잇어. 순 거짓말이잖아.” 엉터리 말에 나는 웃어 버렸다. 아빠는 늘 나를 즐겁게 해 주려고 애쓰지만, 나는 솔직히 부자인 별이네 아빠가 더 부럽다. 가난한 우리 아빠는 늘 보이지 않는 것, 만질 수 없는 것만 주니까 말이다. “우리 영자 사랑해.” 하며 내게 그려 보이곤 하는 사랑 모양도 두 팔을 내려 버리면 그뿐이고, 작년까지도 늘 잠들 무렵이면 해 주던 ‘사랑하는 따님에게 바치는 잘 자라 뽀뽀’도 아빠가 방에서 나가기도 전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별이네 아빠는 정말로 보이는 것들, 만질 수 있는 것들을 줄줄 풀리는 화장지처럼 끝도 없이 사 준다 ..  〈164쪽〉


 주특기훈련 두 주를 끝마칠 즈음입니다. 실기시험(사격 연습)을 치르는데, 저는 운이 좋게 ‘어깨쏴’와 ‘엎드려쏴’ 두 가지 쏘기에서 잇달아 10점 만점을 쏩니다. 사실, 이 실기시험에서 1점이라도 깎이면 누구라 할 것 없이 기나긴 얼차려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죽든지 살든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쏘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운은 저 말고 다른 동기들은 아무도 20점 만점을 못 쏜 덕분에 훈련을 마치고 부모님을 불러 드디어 면회를 하게 되는 날, 연대장 표창하고 휴가증 하나를 받습니다.

 넉 주 훈련소살이에 두 주 훈련소살이를 더하니 집에서는 소식이 뚝 끊어져 애가 무척 타셨던 듯.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워도 부모와 자식 사이였을까요. 다른 집 자식들은 넉 주 뒤에 면회 오라고 연락이 왔다는데 왜 너만 연락이 없었느냐고(두 주 동안은 편지도 쓸 수 없었으니),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아셨답니다. 어쨌든 면회 오시는 날, 주어진 시간은 무척 짧으니 단출하게 도시락쯤만 준비해 주시면 된다고 말씀드렸으나, 어머님은 무슨 잔치상 비슷하게 차려 오십니다. 그 무거운 걸 어찌 들고 오셨을꼬. 그런데 다른 동기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 고작 한 시간 면회에 그 많은 걸 어떻게 먹을까요. 하지만 여섯 주 동안 밥다운 밥 한 번 못 먹은 우리들은 게걸스럽게 잔치상을 입에 처넣습니다. 말할 틈 없이 바쁘게 우겨넣습니다. 물 마실 틈 없이 바삐 쑤셔넣습니다.

 짧은 면회는 끝. 이제 내무반으로. 조교들은 ‘그사이 잘 먹었느냐?’면서 히죽히죽. 꼬투리를 이것저것. 뭐가 문제라느니 뭐가 잘못이라느니. 데굴데굴. ‘한 시간 동안 잘 먹었으니 이제 되지 않느냐’고 한 마디. 괴로운 얼차려를 못 참고 게워내는 동기들 여럿.


.. 그럴 때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가슴이 아파 왔다. 마치 소중한 나만의 것을 빼앗긴 듯한 이 이상한 기분. 만약에 별이가 뽑히고 내가 떨어졌어도 선생님은 내게 낮은 음을 맡겨 주셨을까? 절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  〈180쪽〉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양구 보며 살아야지.”라는 짤막한 노래가 있습니다. 누가 지었는지,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는 노래입니다. 고달픈 군대살이를 하며 누군가 읊다가 입에서 입으로 이어온 노래이지 싶은데, 줄을 잘 섰거나 뒤가 든든한 녀석들은 대전이며 서울이며 춘천이며 살기 좋은(군인한테만) 곳에 자기 보금자리를 틀고, 줄을 못 섰거나 뒤가 하나도 없는 저를 비롯한 열여섯 사람은 열서너 시간 동안 눈이 가려진 채 기차를 타다가 춘천에서 내린 뒤, 군대짐차를 두 번 갈아타고, 배를 한 번 타고, 다시 군대짐차를 타고, 두 번 더 군대짐차를 옮겨탄 뒤 비로소 양구에 떨어집니다. 마지막 가장 밑바닥 중대까지 온 훈련소 동기는 모두 다섯. 자대에 떨어진 밤에도 눈은 펑펑 내렸고, 신병임에도 빗자루 하나 얼결에 받아들고 부지런히 눈쓸기를 합니다. 이튿날 새벽에도 일찌감치 깨워 빗자루 들리고 한 시간 넘게 산을 타라고 하더니 길을 쓸라고 합니다. 이 눈쓸기는 1995년 12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참 징하게 했습니다. 넉가래로 눈 예술품을 만들 수 있을 만큼.


.. 그동안 나는 학교에서 조금 삐딱한 아이였다. 눈부시게 흰 실내화를 신은 아이들 사이에 오직 나만 군청색 슬리퍼를 직직 끌고 다녔다. 앞뒤가 꽉 막힌 실내화는 답답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노랗게 염색한 단발머리를 늘어뜨려 한쪽 얼굴을 온통 가려 버렸다. 그러고는 아이들 몇과 화장실 구석으로만 몰려다니다가 선생님들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그냥 어른들이 싫었고 늘 어디론가 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모습은 모두에게 구제 불능의 삐딱이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우리 집 앞 커다란 교회의 지하실로 향하는 돌계단에서 몇 시간이고 조용히 책 속에 빠져드는 아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일요일이면 언덕 너머에 내가 좋아하는 그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어두워지도록 들판을 헤매고 다니는 싸돌이라는 것도 아무도 모른다 ..  〈90쪽〉


 1997년 12월 31일, 현역군인한테는 마지막 특명이 떨어져 엿새 일찍 전역을 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김대중 씨가 대통령으로 뽑히며 군대조직이 꽤나 많이 바뀌었더군요. 제가 전역하는 이듬해부터 예비군제도가 바뀌게 되었는데, 이렇게 바뀌는 제도에 끼워맞추려고 제 또래 동기들이 특명을 받았던 것.

 하지만 이 특명을 고맙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부처님오신날까지 눈이 내리는 양구 깊은 산골짜기를 떠나게 되어 홀가분했던 마음은, 버스 두 번 타고 서울에 내려 참으로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는 동안 어두워집니다. 뉘엿뉘엿 해가 기울어지는 한강이 내다보이는 그때, 제가 앉은 맞은편에는 생활정보지를 무릎에 얹어 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머리가 하얗게 센 양복쟁이 아저씨가 있었으니. 흔들흔들 하던 아저씨 머리는 콩 하고 문가 손잡이에 부딪히고, 그 결에 무릎에 얹어 놓은 생활정보지는 바닥으로 우수수. 퍼뜩 놀라 잠에서 깬 아저씨는 바닥에 흩어진 생활정보지를 엉거주춤 줍고.

 인천에 있는 부모님 집에 들어오지만 반기는 사람 없이 텔레비전 소리만 윙윙윙. ‘내가 지금 전역한 것 맞나?’ 윙윙윙거리는 아홉 시 새소식에는 ‘아이엠에프가 어쩌고 저쩌고’. ‘아이엠에프가 뭐지? 제기랄, 뭔지 몰라도 한 두어 달쯤 아무 생각 없이 좀 쉬어 보자. 너무 긴 이태였어.’


.. 오히려 엄마는 다른 애들 다 뚫는 귀를 나만 못 뚫은 채 있으면 더 걱정할 것이다. 행여나 내 자식이 귀 하나도 못 뚫는 용기 없는 바보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문제적인 아이들을 보면 근심스레 내 얼굴부터 살피는 분이 바로 우리 엄마다. 행여나 내 자식도 안 보이는 데서 저런 짓이나 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빠는 아무 눈치를 못 챘다. 저녁 밥상에서도 엊그제 본 내 학원시험 점수가 언제 나오는지, 얼마나 오를지만 궁금해할 뿐이다 ..  〈115쪽〉


 1998년을 맞이하고 닷새 뒤, 또다시 집을 나섭니다. 군대 가기 앞서 일했던 신문사지국에 전화를 걸었더니 ‘언제든 와.’ 하는 한 마디.

 눈칫밥 먹는 부모님 집에서는 하루도 더 있기 힘든 형편. 군대에 있는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을 수 없었기에 두어 달쯤 질리도록 책 좀 볼까 싶었지만, 나라살림도 힘든 판에 집에 밥벌레 하나가 얹혀졌다고 느끼셨는지.

 아무 미련 없이 짐을 꾸립니다. 집에 남아 있는 제 책과 짐은 얼마 뒤 짐차 한 대 불러서 모두 가지고 서울로 뜹니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 “엄마도 화장하고 파마도 하잖아.” “나하고 너하고 같아? 나는 어른이고 너는 학생이잖아.” “그럼 엄마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딸 밥도 잘 안 챙겨 주는 거는 엄마 노릇 잘하는 거야?” 나는 울면서 소리쳤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누군 누구야 엄마가 좋아서 엄마 인생 사는 거지. 나는 바보처럼 공부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해 보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살 거야. 그리고 절대로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엄마 눈이 휘둥그레졌다 ..  〈22∼23쪽〉


 그리고 2007년. 멋대로 살아가는 둘째아들은 다른 친척들 앞에 내보이기 부끄럽다며, 사촌동생 장가가는 날에 ‘오지 말라’는 말을 듣습니다. 곧 설 명절. 설 명절에는 집에 ‘오라’고 하실는지. 또 ‘오지 말라’고 하실는지. 전화를 걸어 한 번 여쭈어 보면 될는지. 어찌하면 좋을까요.


.. 문제아인 애들도 진짜 속까지 문제아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애들도 그게 편하니까 그런 척할 뿐이다. 어른들만 속고 있지 애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  〈14쪽〉


 제 ‘백과사전’에 담긴 이야기 가운데 몇 줄을 끄적여 보았습니다. 제 아버지 백과사전에는, 또 어머니 백과사전에는, 형 백과사전에는 무슨 이야기가 적혀 있을까요.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살아온 우리 식구들은 무슨 이야기를 당신들 백과사전에 적으셨을까요. 앞으로 그 백과사전에 적힌 이야기를 들여다볼 날이 있을까요. 부모님이나 형은 제 백과사전에 적힌 이야기를 들여다볼 날이 있을까요. 글쎄, 글쎄요. (4340.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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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가에서 물 뜨기


 - 1 -

 충주에 돌아온 뒤 땀에 전 옷을 벗고 부엌 수도꼭지부터 살핀다. 물이 안 나온다. 틀림없이 날이 풀려서 녹았을 텐데? 펌프 자리로 가서 뚜껑을 열어 본다. 전깃줄이 뽑혀 있다. 누군가 뽑은 듯. 전깃줄을 잇고 수도꼭지를 다시 살핀다. 아무 움직임이 없고 펌프 돌아가는 소리도 안 난다. 지난해 이웃집이 불타면서 펌프 부속도 불탔을까?

 하는 수 없이 윗마을로 올라가 물을 뜨기로. 물통을 가방에 담고 느릿느릿 고갯길을 올라간다. 수도꼭지를 틀면 철철철 나오는 곳에서 뜰까 하다가 아기 오줌줄기보다도 가늘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샘가에서 물을 뜨기로 한다. 글쎄, 이런 물줄기로 받는다면 어느 세월에 한 통을 받을까 싶지만, 물통 뚜껑을 받쳐서 똑똑똑 떨어지는 물을 몇 방울씩 받으며 조금씩 물통을 채운다.

 쪼그려 앉은 채 물을 뜬다. 아주 조금씩 차오르는 물통이 1/10, 1/7, 1/4, 드디어 반쯤. 몇 분쯤 흘렀을까. 삼십 분도 넘은 듯한데.

 틈틈이 허리를 편다. 고개를 들어 새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며 어느 나뭇가지쯤 앉아 있나 찾아본다. 하지만 아무 새도 안 보인다. 안경을 안 써서 그렇기도 하지만, 내 주먹만큼도 안 되는 조그마한 새들이겠지. 박새, 콩새.

 오랫동안 똑똑 물줄기를 받노라니 물소리 하나하나 퍽 큰소리로 들린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소리도 제법 큰소리로 들린다. 샘터 바닥에 가라앉은 모래를 보고, 물 한 모금 떠서 손가락으로 이닦기를 하고, 따사로운 햇볕을 냠냠 받아먹고, 서늘한 낮공기를 큼큼 들이키고.


 - 2 -

 샘가에서 물을 뜨는데, 윗마을 공동체학교에서 지내는 아이 둘이 개를 풀어서 내 뒤까지 끌고 온다. 이상한 사람이 와서 쫓아내려고 그러나? 그 개는 아주 어린 새끼였을 때부터 가까이서 보아 온 녀석. 이 녀석은 어릴 적 이웃 개한테 잘못 물려서 거의 죽다가 살아났다. 얼굴을 보면 한쪽으로 뒤틀려 있다. 새끼였을 때는 퍽 불쌍하다고 느꼈는데, 다 자란 뒤 나를 보고 컹컹 짖는 모습을 보면 정나미가 떨어진다. 다른 개들은 나를 보고 안 짖고 안기거나 얌전히 있는데 이 녀석만 짖는다. 하지만 모르지. 개가 짖는 소리에 무슨 뜻이 담겼는지 사람 생각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가.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왜 개를 끌고 내 뒤에 서는가. 할 말이 있으면 입으로 하든가, 보기 싫으면 나가라고 하든가. 이 아이들은 한 마을에, 그것도 바로 위아래에 나뉘어 있는 집에서 사는 사람을 모르는가. 하긴, 나도 이 아이들 얼굴이 낯설다. 아마 서로 얼굴 마주칠 일이 없어서 그럴 테지. 어른인 내가 아이들 얼굴을 잊지 않고 떠올린다고 해도, 아이들이 어른 얼굴을 모두 떠올리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자(이 아이들하고 가까이 지낼 일은 없지만 이래저래 스치며 여러 번 보기는 했으니까).

 등 뒤에서 바로 개 짖는 소리를 들으니까 물을 뜨던 손이 떨린다. 파르르. 다른 사람도 아닌 아이들한테, 그것도 공동체 대안학교에 다닌다는 아이들한테 도둑이나 이상한 사람으로 의심을 받고 있으니. 조금 뒤, 이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 가운데 오랫동안 가까이 지냈던 아이 하나가 나를 알아보고 “야, 최종규 선생님이야.” 하고 왜들 그러느냐고 이야기. ○○○구나. 히유. 한숨이 나온다. 그렇지만 개를 끌고 온 아이들이 내 이름이 뭔지, 내가 어디에서 사는지,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 턱이 없을 테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안다 한들 달라질 것 없겠지.


 - 3 -

 한참 물을 뜨다 보니 손과 발이 얼었다. 처음에는 몸에 땀이 후끈후끈 올라왔다. 자전거 타고 살림집에 닿은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그래서 샘가에서 얼굴 씻고 발 씻을 때 시원함만 느꼈으나, 한참 쭈그려 앉으며 물을 뜨는 동안 허리도 쑤시고 손발도 시리고. 하지만 물통은 언제 찰는지 까마득하고.

 그렇지만 똑똑똑 떨어지는 물줄기를 쏴아아 흐르도록 할 수 없다. 무슨 기계로 빨아들인다한들 더 빨리, 더 많이 나올 수 없다. 그저 지금 이 빠르기대로, 이 흐름대로 받을 뿐이다. 억지를 쓴다고, 꾐수를 쓴다고 달라지겠는가. 조바심을 낸다고, 안달을 한다고 바뀌겠는가. 말없이 기다릴 뿐이다. 그저 있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추운 겨울, 물이 얼어붙는 시골집에서는 으레 견뎌야 하는 일이며, 몇 방울밖에 안 떨어지는 물줄기라도 고맙게 느껴야지.

 문득, 물 한 동이 뜨려고 십 리나 이십 리 길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다녀야 한다는 사막마을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 아이들과 견주면 나는 얼마나 수월한가. 이만한 물줄기라도 하늘에서 내려준 복이 아닌가.


 - 4 -

 물은 반 조금만 더 받는다. 개 짖는 소리 듣기 싫고, 손발도 많이 얼었다. 밥할 만큼은 떴으니, 이것으로 넉넉하다. 다음에는 자전거 타고 휭 왔다가, 다시 자전거 타고 휭 사라져야지.


 - 5 -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늙은 감나무 옆에서 쉬를 보다. 올해에도 감 몇 알 열어 주시겠지. 내가 이 감나무한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시골집에 있을 때 틈틈이 올려다보거나 쓰다듬어 주기, 때때로 오줌을 주기. (4340.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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