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63


《少年》 第一年 第一卷

 최창선 엮음

 新文館

 1908(隆熙 2).11.1.



  헌책집은 아름터였습니다. 갓 나온 책은 신문사 보도자료로 맨 먼저 들어갔다가, 문화부 책상맡에서 날마다 숱하게 버려집니다. 이렇게 버려진 책은 우르르 고물상·폐지수집상으로 가는데, 헌책집 일꾼이 이 가운데 알찬 아이를 건져냅니다. 오래된 책은 여러 도서관에서 먼지를 먹다가 한꺼번에 버려집니다. 이처럼 버려진 책도 헌책집 일꾼이 먼지를 옴팡 뒤집어쓰면서 알짜를 캐냅니다. 이 나라 숱한 헌책집을 돌아다니면서 ‘투박하고 시커먼 헌책집 일꾼 손’이야말로 책밭을 가꾸고 책사랑을 펴며 책꽃을 피운 별빛이네 하고 느꼈습니다. 서울 용산 헌책집 〈뿌리서점〉에서 《少年》 第一年 第一卷을 만나며 깜짝 놀랐습니다. 깜짝 놀란 저를 본 헌책집지기는 “허허, 원본 같지? 그런데 원본이 아녀. 축쇄판이야. 감쪽같지? 그런데 자네도 《소년》 창간호가 갖고 싶나? 한 십만 원만 치를 수 있으면 원본을 찾아 줄 수 있는데.” 1995년 봄에 수원병무청에서 군입대신체검사를 받는데 군의관은 저더러 “이봐, 병원 가서 10만 원짜리 진단서 떼오면 자네는 면제야. 왜 안 떼오나?” 하고 타일렀어요. 1995년에 신문배달을 하며 한 달에 16만 원을 벌었습니다. 10만 원, 참 애틋한 값입니다. 그때 10만 원을 쥘 수 있었다면 전 뭘 했을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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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62


《萬葉集》

 高木市之助·久松潛一 엮음

 中興館

 1927(昭和 2).8.5.



  조선총독부는 1924년에 ‘京城帝國大學(경성제국대학)’을 세웁니다. 일제강점기에 선 이곳은 일본 제국주의가 마음껏 이 나라를 거머쥐려고 하는 뜻을 가르친 터전입니다. 대학교에는 마땅히 도서관이 있지요.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은 일본사람·조선사람 모두 일본 우두머리를 섬기고 조아리도록 채찍질을 하는 책을 건사했을 텐데, 이 가운데 하나로 《萬葉集》이 있습니다.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붉은글씨가 또렷한 이 책은 어떻게 ‘서울대 도서관’에 안 남았을까요. 일부러 버렸을까요. 서울대 도서관이 좁은 나머지 해묵은 일본책은 내다버렸을까요. 한국은 어느 대학교이든 도서관에서 책을 꽤 버립니다. 여느 도서관도 꾸준히 책을 버려요. 그동안 일제강점기 책을 참 많이 버렸던데, 이 가운데 헌책집 일꾼이 알아본 책은 고물상·폐지수집상에서 물벼락을 맞다가 가까스로 살아납니다. 1927년에 일본에서 나왔다가 경성제국대를 거치며 해방을 맞이한 책 하나는 2005년 2월에 노량진 헌책집 〈책방 진호〉에 들어옵니다. 책집지기님은 “허! 누가 이 책을 알아보나 했더니, 자네가 알아보고 사가는구만! 잘 배워 보시게!” 하면서 팔아 주었습니다. 옛적 일본 수수께끼는 옛적 한겨레하고 잇닿는다지요. 두 나라 앞길은 어찌 될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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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61


《파파라기》

 에리히 쇼이어만 글

 두행숙 옮김

 둥지

 1981.10.31.



  《빠빠라기》란 이름으로 1990년에, 또 2009년에, 마치 바람을 몰듯 다시 나와서 읽힌 책이 있습니다. 2020년 즈음을 맞아 새삼스레 읽힐 만할까 모르겠는데요, ‘현대 물질문명 돌림앓이’가 들불처럼 퍼지는 이곳에서 이 책을 곰곰이 되읽으면서 오늘 이 삶자리를 차근차근 짚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서, 쓰고, 버리고, 또 사서, 또 쓰고, 또 버리기를 되풀이하는 오늘날은 이 별을 망가뜨리면서 우리 스스로 죽음길로 내모는 짓이에요. 사람이 날마다 누는 똥오줌조차 땅한테 돌아가지 못하는 판이요, 사람이 날마다 버리는 쓰레기는 땅을 더럽히기만 합니다. 나라일꾼이나 살림일꾼은 이 얼개를 사랑으로 추스를 낌새가 없어 보입니다. 목돈을 더 들여서 더 때려짓고 더 때려부수려는 삽질로 자꾸 흘러요. 더구나 배움터라는 곳은 수업·입시 틀에 갇힐 뿐,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손수 하루를 지어 스스로 살림을 가꾸는 배움길하고 동떨어져요. 정치 우두머리도 그렇지만 교육부 벼슬아치도 ‘개학을 4월로 미뤘는데 더 미루느냐 마느냐’만 따질 뿐, ‘이제는 무엇을 배울 때인가’를 되새기지 않아요. 그나저나 1981년에 진작 《파파라기》란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파파라기·빠빠라기’는 ‘하늘을 찢는 이·별을 부수는 이’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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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19.12.29. 틈새

한자말 ‘시공’은 “시간 + 공간”입니다. 두 한자말을 줄여서 쓰는 셈인데요, 한국말로 ‘때 + 곳’을 엮어서 ‘때곳’으로 쓰면 재미있겠네 싶어요. “때와 곳”이라고 익히 쓰니, 이 말씨를 간추리는 셈입니다. “놀 틈이 없다”나 “들어갈 틈이 있다”처럼 ‘틈’을 써요. 비슷하게 ‘사이·새’도 이렇게 쓰고요. 곰곰이 보면 ‘틈’이나 ‘새’라는 낱말은 저절로 ‘시공’을 가리키는구나 싶어요. ‘틈새’처럼 두 낱말을 붙여서 쓰기도 하는데, 이때에는 ‘틈’이나 ‘새’를 힘주어 나타내는 셈이겠지요. ‘틈새’라는 낱말을 혀에 얹어서 헤아려 봅니다. 느긋하게 무엇을 하는 자리에서, 비었구나 싶은 흐름을, 아주 짧게 지나가는구나 싶은 때를, 무엇을 하는 때나 자리를, 이때하고 저때하고 벌어진 어느 때를, 갈라지려고 하는 곳을, 쪼개거나 나누거나 벌리는 데를, 모자라거나 아쉽네 싶은 모습을, 텅 비었네 싶은 결을, 아무것도 없구나 싶은 모습을, 그야말로 여러 곳에 다 다르면서 얼핏설핏 비슷한 숨결로 흐르는 낱말이 ‘틈새’이네 싶습니다. 조그맣구나 싶어도 이 틈새를 살려서 생각을 살찌우고 마음을 꽃피우는 씨앗을 심어요. ㅅㄴㄹ

때곳·때와 곳·길·틈·사이·틈새 ← 시간과 공간, 시공, 시공간
틈새 ← 여유, 여지, 공간, 찰나, 시간, 기회, 간격, 격차, 여가, 여건, 시차, 균열, 간극, 갭, 현격, 허(虛), 허점, 약점, 융통성, 구실(口實), 거리(距離), 사각지대, 괴리, 공백, 이견, 이격, 이질적, 무방비, 촌극(寸隙), 촌각, 중간, 시공, 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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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망소녀 히나타짱 1
쿠와요시 아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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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만화책시렁 268


《할망소녀 히나타짱 1》

 쿠와요시 아사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7.11.15.



  아침에 잠을 깨면 되살아난다고 느껴요. 어릴 적에는 어렴풋하게, 이제는 새삼스레 느껴요. 어제까지 아프던 데가 누그러지고, 어제까지 지끈거리던 일을 풀어냅니다. 거꾸로 어제까지 잘되다가 오늘 막힌다든지, 어제까지 멀쩡하다가 오늘 망가지기도 할 테지요. “눈을 감다”는 ‘죽다’하고 ‘잠’을 함께 나타냅니다. “눈을 감다 = 몸을 내려놓기”라고 할 만해요. 밤새 몸을 내려놓기에 어제하고 달라지고, 목숨을 다하고서 몸을 내려놓기에 새로운 몸을 찾아가서 태어나요. 《할망소녀 히나타짱》 첫걸음은 할머니로 죽음을 맞이한 분이 어느새 다른 몸을 입고 태어난 이야기를 다룹니다. 눈을 감은 할머니는 손자가 마지막으로 외친 눈물겨운 말을 들으면서 움찔했고, 이 말을 되새기면서 다시 태어나지요. 아쉬운 일이 있으니 삶을 못 놓았을 테지요. 예전 일을 다 잊었다면 그냥 ‘어린 가시내’일 테지만, 예전 일을 고스란히 알기에 ‘할망가시내’인 셈인데, 우리가 둘레에서 으레 마주하는 ‘늙은네같이 구네’ 싶은 이웃도 예전 살림을 고스란히 품은 셈일 수 있어요. ㅅㄴㄹ



‘내가 할머니란 건 일단 비밀. 왜냐면 자기 애가 갑자기 할머니란 걸 알면 실망할 테니까.’ (10쪽)


‘죽었다 했더니 어린애가 될 줄이야. 어쩌면 여긴 천국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14∼15쪽)


‘할망구 눈에는 애들답고 기운차게 뛰어노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 그렇게 말하면 화낼지도 모르겠구먼.’ “초조해하지 않아도 자연히 어른이 되어갈 거란다.” (66쪽)


“바다다. 변하지 않는 곳도 있었어.”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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