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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마단 사람들
오진령 지음 / 호미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곡마단 사람들
 - 글 / 사진 : 오진령
 - 펴낸곳 : 호미(2004.1.15)
 - 책값 : 12000원


 '곡마단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 동춘서커스단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


 <1> 곡예사와 관객


 어릴 적 제가 살던 인천에도 동춘서커스단이 꽤 오래 머물렀습니다. 한창 지는 별이었던 동춘서커스단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우리 고향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또 제가 사는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고 신나게 보고 동무들하고 얘기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저는 나이가 들고 이것저것 보고 배울 때까지 '동춘서커스단'이 이 모임을 만든 '박동춘' 씨 이름에서 왔다는 걸 몰랐습니다. 인천에 '동춘동'이란 곳이 있는데 거기에서 나온 모임이 아니냐고 생각했어요.

 동춘서커스단은 지금 나라안에 딱 하나 남은 서커스단입니다. 지금 이 서커스단을 이끄는 박세환 단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 "서커스를 보면서 울고 웃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저 사람들의
 웃음과 감동을 뺏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동춘은
 내 것이 아니고 관객들의 것,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 <28쪽>


 서커스. 저는 서커스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커스를 보며 받는 감동과 웃음과 눈물이 어떠한지를 잘 몰라요. 다만 "공연을 보고 나서 하루 종일 회상에 젖어 주위를 떠나지 못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철 지난 양복을 빼어 입은 어느 할아버지는 비싸다며 기어코 천 원을 깎아 표를 산다. 서커스 사람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어느 엄마가 아이에게 말해 주는 소리도 들려오고, 대낮부터 술 냄새를 풍기는 중년 남자<22쪽>"도 보는 서커스를 생각해 봅니다. 어떤가요? 동춘서커스단은 "웃지 못했다면, 재미없다면 입장료 반환합니다"란 푯말을 큼직하게 써붙이고 공연을 한다는데 아직까지 입장료를 물어 내라 한 사람이 없었대요.

 누구나 찾아오고, 모두들 공연에 흠뻑 빠지고 즐긴달까요. '불쌍한 사람'이 아닌 '삶을 즐기고 곡예를 즐기는 사람'인 곡예사이나 공연을 즐기는 우리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합니다. 어느 나라는 곡예를 가르치는 전문학교도 있고 나라에서 뒷배도 하지만 우리 나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배 곯고 불쌍하고 할 짓 없는 년놈들이나 하는 일을 '서커스'라 여기면서도 서커스를 보러 오기 주저하지 않는 우리들이에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누가 곡예사이고 누가 관객일까요?


 <2> 똑같은 사람 삶인 곡예사 삶


 .. 그들이라고 왜 두렵지 않겠는가? 곡예를 하다가 떨어져 몇 번씩
 병원 신세를 진 그들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처럼 아름다운 비행을 하고 있다 .. <54쪽>


 곡예사는 날마다 수없이 하늘을 납니다. 관객은 하늘을 나는 사람을 멀거니 구경합니다. 하늘은 누구나 날 수 있고, 하늘을 날며 느끼는 짜릿함이란 누구에게나 즐거울 텐데 우리들은 그저 구경만 합니다.

 곡예단 사람들 사진을 찍은 오진령 씨는 1998년부터 여섯 해 동안 곡예단 사람들과 함께 다니며 사진을 담았답니다. 어느 날 본 서커스 공연에 꼼짝도 못할 만한 감동을 받아 사로잡힌 그이는 서커스 사람들과 가까이 있고 싶었답니다. 여섯 해 동안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아가 열흘씩 함께 지내며 살았답니다. 처음에는 구경만 하던 오진령 씨였는데, 곡예사들과 함께 지내며 곡예사들에게도 '자기와 똑같이' 소박하고 자유롭고 진정 어린 삶을 살아가지만 순정하고 여린 탓에 생채기를 많이 받는 모습에 함께 가슴 아팠답니다.

 곡예사 가운데에는 자기과 같은 나이 동무가 있었답니다. <곡마단 사람들>에는 그 동무 이야기가 곧잘 나오는데, 어느 날 곡예사 동무와 함께 놀이공원에 갔다죠.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이나 88열차도 함께 탔다는데 그렇게 무서워하더랍니다. 줄 타는 곡예사인 그 동무가 말이죠.


 .. 줄 타는 곡예사가 고작 바이킹 따위에서 그렇게 무서워하는 것이
 처음에는 의아스러웠다. 그 공포심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래, 곡예사라고 해서, 줄을 탄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
 다. 그들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느낀다. 다만 날마다
 그 큰 두려움을 견디는 것일 뿐이다 .. <156쪽>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곡마단 사람들' 삶을 사진과 글로 알뜰히 담은 <곡마단 사람들> 머리말을 읽습니다. 오진령 씨는 우리들에게, 그러니까 서커스를 겉으로 구경만 하는 우리들에게 "서커스를 어린 시절의 과거 한때의 추억으로 돌려 버리고 외면"하는 우리들에게 말을 겁니다. 동춘서커스단에 있는 곡예사들은 "팔십 년 가까운 역사를 등에 지고서, 곡예사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으며, 오늘도 사람들을 재미와 감동으로 울고 웃게 하면서 한 해 내내 전국을 유랑하고" 있다고. "과거가 아닌 오늘의 것"으로 서커스를 바라보면 좋겠다고요.


 <3> 소중한 이야기가 아닐까


 곡마단 사람들은 열흘 걸려 공연할 천막을 세운답니다. 공연이 끝난 뒤 걷어 내릴 때에도 닷새 남짓 걸린답니다.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이 전국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형편이기에 제대로 연습할 짬이 없고 새로운 곡예를 갈고 닦을 짬이 없답니다. 한겨울 공연이 없을 때에는 노동판에 나간다는 그이들. 여느 때에 20~30미터 되는 곳도 너끈히 올라가던 사람들이라 건물을 높이 쌓는 노동판에서 인가가 '가장 좋답'니다. 인기 있고 돈 많이 버는 운동선수들은 한겨울에 따뜻한 나라로 가서 '전지훈련'을 하지만 곡마단 사람들은 살림돈을 벌고자 노동판에 갑니다.

 "곡예사로 꼭 성공해서 사람들 기억 속에 남고 싶"은 이들이 곡마단에, 동춘서커스단에 있습니다. 그리고,


 .. 공연장 밖에서 손님을 맞는 원숭이들에게 사람들은 인사 치레인 양
 손가락질을 하거나 무언가를 집어던지곤 한다. 그러나 정작 원숭이들
 은 사람들의 그런 무례한 행동도 재치 있게 받아넘기는 아량을 보인다.
 서커스와 동고 동락해 온 오랜 연륜을 그들에게서 느끼게 된다 .. <148쪽>


 는 이야기에서 보듯 곡마단과 함께 다니는 짐승들은 거의 놀림감입니다. 하지만 곡마단 사람들에게 '함께 공연하는 짐승'들은 둘도 없는 벗이요, 아낌없는 동무예요.

 책을 두어 번 되풀이해서 읽고 보다가 이제는 덮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난 뭐하러 <곡마단 사람들>이란 책을 사서 읽었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곡마단 이야기를 뭐하러 보았는지, 보면서 무슨 느낌이 들었는지를요.

 사회에서 푸대접받는 사람들 이야기라서 가슴 아프게 읽었는지?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는 우리들이라, 곡마단 사람들 이야기를 제대로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는지?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호기심인지? 찬찬히 헤아려 보지만 뚜렷한 실마리는 잡히지 않습니다. 그저 곡마단 사람들이라 해서 어디 먼 별나라 사람도 아니고, 뚱딴지 같은 사람도 아니며, 불쌍한 사람도 아니고, 성공만을 좇는 딴따라도 아닌 한편으로, 나와 똑같이, 우리와 똑같이 삶을 즐기는 이웃이라고 봅니다.

 오진령 씨에게 사진 찍힌 어느 곡예사가 한 말을 마지막으로 책소개를 마치겠습니다. 덧붙여 44~45쪽, 74~75쪽, 102~103쪽, 134~135쪽 사진은 두 쪽에 걸쳐 사진을 담았으나 사람 얼굴과 몸이 가운데에 접힌 채 잘려서 보기가 참 안 좋습니다. 사진을 많이 넣어서 엮는 책이라면 좀더 엮음새에 눈길을 두어야지 싶어요. 130쪽에 '대한 민국'이라고 띄어서 썼는데 '대한민국'이라고 붙이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 "사회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커스 하면 불쌍한 놈들,
 몹쓸 놈들이라고 하지. 이런 데에 산다고 해서, 옷도 아무렇게
 나 입는다고 해서 불쌍한 건 아니야...... 그건 그렇고. 우리
 사진은 왜 찍어? 뭐에 쓰려구 그래? 서커스를 찍어간 사람이야
 많지. 그래도 내가 보기엔 제대로 찍은 사람은 드물어. 이왕
 찍는 거, 잘 좀 찍어 봐" ..  <158쪽>

***
곡마단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곡마단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느끼고 보고 겪은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풀어낸 책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낮은 자리에 있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람들인 곡마단 사람들입니다. 그네들 삶과 목소리와 모습을 느끼며 겉이 아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이라고 생각하여 소개하는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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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기를 권함 - 2004년 2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샨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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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이름 : 천천히 읽기를 권함
 - 지은이 : 야마무라 오사무
 - 옮긴이 : 송태욱
 - 펴낸곳 : 샨티(2003.11.11)
 - 책값 : 8000원


 "천천히 읽기"는 좋은 읽기법
 - 책을 좀더 즐겁게 읽기


 <1> '다치바나 다카시'와 견주는 책


 ..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한 쪽 읽
 는 데 1초, 좀 늦더라도 2,3초'라는 읽기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
 은 불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굳이 심신에 무리를 주면서라도 훈련
 을 거듭하면 나한테도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책을 그렇게나 빠른 속도로 읽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것을 모르겠
 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내가 읽은 재미있는 책, 엉터리 책 그리고 나
 의 대량 독서술, 경이의 독서술>은 서평집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예로 들고 있는 책 가운데 5분이나 15분에 읽어버리고 싶은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매력이 있을 것 같은 책이라면 여느 때처럼 느
 릿느릿 읽고,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손에 들지
 않는다 ..   <18쪽>


 어느 일본 작가가 쓴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란 책을 보름에 걸쳐서 다 읽었습니다. 그 뒤로 닷새 동안 이 책에 담은 줄거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빨려들듯 읽던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라 하루 만에 1/3을 읽었고, 이틀 만에 절반을 넘겼는데, 그 뒤로는 어쩐지 지루하고 느슨해진 느낌에 책을 놓았고, 열흘 동안 들춰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책을 잡은 뒤 사흘 동안 나머지를 다 읽었습니다.

 <천천히 읽기를 권함>을 지은 야마무라 오사무는 '다치바나 다카시'를 비판하고자 이 책을 쓰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다만 다치바나처럼 '많이 빨리 읽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뜻과 소중함이 있겠으나, 자기 같은 사람에게는 '적게 천천히 읽는 일'이 더 알맞아 보이며, 책이 지닌 모든 것을 감동으로 받아들이지만 '빠르기'에 너무 매달리거나 얽매이지 말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문을 열어요.

 야마무라 오사무는 책 앞에 이렇게 묻습니다. "그들(다치바나 다카시)이 주장하고 권유하는 독서법은 그들 외에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일까? (19쪽)"


 <2> 천천히 읽는 까닭


 에밀 파게, 엔도 류키치, 헨리 밀러를 보기로 들며 "책은 감동을 느끼려고 읽기 때문"에 "빨리 읽어서 많은 지식을 얻는 것도 좋겠으"나 천천히 읽기를 말하는 야마무라 오사무. 저도 이런 생각이 참 옳다고 봅니다. 한 권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야금야금 밥을 먹듯 찬찬히 즐기는 맛이야말로 책 한 권을 알뜰히 즐기는 맛이라고 보아요. 때로는 숨돌릴 틈 없이 읽어제끼기도 합니다. 추리소설이나 긴소설을 읽을 때는 줄거리와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에 빠져서 '작가마다 다른 문장과 글맛'을 건너뛸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런 문학도 나중에 차근차근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다시 읽으면 지난날 줄거리에만 푹 빠져서 읽던 때와는 사뭇 다른 감동이 다가와요. 이런 느낌을 야마무라 오사무는 '책과 몸과 마음이 어울리는 일'이라고 말해요.


 .. 눈이 글자를 좇아가다 보면 그에 따라 정경이 나타난다. 눈의
 활동이나 이해력의 활동이 다 갖추어진다. 그때는 아마 호흡도
 심장 박동도 아주 좋을 것이다. 그것이 읽는다는 것이다. 기분
 좋게 읽는 리듬을 타고 있을 때, 그 읽기는 읽는 사람 심신의 리
 듬이나 행복감과 호응한다. 독서란 책과 심신의 조화이다 .. <38쪽>


 그런데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란 책을 보며 한 가지 끊임없이 걸리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천천히'란 말이에요. '천천히'란 말은 "어떤 일을 할 때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느리게'란 말은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이고요. 그렇다면 "천천히 읽기"란 "시간이 오래 걸리도록 책을 읽는 일"이에요.

 자.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아요. 책을 읽는 빠르기는 섣불리 '빠르다-느리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읽는 빠르기는 제가 느끼기에 그저 그렇다고 볼 수 있으나 어떤 이에게는 '너무 빠르다'라 할 수 있고 '너무 느리다'고 할 수 있거든요. 우리 아내나 다른 동무들과 책을 함께 읽다 보면, 제가 아내나 다른 동무보다 책을 느리게 읽음을 느껴요. 한 쪽을 다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제가 더 깁니다. 하지만 저도 꽤나 빠르게 읽는 때도 있어요. '문장과 낱말을 보지 않으려'고요. 말을 만지고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책을 읽을 때에도 번역이 잘못되었거나 엉성하거나 창작이 우리 삶과 문화와는 어긋난 낱말과 문장을 만나면 읽기가 껄끄럽습니다. 그래서 문장이 덜된 글이지만 줄거리가 좋을 때에는 문장은 건너뛰면서 줄거리만 좇으며 읽어요. 이럴 때에는 책이 술술 읽히고 빨리 읽는 편입니다. 하지만 낱말 하나를 알뜰하고 골라 쓴 시나 좋은 문학을 즐길 때에는 참 느릿느릿 읽는 편이에요. 읽은 대목을 두어 번 곱읽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은 이름을 잘못 붙였다고 보아요. 어쩌면 번역을 할 때 좀더 헤아렸어야 옳다고 보는데, '천천히'가 아닌 '찬찬히'라 했어야 맞겠다고 보아요. '천천히'는 그저 "빠르기가 느리다"를 말하지만 '찬찬히'는 "꼼꼼하면서 차분하고 지긋하게"를 말해요. 어느 책을 읽어서 감동을 받고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아무래도 '천천히' 읽을 때보다는 '찬찬히', 그러니까 '차근차근' 읽을 때라고 봅니다. 지은이 야마무라 오사무가 말하는 읽기법도 '천천히'라기보다는 '알맞은 빠르기'인 만큼 "차분하고 꼼꼼하게 지긋하게"를 뜻하는 '찬찬히 읽기'가 더 좋다고 봅니다.


 <3> 책을 왜 읽는가?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 주는 아름다움 가운데 하나는 "책을 왜 읽는가?" 하고 스스로 묻고 스스로 풀이를 찾는 데에도 있습니다.


 .. 필요가 있어서 책을 읽을 때 나는 그것을 독서라고 생각하지 않
 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읽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펴본다'
 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참조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설령 한 권의 책을 읽고 기획서나 리포트를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경
 우가 있어도, 나에게는 그것을 두고 독서라고 말하는 그런 감각이
 없다. 물론 필요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띄엄띄엄 읽기도 하고 건너
 뛰며 읽기도 한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띄엄띄엄 다 읽고 난 뒤,
 나는 그것을 독서한 책의 권수로 세지 않는다. 나만이 아닐 것이다 .. <46쪽>


 이 대목은 참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고 보아요. 저는 이 대목에 별을 둘 그리고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독후감 쓰기 숙제'를 하고자 읽는 책도 '책읽기'라 말하고자 애를 쓴다면 책읽기에 들어가겠으나 실질로 우리 삶과 마음과 생각에 도움을 주고 감동을 주는 책읽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신문을 '읽는다'기보다 '본다'고 더 흔하게 말을 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도 '본다'가 더 가깝다고 하는 까닭도 이런 테두리에서 말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때그때 보고 사라지는 소식과 정보를 얻는 일이 얼마나 '감동'을 주며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느냐, 바로 이런 테두리에서 책을 읽는 까닭을 밝힌다고 보아요. 쓱쓱 훑으며 어떤 줄거리인지만 지식으로 익히는 게 아니라, 어떤 글 편, 노래 한 소절, 그림이나 사진 한 장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곰삭여서 즐기는 일이 될 때에야 비로소 '책읽기'라고 말할 수 있지 싶어요.

 야마무라 오사무는 언젠가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에 30분이라도 낮잠을 자야 한다고 쓴 신문 기사를 보고 웃고 만 적이 있다. (144쪽)"며 "한 달에 몇 권, 몇십 권 읽으라는 것도 얼빠진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물어요. 사람에 따라 낮잠을 안 자는 게 좋을 수 있고, 한 시간을 자야 알맞을 수 있거든요. 책도 한 해에 한 권 읽는 편이 알맞은 사람이 있고 만 권을 읽어도 모자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니, '책읽은 숫자'를 말하는 일은 우스개밖에 안 된다고 여깁니다.


 <4>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


 영화를 즐길 때 조금 빠르게 돌려서 2시간 30분짜리를 1시간 만에 본다면 어떨까요? 군데군데 가위질을 해서 30분 만에 본다면요? 노래를 들을 때 길어서 지루하다며 조금 빠르게 돌리면 어떨까요? 10분짜리 노래를 간주와 전주를 자르고 후렴도 잘라서 2분 만 돌리면요?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이란 어느 책 한 권을 자기 눈높이와 생각과 몸과 마음 상태에 알맞은 빠르기로 찬찬히 읽고 맛볼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책이 수백만 권, 아니 수억만 권도 넘게 있는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모든 책을 다 읽어낼 수 없어요. 책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알맞으면서 재미있고 즐겁고 살가우면서 아름다울 책을 추리고 골라서 읽을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좋습니다. '좋은 책'이라는 책 가운데 1000권을 빠르게 읽어제끼는 일도 나쁘지는 않지만, 10권이라도 차근차근 읽어서 제것으로 삼는다면, 또 그 작품에 깃든 모든 느낌과 이야기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헤아릴 수 있다면 더 나은 책읽기가 아닐까 모르겠어요.

 <천천히 읽기를 권함>은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차분하게 들려주는 한편, 저마다 가장 알맞은 빠르기로, '책 권수는 신경을 끄면서' 살자는 덕목을 펼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 책은 쪽수가 186쪽인데 빈자리가 무척 많습니다. '천천히 읽으라'고 빈자리를 많이 주었는지는 모를 일이나, '천천히 읽는' 일은 빈자리가 많다고 그리 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독자가 알아서 읽을 일입니다. 지나치게 많이 둔 빈자리를 줄였다면 186쪽밖에 안 되는 이 책은 120~130쪽이면 넉넉한 책이 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책값도 8000원이 아닌 6000원쯤만 해도 넉넉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이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만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책읽기법을 말하는 책인 만큼, 책을 꾸밀 때에도 이런 대목에서 한 번 더 생각했다면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책일 될 뻔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낯선 일본 작가 이야기가 끝없이 나오는데,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한국에는 낯선 일본 작가 소개와 작품 세계' 해설(각주)이 줄어듭니다. 아직 우리 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일본 작가라 하더라도 생판 낯선 사람들 이야기가 많은 책이라면 좀더 친절을 베풀으셨다면 더 나았으리라 보아요.

***
책읽기가 아직 서툴거나 낯선 분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는 책입니다. 책읽는 맛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느낄 수 있는가를 말하는 한편,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을 듬뿍 안기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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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 타카의 일생
헨리 윌리엄슨 지음, 한성용 옮김 / 그물코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수달 타카의 일생
 - 지은이 : 헨리 윌리엄슨
 - 옮긴이 : 한성용
 - 펴낸곳 : 그물코(2002.7.5)
 - 책값 : 12000원


 수달에게도 삶이 있는가?
 - <수달 타카의 일생>을 읽고


 <1> 수달은 슬프다


 .. 데드락(사냥개)이 타콜(수달)의 다리를 물고 흔들어 공중으로
 던져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타콜이 다시 일어서려 할 때, 많은 턱
 들이 그의 몸을 물고, 머리를 박살냈으며, 그의 옆구리와 발, 꼬
 리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목초지에 피는 작은 해바라기들 사이에
 서 그의 몸은 밟히고 뒤틀리고 부서지면서 위로 들렸다 다시 떨어
 졌다. 사냥꾼들의 갈채와 환성이 집요하게 흔들어대며 으르렁거리
 는 사냥개들의 요란한 소리와 섞였다. 타콜은 눈이 멀고, 턱이 산
 산이 부서질 때까지 그들과 싸웠다 .. <349쪽>


 수달은 슬픕니다. 아픕니다. 힘듭니다. 괴롭습니다. 조용히 죽어가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수달뿐이겠습니까. 이 땅에서 범과 여우와 늑대와 이리와 사슴도 마찬가지 길을 걸었습니다. 들과 산에서 뛰노는 사슴이 없는 남녘땅입니다. 들과 산에 사슴이 있다면 채산이 맞지 않아 문을 닫아 버린 사슴농장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높은 울타리를 뛰어넘거나 무너뜨려서 '탈출'한 '고기사슴'이 있을 뿐입니다. 사슴은 사슴농장에서 탈출할 때 한 사슴 등을 받침대로 삼아 다른 사슴이 뛰어서 나오거나, 여러 사슴이 한꺼번에 몸을 울타리 벽에 부딪쳐서 울타리를 무너뜨린다고 합니다. 채산이 맞지 않아 사슴농장을 닫을 때 먹이를 안 주고 사슴을 굶겨죽인다는데, 먹을거리가 없어 죽음에 다다른 사슴은 마지막에 이렇게 안간힘을 쓰며 겨우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충주에서 일을 하며 들과 산에서 불쌍한 사슴을 자주 만납니다. 사슴농장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녀석들입니다. 사슴고기로 키우던 녀석들이라 덩치가 어른 둘을 더한 것만큼 큽니다. 하지만 사람을 어찌나 무서워하는지 모릅니다.

 불쌍한 사슴을 늘 보기 때문일까요? <수달 타카의 일생>이란 책을 읽으면서 가슴아픔과 씁쓸함이 내내 감돌았습니다. 1920년대 영국 어느 마을에서 있던 일을 아주 실감나게 그린 <수달 타카의 일생>은 '타카'라는 수달 한 마리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그런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결과에서 뚜렷하게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시달리는가를 꼼꼼하며 차근차근 담습니다.


 <2> 한국땅에서 거의 사라진 수달이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사냥개와 사냥꾼에게 시달리는 수달. 산속에서는 산림감시원이 놓는 덫과 총을 피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들판에서는 농부와 양치기 눈을 피하며 살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끈질기게 수달 사냥을 하는 사람들 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국땅에서는 어떨까요? 비슷합니다. 아직 몇 마리 남았으나 사람 눈길과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골짜기 깊숙한 곳에서 삽니다. 하지만 그런 깊숙한 곳까지도 기어들어오는 사냥꾼들 득달거림 때문에 늘 쫓겨다녀요. 세상에 가장 무서운 적인 사람들 때문에요.


 .. 덫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던 새끼는 덫을 땅에 박아두었던
 못을 뽑아냈고, 덫을 끌고 배수로 밖으로 나와 어린 나무들 사이
 로 느릿느릿 도망쳤다. 어미는 타카와 다른 새끼를 부르는 휘파람
 을 불었고 그들은 나무 덤불 아래에서 뛰어나와 어미 뒤를 따랐다.
 어미는 새끼들과 함께 작은 길을 달리다가, 검은딸기 덤불울 부수
 고 돌과 뿌리에 부딪혀 소리를 내는, 꼬리에 매달린 덫 때문에
 간신히 뒤따라오는 새끼에게 되돌아왔다. 꿩들은 몸을 숨기고 있
 던 나뭇가지에서 날아올랐고 지빠귀들도 거친 울음소리를 내며 감
 탕나무들 사이에서 날개를 쳤다. 검은딸기 덤불에서 내려앉은 굴
 뚝새와 울새 들은 높은 소리로 불평을 해댔다. 고슴도치들은 가시
 가 있는 공처럼 몸을 말았고, 들쥐들은 참나무 아래 말라죽은 이
 끼 옆에서 몸을 웅크렸다 .. <86쪽>


 <수달 타카의 일생>에는 수달을 비롯한 온갖 들짐승이 나오고 들풀과 나무와 꽃이 나옵니다. 산과 들과 물에서 살아가는 온갖 목숨붙이가 나와요. 풀은 풀대로, 짐승은 짐승대로 자기 목숨을 잇습니다. 수달도 뭇 목숨붙이 가운데 하나로 토끼도 잡아먹고 물오리도 잡아먹습니다. 여우에게 쫓기기도 하고 족제비와 다투다가 내빼기도 하며 까마귀에게 혼줄이 나기도 하는 수달입니다. 저마다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 함께 살아가는 짐승들이에요.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머리를 굴려서 무엇을 만들고, 자기들만 즐겁게 살아가려고 하면서 자연을 무너뜨리고 파헤칩니다. '개발'이란 허울좋은 이름을 내세우면서요. 뭇 목숨붙이가 함께 어우러지는 자연인데, 사람들은 멋대로 자연을 무너뜨리고 파헤쳐요. 그런데 파헤치는 사람은 파헤치는 대로, 파헤친 떡고물을 먹고사는 사람들은 또 그런 사람들대로 자연을 파헤치는 일이 나중에 무엇을 선사(?)할는지 생각하거나 알려 하지 않습니다.

 아. 이런 한국땅에서 수달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니 수달이라는 짐승이 있거나 말거나 우리들 사람 삶과는 아무런 인연도 상관도 없다고 보지 않나요? 아니 수달이 있기나 한지도 모르며,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그저 동물원에서 구경할 수 있으면 그뿐이라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보면 그만이라고 여겨 버리지는 않는지요.


 <3> 어우러지기에 아름다운 자연


 수달을 가까이에서 보지 않거나 못하기 때문에 수달을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어쩌다가 다치거나 아프면 부모나 자식이나 동무가 다치거나 아플 때처럼 걱정하며 돌보는 우리들이잖아요. 하지만 범이 죽고, 여우가 다치고, 다람쥐가 병에 걸리고, 수달이 덫에 치여 다리가 잘리고, 농약에 병든 물고기를 먹다가 왜가리와 두루미가 죽어가거나 도심지 시내에서 배기가스를 마시는 나무가 시커멓게 썩어들어가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 우리들이에요.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삶터와 너무 떨어진 곳으로 내쫓기며 사라지기 때문에 더더욱 들짐승이 살아갈 수 없는지 모릅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이라는 책은 어떤 풀이법을 말하지 않습니다. 짖궂을 뿐 아니라 나쁘기까지 한 사람에게 시달림을 받으며 온삶을 괴롭게 보내는 수달 이야기를 참 덤덤하게 펼칩니다. 그러면서 수달뿐 아니라 뭇짐승이, 또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지구라는 땅덩어리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죽고 또 되풀이하는 못 목숨붙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지루한 보여주기(묘사)만 가득한 책이라고 여길 수도 있어요.


 .. 수달들은 이곳에서 베도라치와 망둥이, 그리고 해초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물고기들을 찾아 헤맸다. 수달들은 참새우를 잡
 아 꼬리부터 먹었지만 머리는 절대 삼키지 않았다. 또 이빨로
 바위에 붙어 있는 섭조개를 뜯어내 앞발로 붙잡고 으깨서 살을
 핥아 먹었다. 회색주둥이가 까나리를 찾는 동안 타카는 집게발
 이 하나뿐인 바닷가재가 사는 깊은 웅덩이를 탐험했다 ......
 이 바닷가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위험을 겪었다.
 크라이드와 햄 마을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다란 막대기
 와 갈고리를 매달아 바닷가재를 잡으려 했다. 바닷가재는 여러
 번 발을 잃어, 아홉 번째 발이 뜯겨 나가자 녀석의 뇌도 결국
 은 새로이 발을 자라게 하는 걸 포기했다 .. <137쪽>


 .. 꺾이고 눌린, 속이 빈 갈대 줄기로 만든 보금자리에서 편히
 몸을 편 타카는 날개를 반짝이며 물위에서 나는 잠자리들을 바
 라보았다. 그 옆의 갈대에는 수 년 동안 작은 물고기와 물벼룩
 들을 잡아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그 전날 연못에서 기어나온 잠
 자리 유충이 부서질 듯한 회색빛 가면처럼 붙어 있었다. 햇빛이
 비쳐 유충의 껍질이 바짝 마르자 그 가면은 부풀어올라 등이 갈
 라졌다. 이윽고 거의 투명해 보이는 다리와 머리를 가진 곤충이
 축 처진 짧은 날개를 달고 빠져나왔다. 날개가 뜨거운 열기 때
 문에 쭉 펴지고 단단해지는 동안 그 곤충은 무심한 듯 갈대에
 매달려 있었다. 곤충의 몸은 정오의 용과 같은 숨을 쉬며 주홍
 빛으로 바뀌었다. 그 눈은 여름의 불기운을 받아 광택을 냈다.
 연못도 반짝였다. 볼품없이 몸 아래쪽에 붙어 있던 날개들이
 넓게 펴졌고,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떨렸다. 이윽고 몸에 노
 란색, 검은색으로 줄무늬가 있거나 에메랄드빛으로, 붉은빛으로,
 파란빛으로 빛나며 날고 있는 잠자리 떼에게 날아가버렸다 .. <76쪽>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책에 빠져듭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이란 책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사람들 등쌀에 밀려 어렵게 살아가는 수달 이야기'인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펼쳐서 찬찬히 읽다 보니 '사람들 등쌀에 밀린 수달 이야기'보다 더 큰 이야기가 있더군요. 수달이라는 짐승이 사람들 등쌀에 밀려 얼마나 고달프게 살아가는가를 그리는 가운데 수달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식물 이야기를 다뤄요. 크나큰 자연 품 안에 있는 수달 한 마리랄까요. 사라져가고 쫓겨가면서 괴롭고 고달픈 수달만 이야기하지 않아요. 아름답게 빛나며 따뜻하게 감싸는 한편 매서운 눈보라로 고달픈 삶을 살도록 하는 자연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자연과 어우러지는 수달과 뭇 짐승을 이야기해요.

 지은이 헨리 윌리엄슨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아주 지긋이 바라보고 느낍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살가이 나타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서사시 한 편을 읊듯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우리네 삶터 이야기랄까요.

 수달뿐 아니라 뭇짐승이 괴로워하는 삶터를 아프게 읽으면서도, 자연은 이렇게 수많은 목숨붙이가 어우러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사람만 살아가는 자연이 아니라, 사람과 모든 목숨붙이가 서로를 돌보고 감싸고 함께할 수 있을 때 참 아름답다 하는 것도 돌아봅니다. 37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었지만, 지난 3월 5일부터 한 달 넘게 이 책을 들고 다니며 읽은 시간은 참 즐거웠습니다.

***
요즘 들어 환경 이야기를 다룬 책이 많이 나옵니다. 참 좋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환경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 아닌 생명체 눈길과 눈높이'에서 그 생명체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사는지, 또 사람 아닌 생명체가 어우러지는 삶터가 어떻게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그려나가는 책은 드물어요. <수달 타카의 일생>은 이런 여러 가지 간지러우면서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고 보아 소개하는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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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네가 천사인 줄 몰랐어 - 2010년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최은숙 지음 / 샨티 / 200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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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미안, 네가 천사인 줄 몰랐어
- 글쓴이 : 최은숙
- 펴낸곳 : 샨티(2006.3.3)
- 책값 : 10000원


.. “괜찮아, 아까 담임 선생님이 데리러 오셨는데 내가 잘 말씀드렸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교장 선생님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거기 계셨다. 그때는 잘 몰랐다. 그것이 얼마나 큰 여유로움에서 나온 파격인지를. 나중에 내가 선생이 되어 학교에 들어와 생활하면서 그 교장 선생님 같은 어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과 그런 여유는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학교 사회란 참으로 하찮은 장부들에 생활을 비끄러매고 사는 곳이다 ..  〈30쪽〉


 올곧은 교사 한 사람이 태어나자면 이 교사가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이끌어 주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이 아이를 둘러싸고 함께 어울려 놀면서 세상을 부대끼게 해 주는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이 있어야지요. 마을 어른이 있어야 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어야 합니다. 학교란 곳이 있다면, 이 학교에서 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껴안고 보듬을 수 있어야겠지요. 또한 아이가 늘 뛰어놀고 부대낄 수 있는 자연 삶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 아닌 목숨붙이들이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어야 하며 갇혀 지내지 않아야 하고, 함부로 어떤 목숨도 죽이지 않는 삶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언제나 40만 사람이 교사로 있는 이 나라에서 참답게 교사라 할 만한 사람이 몇쯤 될까요? 이 가운데 1/100, 아니 1/10000이라도 있을까요?

 교사 최은숙은 아마 어릴 적 부대끼고 느낀 여러 일, 만난 수많은 사람이 ‘교사라는 일이 아이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면서 참삶을 보여주는 한편, 자기 스스로도 참삶을 꾸리도록 하는 일이구나’ 하고 느꼈지 싶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어울리고 아이들 부모(곧 마을사람)와 부대끼는 일이 참 살갑고 구수하구나 하고 느끼지 싶어요. 이리하여 몇 해 앞서는 《세상에서 네가 제일 멋있다고 말해 주자》를 냈고, 이번에­ ‘교사로 지낸 이야기’를 담은 두 번째 책 《미안, 네가 천사인 줄 몰랐어》를 냅니다.

 다만 한 가지. 교사 최은숙은 자기가 만나고 부대끼는 아이들과 어른들(그러니까 학부모이면서 마을사람인 분들)을 좀더 있는 그대로 보거나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도 많이 다가서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마음을 열고 꾸준하게 다가서려고 힘씁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나온 두 번째 책은 앞선 책보다 한 걸음 더 내디딘 이야기예요. 아마 몇 해 뒤 세 번째 ‘교사로 지낸 이야기’를 묶어 낼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당차고 씩씩하게 걸음을 내디딘 이야기를 담겠지요. 네 번째 책을 낼 수 있다면 그때는 더 알뜰할 테고요. (4339.3.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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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클리닉 8 - 완결
카루베 준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푸른 하늘 클리닉 (8)
- 그린이 : 카루베 준코
- 옮긴이 : 최미애
- 펴낸곳 : 학산문화사(2006.2.25)
- 책값 : 3500원


 저는 의사를 믿지 않습니다. 저처럼까지는 아니나 의사를 못 믿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의사는, ‘아픈 사람 몸을 돌보거나 따뜻하게 보듬는’ 일보다는 ‘높다란 사회계층을 차지하면서 돈-이름-힘을 긁어모으는’ 쪽이라고 보아야 옳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처럼 병원 나들이를 합니다. 병원을 굳게 믿고 다니는 분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처럼 의사라는 일이 돈-이름-힘에 가깝다면, 또 의사들 스스로 이런 얼개를 무너뜨리며 보통사람과 자기들 사이에 놓인 높다란 벽을 허물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어찌 될까요?


 [151쪽] 환자와의 만남은, 보통 사람을 의사에 가깝도록 만들어 주는구나.
 [145쪽] 설비가 없는 쪽이 실력이 느는 경우도 있어.
 [139쪽] 자연이. 이 섬이. 바꿔 줬어.
 [87쪽]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눈앞에 있는 생명을 위해서. 그것만을 위해서.
 [57쪽] 간호사도 할 수 있어.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것. 고치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
 [32쪽] 사람은 가끔 기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남겨진 자에게 희망을 준다. 진실한 웃음을 준다.


 한국처럼 사회봉사에 힘쓰는 의사가 적은 나라도 없다고 합니다. 제3세계나 어려운 나라에 의료봉사를 나가는 의사도 대단히 적지만(아예 없지는 않으니 다행일까요? 하긴 의사가 되기까지 쏟아부은 돈을 거둬들이자면 사회봉사할 틈이 어디 있겠어요. 나중에 그럭저럭 돈이 모인 뒤에는 놀러다니느라 바쁠 테고요), 나라안 구석구석 의료 혜택을 조금도 못 받는 곳으로 기꺼이 나아가는 의사도 참 적습니다. 교사들이 시골 외진 학교로 가기를 꺼리는 것처럼, 의사들도 섬마을 진료소나 시골 보건소로 일하러 가기를 꺼립니다. 하지만 교사나 의사뿐일까요? 버스기사는, 게임방은, 구멍가게는, 이발소는, 옷가게는 어떻지요? 모두들 도시로, 좀더 큰 마을로, 시내 중심지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지요? 의사만 탓할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푸른 하늘 클리닉》이라는 만화 8권이 나왔습니다. 이 만화는 8권이 끝입니다. 줄거리를 잠깐 간추리겠습니다. 도쿄라는 큰도시를 떠나 훗카이도에서도 안쪽으로 더 들어가는 외진 섬마을에 보건소 의사로 가게 된 ‘유우’라는 젊은 여의사가 있습니다. 환자들이 앓고 있는 병은 척척 알아맞추면서 기계처럼 빈틈없이 약을 쓰던 사람인데, 자기가 왜 의사로 일하는지를 찾아보려고 어느 날 도시에서 아주 외진 섬마을 보건소로 스스로 나서서 갑니다. 이 만화는 젊은 여의사 유우가 보고 듣고 겪고 만나고 부대끼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다른 꾸밈이나 겉치레를 들씌우지 않고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아픔, 슬픔, 기쁨, 즐거움, 부딪침, 싸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구석구석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만화를 그린다고 할까요? 그림결은 오롯한 순정만화라서,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다 비슷한 모습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이 순정만화는 여느 순정만화와는 좀 다릅니다. 이이 그림은 그렇게까지 ‘예쁘다’ 할 만한 주인공을 그리지 않거든요. 파란 하늘, 파란 바다에 둘러싸인 파랗게 보이는 조그마한 섬마을 진료소를 둘러싼 사람들과 삶터와 자연이 있는 그대로 나타납니다. 의사인 유우도, 만화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도 어떤 실마리를 붙잡거나 마무리를 짓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저마다 자기가 ‘살아가는 뜻’을 어렴풋하게 느끼면서도 잘 알지 못하고, 잘 알지 못하지만 소중히 여기면서 놓지 않으려고 해요.

 8권을 덮으면서 ‘여기서 끝나다니 참 아쉽구나’ 하는 생각이 짙게 듭니다. 그래도, 이이가 그렸던 다른 만화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는 10권에서 번역이 끝나 버려서 그 뒤로 어찌 되었는가를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참 얄궂어요. 아무리 이야기가 훌륭하고 줄거리가 살뜰해도 ‘많이 팔리지 않으면’ 제대로 번역을 하지 않는 이 나라 만화산업이거든요. 만화가 문화가 아니라 ‘산업’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7권이 나오고 한참 동안 8권이 안 나와서 ‘이 만화도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고 한숨을 쉬던 때에 드디어 만난 《푸른 하늘 클리닉》은 새삼스레 반갑고 고맙습니다. (4339.2.2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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