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23] 놀이터와 일터
― 시골에서 농약 쓰는 까닭

 


  아이들이 흙땅에서 실컷 뛰고 구르면서 놉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땀 송송 흘리면서 흙땅을 박차고 놉니다. 아이들은 흙땅에서 뒹굴기도 하고, 흙땅을 손으로 만지기도 하며, 넘어지기도 합니다. 손이며 발이며 얼굴이며 온통 흙투성이 되어 개구지게 놉니다.


  아이들은 고샅에서든 밭고랑에서든 들에서든 숲에서든 뛰어놀고 싶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아이들은 온몸을 거침없이 움직이면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 뛰어놀 흙땅에 농약을 뿌렸다면? 아이들을 놀리지 못합니다. 농약을 뿌린 흙땅 자리에는 어른도 쪼그려앉아서 쉬지 못합니다. 농약냄새 코를 찌르면서 어지러울 뿐 아니라, 농약 기운이 몸에 스며들 수 있으니, 아이들이 이런 데에서 놀지 못하는데다가, 어른들도 이런 곳에서 쉬지 못해요.


  오늘날 시골에서는 젊은 일손 모자라서 농약을 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젊은 일손 모자라는 탓만 할 수 없어요. 아이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지 않으니 농약에 손을 뻗고, 논밭에서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일하거나 놀지 않으니 자꾸자꾸 농약에 기댑니다.

  시골에 집이 있어도 아이들이 흙땅에서 안 놀아요. 어린이집에 가거나 학교에 갑니다. 아이들은 면내나 읍내에서 놀려 하지, 마을이나 들판이나 바다나 숲에서 놀려 하지 않아요. 오늘날 아이들은 시골내기라 하더라도 시골하고 엇갈리거나 등집니다. 어른들 일하는 곳 곁에서 놀지 않는 아이들 되다 보니, 어른들은 시나브로 흙땅에 농약을 칩니다. 아이들이 밭둑이나 논둑 풀베기를 거들지 않다 보니, 어른들은 풀베기 할 자리에 농약을 뿌립니다.


  더 생각하면, 오늘날 시골에서 시골 어른들은 시골 아이들을 시골에 남겨 흙을 일구며 살도록 가르칠 뜻이 없습니다. 하루 빨리 시골 벗어나 도시에서 돈 잘 벌고 몸 안 쓰는 일거리 찾기를 바랍니다. 시골 어른들 스스로 아이들한테 시골일 물려주지 않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린이도 푸름이도 젊은이도 시골일하고 등지거나 모르쇠로 자라다가 도시로 떠나요. 이러는 동안 시골 어른들은 모든 흙일을 농약과 화학비료에 기대어 합니다.


  시골에 젊은 일손 다시 늘어나도록 하자면, 농약과 화학비료에 기대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껴요. 도시로 떠난 아이들이 자라 어른 되어 이녁 아이를 낳으면, 철 따라 손자 손녀 데리고 올 텐데, 손자 손녀 누구도 농약범벅이 된 흙땅에서 못 놀아요. 농약으로 더러워진 도랑물을 만질 수 없어요.


  아이들이 흙땅에서 놀다가 저희 밭둑이나 논둑에서 오줌을 눌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흙땅에서 놀다가 힘이 들면 밭둑이나 논둑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논밭 한쪽에 시원스러운 나무그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이 일하며 쉬기에 즐거운 들과 숲과 마당이라면, 아이들이 놀며 쉬기에 즐거운 들과 숲과 마당입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 만한 데라면, 바로 어른들이 즐겁게 일할 만한 아름다운 삶자리입니다. 4346.9.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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