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버스에서 잠들기

 


  처음 마실 나올 적에는 어머니 등에 업힌 채 고개를 척 어머니 등판에 붙이던 작은아이가, 걸음마를 할 무렵부터 한두 걸음 걷다가 아버지 품에 안겼고, 어느덧 아장아장 걸을 수 있더니, 이제 콩콩 달릴 수 있습니다. 한 달 두 달, 하루 이틀, 천천히 흐르면서 작은아이 스스로 씩씩하게 나들이하는 길이 길어집니다. 서른 달을 넘어가는 요즈막 읍내마실을 나와서는 아버지 손까지 놓고 혼자서 누나 꽁무니를 좇으며 달리듯이 걷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군내버스에서 아주 곯아떨어집니다. 버스에 탄 지 몇 분 안 되어, 오늘 그토록 좋아라 하며 갖고 놀던 장난감 비행기마저 손에서 놓으면서, 작은아이는 달고 깊은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군내버스가 구비구비 시골길 달릴 적마다 흔들흔들 움직이고, 작은아이 머리도 이리저리 흔들리기에, 나는 이 아이를 옆구리에 착 붙이고 한손으로 머리를 살며시 붙잡습니다. 이윽고 큰아이도 나란히 잠듭니다. 큰아이는 내가 작은아이 붙잡은 손에 머리를 기대로 곯아떨어집니다. 다른 한손으로 큰아이를 토닥이면서 숲길과 마을길 가로지르는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4346.10.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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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비행기

 


  작은아이가 어느 날부터 ‘비행기’에 꽂힌다. 조각을 맞추어 비행기를 만들기도 하고 기차를 만들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비행기를 좋아한다. 이에 맞추어 큰아이도 동생 따라 비행기 노래를 부른다. 너희는 어떤 비행기를 좋아하려니?


  옆지기가 부산으로 배움마당 다녀오면서 장난감 비행기를 사준다고 했으나, 그만 찾지 못해서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여러 날 지나는데, 오늘 두 아이를 데리고 읍내 저잣거리 마실을 나온 길에, 큰아이가 ‘가게에서 파는 비행기 장난감’을 알아보고는 손가락을 쭉 뻗어 가리키며 노래한다.


  ‘그래, 비행기 장난감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며 너희 마음에 드는 빛깔을 고르렴 하고 얘기한다. 큰아이는 노란 빛, 작은아이는 파란 빛, 이렇게 두 가지 골라 1만 원. 마침 아이들이 퍽 좋아하는 ‘도라에몽 비행기’이다.


  큰아이는 노란 비행기를 갖고 놀다가 파란 비행기로 바꾸어 놀고 싶은데, 작은아이는 마냥 파란 비행기가 좋단다. 작은아이도 누나만큼 나이를 더 먹으면 장난감을 바꾸며 노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언제나 누나가 곱게 이끌어 주니, 머잖아 누나하고 장난감 바꾸면서 예쁘게 놀 수 있으리라 본다.


  생각해 보니,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시골마을에서는 숲에서 나무를 베거나 알맞춤한 나뭇가지를 주워서 낫과 칼로 깎아서 장난감을 만들어 주었다. 나도 숲에서 나무를 얻어 잘 깎고 다듬어 장난감을 나누어 주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하자면 우리 숲이 있어야 하고, 우리 숲에서 나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참말, 시골 살더라도 땅과 숲이 있을 때에 제대로 시골살이·숲살이·살림살이 일굴 수 있구나. 얘들아, 아직은 아버지가 가게에서 플라스틱 장난감을 사주고 말지만, 머잖아 숲내음 흐르는 나무를 얻어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깎고 다듬고 손질해서 튼튼하고 향긋한 장난감을 만들어 주마. 4346.10.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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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서 자라는 아이들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니며 자라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란다. 아이들은 ‘일하는 어른들’ 곁에서 놀면서 자란다. 아이들은 교과서를 배우면서 자라지 않는다. 아이들은 ‘일하는 어른들’ 곁에서 ‘일하는 매무새’를 지켜보고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자란다. 아이들은 동무들과 함께 집단생활을 하며 자라지 않는다. 아이들은 ‘일하는 어른들’ 곁에서 뛰놀면서 몸이 단단히 여물고 마음이 싱그럽게 맺힌다.


  사랑스러움을 받아먹고 자란 아이들이 ‘집단생활·공동생활’을 할 적에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움은 받아먹지 못한 채 어릴 적부터 ‘집단생활·공동생활’만 하던 아이들이 ‘따돌림·괴롭힘’을 만들어 낸다. 왜냐하면, 혼자서 꿋꿋하게 살든 여럿이 모여서 살든, 사랑스럽게 삶을 일구어야 사랑이 샘솟기 때문이다. 사랑은 없이 지식과 이론을 학습하는 시설이나 학교에서는 사랑은 못 배운다. 사랑을 못 배우니, 어린 아이나 푸름이인데에도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을 벌인다. 왜냐하면, 이 어린 아이나 푸름이는 ‘집단생활·공동생활’에서 사랑이 아닌 지식과 이론만 배웠을 뿐이니까. 동무를 아끼는 사랑을 배우지 못했는데 어찌 동무를 아끼겠는가. 이웃을 보살필 줄 아는 따순 사랑을 배운 적 없는데 어떻게 이웃을 보살피겠는가.


  학교에 다녀야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지 않다.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먹고 씩씩하게 자라야 비로소 사랑스럽게 ‘사회생활’을 한다. 어버이한테서 꿈을 물려받고 아름답게 자라야 비로소 아름답게 ‘사회’에 빛이 될 이야기를 흩뿌릴 수 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놀면서 자란다. 그러니까, 어버이는 아이들이 실컷 뛰놀고 마음껏 뒹굴 수 있게끔 보금자리를 돌보고 마을살림 일굴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노는 자리가 바로 ‘어른들 일하는’ 자리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뒹굴며 꿈과 사랑을 받아먹거나 물려받는 곳이 바로 ‘다 함께 살아갈’ 보금자리요 마을이며 숲이다. 4346.10.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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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생각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무얼 하며 놀면 재미날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보며 일찌감치 일어나서는 오늘 아침에 아이들한테 무얼 차려서 먹이면 맛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봄에도 가을에도 이마와 등허리에 땀이 흐르도록 뛰면서 논다. 나는 봄에도 가을에도 새벽바람으로 밥을 끓이고 국을 끓이며 반찬을 마련한다. 서로 다른 생각이지만 서로 같은 집에서 살아가고, 서로 다른 움직임이지만 서로 같은 즐거움을 그린다. 4346.10.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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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육아

 


  첫째 아이가 태어나던 날부터 아이돌보기를 했으니 여섯 해째 이러한 삶을 잇는데, 첫째 아이를 보듬으며 기저귀를 빨고 밥을 하며 집안을 쓸고닦고 치우는 온갖 일을 도맡을 적에 마음속으로 한 가지 뜻을 품었다. 고 조고마한 갓난쟁이를 품에 안고는 “얘야, 네가 커서 네 어머니나 아버지 나이쯤 되어, 또는 더 일찍, 또는 더 늦게, 아무튼 네 사랑을 만나 네 아이를 낳으면, 네 외할머니가 네게 했듯이 나는 네 외할아버지로서 네 아이들 살뜰히 보듬는 사람이 된단다.” 하고 이야기했다. ‘기저귀 빨래하는 아버지’에서 ‘기저귀 빨래하는 할아버지’로 거듭나고 싶다는 꿈이라고 할까.


  아기를 갓 낳은 어머니는 집일을 할 수 없다. 몸을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아기를 낳은 몸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세이레를 온통 드러눕기만 하면서 몸풀이를 꾸준히 해야 한다. 세이레가 지나도 아기 어머니한테는 함부로 일을 시키지 않는다. 가볍게 몸을 움직일 만한 가벼운 일만 맡긴다. 이동안 모든 집일과 갓난쟁이 뒤치다꺼리는 아버지가 도맡는다. 먼먼 옛날부터 시골마을 시골집 아배는 이렇게 아이를 아끼며 살았다. 이와 달리 임금이나 사대부나 권력자나 돈있는 양반네 아버지는 아이를 보듬거나 아끼지 않았다. 일꾼을 사거나 심부름꾼을 썼지.


  우리 겨레에는 오랜 옛날부터 이어온 아름다운 ‘아이돌보기’가 있다고 느낀다. 아기가 태어나기 앞서 아버지는 집 곁에 움막을 한 채 짓는다. 창문 하나 없는 움막이다. 빛이 한 줄기도 안 들어오는 움막이다. 거적으로 드나드는데, 왜 그러하느냐 하면, 갓 태어나는 아기는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눈을 다칠 수 있기 때문이요, 아기 못지않게 어머니도 ‘힘이 많이 빠지고 기운이 다해’ 눈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이레를 움막에서 보내면서 차츰 눈이며 몸을 추슬러 기운을 되찾는다. 이동안 움막에서 갓난쟁이 젖을 물리고 토닥토닥 보드랍게 노래를 부르며 달랜다. 어머니 몸속에서 바깥누리로 나온 아기한테 바깥누리를 천천히 받아들이도록 하는 셈이다. 아버지는 아기 똥오줌 기저귀를 빨고 밥과 미역국을 올린다. 아버지는 아기 낳은 어머니 핏기저귀도 빨래한다. 이렇게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한솥밥지기’ 마음을 더 깊게 읽고 한결 따스히 맞아들인다.


  우리 식구들 도시에서만 지냈다면 아기를 낳을 움막을 지을 수도 없고, 이런 방 한 칸 마련하기도 벅차다. 이제 우리 식구들 시골에서 지내기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아기를 낳을 때가 되면 우리 땅을 마련해서 그 터에 움막을 따로 지을 수 있겠지. 우리 아이들이 숲바람을 쐬고 들내음 맡으면서 기쁘게 아기를 낳고, 다 같이 푸른 숨결 따사로이 돌볼 수 있겠지. 나는 ‘아버지 육아’에서 ‘할아버지 육아’로 거듭날 즐거운 날을 기다린다. ‘할아버지 육아’를 더 씩씩하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아버지 육아’를 예쁘며 착하게 하자고 다짐한다. 4346.10.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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