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느티잎 가을빛 (2013.10.30.)

 


  계룡에서 살아가는 이웃한테 찾아간다. 이 집에 아이 둘 있고, 이 집으로 마실온 다른 이웃 아이 둘이 있다. 아파트에서 네 아이는 어떻게 놀까? 어린 아이들이 아파트에서 마음껏 뛰지 못하면서 놀아야 하는데, 저마다 얼마나 후련하게 놀면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문방구에 들러 그림종이 다섯 장을 장만한다. 아이 있는 집이라면 으레 크레파스 있으리라 여겼고, 크레파스를 마루에 펼친 뒤 내가 먼저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은 서로 종이를 하나씩 얻어 꼬물꼬물 스스로 나타내고픈 이야기를 종이에 담는다. 아파트 이웃집이지만, 이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느티잎이 길가에 수북하게 떨어졌다. 가을빛 곱게 입은 느티잎을 떠올리며 조그마한 잎사귀 하나에 얼마나 너른 우주와 넋이 깃들었을까 돌아본다. 가을 느티잎이 별비를 맞는 그림은 다른 이웃집에 선물로 주고, 둥그런 가을잎이 햇살처럼 환하게 가을빛 퍼뜨리는 그림은 계룡 이웃집에 선물로 남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버지 그림놀이] 나뭇잎과 글줄 (2013.10.27.)

 


  로봇을 그리는 큰아이 곁에 엎드려서 풀잎을 그리고 꽃잎을 그린다. 흰종이에 부러 흰꽃을 그려 본다. 흰종이에 그린 흰꽃을 알아볼 사람은 알아볼 테지. 오늘은 좀 다르게 그리고 싶어,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 말고 시골길 한참 거닐며 만난 가을날 붉나무를 그린다. 붉나무 잎이 모두 다른 붉은 빛깔이기에 가지도 잎도 다른 빛으로 그려 본다. 제비꽃을 그리는데 풀잎을 잘못 그렸다. 다음에 다시 잘 그리자고 생각하며 커다랗게 나뭇잎 테두리를 그린다. 그러고 나서 무엇을 그릴까 하다가, 글로 줄을 이어 본다. 글줄이랄까 글띠랄까. 빙글빙글 돌며 글을 하나씩 쓴다. 큰아이가 한글 즐겁게 익혀 나중에 하나씩 읽어 보기를 바라며 글띠를 그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10-30 07:12   좋아요 0 | URL
이 그림도 새롭고 또 참 좋네요!
붉나무도 흰꽃도 보라제비꽃도 까마중(?)도
색색으로 쓰신 글띠도 다 참 좋습니다~

숲노래 2013-10-31 09:54   좋아요 0 | URL
아, 까마중과 까마중꽃도 있어요~~
appletreeje 님도 그림놀이 함께 즐겨요~

oren 2013-10-31 10:34   좋아요 0 | URL
이맘때 산자락에서 가장 붉게 물드는 나무가 '붉나무'더라구요.

'가을색'으로 칠한 붉나무 그림도 아름답고, 알록달록하게 뿌려놓은 글씨들도 여러 색깔로 물든 풀포기처럼 느껴지네요.

숲노래 2013-11-01 05:55   좋아요 0 | URL
붉나무한테서는 어떤 열매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열매나 꽃이 어떠하든
붉나무는 그 붉은 잎사귀만으로도
참 아름답구나 하고 느껴요.
 

[시골살이 일기 29] 철 따라 다르다
― 가을길 걷기

 


  시골마을은 철 따라 다릅니다. 도시도 철 따라 다르다 여길 수 있지만, 도시에서는 온도만 다르지, 철 따라 다른 모습은 하나도 없습니다. 풀과 나무가 자랄 빈틈 거의 모두 없애고 높직하게 시멘트집 짓는 도시에서는 봄과 가을이 어떻게 다르고 여름과 겨울이 얼마나 다른가를 눈과 귀와 살갗과 마음으로 느끼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시골마을은 온통 시멘트밭입니다. 논둑과 밭둑도 시멘트요, 마당과 고샅도 시멘트입니다. 논도랑마저 시멘트예요. 시멘트로 닦는 시골길은 경운기와 짐차가 다니기에 좋습니다. 시멘트로 닦은 시골길은 아이들이 놀기에 나쁘고, 어른들이 걸어 마실 다니기에 나쁩니다.


  너무 마땅한데, 시멘트바닥과 아스팔트바닥에는 씨앗을 못 심습니다. 나무와 풀은 시멘트땅과 아스팔트땅에서 못 자랍니다. 자동차와 기계 다루기에는 좋다지만, 시골이라는 곳은 흙땅에 씨앗 심어 일구는 곳인 만큼, 자동차와 기계한테만 땅을 내주면 시골이 시골다움을 잃습니다.


  도화면 동백마을에서 두원면 두곡마을 이웃집으로 마실을 가는 길에, 읍내에서 군내버스를 내려 걷습니다. 사오십 분이면 넉넉히 걸어갈 길이지만 더 천천히 걸어 한 시간 삼십 분 들여 걷습니다. 걷다가 일부러 걸음을 멈춥니다. 걷다가 한참 기지개를 켜며 숲바람 마십니다. 수덕마을 지나 두곡마을로 접어드는 갈래길부터 자동차가 거의 없습니다. 이 길자락을 삼십 분 걷는 동안 군내버스 두 차례 지나가고 다른 자동차 넉 대 지나갑니다. 자동차 오가지 않는 동안 오롯이 풀내음 맡고 풀노래 듣습니다. 가을빛 내려앉은 들길을 누립니다.


  가을빛은 풀과 나무가 알려줍니다. 가을내음은 풀과 나무에서 흐릅니다. 숲이 있을 때에 철을 느낍니다. 숲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달라지는 빛과 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가을에 곡식과 열매를 거두어 배부르게 나누지요. 봄에 씨앗을 심으며 부푼 꿈을 꾸지요. 도시사람도 시골사람도 가을길 함께 천천히 거닐며 흙과 숲과 하늘과 바람을 마음 깊이 받아안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0.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새벽 설거지

 


  방 온도가 19도가 된 모습을 보고는 바닥에 불을 넣는다. 나 혼자 사는 집이라면 15도가 되어도 불을 안 넣을 테지 하고 생각하다가, 나 혼자 살더라도 15도쯤 되면 불을 넣을 노릇 아닌가 하고 생각을 고친다. 불넣기를 아끼려고 추위를 견디는 일은 즐겁지 않다. 몸을 아끼고 살피면서 살림을 꾸려야 맞다. 아이들도 옆지기도 따스하게 잠들고, 새벽에 개운하게 잠을 이룰 수 있어야 모두들 새 하루 기쁘게 맞이한다.


  바닥에 불을 넣고 새벽에 설거지를 한다. 따순물 흐르게 했더니 쇳내 나는 물이 나온다. 오랜만에 바닥불 넣었기에 쇳내가 나는구나 싶다. 봄부터 가을까지 바닥불은 거의 안 넣었으니 이럴 만하구나 싶다. 일부러 따순물 조금 세게 틀며 설거지를 한다. 손가락이 뜨겁지만 쇳내 잘 빠지기를 바라며 설거지를 한다.


  보일러 기름이 얼마쯤 남았는지 가늠한다. 얼른 기름통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달 끝무렵이나 다음달 첫무렵에 살림돈 될 일삯이 들어오면 거뜬히 기름통 채울 텐데, 이 일삯은 언제 들어오려나. 부디 추위가 닥치기 앞서 일삯이 쏙쏙 들어오기를 빈다. 4346.10.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침에 방바닥 쓸고 치우며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난 뒤에 함께 방바닥을 쓸고 치울까 하다가 나 혼자 쓸고 치우기로 한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이나마 깨끗한 방바닥 모습을 보도록 하는 쪽이 나으리라 생각한다. 어제 낮에 아이들과 우체국 다녀오며 가을바람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목이 따갑고 재채기가 끊이지 않아, 저녁은 이럭저럭 먹이고 아이들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들은 늦게까지 놀며 잠든 듯한데, 새벽에 일어나 보니 방바닥이 온통 종잇조각투성이다. 종이를 오리며 놀았구나.


  어지른 것들 이리저리 치운다. 방바닥에 상자로 담은 내 책들 물끄러미 바라본다. 미루고 미루었기에 책들이 이렇게 쌓였으리라. 내 책들도 며칠쯤 바지런히 갈무리해서 모두 서재도서관으로 옮겨야겠다. 내 책들이 빠지고, 아이들 장난감도 알맞게 추스르면 방바닥이 한결 넓고 시원할 테지. 스스로 알뜰살뜰 여미지 못하면서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아이들한테 무언가 시킬 수 없다. 차근차근 지켜보고, 어버이인 내 삶 갈무리를 어떻게 하는가 스스로 돌아보면서 집살림 함께 꾸리자. 4346.10.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