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일어나서 쌀 헹구기

 


  밤에는 으레 두 차례쯤 깬다. 두 아이가 세 살 여섯 살, 이렇게 대견스레 자랐으니 밤에 두 차례만 깨도 된다. 두 차례 가운데 한 번은 큰아이 밤오줌 눌 적, 다른 한 차례는 작은아이 밤오줌 눌 적, 이렇다. 이렇게 두 아이 쉬를 누이고 나면 나도 마당으로 내려와서 밤별을 바라보며 쉬를 눈다. 그러고 나서, 코막힘을 풀려고 코에 물을 넣고 킁킁 푸는데, 이렇게 코에 물을 넣고 킁킁 풀다가 문득 부엌을 돌아본다. 어젯밤에 잠들며 뭐 잊은 일 없는가 살핀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 말끔히 마친 뒤에도 가끔 잊곤 하는데, 우리 집 밥은 누런쌀과 여러 곡식이 많아 미리 헹구어 오래 불려야 한다. 때때로 저녁을 먹고 잠들기까지 이튿날 아침에 먹을 쌀을 안 불린다. 어젯밤에도 아차 싶어 부랴부랴 쌀을 씻어서 불려 놓는다. 쌀을 씻어서 가스불 자리에 올려놓으며 한숨을 돌린다. 이제 아침이 와도 걱정할 일은 없지? 아침에 맨 먼저 일어나서 새 아침 새 국은 무엇으로 끓일까를 생각하면 된다. 늦가을이라 뜯어먹을 풀은 모두 사라졌지만, 아직 까마중이 까맣게 익으며 우리 밥상을 빛낸다. 아침을 기다리며 다시 아이들 품으로 끼어들어 눈을 감는다. 4346.11.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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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따로 자기

 


  다른 집 아이들 볼 적에 ‘열 살까지는 아기인걸요.’ 하고 말하면서도, 막상 우리 집 아이들한테는 너무 까다롭게 구는 아버지 아닌가 하고 자꾸 돌아본다. 오늘 낮에 큰아이가 아버지 속썩이는 짓을 자꾸 하기에 그만 아버지는 혼자 토라져서 저녁을 안 차려 주고, 큰아이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으며, 말도 섞지 않는다. 큰아이가 까치걸음으로 살금살금 다가와 아버지한테 미안하다 말하려 하는 줄 뻔히 느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하기도 했다. 그래, 너희가 아버지 없이 얼마나 잘 놀고 먹는지 지켜보자고, 하는 생각으로 저녁 아홉 시에는 아예 이불 뒤집어쓰고 드러눕는다. 이래저래 집일 도맡으면서 바깥일까지 도맡으니 몸이 많이 고단하기도 해서 오늘은 자리에 드러눕자마자 등허리가 아이고 소리를 낸다. 온몸 뼈가 으드득으드득 결린다.


  어머니 곁에 달라붙어 어머니 공부를 헤살 놓는 아이들을 느낀다. 어머니가 공부 못하게 헤살 놓는 짓을 그치게 할까 하다가, 나 스스로 아이들하고 오늘은 말 안 섞고 잠들기로 했다는 다짐을 떠올린다. 너희가 언제까지 졸음을 견디며 안 자는가 두고보자고, 아니 지켜보자고 생각한다. 얘들아, 아버지가 너희한테 토라지고, 너희가 아버지를 미워하면 어떻게 살아갈 만하겠느냐. 잘 알아두라고. 너희가 아직 아기이지만, 너희는 모르는 것이 없어. 모두 안단 말이야. 너희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생각해. 아버지가 차려 주니까 먹는 밥은 아니야. 아버지가 차려 주는 밥이 아니어도 너희는 끼니를 채울 수 있어. 그런데, 밥은 끼니채우기가 아니야. 밥은 늘 사랑이 감돌며 누리는 아름다운 빛이야. 생각하라고. 아버지가 차려 주는 밥이니 고맙게 먹는 밥이 아니라, 이 땅에서 고운 숨결들이 푸른 넋으로 이 밥상에 깃들어 우리들이 새로운 마음과 몸으로 기운을 얻을 수 있는 줄 느끼라고.


  큰아이가 졸린데 아버지 눈치 보느라 잠을 못 자는구나 싶어, 얇은 이불 한 장만 들고 옆방으로 옮겨 눕는다. 웬만하면 토라지며 부아를 내고 싶지 않으나, 오늘은 내 마음이 견디지 못한다. 큰아이는 아버지가 잠자는방에 없는 줄 느끼고는 밤 열두 시가 되어서 비로소 드러눕는다. 더는 버티지 못하겠지. 더는 졸음을 참지 못하겠지. 어쩌겠니. 배가 고프면 먹고, 쉬가 마려우면 누고, 졸리면 자야지. 어쩌겠니. 심심하면 놀고, 기운차면 공부도 하고, 재미나면 웃고, 즐거우면 노래하고, 기쁘면 춤추고, 신나면 방방 뛰어야지. 어떻게 꾹 누르면서 살아갈 수 있겠니. 답답하면 말하고, 갑갑하면 뛰쳐나가고, 슬프면 울고, 터무니없으면 싸워야지.


  너희 아버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너희와 함께 복닥이느라, 이동안에는 참말 글조각 하나 붙잡을 겨를이 없다. 너희 아버지는 너희가 아주 깊이 잠든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서 너희들 쉬를 누이고 글쓰기를 한다. 그러니, 여태껏 새벽 두어 시부터, 때로는 밤 열두 시나 한 시부터 너희하고 따로 잔 셈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큰아이 네가 여섯 살이 되도록 한 번도 따로 잔 적이 없는데, 아버지가 부아를 풀지 못해 따로 잔다. 십일월 육일이 아버지한테는 무언가 쓰디쓰게 깊이 아프도록 남은 날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너희와 따로 잔 첫날이 되는구나. 문득 생각하니, 너희가 아직 이 땅에 태어나기 앞서인 1995년 십일월 육일에 네 아버지가 군대에 끌려갔구나. 오늘은 아침부터 어쩐지 많이 찜찜했는데, 참말 해마다 이날이 되면 무언가 찜찜해서 뒤숭숭했는데, 네 아버지가 강원도 양구군 비무장지대 맨 안쪽, 지도로 보면 남녘땅 아닌 북녘땅에서 군대살이를 하도록 끌려간 첫날이 오늘이었구나. 지난날 겪은 일이 몸에 깊이 아로새겨진 탓인지 아침부터 꿀꿀했고, 이 느낌을 떨치지 못해, 따스하거나 슬기롭지 못한 몸과 마음으로 너희하고 마주했구나 싶다. 네 아버지부터 이런 바보스러운 옛일은 살포시 씻도록 해야겠다.


  이제 이 고단한 날이 지나간다. 아무쪼록 새근새근 잘 자고, 이튿날 아침에는 다른 날보다 더 길게 자고 일어나기를 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롭고 밝은 날이 될 테니까.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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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어제는 우리 집 옆밭에서 고구마 캐는 할매와 할배를 보고는 일손을 도우려고 바로 나갔다. 할배가 많이 힘들다 하셔서 할매 홀로 고구마밭 캐느라 일손이 더뎠기에, 내가 거들기는 했어도 일을 모두 마치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일곱 시부터 다시 고구마밭에 나온다 하시기에, 나도 아침에 일찍 일손 거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 새벽 세 시에 일어나 글쓰기를 하고, 다섯 시 반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곱 시 즈음 일어난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 뒷간을 두 번 드나든다. 이렇게 하고 옆밭을 바라보니 할매 혼자 고구마를 바지런히 캐신다. 호미 한 자루 들고 건너간다. 문득 빗방울 듣는다. 고흥에도 비가 오려나. 고구마 캐기보다도 캔 고구마 자루에 담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호미는 밭 한쪽에 내려놓고는 자루를 들어 굵기에 따라 두 갈래로 고구마를 담는다. 할매는 고구마를 더 캐시고, 나는 고구마를 차곡차곡 담는다. 얼추 다 담았다 싶을 무렵 집에서 손수레 끌고 나온다. 아픈 할배가 경운기 몰고 올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손수레에 고구마 그득 든 자루를 싣는다.


  할매 댁에 고구마를 내려놓는다. 고구마는 따순 불 들어오는 마루방에 척척 놓는다. 빗물이 들을 듯하기에, 바깥에 두신 쌀가마 둘하고 겨가마 하나를 헛간으로 옮긴다. 할배와 할매가 어떠한 몸인지 알기에 일을 거들었을 뿐인데, 묵은지 한 꾸러미를 얻는다. 옆지기가 좋아하겠지.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다. 곧 아이들이 배고파 하겠구나 싶어 밥을 차린다. 이동안 옆지기는 씻고, 아이 둘을 함께 씻긴다. 아이들 씻는 사이 달걀국을 끓이고 고구마떡볶음을 한다. 큰아이가 예전에 달걀국 안 먹어 세 해 넘게 이 국은 안 끓였는데, 이제는 먹을까 싶어 모처럼 끓인다. 어제 캔 고구마를 숭숭 썰어서 하루 동안 불린 가래떡을 함께 볶는다. 캐고 나서 바로 먹는 고구마는 맛이 덜 하다 하지만, 화학비료도 화학거름도 안 쓴 고구마는 캐어 바로 먹어도 무척 맛나다.


  아이들 밥 얼추 먹이고는 살짝 자리에 누워 등허리를 편다. 이십 분인가 삼십 분쯤 누운 뒤 일어나 빨래를 한다. 어제 못 한 빨래하고 아침에 옆지기와 아이들 씻으며 나온 옷가지를 빨래한다. 척척 빨래하는 사이 작은아이가 똥을 누어 밑을 씻긴다. 모두 마친 빨래를 마당에 넌다. 빨래를 널고서 책짐 서재도서관으로 옮기려고 짊어진다. 서재도서관에 가서 곰팡이 먹은 책꽂이에 니스를 바른다. 니스 바르는 붓이 뭉개져서 더는 못 바른다. 면소재지 철물점 가서 붓을 더 사야겠다.


  집으로 돌아가며 바람소리 듣는다. 텃새만 남은 늦가을 막바지요 겨울 문턱에 흐르는 바람소리 듣는다. 이제는 풀벌레 노랫소리 거의 모두 사라졌다. 아주 사라졌다고까지 할 만하다. 개구리 노랫소리도 거의 다 사라졌다. 어제 고구마를 캘 적에 풀개구리 한 마리 폴짝폴짝 뛰던데, 아이들이 풀개구리 꽁무니 좇으며 한참 놀던데, 아무래도 고구마밭에 깃들어 겨울잠을 자려다가 그만 깼구나 싶다. 밭자락 고구마는 다 캐었으니 부디 다시 구멍 파고 들어가서 고이 쉬렴. 이제 이듬해 봄까지 너희 노랫소리는 못 들어도 되니까 느긋하게 쉬렴.


  고즈넉하다. 까마귀와 까치 우는 소리 크게 울린다. 십일월 찬찬히 흘러 십이월이 다가오면, 우리 큰아이가 기다려 마지않는 눈송이 흩날릴까. 올겨울에는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어느새 아침 훌떡 지나가고 한낮도 지나간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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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무엇을 배우는가

 


  아이는 언제나 스스로 살아갈 길을 배운다. 아이는 씩씩하게 살아갈 길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고 싶다. 아이는 즐겁게 노래하는 길을 배운다. 아이는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어버이한테서 나누어 받고 싶다.


  호미질을 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호미순이’나 ‘호미돌이’ 된다. 자가용 으레 모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자동차순이’나 ‘자동차돌이’ 된다. 책을 즐겨읽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책순이’나 ‘책돌이’ 된다. 자전거 나들이 좋아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자전거순이’나 ‘자전거돌이’ 된다.


  어버이는 이녁 삶을 노상 아이한테 물려주거나 가르친다. 어버이는 이녁 생각을 노상 아이한테 보여주면서 알려준다. 어버이는 이녁 사랑을 노상 아이와 함께 가꾸거나 일군다. 어버이는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삶을 이루고, 아이는 어버이 곁에서 앞으로 살아갈 꿈을 천천히 헤아린다. 4346.1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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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살아가는 하루


 
  아이들은 하루 내내 어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이러다가도 저희한테 아주 재미나다 싶은 무언가 있으면 어버이 뒤는 그만 따라다니고는, 재미나다 싶은 것에 폭 사로잡힌다. 이를테면 나뭇가지가, 흙이, 풀꽃이, 멧새가 아이들 놀잇감이나 놀이동무가 된다. 빗물이나 눈송이도 아이들한테 재미난 놀잇감이나 놀이동무가 된다. 한참 어버이 꽁무니 좇던 아이들이지만, 스스로 눈빛 밝혀 새롭게 배우거나 즐기거나 누릴 것이 있으면 곧바로 따라간다.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 느끼고 겪으면서 무럭무럭 크고 싶으니까.


  어버이는 하루 내내 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붙는다. 이것저것 돌보고 이래저래 먹이며 이렁저렁 씻기고 입히느라 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붙는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본다. 아이들이 뒹구는 자리를 제대로 쓸고닦았는지 살핀다. 아이들 코는 막히지 않았나 들여다보기도 하고, 한동안 물을 안 마셨으면 물을 마시라고 부른다.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동안 어버이는 새삼스레 아이 눈높이가 되어 보금자리와 마을과 온누리를 사뭇 다르게 바라보며 느낀다.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눈높이로 멈추지 않는다. 어른이 되기까지 거친 아이와 푸름이 눈높이를 가만히 되새기면서 이 땅과 이 나라와 이 지구별에 어떤 사랑과 꿈이 흐를 때에 아름다운가 하고 헤아린다.


  아이들은 어버이 뒤를 따라다니며 삶을 배운다. 어버이는 아이들 뒤를 따라붙으며 사랑을 배운다. 아이들은 어버이 뒤를 따라다니는 동안 생각을 넓힌다. 어버이는 아이들 뒤를 따라붙으며 마음을 살찌운다. 4346.1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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