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18] 전기읽기
― 아파트와 청와대 옆에 발전소를

 


  전기란, 도시사람 도시살이를 지키도록 하는 물질문명 밑바탕입니다. 도시에 몰려들어 살아가는 사람이 워낙 많기에, 이 도시를 지키도록 하려면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써야 합니다. 아파트와 건물에서 전기를 쓰고, 지하철에서 전기를 쓰며, 지하상가에서 전기를 씁니다. 그리고, 도시사람 쓰는 물건을 공장에서 척척 찍어낼 뿐 아니라, 도시 물질문명 지키도록 물건을 이웃나라와 사고팔려면 또 전기를 끝없이 만들어서 써야 합니다.


  도시가 서기 때문에 커다란 발전소를 지어야 합니다. 도시를 자꾸 늘리려 하기 때문에 커다란 발전소는 자꾸 늘어야 합니다. 아파트를 더 세우고 고속도로를 더 닦으며 공장을 더 돌려야 하니까 발전소를 끝없이 늘려야 합니다.


  발전소는 도시 언저리에 안 짓습니다. 발전소 매연과 공해와 전자파가 워낙 사람한테 안 좋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애써 도시로 끌어모았는데, ‘도시 주거 환경’이 나쁘다면 사람들이 떼로 일어나서 손가락질을 할 테지요. 그러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달래거나 다독일 뜻으로 도시에 발전소를 안 지어요. 도시에 있던 공장도 도시 바깥으로 내보내며, 도시사람이 버리는 쓰레기를 치울 곳이랑 도시사람 쓰는 석유를 다루는 공장도 몽땅 도시하고는 아주 먼 시골에 짓습니다.


  도시사람이건 시골사람이건 밥을 먹습니다. 밥은 시골에서 얻습니다. 쌀과 다른 곡식을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미국에서 사다 먹는다 하더라도, 그 나라 시골이 있어야 흙을 일구어 쌀과 여러 곡식을 얻어요. 시골이 없다면 능금도 복숭아도 배도 포도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도시를 키우려고 시골을 죽입니다. 도시를 살린다며 시골을 망가뜨리거나 더럽힙니다. 도시 물질문명을 지킨다면서 도시에 발전소를 안 짓고 도시에 있던 공장을 시골로 보내는 일이란, 도시사람 스스로 나쁜 밥이랑 농약·비료·항생제·화학첨가물 그득한 가공식품만 먹겠다는 뜻이 되고 맙니다. 도시사람 쓸 전기를 시골에 발전소 지어서 얻으면 얻을수록, 시골에 우람한 송전탑 서면 설수록, 시골을 망가뜨리는 꼴이 되고, 시골 숲과 들과 보금자리를 어지럽히는 짓이 되어, 시골과 함께 도시가 흔들리거나 무너질밖에 없습니다.


  핵발전소뿐 아니라 화력발전소 모두 도시 한복판에 서야 옳습니다. 공장과 쓰레기매립지나 하수처리장 모두 도시 한복판에 놓아야 옳습니다. 식품공장과 맥주공장과 자동차공장과 석유화학공장과 유리공장과 제지공장과 반도체공장 모두 도시 한복판에 올려야 옳습니다. 도시사람은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과 폐수와 방사능과 전자파가 어떠한가를 제대로 모릅니다. 제대로 모르니, 스스로 삶으로 안 겪으니, 하나도 깨닫지 못합니다. 물꼭지 틀면 물 콸콸 쓸 수 있는데, 수도물 이으려고 시골 여러 마을 물에 잠기도록 하고 너른 숲 망가뜨리는 짓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수도물이란 문명이 아니라 ‘문명 파괴’요 ‘환경 재난’입니다. 전기란 문화가 아니라 ‘문명 몰살’이자 ‘환경 재앙’입니다.


  전기를 쓴다 하더라도, 왜 집집마다 집열판 두어 매연도 공해도 없이 전기를 스스로 만들어 쓰도록 하지 않을까요? 전기를 쓰려면 가장 깨끗하고 가장 올바르며 가장 아름다운 전기를 저마다 스스로 만들어서 써야 하지 않나요?


  발전소 짓는 돈, 한국전력이라는 커다란 회사를 꾸리는 돈, 전봇대와 송전탑 세우는 돈, 전깃줄 끝없이 잇는 돈, 이런 돈 저런 돈 모두 따져 보셔요. 도시사람이 ‘발전소를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에 짓느라 들이는 돈’을 헤아려 보셔요. 커다란 발전소를 지어 전기를 뽑은 뒤에 우람한 송전탑과 전깃줄을 잇고 잇느라 드는 돈을 가누어 보셔요.


  온 나라 모든 살림집에 집열판 붙여서 전기 스스로 빚어서 쓰도록 하는 데에 드는 돈이 오히려 아주 적게 듭니다. 값조차 쌉니다. 게다가 공해도 매연도 없습니다. 전깃줄이나 전봇대 어지러이 서지 않을 뿐 아니라, 송전탑 걱정조차 없습니다. 발전소를 돌린다며 우라늄을 만지거나 석유나 석탄을 땔 걱정마저 없습니다. 발전소 폐기물조차 하나 없지요. 그러나, 공공기관이라 일컫는 정부 조직이나 재벌회사는 돈벌이(세금)를 하고자, 사람들 여느 살림집에 집열판 붙이는 길을 걷지 않습니다. 사람들 또한 전기를 어떻게 써야 즐겁고 아름다우며 올바를까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면 아파트 옆에 지어야 합니다. 청와대 옆에도 발전소를 지어야 합니다. 안전과 환경에 걱정이 없다면 마땅히 아파트와 청와대 옆에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나란히 지을 노릇입니다. 핵폐기물처리장은 미대사관 옆에 지으면 됩니다. 안전하고 환경을 더럽히지 않는다 하니까요.


  더 곰곰이 살피면, 사람들 스스로 흙을 잊기에 전기를 아무렇게나 씁니다. 스스로 흙하고 동떨어진 채 살면서, 밥과 옷과 집이 모두 흙에서 비롯하는 줄 잊었으니, 자꾸 쓰레기를 낳는 물질문명에 기댑니다. 물질문명을 누릴 적에도 아름답게 즐기며 깨끗하게 돌보는 길하고는 멀어집니다. 흙에서 나온 것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석유와 석탄도 흙에서 나온 그대로 온갖 공해와 매연을 이 땅에 드리웁니다. 흙에서 얻은 쌀과 곡식과 열매는 사람들 몸을 거쳐 똥오줌 되어 다시 흙을 살리는 거름 구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를 몽땅 생활쓰레기로 다룹니다.


  흙에서 나온 그대로 흙으로 갑니다. 흙에서 뽑아낸 쇠붙이로 전쟁무기 만들면, 이 땅에는 전쟁이 판칩니다. 흙에서 얻은 나무로 종이를 만들어 책을 엮으면, 이 책에는 나무내음이 감돌면서 사람들한테 아름다운 빛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들려줍니다. 흙에서 우라늄 캐내면 엄청난 방사능이 지구별 곳곳에 퍼지지요. 흙에서 다이아몬드를 캐내거나 금을 캐내니, 사람들 눈알이 빙빙 돌아 버렸습니다. 흙에서 무엇을 캐내렵니까. 흙에서 캐낸 것을 어떻게 쓰며 흙에 무엇을 돌려주렵니까. ‘밀양 송전탑’을 말하기 앞서 ‘우리 집 전기’부터 생각할 수 있어야, 무엇보다 ‘내 손으로 만질 흙’을 살필 수 있어야, 비로소 ‘어른’입니다. 4346.11.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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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보라 네모 그림에 (2013.11.8.)

 


  작은아이가 네모를 그려 주었다. 누나가 그리는 그림을 으레 보니, 누나가 요즈음 한창 그리는 ‘네모난 몸통 자동차 로봇’ 모양을 흉내내었으리라 느낀다. 다만, 작은아이는 여기까지만 그리고 다른 놀이에 눈길을 돌린다. 그림종이는 또 이대로 하나 사라지는가 하고 생각하다가, 작은아이 그림에 덧그림 해 볼까 생각한다. 네모마다 눈과 코와 입을 그린다. 큰아이가 눈과 입은 늘 웃는 얼굴 되도록 하라 말하기에 웃는 얼굴로 그린다. 가장 큰 네모에는 큰아이가 좋아하는 치마를 입힌다. 머리카락 부슬부슬 그려 넣고, 네모들한테 손발 붙인다. 치마네모한테는 한손에 도라에몽 만화책, 다른 한손에는 호미를 쥐어 준다. 꽃 한 송이씩 넣고, 무지개를 넣어 본다. 제비와 나비를 그린 뒤 바탕을 찬찬히 채운다. 작은아이는 무언가 하나씩 새로 그릴 때마다 곁에서 “오잉?” 하면서 웃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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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 안기

 


  새벽에 으레 잠을 깨며 으앙 우는 작은아이는 어머니 품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작은아이 깨서 우는 소리에 잠이 깬 큰아이는 쉬를 누고는 아버지 품으로 포옥 안긴다. 어머니는 작은아이를 안고, 아버지는 큰아이를 안는다. 작은아이는 어머니를 안고, 큰아이는 아버지를 안는다. 서로 안고 안기면서 새벽이 흐른다. 썰렁썰렁 찬바람 부는 십일월이지만 춥지 않다. 4346.11.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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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30] 집으로 집으로
― 눈과 마음과 머리를 트는 길

 


  바깥일을 보러 먼먼 마실을 다녀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고흥에서는 어디로 가든 먼길입니다. 순천을 다녀오더라도 가깝지 않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다녀오는 길은 무척 멉니다. 고흥에서 다른 시골로 찾아가는 길은 훨씬 더 멉니다. 시골에서 시골로 움직이면, 새로운 시골빛을 누리며 즐겁지만, 시골에서 도시로 다녀와야 할 적에는 몸이 여러모로 고달픕니다.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에 시달려야 하고, 온통 빽빽하게 들어찬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가게와 전깃줄에 들볶여야 합니다.


  그래도 아름다운 사람들 살아가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름다운 생각을 북돋울 수 있기에 먼 마실을 다녀요. 아름다운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아름다운 꿈을 주고받다 보면, 다른 시끄럽거나 자질구레한 소리와 모습은 어느새 내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다만, 시외버스를 여러 시간 타면 속이 울렁거리고 골이 아파요. 그런데, 시외버스가 여러 고속도로를 거쳐 벌교읍 지나 고흥읍 동강면으로 접어들면 멀미와 울렁거림이 감쪽같이 사라져요. 버스에 탄 몸이라 바깥바람을 쐴 수 없지만, 바깥에서 흐르는 고운 시골바람을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일까요.


  시외버스는 과역면을 지나고 고흥읍에서 섭니다. 고흥읍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우리 마을로 돌아옵니다. 이동안 나는 군내버스가 달리는 시골길에서 흐르는 냄새를 맡고, 별빛을 느끼며, 풀노래를 듣습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즐겁게 누리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마음을 살찌우면서 삶을 빛낼 수 있을까요. 내 이웃은 누구이며, 내가 선 이 마을은 어떤 이야기 흐르는 터전일까요.


  읍내에서 20분 달린 끝에 동백마을에 닿습니다. 버스에서 내립니다. 늦가을이라 풀벌레는 더 노래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을바람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누런 풀포기가 춤노래를 베풉니다. 버스는 등불을 켜고 어두운 시골길을 달립니다. 나는 어두운 고샅길을 거닐며 밤하늘 별자리를 올려다봅니다.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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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한테 밥을 떠서 먹이기

 


  큰아이는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잘 한다. 작은아이도 큰아이 흉내를 내며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제법 잘 한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밥자리에서 밥 한 술 뜨고는 슬그머니 일어나서 한참 뛰다가 다시 밥자리로 돌아와 밥 한 술 뜨고는 또 살그마니 일어나서 한참 뛰다가 밥자리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워낙 이렇게 노니까 그대로 두자고 하면서도, 이러다가 밥때를 놓친다든지, 작은아이는 놀다가 제풀에 지쳐 곯아떨어지곤 하니, 작은아이를 불러 밥을 꼬박꼬박 먹인다. 작은아이한테 밥을 떠서 먹이다가 생각한다. 큰아이도 저한테 밥을 떠서 먹여 주기를 바라지 않을까? 그래서 큰아이한테도 밥을 떠서 내밀어 본다. “내가 할래.” 하면서 큰아이가 숟가락으로 밥을 뜨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서 먹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내미는 숟가락을 날름날름 잘 받아먹기도 한다.


  아이들은 무엇을 먹을까. 그래, 밥을 먹지. 그러면, 어떤 밥을 먹을까. 사랑 담은 밥을 먹지. 그러니까, 찬찬히 사랑 담아 밥을 짓고, 느긋하게 함께 밥을 먹을 노릇이다. 그리고, 작은아이한테도 큰아이한테도 모두 똑같이 따순 눈빛으로 바라보는 너그러운 손길로 다가갈 노릇이다. 큰아이한테 나누어 주는 사랑은 작은아이한테도 나누어 줄 사랑이요, 작은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 또한 큰아이한테 물려줄 사랑이다.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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