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이 기다리기

 


  이틀을 인천에서 묵으면서 서울 볼일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전철과 시외버스에서 책을 너덧 권 즈음 읽고, 이듬해에 선보일 그림책에 넣을 글을 하나 공책에 쓴다. 이틀을 묵으면서 잠을 거의 제대로 못 잤는데, 시외버스에서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집일을 하고 청소와 빨래를 한 뒤, 큰아이와 놀고 자장노래를 불러 주고서야 비로소 온몸 그득 뻑적지근하구나 하고 느낀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주 힘들 적에는 외려 잠을 못 잔다. 손끝으로 머리를 꾹꾹 누른다. 등허리뿐 아니라 온몸 구석구석 주무르고, 내 몸을 주무르는 손가락을 왼손이 오른손을 오른손이 왼손을, 서로 갈마들며 주무른다. 이럭저럭 힘들면 쉬 곯아떨어지지만 몹시 힘들면 오히려 잠을 못 이루는데, 오늘 꼭 그런 모양새가 된다.


  마음속으로 ‘그래도 자야지, 그래도 자야, 이튿날 아이들한테 맛난 밥 차려 주고 즐겁게 놀지.’ 하고 생각한다. 그래, 자야 할 텐데, 어떻게 잘까. 말똥말똥 뜬눈으로 있다가 한 가지 떠올린다. 아버지 돌아오기 앞서 잠든 작은아이 틀림없이 밤오줌 마렵다고 낑낑거릴 테니까, 작은아이가 낑낑거릴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가, 작은아이 쉬를 누이고 아무튼 잠자리에 드러누워 눈을 감자.


  밤 열두 시가 넘은 뒤 작은아이가 낑낑거린다. 옳지, 잘 되었다. 쉬 누어야지. 왼어깨에 작은아이를 포옥 안고 마루로 나온다. 마루에 작은아이 세우면서 왼어깨로 받치고, 오른손으로 오줌그릇 들어 “쉬. 쉬.” 하고 말한다. 작은아이는 눈 감으 채 아버지 어깨에 기대어 밤오줌 쪼르르 눈다. 많이 누네. 많이 마려웠나 보구나. 오줌그릇을 제자리에 놓고 작은아이를 안아 잠자리에 누이고 이불 여민다. 큰아이는 이불 몽땅 걷어차고 옹크린다. 큰아이도 이불 여미어 준다. 이불 여미니 큰아이는 옹크린 몸을 풀고 반듯하게 쪽 편다. 녀석아, 너 스스로 이불 걷어차서 추우니 옹크렸구나. 아이들 오줌이 찬 오줌그릇 들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별빛 환한 밤하늘 올려다본다. 기지개를 켠다. 잘 자자. 너희들도 아버지도 즐겁게 포옥 자고, 새 하루 새로운 사랑 되어 즐거이 누리자. 4346.1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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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언제나 새롭게 노니

 


  아이들은 언제나 새롭게 논다. 무엇 하나로 놀더라도 새롭다. 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놀이빛을 물끄러미 읽는다. 참 재미있네, 참 놀랍네, 참 사랑스럽네, 하고 생각하면서 살그마니 사진을 한 장 두 장 찍는다. 아이들 놀이빛을 사진으로 담은 뒤, 이 고운 빛을 나 혼자 가슴에 묻을 수 없어 글을 붙인다. 우리 집과 퍽 멀리 떨어진 아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와 이모와 삼촌 모두 어디에선가 우리 아이들 놀이빛 지켜볼 수 있기를 빌며, 글과 사진으로 이야기 하나 꾸린다. 어버이 스스로 바지런하기에 육아일기를 쓰지 않는다. 아이들이 놀이빛 밝히기에 저절로 육아일기 태어난다. 어버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서 육아일기를 쓰지 않는다. 아이들이 맑게 웃고 노래하기에 시나브로 육아일기 샘솟는다. 어버이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서 사진으로 육아일기 갈무리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안기고 뒹굴며 뛰노니까, 이 빛이 고스란히 육아일기라는 옷을 입는다. 육아일기란 삶일기이다. 글쓰기란 참말 삶쓰기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곁님과 나 스스로 즐겁게 누리는 빛이 글 하나로 새삼스레 거듭난다.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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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2-05 18:28   좋아요 0 | URL
동네를 지니가다 보면 해 맑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참 부러워요~
그리고 노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까지 하더라구요.^^

숲노래 2013-12-05 21:18   좋아요 0 | URL
아이도 어른도 서로 해맑게 웃으며 놀면
참으로 아름다워요!
 

지켜보는 눈길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릴 적에 아이들이 지켜본다고 느낀다. 설렁설렁 차리는지, 차근차근 차리는지, 맛나게 차리는지, 밍밍하게 차리는지, 모든 밥차림을 아이들이 지켜본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밥차림을 지켜보건 말건 늘 즐겁게 맛있게 차리자고 생각한다. 날마다 새로운 사랑을 담아서 차리고, 눈으로 보기에도 고운 빛 흐르도록 차리자고 생각한다. 십이월로 접어든 아침, 손이 시리지만 마당 한쪽에서 까마중알 훑는다. 십이월 넘어서도록 열매 베푸는 까마중풀이 고맙다. 아직 하얗게 달린 꽃 많아, 어쩌면 십이월 내내 까마중알을 밥상에 올릴 수 있으려나 싶다.


  마당에서 아이들이 논다. 널판을 미끄럼 삼아 타고 논다. 몇 차례나 그리 하지 말라 하지만, 씩씩하게 다시 놀고 또 논다. 미끄럼 타다가 넘어지든 미끄러지든 다 좋아. 또 놀고 다시 놀며 싱그러운 섣달바람 누리렴. 그리고 밥도 맛있게 먹자. 4346.1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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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1] 어버이읽기
― 물려받은 사랑과 삶과 넋 물려주기

 


  엊저녁 아이들이 남긴 밥을 새벽에 먹습니다. 이 찬밥을 치워야 아침에 새밥 짓습니다. 아이들 밥그릇에 남은 밥을 치워야, 아이들 밥그릇을 정갈하게 씻고 헹구어 다시 밥상에 올립니다.


  아이들은 놀이꾼입니다. 잠자리에서도 놀고, 마실을 가는 군내버스에서도 놀며, 머리를 감거나 몸을 씻을 적에도 놉니다. 아이들은 놀이지기입니다. 밥을 먹다가도 놀며, 놀다가도 새롭게 놀 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 안겨 새로운 놀이를 찾아냅니다.


  어버이란 아이들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버이란 아이를 낳거나 돌보면서 사랑을 물려주는 사람입니다. 어버이란 어버이 되기 앞서까지 아이로 지내면서 다른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은 사람입니다. 곧, 어버이라는 자리에 서면, 이제껏 받은 사랑을 새로운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여태 누린 즐거운 삶을 아이한테 새로우면서 즐겁게 물려줄 적에 어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대서 어버이가 아닙니다. 아이를 낳았기에 어버이가 아닙니다. 그동안 아름답게 받은 사랑을 하나하나 깨닫고, 이렇게 깨달은 사랑을 아이들한테 차근차근 따사롭고 넉넉하게 돌려주거나 나눌 수 있을 때에 어버이입니다. 그동안 즐겁게 누린 삶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이렇게 헤아린 삶을 아이들이 씩씩하고 튼튼하게 가꾸도록 이끌 수 있을 때에 어버이입니다.


  새벽에 엊저녁 아이들 밥을 마저 먹어서 치웁니다. 아이들 밥그릇에 물을 받습니다. 아침에 밥을 끓이면서 설거지를 해야지요. 아이들 오줌그릇을 비우러 마당으로 내려서며 밤하늘 별을 올려다봅니다. 아직 새벽이 이르고, 곧 섣달이며 그믐달에 가까우니, 까만 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이 새하얗습니다. 아이들 마음이란, 이 별빛처럼 초롱초롱 빛나겠지요. 어버이라는 사람은 아이들 마음이 언제나 초롱초롱 빛나면서 환하게 따숩도록 북돋우는 길을 걷는다 하겠지요.


  날마다 아이들 옷을 갈아입히고, 몸을 씻기며 손발을 살핍니다. 날마다 아이들과 살을 비비고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듣고 배울 것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맞아들이고 받아들일 삶을 돌아봅니다. 아이들이 먹을 밥이란 어른이 함께 먹을 밥입니다. 아이들이 입을 옷이란 어른이 함께 입을 옷입니다. 아이들이 살아갈 집이란 어른이 함께 살아갈 집입니다. 아이들이 자랄 마을이란 어른이 함께 자라며 어깨동무할 마을입니다.


  아이한테만 주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주기 앞서 어버이가 먼저 살피고 누리며 생각합니다. 아무 책이나 아이한테 건네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건네기 앞서 어버이가 먼저 살피고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버이부터 스스로 즐겁게 읽으며 누린 책일 때에 아이한테 건넬 수 있습니다. 어버이부터 스스로 마음이 북받치거나 즐겁구나 하고 느낀 책일 때에 아이를 무릎에 앉혀 읽어 줄 수 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몫은 어머니 혼자 맡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혼자 못 낳습니다. 아이는 아버지 혼자 낳을 수도 없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둘이 있어 아이를 낳듯, 어머니와 아버지 둘이 아이들한테 사랑을 고이 물려줄 때에 비로소 어버이 몫을 맡는다 말합니다.


  돈만 버는 사람이라면 돈쟁이가 될 뿐이에요. 밥만 지어 챙긴다면 밥순이가 될 뿐입니다. 집살림 꾸리려 돈은 돈대로 벌더라도, 아이들과 누리는 삶을 생각하면서, 내가 이제까지 우리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떠올리고, 아이한테 새롭게 사랑 한 타래 더 얹은 꿈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라는 아이입니다. 교육을 받거나 훈련을 받는 아이가 아닙니다. 꿈을 받아먹으며 크는 아이입니다. 한글과 영어와 한자를 일찌감치 떼어야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삶을 깨달아 아름답게 가꿀 아이입니다. 대학생이 되거나 회사원이 되어야 할 아이가 아닙니다.


  아이를 아름답게 돌보고 싶다면, 어버이는 어버이 삶부터 아름답게 돌보면 됩니다. 아이를 사랑스레 보살피고 싶으면, 어버이는 어버이 삶부터 사랑스레 보살피면 됩니다. 아이한테 베풀거나 나누고 싶은 무언가 있다면, 바로 어버이 스스로 이러한 무언가를 즐겁게 누리면서 시나브로 아이한테 물려주면 돼요. 어버이 마음이 아이 마음 되어요. 아이 마음은 다시 어버이 마음이 됩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면서 활짝 웃는 한솥밥지기입니다.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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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 하나씩

 


  밥상에 하나씩 얹는다. 아이들이 배고프다면 알아서 무엇이든 집어서 먹겠지 하고 생각하며 밥상에 하나씩 얹는다. 다만, 밥을 끓이고 나서, 국거리를 송송 썰어서 국냄비에 불을 넣고 나서, 지짐판을 달구어 무언가 볶는다면, 한창 볶고 나서, 비로소 밥상을 행주로 슥슥 훔친 다음 접시에 무를 썰어 담고 오이를 썰어 담은 뒤 얹는다. 밥이 거의 다 끓어 뜸을 들인다. 국이 거의 다 끓어 간을 맞춘다. 볶음이 거의 다 익어 뚜껑을 덮고 불을 끈다. 이동안 양배추나 붉은양배추를 썰고 남새 한 가지를 섞어 간장을 살짝 붓고 손으로 휘휘 젓는다. 아이들이 옆에 달라붙어 “왜 손으로 해요?” 하고 묻는다. “손으로 해야 구석구석 잘 섞여.” 하고 말한 다음 손으로 나물무침을 조금 쥐어 아이 입에 넣는다. 무침을 조금 큰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린 뒤 마당으로 가서 까마중을 훑는다. 겨울이 코앞이니 맨손으로 까마중알 훑으며 손이 시리다. 까마중을 따는 손은 보라빛으로 물든다. 까마중을 담은 접시를 밥상에 올린다. 제법 모양이 나오는걸. 큰아이 작은아이 밥상 앞을 기웃거리며 무와 오이를 먹는다. 아버지가 이렇게 차리는데 너희가 안 먹고 어쩌겠니. 굶을 수 없겠지. 찬찬히 먹다 보면 이렇게 먹는 밥이 가장 맛나고 너희 몸에도 가장 즐거우리라 생각해. 아픈 데 하나 없이 씩씩하게 잘 크잖니. 이제 국냄비에서 곤약을 꺼낸다. 봄과 여름에는 곤약을 물로 헹구어 차갑게 밥상에 올렸으나, 가을로 접어든 때부터 겨울 사이에는 곤약을 국냄비에 함께 넣어 폭 끓여 아주 뜨거울 때에 꺼내어 송송 썬다. 까마중 접시는 일찌감치 빈다. 까마중 접시를 치우고 곤약 접시를 올린다. 아이들 불러 수저 놓으라 이르고는 국그릇부터 올려 준다. 국부터 마시며 속을 따스하게 하렴. 만두는 석 점씩 가위로 잘라 밥에 얹는다. 자, 모두 맛나게 밥을 먹자고.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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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30 09:45   좋아요 0 | URL
언제 보아도~ 아버지의 마음과 정성이 듬뿍 들어간
예쁘고 좋은 밥상입니다~*^^*

숲노래 2013-11-30 10:54   좋아요 0 | URL
예쁘게 잘 먹어 줄 때에 예쁜 밥상 되겠지요.
appletreeje 님 토요일 즐거이 누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