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42] 흙과 하늘과 놀이
― 삶을 배우는 길

 


  흙이 있어 풀이 자랍니다. 풀이 자라며 나무가 튼튼합니다. 나무가 튼튼하면서 바람이 싱그럽습니다. 바람이 싱그러우면서 숲이 우거집니다. 숲이 우거지면서 냇물이 맑습니다. 냇물이 맑으면서 물고기 노닙니다. 물고기 노닐면서 들을 적십니다. 들을 적시며 푸른 숨결 넘칩니다. 푸른 숨결 넘치면서 갯벌이 드넓습니다. 갯벌이 드넓으면서 파다가 파랗습니다. 파다가 파랗게 빛나면서 하늘 또한 파랗게 빛납니다. 하늘이 파랗게 빛나면서 구름이 하얗습니다. 구름이 하야면서 빗물이 시원합니다. 빗물이 시원하면서 무지개가 피어오릅니다. 무지개가 피어오르면서 별빛이 환합니다. 별빛이 환하면서 햇볕이 따사롭습니다. 햇볕이 따사로우면서 사람들이 즐겁게 살아갑니다.


  흙을 만지며 노는 아이는 지구별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지구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생각을 넓히고 몸을 살찌웁니다.


  흙 한 줌은 풀이 됩니다. 풀은 나무가 됩니다. 나무는 바람이 됩니다. 바람은 숲이 되고 냇물이 되며 물고기 되다가는 흐르고 흘러서 고운 사랑으로 빛나는 숨결로 깃듭니다. 너른 우주로 돌아본다면 지구별이란 작은 흙알갱이 하나와 같을 수 있어요. 우리가 손으로 만지는 흙알갱이 하나는 어쩌면 지구별 하나와 같은 숨결일 수 있어요.


  먹는 대로 똥을 누고, 마시는 대로 오줌을 눕니다. 풀을 먹으니 풀똥을 누고, 샘물을 마시니 샘물 같은 오줌을 눕니다. 나뭇잎은 가랑잎 되어 나무를 살찌우는 거름이 됩니다. 우리가 누는 똥오줌은 다시 우리가 먹을 풀밥을 고소하게 살찌우는 거름이 되어 흙으로 갑니다. 아이들 웃음은 어버이한테 돌아옵니다. 어버이 웃음은 아이한테 스며듭니다. 아이들 놀이는 어버이 일거리로 젖어듭니다. 어버이가 즐겁게 하는 일은 아이들 놀이로 깃듭니다.


  흙을 보고 만지기에 놀이가 됩니다. 흙을 보고 만지며 일을 익힙니다. 흙을 보고 만지는 사이 삶을 깨닫습니다. 흙을 보고 만지는 동안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4347.1.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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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이와 놀아 주는가

 


  오늘날 거의 모든 아버지는 집 바깥으로 새벽같이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온다. 집 바깥으로 나가서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 집식구를 먹여살리려고 힘쓴다. 그런데, 집식구를 먹여살리려는 돈을 버느라 집 바깥에 너무 오래 있다. 집에서 아이들과 부대끼거나 놀 겨를이 거의 없는 요즈음 아버지라고 느낀다. 게다가 집 바깥에서 집식구 먹여살릴 돈을 버느라 바쁘고 힘든 탓에, 토요일이나 일요일조차 집에서 뒹굴거나 잠을 더 자고 싶을 뿐,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뛰노는 아이들하고 땀을 흘리면서 놀려고 마음과 몸을 쓰는 아버지는 참 드물다.


  누가 아이와 놀아 주는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와 놀아 주지 않으면, 아이는 누구하고 놀아야 하는가. 마을 동무? 학교 동무? 학원 동무? 시골에서는 일찌감치 마을 동무가 모조리 사라졌다. 도시에서는 어떠할까? 도시에서 골목놀이를 즐기는 동무가 있을까? 그나마 자전거라도 함께 타는 동무는 있는가? 기껏 있어도 피시방까지만 자전거를 타고 갈 테지. 학원에서는 학원 진도 따라가야 하고, 학교에서는 학교 진도를 따라가야겠지. 참말 아이들한테 제대로 된 놀이동무란 어디에 있을까. 어버이는 아이를 낳고 나서 학교와 시설과 학원에 보내기에만 바쁜 나머지, 아이하고 놀거나 복닥이는 삶을 모조리 잊거나 등돌리거나 남한테만 맡기는 셈 아닌가 궁금하다.


  아이와 놀지 않으면 아이들이 놀면서 얼마나 환한 웃음빛인지 깨닫지 못한다. 아이와 놀지 않으면 아이들이 날마다 얼마나 무럭무럭 자라면서 씩씩하게 몸매가 탄탄히 잡히는가를 알아채지 못한다. 하루아침에 쑥 크는 아이는 없다. 날마다 조금씩 천천히 자라면서 아주 야무지고 대견하다. 하루아침에 부쩍 크거나 줄기가 굵는 나무는 없다. 해마다 조금씩 굵어지고 키가 자란다.


  아이들 손톱과 손가락이 날마다 얼마나 예쁘게 자라는가를 어버이 모두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 발가락과 허벅지와 종아리가 날마다 얼마나 곱고 튼튼하게 살점 잡히는가를 어버이 누구나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조금씩 뱃살이 들어가면서 엉덩이 탱탱해지고 볼살이 빠지면서 어깨가 넓어지고 가슴과 허리가 단단해지는가를 어버이 모두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늘어나는 말솜씨와 말빛을 느껴야 어버이라 할 만하지 않겠는가.


  지난날에는 어느 어버이도 집 바깥으로 혼자 일하러 다니지 않았다. 지난날에는 모든 어버이가 아이와 함께 일했다. 집 바깥에서나 안에서나 늘 아이가 곁에 있었다. 아이를 곁에 두고 일하지 못하는 삶이란,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서로 슬프거나 힘겨운 나날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언제나 기다린다. 저를 낳은 어른들하고 놀아 주려고 아이들은 언제나 기다린다. 4347.1.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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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41] 아이들 발소리 듣기
― 겨울바람 사이로 귀를 기울여

 


  아이가 걷습니다. 처음 발걸음 디딜 수 있던 날부터 일곱 살을 맞이한 일월 한복판을 걷습니다. 큰아이가 처음 걸음을 디딘 곳은 인천 골목동네입니다. 그럭저럭 자동차 뜸한 골목이었지만, 아이가 내딛는 걸음을 느긋하게 누리려 할 적마다 앞과 뒤에서 자동차가 오르내렸습니다. 아이는 골목마실을 하면서 더 신나게 걷지 못했습니다.


  큰아이가 세 살 적부터 시골로 옮겨 살아갑니다. 큰아이는 자동차를 거의 걱정하지 않으면서 걷고 달리며 뜁니다. 가끔 지나가는 짐차나 택배차나 군내버스 소리를 듣기는 하는데, 워낙 지나다니는 자동차가 적으니, 마당에서 놀다가도, 또 대청마루에서 놀다가도, 무슨 자동차가 지나가는지 알아차립니다. 언제나 비슷한 때에 비슷한 자동차가 지나가거든요. 우체국 오토바이 소리라든지, 마을 이장님 짐차라든지, 저기 마을 어귀로 군내버스 지나가는 소리라든지, 우리 집에 들르는 택배차라든지, 언제나 거의 어김없이 비슷한 때에 똑같은 소리로 지나가요.


  자동차가 적을 적에는 이렇게 자동차마다 다른 소리를 헤아리는데, 자동차가 많은 곳에서 살면 아이 귀는 어떤 소리를 받아들일까요. 그리 궁금하지는 않아요.


  시골집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아이가 듣는 소리는 바람소리입니다. 풀벌레 노랫소리입니다. 개구리와 멧새와 제비가 들려주는 노랫소리입니다. 나뭇가지 흔들리고 풀잎이 눕는 소리를 듣습니다. 더 귀를 기울이면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와 꽃씨 흩어지는 소리를 듣겠지요. 민들레와 같이 솜털 같은 씨앗이 날아가는 소리도 곧 들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아침저녁으로 제비꽃과 괭이밥꽃 피고 지는 소리를 머잖아 듣기도 하리라 느껴요.


  두 아이와 마을 한 바퀴 돌면서 아이들 발걸음 소리를 듣습니다. 사뿐사뿐 나긋나긋 가뿐가뿐 느긋느긋 디디는 발소리를 듣습니다. 폭신한 신을 신고 디디는 발소리는 아주 작습니다. 그렇지만 보록보록 디디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요. 겨울바람 솨라라 부는 소리도 듣고, 바람소리 사이사이 흐르는 두 아이 발걸음 다른 소리를 듣습니다. 나풀나풀 나비와 같고, 너풀너풀 날갯짓을 하는 발소리를 빙그레 웃으면서 자꾸자꾸 듣고 또 듣습니다. 4347.1.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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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지내며 하나도 안 힘들다

 


  두 아이를 돌보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아직 없다. 앞으로도 없으리라 느낀다. 왜냐하면, 참말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마땅하지 않은가. 무엇이 힘든가. 다만, 두 아이와 지내다가 누군가 아이가 ‘몇 달’이라느니 ‘언제 태어났느냐’ 하고 물으면 으레 멈칫멈칫한다. 태어난 해가 언제인지 잊기도 하고, 좀처럼 못 떠올리기도 한다. 태어난 날을 잘못 알기도 하고, 달수를 잘못 세기도 한다. 그리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탓일 수 있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안 보내는 탓일 수 있으며, 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마음이 없는 탓일 수 있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느낄 적에 ‘나이’나 ‘달수’로 생각하지 않은 지 오래이다. 아이를 느낄 적에는 눈빛을 보고 낯빛을 본다. 손을 잡고 발가락을 만진다. 아이들 배를 살살 쓰다듬어 보고, 허리와 등을 비벼 본다. 머리카락을 빗어 주고 쓰다듬는다. 옷을 갈아입히고 씻으면서 배가 어느 만큼 들어갔는지 살핀다. 달리기를 얼마나 잘 하고, 넘어졌다 일어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키가 어느 만큼 자랐는가 헤아리고, 아이들 손을 잡고 걸을 적에 아이 손과 내 손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 돌아본다.


  밥상맡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먹는지 헤아린다. 언제나 아이들 밥그릇에 조금 많이 밥을 퍼서 건네는데, 아이들은 배고프면 꽤 많이 담은 밥을 씩씩하게 다 먹는다. 덜 배고프면 먹다가 남긴다. 두 아이 똥받이를 손수 하니까, 아이들이 누는 똥을 들여다보고 냄새를 맡으면서 아이들 몸이 어떠한가를 돌아보고, 밥을 제대로 씹어서 먹었는지 알아본다. 하루이틀 만진 아이들 똥오줌이 아니기도 하지만, 아이들 똥오줌이 ‘더럽다’고 느낀 적이 없다. 아이들이 먹은 그대로 똥이 되고, 이 똥은 다시 흙으로 돌아갈 텐데, 왜 더러울까.


  아이가 하나라면 한결 수월하다든지, 더 멀리 자주 나들이를 다닌다든지, 이것저것 더 보여주거나 가르칠 수 있다고도 가끔 생각한다. 그러나, 둘이라서 덜 수월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둘이기에 두 아이는 서로 돕고 아끼면서 놀곤 한다. 내가 작은아이한테 이것저것 따로 품을 들이거나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않아도, 큰아이가 동생을 보살피거나 이것저것 가르치거나 보여주곤 한다. 아이 하나일 때와 둘일 때 가운데 어느 쪽이 ‘일손이 적게 든다’고 가를 수 없다.


  언제나 아이들이 먼저 나한테 말을 건다. 아이들은 저희한테 어버이가 ‘무엇을 해 주어야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가’를 먼저 알려준다. 나는 아이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서 듣고, 잘 챙기면서, 함께 어울릴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언제나 곰곰이 생각을 기울여, 아이들이 말하기 앞서 찬찬히 베풀면서 함께 누릴 이야기를 조곤조곤 지으면 된다.


  날마다 새로운 생각을 얻는다. 늘 새로운 마음이 된다. 할머니 두 분이 “혼자 애 돌보느라 얼마나 힘들겠어?” 하고 걱정해 주셔도, 여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는 터라, “아이들이 있어 날마다 새 글을 쓸 수 있고, 새 일이 찾아들면서, 새 삶을 누리는걸요.” 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빗대어 말할 만하다. 아름다운 영화를 두 시간 동안 꼼짝않고 보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사랑스러운 책을 몇 시간 가만히 서서 읽는 동안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푸른 숲길을 거닐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짙푸른 바다가 멀리까지 이어진 모래밭에 서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싱그러운 바람이 흐르는 들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아이들과 지내는 하루란, 이 모두가 한꺼번에 잇달아 찾아드는 삶이라고 느낀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마음속으로 드리우는 빛살이 참 반갑다. 4347.1.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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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4-01-21 09:57   좋아요 0 | URL
저도 님처럼 아이랑 있으면서 힘들다고 생각한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왜? 그 이쁜아이의 행동하나 하나가 너무 사랑스럽고 신비로웠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아니라 어느 순간 학부모가 된 지금 힘들다라는 말을 입데 달고 삽니다, 그건 아마 엄마의욕심이 너무 과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어릴적 그저 웃어서 좋았고 밥먹는 모습도 이뻤고 오줌 똥 누는것도 이뻤습니다 아프면 아파서 가슴아팠고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엄마가 아니라 학부모가 되어가고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고치려고 노력을 하는데 잘 안되고 지금은 사춘기옆에 접어든 딸은 엄마말 한마디 한마디에 말대꾸를 하는데 저는 딸이랑 아주 친밀감이 좋다고 느꼈는데 아닌가봅니다 그동안 저만의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아이는 아닌가 봅니다 그래서 엄마인 저는 요즘 힘들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있는지 그래서 또 반성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숲노래 2014-01-21 10:29   좋아요 0 | URL
어머니나 아버지 아닌 '학부모'라는 이름이 될 적에는 그렇게 될 수 있겠네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서 무언가 배우도록 하더라도
늘 아이를 믿고
서로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고운 숨결이라는 마음을
찬찬히 보듬으시면
언제나처럼 예쁜 하루 되리라 믿어요.
아이도 어머니한테 말대꾸 아닌
사랑스러운 말을 나누면서
하루를 즐기고 싶으리라 생각해요.
올해 아름답게 누리시기를 빌어요.
 

함께 먹는 밥

 


  아이들한테 차려 주는 밥이란 아이들만 먹는 밥이 아니다. 아이들이 먹어야 할 밥을 따로 차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먹기를 바라는 밥을 애써 차리지 않는다. 아이하고 함께 맛나게 즐길 밥을 차린다. 어버이로서 여느 때에 늘 즐기는 밥을 차려서 아이들이 이 밥을 기쁘게 맞이해서 아름답게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만 생각해서 차리는 밥이란 없다. 아이를 생각할 적에는 저절로 어버이인 내 몸을 함께 생각한다. 어버이인 내 몸을 생각할 적에도 똑같이 아이들 몸을 나란히 생각한다. 함께 살아가는 숨결인 줄 느끼면서, 서로 맑고 밝게 웃을 나날을 가만히 그린다.


  평화롭게 누리는 삶이란 너와 내가 모두 평화로운 삶이다. 어느 한쪽만 평화로울 수 없다. 나는 누런쌀밥을 즐겨먹기는 했으나, 날푸성귀를 즐겨먹지는 않으면서 지냈다. 날푸성귀가 어떤 풀맛인가를 느낀 지는 아직 열 해가 안 되었다. 날무도 날배추도 날당근도 날오이도 실컷 즐긴 지는 몇 해 안 되었다. 기름으로 지지고 볶기를 내키지 않다 보니, 아이한테 지짐이나 볶음이나 무침은 되도록 차리지 않고, 나 또한 으레 날것으로 먹기 마련이다. 오이지도 맛있지. 그런데 날오이도 되게 맛있다. 김치도 맛있다 할 만하겠지. 깍뚜기도 배추김치도 맛있다 하리라. 그런데 날무도 참 맛있다. 양배추도 여느 풀도 간장으로 살짝 버무려서 올린다. 이렇게 먹을 적에 내 뱃속이 가장 느긋하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뱃속이 느긋할까. 하루에 한두 차례 아이들이 누는 똥을 들여다보고 냄새를 맡으면, 아이들도 이런 밥차림이 몸에 맞는구나 하고 느낀다.


  이 겨울 지나고 새봄 찾아오면 아이들과 함께 집 둘레 온갖 풀을 찬찬히 뜯어서 즐겨야지.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더 먹을수록 스스로 흙에서 풀을 얻고 흙벌레와 흙나무를 찬찬히 눈여겨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까이에서 가장 또렷하고 힘있게 밥차림 이야기를 알려주는 사람은 바로 아이들이다. 4347.1.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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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2014-01-20 11:56   좋아요 0 | URL
보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밥상이네요.
재료가 좋지 않을 때 양념과 조리법이 복잡해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죠.

숲노래 2014-01-20 13:55   좋아요 0 | URL
그렇기도 하겠네요.
재료가 안 좋다든지,
재료를 다룰 줄 모를 적에,
양념을 자꾸 쓰면서
조리법도 어려워지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