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29] 철 따라 다르다
― 가을길 걷기

 


  시골마을은 철 따라 다릅니다. 도시도 철 따라 다르다 여길 수 있지만, 도시에서는 온도만 다르지, 철 따라 다른 모습은 하나도 없습니다. 풀과 나무가 자랄 빈틈 거의 모두 없애고 높직하게 시멘트집 짓는 도시에서는 봄과 가을이 어떻게 다르고 여름과 겨울이 얼마나 다른가를 눈과 귀와 살갗과 마음으로 느끼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시골마을은 온통 시멘트밭입니다. 논둑과 밭둑도 시멘트요, 마당과 고샅도 시멘트입니다. 논도랑마저 시멘트예요. 시멘트로 닦는 시골길은 경운기와 짐차가 다니기에 좋습니다. 시멘트로 닦은 시골길은 아이들이 놀기에 나쁘고, 어른들이 걸어 마실 다니기에 나쁩니다.


  너무 마땅한데, 시멘트바닥과 아스팔트바닥에는 씨앗을 못 심습니다. 나무와 풀은 시멘트땅과 아스팔트땅에서 못 자랍니다. 자동차와 기계 다루기에는 좋다지만, 시골이라는 곳은 흙땅에 씨앗 심어 일구는 곳인 만큼, 자동차와 기계한테만 땅을 내주면 시골이 시골다움을 잃습니다.


  도화면 동백마을에서 두원면 두곡마을 이웃집으로 마실을 가는 길에, 읍내에서 군내버스를 내려 걷습니다. 사오십 분이면 넉넉히 걸어갈 길이지만 더 천천히 걸어 한 시간 삼십 분 들여 걷습니다. 걷다가 일부러 걸음을 멈춥니다. 걷다가 한참 기지개를 켜며 숲바람 마십니다. 수덕마을 지나 두곡마을로 접어드는 갈래길부터 자동차가 거의 없습니다. 이 길자락을 삼십 분 걷는 동안 군내버스 두 차례 지나가고 다른 자동차 넉 대 지나갑니다. 자동차 오가지 않는 동안 오롯이 풀내음 맡고 풀노래 듣습니다. 가을빛 내려앉은 들길을 누립니다.


  가을빛은 풀과 나무가 알려줍니다. 가을내음은 풀과 나무에서 흐릅니다. 숲이 있을 때에 철을 느낍니다. 숲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달라지는 빛과 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가을에 곡식과 열매를 거두어 배부르게 나누지요. 봄에 씨앗을 심으며 부푼 꿈을 꾸지요. 도시사람도 시골사람도 가을길 함께 천천히 거닐며 흙과 숲과 하늘과 바람을 마음 깊이 받아안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0.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새벽 설거지

 


  방 온도가 19도가 된 모습을 보고는 바닥에 불을 넣는다. 나 혼자 사는 집이라면 15도가 되어도 불을 안 넣을 테지 하고 생각하다가, 나 혼자 살더라도 15도쯤 되면 불을 넣을 노릇 아닌가 하고 생각을 고친다. 불넣기를 아끼려고 추위를 견디는 일은 즐겁지 않다. 몸을 아끼고 살피면서 살림을 꾸려야 맞다. 아이들도 옆지기도 따스하게 잠들고, 새벽에 개운하게 잠을 이룰 수 있어야 모두들 새 하루 기쁘게 맞이한다.


  바닥에 불을 넣고 새벽에 설거지를 한다. 따순물 흐르게 했더니 쇳내 나는 물이 나온다. 오랜만에 바닥불 넣었기에 쇳내가 나는구나 싶다. 봄부터 가을까지 바닥불은 거의 안 넣었으니 이럴 만하구나 싶다. 일부러 따순물 조금 세게 틀며 설거지를 한다. 손가락이 뜨겁지만 쇳내 잘 빠지기를 바라며 설거지를 한다.


  보일러 기름이 얼마쯤 남았는지 가늠한다. 얼른 기름통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달 끝무렵이나 다음달 첫무렵에 살림돈 될 일삯이 들어오면 거뜬히 기름통 채울 텐데, 이 일삯은 언제 들어오려나. 부디 추위가 닥치기 앞서 일삯이 쏙쏙 들어오기를 빈다. 4346.10.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침에 방바닥 쓸고 치우며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난 뒤에 함께 방바닥을 쓸고 치울까 하다가 나 혼자 쓸고 치우기로 한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이나마 깨끗한 방바닥 모습을 보도록 하는 쪽이 나으리라 생각한다. 어제 낮에 아이들과 우체국 다녀오며 가을바람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목이 따갑고 재채기가 끊이지 않아, 저녁은 이럭저럭 먹이고 아이들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들은 늦게까지 놀며 잠든 듯한데, 새벽에 일어나 보니 방바닥이 온통 종잇조각투성이다. 종이를 오리며 놀았구나.


  어지른 것들 이리저리 치운다. 방바닥에 상자로 담은 내 책들 물끄러미 바라본다. 미루고 미루었기에 책들이 이렇게 쌓였으리라. 내 책들도 며칠쯤 바지런히 갈무리해서 모두 서재도서관으로 옮겨야겠다. 내 책들이 빠지고, 아이들 장난감도 알맞게 추스르면 방바닥이 한결 넓고 시원할 테지. 스스로 알뜰살뜰 여미지 못하면서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아이들한테 무언가 시킬 수 없다. 차근차근 지켜보고, 어버이인 내 삶 갈무리를 어떻게 하는가 스스로 돌아보면서 집살림 함께 꾸리자. 4346.10.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살이 일기 28] 무엇을 그릴까
― 아이와 그림놀이 즐기기

 


  큰아이가 세 살이 꽉 차지 않을 무렵까지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도시에서 그대로 살았더라면, 큰아이하고 어떤 그림놀이를 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아무래도 골목마실 자주 다니면서 골목동네에서 만난 골목꽃이랑 골목나무를 그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가 그림그리기를 퍽 좋아할 무렵 시골로 보금자리 옮겨 살아가는 만큼, 아이는 늘 시골빛을 마주하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집 둘레 풀을 봅니다.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를 봅니다. 집 안팎에서 풀꽃과 들꽃을 바라봅니다. 자전거로 들길을 달리며 들내음 마시며, 이 기운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풀을 뜯어 밥상에 올리는데, 아이들이 먹고 남은 풀이 밥상에 그대로 있습니다. 큰아이는 밥그릇 치운 밥상을 책상으로 삼아 그림놀이를 합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책상 곁에 우리 마당에서 뜯은 풀이 꽃접시에 담긴 채 있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다가, 그림놀이 즐기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이 풀내음 살며시 아이 마음과 몸으로 스며들겠다고 느낍니다. 늘 풀을 마주보면서 풀빛을 그림에 담고, 언제나 풀을 먹으면서 풀내음을 그림으로 나타내겠구나 싶어요.


  무엇을 그림으로 그릴까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늘 바라보고 느끼며 생각하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지요. 무엇을 그림으로 그리며 즐거울까요?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보금자리를 가꾸고 돌보면서 배우고 깨달으며 맞아들이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빚으며 즐겁지요. 4346.10.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버지 그림놀이] 작은아이 안고서 (2013.8.14.)

 


  경북 안동으로 마실을 간 여름날, 작은아이를 씻긴 뒤 옷을 갈아입히며 그림놀이를 한다. 토실토실 궁둥이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기려고만 하고, 작은아이를 안은 채 그림을 척척 그린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다 똑같을 테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10-25 09:14   좋아요 0 | URL
그림 속에 들어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바람처럼 나무처럼 빛처럼..제 눈과 마음을 환하고
즐겁게 밝혀주는 좋은 아침입니다~
아버지와 보라의 모습도 참 좋습니다~*^^*

숲노래 2013-10-25 09:11   좋아요 0 | URL
찍어 주신 분이 잘 찍어 주시기도 했어요~
어쩌다 얻는 이런 고마운 사진들이 참으로 즐겁습니다~

후애(厚愛) 2013-10-25 16:15   좋아요 0 | URL
아버지와 보라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좋은 추억이 남는 사진이 될 것 같습니다~

숲노래 2013-10-25 18:33   좋아요 0 | URL
사진으로도 있으니,
녀석들
커서,
지 아버지가 여름 내내
선풍기 없이 늘 부채질로
땀을 식혀 준 줄
조금은 알아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