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그림책은 내 친구 1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미란 옮김 / 논장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머니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8] 앤서니 브라운, 《동물원》(논장,2002)

 


 졸리면서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가슴에 엎드리게 해서 재우곤 합니다. 첫째 아이이든 둘째 아이이든, 이렇게 가슴에 엎드리게 해서 재우고 보면, 아이 무게에 눌려 가슴이 뻑적지근합니다. 묵직하구나 싶어 몸을 옆으로 살살 기울이며 팔베개 하며 내립니다. 팔베개를 한 채 그대로 있어야 할 때가 있고, 어느 때는 팔베개를 살짝 빼내어도 새근새근 잠듭니다.

 

 내가 우리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때에 내 어버이는 나를 어떻게 재웠을까 궁금합니다. 내 어버이도 나를 가슴에 엎드리게 하며 재우느라 뻑적지근한 하루를 보내셨을까요.

 

 서양사람은 아이들이 꽤 어릴 때부터 방이나 침대를 따로 쓰게 한다지만, 모든 서양사람이 이렇게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조그마한 집에서 살아가던 사람들도 아이들마다 잠자리를 따로 마련해서 재웠을까요. 모두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들었을까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잠자리를 따로 마련하는 일이 좋은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부러 함께 잠자리를 마련해야 할 까닭이 없을 테지만, 애써 잠자리를 갈라야 할 까닭이 있을까 모르겠어요.

 

 잠을 자는 방에 모두 나란히 누워 불을 끄면, 숨소리 골골 천천히 느끼다가 어느 결에 꿈나라로 갑니다. 여름에는 덥다지만, 겨울에는 한 방에 함께 누우니 한결 따스합니다. 깊이 잠든 아이 이마를 쓰다듬으며 머리결을 뒤로 넘길 때에, 이 어여쁜 아이를 새삼스레 다시 돌아봅니다. 참으로 어여쁜 아이라고 느끼는 내 눈길이라면, 이 아이가 제 어버이를 바라볼 때에도 참으로 어여쁜 어머니 아버지라고 느낄까 하고 돌이킵니다. 하루를 마감하며 오늘 하루 얼마나 즐거웠는지 되새기고, 새로 맞이할 하루는 어떻게 누릴까 하고 꿈꿉니다.

 


.. 엄마는 씁쓸하게 말했다.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곳이 아닌 것 같아. 사람들을 위한 곳이지.” ..  (22쪽)


 내가 혼자 살아간다면 어떤 모습 어떤 꿈 어떤 사랑이었을까 헤아려 보곤 합니다. 네 식구 함께 얼크러지는 오늘을 곱씹으며,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나는 어떤 어버이로 이 자리에 서는가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옆지기를 만나고 두 아이와 어깨동무를 하기에 마음을 한결 따스하게 품거나 사랑을 한껏 해맑게 북돋울 수 있다고 말해도 될까요. 홀로 살아가는 나라면, 덜 따스하거나 덜 너그럽거나 덜 믿음직하거나 덜 씩씩하거나 덜 야무진 모습이라 해도 될까요.

 

 혼자일 때와 식구를 이룰 때를 돌아보면, 무엇보다 ‘날마다 얼굴 마주보는 사람’이 다릅니다. 혼자일 때에는 늘 혼자 생각하고 혼자 길을 걸으며 혼자 살림을 꾸립니다. 여럿일 때에는 내 생각을 말하고 네 생각을 들으면서 우리 보금자리 알뜰살뜰 여밀 길을 이야기합니다.

 

 그래, 여럿이 이루는 식구라면 마땅히 여러 목소리가 조곤조곤 나와야겠지요. 내 목소리를 내고 네 목소리를 들어야겠지요.

 


.. 그 다음에는 비비원숭이를 보았는데, 조금 재미있었다. 비비원숭이 둘이 싸우자, 엄마가 말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구나.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지만.” ..  (18쪽)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는 어릴 적에 우리 집에서 여러 사람 목소리를 조곤조곤 주고받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 얼거리는 예나 이제나 아직 가부장 틀에서 그닥 벗어나지 않은 만큼, 어쩌는 수 없이 아버지 목소리만 울려퍼진다 하겠지요. 그러나 참말, 예나 이제나 이렇게 아버지 목소리만 울려퍼져도 좋은지 궁금해요. 더욱이, 집일과 집살림을 찬찬히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돌아보지 않는 아버지들 목소리만 울려퍼져도 즐거운 나날이 될는지 궁금해요.

 

 식구를 이루는 어버이라 한다면, 아버지와 어머니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며 빛나야 하지 않을까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신을 낳으며 살아온 할아버지와 할머니 목소리를 곰곰이 귀를 기울여 들으면서 서로서로 생각과 마음을 더 넉넉하고 따스히 빛내야 좋지 않을까요.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어떤 모습과 목소리와 숨결과 사랑과 꿈과 생각과 마음을 물려받았을까 하고 돌이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모습과 목소리와 숨결과 사랑과 꿈과 생각과 마음을 기쁘며 신나게 물려줄 만한가 하고 돌이킵니다.

 

 틀림없이 좋은 넋을 물려받아야겠지요. 틀림없이 좋은 얼을 물려줄 수 있어야겠지요. 가장 빛나는 사랑을 물려받아야겠지요. 가장 빛나는 사랑을 물려줄 수 있어야겠지요.

 


.. 호랑이는 계속 그러기만 했다. “너무 불쌍해.” 엄마가 말하자, 아빠가 코웃음쳤다. “저 녀석이 쫓아오면 그런 소리 못 할걸. 저 무시무시한 송곳니 좀 보라고!” ..  (10쪽)


 앤서니 브라운 님 그림책 《동물원》(논장,2002)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은 첫 쪽에 모든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우리 식구’를 보여주는 첫 그림에 모든 이야기가 담깁니다.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갈라 보여주는 ‘우리 식구’는 네 칸으로 쪼개진 모습이요, 바깥에서 창살 안쪽을 들여다본 모습입니다. 마지막 그림에 나오는 창살에 갇힌 모습인 고릴라하고 똑같아요.

 

 고릴라도 창살 안쪽에 갇힙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저마다 창살 안쪽에 갇힙니다. 나와 동생도 따로따로 창살 안쪽에 갇혀요.

 

 범을 바라보며 불쌍하다고 느끼는 어머니는, 어머니 삶부터 불쌍합니다. 그런데, 어머니 삶만 불쌍하지 않아요. 아름다움과 사랑과 믿음과 꿈을 아이들한테 들려주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살아내지 못하는 아버지 또한 불쌍합니다. 불쌍한 어머니와 아버지하고 살아가는 ‘나와 동생’까지 불쌍해요.

 

 그림책 어머니는 동물원이 ‘동물을 생각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렇다고 ‘사람을 생각하는’ 곳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 스스로 사람다이 살아가지 않고 짐승들을 가두었으니, 이 또한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 아니에요. 사람 스스로 굴레에 갇히는 일이요, 사람 스스로 올가미를 쓰는 일이에요.

 

 


.. 갑자기 아빠가 물었다. “우리가 만난 지옥이 무슨 지옥인 줄 아니?” 해리가 대답했다. “몰라요.” 그러자 아빠가 큰 소리로 외쳤다. “바로 교통 지옥이지.” 다들 ‘와하하’ 웃었다. 나랑 엄마랑 해리랑만 빼고 ..  (4쪽)


 그림책 《동물원》을 넘기며 다시금 생각합니다. 나는 옆지기와 짝을 이루고 두 아이와 살아가는 오늘을 누리면서, 이렇게 네 사람 삶이 한 집에서 얼크러지는 모습이 아주 고맙고 보배롭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 고맙고 보배로운 삶을 그리 예쁘게 누린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한결 홀가분하게 누릴 만하고, 참으로 기쁘게 누릴 만한데, 이래저래 힘겹거나 고단한 일을 많이 짊어집니다.

 

 왜 슬픈 굴레나 고단한 짐을 짊어질까요. 아무래도 나부터 스스로 ‘어머니(내 옆지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탓이겠지요. 내 목소리가 얼마나 곱게 들리는 목소리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 목소리를 곱게 듣는 삶이어야 합니다. 아이들 목소리가 어여삐 꽃피울 자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모두들 사랑으로 빛나는 하루를 누리는 즐거운 길을 걸어야 합니다.

 

 슬기롭게 살아가는 어머니가 될 때에 즐겁습니다. 슬기롭게 살아가는 어머니와 함께 착하고 참다이 살림을 꾸리는 아버지가 될 때에 아름답습니다. 좋은 식구로 이루어진 삶은 고마운 선물이자 환한 꿈입니다. (4345.2.16.나무.ㅎㄲㅅㄱ)


― 동물원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장미란 옮김,논장 펴냄,2002.8.5./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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