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그날 그 거리 - 사진기자 고명진의 포토에세이
고명진 지음, 조천우.최진 글.정리 / 한국방송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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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에서 보고 멀리서 바라보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77] 고명진, 《다시 쓰는 그날 그 거리》(한국방송출판,2010)

 


 깊은 밤에도 찻길에는 등불이 밝습니다. 오가는 자동차 없어도 밤길이 훤합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깊은 시골마을에서는 꿈꿀 수 없는 모습이요, 딱히 바라지 않는 모습입니다. 네 식구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뵈러 가는 길에 지나가는 일산 새도시는 밤 열 시가 넘어도 번쩍번쩍 밝습니다.

 

 새로 올려세운 아파트에는 아직 불빛이 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머잖아 새 아파트에도 층마다 불빛이 훤하겠지요. 이 많은 아파트에 등불을 밝히자면 서울하고 멀찍멀찍 떨어진 영광과 고리와 울진뿐 아니라 또다른 새 시골마을 깊숙하고 조용하며 깨끗한 터전을 싹 밀어내어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야 한다고 하겠지요. 원자력발전소는 되도록 서울이랑 경기도하고 멀리멀리 떨어진 데에 지으려 하니까요.

 

 원자력발전소를 서울이나 경기도 같은 데하고 아주 멀리 떨어진 데에 짓는 까닭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원자력발전소가 뻥 하고 터지기라도 하면 서울이 다쳐서는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영광이나 고리나 울진 같은 데는 어쩌지요? 이곳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소 방사능을 늘 쐬어야 하는데 어쩌지요? 원자력발전소가 터지기라도 하면 이곳 사람들은 어쩌지요? 앞으로 이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굴레를 떠안으며 살아야 하지요?

 

 시골마을 사람들이 고향 터전을 깨끗하고 조용하며 아름다이 지키고 싶어 원자력발전소를 손사래치는 손길을 가리켜 적잖은 지식인과 언론매체는 ‘님비’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시골마을 사람들은 따로 발전소가 없어도 돼요. 전기를 아예 안 쓰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텔레비전이야 안 보면 되고, 냉장고야 안 쓰면 되며, 빨래기계 없이 손으로 빨래하면 되니까요. 전기를 펑펑 써야 하는 데는 도시입니다. 시골마을은 해가 질 무렵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쉬니, 굳이 밤길을 등불로 밝히지 않아도 돼요. 자동차 넘쳐나는 도시에 전기로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아파트 가득한 도시는 화력발전소이든 원자력발전소이든 몇 군데씩 있어야 해요. ‘님비’라는 이야기로 무언가를 꾸짖으려면 시골마을 사람들 ‘고향 지키기’ 아닌 도시 사람들 ‘위해시설 도시에 들이지 않기’를 꾸짖어야 올발라요.

 

 

 

 사진기자로 한삶을 보낸 고명진 님이 빚은 사진책 《다시 쓰는 그날 그 거리》(한국방송출판,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진기자 고명진 님 사진책 《다시 쓰는 그날 그 거리》에 나오는 ‘집회 시위 현장’은 모두 서울 모습입니다. 부산 모습마저 한두 차례 나올 동 말 동합니다. 인천이나 부천이나 대전은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현대 역사를 밝힌다는 민주주의 촛불이 선 곳은 오직 서울뿐이로구나 싶으면서, 그러면, 현대 역사를 어둡게 깎아내리거나 짓밟은 곳 또한 오직 서울뿐 아닌가 싶어요.

 

 “연행되어 끌려간 경찰서에서 화염병을 들고 있는 자신의 사진과 맞닥뜨리는 상황이니, 학생들이 우리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촬영하다가 시위대에 둘러싸여 신분증을 뺏긴 적도 많았고, 카메라와 필름을 뺏긴 채 폭행을 당한 적도 많았다. 나는 경찰도 아니고 권력의 앞잡이도 아니라는 각서를 쓰기도 했다(23쪽).” 하는 이야기를 글로 읽고 사진으로 바라봅니다. 참으로 슬픕니다. 왜 이렇게 서로서로 싸워야 하나요. 왜 한 하늘 한 땅을 누리는 이웃이자 동무이자 살붙이일 사람들이 한쪽은 대학생이 되고 한쪽은 전투경찰이 되어 욕지꺼리 내뱉으며 죽이자 살리자 싸워야 하나요. 모두들 서울로 몰리지 말고, 모두들 호젓한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서 흙을 일구며 살아간다면 싸울 일이 없지 않을까요. 서울에는 정치꾼만 남기고 경찰이든 대학생이든 몽땅 서울을 비우고 시골로 가서 흙을 일군다면, 싸울 일이란 아예 없지 않을까요. 전투경찰이든 경호원이든 대통령을 지키지 말고 고향마을을 지킨다면, 부정부패라느니 독재정권이라느니 설 일이 없지 않을까요. 군인들이 총을 들고 철책을 지키지 말고 고향마을에서 쟁기와 낫을 들고 들판에서 땀방울 흘린다면, 전쟁이라느니 군사독재라느니 싹틀 틈조차 없지 않을까요.

 

 아이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살아가는 경기도 일산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아, 이곳은 도시 한복판이 아닌 논밭 있는 일산 변두리인데, 이곳에서조차 별을 보기란 왜 이리 힘들지? 왜 달빛조차 그닥 안 밝지?

 

 

 

 별이 없어도 될 도시인가요? 서울에는 별이 없어도 되나요? 달이 없어도 괜찮은 도시인가요? 부산에는 달이 없어도 되나요?

 

 깊디깊은 밤에도 가게마다 불빛을 환하게 비춥니다. 우리 시골집이며 이웃 시골마을이며 밤이 되면 아주 깜깜해요. 등불조차 띄엄띄엄 아주 드뭅니다. 불을 켠 집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면내 가게도 일찍 닫고 읍내 가게 또한 일찍 닫아요. 그래, 전기를 써야 하는 데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이니까, 서울 종로와 명동과 압구정동과 삼성동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야지요. 이곳에 송전탑을 우람하게 세워야지요. 이곳에 핵폐기물처리장을 짓고, 이곳에 고압변전소를 으리으리하게 놓아야지요.

 

 “이 사진을 찍은 1987년 그 해, 나는 이 사진과 부산에서 찍은 다른 사진 한 장을 ‘한국 보도 사진전’에 냈다. 두 사진 모두 나란히 탈락했다. 똑같은 사진을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 보도 사진전’에 냈다. 이 사진은 뉴스 부문 3위에 입상했고, 다른 사진은 AP통신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진’에 포함됐다. 참 재미있는 일이지 않은가(47쪽)?” 하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한국 사진밭이나 문화밭이나 예술밭이나 언론밭은 예나 이제나 더없이 슬프구나 싶습니다. 왜 이렇게 슬픈 나라에서 슬픈 굴레를 뒤집어쓰며 살아야 하나 안타깝습니다.

 

 풀이 자랄 틈바구니 없고 나무가 가지 뻗을 터 모자란 도시입니다. 자동차 씽씽 달리는 찻길 나무들은 가지를 홀가분하게 뻗지 못합니다. 뎅겅뎅겅 잘립니다. 전깃줄을 건드린다며, 건물 창문을 가린다며, 나무는 줄기가 뭉텅뭉텅 잘려야 합니다.

 

 자연스러움하고는 동떨어진 도시라니까 어쩔 수 없나요. 그러면, 나뭇가지와 나뭇줄기 싹둑 베는 도시에서 사람들 삶은 어떤 모습이지요? 사람들 삶 또한 싹둑 잘리는 곳이 도시 아닌가요?

 

 이 도시에서 무슨 꿈을 꿀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랑이 싹트지 못하는 도시에서 미움만 싹트지 않나 궁금합니다. 어깨동무를 하기 어려운 도시에서는 이렇게, 슬픈 시위와 집회를 열지 않고서는 아픈 사람들 목소리를 내놓지 못하는가 싶어 눈물겹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내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리는 어머니들도 많았다. 내 아들은 감옥에 갈 만큼 잘못한 것이 없다고, 내 착한 아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말이다(73쪽).”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착한 아들이 감옥에 가야 할 까닭이 없겠지요. 민주주의를 찾겠다고 하는데 붙잡혀야 할 까닭이 없겠지요. 좋은 나라 아름다운 꿈을 외치겠다는데 전투경찰이 달려들어 사과탄을 깨뜨리고 몽둥이로 두들겨패야 할 까닭이 없겠지요.

 

 고명진 님은 “보도사진은 신문에 나지 않은 이상, 사진 시체가 되어 책상 위를 뒹구는 쓰레기가 되고 만다. 하지만 당장 보도가 안 된다고 해서 기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사진기자가 가장 피해야 할 생각이다(178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신문에 나지 않으면 보도사진으로 빛을 못 보는 셈이라 할 텐데, 신문이란 무슨 말을 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루는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 나라 신문매체에 실려야 돋보이는 보도사진이라 할 만한지, 이 나라 신문매체라면 굳이 안 실려도 좋을 보도사진이 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구태여 신문매체 자리를 따지기보다, 스스로 사진책을 엮고 스스로 1인언론을 마련하거나 스스로 마을소식지를 마련해서 보도사진을 띄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과 같은 흐름이라면, 애써 중앙일간지 틀을 따지지 말고, 인터넷 작은 방으로도 보도사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신문에 실려 사람들이 많이 보고 많이 알아줄 때에 보도사진답게 빛이 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보는 사진이기 때문에 보도사진 이름이 붙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삶을 밝히고 사람을 아끼며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에 보도사진 이름이 걸맞으리라 느껴요.

 

 사건과 사고를 찍는다면 ‘사건 사진’과 ‘사고 사진’이에요. 시위와 집회를 찍는다면 ‘시위 사진’과 ‘집회 사진’이겠지요. 이들 사건 사진이 사건 사진으로 안 그치고 보도사진이라는 이름이 붙으려면 ‘사건을 다루는 틀’을 넘어서는 다른 삶·사람·사랑 이야기가 깃들어야 해요. 우리 가슴속에서 피어날 꿈과 믿음과 웃음과 눈물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해요. 신문사진이기에 보도사진이 아니며, 보도사진이기에 신문사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진을 배우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후미진 골목 가장 발길이 뜸한 곳까지 깊숙이 들어가 보라고 권한다(218쪽).” 하는 말마디를 곱씹습니다. 사진기자 한삶을 누린 고명진 님이 들려줄 가장 아름다운 말마디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참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 또한 내가 사랑할 터를 생각하고 내가 사랑할 터에서 두 발 씩씩하게 내딛으며 하루를 즐기자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내 이야기가 태어나고, 내 이야기가 태어나는 곳에서 내 사진이 태어나거든요. 내 삶과 동떨어진 데에서는 내 이야기가 태어나지 못하고, 내 이야기가 태어나지 못하는 곳에서는 아무리 값진 장비를 갖추어도 내 사진이 태어나도록 이끌지 못해요. 나는 내 온 사랑을 쏟는 땀방울과 눈물방울로 사진을 찍습니다. 처음부터 보도사진이 되라며 찍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예술사진이 되라 할 수 없고, 처음부터 인물사진이나 패션사진이나 다큐사진이 되라 할 수 없어요.

 

 언제나 맨 처음은 삶입니다. 사람입니다. 사랑입니다. 삶과 사람과 사랑을 얼싸안는 자리에서 차근차근 글이 태어나고 그림이 태어나며 사진이 태어납니다. 삶과 사람과 사랑이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있을 때에 바야흐로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라는 저마다 다른 옷을 입는 꿈이 피어납니다. 사진은 늘 내 가슴속에 있습니다. (4345.2.16.나무.ㅎㄲㅅㄱ)


― 다시 쓰는 그날 그 거리 (고명진 글·사진,한국방송출판,20105.15./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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