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바다 - 바다의 비밀을 밝힌 여성 해양학자 실비아 얼 이야기
클레어 A. 니볼라 지음, 이선오 옮김 / 봄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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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곁 좋은 벗님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4] 클레어 A.니볼라, 《나의 아름다운 바다》(봄나무,2012)

 


  전남 고흥 시골집 마당에 서면 먼 멧등성이 너머로 새벽해 뜨는 모습과 저녁해 지는 모습을 붉고 노랗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좋은 햇살 즐겁게 누립니다. 새벽이 밝으며 차츰 하얗게 트는 동을 느낄 때면 으레 예전에 신문배달을 하던 나날을 돌아봅니다. 아주 깜깜한 밤부터 신문을 돌려 새벽녘에 하루일을 마치는데, 짐자전거가 가벼워질수록 하늘빛이 차츰 밝아집니다. 짐자전거가 텅 비어 홀가분하게 신문사지국으로 돌아갈 무렵 아침 새 햇살이 먼 데에서 드리웁니다. 일을 다 마친 어느 날은 마지막 구역인 15층 아파트 바깥마루에 서서 해돋이를 바라보곤 합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살던 어릴 적에는 5층 아파트 4층집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창문으로 스미는 빛살을 느끼다가는 툇마루로 나와 바닷가 뱃고동 소리 나는 데를 바라봅니다. 새벽에 집을 나서며 학교로 가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습니다. 새벽하늘과 아침하늘에는 낮하늘과 저녁하늘에 없는 빛무늬가 있습니다. 저녁하늘에는 낮과 아침에 없는 빛살이 있습니다. 낮하늘에는 아침과 저녁에 없는 빛결이 있어요.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른들한테서 ‘예전에는 하늘만 올려다보아도 날씨를 다 알았다’ 하는 이야기를 으레 들었습니다. ‘제비 날갯짓’과 ‘개미 움직임’과 ‘풀잎 기운’ 들을 살피며 날씨읽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구름빛을 살피면서, 하늘가 빛깔을 헤아리면서, 바람내음을 맡으면서, 날씨읽기를 너끈히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도 하늘만 보며 날씨를 읽고 싶었습니다. 나도 구름을 좇고 하늘가를 살피며 날씨를 읽고 싶었습니다. 잠자리 날갯짓에도 날씨가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풀벌레 노랫소리나 나뭇가지 떨림새에도 날씨가 있나 하며 고개를 갸웃갸웃했어요.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오는 날씨 소식이 아닌, 내 살갗이 느끼는 날씨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 실비아는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 실비아가 세 살 때, 부모님이 미국 뉴저지 주 폴스보로에 있는 오래된 농장을 샀거든. 실비아는 거기서 두 남동생과 함께 자랐어. 어릴 때부터 실비아는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대. 혼자 다녀도 별로 무서워하는 게 없었지 ..  (2쪽)

 


  꼬맹이로 살던 무렵, 나는 내가 신문배달 일을 하며 몸으로 날씨를 느끼지 못하면 신문일을 할 수 없는 줄 생각했을까요. 어쩌면, 나는 신문배달을 할 사람으로 크려고 어린 나날 날씨읽기에 그렇게 마음을 기울였을까요. 이리하여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에도 옆지기와 아이들이랑 함께 시골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살아갈 오늘을 누릴 수 있을까요. 아주 오랜 어느 옛날, 내 오늘 삶자락을 그림으로 환하게 그렸을까요.


  신문배달을 하던 내 스무 살 몸뚱이는 살갗으로 바람기운을 느낍니다. 새벽에 일어나 맨 먼저 후다닥 바깥으로 달려나와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팔을 쭉 뻗습니다. 눈으로 밤구름을 좇고, 두 팔로 밤바람 기운을 헤아립니다. 바람에 물기가 어느 만큼 감도는가를 살핍니다. 오늘 비가 올는지 안 올는지, 비가 온다면 언제부터 뿌릴는지 곱씹습니다. 신문을 비닐에 넣어야 할는지, 오늘은 비오는 흐름에 맞추어 골목집 대문이나 손잡이에 신문을 꽂아야 할는지, 그냥 문 앞 땅바닥이나 안쪽 마당에 신문을 놓아야 할는지 가늠합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신문을 버려야 할 뿐더러, 신문을 다시 돌려야 합니다. 깊은 밤 두 시 무렵 바람을 읽지 못하면 내 하루일은 아주 어그러집니다.


  집식구 옷가지를 날마다 여러 차례 빨래해서 틈틈이 말리는 오늘날, 나는 예전처럼 날씨를 몸으로 읽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살갗으로 바람내음을 맡습니다. 이대로 마당에 널어도 될는지, 언제쯤 마당에서 걷어야 할는지 찬찬히 가늠합니다. 햇살을 어느 만큼 먹었을 무렵 빨래를 걷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알맞게 햇살을 먹어 알맞게 마른 옷가지를 즐겁게 개어 제자리에 놓으며 이야, 이렇게 또 한 가지를 마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 어린 실비아는 연못가나 숲속 쓰러진 나무 옆에 오랫동안 앉아 있기도 했어.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거든 …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열고 있으면 저절로 친해지는 친구처럼, 실비아는 물고기들과 가까워졌어.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이, 똑같이 생긴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지 ..  (5, 18쪽)

 


  꽃을 바라봅니다. 너 참 예쁘구나 하고 마음으로 말을 건네고, 어느 때에는, 아아 참 예쁘네,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나무를 바라봅니다. 나보다 나이를 한참 많이 먹은 나무 앞에 서면서도, 이야 참 아름답고 푸르네, 하고 말합니다. 굵직한 나무줄기에 손을 대고 볼을 대며 귀를 댑니다. 얼마나 오랜 나날 얼마나 따사로이 둘레를 바라보며 살아왔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나무 한 그루가 지켜본 삶과 꿈과 사랑은 어떠했을까 하고 그립니다.


  아이들 볼을 부비며 생각합니다. 내 몸을 구석구석 주무르며 생각합니다. 나는 얼마나 좋은 하루를 누리는가 돌이킵니다. 나한테 얼마나 어여쁜 이야기가 찾아들거나 스며드는가 하고 곱씹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일 때에 좋은 생각이 피어나겠지요. 사랑하는 넋일 때에 사랑스러운 꿈이 자라겠지요. 기뻐하는 얼일 때에 기뻐하는 이야기가 무르익을 테지요. 맑은 눈짓과 몸짓일 때에 맑은 말과 글이 찬찬히 태어날 테지요.


  내 눈으로 좋은 빛과 무늬를 느낍니다. 내 귀로 좋은 소리와 노래를 느낍니다. 내 코로 좋은 내음과 물기를 느낍니다. 내 살갗으로 좋은 손길과 결을 느낍니다. 달력에는 무슨무슨 기림날만 굵게 적히지만, 내 삶자락에는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예쁘장하게 아로새겨집니다.


.. 그해 생일에 실비아는 물안경을 선물로 받았어. 실비아는 그걸 쓰고 얕은 바닷물을 헤엄쳐 다니며 ‘조사’하느라 굉장히 바빴어. 물속에는 작은 게들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물고기, 농장의 말처럼 생긴 해마도 있었어. 새로 만난 물속 친구들 덕분에 실비아는 농장을 떠난 슬픔을 달랠 수 있었지. 한 방울의 물에도 온갖 생명이 가득한 바다를 보면서 어떻게 외로울 수 있었겠니 ..  (8쪽)

 


  클레어 A.니볼라 님이 빚은 그림책 《나의 아름다운 바다》(봄나무,2012)를 읽습니다. 우리 곁 좋은 벗님들을 맑고 밝으며 즐겁게 느낀 ‘실비아 얼’ 님 삶과 꿈을 소담스레 담은 그림책이로구나 싶습니다. 실비아 얼 님은 숲속에서, 냇가에서, 들판에서, 바닷가에서, 이윽고 바다 밑 깊디깊은 곳에서 당신 곁 좋은 벗님들을 느낍니다.


  실비아 얼 님으로서는 ‘조사’나 ‘연구’나 ‘학문’이나 ‘과학’이나 ‘성공’이나 ‘논문’이나 ‘권위’나 ‘업적’이나 ‘명예’ 같은 허울은 하나도 안 대수롭습니다. 당신 둘레에서 언제나 마주하며 즐거이 사귀는 온갖 좋은 벗님들이 가장 대수롭습니다. 해맑은 벌레들이 반갑고 티없는 목숨들이 고맙습니다. 싱그러운 물풀이 즐겁고 푸른 물고기가 귀엽습니다.


  함께 살아가고픈 좋은 벗님을 만나는 ‘바다 과학’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좋은 벗님을 느끼는 ‘바다 밑 연구와 조사’입니다.


.. 실비아가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가서 바라보면, 그 바다 생물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실비아를 마주보았다지 … 실비아는 고래의 마음을 알고는 이렇게 말했어. “고래는 자기가 얼마나 크고 내가 얼마나 작은지 잘 알고 있었어요. 절대로 나를 해칠 마음이 없었죠.” … 놀랍게도, 그곳 바다에는 한낮의 태양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단다.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었어. 투명한 바닷물 사이로 옅은 푸른빛이 어른거리고 있었지. 땅 위에 붉은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이면, 바닷속에도 짙은 남색 노을빛이 감돌았어. 그렇게 깊은 곳에도 말이야 ..  (12, 21쪽)

 


  쌀알 하나에도 우주가 담기고, 바닷물 한 방울에도 우주가 담겨요. 실비아 얼 님은 바닷물에서, 바닷물고기한테서, 바다에서, 들에서, 또 스스로 우주를 느껴요. 우주를 느끼며 지구별을 느낍니다. 지구별을 느끼면서 나를 느낍니다. 나를 느끼며 목숨을 헤아립니다. 목숨을 헤아리며 사랑을 꿈꾸어요. 사랑을 꿈꾸기에 삶을 짓는 이야기를 손수 맑게 그립니다.


.. 아주 깊은 바닷속 단 한 방울의 물에도 생명은 숨 쉬고 있었단다 ..  (22쪽)


  실비아 얼 님 삶을 그림책으로 담은 클레어 A.니볼라 님은 어떤 넋이었을까요. 이러한 삶자락을 하나하나 좇으며 그림으로 옮기고 글로 적바림할 때에 어떤 얼이었을까요. 위인전을 빚으려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겠지요. 아이들한테 영웅 한 사람 알려주려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테지요.


  삶을 아끼고 사랑을 빛내며 꿈을 나누는 좋은 벗님을 생각하면서 그림책 하나 내놓을 수 있겠지요.


  누군가 훌륭하다고 말할 만하다면, 누군가 사랑스레 살아가기 때문이로구나 싶어요. 누군가 아름답다고 말할 만하다면, 누군가 즐겁게 꿈을 꾸기 때문이로구나 싶어요. 누군가 멋스럽다고 말할 만하다면, 누군가 활짝 웃으며 이녁 곁 좋은 벗님이랑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기 때문이로구나 싶어요. (4345.6.16.흙.ㅎㄲㅅㄱ)

 


― 나의 아름다운 바다 (클레어 A.니볼라 글·그림,이선오 옮김,봄나무 펴냄,2012.4.10./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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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48
미우치 스즈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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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움을 깨닫는 길
 [만화책 즐겨읽기 156] 미우치 스즈에, 《유리가면 (48)》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이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함께 볼 수 있는 하루란 참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잠결에 기저귀에 쉬를 하고는 아랫도리가 축축해 꼬보장하게 엎드려 자는 아이를 토닥토닥 달래 새 기저귀로 갈고는 반듯하게 눕혀 팔베개를 한 뒤 새근새근 잠들도록 할 수 있는 하루란 매우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즐겁게 끓인 국과 기쁘게 차린 밥을 식구들 함께 먹으면서 기운을 새롭게 차릴 수 있는 하루란 몹시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이래저래 돌이키면, 하루하루 누리는 이야기 가운데 아름답지 않은 모습은 없습니다. 방을 비질하면서, 옷가지를 빨래하면서, 그릇을 설거지하면서, 아이들 손을 잡고 마실하면서, 여름날 멧딸 따러 돌아다니면서, 책을 읽고 읽히면서, 글을 쓰고 가르치면서, 고단히 드러누워 허리를 펴면서, 어느 한 가지 아름답지 않을 삶은 없어요.


- ‘저건 바위. 저건 수풀. 나무들 사이로 걸려 있는 덩굴. 개울물. 여긴 매화골. 잘 안 보인다는 게 이렇게 편리할 줄이야. 여기가 매화골이라고 상상하기가 훨씬 쉬워졌어. 마야, 분명 그 앤 평소에도 이렇게 자기가 연기하는 세상을 상상해 왔겠지?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당할 수가 없어! 난 지금 이렇게 돼서야 겨우 기타지마 마야의 상상력의 일부를 이해했을 뿐인데! 우습군. 눈이 아픈 후에야 그 애에 근접할 수 있다니.’ (18∼19쪽)
- ‘눈을 감으면 사람들의 대화 소리. 차 소리. 처음 알게 된 소리의 홍수. 사람들이 움직이는 기척.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냄새. 다가오는 소리. 멀어져 가는 소리. 눈을 감고 있어도 거리감은 확실히 느껴진다. 공기의 움직임에 사람들의 기척.’ (69쪽)

 

 


  저녁나절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면내로 마실을 합니다. 두 아이 모두 몹시 졸음에 겨운 얼굴인데, 어떡하든 더 놀겠다는 다짐이 드셉니다. 이럴 즈음 자전거수레에 태워 마을 한 바퀴 휘 돌면 으레 하나씩 곯아떨어지기에 슬슬 자전거를 달리며 흰구름과 매지구름 얼기설기 얽힌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두 아이가 자전거수레에서도 좀처럼 잠들려 하지 않습니다. 외려 시원한 바람을 쐬며 잠을 깬 듯하기까지 합니다.


  그래, 그러면 더 놀아라. 더 신나게 놀아라. 다만, 너희 아버지는 이제 몸이 힘드니까 아버지 곁에 달라붙지 말고 너희끼리 재미나게 놀아라. 너희가 서로를 아끼고 서로를 좋아하면서 이 시골마을 바람과 저녁빛과 들내음과 개구리 노랫소리를 실컷 누리면서 놀아라.


  빗소리도 비내음도 오랜만에 찾아든 저녁나절, 아이들 빨래한 옷가지와 기저귀는 방 곳곳에 널었습니다. 아침에 말리려고 넌 옷가지는 저녁에 거의 말랐으나 보송보송 마르지는 않습니다. 낮과 저녁에 한 빨래는 하룻밤 지나면 마를까요. 가늘게 뿌리던 빗줄기가 저녁부터 아예 사라졌으니 새 아침 맞이할 무렵 천천히 다 마를까요. 날마다 몇 차례 아이들 옷가지 빨래를 하며 살아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만, 빨래기계 쓸 일 없이 두 아이 옷가지를 틈틈이 빨래합니다. 조그마한 옷가지 몇 벌을 기계에 넣고 돌릴 수는 없어요. 척척 비비고 착착 헹구면 끝인걸요. 똥기저귀나 똥바지를 기계에 넣고 돌리지도 못해요. 걸레를 기계에 넣고 돌리지도 못하고요. 이러하든 저러하든 아이들 작은 이불까지 으레 손으로 빨래하며 살아요.


- “마야의 유일한 결점은 너무 역에 몰입해서 상대 배우가 그에 끌려다니느라 존재감이 없어지는 거였어. 무대 위에서 마야에게 맞추느라 급급할 뿐이었지. 결과적으로 단역일지라도 마야가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주인공’은 마야가 되고 말아. 이래선 배우들이 모두 저 아일 싫어하게 될 거야 … 연극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캐치볼처럼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제일 중요해.” (41쪽)
- “마야, 뭐가 그렇게 즐거워?” “아니,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요. 저, 그런 데서 연기하는 거 처음이거든요! 어떤 식으로 연기할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막 떨려요! 빨리 가 보고 싶다!” (131쪽)

 

 


  무거운 몸뚱이로 날마다 빨래를 하다가 곧잘 떠올립니다. 나는 언제부터 빨래돌이 삶을 생각했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나는 지구별이나 한국땅에 드문 빨래돌이 아버지라 하겠으나, 지구별이나 한국땅에 숱하게 많은 빨래순이 어머니들 삶은 어떠할까 하고 헤아립니다. 내 어머니와 옆지기 어머니를 그립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 옆지기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고 보살피던 어머니를 그립니다. 이분들을 낳고 돌보았을 어머니를 그립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머니들은 식구들 옷가지를 빨래하며 보내던 삶이 섦거나 고단하기만 했을까 궁금합니다. 사랑스러운 식구들이라 한다면, 사랑스럽게 보듬으며 빨래하는 옷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식구들 옷가지 빨래하는 몫을 가시내한테만 맡긴 사내들은 삶을 누리는 사랑 가운데 하나를 스스로 등돌리거나 내팽개치면서 자꾸 엇나가거나 비뚤어지기도 했겠구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렇습니다. 사내들은 왜 정치 권력에 눈길을 둘까요. 사내들은 왜 지식 쌓기에 마음길을 둘까요. 사내들은 왜 주먹힘을 불리는 데에 몸길을 둘까요.


  내 보금자리에서 사랑을 다스릴 때에 사랑스러운 삶일 텐데요. 내 마을에서 믿음을 나눌 때에 믿음직한 삶일 텐데요. 지구별 숲속에서 꿈을 키울 때에 꿈같은 삶일 텐데요.


  사랑이나 믿음이나 꿈이란 늘 내 마음속에서 싱그럽게 피어나요. 사랑도 믿음도 꿈도 언제나 내 곁에서 예쁘게 노래해요. 사랑이든 믿음이든 꿈이든 노상 나 스스로 빚고 나 스스로 북돋울 수 있어요.


- ‘누군가를 위해 방안을 신경쓰는 건, 마야 네가 내 안의 무언가를 바꾸려 하고 있어. 기다려 줘! 마야! 널 꼭 근사한 모습으로 맞아 줄게!’ (63쪽)
- “나도 연극배우가 될 걸 그랬나 봐. 당신 상대 배우가 부럽더군. 그 미소를 혼자 독점할 수 있으니까.” (125쪽)
- “왜죠? 눈앞에 있는 성공과 출세를 버리면서까지, 왜?”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동안 전 행복해지고 싶단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어쩌면 행복의 의미조차 모르고 살았는지도 모르죠.” (153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2) 마흔여덟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첫머리부터 ‘아유미’는 ‘홍천녀’ 연기에서 ‘마야’를 ‘이길’ 수 없겠다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왜냐하면, 아유미는 스스로 즐거울 수 있으며 사랑스러울 수 있는데, 자꾸 스스로 마야와 아유미 저를 견줍니다. 마야는 마야대로 마야 삶과 사랑을 누리면서 마야 연기를 할 텐데, 아유미는 아유미대로 아유미 삶과 사랑을 누리면서 즐길 연기가 무엇인지 아직까지 종잡지 못해요. 그저 ‘이제야 마야가 하는 연기를 따라잡는다’ 하고 여겨요. 이런 생각이 아유미 스스로 발목을 잡는 줄 깨닫지 않아요. 스스로 삶을 깨닫지 않으면서 자꾸 ‘욕심’을 부리는 쪽으로 나아가요. 마야이든 아유미이든 홍천녀를 연기하고 싶으면 연기하면 되는걸요. 반드시 ‘치구사’ 선생님 뒤를 물려받는 홍천녀가 되어야 하지 않아요. 스스로 새로운 홍천녀가 되어 새로운 연극밭을 일구면 돼요. 굳이 연극밭이 아니어도 삶에서 사랑밭을 일굴 수 있어요. 내 좋은 보금자리에서 꿈밭을 일굴 수 있어요.


  무대에서 주역이든 조역이든 올라서서 무언가 보여주어야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아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도마질을 하면서 살아갈 때에도 아름다운 삶을 빛내며 마음껏 누릴 수 있어요. 참말 마음껏 누릴 삶이거든요. 재주껏 보여줄 삶이나 솜씨껏 자랑할 삶이 아니에요. 마음껏 누릴 삶이요, 실컷 즐길 사랑이에요. 예쁘게 돌보는 삶이고, 기쁘게 보살피는 사랑이에요.


  마야는 아주 더디기는 하나, 가장 마야다운 걸음걸이로 삶길과 사랑길과 꿈길로 나아가는데, 아유미는 아유미다움을 생각하지 못하면서 가장 어설픈 우격다짐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만 해요.


- ‘시오리 씨. 오늘 난 처음으로 당신에게 솔직해질 겁니다. 당신에게 진정한 성의를 보여 드리죠. 이 이상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141쪽)
- ‘처음 그 애 공연을 본 순간, 그 애가 무대에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어요. 내게는 없는 살아 있는 열정 같은 걸 느꼈죠. 그런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어요.’ (149쪽)
- “(시오리 씨) 당신은 아름답고 총명하고 멋진 여자예요. 하지만 같은 하늘을 바라봐도 당신과 난 보고 있는 것과 느끼는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전 하늘의 별을 찾고, 당신은 도시의 야경에 감동하니까요. 결혼을 해도 분명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을 겁니다.” (154쪽)

 


  스스로를 채찍질하면 여러모로 솜씨나 재주를 키울 수 있습니다. 어느 만큼 갈고닦는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삶도 사랑도 믿음도 꿈도 이야기도 ‘채찍질하기’나 ‘갈고닦기’로는 즐기지 못해요. 이래서야 누리지 못해요. 이렇다면 나눌 수조차 없어요.


  억지스레 어느 한 사내하고 짝을 짓겠다고 하는 ‘시오리’ 또한 스스로 누릴 꿈과 사랑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못 깨달아요. 스스로 옭아매는 사슬이 시오리 스스로뿐 아니라 제 식구들과 이웃과 동무까지 얼마나 옭아매는가를 깨닫지 않아요.


  옭아매어서는 사랑이 될 수 없고, 옭아맨다고 붙잡힐 사랑은 없으며, 옭아맬 때에는 내 삶조차 늘 조마조마하면서 두려울 뿐이에요.


  사랑은 어깨동무예요. 사랑은 두레예요. 사랑은 따순 손길이에요. 사랑은 고운 눈길이에요. 사랑은 밥 한 그릇 나누는 작은 밥상이에요. 만화책 《유리가면》 마흔여덟째 권에서는 스스로 좋은 이야기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가냘픈 몸짓이 춤을 춥니다. 마흔아홉째 권에서는 이 슬프며 고단한 굴레가 씻길 수 있을는지, 앞으로도 내내 이어질는지 궁금합니다. (4345.6.16.흙.ㅎㄲㅅㄱ)

 


― 유리가면 48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2.7.1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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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 꽃이 활짝 피었네 - 음식 유물 우리 유물 나들이 1
이명랑 지음, 신가영 그림, 윤숙자 감수 / 책내음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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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밥 함께 먹는 삶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3] 신가영·이명랑, 《메주 꽃이 활짝 피었네》(책내음,2011)

 


  밥을 차립니다. 집식구 함께 먹을 밥을 차립니다. 도마에 여러 푸성귀를 올려놓고 손질합니다. 나와 집식구는 딱히 고기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있으면 먹고, 아주 드물게 장만해서 먹기는 하지만, 일부러 찾아서 먹지 않습니다. 뭍고기도 물고기도 그리 즐기지 않습니다.


  푸성귀를 흐르는 물에 씻습니다. 물기를 텁니다. 썩둑썩둑 썰어 무침을 합니다. 아침에는 곧잘 풀물을 짭니다. 냄비 하나에는 밥이 끓습니다. 다른 냄비 하나에는 국이 끓습니다. 갓난쟁이한테 먹일 죽을 하려고 밥그릇 하나에 곡식가루를 담았습니다. 국이 끓으면 간을 하기 앞서 뜨거운 국물을 국자로 떠서 죽그릇에 살짝살짝 붓습니다. 조금씩 부으며 작은 숟가락으로 곡식가루를 녹입니다. 되지도 묽지도 않게 둘째 죽을 마련합니다. 둘째 죽이 다 되면 이제 간을 하고 국냄비 불을 끕니다.


  오이가 있으면 오이를 썹니다. 연뿌리가 있으면 연뿌리를 썹니다. 면내 가게에서는 곤약을 안 팔아 요 한 달 즈음 곤약을 썰지 못합니다. 읍내에 나갈 때에 살펴야 하는데, 아이들과 읍내로 마실을 가노라면 아이들 치레하다가 그만 잊곤 합니다.

 

 

 


.. 주룩주룩 비가 와요. 지글지글 엄마가 부꾸미 부치는 소리……. 이제나 저제나 부꾸미 먹을 생각에 꼴깍꼴깍 침을 삼키고 있는데, “메주같이 생긴 게 먹을 것만 밝히고!” 누나가 나를 놀리지 뭐예요 ..  (6쪽)


  밥상에 밥이며 국이며 반찬이며 하나하나 올리지만 수저는 안 올립니다. 수저는 아이를 불러 아이더러 올리도록 합니다. 아이가 왜 수저는 없느냐고 물으면, 수저는 스스로 놓으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아이 수저만 달랑 놓으면, 어머니하고 아버지 수저도 함께 놓으라고 말합니다.


  예부터 밥이든 국이든 어른 몫을 먼저 푼다 했는데, 나는 아이 몫을 먼저 푸거나 뜹니다. 먼저 푸거나 뜨는 밥이랑 국은 먼저 식습니다. 나중 푸거나 뜨는 밥이랑 국은 더 오래 뜨거워요. 아이는 아직 뜨거운 밥을 잘 못 먹으니, 아이 밥이랑 국을 먼저 푸거나 뜬 다음 조금 더 빨리 식어 알맞게 먹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곰곰이 따지면, 둘째 아이 죽을 가장 먼저 마무리지으니, 나이 어린 차례로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셈입니다. 더 헤아린다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을 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밥이랑 국을 먼저 푸거나 뜰 텐데,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뜨거운 밥이랑 국은 조금 식혀서 먹어야 하니까 먼저 푸거나 떠야지 싶어요.


.. 나는 아직 눈곱도 안 떼었는데 달그락달그락 엄마가 부엌에서 밥 짓는 소리가 들려요 ..  (13쪽)

 

 

 

 


  고픈 몸속에 밥이 들어옵니다. 하루에 한 끼니이든 두 끼니이든 세 끼니이든, 꾸준하게 밥을 먹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일컫는 착하다는 사람이건 나쁘다는 사람이건, 때 맞추어 밥을 먹습니다. 아름다운 일을 한다는 사람이든 짓궂다는 일을 한다는 사람이든, 누구나 배고프기 마련이요 누구라도 밥을 먹으면 배부르기 마련이에요. 누구한테나 고마운 목숨 잇도록 이끄는 고마운 밥입니다. 쌀밥이든 콩밥이든 묵밥이든 나물밥이든 고기밥이든, 밥 한 그릇 먹습니다. 밥그릇 비우는 누구나, 한결 힘내어 살아갈 꿈을 키웁니다.


  들에서 일을 하는 사람도 밥을 먹습니다. 부엌에서 일을 하는 사람도 밥을 먹습니다. 경기장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도 밥을 먹습니다. 청와대에서든 국회의사당에서든 밥을 먹습니다. 햇볕 안 드는 지하방에서도 햇볕 뜨거운 옥탑방에서도 밥을 먹습니다. 아파트에서도 골목집에서도 밥을 먹습니다. 호텔에서도 작은 밥집에서도 밥을 먹습니다. 누구한테나 사랑스러운 밥이요, 누구한테나 반가운 밥입니다. 제비이든 직박구리이든 종달새이든 밥을 먹으려고 이른 새벽부터 부산을 떱니다. 문득 돌아보면, 시골마을 새벽녘 제비들 노랫소리에 따라 이웃집 할아버지 경운기 소리 함께 듣습니다. 뭇 들새 노랫가락에 맞추어 이웃집 할머니 구부정한 걸음 옮기는 소리 고샅길에 나란히 들립니다.


  좋은 밥 함께 먹는 삶입니다. 나는 나한테 좋은 밥을 먹습니다. 이웃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당신한테 좋은 밥을 먹습니다. 제비는 제비한테 좋은 밥을 먹습니다. 까치는 까치한테 좋은 밥을 먹고, 개구리는 개구리한테 좋은 밥을 먹어요.

 

 

 

 

 


.. “메주 쑤는 날에 울면 못쓴다. 메주가 잘 되어야 된장이든 간장이든 맛있게 만들지.” 날벼락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일까요? 날벼락 대신 엄마가 엿으로 다식을 만들어 주신대요 ..  (19쪽)


  골짜기 따라 골짝물이 흐릅니다. 숲 밑으로 맑은 물이 흐릅니다. 지구별 어느 사람이든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면서 목숨을 맑게 빛냅니다. 까만 아스팔트 깔린 고속도로 밑으로 흐르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람한 아파트 마을 밑으로 흐르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없습니다. 포항제철이나 광양제철 밑으로 흐르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광 핵발전소나 고리 핵발전소 밑으로 흐르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주섬 파란 빛깔 바다를 맞아들이면서 푸른 숲이 우거진 데에서 뽑아올린 샘물을 마시고 싶어 합니다. 동해 깊은 바다에서 뽑아올린 샘물을 마시고 싶어 합니다. 지리산이든 오대산이든 계룡산이든 치악산이든 설악산이든 속리산이든 …… 아름드리 나무와 짙푸른 풀이 얼크러진 데에서 좋은 햇살과 좋은 바람과 좋은 기운 가득 묻어나며 흐르는 맑은 물을 마시고 싶어 해요.


  그런데 도시는 자꾸자꾸 커집니다. 도시가 커지며 시골 들판은 시멘트로 덮입니다. 아스팔트 찻길이 늘어납니다. 냇바닥까지 시멘트로 덮습니다. 큰 냇물도 작은 냇물도 냇둑이 사라지고 시멘트둑으로 바뀝니다.


  도시사람이든 시골사람이든 맑은 샘물을 바라면서 정작 도시나 시골이나 왜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이다지도 끌어당길까요. 맑은 물에 쌀을 안쳐 밥을 먹고 싶으면서, 왜 맑은 물과 맑은 바람으로 벼와 곡식과 푸성귀가 맑게 자라도록 하지 않을까요.


  돈이 있으면 똥오줌 거름으로 지은 곡식을 제값 치러 사다 먹을 수 있겠지요. 돈이 있으면 사료나 항생제 아닌 들판 풀을 뜯은 소나 돼지를 잡은 고기를 사다 먹을 수 있겠지요. 그래요, 돈만 있으면 애써 냇바닥을 시멘트로 덮지 않아도 돼요. 그러니까, 돈만 있으면 굳이 아파트를 더 짓거나 고속도로랑 고속철도를 자꾸 내지 않아도 돼요. 우리한테 넉넉한 돈으로 숲을 더 푸르게 가꾸면 돼요. 우리한테 즐거운 돈으로 들판을 한결 푸르게 보살피면 돼요.

 

 

 

 


.. “그럼 진짜 못생긴 메주 하나 더 만들까? 밭으로 일 나가신 아빠 대신 우락부락 아빠 닮은 메주로 하나 더!” 오순도순 우리 식구처럼 다정한 메주 네 덩이! 처마에 시렁에 메주 꽃이 활짝 피었어요 ..  (35쪽)


  2008년에 중앙출판사에서 처음 나오고 2011년에 책내음 출판사에서 새옷을 입은 그림책 《메주 꽃이 활짝 피었네》를 읽습니다. 앙증맞은 그림과 보드라운 글이 잘 어우러집니다. 메주에 피는 곰팡이꽃이 메주를 한결 어여쁘게 빚는다는 이야기를 슬기롭게 풀어냅니다. 된장도 고추장도 간장도 어떠한 손길과 마음길로 빚을 때에 맛나며 좋은가 하는 이야기를 예쁘게 보여줍니다.


  참말, 메주 하나를 놓고도, 된장 하나를 놓고도, 살가우며 사랑스러운 이야기 담는 그림책 하나 여밀 만합니다. 한겨레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살이를 즐겁게 꽃피울 수 있습니다. 굳이 궁중음식을 말하지 않아도 예뻐요. 누구나 흔히 먹는 가장 수수하며 가장 투박한 밥을 말할 때에도 예뻐요.


  흔히들 호박꽃이 못생긴 꽃이라도 되는 듯 말하지만, ‘호박’ 아닌 ‘박’을 떠올리며 박꽃이 어떠한 꽃인가를 생각할 수 있으면 좋아요. 박꽃과 나란히 오이꽃을 생각하고, 참외꽃을 생각하며, 토마토꽃이나 당근꽃이나 배추꽃이나 무꽃이나 파꽃이나 유채꽃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아요.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어요. 열매를 맺어야 씨가 영글어요. 씨를 얻어야 이듬해에 새롭게 심어 기쁘게 얻어요.


  콩꽃이 피어야 꼬투리가 열립니다. 딸기꽃이 피어야 딸기알이 맺힙니다. 메주도 고운 밥인 만큼 즐겁게 꽃이 피어야 구수하게 먹을 보배가 태어나요.


  예쁘지 않은 꽃이란 없어요. 아니, 꽃을 바라보며 예쁘다 안 예쁘다 할 까닭이 없어요. 어느 꽃이든 바라보며 즐거운데요. 아기들이든 아이들이든 어른들이든 누구나 꽃을 바라보며 마음이 사르르 해맑게 녹는데요. ‘메주가 못생겼’을 수 없고, 서로서로 ‘메주처럼 생겼다’고 놀릴 수 없어요. 예쁜 그림책이 더할 나위 없이 예쁠 수 있지만, 이만큼 땀과 품을 들였으니, 앞으로 한결 슬기롭게 곰삭혀 더 빛날 새 그림책 삶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 믿어요. (4345.6.15.쇠.ㅎㄲㅅㄱ)

 


― 메주 꽃이 활짝 피었네 (신가영 그림,이명랑 글,책내음 펴냄,2011.10.25./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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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6-15 17:03   좋아요 0 | URL
와, 이명랑 이분 소설 쓰시는 분인데 이런 책도 쓰셨군요. 그림이 참 좋습니다. 제목보며 짐작을 했지만 곰팡이를 꽃으로 표현했군요. 음식과 관련된 내용이라 윤숙자님께서 감수까지 하셨고, 정성이 들어간 책 같아서 사고 싶어지는데요? ^^

숲노래 2012-06-15 17:25   좋아요 0 | URL
네, 여러모로 참 잘 빚었어요.

다만, 티가 있는데,
(ㄱ) '이명랑 님이 어른소설 쓰던 눈높이로 어린이 그림책을 썼다'는 대목
(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나이가 제법 많은데 집일을 모른다'는 대목
(ㄷ) '메주를 딱 네덩이만 띄운다'는 대목......

그렇지만, 저는 이런저런 '옥 티'를 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참말 이만큼 우리 여느 살림살이를 다루는 그림책이
너무 드물고, 예쁘게 그려 주는 그림책도 너무 드물거든요.

다만, 앞으로는 이런저런 아쉬운 대목을 잘 가다듬고 추슬러
더 아름다우며 빛나는 슬기로운 그림책을 베풀어 주기를 빌어요~
 
반성하다 그만둔 날 - 김사이 시집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78
김사이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쓴다
[시를 노래하는 시 20] 김사이, 《반성하다 그만둔 날》


 

- 책이름 : 반성하다 그만둔 날
- 글 : 김사이
- 펴낸곳 : 실천문학사 (2008.9.12.)
- 책값 : 7000원

 


  빨래기계를 올해에 처음으로 들이고는 이레쯤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다가, 한 달 즈음 바지런히 써 보았습니다. 아이들 옷가지 빨래는 날마다 수북하게 쌓이고, 날마다 신나게 빨래해야 하는 만큼, 빨래기계가 있으면 일손을 덜기에 좋습니다. 이불도 척척 빨아내고, 두꺼운 바지나 겉옷도 수월하게 빨아냅니다. 그런데 아이들 옷가지는 하루에도 때 되면 오줌바지에 똥기저귀에 땀에 절은 옷에 흙이 잔뜩 묻은 옷에 끝없이 나옵니다. 빨래기계는 이런저런 옷가지를 한데 그러모아 빨아 준다 할 텐데, 나는 밑빨래를 안 하고 빨래기계에 넣지 못합니다. 오줌 밴 옷가지랑 흙이 잔뜩 묻은 옷을 같이 빨지 못합니다. 물이 빠지는 옷이랑 물이 안 빠지는 옷을 나란히 빨 수 없습니다.


  빨래기계를 한 달 즈음 홀가분하게 쓰면서 저녁이 되면 다시 수북히 새로 쌓이는 빨래를 바라보다가 무엇인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비내리며 축축한 날에는 아침에 한 차례 빨래기계를 돌려서는 옷을 말리기 어렵습니다. 더운 여름을 맞이하니, 저녁에 몇 가지 빨래를 해 놓아 집안이 안 메마르도록 하고 싶습니다.


  빨래기계가 차지한 씻는방 한쪽에 어느새 쪼그리고 앉습니다. 나는 다시 손빨래를 합니다. 빨래기계를 날마다 쓸 때에 ‘가장 낮은’ 물높이로 빨래를 하는데, 이렇게 하더라도 36분이 걸립니다. 내가 손으로 빨래할 때에 몇 분이 걸리나 시계로 잽니다. 12분. 조금 많으면 15분이나 20분. 빨래감이 많은 날은 빨래기계도 42분이나 45분. 그러니까, 빨래기계를 쓰면 시간이 곱배기보다 더 드는 셈입니다. 물도 훨씬 많이 쓸 테고 전기도 꽤 많이 쓸 테지요.


.. 햇볕이 타는 한낮 / 가리봉오거리 / 슬리퍼에 맨발로 / 술 취해서 돌아다니는 후줄근한 남자 / 시장 복판에서 한바탕 몸씨름과 입씨름을 하다가 / 여자에게 허리춤 잡혀 끌려가고 ..  (가리봉엘레지)


  처음부터 손으로 빨래를 하지 않았던 사람은 외려 빨래기계보다 더 오래 품을 들여 빨래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손빨래가 아직 안 익숙하다면, 빨래기계보다 물과 비누를 더욱 많이 쓰리라 생각합니다. 비빔질과 헹굼질은 날마다 꾸준히 빨래할 때에 척척 손에 감깁니다. 어느 만큼 빨고 짜서 널어야 하는가 하는 잣대는 따로 없습니다. 그예 몸으로 느낍니다.


  빨래하는 겨를을 시계로 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제 하루에 네 차례쯤 손빨래를 하는데, 빨래를 하면서 빨래가 무언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빨래하는 품을 빨래기계한테 맡기더라도 10분쯤은 몸과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손으로 빨래하고 빨래를 끝낼 만한 말미가 들어야 기계한테 일감을 맡기는 셈입니다.


  참말 기계를 쓴대서 집일이 줄어들까 아리송합니다. 오늘날 여느 사내(아저씨나 아버지)들은 빨래기계를 쓸 수 있어 가시내(아줌마나 어머니)들이 집일이 훨씬 줄어 홀가분할 뿐더러, 집에서 겨를을 많이 낼 만하다고 여겨 버릇하지 싶은데, 왜 이처럼 생각할까요. 스스로 집일을 해 보지 않았고, 스스로 빨래기계 같은 연장을 다뤄 보지 않았기에 이처럼 생각할까요. 빨래기계나 청소기를 비롯한 여러 연장을 쓸 때에 집일이 줄어든다면, 집에서 사내들이 이런 연장을 쓸 일이라고 느껴요. 그야말로 ‘힘이 안 드는’ 일이라 하면 사내들이 하면 돼요. 덧붙여, ‘힘이 드는’ 일이라 하면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서로 즐겁게 돕고 나누어 맡으면서 하면 돼요.


.. 아침이면 멀쩡하게 출근을 하고 슈퍼에 가고 산에도 가고 / 맑은 햇살에 눈 못 뜨는 나 같은 게 아니라 ..  (숨어 있기 좋은 방)


  아침에 멧풀을 흐르는 물로 헹구고 풀물을 짠 다음,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고, 곧장 식구들 밥을 차리려고 부산을 떨며, 둘째 먹일 죽을 마련해 아이 꽁무니 좇으며 가까스로 한 그릇 다 먹입니다. 이렇게 하느라 아침이 얼마나 지나는가 하고 시계를 들여다 보며 헤아립니다. 풀물을 안 짜면 두 시간 즈음, 풀물을 짜면 세 시간 남짓, 이럭저럭 설거지를 끝내고 그릇을 마당에 내놓아 해바라기를 시키고, 또 이불을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면 네 시간 즈음, 여기에다가 방을 쓸고닦으며 이부자리 모두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고 기지개를 켜면 다섯 시간 남짓 지납니다. 아침 여덟 시부터 손에 물을 묻히니 어느 날은 열 시나 열한 시 즈음 한숨을 돌릴 만하지만, 으레 열두 시나 한 시가 되어야 겨우 한숨을 돌릴 만합니다. 어느 날은 두 시가 되어서 겨우 허리를 펴고 살짝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집일을 알뜰살뜰 예쁘게 건사하는가 하고 스스로 물으면 몹시 남우세스럽습니다. 어지른 책은 제대로 치우지 못하고, 아이들은 갖고 논 놀잇감을 방바닥에 그대로 굴립니다. 뒷밭 쓰레기를 치우며 땅을 갈아엎는 일에 손을 대지 못합니다. 다 마른 빨래를 미처 못 개고 쌓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설플 수 있나 싶으나, 이렇게 어설피 살아가는구나 싶습니다. 내가 어디에 마음을 쓰는지 골이 아프고, 내가 어떻게 사랑을 들여 살림을 돌보는지 골이 띵합니다.


  빨래를 하다가, 밥을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뒷밭에 물을 주다가, 마당을 쓸다가, 잘 마르는 마늘을 뒤집다가, 빨래를 걷다가, 빨래를 개다가, 오줌바다 된 마루와 방바닥을 닦고 걸레를 빨다가, 비질을 하다가, 쌀을 씻어 안치다가, 또 설거지를 하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다가, 나 스스로 어떤 말미와 겨를과 틈을 마련하여 아이들을 사랑하고 옆지기를 아끼는 삶을 누려야 할까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할 내 삶은 어떠한 길을까 헤아립니다.


.. 땅 끝에서 떠나온 곳 / … / 내 고향보다 더 허름한 빈민촌 같아 ..  (머물기 위해 떠나다)


  이른아침부터 손에 물을 묻히면 손에는 칼이나 걸레나 빗자루를 들밖에 없습니다. 연필도 볼펜도 책도 손에 들지 못합니다. 물이 묻은 손은 마를 새 없습니다. 새삼스레 다시 물을 묻히고, 한결같이 물내음 뱁니다. 물내 나는 손으로 아이 볼을 살살 꼬집다가 꼬질꼬질한 낯이나 손을 느끼면 아이를 씻깁니다. 엊저녁에는 둘째 아이 손톱에 까만 때가 낀 모습을 보고도 손톱을 깎아야겠다는 생각을 못 하며 지나칩니다. 첫째 아이 손톱은 얼마쯤 또 길었을까요. 귀지는 어떠할까요. 둘째 아이는 언제쯤 귀지를 들여다보면 될까요. 아직 오줌가리기를 안 하려 하는 둘째 오줌바다 살림은 언제쯤 끝을 볼 수 있을까요. 둘째가 쓸 오줌그릇을 새로 장만해야 할까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문득 깨닫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품는 생각은 참으로 나 스스로 사랑하며 아끼면서 즐겁게 품는 생각인지, 하루하루 온갖 일에 끄달리거나 휘둘리면서 억지로 끄집는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하면 참 좋겠구나 하며 저절로 피우는 꽃생각일 때에 나부터 맑게 웃으며 하루가 즐겁겠지요. 저렇게 하며 참 기쁘겠구나 하며 홀가분하게 길어올리는 샘물생각일 때에 나 스스로 밝게 웃으며 하루가 환하겠지요.


.. 항암제 맞으면서 머리카락 홀랑 빠지고 나니 / 가발 찾는 아버지가 참으로 천연덕스럽다 /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묏자리까지 만들어놓고 / 애첩의 품에서 눈을 감을 아버지 / 행복하세요? ..  (애첩의 품에서)


  아이하고 들마실을 하거나 자전거마실을 하다가, 문득문득 느낍니다. 나도 좋고 아이도 좋다고 느낍니다. 내가 우리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때에 이렇게 들마실이든 자전거마실이든 내 사랑스러운 어버이하고 오붓하게 얼크러지며 놀 수 있었으면 참말 기쁘며 아름다웠겠구나 싶습니다. 내 어린 날 내 어버이는 어린 나하고 이런 겨를을 누리지 못했을는지 모르는데, 그무렵 나와 내 어버이가 좋은 웃음을 누렸든 못 누렸든, 오늘 어버이로 살아가는 내가 우리 아이들이랑 옆지기하고 좋은 웃음을 누릴 수 있으면, 이 웃음꽃이 나와 아이들과 내 어버이한테까지 살몃살몃 스며들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사랑을 바라보며 사랑을 누려요. 빨래를 하건 밥을 하건, 내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꽃피워 예쁘게 누리는 하루가 되도록 다스릴 때에는, 언제나 사랑빨래이고 사랑밥이 돼요.


  하루 내내 손에서 물기 마를 새 없으니,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짬이란 도무지 없다 싶습니다. 아주 빠듯합니다. 나는 틀림없이 집에서 종이책 읽기 아주 버겁습니다. 그런데, 종이책 아닌 다른 책은 늘 읽을 수 있어요. 아이책을 읽고 밥책을 읽으며 빨래책을 읽어요. 걸레책도 읽고 자장노래책도 읽습니다. 둘째 아이 걸음마책도 읽습니다. 내 손에서는 물기 마를 새뿐 아니라 둘째 아이 똥오줌 내음 가실 틈도 없습니다. 곧, 나는 오줌책이랑 똥책도 읽습니다. 뒷밭에 물 주러 갈 때면 밭책과 풀책을 읽습니다. 멧딸 따러 네 식구 노래하며 비탈밭 사이를 오를 때면, 이웃밭책과 들책과 딸책을 읽어요.


.. 한글도 다 못 읽는 여덟 살 아이는 붉은 노을이 어둠에 끌려갈 때 산자락 끝을 따라 언덕을 넘고 밭둑을 걸어 또 다른 언덕에 오른다 ..  (문)


  온누리 모든 삶은 책입니다. 내 삶도 책이고 네 삶도 책입니다. 읍내 저잣거리에 마실을 가는 길도 책입니다. 군내버스 일꾼이 버스를 모는 매무새도 책입니다. 이웃마을 논밭을 바라보며 새삼스럽다 싶은 책을 읽습니다. 크고작은 돌로 비탈논과 비탈밭 이룬 모습 또한 남다르다 싶은 책입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책을 읽습니다. 처마 밑 제비집 새끼 네 마리 몽땅 날갯짓 익힌다며, 오늘 새벽부터 이 녀석들 노랫소리 끊깁니다. 어디까지 날아가서 어떤 먹이를 찾고, 어미 제비한테서 어떤 꿈과 사랑을 물려받을까 궁금합니다. 나는 날마다 제비책을 읽습니다.


  늘 읽는 내 나무책이 종이에 담겨 온누리에 두루 펼쳐지는 일은 드뭅니다. 노상 읽는 내 아이책이 종이에 실려 지구별에 골고루 펼쳐지는 일은 드뭅니다. 내가 읽는 제비책이나 참새책이나 까마귀책이나 종달새책을 따로 동물도감이나 식물도감이나 무슨무슨 자연책이나 환경책에서 만난 적은 아직 없습니다. 들판에서 듣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담은 종이책이 있을까요. 저녁부터 깊은 새벽까지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문학으로 다시 빚는 글꾼이 있을까요.


.. 아랫집 할머니처럼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 하며 / 보듬어주길 바란 적 없는데 / 부지깽이 들고 쫓아다니는 것이 화풀이란 것쯤 안다 ..  (바람의 딸)


  글을 씁니다. 새벽 다섯 시 제비 노랫소리와 함께 마을 이장님 새벽 방송 소리를 들으며 글을 씁니다. 시골마을에서는 새벽 다섯 시에 마을방송을 합니다. 도시에서 새벽 다섯 시에 ‘동네방송’을 한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알리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곤 합니다. 도시에서 새벽 다섯 시뿐 아니라 여섯 시 무렵에 이런저런 방송을 한다며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울려퍼지면 도시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합니다.


  글을 읽습니다. 나는 내 삶을 글 한 줄에 푼푼이 눌러담아 쓰고, 나는 내 이웃 삶 푼푼히 눌러담긴 글 한 줄 읽습니다. 나는 늘 내 삶을 내 가락과 무늬와 빛깔과 내음에 맞추어 글을 씁니다. 내 이웃은 이녁 삶을 이녁 가락과 무늬와 빛깔과 내음에 맞추어 글을 씁니다.


  더 빼어나다 싶은 글은 없습니다. 더 놀랍다 싶은 글도, 더 좋다 싶은 글도, 더 아름답다 싶은 글도 없습니다. 모든 삶은 저마다 빼어나고 놀라우며 좋고 아름답습니다. 모든 글은 다 다른 삶결대로 반갑고 흐뭇하며 기쁩니다.


.. 남자들의 철옹성 같은 연대에 / 홀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가 ..  (살갗으로부터 오는 긴장)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을 글로 씁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웃 삶을 이웃이 손수 쓴 글을 읽으며 예쁘게 나눕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넋한테 둘러싸여 하루를 맞이하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소리에 둘러싸입니다. 나는 내가 누리고 싶은 빛깔에 둘러싸입니다. 나는 내가 이루고 싶은 사랑에 둘러싸입니다.


  이제 시집 하나 손에 들고 잠자리에 눕습니다. 한 꼭지 두 꼭지 하품을 하며 읽습니다. 몸이 고단하니까 하품이 나옵니다. 하품을 누르고 졸음을 좇으며 시를 읽습니다. 한 줄 더 읽고 싶어 꾸벅꾸벅 졸며 읽습니다. 한 쪽 더 펼치고 싶어 책장을 손에 쥐다가 이 모습 그대로 잠듭니다. 퍼뜩 깨어 한 쪽을 더 읽기도 하고, 문득 깨다가는 책을 덮고는 그대로 더 쓰러진 채 곯아떨어지기도 합니다. 하루는 흐르고, 하루는 새롭게 찾아옵니다. 하루는 저물고, 하루는 내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집니다.


.. 5월 연둣빛 나무 이파리를 보는데 / 휴대전화로, 그래 휴대폰으로 / 해고통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 해고사유는 ‘잡담’이다. / 그리고 더 이상 회사에 갈 필요도 없었다 / 눈만 뜨면 전쟁을 치르듯이 아이 맡기고 / 30분 일찍 전철에 구겨져가던 내 밥그릇 자리 / 그러나 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였고 / 비공식적으로 잘린 거다 ..  (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리나)


  김사이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반성하다 그만둔 날》(실천문학사,2008)을 읽습니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김사이 님은 이녁 삶을 얼마나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생각할까 하고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전라남도 고흥에서 살아가는데, 나처럼 도시에서 태어나 시골로 찾아들어 아이들이랑 삶을 누리는 이웃은 이 나라에 몇 사람쯤 될까 궁금합니다. 으레, 김사이 님처럼 시골마을을 부리나케 떠나 도시로, 더 큰 도시로 찾아들어야 하는 굴레나 고리나 얼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힘들거나 가난하거나 슬프거나 아프던 시골집 허름한 살림보다 더 쪼그라들고 외로우며 벅찬 도시살이를 누리더라도, 이 도시를 벗어나 다른 시골마을 작은 집을 꿈꾸며 사랑을 빚기란 만만하지 않은 노릇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김사이 님은 왜 ‘뉘우쳐’야 하고, 왜 ‘뉘우치다가 이 뉘우치기를 그만두’어야 했을까요. 뉘우치기보다는 사랑하면 좋을 텐데요. 뉘우치기를 그만두기보다, 사랑을 오래오래 이으면 기쁠 텐데요.


.. 천 원 주고 산 물건이 십 년쯤 되었으니 / 비닐이 벗겨지고 앙증맞은 곰돌이딱지가 너덜너덜해졌다 ..  (곰팡이꽃)


  곰돌이 비누갑하고도 열 해를 살 수 있어요. 작은 앵두씨 하나 심어 열 해를 보살필 수 있어요. 오늘 하루 새 곰돌이 비누갑을 천 원 치러 장만할 수 있어요. 작은 앵두씨를 심기 벅차면 작은 앵두나무 한 그루 이천 원이나 삼천 원쯤에 장만할 수 있어요. 허름한 도시 작은 집에서 곰돌이 비누갑은 열 해를 함께 살며 곰팡이꽃을 피워요. 곰팡이꽃도 꽃이니 무척 소담스럽고 예뻐요. 허름한 도시 작은 집 어딘가에 빈터가 있으면, 꼭 내 삯집 아닌 이웃집 언저리이든 동네 골목 한 귀퉁이가 되든, 시멘트바닥이나 돌바닥을 한 뼘만큼 들어내고 작은 앵두나무 심어 알뜰살뜰 보살펴 열 해를 살아내어 나와 내 이웃 모두 한여름 바알간 앵두알 누릴 수 있어요.


  사랑하기에 좋은 삶이에요. 좋아하기에 사랑스러운 삶이에요. 살아가며 빛나는 나날이에요. 빛나기에 살아갈 만한 나날이에요. 김사이 님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이야기를 김사이 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풀어낼 시노래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4345.6.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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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6-15 10:20   좋아요 0 | URL
ㅎㅎ 빨래기계를 들여놓으셨군요^^

숲노래 2012-06-15 17:27   좋아요 0 | URL
아... 꽤 되었어요.
요새는 거의 안 쓰지만요 ^^;;;

책읽는나무 2012-06-16 06:16   좋아요 0 | URL
빨래기계가 있어도 손빨래는 계속 해야되는 것 맞아요.
청소기계가 있어도 손으로 걸레질 해야되는 것 맞아요.
편리한 기계들이 곁에 있어도 뒷마무리는 항상 손으로 해야 마무리가 되는 집안일은
정말 끝이 없기도 하고,집안일만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집안일 하시는 모습 뵈면 어쩜 이리 공감이 가는지 참~~ㅋ

전 그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참 힘들다~ 참 하기 싫다~ 참 끝없다~ 만 반복하며
투덜댔었던 것 같아요.헌데 님을 뵈면 집안일을 저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할 수도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되네요.^^
아이들 아가때 눈을 떠 뒷바라지 해주고 숨 돌릴라치면 오후 한 시가 되었던 것같아요.
전 그때 아침 세수 잠깐 했었던 것같아요.너무 바쁠땐 저녁에 아침 세수를 하기도 했었구요.
집에 있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고,시간이 부족한지 좀 짜증이 많이 나던때이기도 했었어요.아이들 웃는 모습에 또 잠깐 애써 짜증을 잊곤 했었지만요.
지금 님의 모습 뵈면 그시절이 문득 생각이 나면서 왜 님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약간의 후회가 생겨요.^^
지금이라도 잘해야겠어요.또 훗날 후회하지 않으려면요.^^

그시절 시간 없어 책을 읽지 않은 순간에 뭔가 헛헛하다 생각 많이 하곤 했었는데 님의 글을 읽고 보니 저도 저 나름대로 삶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로군요.
그부분이 가장 좋았어요.^^

숲노래 2012-06-16 13:43   좋아요 0 | URL
마음속 좋은 책을 누구나 즐겁게 느낄 수 있으면
가장 사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저씨'와 '젊은 사내'와 '푸른 아이들' 모두
이러한 삶과 사랑을 잘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 - 조경선 교육산문집 살림터 참교육문예 4
조경선 지음 / 살림터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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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떻게 사나요
 [사랑하는 배움책 5] 조경선,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살림터,2012)

 


- 책이름 :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
- 글 : 조경선
- 펴낸곳 : 살림터 (2012.6.10.)
- 책값 : 12000원

 


  학교에서는 ‘내가 어른이 되어 좋은 짝꿍을 보았’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내가 만난 좋은 짝꿍과 사랑을 나누는 즐거움’이 어떠한가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짝꿍하고 아이를 어떻게 낳느냐’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짝꿍하고 낳은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길’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 큰딸이어서 더 많이 기대했다는 엄마는 끝까지 눈물을 많이 보이셨고, 고흥이라는 낯설고 먼 곳으로 가서 산다는 일방적인 결정에 섭섭함을 감추지 않으셨다. 부지런하고 깔끔한 엄마의 살림솜씨와 지원 덕분에 고생 한 번 없이 공부만 했었던 큰딸이었는데 농촌으로 시집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한 것이 큰 상실감을 주었다고 한다 … 우리 지역(전남 고흥)에서는 일 년에 몇 억 원씩 주고, 서울의 한 사교육업체 강사를 주말에 초빙해 성적이 우수한 200여 명의 중·고생을 대상으로 국·영·수 논술강의를 해 주고 있다 … 대학 진학을 위해 성적이 우수한 소수의 학생들에게는 막대한 예산을 붓고 있지만, 현재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배려는 왜 없는지 몹시 안타깝다 ..  (19, 64쪽)


  학교에서 푸름이한테 ‘성교육’을 시키곤 합니다. 학교 성교육 수업에서는 아이들한테 콘돔을 보여주거나 아예 주기도 한다지만, 막상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이를 낳기 앞서 몸속에 열 달 돌보는 동안 아이 어머니와 아이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아이를 빚기 앞서 아이 어머니와 아이 아버지가 될 사람이 어떤 삶을 일구며 몸과 마음을 건사해야 좋은가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이렇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두 어버이가 아이를 낳고서 이 아이를 알뜰히 아끼고 따스히 사랑하며 예쁘게 보살피는 길을 들려주지 못합니다.


  고작 한다는 이야기라면 ‘육아휴직’쯤 될까요. 그런데, 육아휴직은 며칠쯤 얻어야 할까요. 육아휴직은 누가 받아야 할까요. 육아휴직이란 무엇이고, 보육시설은 무엇일까요. 아이를 튼튼하고 씩씩하며 아름답게 보살피는 몫은 육아휴직과 보육시설로 다 풀거나 맺을 만할까요.


  그렇지만 나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던 때에 이런 대목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무렵에는 나 또한 입시문제와 입시공부에 갇혔습니다. 고단한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슬픈 짐과 무게를 어떻게 건사해야 할까 알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은 그저 똑같이 말할 뿐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내 삶에서 지우라고, 여섯 해를 지우고 나면 앞으로는 ‘밝은 앞날’이 있으리라고. 여섯 해 동안 시키는 대로 하고, 오로지 시험문제만 풀면, 비로소 그 다음부터는 ‘너희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 전문계 학생들은 인문계 고등학생과는 다른 소질과 특징이 있는데,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너무 획일적이고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공부 말고 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인데 말이다 … 전자과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삼성에 취업하고, 그러면 학교 정문 앞에 현수막을 단다. ‘축 삼성 취업’이라며 학교 홍보에 열을 올린다. 하얀 가운과 마스크 등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담임교사나 학부모라도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했던 그곳에서 아이들은 발암물질에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었다 … 한글날의 위기는 나의 내부로부터 나온다. ‘영어 식민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자녀의 영어교육을 걱정하는 이중적인 대한민국 엄마인 나를 고백하며 반성하고자 한다 ..  (22, 43, 78쪽)


  나는 어른들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른들 말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내 삶에서 여섯 해를 지울 수 있을까요. 내가 백 살을 살는지 이백 살을 살는지 모르나, 나는 고작 열 해를 살거나 스무 해만 살는지 몰라요. 어쩌면 열여섯이 끝일 수 있어요. 한 해이고 두 해이고 나한테는 더없이 아름다운 날입니다. 하루이고 이틀이고 나한테는 가없이 고마운 날입니다. 한 해는커녕 하루도 지울 수 없는데, 어떻게 여섯 해 내 삶을 지우면서 시험공부만 해야 하나요.


  더구나, 여섯 해를 지우고 살더라도, 나중에 나한테 ‘밝은 앞날’이 반드시 찾아오리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손꼽는 대학교에는 위에서 몇 퍼센트만 들어갈 수 있는데다가, 모든 푸름이가 대학생이 될 수 있지 않아요. 대학생이 될 수 있는 푸름이는 40퍼센트입니다. 요새는 숫자가 늘어 60퍼센트까지 될는지 모르지만, 고등학교를 마친 두 아이 가운데 하나는 곧바로 ‘사회’에 뛰어들어 ‘일자리’를 찾아야 해요. 그런데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지우라니요.


  대학교에 안 들어갈 아이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어떻게 보내라고요. 고등학교만 마치고 살아갈 아이들한테 머나먼 앞날은 어떻게 꿈꾸거나 꾀하라고요. 한 사람으로 우뚝 서서 슬기로우며 사랑스레 살아갈 길은 어떻게 찾거나 일구라고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답합니다. 한국땅에서 ‘고등학교 마친 모든 푸름이가 대학교에 갈 수 있다’면 모르되, 하나는 가도 하나는 못 간다 하는데, 서로 피가 튀기도록 시험공부만 시키면서 하나는 대학교에 보내고 하나는 대학교에 안 보낸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대학교에 간 아이들은 어떤 삶을 누리면서 이 나라 이웃과 동무를 생각하고, 대학교에 안 가거나 못 간 아이들은 어떤 삶을 즐기면서 이 나라 이웃과 동무를 헤아려야 할까요.


..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가정방문도 언제나 인상적이다. 잠시나마 학교를 벗어나 수평선 따라 소풍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섬에 학교가 사라지고,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 공사를 한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왜 동생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집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기는지, 어떻게 유치원 교사의 꿈을 꾸었는지 가만히 엿보게 된다. 매화 꽃망울이 터진 등암의 골목길을 지나 들어간 마당 한쪽에 아직도 깨끗한 우물이 있다. 그 물로 손빨래를 하는 집 마루에 앉아 이 두 형제들이 어떻게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떤 마음을 가진 분들인지 바라보게 한다 … 업무가 산더미 같았다. 그렇게 여유가 없이 아이들을 만나니, 아이들도 내 말에 상처를 받았다 ..  (90, 244쪽)


  예나 이제나 나는 한결같이 생각합니다. 대학입시는 ‘입시학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정규수업만 해야 올바르고, 정규수업은 중학교나 고등학교만 마친 아이들이 어디에서라도 스스로 씩씩하고 슬기로우며 착하고 참다우며 어여쁘고 즐겁게 삶을 일구는 길을 보여주거나 이끌거나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교과서가 부질없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를 쓸 까닭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와 학생 모두 온몸으로 삶을 배우고 온마음으로 삶을 생각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교사 자리에 선 사람은 아이들에 앞서 사회와 삶을 조금 더 누린 만큼, 이렇게 몸과 마음으로 겪은 삶을 아이들이 앞으로 맞아들일 때에 어떠한 빛과 눈길과 넋으로 따사로이 껴안도록 하면 좋을까 하고 어깨동무할 노릇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이 더 높다 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어버이라면, 아이들을 학교에 넣으면 안 된다고 느낍니다. 더 높다 하는 대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다면, 아이들을 어릴 적부터 입시학원에 넣으면 됩니다. 아이들한테 시험문제만 가르치고 생각하도록 이끌어, 열두어 살부터 대입시험을 치르도록 하면 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하면 검정고시를 치르면 되지요. 굳이 여섯 해나 학교에서 아이들 푸른 삶을 썩혀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학교에 넣는다 하면, 학교가 어떤 배움터가 되도록 어버이 또한 슬기와 힘을 갈무리해야 좋을까 하고 생각해야지 싶어요. 학교가 학교다울 수 있도록 어버이는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농촌의 아이들은 서울이라는 도시로 가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곳은 오히려 경쟁에서 낙오되면 절망이 가득한 소비적인 곳이다. 다시 고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안함이 느껴졌다 … 우리는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도시의 학교로, 학교 기숙사로 멀리 떠나보낸다. 진로와 공부에 대한 요구로 갈등을 일으키고, 노동에 대한 체험과 가족에 대한 이해 없이 점점 멀어져 가게 한다 … 짧은 시간 안에 빨리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정성껏 시를 음미하지 못한 채 작품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작품의 특징을 알려고 한다 ..  (107, 136, 193쪽)


  아이들은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비싼 밥이 아닌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밥을 차려서 내놓는 어버이나 어른’들 따사로운 사랑이 깃든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비싼 옷이 아닌 좋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가게에서 비싼값 치르며 장만한 옷이 아니라, 어버이나 어른이 사랑을 들여 빚은 좋은 옷을 좋은 마음으로 받아서 입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넋과 얼을 배워야 합니다. 높은 지식이나 빠른 정보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꿈을 짓도록 돕는 좋은 넋과 얼을 배워야 합니다. 손재주를 가르칠 학교가 아니에요. 자격증을 가르칠 학교 또한 아니에요. 학교는 교사와 학생 모두 사랑을 누리면서 사랑을 빛내는 배움터예요.


.. 그 이후로 백일장의 입상 결과보다는 글을 쓰는 과정이 한 아이에게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우리 아이들에게 저마다의 삶은 모두 문학 재료가 된다 … 교사도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대학 평준화를 위한 활동을 함께 해 나갔으면 좋겠다 … 무한경쟁보다는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학급이 되면 좋겠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무려 9시간을 한 교실에서 보낸다. 그래서, 따뜻하고 즐거운 학급이 되었으면 한다 … 오늘은 전국학력평가를 보는 날이다. 낮은 등급이 나오는 학생들에게는 벌을 줘야 한다는 선생님들의 의견이 있었다 ..  (23, 36, 83, 101, 125쪽)


  나는 학교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대목을 배웠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교 밖에서 내 삶을 이끌 이야기를 배우려고 애쓸 수 있었구나 싶어요. 책을 찾아 읽으며 내가 배우고픈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좋은 이웃과 동무를 사귀며 내가 알고픈 이야기가 무엇이었나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옆지기를 만나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내가 그동안 못 배운 대목이 무엇이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내가 못 배운 만큼 우리 아이들한테 가르치거나 느끼도록 이끌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삶을 배우자면 어버이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부터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꿈을 짓자면, 어버이인 나는 하루하루 어떤 넋과 얼로 누려야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피아노학원에 다녀야 피아노를 칠 수 있지 않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사진강좌를 들어야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글쓰기학원을 다녀야 글을 쓸 수 있지 않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집일’과 ‘아이키우기’를 학원으로나 학교에서나 따로 배울 수 없습니다.


  오직 삶이 있습니다. 오직 싱그러운 삶이 있어요. 오직 사랑스럽고 싱그러워 빛나는 삶이 있어요.
  삶을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할 길을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하며 나와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 모두 즐겁게 어깨동무할 길을 생각합니다.


.. 하지만 다른 반 담임선생님들 중에는 독서를 하지 못하게 하고, 영어와 수학 문제 풀이만이 공부라고 말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 객관식 문제 푸는 공부 기계가 되어 1등급이 된다고 한들, 앞으로 이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는 걸까 … 교사와 학생들은 왜 이렇게 뼈빠지게 학교에 남아 서로를 통제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늦게까지 학교에 불이 켜져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  (128, 146, 149쪽)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교까지 마친 다음, 전라남도 고흥으로 시집을 오며 고흥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지내는 조경선 님이 쓴 교사일기를 그러모은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살림터,2012)를 읽습니다. 조경선 님 교사일기에 드러나는 고흥 시골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거의 모두 고향인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다고 합니다. 대학교에 가든 일자리를 찾아 공장으로 가든, 으레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간대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 다닌 시골마을 고흥에는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같은 젊고 푸른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할 테지요. 왜냐하면, 오늘날 고등학교 가운데 시골 아이들한테 농사짓기나 고기잡이를 가르치는 데는 아주 적어요. 논밭과 바다가 있는 시골마을 고흥에서조차 아이들이 ‘슬기로운 흙일꾼’이 되거나 ‘아름다운 고기잡이’가 되는 길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 없이 흙과 사람과 지구별을 골고루 살리는 흙일꾼 참길을 들려주는 학교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어린 새끼는 바다로 돌려보내고,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바다 둘레에 발전소 따위 안 지으며 깨끗하게 건사하는 넋을 북돋우는 고기잡이 사랑길을 보여주는 학교는 어디에서 만나야 할까요.


  조경선 님은 국어교사가 되어 고등학교 아이들이랑 문학을 노래하는 사랑을 아주 조그맣게 나눕니다. 조경선 님 둘레에 있는 다른 분들은 어떤 교사가 되어 고등학교 아이들이랑, 또 중학교 아이들이랑, 또 초등학교 아이들이랑, 어떤 꿈과 사랑을 날마다 어떤 빛깔과 무늬로 예쁘게 지으며 하루를 빛낼까요. 시골마을 시골학교에서 시골아이 사랑하는 시골교사는 어떤 웃음과 어떤 삶으로 어떤 시골얘기를 엮을 수 있을까요. (4345.6.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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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2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2-06-12 12:17   좋아요 0 | URL
앗, 그렇군요.
헐레벌떡 바로잡았습니다.
고마워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