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놓치다 애지시선 6
손세실리아 지음 / 애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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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샘솟는 자리
[시를 노래하는 시 17] 손세실리아, 《기차를 놓치다》

 


- 책이름 : 기차를 놓치다
- 글 : 손세실리아
- 펴낸곳 : 애지 (2006.2.13.)
- 책값 : 8000원

 


  도시에 공부방이 있어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는 쉼터 구실을 합니다. 도시 공부방은 곧잘 동네 아주머니나 할머니한테 한글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시골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배움마당을 열기도 합니다. 올해에는 고흥군에 두루 ‘유기농 농사짓기’를 퍼뜨린다며, 광주에 있는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는 분이 ‘유기농 농사짓기 강의’를 하러 오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살던 지난날을 돌이키고, 시골에서 사는 오늘날을 헤아립니다. 지난날 도시에서 동네 아줌마나 할머니한테서 무언가를 배우는 자리를 누군가 연 적 있었나 궁금합니다. 공부방이나 경로당은 있다지만, 문화회관이나 복지화관은 있다지만, 늘 ‘자격증·졸업장 많이 거머쥔’ 이들이 찾아와서 ‘자격증·졸업장 하나 없는’ 이들한테 지식과 정보를 한 가득 들려줄 뿐 아닌가 싶습니다. 시골에서도 마을 어르신한테 자꾸 무언가를 알려주거나 가르치겠다 할 뿐입니다.


.. 시인을 꿈꾸는 이여 / 그대가 방금 내게 들려준 말이 시다 / 한 줄의 첨삭도 필요 없는 온전한 시다 / 외지에 나가 칼질로 먹고 사는 장손을 위해 / 자갈밭 일구고 평생 물질하셨을 / 칠순 노모의 휘어진 허리가 시다 / 주방에 그릇그릇 담긴 어머니의 몸이 바로 시다 / 그것을 받아 적지 못하면 허당이다 / 시는 그대 안에 이미 와 있느니 / 밖에는 없느니 ..  (밥상에 올려진 시)


  나는 전남 고흥 시골마을 보금자리를 얻어 살고부터 ‘고흥과 얽힌 책’을 틈틈이 장만해서 읽습니다. 1980년대에 나온 관광책도 장만하고, 1970년대에 나온 교과서 보조교재도 장만합니다. 《한국의 발견, 전라남도 편》도 장만합니다. 이런 책도 읽고 저런 책도 살핍니다. 여러 갈래 온갖 책을 훑다가 문득 느낍니다. 고흥군청에서 내놓는 책이든, 고흥 바깥에서 펴내는 책이든, 어떠한 책이라 하더라도 고흥을 바라볼 때에는 ‘관광하러 드나들 만한’ 곳이 되느냐 하는 눈길입니다. ‘돈을 잘 버는’ 곳인가 아닌가를 따집니다.


  통계자료가 있는지 모릅니다만, 우리 식구 깃든 시골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 ‘학력’이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마을 할머니는 국민학교라도 다녀 보셨을까요. 마을 할아버지는 국민학교 다음으로 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까요.


  시골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신 딸아들을 대학교까지 보낼 뿐 아니라 대학원도 보냅니다.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딸아들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등허리 구부정하게 일하지 않습니다. 도시로 떠나 살아가는 딸아들은 돈을 쏠쏠히 벌고 커다란 자가용을 굴립니다.


.. 어미가 앞장 서 갈퀴발로 터놓은 물의 길을 여남은 마리의 새끼들이 올망졸망 뒤쫓고 있습니다. 떼로 몰려다니며 수선스러워 보이지만 묵언정진 중인 수련 꽃잎에 생채기내는 일 없고 빽빽한 수풀 마구잡이로 헤집고 다니는 듯 보이지만 물풀의 줄기 한 가닥 다치는 법 없이 말짱한 것이 하늘에 길을 트고 국경을 넘나드는 철새들의 비행과 별반 다를 바 없었는데요 ..  (물오리 一家)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처음부터 풀약과 비료를 쓰며 흙을 일구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마흔 해나 쉰 해 앞서도 풀약과 비료를 써서 논밭을 일구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예순 해나 일흔 해 앞서, 마을 어르신들이 당신 어버이한테서 흙일을 물려받을 무렵에도 당신 어버이는 풀약과 비료로 푸성귀와 곡식을 거두라 가르쳤을까 궁금합니다.


  할머니들은 호미질을 빼어나게 잘 합니다. 할아버지들은 낫질을 훌륭하게 잘 합니다. 할머니들은 풀을 잘 압니다. 할아버지들은 흙을 잘 압니다. 할머니들은 물을 잘 압니다. 할아버지들은 하늘을 잘 압니다.


  시골 할머니한테서 호미질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도시사람은 없습니다. 시골 할아버지한테서 낫질을 배우겠다며 문화강의를 여는 지식인이나 관청 공무원은 없습니다.


  밭이랑을 만들거나 논둑을 다지는 솜씨를 배우러 시골로 찾아오려 하는 도시 젊은내기는 얼마나 될까요. 들풀을 익히거나 멧나물을 배우러 시골로 드나들려 하는 도시 지식인이나 학자는 얼마나 되려나요.


.. 이름 석 자는커녕 / 전화 다이얼도 돌릴 줄 모르는 어머니를 / 세상은 까막눈이라 한다 ..  (까막눈)


  모든 강의는 지식 강의에서 그칩니다. 모든 학교는 정보를 새로 만들어 쌓는 데에서 끝납니다. 사람들은 자꾸자꾸 자격증을 새로 만듭니다. 사람들은 나날이 졸업장을 더 따집니다.


  볍씨 한 알을 어떻게 갈무리해서 봄날 못자리에 심어 싹을 틔우는가를 모르더라도 밥을 맛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볏포기가 얼마나 푸르게 빛나며 개구리와 뱀과 새와 거미 들을 품에 안기에 단단하고 알찬 열매가 맺는가를 모르더라도 쌀을 얼마든지 장만할 수 있습니다.


  나라에서는 쌀농사 짓지 말라고 ‘직불제’라는 제도를 마련합니다. 나라에서는 쌀이야 이웃나라에서 사다 먹으면 된다며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제도를 맺습니다. 그런데, 쌀농사 짓지 말라면서, 쌀은 더 안 지어도 된다면서, 이 나라 정부는 갯벌을 메워 논을 만드는 일을 자꾸 벌입니다. 논을 만들어도 농사짓지 말고 묵히라는 정책을 세우면서, 정작 갯벌을 메워 논밭으로 바꾸겠다 외칩니다.


  곰곰이 따지면, 논밭으로 바꾸려 메우는 갯벌은 아니로구나 싶습니다. 처음에 내세우기로는 논밭으로 삼겠다는 허울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파트나 공장을 지으려고 갯벌을 메웁니다. 조개도 낙지도 굴도 김도 몽땅 이웃나라에서 사다 먹으면 되니까, 조기도 게도 갈치도 오징어도 모조리 이웃나라에서 사다 먹으면 그만이니까, 갯벌을 없애고 바다를 더럽힙니다. 깨끗한 바닷가마다 발전소를 지어 바닷물을 망가뜨립니다. 깨끗한 바닷마을마다 공장을 세워 흙과 물을 더럽힙니다.


.. 미장갑차 무쇠바퀴에 뭉개져 / 네가 떠난 오욕의 이 영토에도 / 어김없이 첫눈은 내리고 / 철없는 소름은 / 베옷 밑에서 자꾸만 키가 자란다 … 이승에서 너 하나 지키지 못하고도 / 살아 밥을 먹고 말을 섞는 / 부끄러운 날이 살같이 지난다 // 잘 가거라 아가, 내 새끼야 ..  (베옷을 입다)


  대학교에서는 새끼꼬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농업과학’을 가르치는 학과는 있다지만, 정작 똥오줌으로 거름을 내고 쓰레기를 안 빚는 오랜 흙일을 가르치는 학과는 없습니다. 볏짚으로 새끼를 꼴 뿐 아니라, 짚신을 삼거나 바구니 엮는 솜씨를 가르치는 교수는 없어요. ‘식품영양’을 가르치는 학과는 있다지만, 들풀이나 멧풀을 하나하나 캐거나 따거나 뜯거나 꺾어서 몸을 살찌우는 삶을 가르치는 학과는 없습니다. 메주를 쑤거나 두부를 빚거나 마늘을 말리거나 감알을 깎는 솜씨를 가르치는 교수는 없어요.


  그물을 꿰거나 베틀을 밟을 줄 아는 교수는 있을까요. 뽕잎을 따거나 뜨개질을 할 줄 아는 교수는 얼마나 될까요. 손으로 빨래하거나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교수는 얼마나 될까요.


  생각해 보면, 새끼꼬기를 대학교에서 가르친다면,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굳이 당신 딸아들을 대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짚신삼기를 가르치며 대학 교수가 된다면,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애써 당신 딸아들을 대학 교수가 되도록 뒷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새끼꼬기를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으니,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일이 벌어집니다.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아이들이 들판과 멧자락에서 나물을 캐지 않으니, 온 나라 냇가에 시멘트를 발라 망가뜨리는 짓을 수십 조를 들여 저지릅니다.


  삶을 배우지 않기에 삶을 사랑하지 못해요. 삶을 가르치지 못하니 삶을 아끼지 않아요. 삶을 물려받지 않으니 삶을 좋아하지 못해요. 삶을 이야기하지 못하니 삶을 나누지 않아요.


.. 수렁 같은 허방에 큰절 올린다 / 떼 한 포기 옮겨 심는 마음으로 / 진혼시를 쓴다 ..  (고봉산 뼈무덤)


  시골을 떠난 아이들은 왜 자가용을 몰고 명절날 이녁 어버이를 찾아 뵐까요. 명절날 갖가지 선물보따리 들고 시골마을 찾아 돌아왔다가 금세 도시로 떠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시골마을 어버이한테는 무엇이 선물이 될 만한가요. 시골로 찾아와 도시로 돌아가는 아이들마다 자가용 짐칸에 바리바리 싣는 꾸러미는 무엇일까요.


  시골마을 어르신들은 도시로 떠난 아이들을 ‘밥을 먹여’ 살립니다.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시골마을 어버이한테 ‘돈푼’ 쥐여 준다지만, 시골마을 어르신은 ‘돈푼’으로 맛나다는 먹을거리를 사다 먹지 않습니다. 늘 스스로 흙을 일구어 맛난 먹을거리를 얻습니다. 흙에서 얻은 돌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손질하거나 고칩니다. 이제는 가게에서 옷을 사다 입는다지만, 옷가지 또한 모두 흙에서 얻었고, 흙으로 돌려보냈어요. 환경운동이니 재활용이니 하고 떠들 까닭이 없는 시골마을이에요. 생태이니 생명이니 하고 외칠 까닭이 없는 시골살이예요.


  스웨덴이나 덴마크나 네덜란드까지 찾아가서 ‘미래 대안’을 배울 수 있겠지요. 그러나, 바로 우리 어버이들 나고 자란 가까운 시골에서 ‘오늘 삶’을 사랑하며 껴안을 수 있어요. 쿠바나 핀란드나 캐나다에서 ‘유기농이나 친환경’을 배울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바로 우리 어버이들 나고 자란 가까운 시골에서 ‘푸른 삶’을 아끼며 어깨동무할 수 있어요.


  사랑이 삶이에요. 삶은 푸르게 빛나요. 꿈이 삶이에요. 삶은 맑게 빛나요.


.. 내 안의 오래된 상처도 / 푸르고 곱게 부식되어 / 다음 생엔 부디 / 이마 말간 꽃으로 환생하기를 / 삼가 합장 또 합장하며 ..  (저문 산에 꽃등 하나 내걸다)


  손세실리아 님 시집 《기차를 놓치다》(애지,2006)를 읽습니다. 기차를 놓쳤어요. 그래요. 기차를 놓쳤으니 기다려야겠네요. 또는, 걸어가야겠네요. 또는, 길을 떠나지 않고 내 작은 마을에서 작고 조용히 살아야겠네요.


  나는 늘 기차를 놓칩니다. 나는 늘 기차를 놓치고 내 작은 마을에 우두커니 섭니다.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인가 생각합니다. 누구와 사랑하는 사람인가 돌아봅니다.


  나는 늘 기차를 먼저 보냅니다. 나는 늘 기차를 먼저 보내고 천천히 걷습니다. 어디로 가고 싶은 사람인가 헤아립니다. 누구랑 어디로 나들이를 다닐 때에 즐거운 나날일까 곱씹습니다.


  싯말은 바로 내 가슴에서 샘솟습니다. 싯말은 곧 내 삶말입니다. 싱그러이 사랑하는 내 가슴이라면 싱그러이 사랑하는 싯말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곱게 사랑하는 내 삶이라면 곱게 사랑하는 싯말로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를 따숩게 어깨동무합니다.


  손세실리아 님은 사랑을 기다리며 삶을 한 올 두 올 엮으며 싯말 한 송이 자그맣게 피웁니다. (4345.5.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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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꼭 지켜야 할 벼 철수와영희 어린이 인문생태그림책 1
노정임 지음, 안경자 그림, 강병화 감수, 바람하늘지기 / 철수와영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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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먹는 밥으로 사랑을 일굽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9] 안경자·노정임, 《우리가 꼭 지켜야 할 벼》(철수와영희,2012)

 


  내가 먹는 모든 밥은 내 몸이 됩니다. 내 몸은 내 삶이 되고, 내 삶은 내 아이들 삶으로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나이가 들며 이제 저희대로 저희 좋은 삶길을 걷겠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걷는 삶길이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으면서 스스로 찾거나 살피거나 헤아리는 길입니다.


  아이들 몸을 이루는 숨결은 어버이가 여느 때에 꾸준히 먹은 밥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른들 스스로 어린 날부터 차근차근 먹으며 숨결을 이은 밥이 곧 아이들 목숨이에요. 아이들이 걸린다는 아토피이든 숱한 몸앓이는 모두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준 생채기이자 아픔이고 슬픔이에요. 어버이는 몸으로 이 숱한 생채기나 아픔이나 슬픔을 누리지 않습니다. 바로 가장 가까운 곁에서 아이들이 괴롭고 힘겨우며 지치는 모습을 그예 바라보면서 어찌저찌 손을 못 쓰며 바라보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어버이 스스로 착하고 맑으며 고운 밥을 꾸준하게 즐겨먹는다면, 어버이 숨결로 빚을 아이들 목숨은 더없이 착하고 맑으며 고울 수 있어요.


..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부지런히 자료를 찾다가 가장 놀란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우리 나라의 농약 사용량이 무척 많다는 사실이었고 … 한 가지 더 안타까운 것은 농촌과 농업에 대한 자료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8쪽)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은 어버이가 늘 먹는 밥과 같다고 느낍니다. 어버이로서 날마다 어떤 밥을 먹느냐만큼, 어버이로서 날마다 어떤 사랑을 나누느냐에 따라 아이들 하루하루가 달라지는구나 싶어요. 어버이로서 늘 누리는 사랑이란 아이들이 늘 누리는 사랑이고, 어버이답게 노상 빚는 꿈이란 아이들이 노상 빚는 꿈이로구나 싶어요.


  내가 꽃내음 맡으며 들길을 걸으면 아이도 나와 함께 꽃내음 맡으며 들길을 걷지만, 이에 앞서 내 몸과 마음으로 스미는 꽃내음이 내 생각을 따숩게 다스립니다. 내가 들새 노랫소리 들으며 멧길을 오르내리면 아이도 나와 함께 노랫소리 들으며 멧길을 오르내리지만, 이보다 내 넋과 얼로 녹아드는 노랫소리가 내 사랑을 곱게 보듬습니다.


  날마다 좋은 밥을 먹어야겠다고 느낍니다. 언제나 좋은 밥을 마련해야겠다고 느낍니다. 가장 좋다고 느끼는 먹을거리로 밥상을 차려요. 가장 좋다고 느낄 마음가짐으로 밥상을 차릴 때에 즐거워요. 가장 비싼 먹을거리가 아니라 가장 좋다고 느끼는 먹을거리예요. 가장 빛나는 밥솜씨가 아니라 가장 좋은 매무새로 짓는 밥이에요.


.. 쌀과 밥을 못 본 친구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벼’를 못 본 친구는 있을 수도 있어요. 쌀과 밥은 부엌에 있지만, 벼는 논에서 자라니까요. 벼는 쌀을 얻으려고 논에 심어 기르는 한해살이풀이랍니다 ..  (14쪽)

 

 


  오월 끝무렵이 되니 전남 고흥 시골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 바쁩니다. 오월 첫머리까지는 모두들 천천히 쉬엄쉬엄 지내며 얼크러져 노시는구나 싶었으나, 이제 밭자락마다 마늘 캐느라 바쁘고, 논자락마다 써레질과 물대기로 바쁩니다. 차근차근 밑일을 마치는 유월을 맞이하면 모두들 무논에 모를 심겠지요. 예전처럼 손으로 모를 심지는 않지만, 즐겁게 모를 심겠지요. 허리 굽은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손으로 모를 심으라 바라기 힘들 테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은 바로 ‘시골 늙은 할매 할배가 일군 쌀’을 사다가 밥을 지어 먹겠지요.


  곰곰이 돌아봅니다. 열 해 앞서도, 스무 해 앞서도, 또 서른 해 앞서도 시골마을에서는 ‘늙은 사람’이 흙을 일구었습니다. 앞으로 열 해 뒤에도, 또 스무 해 뒤에도, 어쩌면 서른 해나 마흔 해 뒤에도 시골마을에서는 ‘늙은 사람’만 흙을 일구고, 젊은 사람은 도시에서 돈을 벌는지 몰라요. 이 나라에서 흙과 사귀는 일이란 늙은 사람만 할 일이요, 젊은 사람은 자가용이랑 인터넷이랑 돈이랑 물질문명하고 사귀기만 하면 될 노릇일는지 몰라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장미꽃을 사다 선물한다는데, 정작 장미씨를 받아 장미싹을 틔워 장미나무를 키운 다음 이 장미나무한테서 얻은 꽃송이를 꺾어 선물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그저 돈을 벌어 돈으로 장미를 사고 돈을 치러 빼입은 옷을 차려입은 다음 서로서로 만나는 도시예요. 내 몸을 움직이지 않아요. 내 마음이 내 몸에 따라 거듭나지 않아요. 내 몸에 흙을 묻히거나 내 얼굴에 햇살이 닿도록 하지 않는 도시예요.


  한국사람은 누구나 밥을 먹는다지만, 막상 밥이 될 쌀을 어떻게 빚고, 쌀은 벼에서 어떻게 갈무리하는가를 살피지 않아요. 한국사람은 빵이나 라면이나 국수를 참 많이 먹는데, 정작 빵이나 라면이나 국수, 여기에 과자가 될 밀을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일구어 얻는가를 헤아리지 않아요.


  아이들도 모르지만, 아이들보다 어른들부터 모릅니다. 아이들도 생각하지 않지만, 아이들에 앞서 어른이 먼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 벼꽃이 피었어요. 아주 빨리 꽃가루받이를 한답니다. 2∼3시간 안에 수정을 하고 곧 지지요. 옛 어른들은 “벼꽃 필 때는 거름도 주지 말라”고 했대요. 부지런한 농부도 이때는 논에 가지 않고 벼꽃이 알아서 일하길 조용히 기다리지요 ..  (21쪽)

 


  그림책 《우리가 꼭 지켜야 할 벼》(철수와영희,201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은 날마다 밥을 어버이한테서 받아먹는 아이들이 ‘벼’를 옳게 제대로 슬기롭게 알도록 이끕니다. 아이들이 밥을 모르고서는, 벼를 모르고서는, 쌀을 모르고서는, 참말 밥을 밥답게 누리지 못하고 삶을 삶답게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베푸는 선물 같은 책입니다.


  그래, 이 그림책은 아이들한테 되게 좋겠구나 싶어요. 이 그림책을 읽을 아이들은 벼와 쌀과 밥을 잘 가누어 돌아볼 만하고, 알뜰살뜰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한 가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벼와 쌀과 밥을 알 수 있다지만, 어른들은 어떡하지요? 아이들은 벼와 쌀과 밥을 알아차리고 느끼며 익힌다지만, 어른들은 무엇을 하나요?


  아이들은 예쁘게 빚고 알차게 엮은 그림책을 읽으며 좋은 생각을 마음껏 북돋운다지만, 어른들은 어떤 생각을 얼마나 북돋울까요?


.. 논은 사람 손으로 만든 습지예요. 습지는 생물다양성이 높은 아주 중요한 생태계랍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넓은 습지는 바로 논이에요. 논은 사람이 사는 마을처럼 여러 생명이 자라고 어울려 사는 생명의 터전이랍니다 ..  (28쪽)

 


  어떤 그림책이든 어른이 장만해서 아이들한테 읽힙니다. 어떤 그림책이든 아이들이 책방마실을 하면서 장만하지 않습니다. 어떤 그림책이든 아이들 혼자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가서 읽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그림책이든 아이들이 어버이나 교사랑 나란히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가서 읽습니다.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이 그림책을 먼저 즐겁게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어른들부터 이 그림책을 예쁘게 읽으면 좋겠다고 느낍니다. 우리 어른들부터 벼와 쌀과 밥을 곱게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어른들부터 날마다 맛나게 밥먹고, 언제나 예쁘게 꿈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어른들부터 좋은 삶을 생각하고 좋은 사랑을 나누며 좋은 밥을 즐길 수 있으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먹는 밥으로 사랑을 일굽니다. 내가 나누는 밥으로 꿈을 빛냅니다. (4345.5.27.해.ㅎㄲㅅㄱ)

 


― 우리가 꼭 지켜야 할 벼 (안경자 그림,노정임 글,바람하늘지기 기획,철수와영희 펴냄,2012.6.6./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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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서 온 장미 도둑 - 터키 사진작가 아리프 아쉬츠의 서울 산책
아리프 아쉬츠 지음 / 이마고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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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살며 사진찍기는 온통 물음표
 [찾아 읽는 사진책 99] 아리프 아쉬츠, 《이스탄불의 장미도둑》(이마고,2009)

 


  터키사람 아리프 아쉬츠 님이 빚은 사진책 《이스탄불의 장미도둑》(이마고,2009)을 아주 금세 재미나게 읽습니다. 처음에는 사진만 죽 살피고, 다음으로 글을 찬찬히 읽습니다. 글을 읽으며 ‘사진만 먼저 읽던 느낌’을 떠올립니다.


  터키사람 아리프 아쉬츠 님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아니, 터키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한국이라는 나라를 꾸밈없이 바라본다 할 때에 어떤 빛깔로 드러날까요.


  “여자들 옷의 화려한 문양과 색깔이 두드러져 보였다. 햇빛이 강하지도, 비가 내리지도 않았는데 여자들은 옷만큼이나 화려한 양산을 쓰고 다녔다. 서울은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아름다운 청자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건물의 유리창, 건설현장을 둘러싸는 그물, 골프연습장, 간판, 표지판, 가로수, 길거리 노점상의 천막 등 청자빛이나 그와 비슷한 초록색이 녹음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색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27쪽).” 하는 대목을 헤아립니다. 그림자빛으로 사진을 찍던 아리프 아쉬츠 님은 한국에 닿아 서울을 돌아보면서 무지개빛으로도 사진을 찍자고 생각합니다. 당신 눈길을 사로잡는 눈부신 무지개빛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합니다.

 

 


  나는 사진을 두 갈래로 찍습니다. 필름으로만 사진을 찍던 예전이든, 필름과 디지털로 사진을 찍는 요즈음이든, 무지개빛으로 찍는 사진기 한 대랑 그림자빛으로 찍는 사진기 한 대를 따로 챙깁니다. 똑같은 사람을 바라보건, 똑같은 집이나 들이나 마을을 바라보건, 무지개빛으로 느끼는 아름다움과 그림자빛으로 누리는 아름다움은 사뭇 다르다 느껴요. 어느 한 가지로만 바라본다면 내 눈길이 한쪽으로 치우치겠다고 느껴요.


  “한국은 한눈을 팔기에는 모든 일이 너무 빨리 돌아가는 나라였다(31쪽).” 하고 말하는 대목을 되뇝니다. 참 그렇습니다.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 하기도 하지만,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뒤에서 밀어댑니다. 사진도 빨리 찍어야 하고, 사진책도 빨리 만들어야 하며, 사진비평도 빨리 쏟아내야 합니다. 무엇이든 먼저, 빨리, 크게 하지 않고서야 한국에서 빛을 보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늘 1등만 바라보는데, 이 1등이란 한 번 1등을 해서는 안 되고 ‘죽는 날까지 내처 1등’을 지키도록 빨리 달리고 죽어라 달려야 해요.


  그러고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한국사진’이라 일컬을 만한 아름다운 사진이 아직 없다고 할 만하구나 싶어요. 스스로 살아가는 꿈과 사랑을 돌보지 않는다면,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땅에서 한국사진을 찍기는 할 테지만, 정작 ‘한국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지구별 사진밭’에 즐거이 내놓아 나눌 ‘아름다운 사진’ 하나 누리기 힘들지 않겠느냐 싶어요.

 

 


  “아줌마들의 옷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패턴을 자랑했다. 피카소나 마티스도 그와 같은 패턴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공원이나 지하철 등에서 한 무리의 아줌마들을 보고 다니는 일은 포비즘 전시회보다도 훨씬 더 재미가 있었다(39쪽).” 하는 대목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참말 재미있구나 싶은 모습이겠지요. 참말 재미있구나 싶은 모습을 한국사람 스스로 만들면서 한국사람 스스로 참말 못 느낀다 하겠지요.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찍어 나라밖에 알린다 할 때에 어떤 사람을 어느 곳에서 어떻게 담아서 보여줄까 궁금합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사진으로 담아 이웃나라에 알린다 할 때에 어느 도시나 시골을 언제 어떻게 담아서 보여줄까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몇 개월을 살다 보니 반은 한국인이 됐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통일에 대한 친구들의 회의적인 시선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56쪽).” 하는 대목을 곱씹고, “젊은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MP3를 귀에 꽂고 다녔다. 왜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는 걸까(75쪽).” 하는 대목을 되새깁니다. 한국사람이 보여준다 할 만한 ‘한겨레 넋’이란 무엇일까요. 남녘과 북녘을 아우를 만한 넋이란 무엇일까요. 남북녘과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모든 한겨레를 어우를 만한 넋이란 무엇일까요. 지구별 숱한 나라에 저마다 다른 보금자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온 한겨레를 그러모을 만한 넋이란 무엇일까요.


  사진과 글을 한참 읽다가 살며시 책을 덮습니다. 한동안 생각에 잠깁니다.

 

 


  터키사람 하나 한국에서 꽤 오래 지내며 한국땅 가운데 서울에서 보고 듣고 겪고 부딪히고 부대끼면서 누린 삶을 적바림합니다. 한국사람 하나 터키로 나들이를 가서 여러 달 살아내며 글과 사진을 적바림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요.


  다시 책장을 넘깁니다. “이스탄불의 소리는 어떤가? 아침 5시, 침실 바로 곁 창가에서 아카시아 나무에 앉은 나이팅게일 한 쌍이 나를 깨운다. 봄여름에는 제비가 재빨리 날며 소리를 낸다(134쪽).” 하는 대목을 읽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들새 노랫소리로 아침을 연다고 합니다. 한국 서울에서는 어떤 소리로 아침을 여는가요.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제비들 춤사위와 노랫소리를 누릴 수 있는데, 한국 서울에서는 어떤 사위와 소리를 누리는가요.


  스스로 누리는 대로 스스로 글로 담습니다. 스스로 즐기는 대로 스스로 사진으로 빚습니다.


  “‘왜 그렇게 정확하게 바꿔야만 할까?’ 나는 물었다. ‘렘브란트나 베르베르가 이 집을 화폭에 담았을지도 모르니까.’ 역사에 대한 존경심은 네덜란드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시간이 지나면 무엇으로 네덜란드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보여줄까? 박물관의 그림으로? 아니면 현실로(143쪽)?” 하는 대목을 오래도록 헤아립니다. 터키사람 아리프 아쉬츠 님이 만난 네덜란드 벗은 네덜란드 시골자락에 17세기 모습 고스란히 깃든 집이 많다고 말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퍽 예전부터 옛집을 허물거나 부수지 못하도록 했답니다. 언제나 살아숨쉬는 역사이자 문화이니까요. 역사는 박물관이 아닌 마을에 있으니까요. 문화는 교과서나 도서관이 아닌 ‘여느 사람 여느 살림집’에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한국 문화’를 사진으로 담는 이들은 여느 사람 살림집 모습을 사진으로 옳게 담아내지 못합니다. 누구보다 ‘내 집’부터 사진으로 담아 내 집이 곧 한국사회요 한국문화이며 한국예술이라고 즐거이 나누지 못합니다.


  “인사동 위쪽으로 북촌이라는 마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다. 골목은 잘 단장이 되어 있었지만 아줌마도 개도 시끌벅적한 어린아이들도 없었다. 오래된 집들 같았지만 사실은 옛 스타일로 새로 지은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집들을 보며 밀랍인형을 떠올렸다. 진짜랑 똑같지만 생명력은 없는 … 소나무와 산을 이토록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이 진정 산을 허물고 인공적인 물길을 만든단 말인가? 한국사람들이 진정 눈과 코에 성형수술을 해대는 사람들처럼 자연 전체에 메스를 대고 싶어한단 말인가? 도시의 기억상실증으로도 모자라서 자연의 기억상실증을 만들고자 한단 말인가? 네덜란드만큼이나 부유한 한국사람들에게 역사는 네덜란드사람들보다 덜 중요하단 말인가(144∼145쪽)?” 하는 대목을 밑줄 그으며 읽습니다. 여러 차례 되읽습니다. 참말, 한국사람은 멧줄기를 타려고 멀리 자동차를 타고 나갑니다. 참말, 한국사람은 ‘좋은 자연 구경’을 하려고 자가용을 타든 기차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멀리멀리 나다닙니다.


  내 보금자리 깃든 곳에 좋은 자연을 불러들이지 않습니다. 내 보금자리를 좋은 자연이 싱그러운 데에 마련하지 않습니다.

 

 


  나도 마을도 숲도 한몸입니다. 내가 사랑스러울 때에 나도 마을도 숲도 사랑스럽습니다. 내가 정갈할 때에 나도 마을도 숲도 정갈합니다. 내가 어여쁠 때에 나도 마을도 숲도 어여뻐요. 곧, 내가 사랑스레 살아가며 내 사진을 나 스스로 사랑스레 일굽니다. 내가 빛나는 눈길일 때에 내 사진은 늘 빛나는 이야기잔치입니다.


  봄날 찔레꽃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내 눈과 머리와 마음과 몸이 온통 찔레꽃이 됩니다. 나는 내 필름이나 디지털파일에 찔레꽃 ‘지식이나 정보’를 아로새기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찔레꽃과 한덩어리가 되어 즐거운 꿈과 사랑을 찬찬히 적바림합니다. 봄날 들딸기를 사진으로 옮기면서 내 입과 귀와 가슴과 꿈이 온통 들딸기가 됩니다. 나는 내 필름이나 디지털파일에 들딸기 ‘지식이나 정보’를 집어넣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들딸기와 하나가 되어 해맑은 웃음과 눈물을 천천히 빚습니다.


  “정치가들은 왜 여전히 탐욕으로 불타 있는 것일까 … 몇 개월 간의 서울 체류 기간 동안 나는 외국인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서울에는 관광객이 드물다. 왜 한국에 와야 할까? 김치를 먹고 아파트를 구경하기 위해서(147쪽)?” 하는 대목을 읽다가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땅 곳곳을 누비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구나 싶어요. 한국땅 어디를 가도 온통 아파트투성이잖아요.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땅 아파트 구경할 일이 없으니, 애써 한국땅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지 않아요.

 


  서울에서 대구나 대전이나 광주에 간들 무엇이 다를까요. 무엇을 볼 만할까요. 부산에서 인천이나 수원이나 일산에 간들 무엇이 다른가요. 무엇을 볼 만한가요.


  “한국의 십자가들은 달랐다. 그 십자가들은 큰 건물의 꼭대기를 장식하지 않았다. 대신 깔끔하지 않고 지저분한, 그리고 값싸고 허름한 건물 지붕 위에 있었다(168쪽).” 하는 대목을 읽습니다. 너털웃음이 납니다. 아주 마땅하지만, 믿음은 예배당 십자가에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니, 예배당 십자가에도 있고 내 가슴에도 있겠지요. 하느님은 예배당 뾰족탑에 찔려 피를 흘리기도 할 테고, 내 부질없는 헛생각에 엉덩이 걷어차이며 아파하기도 할 터입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한국땅에서 사진을 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터키사람 아리프 아쉬츠 님이 한국에서 살며 사진을 찍는 나날은 온통 물음표입니다. 그예 물음표투성이 사진을 찍습니다.


  “터키 남부에도 소나무가 많아 어딜 가도 송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소나무 냄새를 맡기가 어렵다. 수백만 불이 넘는 건물들의 외관이 떨어진 솔잎으로 구겨지지 않도록 청소부들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 서울에서는 소나무 외에도 단풍나무, 아카시아, 감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 잎들도 냄새를 풍길 시간이 없다. 서울시는 도시 미관을 정리하는 데 열심이다(176쪽).” 하는 대목을 읽으며 이 나라 서울이 그지없이 슬프지만, 정작 서울사람 스스로 슬퍼할 일이 있나 알쏭달쏭합니다. 소나무는 있으나 솔내음을 못 맡는 서울에서 살아가는 일이란 얼마나 즐거울까 잘 모르겠습니다. 감나무가 있어도 감내음을 못 나누는 서울에서 살아가는 일이란 얼마나 기쁠까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아리프 아쉬츠 님 이야기는 막바지에 이릅니다. “닫혀 있는 한국의 집에서 살았던 몇 개월 동안 내게는 폐쇄공포증의 징후가 강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184쪽).” 하는 느낌말처럼, 한국땅 여느 살림집은 울타리가 매우 높습니다. 창문은 참으로 작습니다. 대문은 꽁꽁 잠깁니다. 햇볕이 잘 드는 집이 적습니다. 햇볕이 잘 들 만한 높은 아파트라 하더라도 앞뒤옆으로 아파트가 줄줄이 늘어섭니다. 높은 아파트에서도 높은 아파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낮은 다세대주택에서는 이웃 다세대주택 벽돌담이나 시멘트담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사람이라고 잘 느끼며 한국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을까 궁금합니다.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이라는 나라는 사진으로 담을 만큼 재미나거나 놀랍거나 멋스럽거나 아름답지 않다’고 느껴, 자꾸자꾸 나라밖 마실을 다니며 이웃 가난한 나라나 이웃 가멸찬 나라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에서 어떤 사진을 할 만할까요.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한국사진을 할 때에도 터키사람 아리프 아쉬츠 님처럼 온통 물음표투성이가 될까요. 느낌표투성이가 될 사진을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일굴 수 있을까요. 말줄임표나 마침표가 될 만한 한국사진을, 따옴표나 묶음표가 될 만한 한국사진을, 누군가 곱게 즐길까 모르겠습니다. (4345.5.26.흙.ㅎㄲㅅㄱ)

 


― 이스탄불의 장미도둑 (아리프 아쉬츠 글·사진,이혜승 옮김,이마고 펴냄,2009.3.16./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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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반 소년들 카르페디엠 29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오근영 옮김 / 양철북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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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잎과 환한 꽃 누리는 아이들
 [푸른책과 함께 살기 94] 우오즈미 나오코, 《원예반 소년들》(양철북,2012)

 


- 책이름 : 원예반 소년들
- 글 : 우오즈미 나오코
- 옮긴이 : 오근영
- 펴낸곳 : 양철북 (2012.3.26.)
- 책값 : 9000원

 


  이웃 할머니가 마늘밭 가장자리에서 풀을 뽑습니다. 일손을 거들까 하지만 당신이 혼자 하시겠다며 손사래를 칩니다. ‘지심매기’만 살짝 거듭니다. 할머니가 지심을 맬 때에 ‘부추’가 보이기에 “‘정구지’는 어떡할까요?” 하고 여쭈려다가, 전라남도에서는 달리 가리킬까 싶어 “‘여기’는 어떡할까요?“ 하고 여쭙니다. “응, 그건 놔 둬. ‘솔’이야 솔. 오늘 ‘아’들이 오는데 가져갈랑가 모르겠네.” 하고 말씀합니다.


  첫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내 우체국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들딸기를 땁니다. 아이가 집에서 어머니하고 함께 먹으라고 아이 두 손에 가득 담길 만큼 땁니다. 마을 어귀 마늘밭에서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한창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자전거를 멈춥니다. 아이한테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도 조금 나누어 주렴 하고 말합니다. 할머니는 “네가 이걸 나한테 주냐. ‘똘’이네, 똘. 아, 똘 참 맛나다.” 하고 말씀합니다.


.. 문득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전차를 타고 가면 40분 정도 걸린다. 자전거로 가면 두 시간은 걸리겠지만 따듯한 햇살이 등을 떠밀었다 … 흙을 정리할 때 옆을 지나가다가 “뭐 하는 거야?” 하며 아는 척을 했던 같은 반 친구들한테서도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오와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 화단 하나로 입구 느낌이 훨씬 좋아졌는데도 몰라보는 건가. 삭막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는 나도 그 삭막한 녀석들 중 하나였으니까 ..  (5, 91쪽)


  지난주에 둘째 아이 돌떡을 이웃집 모두 돌며 돌리다가, 돌울타리 타고 곱게 자라는 ‘마삭줄’꽃을 잔뜩 보았습니다. 어느 집은 대문 위쪽으로 마삭줄 울타리를 만들기까지 합니다.


  식구들 다 함께 마삭줄꽃을 바라볼 때에는 마삭줄이라는 이름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물어 물어 알아차립니다. 꽃이름은 모르지만 참 어여쁘구나 하고 생각하며 “이 바람개비처럼 생긴 하얀 꽃은 무어라 할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이러다 문득 한 가지 떠오르는데, 꽃이든 풀이든 나무이든 꽃 모양만 놓고 무슨무슨 꽃이라 이름을 붙이는 일이 옳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대로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아이한테 ‘마삭줄’이라는 이름을 가르치면서, ‘흰바람개비꽃’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나한테도 아이한테도, 마삭줄꽃은 그예 하얗게 생긴 작은 바람개비와 닮은 꽃이에요.


.. 옆에 있는 화분을 보니 잎 모양으로 봐서는 같은 종류인 것 같은데 줄기가 쓰러지고 잎은 시들어 축 늘어져 있다. 꼿꼿한 풀은 내가 앉은 바로 옆에 있는 화분뿐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여기만 비가 온 걸까. 그때, 문득 어제 종이컵에 남은 물을 끼얹고 갔던 일이 떠올랐다 … ‘생각해 보면 풀이 축 늘어져 있다가 싱싱하게 살아나는 모습이, 내가 이 학교에 들어온 지 열흘 만에 본 가장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거든.’ … 시미즈라는 머리 긴 아이가 말했다. “흙과 씨름하는 걸 보면서 참 멋지다는 말도 했어.” ..  (17, 27, 124쪽)


  네 식구 밭둑이나 논둑을 다니다가 ‘들딸’을 따서 먹다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멧자락이나 멧등성이 아닌 들판에서 따서 먹기에 ‘들딸’이라고 여기지만, 먼먼 옛날에는 논둑이나 밭둑이 논둑이나 밭둑 아닌 멧자락이었을 수 있습니다. 멧등성이부터 천천히 퍼져 밭둑까지 ‘딸’이 자란다 할 만합니다. 그래서 이 딸, 또는 ‘똘’은 ‘들딸(들똘)’이 아니라 ‘멧딸(멧똘)’이라 해야 바른 이름일 수 있어요.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으레 ‘멧딸’만 말하지 ‘들딸’은 말하지 않습니다. 멧딸 가운데에는 ‘나무딸’이 있습니다. 딸도 숱한 갈래여서, 모든 딸을 멧딸이나 들딸이나 나무딸이라고만 가리킬 수 없습니다. 우리 식구들 지난해 봄 충청북도 음성 멧자락에서 먹던 멧딸이랑 올해 봄 전라남도 고흥 시골자락에서 먹는 들딸이랑 꽃도 열매가 제법 달라요. 꽃빛도 꽃크기도 다릅니다. 꽃잎도 풀잎도 다릅니다. 이처럼 다른 딸을 그냥 멧딸이라느니 들딸이라고만 해도 될까 궁금합니다. 딱히 어떤 이름을 붙여야 좋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자그마한 빨간 열매를 톡 따서 입에 넣을 때 온몸으로 퍼지는 기운을 헤아립니다. 딸은 내 몸속에서 새로운 기운이 되어 내 숨결을 새삼스레 북돋운다고 생각합니다. 딸이 내가 되고, 내가 딸이 됩니다. 딸 목숨은 내 목숨이고, 내 목숨은 곧 딸 목숨입니다.


.. 먼저 오와다가 가져온 스토크 봉투를 열어 보니 아주 작은 씨앗이 나왔다. 씨앗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모래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갖고 온 페튜니아 봉투를 열어 보고는 더욱 놀랐다. 이건 모래도 아니다. 거의 가루에 가깝다 … “여기 있는 식물의 이름이 뭔지, 어떤 방식으로 키워야 할지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정말 꽃으로 가득한 화원으로 만들고 싶다면 조사해 보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 “BB, 너희 집 꽃가게 하는 거 맞지?” 오와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어제 원예 책을 한 권 읽었을 뿐입니다.” 쇼지는 정색을 하고 대답하고 나서 오와다를 보았다. “오와다 군은 읽지 않은 겁니까?” ..  (30∼31, 50∼51쪽)


  이제 우리 시골마을이든 면소재지 언저리이든 온통 찔레나무 하얀 꽃잎 잔치입니다. 아이들과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거닐며 마실을 하든, 자전거를 몰며 천천히 돌아보는 마실을 하든, 어디에서나 하얀 꽃잔치입니다.


  때때로 찔레꽃 하얀 송이 따서 입에 넣으며 잘근잘근 씹습니다. 돌을 갓 지난 아이 입에도 찔레꽃잎 밀어넣습니다. 아이들 모두 입을 낼름 벌립니다. 우리 집 처마에 깃든 제비들이 깐 새끼와 같습니다. 입 참 잘 벌립니다.


  찔레꽃잎을 톡 따서 한 닢씩 넣을 때에 살펴보니, 꽃잎 모양새는 이른바 ‘하트’입니다. 찔레꽃잎은 나무에 달린 모습도 예쁘고 한 닢 똑 딸 때에도 예쁩니다. 한 닢에서도 냄새 그윽하고, 무리진 꽃잎에서도 냄새 고즈넉합니다. 찔레꽃 한창인 곁을 지나가면 온몸에 찔레내음이 감돕니다. 찔레내음이 내 내음이 되고, 내 내음은 찔레내음과 하나가 됩니다. 바야흐로 여름이 코앞인 느즈막한 끝봄자락, 조용조용 찔레잔치를 누립니다.


.. “아니, 오와다 군은 아니지만 그런 불량한 차림새는 다른 학생들에게 불쾌감과 불안감을 느끼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버젓이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더러 상자를 쓰고 학교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혼자 공부해서 고등학교에 들어왔습니다.” … “이름이랑 얼굴 때문에 놀림을 당했다고요! 이런 기분을 오와다 군은 모를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를 놀리는 녀석이 없잖아!” ..  (71, 115쪽)


  우오즈미 나오코 님이 빚은 푸른문학 《원예반 소년들》(양철북,2012)을 읽습니다.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참 재미없겠다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꼭 도시라서 재미없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만, 온통 ‘더 잘난 학교’에 ‘더 높은 시험성적’ 거두는 데에만 온마음 기울이도록 하는 제도권교육일 때에는, 학교 다니는 재미나 기쁨이나 즐거움이나 보람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동무를 밟고 올라서는 일이란 무슨 재미일까요. 동무랑 점수겨루기를 하는 일이란 무슨 기쁨일까요. 더 높은 학교, 또는 더 잘난 대학교에 붙는 일이란 무슨 보람일까요. 모두 똑같은 옷차림에 머리모양에 생각에 가방에 …… 틀에 맞추는 일이란 무슨 즐거움일까요.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면서, 이 많은 아이들은 무엇을 바라볼까요.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면서, 이 많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교사는 무엇을 바라보나요.


  아이들은 무슨 삶을 누리는 어른으로 자라야 아름다울까요. 어른들은 무슨 삶을 누리는 푸른 나날을 거쳤을까요.


  사람은 왜 태어나서 살아가는가 생각합니다. 사람은 왜 삶을 누리며 사랑을 꽃피우는가 생각합니다. 사람은 언제 사람다운가 생각합니다. 사람은 어떤 목숨이요, 사람은 어떤 무늬이며, 사람은 어떤 넋인가 생각합니다.


.. 아는 꽃 이름이 늘자 집 근처나 학교를 오가는 길에 갑자기 꽃이 많아졌다. 물론 눈에 띄니까 그런 느낌이 나는 것일 뿐이지, 전부터 늘 있던 꽃이다 … “좋아, 자연을 보러 가자. 누가 뭐래도 우리는 원예반이잖아.” … 초록색이라고 다 같은 초록색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초록색이 산속에 있다. 그 생각을 하면서 숲을 바라보니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  (92, 103, 109쪽)


  아이들이 누구보다 스스로 아끼면서 하루하루 좋아할 수 있으면 참 예쁘리라 봅니다. 아이들이 언제나 스스로 보살피고 이웃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무척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착한 아이들이 예쁜 아이들입니다. 참다운 아이들이 아름다운 아이들입니다.


  착한 아이들로 살아가며 착한 어른이 됩니다. 참다운 아이들 삶을 빛내며 참다운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다고 할 때에 갑자기 거듭나지 않습니다. 어른이라는 나이에 들어서며 하루아침에 맑은 빛을 뽐내지 않습니다. 갓난쟁이일 적부터 차근차근 사랑을 누리고 빛을 받으면서 시나브로 자라나는 목숨입니다. 아이들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마을에서나 온갖 사랑을 맞아들이면서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을 때에 씩씩하게 큽니다.


  나는 도시가 나쁘다고 따로 생각하지 않으나,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높다란 건물과 새까만 찻길과 끝없는 자동차와 형광등 켠 건물과 메마른 옷차림만 늘 바라보아야 한다면,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너무 슬프며 어두운 넋이 되겠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푸른 나무 푸른 잎과 마알가니 빛나는 환한 꽃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람다운 사랑을 빛낼 수 있겠느냐 싶습니다. (4345.5.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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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아닌 것이 없다 - 사물과 나눈 이야기
이현주 지음 / 샨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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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가
 [책읽기 삶읽기 104] 이현주, 《사랑 아닌 것이 없다》(샨티,2012)

 


  아침에 일어나서 들새 소리를 들으며 뒷간으로 가서 똥을 눕니다. 똥을 한창 누고 나올 무렵 멧새 소리를 듣습니다. 섬돌에 신을 벗고 들어갈 무렵, 처마 밑 옛 둥지 손질해서 암수 짝을 이루어 새로 들어온 제비 두 마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집은 시골마을에 작은 집 하나만 마련했습니다. 우리한테는 꼭 이 집 한 채 얻을 돈만 있었거든요. 시골에서 살아가지만, 막상 밭이고 논이고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시골마을에서 예쁘고 즐거이 살아갑니다. 이웃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보는 밭을 바라보고 논을 들여다봅니다. 때때로 두레를 나가고 곧잘 일손을 거듭니다. 때때로 푸성귀를 얻고 곧잘 쌀을 얻습니다.


.. 마음을 모으지 않고서 어떻게 아름다운 가을의 황금 들녘을 볼 수 있겠는가? … 자네가 누구를 기·다·린·다·면 자네는 영원토록 그를 만나지 못할 걸세 … 사람이 사람으로 살지 않는 수도 있나 ..  (21, 75, 99쪽)


  이제 마을 논마다 물을 가득 댑니다. 물이 가득 찬 논은 무논이라 합니다. 무논에는 개구리가 오붓하게 살아갑니다.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고 개구리 노랫소리가 온 고을을 채웁니다. 낮보다는 저녁이나 밤에 더 개구지고 힘차게 울어대는데, 아무래도 낮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들어 저희를 잡아먹으려 하기 때문일 테지요. 깊은 밤이나 새벽에 첫째 아이 오줌 누이러 바깥으로 나오면, 언제나 곽곽 크게 울어대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즐깁니다. 첫째 아이는 오줌그릇에 앉아 쉬를 누며 꾸벅꾸벅 졸고, 아버지는 곁에서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붙들면서 개구리 이야기를 듣습니다.


  논 옆을 지나갈 때에 가끔 개구리가 뽀롱 튀어나옵니다. 멋모르는 개구리는 찻길로 올라섭니다. 찻길로 올라선 개구리라 하더라도 우리 마을 언저리로 지나가는 차는 매우 드뭅니다. 한참을 내다 보더라도 차 한 대 지나갈 일이 없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우리 마을 무논 개구리는 나그네 자동차한테 치여 죽거나 밟혀 떡이 될 일이 없다 할 만합니다. 아이들과 마실을 다니며 길바닥을 내려다보아도 납짝꿍이 된 떡개구리는 아직 못 보았어요.


.. 기차에서 내리기 직전, 서둘러 안경알을 닦는다. 안경이 스스로 안경을 닦지 못한다는 사실이 따스한 위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면서 … 타고난 목소리보다 크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나무 이름이지 나무가 아니다. 아니, 그것도 아니다. 나무 이름이 아니라 나무에 붙여진 이름이다 ..  (46, 58, 177쪽)


  엊그제 이웃집 마늘밭 일손을 조금 거들었습니다. 그리 안 넓은 밭뙈기인데,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마늘을 캐고 엮고 나르고 하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당신 딸아들을 모두 도시로 보내고 늙은 몸 움직여 마늘을 심고 돌보다가 캡니다. 도시 사람은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허리 구부러지며 일군 마늘을 돈 몇 푼 치러서 사다 먹습니다.


  참 고된 일이기에 당신 딸아들한테 마늘밭 일이건 무논 일이건 물려주고 싶지 않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돈을 더 벌려고 짓는 흙일이 아니라, 시골마을에서 조용하면서 오붓하게 살아가는 꿈과 사랑을 누리려고 짓는 흙일이라 한다면, 굳이 밭뙈기에 마늘만 가득 심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여러 푸성귀를 골고루 심을 만하고, 여러 열매나무를 알뜰히 심을 만해요.


  식구들 먹을 푸성귀라면 아주 마땅히 풀약이고 비료이고 안 쓰겠지요. 살붙이들 먹을 열매라면 아주 마땅히 거름만 낼 테며, 흙이 보드랍고 기름지도록 땀을 흘리겠지요. 이렇게 일구어 거두는 열매와 곡식과 푸성귀라 한다면, 저잣거리에 내다 팔더라도 제값을 옳게 받을 수 있으며, 흙일꾼이건 도시사람이건 모두 좋으며 흐뭇하리라 느껴요.


.. 사랑 아닌 것도 사랑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명심해 두어라. 이 세상에는 사랑의 표현 아닌 것이 존재할 수 없음을 … 세상에 순결하지 않은 물건이 있는가 … 이 땅에 생명이 있든 없든,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랑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길밖에는 걸어야 할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  (84, 96, 164∼165쪽)


  우리한테 아직 땅이 없지만, 오래지 않아 넉넉하고 너르며 푸른 땅뙈기가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는 우리 땀과 똥오줌으로 땅뙈기를 한결 푸르며 어여삐 아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마을마다 흙을 살찌우고 땅을 북돋우며 이웃을 사랑하는 꿈결이 널리 퍼지리라 생각합니다. 이제껏 시골에서는 어린이와 젊은이를 온통 도시로 보내기만 했지만, 앞으로는 도시 어린이와 젊은이가 모두 시골로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서로서로 겨루거나 서로서로 밟고 올라서서는 살아갈 수 없거든요. 사람은 서로서로 믿고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거든요. 사람은 서로서로 기대고 돌보며 얼싸안을 때에 살아갈 수 있어요. 사람은 서로서로 웃고 얘기하며 밥을 나눌 때에 살아갈 수 있어요.


  돈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밥을 먹는 사람이에요. 기름이나 자가용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풀을 먹고 열매를 먹는 사람이에요. 아파트를 먹지 못하고, 아파트는 오래지 않아 허물어야 해요. 사람은 흙을 먹고 흙을 누며 흙을 물려받아요.


.. 자네가 말도 안 되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데, 내가 무슨 말로 장단을 맞춘단 말인가 … 누가 나를 버렸는지 그건 모를 일이나 나는 버림받지 않았네. 아무도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버릴 수 없으니까 … 나는 나무요 흙이요 물이요 공기요 태양이요, 나는 모든 것이다 ..  (64, 92, 111쪽)


  이현주 목사님 생각주머니를 담은 《사랑 아닌 것이 없다》(샨티,2012)를 읽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은 온갖 ‘것’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먼저 말문을 열기도 하고, 나중에 말문을 열기도 합니다. 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개구리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마, 파리라든지 제비라든지 모기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요.

  책을 다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누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까.


  뒤꼍 뽕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앞마당 노랑붓꽃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처마 밑 제비들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마을 들새랑 멧새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논둑 자운영이랑 광대나물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오월이 무르익으며 한껏 해맑은 찔레꽃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벌써 꽃씨 날리는 민들레 줄기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나는 내가 사랑할 만한 누군가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며 서로 어깨동무할 만한 벗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내 손길이 그득 밴 부엌칼이랑 도마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빨래비누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내 책들과 연필과 베개와 자판과 옆지기 뜨개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느 무엇보다 우리 사랑스러운 옆지기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며, 우리 어여쁜 두 아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하고, 우리 좋은 동무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또, 하느님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지구별이랑, 숲이랑, 바다랑, 해랑, 달이랑, 별이랑, 구름이랑, 빗물이랑, 무지개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4345.5.24.나무.ㅎㄲㅅㄱ)


― 사랑 아닌 것이 없다 (이현주 글,샨티 펴냄,2012.3.9./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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