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아름다운 바다 - 바다의 비밀을 밝힌 여성 해양학자 실비아 얼 이야기
클레어 A. 니볼라 지음, 이선오 옮김 / 봄나무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곁 좋은 벗님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4] 클레어 A.니볼라, 《나의 아름다운 바다》(봄나무,2012)
전남 고흥 시골집 마당에 서면 먼 멧등성이 너머로 새벽해 뜨는 모습과 저녁해 지는 모습을 붉고 노랗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좋은 햇살 즐겁게 누립니다. 새벽이 밝으며 차츰 하얗게 트는 동을 느낄 때면 으레 예전에 신문배달을 하던 나날을 돌아봅니다. 아주 깜깜한 밤부터 신문을 돌려 새벽녘에 하루일을 마치는데, 짐자전거가 가벼워질수록 하늘빛이 차츰 밝아집니다. 짐자전거가 텅 비어 홀가분하게 신문사지국으로 돌아갈 무렵 아침 새 햇살이 먼 데에서 드리웁니다. 일을 다 마친 어느 날은 마지막 구역인 15층 아파트 바깥마루에 서서 해돋이를 바라보곤 합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살던 어릴 적에는 5층 아파트 4층집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창문으로 스미는 빛살을 느끼다가는 툇마루로 나와 바닷가 뱃고동 소리 나는 데를 바라봅니다. 새벽에 집을 나서며 학교로 가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습니다. 새벽하늘과 아침하늘에는 낮하늘과 저녁하늘에 없는 빛무늬가 있습니다. 저녁하늘에는 낮과 아침에 없는 빛살이 있습니다. 낮하늘에는 아침과 저녁에 없는 빛결이 있어요.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른들한테서 ‘예전에는 하늘만 올려다보아도 날씨를 다 알았다’ 하는 이야기를 으레 들었습니다. ‘제비 날갯짓’과 ‘개미 움직임’과 ‘풀잎 기운’ 들을 살피며 날씨읽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구름빛을 살피면서, 하늘가 빛깔을 헤아리면서, 바람내음을 맡으면서, 날씨읽기를 너끈히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도 하늘만 보며 날씨를 읽고 싶었습니다. 나도 구름을 좇고 하늘가를 살피며 날씨를 읽고 싶었습니다. 잠자리 날갯짓에도 날씨가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풀벌레 노랫소리나 나뭇가지 떨림새에도 날씨가 있나 하며 고개를 갸웃갸웃했어요.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오는 날씨 소식이 아닌, 내 살갗이 느끼는 날씨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 실비아는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 실비아가 세 살 때, 부모님이 미국 뉴저지 주 폴스보로에 있는 오래된 농장을 샀거든. 실비아는 거기서 두 남동생과 함께 자랐어. 어릴 때부터 실비아는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대. 혼자 다녀도 별로 무서워하는 게 없었지 .. (2쪽)
꼬맹이로 살던 무렵, 나는 내가 신문배달 일을 하며 몸으로 날씨를 느끼지 못하면 신문일을 할 수 없는 줄 생각했을까요. 어쩌면, 나는 신문배달을 할 사람으로 크려고 어린 나날 날씨읽기에 그렇게 마음을 기울였을까요. 이리하여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에도 옆지기와 아이들이랑 함께 시골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살아갈 오늘을 누릴 수 있을까요. 아주 오랜 어느 옛날, 내 오늘 삶자락을 그림으로 환하게 그렸을까요.
신문배달을 하던 내 스무 살 몸뚱이는 살갗으로 바람기운을 느낍니다. 새벽에 일어나 맨 먼저 후다닥 바깥으로 달려나와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팔을 쭉 뻗습니다. 눈으로 밤구름을 좇고, 두 팔로 밤바람 기운을 헤아립니다. 바람에 물기가 어느 만큼 감도는가를 살핍니다. 오늘 비가 올는지 안 올는지, 비가 온다면 언제부터 뿌릴는지 곱씹습니다. 신문을 비닐에 넣어야 할는지, 오늘은 비오는 흐름에 맞추어 골목집 대문이나 손잡이에 신문을 꽂아야 할는지, 그냥 문 앞 땅바닥이나 안쪽 마당에 신문을 놓아야 할는지 가늠합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신문을 버려야 할 뿐더러, 신문을 다시 돌려야 합니다. 깊은 밤 두 시 무렵 바람을 읽지 못하면 내 하루일은 아주 어그러집니다.
집식구 옷가지를 날마다 여러 차례 빨래해서 틈틈이 말리는 오늘날, 나는 예전처럼 날씨를 몸으로 읽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살갗으로 바람내음을 맡습니다. 이대로 마당에 널어도 될는지, 언제쯤 마당에서 걷어야 할는지 찬찬히 가늠합니다. 햇살을 어느 만큼 먹었을 무렵 빨래를 걷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알맞게 햇살을 먹어 알맞게 마른 옷가지를 즐겁게 개어 제자리에 놓으며 이야, 이렇게 또 한 가지를 마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 어린 실비아는 연못가나 숲속 쓰러진 나무 옆에 오랫동안 앉아 있기도 했어.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거든 …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열고 있으면 저절로 친해지는 친구처럼, 실비아는 물고기들과 가까워졌어.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이, 똑같이 생긴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지 .. (5, 18쪽)
꽃을 바라봅니다. 너 참 예쁘구나 하고 마음으로 말을 건네고, 어느 때에는, 아아 참 예쁘네,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나무를 바라봅니다. 나보다 나이를 한참 많이 먹은 나무 앞에 서면서도, 이야 참 아름답고 푸르네, 하고 말합니다. 굵직한 나무줄기에 손을 대고 볼을 대며 귀를 댑니다. 얼마나 오랜 나날 얼마나 따사로이 둘레를 바라보며 살아왔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나무 한 그루가 지켜본 삶과 꿈과 사랑은 어떠했을까 하고 그립니다.
아이들 볼을 부비며 생각합니다. 내 몸을 구석구석 주무르며 생각합니다. 나는 얼마나 좋은 하루를 누리는가 돌이킵니다. 나한테 얼마나 어여쁜 이야기가 찾아들거나 스며드는가 하고 곱씹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일 때에 좋은 생각이 피어나겠지요. 사랑하는 넋일 때에 사랑스러운 꿈이 자라겠지요. 기뻐하는 얼일 때에 기뻐하는 이야기가 무르익을 테지요. 맑은 눈짓과 몸짓일 때에 맑은 말과 글이 찬찬히 태어날 테지요.
내 눈으로 좋은 빛과 무늬를 느낍니다. 내 귀로 좋은 소리와 노래를 느낍니다. 내 코로 좋은 내음과 물기를 느낍니다. 내 살갗으로 좋은 손길과 결을 느낍니다. 달력에는 무슨무슨 기림날만 굵게 적히지만, 내 삶자락에는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예쁘장하게 아로새겨집니다.
.. 그해 생일에 실비아는 물안경을 선물로 받았어. 실비아는 그걸 쓰고 얕은 바닷물을 헤엄쳐 다니며 ‘조사’하느라 굉장히 바빴어. 물속에는 작은 게들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물고기, 농장의 말처럼 생긴 해마도 있었어. 새로 만난 물속 친구들 덕분에 실비아는 농장을 떠난 슬픔을 달랠 수 있었지. 한 방울의 물에도 온갖 생명이 가득한 바다를 보면서 어떻게 외로울 수 있었겠니 .. (8쪽)
클레어 A.니볼라 님이 빚은 그림책 《나의 아름다운 바다》(봄나무,2012)를 읽습니다. 우리 곁 좋은 벗님들을 맑고 밝으며 즐겁게 느낀 ‘실비아 얼’ 님 삶과 꿈을 소담스레 담은 그림책이로구나 싶습니다. 실비아 얼 님은 숲속에서, 냇가에서, 들판에서, 바닷가에서, 이윽고 바다 밑 깊디깊은 곳에서 당신 곁 좋은 벗님들을 느낍니다.
실비아 얼 님으로서는 ‘조사’나 ‘연구’나 ‘학문’이나 ‘과학’이나 ‘성공’이나 ‘논문’이나 ‘권위’나 ‘업적’이나 ‘명예’ 같은 허울은 하나도 안 대수롭습니다. 당신 둘레에서 언제나 마주하며 즐거이 사귀는 온갖 좋은 벗님들이 가장 대수롭습니다. 해맑은 벌레들이 반갑고 티없는 목숨들이 고맙습니다. 싱그러운 물풀이 즐겁고 푸른 물고기가 귀엽습니다.
함께 살아가고픈 좋은 벗님을 만나는 ‘바다 과학’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좋은 벗님을 느끼는 ‘바다 밑 연구와 조사’입니다.
.. 실비아가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가서 바라보면, 그 바다 생물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실비아를 마주보았다지 … 실비아는 고래의 마음을 알고는 이렇게 말했어. “고래는 자기가 얼마나 크고 내가 얼마나 작은지 잘 알고 있었어요. 절대로 나를 해칠 마음이 없었죠.” … 놀랍게도, 그곳 바다에는 한낮의 태양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단다.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었어. 투명한 바닷물 사이로 옅은 푸른빛이 어른거리고 있었지. 땅 위에 붉은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이면, 바닷속에도 짙은 남색 노을빛이 감돌았어. 그렇게 깊은 곳에도 말이야 .. (12, 21쪽)
쌀알 하나에도 우주가 담기고, 바닷물 한 방울에도 우주가 담겨요. 실비아 얼 님은 바닷물에서, 바닷물고기한테서, 바다에서, 들에서, 또 스스로 우주를 느껴요. 우주를 느끼며 지구별을 느낍니다. 지구별을 느끼면서 나를 느낍니다. 나를 느끼며 목숨을 헤아립니다. 목숨을 헤아리며 사랑을 꿈꾸어요. 사랑을 꿈꾸기에 삶을 짓는 이야기를 손수 맑게 그립니다.
.. 아주 깊은 바닷속 단 한 방울의 물에도 생명은 숨 쉬고 있었단다 .. (22쪽)
실비아 얼 님 삶을 그림책으로 담은 클레어 A.니볼라 님은 어떤 넋이었을까요. 이러한 삶자락을 하나하나 좇으며 그림으로 옮기고 글로 적바림할 때에 어떤 얼이었을까요. 위인전을 빚으려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겠지요. 아이들한테 영웅 한 사람 알려주려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테지요.
삶을 아끼고 사랑을 빛내며 꿈을 나누는 좋은 벗님을 생각하면서 그림책 하나 내놓을 수 있겠지요.
누군가 훌륭하다고 말할 만하다면, 누군가 사랑스레 살아가기 때문이로구나 싶어요. 누군가 아름답다고 말할 만하다면, 누군가 즐겁게 꿈을 꾸기 때문이로구나 싶어요. 누군가 멋스럽다고 말할 만하다면, 누군가 활짝 웃으며 이녁 곁 좋은 벗님이랑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기 때문이로구나 싶어요. (4345.6.16.흙.ㅎㄲㅅㄱ)
― 나의 아름다운 바다 (클레어 A.니볼라 글·그림,이선오 옮김,봄나무 펴냄,2012.4.10./1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