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다 그만둔 날 - 김사이 시집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78
김사이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쓴다
[시를 노래하는 시 20] 김사이, 《반성하다 그만둔 날》


 

- 책이름 : 반성하다 그만둔 날
- 글 : 김사이
- 펴낸곳 : 실천문학사 (2008.9.12.)
- 책값 : 7000원

 


  빨래기계를 올해에 처음으로 들이고는 이레쯤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다가, 한 달 즈음 바지런히 써 보았습니다. 아이들 옷가지 빨래는 날마다 수북하게 쌓이고, 날마다 신나게 빨래해야 하는 만큼, 빨래기계가 있으면 일손을 덜기에 좋습니다. 이불도 척척 빨아내고, 두꺼운 바지나 겉옷도 수월하게 빨아냅니다. 그런데 아이들 옷가지는 하루에도 때 되면 오줌바지에 똥기저귀에 땀에 절은 옷에 흙이 잔뜩 묻은 옷에 끝없이 나옵니다. 빨래기계는 이런저런 옷가지를 한데 그러모아 빨아 준다 할 텐데, 나는 밑빨래를 안 하고 빨래기계에 넣지 못합니다. 오줌 밴 옷가지랑 흙이 잔뜩 묻은 옷을 같이 빨지 못합니다. 물이 빠지는 옷이랑 물이 안 빠지는 옷을 나란히 빨 수 없습니다.


  빨래기계를 한 달 즈음 홀가분하게 쓰면서 저녁이 되면 다시 수북히 새로 쌓이는 빨래를 바라보다가 무엇인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비내리며 축축한 날에는 아침에 한 차례 빨래기계를 돌려서는 옷을 말리기 어렵습니다. 더운 여름을 맞이하니, 저녁에 몇 가지 빨래를 해 놓아 집안이 안 메마르도록 하고 싶습니다.


  빨래기계가 차지한 씻는방 한쪽에 어느새 쪼그리고 앉습니다. 나는 다시 손빨래를 합니다. 빨래기계를 날마다 쓸 때에 ‘가장 낮은’ 물높이로 빨래를 하는데, 이렇게 하더라도 36분이 걸립니다. 내가 손으로 빨래할 때에 몇 분이 걸리나 시계로 잽니다. 12분. 조금 많으면 15분이나 20분. 빨래감이 많은 날은 빨래기계도 42분이나 45분. 그러니까, 빨래기계를 쓰면 시간이 곱배기보다 더 드는 셈입니다. 물도 훨씬 많이 쓸 테고 전기도 꽤 많이 쓸 테지요.


.. 햇볕이 타는 한낮 / 가리봉오거리 / 슬리퍼에 맨발로 / 술 취해서 돌아다니는 후줄근한 남자 / 시장 복판에서 한바탕 몸씨름과 입씨름을 하다가 / 여자에게 허리춤 잡혀 끌려가고 ..  (가리봉엘레지)


  처음부터 손으로 빨래를 하지 않았던 사람은 외려 빨래기계보다 더 오래 품을 들여 빨래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손빨래가 아직 안 익숙하다면, 빨래기계보다 물과 비누를 더욱 많이 쓰리라 생각합니다. 비빔질과 헹굼질은 날마다 꾸준히 빨래할 때에 척척 손에 감깁니다. 어느 만큼 빨고 짜서 널어야 하는가 하는 잣대는 따로 없습니다. 그예 몸으로 느낍니다.


  빨래하는 겨를을 시계로 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제 하루에 네 차례쯤 손빨래를 하는데, 빨래를 하면서 빨래가 무언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빨래하는 품을 빨래기계한테 맡기더라도 10분쯤은 몸과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손으로 빨래하고 빨래를 끝낼 만한 말미가 들어야 기계한테 일감을 맡기는 셈입니다.


  참말 기계를 쓴대서 집일이 줄어들까 아리송합니다. 오늘날 여느 사내(아저씨나 아버지)들은 빨래기계를 쓸 수 있어 가시내(아줌마나 어머니)들이 집일이 훨씬 줄어 홀가분할 뿐더러, 집에서 겨를을 많이 낼 만하다고 여겨 버릇하지 싶은데, 왜 이처럼 생각할까요. 스스로 집일을 해 보지 않았고, 스스로 빨래기계 같은 연장을 다뤄 보지 않았기에 이처럼 생각할까요. 빨래기계나 청소기를 비롯한 여러 연장을 쓸 때에 집일이 줄어든다면, 집에서 사내들이 이런 연장을 쓸 일이라고 느껴요. 그야말로 ‘힘이 안 드는’ 일이라 하면 사내들이 하면 돼요. 덧붙여, ‘힘이 드는’ 일이라 하면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서로 즐겁게 돕고 나누어 맡으면서 하면 돼요.


.. 아침이면 멀쩡하게 출근을 하고 슈퍼에 가고 산에도 가고 / 맑은 햇살에 눈 못 뜨는 나 같은 게 아니라 ..  (숨어 있기 좋은 방)


  아침에 멧풀을 흐르는 물로 헹구고 풀물을 짠 다음,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고, 곧장 식구들 밥을 차리려고 부산을 떨며, 둘째 먹일 죽을 마련해 아이 꽁무니 좇으며 가까스로 한 그릇 다 먹입니다. 이렇게 하느라 아침이 얼마나 지나는가 하고 시계를 들여다 보며 헤아립니다. 풀물을 안 짜면 두 시간 즈음, 풀물을 짜면 세 시간 남짓, 이럭저럭 설거지를 끝내고 그릇을 마당에 내놓아 해바라기를 시키고, 또 이불을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면 네 시간 즈음, 여기에다가 방을 쓸고닦으며 이부자리 모두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고 기지개를 켜면 다섯 시간 남짓 지납니다. 아침 여덟 시부터 손에 물을 묻히니 어느 날은 열 시나 열한 시 즈음 한숨을 돌릴 만하지만, 으레 열두 시나 한 시가 되어야 겨우 한숨을 돌릴 만합니다. 어느 날은 두 시가 되어서 겨우 허리를 펴고 살짝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집일을 알뜰살뜰 예쁘게 건사하는가 하고 스스로 물으면 몹시 남우세스럽습니다. 어지른 책은 제대로 치우지 못하고, 아이들은 갖고 논 놀잇감을 방바닥에 그대로 굴립니다. 뒷밭 쓰레기를 치우며 땅을 갈아엎는 일에 손을 대지 못합니다. 다 마른 빨래를 미처 못 개고 쌓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설플 수 있나 싶으나, 이렇게 어설피 살아가는구나 싶습니다. 내가 어디에 마음을 쓰는지 골이 아프고, 내가 어떻게 사랑을 들여 살림을 돌보는지 골이 띵합니다.


  빨래를 하다가, 밥을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뒷밭에 물을 주다가, 마당을 쓸다가, 잘 마르는 마늘을 뒤집다가, 빨래를 걷다가, 빨래를 개다가, 오줌바다 된 마루와 방바닥을 닦고 걸레를 빨다가, 비질을 하다가, 쌀을 씻어 안치다가, 또 설거지를 하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다가, 나 스스로 어떤 말미와 겨를과 틈을 마련하여 아이들을 사랑하고 옆지기를 아끼는 삶을 누려야 할까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할 내 삶은 어떠한 길을까 헤아립니다.


.. 땅 끝에서 떠나온 곳 / … / 내 고향보다 더 허름한 빈민촌 같아 ..  (머물기 위해 떠나다)


  이른아침부터 손에 물을 묻히면 손에는 칼이나 걸레나 빗자루를 들밖에 없습니다. 연필도 볼펜도 책도 손에 들지 못합니다. 물이 묻은 손은 마를 새 없습니다. 새삼스레 다시 물을 묻히고, 한결같이 물내음 뱁니다. 물내 나는 손으로 아이 볼을 살살 꼬집다가 꼬질꼬질한 낯이나 손을 느끼면 아이를 씻깁니다. 엊저녁에는 둘째 아이 손톱에 까만 때가 낀 모습을 보고도 손톱을 깎아야겠다는 생각을 못 하며 지나칩니다. 첫째 아이 손톱은 얼마쯤 또 길었을까요. 귀지는 어떠할까요. 둘째 아이는 언제쯤 귀지를 들여다보면 될까요. 아직 오줌가리기를 안 하려 하는 둘째 오줌바다 살림은 언제쯤 끝을 볼 수 있을까요. 둘째가 쓸 오줌그릇을 새로 장만해야 할까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문득 깨닫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품는 생각은 참으로 나 스스로 사랑하며 아끼면서 즐겁게 품는 생각인지, 하루하루 온갖 일에 끄달리거나 휘둘리면서 억지로 끄집는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하면 참 좋겠구나 하며 저절로 피우는 꽃생각일 때에 나부터 맑게 웃으며 하루가 즐겁겠지요. 저렇게 하며 참 기쁘겠구나 하며 홀가분하게 길어올리는 샘물생각일 때에 나 스스로 밝게 웃으며 하루가 환하겠지요.


.. 항암제 맞으면서 머리카락 홀랑 빠지고 나니 / 가발 찾는 아버지가 참으로 천연덕스럽다 /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묏자리까지 만들어놓고 / 애첩의 품에서 눈을 감을 아버지 / 행복하세요? ..  (애첩의 품에서)


  아이하고 들마실을 하거나 자전거마실을 하다가, 문득문득 느낍니다. 나도 좋고 아이도 좋다고 느낍니다. 내가 우리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때에 이렇게 들마실이든 자전거마실이든 내 사랑스러운 어버이하고 오붓하게 얼크러지며 놀 수 있었으면 참말 기쁘며 아름다웠겠구나 싶습니다. 내 어린 날 내 어버이는 어린 나하고 이런 겨를을 누리지 못했을는지 모르는데, 그무렵 나와 내 어버이가 좋은 웃음을 누렸든 못 누렸든, 오늘 어버이로 살아가는 내가 우리 아이들이랑 옆지기하고 좋은 웃음을 누릴 수 있으면, 이 웃음꽃이 나와 아이들과 내 어버이한테까지 살몃살몃 스며들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사랑을 바라보며 사랑을 누려요. 빨래를 하건 밥을 하건, 내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꽃피워 예쁘게 누리는 하루가 되도록 다스릴 때에는, 언제나 사랑빨래이고 사랑밥이 돼요.


  하루 내내 손에서 물기 마를 새 없으니,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짬이란 도무지 없다 싶습니다. 아주 빠듯합니다. 나는 틀림없이 집에서 종이책 읽기 아주 버겁습니다. 그런데, 종이책 아닌 다른 책은 늘 읽을 수 있어요. 아이책을 읽고 밥책을 읽으며 빨래책을 읽어요. 걸레책도 읽고 자장노래책도 읽습니다. 둘째 아이 걸음마책도 읽습니다. 내 손에서는 물기 마를 새뿐 아니라 둘째 아이 똥오줌 내음 가실 틈도 없습니다. 곧, 나는 오줌책이랑 똥책도 읽습니다. 뒷밭에 물 주러 갈 때면 밭책과 풀책을 읽습니다. 멧딸 따러 네 식구 노래하며 비탈밭 사이를 오를 때면, 이웃밭책과 들책과 딸책을 읽어요.


.. 한글도 다 못 읽는 여덟 살 아이는 붉은 노을이 어둠에 끌려갈 때 산자락 끝을 따라 언덕을 넘고 밭둑을 걸어 또 다른 언덕에 오른다 ..  (문)


  온누리 모든 삶은 책입니다. 내 삶도 책이고 네 삶도 책입니다. 읍내 저잣거리에 마실을 가는 길도 책입니다. 군내버스 일꾼이 버스를 모는 매무새도 책입니다. 이웃마을 논밭을 바라보며 새삼스럽다 싶은 책을 읽습니다. 크고작은 돌로 비탈논과 비탈밭 이룬 모습 또한 남다르다 싶은 책입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책을 읽습니다. 처마 밑 제비집 새끼 네 마리 몽땅 날갯짓 익힌다며, 오늘 새벽부터 이 녀석들 노랫소리 끊깁니다. 어디까지 날아가서 어떤 먹이를 찾고, 어미 제비한테서 어떤 꿈과 사랑을 물려받을까 궁금합니다. 나는 날마다 제비책을 읽습니다.


  늘 읽는 내 나무책이 종이에 담겨 온누리에 두루 펼쳐지는 일은 드뭅니다. 노상 읽는 내 아이책이 종이에 실려 지구별에 골고루 펼쳐지는 일은 드뭅니다. 내가 읽는 제비책이나 참새책이나 까마귀책이나 종달새책을 따로 동물도감이나 식물도감이나 무슨무슨 자연책이나 환경책에서 만난 적은 아직 없습니다. 들판에서 듣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담은 종이책이 있을까요. 저녁부터 깊은 새벽까지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문학으로 다시 빚는 글꾼이 있을까요.


.. 아랫집 할머니처럼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 하며 / 보듬어주길 바란 적 없는데 / 부지깽이 들고 쫓아다니는 것이 화풀이란 것쯤 안다 ..  (바람의 딸)


  글을 씁니다. 새벽 다섯 시 제비 노랫소리와 함께 마을 이장님 새벽 방송 소리를 들으며 글을 씁니다. 시골마을에서는 새벽 다섯 시에 마을방송을 합니다. 도시에서 새벽 다섯 시에 ‘동네방송’을 한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알리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곤 합니다. 도시에서 새벽 다섯 시뿐 아니라 여섯 시 무렵에 이런저런 방송을 한다며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울려퍼지면 도시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합니다.


  글을 읽습니다. 나는 내 삶을 글 한 줄에 푼푼이 눌러담아 쓰고, 나는 내 이웃 삶 푼푼히 눌러담긴 글 한 줄 읽습니다. 나는 늘 내 삶을 내 가락과 무늬와 빛깔과 내음에 맞추어 글을 씁니다. 내 이웃은 이녁 삶을 이녁 가락과 무늬와 빛깔과 내음에 맞추어 글을 씁니다.


  더 빼어나다 싶은 글은 없습니다. 더 놀랍다 싶은 글도, 더 좋다 싶은 글도, 더 아름답다 싶은 글도 없습니다. 모든 삶은 저마다 빼어나고 놀라우며 좋고 아름답습니다. 모든 글은 다 다른 삶결대로 반갑고 흐뭇하며 기쁩니다.


.. 남자들의 철옹성 같은 연대에 / 홀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가 ..  (살갗으로부터 오는 긴장)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을 글로 씁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웃 삶을 이웃이 손수 쓴 글을 읽으며 예쁘게 나눕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넋한테 둘러싸여 하루를 맞이하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소리에 둘러싸입니다. 나는 내가 누리고 싶은 빛깔에 둘러싸입니다. 나는 내가 이루고 싶은 사랑에 둘러싸입니다.


  이제 시집 하나 손에 들고 잠자리에 눕습니다. 한 꼭지 두 꼭지 하품을 하며 읽습니다. 몸이 고단하니까 하품이 나옵니다. 하품을 누르고 졸음을 좇으며 시를 읽습니다. 한 줄 더 읽고 싶어 꾸벅꾸벅 졸며 읽습니다. 한 쪽 더 펼치고 싶어 책장을 손에 쥐다가 이 모습 그대로 잠듭니다. 퍼뜩 깨어 한 쪽을 더 읽기도 하고, 문득 깨다가는 책을 덮고는 그대로 더 쓰러진 채 곯아떨어지기도 합니다. 하루는 흐르고, 하루는 새롭게 찾아옵니다. 하루는 저물고, 하루는 내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집니다.


.. 5월 연둣빛 나무 이파리를 보는데 / 휴대전화로, 그래 휴대폰으로 / 해고통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 해고사유는 ‘잡담’이다. / 그리고 더 이상 회사에 갈 필요도 없었다 / 눈만 뜨면 전쟁을 치르듯이 아이 맡기고 / 30분 일찍 전철에 구겨져가던 내 밥그릇 자리 / 그러나 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였고 / 비공식적으로 잘린 거다 ..  (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리나)


  김사이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반성하다 그만둔 날》(실천문학사,2008)을 읽습니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김사이 님은 이녁 삶을 얼마나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생각할까 하고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전라남도 고흥에서 살아가는데, 나처럼 도시에서 태어나 시골로 찾아들어 아이들이랑 삶을 누리는 이웃은 이 나라에 몇 사람쯤 될까 궁금합니다. 으레, 김사이 님처럼 시골마을을 부리나케 떠나 도시로, 더 큰 도시로 찾아들어야 하는 굴레나 고리나 얼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힘들거나 가난하거나 슬프거나 아프던 시골집 허름한 살림보다 더 쪼그라들고 외로우며 벅찬 도시살이를 누리더라도, 이 도시를 벗어나 다른 시골마을 작은 집을 꿈꾸며 사랑을 빚기란 만만하지 않은 노릇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김사이 님은 왜 ‘뉘우쳐’야 하고, 왜 ‘뉘우치다가 이 뉘우치기를 그만두’어야 했을까요. 뉘우치기보다는 사랑하면 좋을 텐데요. 뉘우치기를 그만두기보다, 사랑을 오래오래 이으면 기쁠 텐데요.


.. 천 원 주고 산 물건이 십 년쯤 되었으니 / 비닐이 벗겨지고 앙증맞은 곰돌이딱지가 너덜너덜해졌다 ..  (곰팡이꽃)


  곰돌이 비누갑하고도 열 해를 살 수 있어요. 작은 앵두씨 하나 심어 열 해를 보살필 수 있어요. 오늘 하루 새 곰돌이 비누갑을 천 원 치러 장만할 수 있어요. 작은 앵두씨를 심기 벅차면 작은 앵두나무 한 그루 이천 원이나 삼천 원쯤에 장만할 수 있어요. 허름한 도시 작은 집에서 곰돌이 비누갑은 열 해를 함께 살며 곰팡이꽃을 피워요. 곰팡이꽃도 꽃이니 무척 소담스럽고 예뻐요. 허름한 도시 작은 집 어딘가에 빈터가 있으면, 꼭 내 삯집 아닌 이웃집 언저리이든 동네 골목 한 귀퉁이가 되든, 시멘트바닥이나 돌바닥을 한 뼘만큼 들어내고 작은 앵두나무 심어 알뜰살뜰 보살펴 열 해를 살아내어 나와 내 이웃 모두 한여름 바알간 앵두알 누릴 수 있어요.


  사랑하기에 좋은 삶이에요. 좋아하기에 사랑스러운 삶이에요. 살아가며 빛나는 나날이에요. 빛나기에 살아갈 만한 나날이에요. 김사이 님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이야기를 김사이 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풀어낼 시노래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4345.6.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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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6-15 10:20   좋아요 0 | URL
ㅎㅎ 빨래기계를 들여놓으셨군요^^

숲노래 2012-06-15 17:27   좋아요 0 | URL
아... 꽤 되었어요.
요새는 거의 안 쓰지만요 ^^;;;

책읽는나무 2012-06-16 06:16   좋아요 0 | URL
빨래기계가 있어도 손빨래는 계속 해야되는 것 맞아요.
청소기계가 있어도 손으로 걸레질 해야되는 것 맞아요.
편리한 기계들이 곁에 있어도 뒷마무리는 항상 손으로 해야 마무리가 되는 집안일은
정말 끝이 없기도 하고,집안일만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집안일 하시는 모습 뵈면 어쩜 이리 공감이 가는지 참~~ㅋ

전 그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참 힘들다~ 참 하기 싫다~ 참 끝없다~ 만 반복하며
투덜댔었던 것 같아요.헌데 님을 뵈면 집안일을 저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할 수도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되네요.^^
아이들 아가때 눈을 떠 뒷바라지 해주고 숨 돌릴라치면 오후 한 시가 되었던 것같아요.
전 그때 아침 세수 잠깐 했었던 것같아요.너무 바쁠땐 저녁에 아침 세수를 하기도 했었구요.
집에 있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고,시간이 부족한지 좀 짜증이 많이 나던때이기도 했었어요.아이들 웃는 모습에 또 잠깐 애써 짜증을 잊곤 했었지만요.
지금 님의 모습 뵈면 그시절이 문득 생각이 나면서 왜 님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약간의 후회가 생겨요.^^
지금이라도 잘해야겠어요.또 훗날 후회하지 않으려면요.^^

그시절 시간 없어 책을 읽지 않은 순간에 뭔가 헛헛하다 생각 많이 하곤 했었는데 님의 글을 읽고 보니 저도 저 나름대로 삶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로군요.
그부분이 가장 좋았어요.^^

숲노래 2012-06-16 13:43   좋아요 0 | URL
마음속 좋은 책을 누구나 즐겁게 느낄 수 있으면
가장 사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저씨'와 '젊은 사내'와 '푸른 아이들' 모두
이러한 삶과 사랑을 잘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