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 - 조경선 교육산문집 살림터 참교육문예 4
조경선 지음 / 살림터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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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떻게 사나요
 [사랑하는 배움책 5] 조경선,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살림터,2012)

 


- 책이름 :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
- 글 : 조경선
- 펴낸곳 : 살림터 (2012.6.10.)
- 책값 : 12000원

 


  학교에서는 ‘내가 어른이 되어 좋은 짝꿍을 보았’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내가 만난 좋은 짝꿍과 사랑을 나누는 즐거움’이 어떠한가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짝꿍하고 아이를 어떻게 낳느냐’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짝꿍하고 낳은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길’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 큰딸이어서 더 많이 기대했다는 엄마는 끝까지 눈물을 많이 보이셨고, 고흥이라는 낯설고 먼 곳으로 가서 산다는 일방적인 결정에 섭섭함을 감추지 않으셨다. 부지런하고 깔끔한 엄마의 살림솜씨와 지원 덕분에 고생 한 번 없이 공부만 했었던 큰딸이었는데 농촌으로 시집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한 것이 큰 상실감을 주었다고 한다 … 우리 지역(전남 고흥)에서는 일 년에 몇 억 원씩 주고, 서울의 한 사교육업체 강사를 주말에 초빙해 성적이 우수한 200여 명의 중·고생을 대상으로 국·영·수 논술강의를 해 주고 있다 … 대학 진학을 위해 성적이 우수한 소수의 학생들에게는 막대한 예산을 붓고 있지만, 현재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배려는 왜 없는지 몹시 안타깝다 ..  (19, 64쪽)


  학교에서 푸름이한테 ‘성교육’을 시키곤 합니다. 학교 성교육 수업에서는 아이들한테 콘돔을 보여주거나 아예 주기도 한다지만, 막상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이를 낳기 앞서 몸속에 열 달 돌보는 동안 아이 어머니와 아이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아이를 빚기 앞서 아이 어머니와 아이 아버지가 될 사람이 어떤 삶을 일구며 몸과 마음을 건사해야 좋은가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이렇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두 어버이가 아이를 낳고서 이 아이를 알뜰히 아끼고 따스히 사랑하며 예쁘게 보살피는 길을 들려주지 못합니다.


  고작 한다는 이야기라면 ‘육아휴직’쯤 될까요. 그런데, 육아휴직은 며칠쯤 얻어야 할까요. 육아휴직은 누가 받아야 할까요. 육아휴직이란 무엇이고, 보육시설은 무엇일까요. 아이를 튼튼하고 씩씩하며 아름답게 보살피는 몫은 육아휴직과 보육시설로 다 풀거나 맺을 만할까요.


  그렇지만 나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던 때에 이런 대목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무렵에는 나 또한 입시문제와 입시공부에 갇혔습니다. 고단한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슬픈 짐과 무게를 어떻게 건사해야 할까 알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은 그저 똑같이 말할 뿐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내 삶에서 지우라고, 여섯 해를 지우고 나면 앞으로는 ‘밝은 앞날’이 있으리라고. 여섯 해 동안 시키는 대로 하고, 오로지 시험문제만 풀면, 비로소 그 다음부터는 ‘너희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 전문계 학생들은 인문계 고등학생과는 다른 소질과 특징이 있는데,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너무 획일적이고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공부 말고 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인데 말이다 … 전자과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삼성에 취업하고, 그러면 학교 정문 앞에 현수막을 단다. ‘축 삼성 취업’이라며 학교 홍보에 열을 올린다. 하얀 가운과 마스크 등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담임교사나 학부모라도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했던 그곳에서 아이들은 발암물질에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었다 … 한글날의 위기는 나의 내부로부터 나온다. ‘영어 식민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자녀의 영어교육을 걱정하는 이중적인 대한민국 엄마인 나를 고백하며 반성하고자 한다 ..  (22, 43, 78쪽)


  나는 어른들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른들 말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내 삶에서 여섯 해를 지울 수 있을까요. 내가 백 살을 살는지 이백 살을 살는지 모르나, 나는 고작 열 해를 살거나 스무 해만 살는지 몰라요. 어쩌면 열여섯이 끝일 수 있어요. 한 해이고 두 해이고 나한테는 더없이 아름다운 날입니다. 하루이고 이틀이고 나한테는 가없이 고마운 날입니다. 한 해는커녕 하루도 지울 수 없는데, 어떻게 여섯 해 내 삶을 지우면서 시험공부만 해야 하나요.


  더구나, 여섯 해를 지우고 살더라도, 나중에 나한테 ‘밝은 앞날’이 반드시 찾아오리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손꼽는 대학교에는 위에서 몇 퍼센트만 들어갈 수 있는데다가, 모든 푸름이가 대학생이 될 수 있지 않아요. 대학생이 될 수 있는 푸름이는 40퍼센트입니다. 요새는 숫자가 늘어 60퍼센트까지 될는지 모르지만, 고등학교를 마친 두 아이 가운데 하나는 곧바로 ‘사회’에 뛰어들어 ‘일자리’를 찾아야 해요. 그런데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지우라니요.


  대학교에 안 들어갈 아이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어떻게 보내라고요. 고등학교만 마치고 살아갈 아이들한테 머나먼 앞날은 어떻게 꿈꾸거나 꾀하라고요. 한 사람으로 우뚝 서서 슬기로우며 사랑스레 살아갈 길은 어떻게 찾거나 일구라고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답합니다. 한국땅에서 ‘고등학교 마친 모든 푸름이가 대학교에 갈 수 있다’면 모르되, 하나는 가도 하나는 못 간다 하는데, 서로 피가 튀기도록 시험공부만 시키면서 하나는 대학교에 보내고 하나는 대학교에 안 보낸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대학교에 간 아이들은 어떤 삶을 누리면서 이 나라 이웃과 동무를 생각하고, 대학교에 안 가거나 못 간 아이들은 어떤 삶을 즐기면서 이 나라 이웃과 동무를 헤아려야 할까요.


..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가정방문도 언제나 인상적이다. 잠시나마 학교를 벗어나 수평선 따라 소풍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섬에 학교가 사라지고,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 공사를 한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왜 동생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집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기는지, 어떻게 유치원 교사의 꿈을 꾸었는지 가만히 엿보게 된다. 매화 꽃망울이 터진 등암의 골목길을 지나 들어간 마당 한쪽에 아직도 깨끗한 우물이 있다. 그 물로 손빨래를 하는 집 마루에 앉아 이 두 형제들이 어떻게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떤 마음을 가진 분들인지 바라보게 한다 … 업무가 산더미 같았다. 그렇게 여유가 없이 아이들을 만나니, 아이들도 내 말에 상처를 받았다 ..  (90, 244쪽)


  예나 이제나 나는 한결같이 생각합니다. 대학입시는 ‘입시학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정규수업만 해야 올바르고, 정규수업은 중학교나 고등학교만 마친 아이들이 어디에서라도 스스로 씩씩하고 슬기로우며 착하고 참다우며 어여쁘고 즐겁게 삶을 일구는 길을 보여주거나 이끌거나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교과서가 부질없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를 쓸 까닭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와 학생 모두 온몸으로 삶을 배우고 온마음으로 삶을 생각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교사 자리에 선 사람은 아이들에 앞서 사회와 삶을 조금 더 누린 만큼, 이렇게 몸과 마음으로 겪은 삶을 아이들이 앞으로 맞아들일 때에 어떠한 빛과 눈길과 넋으로 따사로이 껴안도록 하면 좋을까 하고 어깨동무할 노릇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이 더 높다 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어버이라면, 아이들을 학교에 넣으면 안 된다고 느낍니다. 더 높다 하는 대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다면, 아이들을 어릴 적부터 입시학원에 넣으면 됩니다. 아이들한테 시험문제만 가르치고 생각하도록 이끌어, 열두어 살부터 대입시험을 치르도록 하면 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하면 검정고시를 치르면 되지요. 굳이 여섯 해나 학교에서 아이들 푸른 삶을 썩혀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학교에 넣는다 하면, 학교가 어떤 배움터가 되도록 어버이 또한 슬기와 힘을 갈무리해야 좋을까 하고 생각해야지 싶어요. 학교가 학교다울 수 있도록 어버이는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농촌의 아이들은 서울이라는 도시로 가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곳은 오히려 경쟁에서 낙오되면 절망이 가득한 소비적인 곳이다. 다시 고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안함이 느껴졌다 … 우리는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도시의 학교로, 학교 기숙사로 멀리 떠나보낸다. 진로와 공부에 대한 요구로 갈등을 일으키고, 노동에 대한 체험과 가족에 대한 이해 없이 점점 멀어져 가게 한다 … 짧은 시간 안에 빨리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정성껏 시를 음미하지 못한 채 작품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작품의 특징을 알려고 한다 ..  (107, 136, 193쪽)


  아이들은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비싼 밥이 아닌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밥을 차려서 내놓는 어버이나 어른’들 따사로운 사랑이 깃든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비싼 옷이 아닌 좋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가게에서 비싼값 치르며 장만한 옷이 아니라, 어버이나 어른이 사랑을 들여 빚은 좋은 옷을 좋은 마음으로 받아서 입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넋과 얼을 배워야 합니다. 높은 지식이나 빠른 정보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꿈을 짓도록 돕는 좋은 넋과 얼을 배워야 합니다. 손재주를 가르칠 학교가 아니에요. 자격증을 가르칠 학교 또한 아니에요. 학교는 교사와 학생 모두 사랑을 누리면서 사랑을 빛내는 배움터예요.


.. 그 이후로 백일장의 입상 결과보다는 글을 쓰는 과정이 한 아이에게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우리 아이들에게 저마다의 삶은 모두 문학 재료가 된다 … 교사도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대학 평준화를 위한 활동을 함께 해 나갔으면 좋겠다 … 무한경쟁보다는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학급이 되면 좋겠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무려 9시간을 한 교실에서 보낸다. 그래서, 따뜻하고 즐거운 학급이 되었으면 한다 … 오늘은 전국학력평가를 보는 날이다. 낮은 등급이 나오는 학생들에게는 벌을 줘야 한다는 선생님들의 의견이 있었다 ..  (23, 36, 83, 101, 125쪽)


  나는 학교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대목을 배웠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교 밖에서 내 삶을 이끌 이야기를 배우려고 애쓸 수 있었구나 싶어요. 책을 찾아 읽으며 내가 배우고픈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좋은 이웃과 동무를 사귀며 내가 알고픈 이야기가 무엇이었나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옆지기를 만나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내가 그동안 못 배운 대목이 무엇이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내가 못 배운 만큼 우리 아이들한테 가르치거나 느끼도록 이끌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삶을 배우자면 어버이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부터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꿈을 짓자면, 어버이인 나는 하루하루 어떤 넋과 얼로 누려야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피아노학원에 다녀야 피아노를 칠 수 있지 않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사진강좌를 들어야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글쓰기학원을 다녀야 글을 쓸 수 있지 않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집일’과 ‘아이키우기’를 학원으로나 학교에서나 따로 배울 수 없습니다.


  오직 삶이 있습니다. 오직 싱그러운 삶이 있어요. 오직 사랑스럽고 싱그러워 빛나는 삶이 있어요.
  삶을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할 길을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하며 나와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 모두 즐겁게 어깨동무할 길을 생각합니다.


.. 하지만 다른 반 담임선생님들 중에는 독서를 하지 못하게 하고, 영어와 수학 문제 풀이만이 공부라고 말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 객관식 문제 푸는 공부 기계가 되어 1등급이 된다고 한들, 앞으로 이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는 걸까 … 교사와 학생들은 왜 이렇게 뼈빠지게 학교에 남아 서로를 통제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늦게까지 학교에 불이 켜져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  (128, 146, 149쪽)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교까지 마친 다음, 전라남도 고흥으로 시집을 오며 고흥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지내는 조경선 님이 쓴 교사일기를 그러모은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살림터,2012)를 읽습니다. 조경선 님 교사일기에 드러나는 고흥 시골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거의 모두 고향인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다고 합니다. 대학교에 가든 일자리를 찾아 공장으로 가든, 으레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간대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 다닌 시골마을 고흥에는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같은 젊고 푸른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할 테지요. 왜냐하면, 오늘날 고등학교 가운데 시골 아이들한테 농사짓기나 고기잡이를 가르치는 데는 아주 적어요. 논밭과 바다가 있는 시골마을 고흥에서조차 아이들이 ‘슬기로운 흙일꾼’이 되거나 ‘아름다운 고기잡이’가 되는 길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 없이 흙과 사람과 지구별을 골고루 살리는 흙일꾼 참길을 들려주는 학교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어린 새끼는 바다로 돌려보내고,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바다 둘레에 발전소 따위 안 지으며 깨끗하게 건사하는 넋을 북돋우는 고기잡이 사랑길을 보여주는 학교는 어디에서 만나야 할까요.


  조경선 님은 국어교사가 되어 고등학교 아이들이랑 문학을 노래하는 사랑을 아주 조그맣게 나눕니다. 조경선 님 둘레에 있는 다른 분들은 어떤 교사가 되어 고등학교 아이들이랑, 또 중학교 아이들이랑, 또 초등학교 아이들이랑, 어떤 꿈과 사랑을 날마다 어떤 빛깔과 무늬로 예쁘게 지으며 하루를 빛낼까요. 시골마을 시골학교에서 시골아이 사랑하는 시골교사는 어떤 웃음과 어떤 삶으로 어떤 시골얘기를 엮을 수 있을까요. (4345.6.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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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2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2-06-12 12:17   좋아요 0 | URL
앗, 그렇군요.
헐레벌떡 바로잡았습니다.
고마워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