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네버랜드 과학 그림책 9
히라야마 가즈코 글 그림, 기타무라 시로 감수,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맛있는 민들레 먹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7]] 히라야마 가즈코, 《민들레》(시공주니어,2003)

 


  민들레는 한국에서도 자라고 일본과 중국에서도 자랍니다. 한국땅에서 자라는 오래된 민들레 말고 ‘서양민들레’라 일컫는 민들레도 있으니, 미국이나 유럽이나 인도나 브라질이나 필리핀처럼, 한국에서 퍽 멀다 싶은 나라에서도 민들레는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며 자라기도 할까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는 퍽 먼 옛날부터 민들레를 나물로 먹었습니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어떠했을까요. 한국에서도 함께 자라는 서양민들레는 서양에서 나물로 삼은 풀 가운데 하나였을까요, 아니면 그냥 여느 들풀이었을까요.


.. 민들레를 본 적이 있나요? 어디서 보았나요? ..  (2∼3쪽)

 


  한국땅 옛사람은 민들레뿐 아니라 온갖 풀을 나물로 삼아 먹었습니다. 날로 먹고 무쳐서 먹으며 끓여서 먹습니다. 말려서 먹고 삭혀서 먹으며 달여서 먹어요. 오늘날은 풀물을 짜는 기계가 있는데, 옛날에는 절구로 빻거나 멧돌로 갈면서 풀물을 얻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면 풀죽만 끓여서 먹었을까 궁금해요.


  그런데 한국땅 곳곳이 도시로 바뀌고, 도시는 더 큰 도시가 되며, 시골 읍내 또한 차츰 도시로 바뀝니다. 도시가 늘고, 도시 학교가 늘며, 도시사람이 느는 동안, 민들레를 나물 아닌 꽃으로 여겨 버릇합니다. 요즈음 아이들 가운데 민들레를 바라보며 ‘맛있겠다’ 하고 생각할 아이는 몇이나 있을까요. 요즈음 어른들 가운데 민들레를 바라보며 ‘맛있겠네’ 하고 생각하며 곧장 캐거나 잘라서 챙길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요.


.. 날씨가 따뜻해지면, 민들레는 새잎을 틔우며 일어나요 ..  (7쪽)

 

 


  어디에서나 흔하게 자라는 민들레입니다. 뿌리가 쉬 뽑히지 않을 뿐 아니라, 뿌리가 잘려도 다시 새 뿌리를 내리고 새 줄기를 올리는 민들레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즐겨먹는 상추처럼, 뜯어도 뜯어도 다시 돋습니다. 캐고 캐도 다시 자랍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자라고 다시 자라요. 한 마디로, 언제나 들판에 차려진 좋은 먹을거리로 삼을 만합니다. 언제라도 들판으로 나들이하며 바구니를 채울 좋은 먹을거리가 될 만합니다.


  그런데, 민들레만 이처럼 씩씩하게 다시 돋지 않아요. 수많은 풀들이 씩씩하게 다시 돋아요. 나무도 이와 같습니다. 커다란 줄기가 잘리더라도 새싹이 돋고 새 줄기가 납니다. 커다란 가지가 잘린다 하더라도 새싹이 새삼스레 돋고 새 가지가 차츰 뻗어요.


  풀은 늘 자랍니다. 나무는 늘 자랍니다. 사람도 늘 자랍니다. 아이도 어른도 늘 자랍니다. 몸이 자라고 마음이 자랍니다. 사람 몸뚱이는 어느 만큼 늙으면 흙으로 돌아가는데, 몸뚱이는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넋은 고이 이어집니다. 풀과 나무도 이와 같겠지요. 열매를 남기고 씨앗을 맺으면서 옛 몸뚱이인 잎사귀와 줄기는 흙으로 돌려보낸 다음, 이듬해 다시 따사로운 봄이 찾아들면 새 몸뚱이인 잎사귀와 줄기가 돋으면서 새 꽃이 피어요.


.. 잎이 뜯기거나 짓밟혀도 뿌리는 살아 있어요. 자꾸자꾸 새로운 잎을 만들어 내지요. 뿌리를 잘라 땅에 심으면 머지않아 잎이 돋아 한 포기 민들레로 자라난답니다 ..  (11쪽)

 

 


  맛있는 민들레를 먹습니다. 맛있는 민들레는 내 몸에서 좋은 기운으로 숨쉽니다. 민들레는 내가 되고, 나는 민들레가 됩니다. 민들레는 내 몸에 섞이고, 내 몸은 민들레와 하나가 됩니다. 내가 먹는 밥이 내 몸을 이루며, 내가 먹는 밥으로 얻은 기운으로 내 넋을 살찌웁니다. 곧, 민들레 풀줄기와 풀잎과 꽃봉오리는 내 고운 넋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나는 민들레를 먹으며 곱게 숨쉬고, 나는 민들레를 바라보며 내 목숨을 이어 주어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가지도 냉이도 오이도 고맙습니다. 감자도 고구마도 쌀도 보리도 고맙습니다. 옥수수도 무화과도 감도 딸기도 고맙습니다. 모두 고맙게 스며듭니다. 모두 고맙게 빛납니다. 지구별은 푸른 빛깔 뽐내는 풀들이 어깨동무하면서 환합니다. 들판도 환하고, 들판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마을을 이루는 사람들도 환합니다. 햇빛이 환하고 꽃빛이 환하며 사람들 눈빛이 환합니다.


  저마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하루를 누립니다. 풀은 풀대로 좋은 삶을 누립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좋은 삶을 누립니다. 사람은 사람대로 좋은 삶을 누립니다. ‘맨드레미’라고도 하고 ‘말똥굴레’라고도 한다는 민들레인데, 고장마다 마을마다 사람마다 다 달리 이름을 붙이며 좋은 삶벗으로 삼았으리라 생각합니다.


.. 꽃받침은 열매를 단단히 감싸 지켜 줘요. 열매가 익으면 꽃줄기는 다시 일어서서 높이 뻗어 올라요 ..  (18∼19쪽)

 


  일본에서 1972년에 처음 나왔다는 그림책 《민들레》(시공주니어)는 한국에서 2003년에 옮겨집니다. 서른한 해만입니다. 일본사람 히라야마 가즈코 님은 일본 아이들이 ‘일본 민들레’를 ‘일본 들판’이나 ‘일본 마을’에서 예쁘게 아낄 수 있기를 꿈꾸며 이 그림책을 빚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래된 그림이라 할 테지만, 사랑스러움이 깃듭니다. 묵은 그림책이라 하겠으나, 따스함이 감돕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새 그림결로 새삼스레 그리기 쉬운 민들레라 할 테지만, 제아무리 예쁘장하게 그린다 하더라도 사랑스러움과 따스함을 담지 못한다면, 즐거이 누릴 만한 그림책으로 태어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림책이라 한다면 무엇보다 사랑스러움과 따스함을 담아야 해요.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즐기는 그림책이 되자면, 바로 좋은 꿈과 이야기를 실어야 해요.


  자연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과학을 살피는 길만 보여줄 때에는 즐겁다 여길 만한 그림책이 아닙니다. 자연은 자연과학이 아닌 자연이거든요. 아이들한테는 과학지식이 아닌 삶이 아름답거든요.


  아이들은 굳이 민들레 한살이를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한국민들레와 서양민들레를 나누어 살필 수 있대서 민들레를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참말 민들레를 알고 싶다면, 민들레잎을 뜯어서 먹으면 돼요. 민들레 뿌리랑 꽃대랑 열매를 나란히 풀물로 짜서 마시거나 풀죽을 쑤어서 먹거나 풀지짐을 마련해 즐기면 돼요. 녹두지짐과 감자지짐처럼 민들레지짐을 먹지요. 녹두떡이나 감자떡처럼 민들레떡을 먹지요.


  그림책은 삶을 그립니다. 그림책은 사랑을 그립니다. 그림책은 사람들이 예쁘게 일구는 삶을 그립니다. 그림책은 사람들이 즐거이 나누는 사랑을 그립니다. 오늘날 한국땅 여느 어른들이 여느 민들레를 좋은 삶벗으로 삼아 그림책 하나 어여삐 빚는다면, 이 또한 ‘좋은 삶벗으로 어깨동무할’ 이야기꾸러미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5.6.23.흙.ㅎㄲㅅㄱ)

 


― 민들레 (히라야마 가즈코 글·그림,이선아 옮김,시공주니어 펴냄,2003.6.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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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신부 1
말리 지음 / 길찾기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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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싶은 모습을 바라본다
 [만화책 즐겨읽기 157] 말리, 《도깨비 신부 (1)》

 


  누구나 스스로 보고 싶은 모습을 바라봅니다. 스스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은 안 바라봅니다. 누구나 스스로 겪고 싶은 모습을 바라봅니다. 스스로 겪고 싶지 않은 모습은 안 바라봅니다. 누구나 스스로 알거나 느끼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스스로 모르거나 못 느낀 모습은 바라보지 못합니다.


  배운 사람은 배운 대로 바라봅니다. 배운 대로 바라보기에 배운 틀에 맞추어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바라보고, 아는 만큼 느낀다, 하는 얘기가 있는데, 이 얘기란 사람들 누구나 아는 대로 바라볼 때에는 아는 틀에 갇힌다는 소리입니다. 아는 만큼 바라보지 않고, 스스로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어떤 느낌을 좇을 수 있다면, 이때에는 어떠한 틀에도 갇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느 한 가지를 놓고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글쓰기를 가르쳤던 이오덕 님은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하고 말씀했는데, 이 말씀은 곧 ‘어떤 아는 틀(지식)로 어느 한 가지(사물)를 바라보지 않을 때에는 누구나 시를 쓴다(생각을 키운다)’는 뜻이에요. 오늘날 사람들이 좀처럼 시를 못 쓸 뿐 아니라, 애써 시를 쓰더라도 생각힘이 드러나지 못하는 까닭은, 자꾸 지식으로 재고 따지거나 손재주를 부리기 때문이에요.


- ‘그 사람이 아빠란 건 알았지만, 내가 보고 있던 건 아빠가 아닌데. 엄마의 유골을 따라와 문전에서 서성대는 저것들.’ (7쪽)
- “그래, 끝자락에 서니 네 인생이 그리 안 되어 보이나?” “아니, 후회 없소.” (148∼149쪽)

 

 


  동백꽃을 바라보면서 ‘동백꽃은 몇 월에 피고 빛깔은 어떠하며 열매나 줄기를 어떠한 한약재로 쓴다’ 같은 지식을 섬긴들, 동백꽃이 얼마나 곱거나 나한테 좋은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아니, 동백꽃을 알 수 없습니다. 동백꽃을 바라볼 때에는 그저 동백꽃이네 하고 느끼면 돼요. 아니, 동백꽃이라 하는 이름조차 모르면서 느끼면 돼요. 곱다 하면 왜 고운가를 생각하고 내 눈에 도드라지게 뜨인다면 왜 내 눈에 이렇게 돋보일까 하고 생각하면 돼요.


  가을날 들판은 누런 물결이 출렁입니다. 어느 시인이 가을 들판을 ‘황금 물결’이라 노래했대서 가을 들판 누런 빛깔을 굳이 ‘황금 물결’이라 여기며 바라볼 까닭은 없어요. 나는 나대로 내가 좋아하는 생각을 살찌우면서 바라보면 돼요. 그리고, 이 가을 들판을 ‘황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운동경기에서 말하는 ‘금메달’을 굳이 ‘금’ 목걸이라 하지 말고 ‘가을벼’ 목걸이나 ‘봄보리’ 목걸이라 가리킬 수 있어요.


- “이제부터 너랑 난 자매라더구나. 가족 만들기 참 쉽지 뭐야. 근데 네 이름이 선비라구?” “그래. 넌 민아지?” “뭐, 지금은 신민아이지만 이전엔 김민아였어. 네 아빠 핏줄은 아니지만, 내 이름엔 어째 신씨가 더 어울리는 거 같지 않니?” (21쪽)

 

 


  보고 싶은 모습을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 무엇을 보고 싶은가 하는 생각을 늘 살찌우거나 북돋우거나 키울 때에 즐겁습니다. 나 스스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하고 꿈꾸면서 사랑을 빚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내가 돌보는 삶결에 따라 내 눈결이 거듭납니다. 내가 보살피는 사랑에 따라 내 눈빛이 새롭습니다. 내가 얼싸안는 꿈에 따라 내 눈무늬가 달라져요.


  나는 환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나는 곱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나는 즐겁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환한 눈결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고운 눈빛으로 동무와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내 즐거운 눈무늬로 온누리를 따사로이 보듬을 수 있습니다.


  보고 싶은 모습을 보기 때문에, 나는 늘 사랑을 바라보면서 지구별 곳곳에 사랑이 무럭무럭 싹트도록 할 수 있어요. 보고 싶은 모습을 보는 터라, 나는 늘 꿈을 바라보면서 지구별 어디에서나 예쁜 꿈이 자라도록 도울 수 있어요.


  그러니까, 누군가는 자꾸 전쟁 싹이 트도록 내몰아요. 누군가는 자꾸 대학입시지옥이 끊이지 않도록 몰아세워요. 누군가는 자꾸 돈벌이 싸움이 피튀기도록 닦아세워요.


- “허! 네가 정녕 ‘듣는 자’가 맞기나 한 것이냐? 네 눈엔 믿음은 없고 무슨 짓을 해서건 기어오르려는 저급한 탐욕만이 읽히거늘! 날 불러낸 것도 네 그 더러운 것을 위함이었더냐?” (69쪽)
- “니, 그거 아나? 다른 사람들은 용 같은 거 못 본다.” “정말?” “그래.” “니, 사람들한테는 그런 거 뵌다고 말하지 말그래이.” “왜?” “사람들은 겁이 많은 기다. 지들이랑 안 똑같으면 겁을 집어묵는 기다.” (97쪽)

 

 


  어떻게 살아갈 때에 즐거운 하루일까요. 누구와 이웃할 때에 좋은 삶일까요. 어떤 꿈을 품을 때에 빛나는 목숨일까요. 누구와 사랑할 때에 좋은 마을일까요.


  내 오늘을 바라보아 주셔요. 저마다 내 작은 보금자리를 바라보아 주셔요. 내 손바닥을 바라보고 내 발바닥을 바라보아 주셔요. 저마다 내 고운 몸뚱이를 쓰다듬어 주셔요.


  경제성장율을 높인다든지 수출액수를 키워야 하지 않아요. 시험점수를 높인다든지 자격증 숫자를 늘려야 하지 않아요. 내 꿈을 키워야지요. 내 사랑을 빛내야지요. 내 목숨을 누려야지요. 내 삶을 즐겨야지요.


- “느거 할머니는 마을에 몸이 묶여 갖고 평생을 한 번도 이 촌벽지 바닥에서 벗어나도 못했다. 어디 갈 차비라도 할 양이면 마을 장군이 그리 몬 살게 굴어서 들어앉히고, 들어앉히고 하는 기라. 생각해 보기라. 느거 엄마 아파서 죽을 때도 서울로 보러 가도 몬했으니 속으로 을매나 억장이 무너졌겠노. 근데 이번에 그라두만. ‘인자 다 끝났소.’” (157∼158쪽)
- ‘할머니 바보야? 이 따위로 대접받을 거였으면서 뭣 하러 그렇게 사람들 속사정 들어  고, 빌어 주고 그랬어. 나보곤 맨날 친구 많이 사귀라고 그래 놓고 이게 뭐야? 할머니, 할머니도 없잖아. 이렇게 아무도!’ (162쪽)

 


  말리 님 만화책 《도깨비 신부》(허브,2004) 첫째 권을 읽습니다.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 ‘듣는 사람’과 ‘못 듣는 사람’이 찬찬히 나옵니다. 누군가는 무엇을 보고, 누군가는 무엇을 못 봅니다. 무엇인가 보는 사람은 다른 무엇을 못 보지만, 무엇인가 못 보는 사람은 다른 무엇을 봅니다.


  이를테면 바닷가 미르님을 보는 사람이 있되, 바닷가 미르님을 못 보는 사람이 있어요. 도시에서 돈이 될 만한 무언가를 보는 사람이 있고, 도시에서 아무것도 못 보는 사람이 있어요. 시골집 나무한테서 좋은 이야기를 느끼면서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시골집 나무나 풀을 못 느끼거나 안 바라보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이는 주식시세표와 은행계좌를 바라볼 테고, 어떤 이는 푸른 들판을 바라볼 테지요. 어떤 이는 문제집과 참고서를 바라볼 테고, 어떤 이는 시집 한 권 바라볼 테지요.


  스스로 누리고 싶은 대로 바라보는 삶입니다. 스스로 사랑하고 싶은 대로 바라보는 하루입니다. 스스로 꾸는 꿈대로 바라보는 눈길입니다. (4345.6.23.흙.ㅎㄲㅅㄱ)

 


― 도깨비 신부 1 (말리 글·그림,허브 펴냄,2004.7.10./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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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깨비 신부] 야간 병원약사가 그린 만화! 도깨비 신부
    from Medical Writer 쿠쿠쿠의 행복이야기 2012-08-28 17:11 
    어찌하다 "도깨비 신부"라는 만화를 접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도깨비라는 소재가 신선하게 느껴졌고, 순정만화라고 되어 있는데 순정만화 같지..
 
 
 


 내가 좋아하는 말

 


  아침에 밥을 먹이는 자리에서는 그렇게도 밥을 안 먹으려고 땡깡을 부리며 딴짓을 하던 아이가 낮 한 시 무렵 부엌 밥상 제 밥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더니 아빠 무릎에 털썩 앉고는 밥만 우걱우걱 씹어먹습니다. 배가 고팠겠지요? 진작부터 다른 반찬하고 밥을 먹으면 좋았으련만. 아빠하고 함께 밥먹는 자리에서 다른 데에 한눈 안 팔고 신나게 밥을 먹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이렇게라도 먹어 주니 고맙습니다. 아직 많이 어린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더 잘 알겠습니까. 더 놀고 싶고 더욱더 놀고 싶으며 더더 놀고 싶을 뿐인 이 작고 가녀린 목숨이 놀고 싶다고 하는데 억지로 밥숟가락 들도록 다그치며 입에 밥을 퍼 넣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배가 고플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뿐입니다. 놀다가 제풀에 지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배는 고프고 잠도 찾아와 꺽꺽거릴 때까지 가만히 지켜봅니다. 그러고는 아이 스스로 밥을 먹어야겠다 싶을 때 ‘옳지!’ 하고 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밥을 먹입니다. 아이는 요즈음 이렇게 한참 졸릴 무렵에 밥을 먹으면서 스르르 잠들곤 합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어버이된 사람으로서 다른 일은 거의 붙잡지 못합니다. 그동안 꾸준히 이어오던 글쓰기조차 하루에 한두 꼭지 쓰기마저 벅찹니다. 아이 보느라 바쁘고 힘들며 고단합니다. 아이가 쓰러져 잠든 다음에 셈틀을 켜고 글을 써야 하는데, 아이가 쓰러져 잠든 다음에는 애 아빠도 드러눕고 싶습니다. 허리가 결리고 두 눈은 감기며 온몸이 뻑적지근합니다.


  하루이틀이 아닌 여러 해째 이와 같이 살면서 제 둘레 사람들한테 편지 한 번 변변히 띄우지 못합니다. 받은 편지에 답장조차 거의 못 씁니다. 바쁘며 고된 나날을 보내면서 아이 키우는 다른 여느 어버이들은 어떠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모두들 우리 집식구처럼 고달프지는 않을 터이나 바쁘고 힘들기는 서로 매한가지가 아니랴 싶습니다. 바쁘고 힘들다지만 어여쁘며 착한 아이를 바라보는 동안 새힘을 얻지 않느냐 싶습니다.


  고이 잠든 아이는 오줌 기저귀를 가는 사이에 오줌을 징하게 눕니다. 이 바람에 아버지가 덮고 자야 할 이불이 홀라당 젖었습니다. 날이 좀 덥기는 하지만 아버지는 이불이 다 마를 때까지 자기 어렵습니다. 그래, 이런 오줌싸기를 바라보면서도 아이를 나무랄 노릇이 아니라, 아버지가 오늘만큼은 좀 늦게까지 글 하나 붙잡고 용을 쓰라는 뜻으로 읽고 싶습니다.


  깊은 밤에 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합니다. 어느 어버이이든 아이한테 못된 밥을 먹이며 ‘아이가 삭이기 나름이지요’ 하고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엉터리 책을 읽히며 ‘아이가 받아들이기 나름이지요’ 하고 이야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이 앞에서 못된 말을 하거나 얄궂은 말을 하거나 틀린 말을 하거나 엉터리 말을 하면서 ‘아이가 좋은 말을 골라서 잘 배울 테지요’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를 때뿐 아니라 여느 때에도 말을 바르게 가누고 생각을 옳게 가다듬으며 삶을 아름다이 추스르고자 힘쓰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더 많은 돈만 있으면 되기 때문일까 궁금합니다. 더 많은 돈만 있으면 되니까, 아이한테이든 나 스스로한테이든 아름다이 말하고 알맞게 말하며 착하고 참되게 말하는 매무새를 잃어도 괜찮을는지 궁금합니다.


  더 높은 이름값만 있으면 되기 때문인지 궁금합니다. 남 앞에서 우쭐거린다든지 남들을 팔아 제 밥그릇을 채우면 된다고 여기면서 내 속삶을 가꾸는 길하고는 동떨어지는 탓에 자꾸자꾸 말과 넋과 삶이 알차거나 훌륭한 길하고는 멀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지난날 시인 김수영 님은 당신이 좋아하는 우리 낱말 열 가지를 든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김수영 님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우리 낱말 가운데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나?’ 하고 동무들하고 신나게 떠들며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열 가지 고르기란 만만하지 않았을 뿐더러 한 가지만 고르는 일은 더욱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형은 ‘쏠’이라는 낱말 하나를 알아내어 아끼는데, 우리 형이 쓰는 ‘쏠’이라는 낱말을 입으로 굴리거나 마음으로 헤아리면서 ‘우리 누리에 이렇게 어여쁘고 깊은 낱말이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부럽고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로서는 내가 좋아하는 낱말로 무엇을 꼽아야 할는지 잘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좋아할 만한 낱말이란, 걸상이나 사람이나 나비나 강아지나 밥이나 엄마나 누나나 잎이나 일이나 땀 …… 이런저런 낱말들입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지 어느덧 스무 해가 훌쩍 지난 오늘날 곰곰이 되돌아봅니다. 내 고등학생 때에는 걸상이나 사람이나 나비나 강아지나 밥 같은 낱말을 좋아했다면, 오늘날에는 어떤 낱말을 좋아하며 곁에 두는가 헤아립니다. 오늘 이곳에서 내가 즐겁게 꼽을 만한 낱말로 무엇이 있을까 하나하나 살핍니다.

 

 어린이, 하늘, 흙, 물, 바람, 햇살, 마을, 꿈, 손, 빨래.

 

  지난날에도 오늘날에도 앞날에도 나로서는 으레 쓰는 낱말이 좋고, 내 삶에서 누리는 낱말이 좋습니다. 내 생각을 드러내는 낱말이 좋고, 내 생각을 이끌 낱말이 좋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는 할머니라는 낱말을 더없이 좋아할 수 있고, 이불이라는 낱말을 참으로 좋아할 수 있습니다. 구름이나 섬돌이나 지팡이라는 낱말을 좋아할는지 모릅니다. ‘먹다·하다·쓰다’ 같은 움직씨를 좋아할 수 있겠지요.


  나로서는 늘 쓰는 낱말이 반갑고, 언제나 입에서 굴리는 낱말이 좋으며, 아이와 부대끼며 떠올리거나 되뇌는 낱말이 고맙습니다. 내 삶과 어깨를 겯는 낱말이 즐겁습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낱말이 아름답습니다. 딱히 수수하다거나 투박하다고 이름붙이지 않아도 될 여느 낱말이 아주 살갑고 푸근합니다. (4343.5.8.흙./4345.6.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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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6-22 10:15   좋아요 0 | URL
몸이 아플 때에도 이렇게 고운 글을 쓰시네요...

(맨윗줄의 '땡깡'이란 말을 쓰셨네요~ 저도 이제 저 말을 써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된장님도 쓰셨으니까~ ^^)

숲노래 2012-06-22 17:07   좋아요 0 | URL
아파도 살아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나저나 자도 일해도
아프기는 똑같으니
그냥 일이든 뭐든 하며 살기는 하네요......

글샘 2012-06-22 09:40   좋아요 0 | URL
뗑깡 (일본어로...) 간질, 지랄병... 이런 말인데요... ㅠㅜ

hnine 2012-06-22 11:52   좋아요 0 | URL
아이쿠, 웃자고 썼답니다~ ^^

숲노래 2012-06-22 17:0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땡'으로는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기에 사투리인가 했는데, 일본말이었네요. 고맙습니다~
 
오늘의 네코무라 씨 셋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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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차려 주는 고마운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133] 호시 요리코, 《오늘의 네코무라 씨 (셋)》

 


  내 어릴 적, 동네에서는 ‘아기보기’를 해 주는 이웃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이웃 아주머니들은 다른 어느 부업보다 ‘아기보기’ 벌이가 쏠쏠하며 안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아기가 아프거나 울거나 하면 더없이 고단하다고, 더구나 아기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올 때에 아기가 왁왁 울어대면 싫은소리를 듣는다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아기보기 부업을 한 적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가 아기보기 부업을 한 적이 있었다면, 나는 퍽 어린 나날부터 ‘나 또한 어리’지만, ‘나보다 더 어리고 여린’ 목숨을 사랑스레 들여다보면서 아끼려 하는 눈길이나 마음길을 다스릴 수 있었을까 궁금하곤 합니다. 이웃집에서 아기보기를 할 때면, 그 집 가시내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니까, 제 동생도 아니면서 가없이 이뻐 하고 돌보아 주니까, 나한테도 우리 집 내 동생이 있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하다가는, 내 동생이 생기기 힘들다면 우리 어머니가 아기보기 부업을 살짝이라도 하면 어떠할까 싶곤 했어요.


  동생이 있는 동무가 한결 마음이 너그럽거나 넉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어린 동생을 늘 바라보고 따순 사랑을 주고받으며 무럭무럭 자란 동무들은 어쩐지 ‘나처럼 동생 없는 아이’보다 마음씀이나 생각밭이나 눈길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하는 대목을 바라보고, 내가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곳을 느끼곤 했어요.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집에서 동생을 보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한 집안에서는 누군가 막내가 될 테니까요.


  내가 잊지 못하는 어릴 적 일 가운데 하나를 되새겨 봅니다. 내가 국민학교 육학년 때였는데, 이제 학교에서 맏언니가 된 몸으로 어느 모로 우쭐거리는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갓 학교에 든 일학년 동생을 문득 바라보니 키가 참 작고 몸도 참 작으며 눈빛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모릅니다. 한창 개구쟁이 짓으로 학교를 누비던 나는, 일학년 어린 동생 작고 맑은 눈빛과 몸빛을 바라보며 아주 다소곳하게 말을 건넸고, 교실까지 이끌어 주었습니다. 내가 제대로 안 느끼거나 잊을 뿐이라 할 텐데, 내 마음속에도 어리거나 여린 목숨을 아끼는 사랑씨앗은 틀림없이 있어요.

 

 


- “다카시, 취직 결정되었다면서? 호텔 레스토랑에 예약할 테니 오늘 밤은 다 같이 축하 파티를…….” “됐어요. 오늘은 서클 녀석들이랑 한잔하러 가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모처럼만인데.” “그리고 호텔 음식은 이제 질렸어요. 네코무라 씨가 만들어 준 게 훨씬 더 맛있거든요. 뭐랄까, 그리운 맛이 난다고나 할까.” (17쪽)
- “정말? 그게 엄마가 만든 거였단 말이에요?” “마, 맞아. 솜씨는 없지만 열심히 만들었지.” “아니에요. 난 그 가방이 맘에 들어서 졸업할 때까지 계속 썼는데요?” (109쪽)


  내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이웃 아주머니 가운데 파출부 부업을 나가는 분이 더러 있었습니다. 날마다 나가기도 하고, 하루 걸러 하루 나가기도 합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다른 이웃집으로 파출부 일을 하기도 합니다. 모두 열다섯 개 동이 있는 오층짜리 아파트이건만, 열다섯 동 가운데에는 가난한 동이 있고 제법 가면 동이 있어요. 어릴 적에는 몰랐고, 나중에 스물 끄트머리쯤 되었을 때 오랜 동무를 만나 얘기를 하다가 ‘어릴 때 같이 살던 그 아파트마을 사이에 가난한 사람과 가면 사람이 따로 나뉘어졌다’는 소리를 비로소 들었습니다. 우리 집은 열석 평이었는데, 어느 집은 아홉 평이요, 또 어느 집은 열여덟 평이라 했고, 또 어느 집은 스물석 평이라 했어요. 어떻게 평수가 이리 다를 수 있을까 그때로서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 곰곰이 돌이키니, 동마다 호수가 달랐고 크기도 달랐다고 떠올랐어요.


  파출부 부업 나가던 아주머니들은 ‘집에서 늘 하는 일’을 똑같이 할 뿐이니까, 안 힘들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 말씀을 들으며 좀 아리송했어요. 집에서 늘 하는 그 집일이 이른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득한데, 이 일을 다른 집에서 또 한다니, 도무지 일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 노릇일까 하고.


  어머니는 날마다 밥을 차려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차리는 모습을 곁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면 이것저것 손이 많이 갑니다. 어머니는 밥을 차리는 동안 다리를 쉴 겨를이 없습니다. 살짝이라도 앉아 무릎이나 발목을 쉬지 못합니다. 손도 눈도 머리도 온통 밥하기에 쏠립니다. 밥을 다 차렸어도 어머니가 같이 밥술을 뜨는 일은 드뭅니다. 밥을 차려서 내놓은 다음, 다른 집일을 붙잡습니다. 이를테면 빨래를 한다든지 다 마른 옷을 갠다든지, 집안에 많던 꽃그릇에 물을 준다든지, 바느질을 한다든지,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다리를 쭉 뻗으며 쉬는 겨를이 없어요.

 

 


- “네! 만나지는 못해도 마음만은 전해질 거라고 믿으세요!” (25쪽)
-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소중한 사람이 슬퍼하면 위로해 주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냐? 솔직하게 사과하고 화해하면 속도 훨씬 시원해질 텐데.’ (76쪽)
- “어머, 어차피 눈물은 양파를 썰어도 나오는데요 뭐. 비록 거짓말이라 해도 가슴이 찡해지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니 어쩔 수 없잖아요.” (167쪽)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앞으로 가정부나 파출부 부업이나 일자리를 얻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적 있습니다. ‘남자 가정부’는 아마 아무도 안 쓰리라 느꼈지만, 남자라고 가정부나 파출부 일을 못 할 까닭은 없다고 여겼습니다. 외려 몸피 더 크고 힘살 더 단단한 사내들이 가정부나 파출부 노릇을 할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연 터전을 가장 사랑스레 돌보면서 가장 사랑스러운 삶결을 돌보는 일이라면, 가정부나 파출부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내 집은 나 스스로 예쁘게 건사하고, 다른 집은 다른 집대로 예쁘게 건사한다면 참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겼어요.


- “이 집은 엄마보다도 가정부가 자식들 일을 더 잘 알고 있구만!”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야말로 부인보다도 애인을 더 챙기잖아요!” … “그야 내가 예뻐지면 당신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평범한 아내예요. 평범한 아내일 뿐, 당신의 연구 재료가 아니라고요.” (47∼49쪽)
- “사모님과 어르신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인걸요. 분명 두 분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자라셨을 텐데.” “서로 사랑해서 낳은 아이? 네코무라 씨.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에요. 다만 하나가 된 이후에도 계속 사랑하며 살아가는 게 어려운 거죠.” (80∼81쪽)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오늘 내 집살림을 돌아봅니다. 치운다고 치우고, 쓴다고 쓸고, 닦는다고 닦는다지만, 집안은 참 어지럽습니다. 먼지가 많습니다. 살림살이는 여기저기 잔뜩 쌓이거나 흩어져, 무엇 하나 찾자면 꽤 애먹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한 해에 한 차례씩 살림집을 옮기다 보니, 무엇 하나 느긋하게 돌보면서 자리잡도록 하지 못하기도 했어요. 우리 살림살이에서 책이 무척 많다 보니, 책에 치여 다른 살림이 이래저래 눌리기도 합니다.


  이런 매무새로 무슨 가정부나 파출부 일을 한다고 꿈을 꾸었느냐 싶은데, 어린 나날 내가 꿈꾸던 결이 고스란히 살아서, 오늘 나는 집일을 도맡으며 아이들과 살아가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곧, 나는 집일을 도맡을 때에 내가 사랑할 자연 터전을 생각하고, 살붙이들을 따사로이 어루만질 손길을 생각하며, 나 스스로 내 삶을 좋아할 결을 생각할 노릇이로구나 싶어요.


  힘들다면 틀림없이 힘들 테지요. 고단하다면 어김없이 고단할 테지요. 그리고, 사랑스럽다면 참말 사랑스러워요. 아름답다면 참으로 아름답고요.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가 생각을 다스리는 무늬와 결과 흐름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생각을 어떻게 추슬러 빛내느냐에 따라 새롭게 거듭납니다.

 


- “한창 성장기인 여러분들은 지금쯤이면 벌써 저녁밥 먹고 가족과 함께 TV를 볼 시간 아닌가요?” “그건 너네 집 사정이고!” (123쪽)
- “부모든 자식이든 각자 사정은 있겠지만 부모가 없다는 것만으로 모든 걸 변명할 순 없어. 자네 역시 새끼고양이였을 때 부모도 없이 고생했지만 지금은 훌륭히 일하고 있잖아.” (133쪽)


  호시 요리코 님 만화책 《오늘의 네코무라 씨》(조은세상,2009) 셋째 권을 읽습니다. 가정부 일을 하는 고양이 네코무라 씨 이야기를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고양이 네코무라 씨는 언제나 노래하면서 집일을 합니다. 늘 즐겁게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합니다. 스스로 먹을 밥이든 스스로 입을 옷이든, 남이 먹을 밥이든 남이 입을 옷이든, 딱히 금을 긋지 않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며 밥을 차리기에, 고양이 네코무라 씨가 차리는 밥을 먹는 사람은 어느 누구나 즐거운 노래를 함께 먹습니다. 좋은 사랑을 담아 짓는 밥이니, 누구라도 좋은 사랑을 나누어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옆지기와 두 아이가 ‘굶어죽지 않게’끔 밥을 차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살붙이 모두(나까지) 즐겁게 밥을 먹고 즐겁게 하루를 누리기를 꿈꾸며 밥을 차리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담아 밥을 차리고, 사랑을 담아 빨래를 합니다. 밥을 차리는 고마운 손길을 나 스스로 누리면서 내가 나한테 고맙고, 내 밥을 먹는 살붙이들이 고마우며, 나와 함께 이 집에서 살아가는 모두 고맙구나 하고 느낄 이야기꽃입니다.


  나는 내 어머니가 나한테 차려 주던 고마운 밥을 생각하며 우리 살붙이들 먹을 밥을 차립니다. 나는 내 어머니 몸짓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집일을 하고 빨래를 합니다. 내 어머니 삶자락에 깃든 사랑을 하나하나 아로새기면서 나 스스로 내 보금자리를 빛내고 싶습니다. 멀지 않아, 우리 첫째 아이가 제 앙증맞은 손으로 밥을 차려 우리 두 어버이한테 내밀 테지요. 내가 꽤나 어렸을 적 내 앙증맞은 손으로 밥을 차려 내 어머니한테 내밀었듯, 우리 아이들도 스스로 씩씩하고 맑은 넋으로 아리땁게 자랄 수 있을 테지요. (4345.6.21.나무.ㅎㄲㅅㄱ)

 


― 오늘의 네코무라 씨 (셋) (호시 요리코 글·그림,박보영 옮김,조은세상 펴냄,2009.12.24./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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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6-2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을 차려 주는 고마운 사람,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친정에 갔더니 엄마가 부추전과 김치전과 수박을 내와서 아버지와 셋이 모여
먹으면서, 참 행복하구나,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가족이 모여 있다는 것, 그 안에
먹을 게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어요. 그 감사를 평상시엔 잊고 살 때가 많지만요...ㅋ

숲노래 2012-06-22 17:08   좋아요 0 | URL
함께 모여 먹는 즐거움을... 저도 늘 누리고 싶어요...
 
이상한 크레파스 풀빛 동화의 아이들
엘렌느 데스퓨토 그림, 로버트 먼치 글, 박무영 옮김 / 풀빛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맑은 빛을 생각할 때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6] 엘렌느 데스퓨토·로버트 먼치, 《이상한 크레파스》(풀빛,2002)

 


  어질어질한 머리로 밤새 잠을 뒤척이다가 새벽 늦게 잠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이른아침에 식구들은 아직 꿈누리를 날아다니고, 나는 홀로 걸레를 손에 쥐고는 방바닥을 훔칩니다. 끝방 바닥에 깔던 깔개를 들추어 마당에 넙니다. 아침부터 좋은 햇살이 퍼지니, 이 햇살을 받아 보송보송 곱게 마르리라 생각합니다.


  걸레질을 하고 걸레를 빨고, 다시 걸레질을 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합니다. 내 어릴 적 우리 어머니도 이른아침부터 집안을 쓸고 닦았습니다. 하루쯤 걸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어머니는 으레 이른아침부터 집안을 쓸고 닦으며 하루를 열었습니다.


  두 아이와 부산스레 살아가는 하루를 되짚습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비질을 해도 먼지나 모래가 쓸립니다. 집안과 마당을 쉴새없이 드나드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먼지와 모래를 실어나릅니다. 아들 둘 낳아 돌본 우리 어머니라면 날마다 이른아침부터 쓸고 닦는 일부터 할밖에 없었겠다고, 이제 와서 몸으로 깨닫습니다. 이른아침에 걸르지 않으며 할 일이라면, 비질과 걸레질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비질과 걸레질을 마친 나는 물을 마십니다. 어제 잔뜩 짠 풀물도 마십니다. 늦도록 자는 두 아이는 몸이 아프니까 늦도록 잘 텐데, 내 몸이라고 성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몸을 일으켜 움직입니다. 아이들 일어나서 배고프다 하면 무엇을 먹일 때에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이 몸이 나아져 신나게 뛰놀 만하다면, 아이들과 모처럼 어떤 나들이를 해 볼까 헤아려 봅니다.

 

 


.. 어느 날 브리짓이 엄마한테 말했어요. “엄마, 저 크레파스 좀 사 주세요. 친구들은 모두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그걸로 얼마나 멋지게 그림을 그리는지 몰라요.” ..  (5쪽)


  좋은 햇살과 함께 아이들 몸이 차츰 좋아지리라 믿습니다. 그래, 그러면 오늘 아이들이 일어나면 맨 먼저 옷을 벗겨야지요. 따순 물 나오도록 보일러를 돌리고, 물이 따뜻해질 때까지 시원한 물로 아버지부터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다음, 이윽고 물이 따뜻해지면 두 아이를 함께 씻겨야지요. 이동안 이불 한 채는 빨래기계에 넣어 빨래하고, 나머지 옷가지는 내가 복복 비비고 살살 헹구어야지요. 다 씻고 다 빨래한 다음, 식구들 모두 풀물을 마시며, 맛난 밥을 차려서 먹든, 아무래도 내 몸이 많이 힘드니 바깥으로 나가서 바깥밥을 사먹든 해야지요.


  생각을 해 보고, 다시 생각을 해 봅니다. 집에서 하는 일을 생각합니다. 집에서 누리는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늘 바라보며 받아들일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가슴속으로 스며들 사랑을 생각합니다. 옆지기와 이루는 삶을 생각하고, 시골집에서 맞이하는 하루를 생각합니다.


  봄에 처마 밑으로 찾아든 제비는 새끼 네 마리 씩씩하게 잘 컸습니다. 새벽에 깨고 아침에 날갯짓을 하다가는 저녁 늦도록 아무도 안 돌아옵니다. 모두들 먹이를 찾느라 바쁠는지 모르며, 기운찬 날갯짓을 가다듬느라 멀리멀리 마실을 다녀올는지 몰라요.

 


.. 엄마는 브리짓이 말했던 크레파스를 사 주었어요. 그것도 500개나 말이에요 ..  (6쪽)


  내가 맑은 빛을 생각할 때에 내 넋이 맑게 거듭난다고 느껴요. 내가 벌나비를 바라보며 너희 참 곱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말을 건넬 때에, 벌나비는 한결 고운 빛을 뽐내면서 싱그럽게 날갯짓하리라 느껴요. 책 한 권을 읽으면서도 너희 참 아름다운 줄거리를 이 몸에 아로새겼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말을 건네면, 책 한 권은 더 싱그러우며 슬기로운 빛무늬를 나누어 준다고 느껴요.


  내가 어두운 빛을 생각한다면, 내 넋 또한 어둡게 바뀌겠지요. 내가 케케묵은 빛을 헤아리면, 내 얼 또한 케케묵게 되겠지요. 그러니까, 나는 늘 맑은 빛을 생각하며 살아야 즐겁습니다. 이 좋은 삶을 생각하고, 저 좋은 길을 바라보며, 그 좋은 꿈을 북돋울 때에 하루하루 기쁘게 누리리라 느껴요.


  글을 쓰는 자리에서는 좋은 생각을 글로 빚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자리에서는 좋은 생각을 그림으로 담습니다.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는 좋은 생각을 사진으로 아로새깁니다.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서는 좋은 생각을 목소리에 싣습니다. 애써 궂은 생각이나 슬픈 생각을 글·그림·사진·노래에 얹을 일이 없어요. 굳이 나쁜 생각이나 몹쓸 생각을 어디에도 드러낼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 먹으라고 일부러 썩은 고기를 차릴 어버이란 없어요. 옆지기 먹으라고 일부러 쉰내 나는 나물을 내놓을 짝꿍은 없어요. 그런데 오늘날 삶터를 돌아보면, 더 때깔 좋고 더 굵직하게 보이는 푸성귀나 열매를 만든다면서 농약을 치고 비료와 항생제를 먹여요. 풀한테도 짐승한테도 못할 짓을 자꾸 일삼아요. 가게에 가득한 과자와 소시지와 빵마다 갖가지 화학첨가물 범벅이에요. 이들 먹을거리를 만든 사람은 ‘내 사랑스러운 아이’한테 먹일 생각이었을까요. 공장에서 화학첨가물 만드는 사람은 ‘내 사랑스러운 옆지기’한테 먹일 생각인가요.

 


.. “네, 엄마! 정말 깨끗이 지워지고 있어요!” 브리짓의 그 말은 사실이었어요. 목욕탕에서 나온 브리짓은 진짜 완전히 지워져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어머나, 세상에!” 엄마는 너무 놀라 소리쳤어요. “큰일이구나, 브리짓!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학교에 갈 수 있겠니?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은 학교에도 갈 수 없고, 일자리도 절대 구할 수 없단 말이다!” ..  (26쪽)


  엘렌느 데스퓨토 님 그림과 로버트 먼치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이상한 크레파스》(풀빛,2002)를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아이와 살가이 얘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그림책 어머니 또한 고작 열 몇 해 앞서는 ‘똑같은 아이’였을 텐데, 참말 열 몇 해만에 그림책 어머니는 아주 틀에 박히거나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고 말아요. 스스로 생각을 하지 못해요. 스스로 생각을 빛내지 않아요.


  한낱 그림책 줄거리로 나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은 학교에도 갈 수 없고, 일자리도 절대 구할 수 없단 말이다(26쪽)!” 같은 외침이 아니라고 느껴요. 참말 오늘날 한국땅 수많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런 굴레에 갇혀요. 생각이 아닌 굴레에 갇혀요. 생각을 버리고 굴레를 붙잡아요. 생각을 놓고 굴레를 거머쥐어요.


  왜 아이하고 함께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요. 왜 아이한테 크레파스를 500개씩이나 잔뜩 안기기만 하나요. 크레파스 500개 가운데 하나쯤 어머니가 즐겁게 손에 쥐어 그림을 그리면 안 될까요. 아이 아버지는 집에서 낮잠만 잘 노릇이 아니라, 500개나 되는 크레파스 가운데 하나를 쥐고는 아이랑 신나게 그림놀이를 누릴 수 없을까요.

 


.. 아빠는 전보다 더 멋지게 보였어요.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어때요? 아빠가 더 멋있어 보이지 않나요?” 브리짓이 물었어요. “난 도대체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구나!” “맞아요.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  (30쪽)


  그림책 어린이는 크레파스를 500개 가집니다. 이윽고 다른 500개를 가집니다. 머잖아 새로운 500개를 또 가집니다. 자그마치 1500개나 되는 크레파스를 가집니다. 이동안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 곁에서 아이 삶을 지켜보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느라 이토록 바쁜가 궁금합니다. 무엇에 쫓겨 이렇게 아이가 사랑스레 살아가는 꿈결을 지켜보지 못하는가 궁금합니다.


  ‘화가 되는 길’을 걸어가라고 아이한테 크레파스를 사 주지 않습니다.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는 길’을 걸어가라고 아이한테 이것저것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길을 손 잡고 걸어갈 노릇입니다. 맑은 빛을 생각하며 서로 맑은 꿈을 나눌 살붙이입니다. 맑은 빛을 아끼며 서로 맑은 사랑을 나눌 좋은 삶동무입니다. (4345.6.21.나무.ㅎㄲㅅㄱ)

 


― 이상한 크레파스 (엘렌느 데스퓨토 그림,로버트 먼치 글,박무영 옮김,풀빛 펴냄,2002.3.20./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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