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말

 


  아침에 밥을 먹이는 자리에서는 그렇게도 밥을 안 먹으려고 땡깡을 부리며 딴짓을 하던 아이가 낮 한 시 무렵 부엌 밥상 제 밥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더니 아빠 무릎에 털썩 앉고는 밥만 우걱우걱 씹어먹습니다. 배가 고팠겠지요? 진작부터 다른 반찬하고 밥을 먹으면 좋았으련만. 아빠하고 함께 밥먹는 자리에서 다른 데에 한눈 안 팔고 신나게 밥을 먹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이렇게라도 먹어 주니 고맙습니다. 아직 많이 어린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더 잘 알겠습니까. 더 놀고 싶고 더욱더 놀고 싶으며 더더 놀고 싶을 뿐인 이 작고 가녀린 목숨이 놀고 싶다고 하는데 억지로 밥숟가락 들도록 다그치며 입에 밥을 퍼 넣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배가 고플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뿐입니다. 놀다가 제풀에 지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배는 고프고 잠도 찾아와 꺽꺽거릴 때까지 가만히 지켜봅니다. 그러고는 아이 스스로 밥을 먹어야겠다 싶을 때 ‘옳지!’ 하고 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밥을 먹입니다. 아이는 요즈음 이렇게 한참 졸릴 무렵에 밥을 먹으면서 스르르 잠들곤 합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어버이된 사람으로서 다른 일은 거의 붙잡지 못합니다. 그동안 꾸준히 이어오던 글쓰기조차 하루에 한두 꼭지 쓰기마저 벅찹니다. 아이 보느라 바쁘고 힘들며 고단합니다. 아이가 쓰러져 잠든 다음에 셈틀을 켜고 글을 써야 하는데, 아이가 쓰러져 잠든 다음에는 애 아빠도 드러눕고 싶습니다. 허리가 결리고 두 눈은 감기며 온몸이 뻑적지근합니다.


  하루이틀이 아닌 여러 해째 이와 같이 살면서 제 둘레 사람들한테 편지 한 번 변변히 띄우지 못합니다. 받은 편지에 답장조차 거의 못 씁니다. 바쁘며 고된 나날을 보내면서 아이 키우는 다른 여느 어버이들은 어떠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모두들 우리 집식구처럼 고달프지는 않을 터이나 바쁘고 힘들기는 서로 매한가지가 아니랴 싶습니다. 바쁘고 힘들다지만 어여쁘며 착한 아이를 바라보는 동안 새힘을 얻지 않느냐 싶습니다.


  고이 잠든 아이는 오줌 기저귀를 가는 사이에 오줌을 징하게 눕니다. 이 바람에 아버지가 덮고 자야 할 이불이 홀라당 젖었습니다. 날이 좀 덥기는 하지만 아버지는 이불이 다 마를 때까지 자기 어렵습니다. 그래, 이런 오줌싸기를 바라보면서도 아이를 나무랄 노릇이 아니라, 아버지가 오늘만큼은 좀 늦게까지 글 하나 붙잡고 용을 쓰라는 뜻으로 읽고 싶습니다.


  깊은 밤에 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합니다. 어느 어버이이든 아이한테 못된 밥을 먹이며 ‘아이가 삭이기 나름이지요’ 하고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엉터리 책을 읽히며 ‘아이가 받아들이기 나름이지요’ 하고 이야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이 앞에서 못된 말을 하거나 얄궂은 말을 하거나 틀린 말을 하거나 엉터리 말을 하면서 ‘아이가 좋은 말을 골라서 잘 배울 테지요’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를 때뿐 아니라 여느 때에도 말을 바르게 가누고 생각을 옳게 가다듬으며 삶을 아름다이 추스르고자 힘쓰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더 많은 돈만 있으면 되기 때문일까 궁금합니다. 더 많은 돈만 있으면 되니까, 아이한테이든 나 스스로한테이든 아름다이 말하고 알맞게 말하며 착하고 참되게 말하는 매무새를 잃어도 괜찮을는지 궁금합니다.


  더 높은 이름값만 있으면 되기 때문인지 궁금합니다. 남 앞에서 우쭐거린다든지 남들을 팔아 제 밥그릇을 채우면 된다고 여기면서 내 속삶을 가꾸는 길하고는 동떨어지는 탓에 자꾸자꾸 말과 넋과 삶이 알차거나 훌륭한 길하고는 멀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지난날 시인 김수영 님은 당신이 좋아하는 우리 낱말 열 가지를 든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김수영 님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우리 낱말 가운데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나?’ 하고 동무들하고 신나게 떠들며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열 가지 고르기란 만만하지 않았을 뿐더러 한 가지만 고르는 일은 더욱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형은 ‘쏠’이라는 낱말 하나를 알아내어 아끼는데, 우리 형이 쓰는 ‘쏠’이라는 낱말을 입으로 굴리거나 마음으로 헤아리면서 ‘우리 누리에 이렇게 어여쁘고 깊은 낱말이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부럽고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로서는 내가 좋아하는 낱말로 무엇을 꼽아야 할는지 잘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좋아할 만한 낱말이란, 걸상이나 사람이나 나비나 강아지나 밥이나 엄마나 누나나 잎이나 일이나 땀 …… 이런저런 낱말들입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지 어느덧 스무 해가 훌쩍 지난 오늘날 곰곰이 되돌아봅니다. 내 고등학생 때에는 걸상이나 사람이나 나비나 강아지나 밥 같은 낱말을 좋아했다면, 오늘날에는 어떤 낱말을 좋아하며 곁에 두는가 헤아립니다. 오늘 이곳에서 내가 즐겁게 꼽을 만한 낱말로 무엇이 있을까 하나하나 살핍니다.

 

 어린이, 하늘, 흙, 물, 바람, 햇살, 마을, 꿈, 손, 빨래.

 

  지난날에도 오늘날에도 앞날에도 나로서는 으레 쓰는 낱말이 좋고, 내 삶에서 누리는 낱말이 좋습니다. 내 생각을 드러내는 낱말이 좋고, 내 생각을 이끌 낱말이 좋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는 할머니라는 낱말을 더없이 좋아할 수 있고, 이불이라는 낱말을 참으로 좋아할 수 있습니다. 구름이나 섬돌이나 지팡이라는 낱말을 좋아할는지 모릅니다. ‘먹다·하다·쓰다’ 같은 움직씨를 좋아할 수 있겠지요.


  나로서는 늘 쓰는 낱말이 반갑고, 언제나 입에서 굴리는 낱말이 좋으며, 아이와 부대끼며 떠올리거나 되뇌는 낱말이 고맙습니다. 내 삶과 어깨를 겯는 낱말이 즐겁습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낱말이 아름답습니다. 딱히 수수하다거나 투박하다고 이름붙이지 않아도 될 여느 낱말이 아주 살갑고 푸근합니다. (4343.5.8.흙./4345.6.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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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6-22 10:15   좋아요 0 | URL
몸이 아플 때에도 이렇게 고운 글을 쓰시네요...

(맨윗줄의 '땡깡'이란 말을 쓰셨네요~ 저도 이제 저 말을 써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된장님도 쓰셨으니까~ ^^)

숲노래 2012-06-22 17:07   좋아요 0 | URL
아파도 살아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나저나 자도 일해도
아프기는 똑같으니
그냥 일이든 뭐든 하며 살기는 하네요......

글샘 2012-06-22 09:40   좋아요 0 | URL
뗑깡 (일본어로...) 간질, 지랄병... 이런 말인데요... ㅠㅜ

hnine 2012-06-22 11:52   좋아요 0 | URL
아이쿠, 웃자고 썼답니다~ ^^

숲노래 2012-06-22 17:0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땡'으로는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기에 사투리인가 했는데, 일본말이었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