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네코무라 씨 셋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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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차려 주는 고마운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133] 호시 요리코, 《오늘의 네코무라 씨 (셋)》

 


  내 어릴 적, 동네에서는 ‘아기보기’를 해 주는 이웃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이웃 아주머니들은 다른 어느 부업보다 ‘아기보기’ 벌이가 쏠쏠하며 안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아기가 아프거나 울거나 하면 더없이 고단하다고, 더구나 아기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올 때에 아기가 왁왁 울어대면 싫은소리를 듣는다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아기보기 부업을 한 적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가 아기보기 부업을 한 적이 있었다면, 나는 퍽 어린 나날부터 ‘나 또한 어리’지만, ‘나보다 더 어리고 여린’ 목숨을 사랑스레 들여다보면서 아끼려 하는 눈길이나 마음길을 다스릴 수 있었을까 궁금하곤 합니다. 이웃집에서 아기보기를 할 때면, 그 집 가시내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니까, 제 동생도 아니면서 가없이 이뻐 하고 돌보아 주니까, 나한테도 우리 집 내 동생이 있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하다가는, 내 동생이 생기기 힘들다면 우리 어머니가 아기보기 부업을 살짝이라도 하면 어떠할까 싶곤 했어요.


  동생이 있는 동무가 한결 마음이 너그럽거나 넉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어린 동생을 늘 바라보고 따순 사랑을 주고받으며 무럭무럭 자란 동무들은 어쩐지 ‘나처럼 동생 없는 아이’보다 마음씀이나 생각밭이나 눈길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하는 대목을 바라보고, 내가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곳을 느끼곤 했어요.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집에서 동생을 보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한 집안에서는 누군가 막내가 될 테니까요.


  내가 잊지 못하는 어릴 적 일 가운데 하나를 되새겨 봅니다. 내가 국민학교 육학년 때였는데, 이제 학교에서 맏언니가 된 몸으로 어느 모로 우쭐거리는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갓 학교에 든 일학년 동생을 문득 바라보니 키가 참 작고 몸도 참 작으며 눈빛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모릅니다. 한창 개구쟁이 짓으로 학교를 누비던 나는, 일학년 어린 동생 작고 맑은 눈빛과 몸빛을 바라보며 아주 다소곳하게 말을 건넸고, 교실까지 이끌어 주었습니다. 내가 제대로 안 느끼거나 잊을 뿐이라 할 텐데, 내 마음속에도 어리거나 여린 목숨을 아끼는 사랑씨앗은 틀림없이 있어요.

 

 


- “다카시, 취직 결정되었다면서? 호텔 레스토랑에 예약할 테니 오늘 밤은 다 같이 축하 파티를…….” “됐어요. 오늘은 서클 녀석들이랑 한잔하러 가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모처럼만인데.” “그리고 호텔 음식은 이제 질렸어요. 네코무라 씨가 만들어 준 게 훨씬 더 맛있거든요. 뭐랄까, 그리운 맛이 난다고나 할까.” (17쪽)
- “정말? 그게 엄마가 만든 거였단 말이에요?” “마, 맞아. 솜씨는 없지만 열심히 만들었지.” “아니에요. 난 그 가방이 맘에 들어서 졸업할 때까지 계속 썼는데요?” (109쪽)


  내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이웃 아주머니 가운데 파출부 부업을 나가는 분이 더러 있었습니다. 날마다 나가기도 하고, 하루 걸러 하루 나가기도 합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다른 이웃집으로 파출부 일을 하기도 합니다. 모두 열다섯 개 동이 있는 오층짜리 아파트이건만, 열다섯 동 가운데에는 가난한 동이 있고 제법 가면 동이 있어요. 어릴 적에는 몰랐고, 나중에 스물 끄트머리쯤 되었을 때 오랜 동무를 만나 얘기를 하다가 ‘어릴 때 같이 살던 그 아파트마을 사이에 가난한 사람과 가면 사람이 따로 나뉘어졌다’는 소리를 비로소 들었습니다. 우리 집은 열석 평이었는데, 어느 집은 아홉 평이요, 또 어느 집은 열여덟 평이라 했고, 또 어느 집은 스물석 평이라 했어요. 어떻게 평수가 이리 다를 수 있을까 그때로서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 곰곰이 돌이키니, 동마다 호수가 달랐고 크기도 달랐다고 떠올랐어요.


  파출부 부업 나가던 아주머니들은 ‘집에서 늘 하는 일’을 똑같이 할 뿐이니까, 안 힘들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 말씀을 들으며 좀 아리송했어요. 집에서 늘 하는 그 집일이 이른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득한데, 이 일을 다른 집에서 또 한다니, 도무지 일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 노릇일까 하고.


  어머니는 날마다 밥을 차려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차리는 모습을 곁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면 이것저것 손이 많이 갑니다. 어머니는 밥을 차리는 동안 다리를 쉴 겨를이 없습니다. 살짝이라도 앉아 무릎이나 발목을 쉬지 못합니다. 손도 눈도 머리도 온통 밥하기에 쏠립니다. 밥을 다 차렸어도 어머니가 같이 밥술을 뜨는 일은 드뭅니다. 밥을 차려서 내놓은 다음, 다른 집일을 붙잡습니다. 이를테면 빨래를 한다든지 다 마른 옷을 갠다든지, 집안에 많던 꽃그릇에 물을 준다든지, 바느질을 한다든지,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다리를 쭉 뻗으며 쉬는 겨를이 없어요.

 

 


- “네! 만나지는 못해도 마음만은 전해질 거라고 믿으세요!” (25쪽)
-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소중한 사람이 슬퍼하면 위로해 주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냐? 솔직하게 사과하고 화해하면 속도 훨씬 시원해질 텐데.’ (76쪽)
- “어머, 어차피 눈물은 양파를 썰어도 나오는데요 뭐. 비록 거짓말이라 해도 가슴이 찡해지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니 어쩔 수 없잖아요.” (167쪽)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앞으로 가정부나 파출부 부업이나 일자리를 얻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적 있습니다. ‘남자 가정부’는 아마 아무도 안 쓰리라 느꼈지만, 남자라고 가정부나 파출부 일을 못 할 까닭은 없다고 여겼습니다. 외려 몸피 더 크고 힘살 더 단단한 사내들이 가정부나 파출부 노릇을 할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연 터전을 가장 사랑스레 돌보면서 가장 사랑스러운 삶결을 돌보는 일이라면, 가정부나 파출부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내 집은 나 스스로 예쁘게 건사하고, 다른 집은 다른 집대로 예쁘게 건사한다면 참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겼어요.


- “이 집은 엄마보다도 가정부가 자식들 일을 더 잘 알고 있구만!”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야말로 부인보다도 애인을 더 챙기잖아요!” … “그야 내가 예뻐지면 당신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평범한 아내예요. 평범한 아내일 뿐, 당신의 연구 재료가 아니라고요.” (47∼49쪽)
- “사모님과 어르신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인걸요. 분명 두 분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자라셨을 텐데.” “서로 사랑해서 낳은 아이? 네코무라 씨.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에요. 다만 하나가 된 이후에도 계속 사랑하며 살아가는 게 어려운 거죠.” (80∼81쪽)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오늘 내 집살림을 돌아봅니다. 치운다고 치우고, 쓴다고 쓸고, 닦는다고 닦는다지만, 집안은 참 어지럽습니다. 먼지가 많습니다. 살림살이는 여기저기 잔뜩 쌓이거나 흩어져, 무엇 하나 찾자면 꽤 애먹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한 해에 한 차례씩 살림집을 옮기다 보니, 무엇 하나 느긋하게 돌보면서 자리잡도록 하지 못하기도 했어요. 우리 살림살이에서 책이 무척 많다 보니, 책에 치여 다른 살림이 이래저래 눌리기도 합니다.


  이런 매무새로 무슨 가정부나 파출부 일을 한다고 꿈을 꾸었느냐 싶은데, 어린 나날 내가 꿈꾸던 결이 고스란히 살아서, 오늘 나는 집일을 도맡으며 아이들과 살아가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곧, 나는 집일을 도맡을 때에 내가 사랑할 자연 터전을 생각하고, 살붙이들을 따사로이 어루만질 손길을 생각하며, 나 스스로 내 삶을 좋아할 결을 생각할 노릇이로구나 싶어요.


  힘들다면 틀림없이 힘들 테지요. 고단하다면 어김없이 고단할 테지요. 그리고, 사랑스럽다면 참말 사랑스러워요. 아름답다면 참으로 아름답고요.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가 생각을 다스리는 무늬와 결과 흐름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생각을 어떻게 추슬러 빛내느냐에 따라 새롭게 거듭납니다.

 


- “한창 성장기인 여러분들은 지금쯤이면 벌써 저녁밥 먹고 가족과 함께 TV를 볼 시간 아닌가요?” “그건 너네 집 사정이고!” (123쪽)
- “부모든 자식이든 각자 사정은 있겠지만 부모가 없다는 것만으로 모든 걸 변명할 순 없어. 자네 역시 새끼고양이였을 때 부모도 없이 고생했지만 지금은 훌륭히 일하고 있잖아.” (133쪽)


  호시 요리코 님 만화책 《오늘의 네코무라 씨》(조은세상,2009) 셋째 권을 읽습니다. 가정부 일을 하는 고양이 네코무라 씨 이야기를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고양이 네코무라 씨는 언제나 노래하면서 집일을 합니다. 늘 즐겁게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합니다. 스스로 먹을 밥이든 스스로 입을 옷이든, 남이 먹을 밥이든 남이 입을 옷이든, 딱히 금을 긋지 않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며 밥을 차리기에, 고양이 네코무라 씨가 차리는 밥을 먹는 사람은 어느 누구나 즐거운 노래를 함께 먹습니다. 좋은 사랑을 담아 짓는 밥이니, 누구라도 좋은 사랑을 나누어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옆지기와 두 아이가 ‘굶어죽지 않게’끔 밥을 차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살붙이 모두(나까지) 즐겁게 밥을 먹고 즐겁게 하루를 누리기를 꿈꾸며 밥을 차리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담아 밥을 차리고, 사랑을 담아 빨래를 합니다. 밥을 차리는 고마운 손길을 나 스스로 누리면서 내가 나한테 고맙고, 내 밥을 먹는 살붙이들이 고마우며, 나와 함께 이 집에서 살아가는 모두 고맙구나 하고 느낄 이야기꽃입니다.


  나는 내 어머니가 나한테 차려 주던 고마운 밥을 생각하며 우리 살붙이들 먹을 밥을 차립니다. 나는 내 어머니 몸짓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집일을 하고 빨래를 합니다. 내 어머니 삶자락에 깃든 사랑을 하나하나 아로새기면서 나 스스로 내 보금자리를 빛내고 싶습니다. 멀지 않아, 우리 첫째 아이가 제 앙증맞은 손으로 밥을 차려 우리 두 어버이한테 내밀 테지요. 내가 꽤나 어렸을 적 내 앙증맞은 손으로 밥을 차려 내 어머니한테 내밀었듯, 우리 아이들도 스스로 씩씩하고 맑은 넋으로 아리땁게 자랄 수 있을 테지요. (4345.6.21.나무.ㅎㄲㅅㄱ)

 


― 오늘의 네코무라 씨 (셋) (호시 요리코 글·그림,박보영 옮김,조은세상 펴냄,2009.12.24./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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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6-2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을 차려 주는 고마운 사람,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친정에 갔더니 엄마가 부추전과 김치전과 수박을 내와서 아버지와 셋이 모여
먹으면서, 참 행복하구나,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가족이 모여 있다는 것, 그 안에
먹을 게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어요. 그 감사를 평상시엔 잊고 살 때가 많지만요...ㅋ

숲노래 2012-06-22 17:08   좋아요 0 | URL
함께 모여 먹는 즐거움을... 저도 늘 누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