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랑나비야, 기운내서 날아오르렴

[시골노래] 봄에 깨어난 ‘우리 집’ 나비



낮에 마당 한쪽에 꽃을 옮겨심다가 나비 한 마리를 만납니다. 그런데 이 나비가 하늘을 팔랑팔랑 날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솔밭(부추밭)에서 다리를 써서 모시줄기를 타고 올라갑니다. 모시풀 꼭대기까지 기어서 다 올라온 나비는 한동안 가만히 있더니 날개를 살며시 들었다가 내립니다.


날지 않고 다리로 기어다니는 나비를 본 아홉 살 큰아이는 부리나케 방으로 들어갑니다. 나비도감을 얼른 가지고 나옵니다. 한 장씩 차근차근 넘기면서 어떤 나비인지 이름을 찾아보려 합니다.


코앞에서 마주하는 갓 깨어난 나비를 찬찬히 살피면서 도감을 넘기던 큰아이는 “여기 봐! 이 나비야! 산호랑나비야!” 하고 외칩니다. 아, 그렇구나. 이 고운 나비는 산호랑나비라는 아이로구나.


나비 이름을 알고서 나비를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옳거니, 이 아이는 우리 집 초피나무에서 막 깨어났군요. 겨우내 초피나무 한쪽에서 번데기로 지낸 듯해요. 이른봄에 깨어나는 나비는 지난가을 끝자락에 번데기를 틀고는 긴긴 겨울잠을 잔다고 하거든요.


초피잎을 좋아해서 초피나무에서 겨울잠을 잤을 테지요. 이 어린 산호랑나비는 날개를 다 말린 뒤에는 꽃가루하고 꿀을 찾아서 나풀나풀 날아다닐 테지요. 아니, 산호랑나비 애벌레는 초피잎을 좋아하고, 산호랑나비는 ‘초피나무 꽃가루’를 좋아할는지 몰라요. 그러고 보니, 요즈음 우리 집 초피나무는 하나둘 꽃봉오리를 터뜨립니다. 깨알보다 조금 굵다고 할 만큼 조그마한 꽃을 피우는 초피나무인데, 초피꽃은 풀빛입니다. 잎빛하고 같아요. 꽃가루만 살짝 노란 빛으로 드러납니다.


초피꽃이 필 무렵은 초피잎이 가장 보드랍다고 할 만해요. 초피잎이 가장 보드랍다고 할 만한 무렵은 민들레꽃도 한창입니다. 유채꽃은 차츰 저무는 사월 한복판이지만, 배추꽃이 피고 후박나무도 꽃봉오리를 터뜨려요. 곧 장미나무도 커다란 봉오리를 터뜨릴 테고요.


날개를 제대로 말리지 못한 탓인지 뒤뚱뒤뚱 걷기도 하고, 한 번 날아오르는가 싶다가도 마당에 떨어진 산호랑나비를 바라봅니다. 날개가 좀 가벼워졌는지 날개를 꽤 빠르게 퍼덕입니다. 그래도 꽤 오래도록 날아오르지 못하고 기운만 빠지는지 솔잎을 붙잡고 날개를 쉽니다.


이 예쁜 사월나비는, 봄나비는, 시골나비는, 또 ‘우리 집 나비’는 마음껏 하늘을 가르면서 새로운 몸을 기뻐할 테지요. 기쁘게 날갯짓을 하며 노닐다가 고운 짝을 만날 테고, ‘제(산호랑나비)가 태어난 초피나무’에 다시 알을 낳겠지요. 따스한 봄바람을 타고 우리 집을 비롯해서 우리 마을도 이웃 마을과 바다까지도, 또 골짜기랑 너른 들까지도 마음껏 날아다니렴. 아름다운 봄이란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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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미리 투표하며 유채꽃길 걸었어요

[시골노래] 유채꽃 노란물결 누리는 시골길



  4월 13일은 투표를 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4월 8일하고 9일 이틀에 걸쳐서 미리 투표를 할 수 있어요. 저희 식구가 지내는 전남 고흥에서는 4월 8일을 앞두고 마을방송이 아침 낮 저녁으로 나왔는데, 4월 8일하고 9일에 ‘미리 투표’를 하라는 이야기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을방송을 고흥군 선관위에서 하루에 너덧 차례 즈음 하니 살짝 귀가 따가웠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들일을 하느라 방송을 놓칠 수도 있다지만 쩌렁쩌렁 울리는 방송을 날마다 몇 차례씩 여러 날에 걸쳐서 수없이 해야 했을까 싶었어요.


  바야흐로 봄날을 맞이해서 마을논에 유채꽃이 노랗게 물결을 이룹니다. 4월 한복판으로 접어들어야 아주 빛나는 노란물결이 되겠구나 싶지만, 4월 8일 즈음만 하더라도 노란물결이 몹시 고와요. 그래서 우리는 면소재지까지 씩씩하게 걸어가기로 합니다. 유채놀이도 하고, 투표도 하고, 아이들은 꽃삽을 쥐고 흙을 파면서 놀기로 합니다.


  꽃바람이 싱그럽습니다. 꽃바람을 가르는 군내버스를 바라봅니다. 새봄에 시골사람은 군내버스를 타도 신나는 ‘꽃길마실’, 영어로 하자면 ‘드라이브’가 될 만합니다. 마을에서 읍내로 다녀오는 버스길도 싱그러운 꽃놀이가 될 만하달까요.


  우리는 큰길이 아닌 논둑길을 걷습니다. 큰길에도 자동차는 거의 안 다니는 깊은 시골이지만, 꽃물결 한복판을 걸을 적에 한결 즐겁습니다. 두 아이는 어머니 겉옷을 받아서 해가리기를 하는지 그냥 덮어쓰는 놀이가 되는지 깔깔거립니다.


  오십 분 즈음 걸어서 면소재지 어귀에 닿을 무렵 군내버스를 또 한 번 만납니다. 자작나무가 한 그루 있고, 나즈막한 멧자락에 봄꽃이 알록달록한 모습이 해사합니다. 아, 이렇게 맑고 좋은 날 들마실을 하니 무척 즐겁네요. 투표도 투표이지만, 선거날에 앞서 미리 투표하는 곳에 가면서 한결 느긋하면서 가벼운 마음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새봄을 맞아서 밭을 일구면서 씨앗을 심느라 날마다 바쁘지만, 하루쯤 일손을 쉬면서 느긋하게 들숨을 마시면서 시골빛을 누리도록 해 주는 ‘미리하는 선거’라고 할까요.


  면소재지 중학교에 닿습니다. 체육관으로 들어갈 즈음 ‘글씨를 읽을 줄 아는’ 큰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사전선거’가 뭐야?” “응, 먼저 선거를 하거나 미리 선거를 한다는 뜻이야.” “‘선거’는 뭐야?” “뽑는다는 말인데, 우리 고장을 돌보는 일을 맡을 사람을 뽑는 일을 가리켜.” “아,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4월 8일하고 9일을 놓고 ‘사전선거일’이라고만 합니다. 사회에서 어른들은 이런 말을 그럭저럭 쓸 테지만, 아무래도 아이들한테는 안 쉬운 말이 되겠구나 싶고, 조금 더 헤아린다면 ‘미리’나 ‘먼저’라는 낱말을 쓰면 한결 나을 수 있지 싶습니다. “차 없는 날”이라는 이름을 쓰듯이 “미리 선거하는 날”이라든지 “먼저 선거하는 날” 같은 이름도 얼마든지 쓸 수 있겠지요.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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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시골살이 일기'를 쓸 겨를이 거의 없이

신나게 아이들하고 지내는데

이 이야기만큼은 안 쓸 수 없어서

[시골노래] 한 자락을 오마이뉴스 기사로 올렸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77891



바야흐로 오늘 아침부터 날씨가 찬찬히 풀립니다.

참말 고흥에서는 눈 구경이 이제 끝난 듯합니다 ^^;;;


..



시골노래. 한 해에 꼭 한 번 ‘눈맛’ 보는 날



한 해에 한 번 눈이 내릴 동 말 동하는 전남 고흥에서는, 그나마 한 번이나 두 번쯤 눈이 내리더라도 하늘에서 모두 녹기 일쑤이고, 밤새 눈이 내렸으면 아침볕에 모두 녹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포근한 고흥인데, 어제랑 그제에는 한 해에 한 번 보기 어려운 눈발이 밤새 내리고 날이 꽤 추워서 겨울볕에 돋아난 갓이랑 유채는 모두 얼어죽고, 유자나무도 추위에 발발 떱니다. 이러면서 모처럼 마당하고 고샅에도 눈이 제법 쌓입니다.


눈을 쓸 일이 없다시피 한 고장에서 모처럼 아이들하고 눈을 쓸면서 놉니다. 아이들은 온몸이 눈투성이가 되면서 눈밭을 뒹굴고, 온몸이 꽁꽁 얼어붙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가 줍니다. 아침부터 한낮까지 실컷 만지면서 놀던 눈은 두 시 즈음 지나니 어느새 녹아서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밤새 내린 눈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고장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전남 고흥에서 살며 눈발을 모처럼 만나도 곧 녹아서 사라지는 줄 숱하게 겪었기에, 온 마을을 덮은 눈을 자루에 퍼담아서 마당 한쪽으로 옮겼습니다. 아이들은 눈더미에 구멍길을 내면서 놀고, 눈더미에 온몸을 던지면서 놉니다. 아이들도 나도 함께 볼이랑 손발가락이 꽁꽁 얼면서 눈을 쓸고 놀던 하루를 사진으로 남깁니다.


눈맛 실컷 보았으니 배는 안 고프지? 이 예쁜 아이들아.


한 해에 한 번 겨우 구경할까 말까 하는 눈을 구경하면서 빗자루를 들고 대문 앞부터 마을 한 바퀴를 빙 돌면서 쓸고, 마을 어귀까지 씁니다. 이렇게 마을길을 빗자루로 쓰는 동안 면사무소에서 면내방송을 합니다. 눈이 많이 내려서 군내버스가 다니지 못하니 양해해 달라고 하는 방송입니다. 그런데 고흥에 내린 눈은 고작 1센티미터가 될랑 말랑 합니다.


이만 한 눈으로 버스가 못 다닌다고? 다른 고장에서도 이럴까? 다른 고장에서는 눈이 길바닥에 살짝 덮이기만 해도 버스가 안 다니나? 더구나 고흥에서는 한낮이 되면 마을이며 길이며 눈이 몽땅 녹는데?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찾아오면 날씨는 차츰 풀릴 테고, 날씨가 풀리면 이제 고흥에서는 눈을 볼 일이 더욱 드물 테지요.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눈 자국을 거의 볼 수 없는 모습에 무척 아쉬워할 텐데, 눈 자국을 볼 수 없어도 다른 놀이는 많습니다. 부디 서운해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겨울 추위가 곱게 누그러지면서 한동안 포근한 바람으로 살가이 어루만져 주기를 빕니다. 추위가 너무 오래 이어지면 나무도 고단하거든요.


겨울아, 눈아, 반가웠어. 눈이 내려 주어서 비로소 이 겨울에 신나게 눈맛을 보고 눈투성이가 되면서 눈밭에서 구를 수 있었구나. 다음에 또 만나자. 4349.1.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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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103] ‘우리 집 파란띠제비나비’ 날다

― 알에서 나비까지 스물이레



  지난 7월 29일 낮 세 시 반 무렵, 우리 집 마당에서 ‘파란띠제비나비(청띠제비나비)’를 한 마리 보았습니다. 이날 본 파란띠제비나비는 아주 부산하게 날갯짓을 하며 돌아다녔습니다. 다만, 우리 집 마당에 우람하게 선 후박나무 둘레를 맴돌았어요. 가끔 맥문동꽃에 앉아서 꽃가루를 빨아먹는 듯했지만, 이내 날아올라 후박나무를 빙글빙글 돌았고,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기도 하고, 이 잎 저 잎 바지런히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되풀이했습니다.


  이십 분 남짓 후박나무를 구석구석 돌듯이 날던 파란띠제비나비는 이윽고 우리 집 마당을 떠나 멀리 날아갔습니다.


  전남 고흥에 후박나무가 곳곳에 많기도 하지만, 마을이나 여느 살림집 가운데 후박나무를 우람하게 키우는 집은 매우 드뭅니다. 우리 마을에는 우리 집 한 곳만 후박나무를 키우고, 우리 마을과 맞닿은 이웃 여러 마을에서도 꼭 한 집만 보았습니다.


  8월 10일 아침에 큰아이가 크게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랍니다. 무슨 일이니? “아버지, 여기 봐요. 애벌레가 이렇게 많아!” 풀빛 몸인 애벌레가 거의 스무 마리 즈음 후박잎을 갉아먹습니다. 게다가 이 애벌레는 여기저기 흩어져서 잎을 갉지 않고, 한쪽에 모여서 잎을 갉습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으며 셉니다. 두 아이가 센 애벌레 숫자는 열일곱. 그러나 아이들이 못 본 곳에 있는 애벌레를 더 세니 스무 마리가 넘습니다.


  처음에는 범나비 애벌레인가 싶었으나, 범나비 애벌레하고 생김새가 달라요. 한참 들여다보고 요모조모 알아보니, 이 애벌레는 바로 ‘파란띠제비나비’ 애벌레였고, 번데기를 틀기 앞서 마지막으로 허물벗기를 한 모습입니다.


  수수께끼를 하나 풉니다. 열 며칠 앞서 우리 집 후박나무에 찾아와서 이 잎 저 잎 돌던 ‘어른나비’는 암나비였고, 그 암나비는 후박잎마다 알을 낳느라 몹시 부산했구나 싶습니다. 알을 낳으려고 잎마다 돌아다니니 홀가분하게 내려앉아서 느긋하게 쉴 겨를이 없었을 테지요. 파란띠제비나비는 잎 하나에 알 하나만 낳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바삐 이 잎 저 잎 돌아다녀야 했겠구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토실토실하게 푸른 빛깔인 애벌레는 다섯째 허물벗기를 마친 몸이라고 하는데, 지난 허물벗기를 하는 동안 이 애벌레를 한 번도 못 알아챘습니다. 알이 있는지조차 못 알아챘어요.


  8월 11일 아침, 애벌레 숫자가 조금 줍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 갔나 싶지만, 그동안 범나비 애벌레를 지켜보며 배우기로는, 이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갔다기보다 새한테 잡아먹혔으리라 느낍니다.


  8월 12일 아침, 번데기를 하나 봅니다. 여러 애벌레 가운데 한 마리는 번데기로 몸을 바꾸었습니다. 애벌레 숫자는 어제보다 더 줍니다. 하루 사이에 더 잡아먹혔지 싶습니다. 그래도, 아직 살아남은 애벌레는 씩씩하게, 그러나 어제나 그제보다 훨씬 굼뜨고 느린 몸짓으로 잎을 갉습니다. 이 아이들도 곧 번데기가 되려고 할 테지요.


  8월 13일 아침, 번데기 하나가 새로 생깁니다. 그런데, 8월 14일 아침에 보니 그제에 새로 생긴 번데기가 텅 빕니다. 텅 빈 번데기에는 개미가 우글거립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번데기는 왜 텅 비고 이 자리에 개미만 우글거릴까요? 설마 새가 번데기까지 쪼아서 잡아먹었을까요? 8월 12일에 처음 생긴 번데기는 멀쩡합니다. 이 번데기를 보면서 부디 나비로 깨어날 때까지 걱정없이 느긋하면서 고요하게 잠을 자렴 하고 속삭입니다. 날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들여다보면서 번데기한테 기운을 북돋아 주는 말을 들려줍니다.


  8월 24일 아침, 번데기 모습이 꽤 바뀌면서 통통해졌다고 느낍니다. 8월 25일 아침, 번데기에 살짝 검은 빛이 돕니다. ‘그날’이 거의 다다랐다고 깨닫습니다.


  이제 8월 26일 아침 7시 33분, 번데기에 검은 빛이 아주 많이 감돕니다. 같은 날 아침 09시 36분, 번데기에 검은 무늬가 짙게 새겨집니다. 아이들을 부릅니다. 아이들더러 틈틈이 마당에서 번데기를 들여다보라고 얘기합니다. “이제 나비 나와?” “응, 아주 천천히 나와.” “몇 시간 걸려?” “여섯 시간쯤 걸린다고 하는데, 나비마다 다를 테니, 지켜보면 돼.”


  아침 11시 00분, 눈처럼 보이는 까만 점 둘이 번데기 위쪽에 나타납니다. 번데기가 터질 듯 말 듯한 모습입니다. 이러고 나서 밥을 짓느라 한 시간 사이를 두고 낮 12시 03분에 마당에 나왔더니, 아니 웬걸, 파란띠제비나비가 어느새 번데기를 다 벗고 밖으로 나왔어요.


  마지막 한 시간 사이에 깨어났습니다. 번데기에서 고개를 처음 내미는 그때를 지켜보고 싶었으나, 올해에는 이 모습을 못 봅니다. 그래도, 고흥에서 다섯 해를 살며 ‘우리 집 나비가 번데기에서 나온 모습’은 올해에 처음 봅니다.


  갓 번데기에서 나온 나비는 방울진 물이 몸과 번데기에 있습니다. 번데기를 가만히 살펴보니, 번데기에도 물이 고였습니다. 어떤 물일까요?


  애벌레였던 옛 몸을 녹이고서 나비라는 새 몸이 된 셈일까요? 옛 몸을 녹였기에 나비라고 하는 새 몸이 될 수 있던 셈일까요? 엊저녁만 하더라도 번데기에는 검거나 파란 빛이 조금도 감돌지 않았습니다. 오늘 새벽과 아침에 이르러 비로소 검은 빛과 무늬가 찬찬히 드러났고, 이 빛과 무늬는 차츰 짙어지면서 나비라고 하는 아주 새로운 숨결이 태어났습니다.




  그저 기어다닐 수만 있고, 아주 천천히 잎만 갉아먹을 수 있던 몸인 애벌레입니다. 이와 달리 가늘고 긴 주둥이로 꽃가루와 꿀을 먹는 몸인 나비요, 가볍고 커다라면서 고운 무늬를 아로새긴 날개로 훨훨 날 수 있는 나비입니다. 잎만 갉으며 푸른 빛깔인 애벌레라면, 꽃가루와 꿀을 먹고 이슬을 마시면서 아주 가볍게 바람을 타고 어디로든 날아오를 수 있는 나비입니다.


  바람이 불 적마다 빈 번데기와 나비가 흔들립니다. 번데기에서 나온 나비는 좀처럼 번데기에서 발을 떼지 못합니다. 가는 실 한 오라기로 줄기에 매달린 번데기를 붙잡은 나비는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번데기에 남은 물은 천천히 사라집니다. 바람이 말렸을까요. 언뜻선뜻 스며드는 햇볕에 또 녹았을까요. 낮 12시 56분이 되자, 파란띠제비나비는 비로소 바람을 타고 번데기를 톡 놓습니다. 그러나 멀리 날아가지는 못하고 후박나무 굵은 줄기에 착 달라붙습니다. 어른으로 깨어난 나비는 이렇게 후박나무 굵은 줄기에 달라붙은 채 한 시간 즈음 있었고, 한 시간이 흐른 뒤에는 홀가분하게 날아오릅니다.


  한 해에 세 차례 알을 낳아 깨어난다고 하는 파란띠제비나비이고, 팔월 끝자락에 깨어난 파란띠제비나비는 막내 나비입니다. 이제 어디로 나들이를 다닐까요? 다른 마을로 갈까요, 숲으로 찾아갈까요? 가끔 우리 집 마당으로도 찾아올까요? 어미 나비가 알을 낳아 잎을 먹고 번데기로 꿈을 꾸던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듬해 새봄에 파란띠제비나비는 다시 우리 집 후박나무를 찾아와서 새롭게 알을 낳고 애벌레가 깨어나서 번데기를 틀고 또 다른 나비로 다시금 깨어날 수 있을까요?


  여름 막바지 바람이 싱그러이 붑니다. 풀밭에 앉으면 파란띠가 푸른띠처럼 보이기도 하는 제비나비가 새파란 하늘숨을 듬뿍 마시면서 아름다운 한삶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8.8.2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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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8-27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귀한 영상과 사진, 글 감사합니다~!!!!!^^
새삼 신기하고~ 나비와 함께 홀가분하게 날고 싶은 아침이네요~*^^*

숲노래 2015-08-27 09:21   좋아요 0 | URL
이 사진과 영상과 글을 올리려고
거의 한 달을 기다렸어요.
그러나... 더 따지면
지난 다섯 해를 기다렸어요.

다만, 번데기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려면
한 해를 더 기다려야 합니다 ㅠ.ㅜ
 



[시골살이 일기 102] 분홍꽃은 배롱꽃

― 자전거로 나들이를 간다



  자전거로 나들이를 가는 날입니다. 두 아이는 대문 앞부터 마을 고샅을 기운차게 달려서 마을 어귀 샘터 옆을 가로지릅니다. 군내버스 타는 곳까지 달려서 걸상에 손을 찍고 자전거가 선 곳까지 돌아옵니다. “아버지, 분홍꽃은 배롱꽃?” 하고 묻습니다. 그래, 배롱꽃이야. “그러면,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글쎄, 모르겠는데.” “배롱꽃이 피는 나무는 배롱나무야. 배롱나무에 배롱꽃이 피지.”


  자전거를 배롱나무 곁에 세우고 바퀴를 살핍니다. 바람 빠진 데가 있는지 눌러 보고 이모저모 살핍니다. 자, 오늘은 어디로 나들이를 가 볼까? 바다는 엊그제 다녀왔고, 들길을 달려 볼까, 골짜기를 올라 볼까, 또는 새로운 어느 길로 가 볼까?


  여름이 저무는 햇살과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면서 자전거를 달립니다. 여름이 무르익어 천천히 스러지는 하루를 자전거랑 신나게 누립니다. 4348.8.2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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