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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2] 풀밭놀이
― 풀숨을 쉬고 싶어서

 


  우리 시골 집은 아흔일곱 평이다. 도시사람 눈길로 보자면 백 평 가까이 되는 넓은 땅에 깃든 집이지만, 시골사람 눈길로 보자면 그리 안 넓은 집이다. 왜냐하면, 이 집에 깃들고 다른 이웃집을 헤아리니, 웬만한 시골집은 마당과 텃밭 딸린 채 이백 평쯤 되더라. 마당에 나무 여러 그루 있는 집 제법 많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기에 좋도록 넓은 집 참 많다. 너무 마땅한 소리가 될 텐데, 오늘날 눈길로 바라보자면 시골에 아이들 없고 온통 할매와 할배뿐이라지만, 얼마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석 칸짜리 시골집에 예닐곱이나 열쯤 되는 어른 아이 뒤섞인 채 살았다. 집집마다 아이들 넘쳤고, 고샅길은 아이들로 붐볐다. 들과 숲으로 나물 뜯으러 다니기도 했을 테지만, 집안에서도 얼마든지 나물 뜯으면서 삶을 일구었으리라 느낀다.


  이제 어느 시골에 가든 젊은이와 어린이 아주 드물다. 어느 시골을 보든 할매와 할배가 집과 땅을 지킨다. 예전처럼 아이와 어른 뒤섞여 집을 돌보거나 풀을 뜯지 않는다. 시골 할매와 할배는 새마을운동 때부터 농약과 비료를 땅에 쏟아붓는 흙일에 길들었고, 일꾼과 일손 모자란 시골에서 ‘집안 텃밭과 집 둘레 풀밭’에서 돋는 나물을 할매 할배 두 분이서 다 먹기에 벅차다.

  시골 어르신 누구라도 하나같이 마당과 뜰을 시멘트로 바른다. 풀 돋으면 뜯기 힘겨우니 아예 시멘트로 막아 버린다. 그리고, 집안에서조차 풀약을 친다. 어차피 집안에서 돋는 풀을 안 자시니까 집안에서까지 풀약을 친다.


  우리 집은 풀약을 치지 않는다. 우리 집은 집안에서 돋는 풀이 아주 고맙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 둘레에서 돋는 풀만 뜯어도 밥상이 푸짐하다. 그런데, 먹는 풀도 돋지만 굳이 안 먹는 풀도 돋는다. 굳이 안 먹는 풀은 뜯거나 벨 수도 있다. 다만, 아직은 좀 그대로 두고 싶다. 우리가 지내는 이 집에 예전에 살던 분도 풀약을 되게 많이 쳤고, 쓰레기도 아무 데에 마구 버리셨으며, 비닐이건 플라스틱이건 함부로 태우기까지 했다. 이 슬픈 찌꺼기를 삭히자면 온갖 풀이 마음껏 자라야 한다. 온갖 풀이 마음껏 자라서 겨우내 시들어 죽어 흙으로 돌아가기를 여러 해 되풀이해야 비로소 집도 흙도 땅도 살아나리라 느낀다. 우리 집이 시골집답게 살아나면, 이웃집도 우리 마을도 시나브로 살아날 수 있겠지.


  시골이니 풀이 돋아야지. 시골집이니 풀이 넘쳐야지. 풀을 먹는 시골사람이니 풀을 사랑해야지. 아이들과 풀숨을 쉬고 싶어 풀밭 되는 모습 즐긴다. 아이들과 풀내음 맡고 싶어 풀밭 물끄러미 바라본다. 4346.5.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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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31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바라만 보아도 푸르름이 가득한 집과 뜰이,
정말 참 좋습니다..^^

숲노래 2013-06-01 06:14   좋아요 0 | URL
우리 식구는 좋아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은
모두!
싫어하신답니다 ^^;;;;
 

[시골살이 일기 1] 세 해는 살아야
― 내 집이 내 집 되기

 


  우리 식구 인천을 떠나 시골에서 지낸 때는 2010년이다. 나 혼자 시골에서 일하며 세 해 반 살던 적 있으나, 한솥지기를 이루어 시골살이를 한 지 네 해째 된다. 충청북도 음성 멧골자락에서 한 해를 보내고 전라남도 고흥 두멧시골에서 세 해째 보내며 생각한다. 처음 고흥에 조그마한 보금자리 얻어 들어올 무렵, 이웃 할배가 우리 집 감나무 가지치기 하라고 말씀하면서 “세 해만 있으면 감을 먹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 해는 곧 지나간다.”고도 하셨다. 곧 지나간다던 세 해가 참말 지나간다.


  옆지기와 두 아이하고 나란히 살아가는 시골집에서 밤노래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시골집에서 듣는 밤노래는 여러 가지이다. 먼저, 오월 막바지에 마을 무논마다 깃들어 노래하는 개구리가 하나요, 가까운 숲과 멧자락에서 노래하는 멧새가 둘이며, 가끔 살랑살랑 부는 바람 따라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와 뒷밭에 있는 감나무와 뽕나무가 흔들흔들 춤을 추며 내는 잎사귀 팔랑이는 노래가 셋이다. 아이들 자면서 이불 걷어차는 소리를 곁들인다. 때때로 풀벌레 노랫소리 섞인다. 낮에는 낮노래 들으며 즐겁고, 밤에는 밤노래 들으며 기쁘다. 먹어도 배부르고 먹지 않아도 배부르구나 싶다. 사람은 그릇에 담은 밥을 먹을 때에만 배부르지 않다고 느낀다. 마음을 살찌우는 살가운 소리와 빛깔과 내음과 무늬가 가만가만 스며들면서 배부를 수 있구나 싶다.


  그래, 시골살이 일기를 쓴다면, 이렇게 세 해쯤 한 곳에 뿌리를 내려 지내고서야 쓰면 딱 좋겠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흐드러지게 마주하는 우리 집 작은 꽃밭 노랑붓꽃을 바라보고, 사진으로 찍으며, 또 아이들과 언제나 꽃바람 쐬는 보람도 한 해 두 해 새롭게 묵고 쌓으면서 한결 좋다. 처음에는 놀라고, 다음에는 반가우며, 이윽고 즐겁다. 처음 이 시골집에 깃들면서 올려다본 제비집에 참말 제비가 올까 궁금했고, 참으로 제비가 찾아들어 집을 고쳐 새끼 낳아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반갑더니, 이듬해에 다시 찾아오는 모습 보며 고맙고 기쁘다.


  내 집이 내 집으로 되는 이야기를 써 보자. 내 집을 내 집으로 삼는 이야기를 적어 보자. 한솥지기 네 사람 웃고 울며 떠들고 얼크러지는 삶을 갈무리해 보자. 시골이란, 시냇물과 골짜기 있어 시골일 수 있고, 시원스레 꽃골 이루어 시골일 수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꿈을 꾸는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일구는가 하는 이야기를 노래하자. 오월 십구일에 첫 봉오리 터뜨린 우리 집 노랑붓꽃에 맺힌 빗물이 싱그럽다. 4346.5.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살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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