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시골살이 일기'를 쓸 겨를이 거의 없이

신나게 아이들하고 지내는데

이 이야기만큼은 안 쓸 수 없어서

[시골노래] 한 자락을 오마이뉴스 기사로 올렸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77891



바야흐로 오늘 아침부터 날씨가 찬찬히 풀립니다.

참말 고흥에서는 눈 구경이 이제 끝난 듯합니다 ^^;;;


..



시골노래. 한 해에 꼭 한 번 ‘눈맛’ 보는 날



한 해에 한 번 눈이 내릴 동 말 동하는 전남 고흥에서는, 그나마 한 번이나 두 번쯤 눈이 내리더라도 하늘에서 모두 녹기 일쑤이고, 밤새 눈이 내렸으면 아침볕에 모두 녹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포근한 고흥인데, 어제랑 그제에는 한 해에 한 번 보기 어려운 눈발이 밤새 내리고 날이 꽤 추워서 겨울볕에 돋아난 갓이랑 유채는 모두 얼어죽고, 유자나무도 추위에 발발 떱니다. 이러면서 모처럼 마당하고 고샅에도 눈이 제법 쌓입니다.


눈을 쓸 일이 없다시피 한 고장에서 모처럼 아이들하고 눈을 쓸면서 놉니다. 아이들은 온몸이 눈투성이가 되면서 눈밭을 뒹굴고, 온몸이 꽁꽁 얼어붙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가 줍니다. 아침부터 한낮까지 실컷 만지면서 놀던 눈은 두 시 즈음 지나니 어느새 녹아서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밤새 내린 눈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고장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전남 고흥에서 살며 눈발을 모처럼 만나도 곧 녹아서 사라지는 줄 숱하게 겪었기에, 온 마을을 덮은 눈을 자루에 퍼담아서 마당 한쪽으로 옮겼습니다. 아이들은 눈더미에 구멍길을 내면서 놀고, 눈더미에 온몸을 던지면서 놉니다. 아이들도 나도 함께 볼이랑 손발가락이 꽁꽁 얼면서 눈을 쓸고 놀던 하루를 사진으로 남깁니다.


눈맛 실컷 보았으니 배는 안 고프지? 이 예쁜 아이들아.


한 해에 한 번 겨우 구경할까 말까 하는 눈을 구경하면서 빗자루를 들고 대문 앞부터 마을 한 바퀴를 빙 돌면서 쓸고, 마을 어귀까지 씁니다. 이렇게 마을길을 빗자루로 쓰는 동안 면사무소에서 면내방송을 합니다. 눈이 많이 내려서 군내버스가 다니지 못하니 양해해 달라고 하는 방송입니다. 그런데 고흥에 내린 눈은 고작 1센티미터가 될랑 말랑 합니다.


이만 한 눈으로 버스가 못 다닌다고? 다른 고장에서도 이럴까? 다른 고장에서는 눈이 길바닥에 살짝 덮이기만 해도 버스가 안 다니나? 더구나 고흥에서는 한낮이 되면 마을이며 길이며 눈이 몽땅 녹는데?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찾아오면 날씨는 차츰 풀릴 테고, 날씨가 풀리면 이제 고흥에서는 눈을 볼 일이 더욱 드물 테지요.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눈 자국을 거의 볼 수 없는 모습에 무척 아쉬워할 텐데, 눈 자국을 볼 수 없어도 다른 놀이는 많습니다. 부디 서운해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겨울 추위가 곱게 누그러지면서 한동안 포근한 바람으로 살가이 어루만져 주기를 빕니다. 추위가 너무 오래 이어지면 나무도 고단하거든요.


겨울아, 눈아, 반가웠어. 눈이 내려 주어서 비로소 이 겨울에 신나게 눈맛을 보고 눈투성이가 되면서 눈밭에서 구를 수 있었구나. 다음에 또 만나자. 4349.1.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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