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103] ‘우리 집 파란띠제비나비’ 날다

― 알에서 나비까지 스물이레



  지난 7월 29일 낮 세 시 반 무렵, 우리 집 마당에서 ‘파란띠제비나비(청띠제비나비)’를 한 마리 보았습니다. 이날 본 파란띠제비나비는 아주 부산하게 날갯짓을 하며 돌아다녔습니다. 다만, 우리 집 마당에 우람하게 선 후박나무 둘레를 맴돌았어요. 가끔 맥문동꽃에 앉아서 꽃가루를 빨아먹는 듯했지만, 이내 날아올라 후박나무를 빙글빙글 돌았고,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기도 하고, 이 잎 저 잎 바지런히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되풀이했습니다.


  이십 분 남짓 후박나무를 구석구석 돌듯이 날던 파란띠제비나비는 이윽고 우리 집 마당을 떠나 멀리 날아갔습니다.


  전남 고흥에 후박나무가 곳곳에 많기도 하지만, 마을이나 여느 살림집 가운데 후박나무를 우람하게 키우는 집은 매우 드뭅니다. 우리 마을에는 우리 집 한 곳만 후박나무를 키우고, 우리 마을과 맞닿은 이웃 여러 마을에서도 꼭 한 집만 보았습니다.


  8월 10일 아침에 큰아이가 크게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랍니다. 무슨 일이니? “아버지, 여기 봐요. 애벌레가 이렇게 많아!” 풀빛 몸인 애벌레가 거의 스무 마리 즈음 후박잎을 갉아먹습니다. 게다가 이 애벌레는 여기저기 흩어져서 잎을 갉지 않고, 한쪽에 모여서 잎을 갉습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으며 셉니다. 두 아이가 센 애벌레 숫자는 열일곱. 그러나 아이들이 못 본 곳에 있는 애벌레를 더 세니 스무 마리가 넘습니다.


  처음에는 범나비 애벌레인가 싶었으나, 범나비 애벌레하고 생김새가 달라요. 한참 들여다보고 요모조모 알아보니, 이 애벌레는 바로 ‘파란띠제비나비’ 애벌레였고, 번데기를 틀기 앞서 마지막으로 허물벗기를 한 모습입니다.


  수수께끼를 하나 풉니다. 열 며칠 앞서 우리 집 후박나무에 찾아와서 이 잎 저 잎 돌던 ‘어른나비’는 암나비였고, 그 암나비는 후박잎마다 알을 낳느라 몹시 부산했구나 싶습니다. 알을 낳으려고 잎마다 돌아다니니 홀가분하게 내려앉아서 느긋하게 쉴 겨를이 없었을 테지요. 파란띠제비나비는 잎 하나에 알 하나만 낳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바삐 이 잎 저 잎 돌아다녀야 했겠구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토실토실하게 푸른 빛깔인 애벌레는 다섯째 허물벗기를 마친 몸이라고 하는데, 지난 허물벗기를 하는 동안 이 애벌레를 한 번도 못 알아챘습니다. 알이 있는지조차 못 알아챘어요.


  8월 11일 아침, 애벌레 숫자가 조금 줍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 갔나 싶지만, 그동안 범나비 애벌레를 지켜보며 배우기로는, 이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갔다기보다 새한테 잡아먹혔으리라 느낍니다.


  8월 12일 아침, 번데기를 하나 봅니다. 여러 애벌레 가운데 한 마리는 번데기로 몸을 바꾸었습니다. 애벌레 숫자는 어제보다 더 줍니다. 하루 사이에 더 잡아먹혔지 싶습니다. 그래도, 아직 살아남은 애벌레는 씩씩하게, 그러나 어제나 그제보다 훨씬 굼뜨고 느린 몸짓으로 잎을 갉습니다. 이 아이들도 곧 번데기가 되려고 할 테지요.


  8월 13일 아침, 번데기 하나가 새로 생깁니다. 그런데, 8월 14일 아침에 보니 그제에 새로 생긴 번데기가 텅 빕니다. 텅 빈 번데기에는 개미가 우글거립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번데기는 왜 텅 비고 이 자리에 개미만 우글거릴까요? 설마 새가 번데기까지 쪼아서 잡아먹었을까요? 8월 12일에 처음 생긴 번데기는 멀쩡합니다. 이 번데기를 보면서 부디 나비로 깨어날 때까지 걱정없이 느긋하면서 고요하게 잠을 자렴 하고 속삭입니다. 날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들여다보면서 번데기한테 기운을 북돋아 주는 말을 들려줍니다.


  8월 24일 아침, 번데기 모습이 꽤 바뀌면서 통통해졌다고 느낍니다. 8월 25일 아침, 번데기에 살짝 검은 빛이 돕니다. ‘그날’이 거의 다다랐다고 깨닫습니다.


  이제 8월 26일 아침 7시 33분, 번데기에 검은 빛이 아주 많이 감돕니다. 같은 날 아침 09시 36분, 번데기에 검은 무늬가 짙게 새겨집니다. 아이들을 부릅니다. 아이들더러 틈틈이 마당에서 번데기를 들여다보라고 얘기합니다. “이제 나비 나와?” “응, 아주 천천히 나와.” “몇 시간 걸려?” “여섯 시간쯤 걸린다고 하는데, 나비마다 다를 테니, 지켜보면 돼.”


  아침 11시 00분, 눈처럼 보이는 까만 점 둘이 번데기 위쪽에 나타납니다. 번데기가 터질 듯 말 듯한 모습입니다. 이러고 나서 밥을 짓느라 한 시간 사이를 두고 낮 12시 03분에 마당에 나왔더니, 아니 웬걸, 파란띠제비나비가 어느새 번데기를 다 벗고 밖으로 나왔어요.


  마지막 한 시간 사이에 깨어났습니다. 번데기에서 고개를 처음 내미는 그때를 지켜보고 싶었으나, 올해에는 이 모습을 못 봅니다. 그래도, 고흥에서 다섯 해를 살며 ‘우리 집 나비가 번데기에서 나온 모습’은 올해에 처음 봅니다.


  갓 번데기에서 나온 나비는 방울진 물이 몸과 번데기에 있습니다. 번데기를 가만히 살펴보니, 번데기에도 물이 고였습니다. 어떤 물일까요?


  애벌레였던 옛 몸을 녹이고서 나비라는 새 몸이 된 셈일까요? 옛 몸을 녹였기에 나비라고 하는 새 몸이 될 수 있던 셈일까요? 엊저녁만 하더라도 번데기에는 검거나 파란 빛이 조금도 감돌지 않았습니다. 오늘 새벽과 아침에 이르러 비로소 검은 빛과 무늬가 찬찬히 드러났고, 이 빛과 무늬는 차츰 짙어지면서 나비라고 하는 아주 새로운 숨결이 태어났습니다.




  그저 기어다닐 수만 있고, 아주 천천히 잎만 갉아먹을 수 있던 몸인 애벌레입니다. 이와 달리 가늘고 긴 주둥이로 꽃가루와 꿀을 먹는 몸인 나비요, 가볍고 커다라면서 고운 무늬를 아로새긴 날개로 훨훨 날 수 있는 나비입니다. 잎만 갉으며 푸른 빛깔인 애벌레라면, 꽃가루와 꿀을 먹고 이슬을 마시면서 아주 가볍게 바람을 타고 어디로든 날아오를 수 있는 나비입니다.


  바람이 불 적마다 빈 번데기와 나비가 흔들립니다. 번데기에서 나온 나비는 좀처럼 번데기에서 발을 떼지 못합니다. 가는 실 한 오라기로 줄기에 매달린 번데기를 붙잡은 나비는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번데기에 남은 물은 천천히 사라집니다. 바람이 말렸을까요. 언뜻선뜻 스며드는 햇볕에 또 녹았을까요. 낮 12시 56분이 되자, 파란띠제비나비는 비로소 바람을 타고 번데기를 톡 놓습니다. 그러나 멀리 날아가지는 못하고 후박나무 굵은 줄기에 착 달라붙습니다. 어른으로 깨어난 나비는 이렇게 후박나무 굵은 줄기에 달라붙은 채 한 시간 즈음 있었고, 한 시간이 흐른 뒤에는 홀가분하게 날아오릅니다.


  한 해에 세 차례 알을 낳아 깨어난다고 하는 파란띠제비나비이고, 팔월 끝자락에 깨어난 파란띠제비나비는 막내 나비입니다. 이제 어디로 나들이를 다닐까요? 다른 마을로 갈까요, 숲으로 찾아갈까요? 가끔 우리 집 마당으로도 찾아올까요? 어미 나비가 알을 낳아 잎을 먹고 번데기로 꿈을 꾸던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듬해 새봄에 파란띠제비나비는 다시 우리 집 후박나무를 찾아와서 새롭게 알을 낳고 애벌레가 깨어나서 번데기를 틀고 또 다른 나비로 다시금 깨어날 수 있을까요?


  여름 막바지 바람이 싱그러이 붑니다. 풀밭에 앉으면 파란띠가 푸른띠처럼 보이기도 하는 제비나비가 새파란 하늘숨을 듬뿍 마시면서 아름다운 한삶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8.8.2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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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8-27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귀한 영상과 사진, 글 감사합니다~!!!!!^^
새삼 신기하고~ 나비와 함께 홀가분하게 날고 싶은 아침이네요~*^^*

숲노래 2015-08-27 09:21   좋아요 0 | URL
이 사진과 영상과 글을 올리려고
거의 한 달을 기다렸어요.
그러나... 더 따지면
지난 다섯 해를 기다렸어요.

다만, 번데기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려면
한 해를 더 기다려야 합니다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