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며 따스한 봄바다가 재미있어
[시골노래] 밭일을 쉬고 봄바다 마실
호미 한 자루로 밭일을 신나게 하다가 등허리를 펴려고 호미를 내려놓습니다. 아이들은 밭일 하는 아버지 둘레에서 꽃삽으로 흙을 파면서 놉니다. 햇볕이 뜨거운 한낮에도 나는 그대로 밭일을 하지만, 아이들은 “아, 덥다!” 하면서 나무 그늘 밑이나 평상에 가서 앉습니다. 이러다가 아버지만 뒤꼍 밭자락에 혼자 두고 집으로 들어가지요.
이렇게 부산한 봄철을 밭일로 보내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때때로 골짜기를 가고, 때때로 마을 어귀 빨래터에서 물이끼를 걷고, 때때로 들마실을 하는데, 이제 바야흐로 바닷마실을 할 때가 되었겠구나 하고요.
밭일을 하루 미룬다기보다 하루쯤 밭일을 한 시간만 가볍게 합니다. 이러고 나서 손을 털고 자전거를 살핍니다. 가고 오는 데에 삼십 킬로미터 길이니, 체인하고 바퀴를 더 꼼꼼히 살펴요. 물을 챙기고 도시락을 챙깁니다. 이렇게 다 챙기고 나서 “오늘은 올해 들어 새로운 데에 가 볼까?” 하면서 자전거를 달리자고 말합니다. “어디 가는데?” “어디를 갈까?” “놀이터?” “아니.” “골짜기?” “아니.” “우체국?” “아니.” “그럼 어디야?” “가면서 한번 생각해 봐.”
마을 앞에서 논둑길로 접어든 뒤에 천천히 달립니다. 면소재지 한복판을 가로지릅니다. “어, 우체국이 아니네?” 면소재지 바깥으로 나서면서 왼쪽 오르막으로 접어들 즈음, “아, 바다에 가는구나! 바다 가고 싶었어. 겨울 동안 바다 생각 했어!” 하는 소리가 뒤에서 터져나옵니다.
두 아이는 해마다 무럭무럭 자라니, 집에서 바닷가까지 달리는 십오 킬로미터 즈음 되는 길은 해마다 조금씩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큰아이는 몸이 크는 만큼 힘살도 붙어서, 큰아이가 샛자전거에 앉아 발판을 구르는 힘도 커져요. 그러니 두 아이 몸무게가 느는 만큼 힘이 들어도 큰아이가 새롭게 받쳐 주기에 오르막도 고갯길도 한결 씩씩하게 오릅니다.
나무가 길가에 선 길이 오른쪽으로 나오고, 나무가 없이 바다로 더 빨리 가는 길이 왼쪽으로 나옵니다.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오른쪽으로 갑니다. 오른쪽은 돌아가는 길이요, 내리막하고 오르막이 이어지느라 자전거로 가기에는 더 힘들어요. 그래도 이 ‘나무 길’은 바람이 시원하고 꽃내음도 좋아요.
봄바다에는 으레 손님이 없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날은 천막을 치고 유행노래를 크게 튼 손님이 있네요. 우리는 봄바다에 물결소리를 듣고 바람내음을 마시러 오지만, 물결하고 바람보다는 고기랑 술이랑 유행노래를 실컷 즐기고픈 손님들이 꼭 있구나 싶어요.
이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모래밭에 구덩이를 내고 산을 쌓으면서 놉니다. 봄바다가 얼마나 차가운가 하고 맨발로 들어가서 느껴 봅니다. 참말로 봄바다는 아직 차가워서 맨발로 들어가서 조금 걷다가 “발 시렵네” 하면서 물러나옵니다.
큰아이는 몸을 쏘옥 집어넣을 만한 구덩이를 맨손으로 팝니다. 작은아이는 팔을 쑥 밀어넣을 구멍길을 팝니다. 바닷물이 일렁이는 데까지 달렸다가 모래를 한 줌 쥐어서 공처럼 뭉친 뒤에 던집니다. 넓은 모래밭에서 서로 공을 던지면서 놀다가 도시락을 먹고, 발을 씻습니다.
두 시간 즈음 놀았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볼까?” “벌써? 더 놀고 싶은데.” “그래, 더 놀고 싶지? 너희는 시간을 아직 몰라서 더 놀고 싶을는지 몰라. 그렇지만 조금 더 있으면 해가 기울어. 마당이나 집에서 두 시간 놀 적하고 바닷가에서 두 시간 놀 적에는 힘이 다르게 들지. 아마 집에 돌아가면 너희는 더 놀 기운이 없이 곯아떨어질걸?”
두 아이는 긴 겨울을 끝내고 봄을 맞이해서 바다로 왔지만 두 시간밖에 못 놀고 돌아간다니 서운합니다. “얘들아,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얼마든지 바다에 또 오면 돼. 다음에 또 오자.”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듭니다. 큰아이도 슬슬 졸려 합니다. 그러나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서 끝까지 함께 달려야 합니다. 두 아이는 ‘자가용 아닌 자전거로 마실을 다닐 적’에는 ‘집으로 돌아갈 기운’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대목을 조금은 깨달았을까요? 조용하며 따스한 봄바다에 곧 다시 나들이를 가자고 생각하며 씩씩하게 발판을 구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