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닿는 책내음
손에 닿는 책내음을 맡는다. 갓 나온 책은 빳빳한 종이결에다가 잉크가 채 마르지 않았네 하는 느낌을 받는다. 꽤 예전에 나온 책은 그동안 내려앉은 먼지에다가 종이결이 찬찬히 삭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헌책은 책먼지가 많다며 내키지 않다 말하는 이들이 많으나, 새책에도 책먼지가 많다. 배본소에서 책을 나르는 일꾼은 입가리개와 실장갑과 앞치마를 갖춘 매무새로 새책을 만지는데, 한두 시간 일하다가 숨을 돌리려 바깥으로 나오면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된다. 배본소는 늘 ‘새책이 내뿜는 뽀얀 책먼지’로 하얗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먼지가 나오는 일은 없다. 그렇지만, 숲에서 나무를 베어 종이를 얻는 사람들은 책을 만들면서 먼지를 함께 내놓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먼지가 있을밖에 없을까.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먼지가 늘 있을밖에 없는가.
돌이켜보면 흙으로 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은 먼지를 일으키지 않았다. 흙집에는 흙이 있을 뿐이었다. 문명을 세우고 문화를 누리는 사회에서 먼지가 나오고 쓰레기가 불거진다. 온갖 기계와 시설이 들어서는 곳에서 먼지와 쓰레기가 태어난다. 흙에서는 먼지도 쓰레기도 태어나지 않는다. 흙에서는 흙이 태어나 흙이 더 정갈하며 기름지고 고소하게 거듭난다.
손에 닿는 책내음을 마신다. 부디 이 책에는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꿈이 깃들어, 이 책내음을 마시는 아이도 어른도 서로 아름다이 아끼고 즐겁게 놀며 사랑스레 어우러질 수 있는 빛을 얻기를 바란다.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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