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와 글쓰기, 몽실 언니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 깃든 책을 읽고 나면 저절로 연필을 손에 쥔다. 이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를 가슴속으로 삭혀서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는다. 어느 책은 책을 덮자마자 글이 터져서 곧바로 느낌글을 쓴다. 어느 책은 책을 덮고 몇 해가 흐르고 흐른 뒤에 비로소 글이 열려서 찬찬히 느낌글을 쓴다. 열 차례 넘게 되읽고 나서야 글이 트일 때가 있다. 꼭 한 번을 읽을 뿐이지만 여러 가지 느낌글을 쓰고 싶은 책이 있다.


  오늘 《몽실 언니》 느낌글을 쓰면서 온갖 생각이 뒤엉킨다. 1984년에 처음 나온 이 동화책을 나는 1994년에 처음 알아보았고 2014년에 비로소 느낌글을 쓴다. 스무 해만에 쓴 느낌글이다. 스무 해 동안 이 책 하나를 놓고 이 생각과 저 생각이 갈마들었다. 1984년에 이 동화책을 읽지 못한 아쉬움을 오래도록 떠올렸고, 1994년에 이 책을 손에 쥐다가 내려놓고 군대에 끌려가던 일이 떠올랐으며, 2014년에 두 아이와 시골에서 살아가며 도란도란 피우는 꽃넋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린다.


  처음 《몽실 언니》를 만나던 때에는 갓 스무 살 언저리였나. 열 살 때에 만나지 못한 《몽실 언니》인데, 느낌글을 쓴 마흔 살에 돌아보니, 동화책에 나오는 ‘몽실이’ 나이가 여러모로 애틋하다. 어린 몽실이는 우리 집 큰아이와 비슷한 나이요, 아줌마가 되어 동생 난남이한테 다녀오는 마지막 대목은 오늘 나와 비슷한 나이이다. 동화책에 나온 몽실이는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 아이를 낳고 살림을 꾸리며 살아갈까. 동화책을 손에 쥔 나는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 오늘과 같이 살아올까.


  작은아이는 오늘 내 무릎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곯아떨어지기에 자는 채로 쉬를 누인 다음 자리에 살며시 눕혔다. 큰아이는 내가 내민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스스로 쉬를 누고 물을 마신 뒤 자리에 누워서 내가 이불을 덮어 주기를 기다린다. 혼자서 이불을 덮을 수 있지만 내 손길을 기다린다. 그러더니 “아버지, 노래 불러 주세요.” 하면서 웃는다. 얘, 잘 녀석이 무슨 노래람, 하면서도 큰아이 곁에 누워서 한참 노래를 부른다. 한참 노래를 부르는 사이 큰아이는 어느새 곯아떨어진다. 이불깃을 여미고는 조용히 일어난다. 우리 아이들도 몽실이처럼 앞으로 씩씩하게 저희 삶길을 걸어가리라. 4347.4.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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