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까닭이라면



  책을 읽는 까닭이 따로 있을까. 살아가는 까닭을 떠올린다면, 책을 읽는 까닭도 헤아릴 만하리라 느낀다. 그러면, 나는 왜 살아가는가. 날마다 즐겁게 노래하고 싶으니 산다. 언제나 새롭게 사랑하고 싶기에 산다. 새로 맞이할 아침에 웃고 싶어서 산다. 하루하루 빛으로 그득하게 채우고 싶기에 산다.

  책을 읽는 까닭은 무엇인가. 마음을 건드리는 책이나 영화를 만나면, 내 마음에 새로운 생각과 사랑이 싹틀 수 있으리라 느낀다. 다시 말하자면, 내 마음에 새로운 생각과 사랑이 싹트도록 북돋우고 싶으니 책이나 영화를 만나려고 한다. 삶을 새롭게 밝히고, 생각을 새롭게 열며, 사랑을 새롭게 가꾸는 빛을 누리려고 책이나 영화를 가까이한다. 빛이 될 책을 만나고 싶다. 삶을 빛으로 일구고 싶다.

  책을 읽는다. 책빛을 읽는다. 책을 삭힌다. 삶빛이 되도록 책 하나를 껴안는다. 4347.7.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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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이 보는 책과 영화



  일본영화 가운데 〈반딧불의 별(ほたるの星 : Fireflies: River Of Light)〉이 있다. 2003년에 나온 작품인데 한국 극장에 걸리지 않았고, 한국에서 디브이디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이 뭉클하게 움직인 사람이 꽤 많았는지, 일본말로 된 영화에 한국말 자막을 붙이는 이웃이 있고, 유투브에는 어느 중국 이웃이 중국말과 영어로 자막을 붙여서 올리기도 한다. 어쩌면, 중국에서는 디브이디가 나왔을까? 정식판이든 해적판이든 중국에서는 디브이디가 나왔을는지 모른다.


  아마 〈반딧불의 별〉이라는 영화를 본 한국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1만 사람쯤 이 영화를 보거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또는 1천 사람쯤 된다고 할 수 있을까? 일본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보았을까?


  아이들과 볼 만한 영화인지 살피려고 아이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에 혼자서 먼저 영화를 찬찬히 본다. 아이들하고 여러 차례 볼 만한 영화라고 느끼며 나 또한 가슴이 짠하다. 그런데 이제 시골에서조차 반딧불이가 되든 개똥벌레가 되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논도랑을 죄다 시멘트로 바꾸어 버린다. 흙과 돌과 모래로 바닥을 이루던 깊은 두멧자락 골짜기까지 4대강사업 핑계를 대면서 모조리 시멘트바닥으로 바꾸기까지 한다.


  나는 전남 고흥 시골에서 마을 이웃들한테 말한다. “저는 개똥벌레를 살리고 싶어 마을 샘터를 치우면서 다슬기를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미리 건져서 건사한 뒤 샘터를 다 치운 뒤 제자리에 놓습니다.” 하고. “우리 식구는 제비를 돌보고 싶어서 농약을 한 방울조차 쓸 마음이 없습니다.” 하고. “나는 개구리 노랫소리와 풀벌레 노랫소리를 아름답게 듣고 싶기 때문에 살충제이든 모기약이든 한 방울도 안 쓸 생각이지만, 농약은 아주 마땅히 쓸 일이 없습니다.” 하고.


  농약을 치고 도랑을 시멘트로 바꾸며 시골 고샅까지 아스팔트로 덮으니, 풀벌레가 죽는다. 풀벌레가 죽으니 개구리가 죽는다. 개구리가 죽으니 뱀이 죽는다. 뱀이 죽으니 또 무엇이 죽을까? 모기와 파리와 애벌레가 몽땅 죽으니 잠자리도 제비도 참새도 박새도 직박구리도 죽는다. 그리고, 우리한테 익숙한 이웃(여러 벌레와 새와 개구리)이 죽으면서 논밭에 ‘낯선 벌레’가 꼬이면서 어떤 농약에도 안 듣는 ‘무서운 벌레’까지 생긴다. 사람하고 함께 살던 벌레와 새는 사람들이 농약을 치고 시멘트를 써대면서 모조리 목숨을 잃는다. 사람하고 함께 안 살던 벌레는 사람들이 농약을 치고 시멘트를 써대면서 갑자기 부쩍 늘어난다.


  오늘날 한국사람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보는가? 오늘날 한국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는가? 오늘날 한국사람은 어느 곳에서 살면서 어느 목숨을 이웃이나 동무로 여기는가? 4347.7.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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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나 아름답게



  아름다운 지식과 함께, 아름다운 웃음·노래·이야기가 고루 어우러질 때에 비로소 천천히 새로운 하루가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천천히 새로운 하루가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면서, 어느새 삶을 이루지 싶습니다.


  아름다운 지식은 있어야 합니다. 책이나 도서관이나 학교에 갇힌 지식이 아니라, 삶을 밝히는 아름다운 지식은 있어야 합니다. 종교나 예배당이나 성경에 갇힌 지식이 아니라, 사랑을 빛내는 아름다운 지식은 있어야 합니다. 권력이나 전쟁이나 정치에 갇힌 지식이 아니라, 꿈을 드리우는 아름다운 지식은 있어야 합니다.


  책 하나 아름답게 태어납니다. 날마다 새로운 눈빛으로 즐겁게 삶을 가꾼 사람들이 엮은 책 하나 아름답게 태어납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아름다운 책을 알아봅니다. 나중에는 열 사람이 알아보고, 차근차근 백 사람 천 사람이 알아봅니다.


  아름답게 태어난 밝은 책을 알아본 사람들은 스스로 이녁 삶을 밝게 가꾸면서 즐겁게 아름다운 길을 걸어갑니다. 아름답게 걷는 길에는 누구나 이웃입니다. 아름답게 걷는 길에는 서로서로 사랑입니다. 아름답게 걷는 길에는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은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사람과 풀과 나무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사람과 별과 온누리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책 하나 아름답게 읽는 눈길로 환하게 웃으면 지구별이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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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살아온 나이



  쉰 해를 살아온 책이 있고 오백 해를 살아온 책이 있다. 열다섯 해를 살아온 책이 있고 다섯 해를 살아온 책이 있다. 나는 어느 책을 골라서 읽는가? 나는 어느 책에 눈길을 두면서 가만히 바라보는가?


  오백 해를 묵은 책이 있대서 그 책을 바라볼 일은 없다. 오천 해를 묵은 책이 있대서 그 책을 쳐다볼 일은 없다. 나는 내가 바라볼 책을 본다. 내가 바라볼 책은 내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다. 내가 쳐다볼 책은 내 마음을 건드려 내가 스스로 생각을 열어젖히도록 이끄는 책이다.


  책이 살아온 나이는 얼마나 대단할까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오백 해나 천 해쯤 묵은 책이 있다면 여러모로 값어치가 있으리라. 그런데, 나이값으로 헤아리는 값어치 말고, 무슨 값어치를 헤아리면 즐거울까? 이를테면 《월간조선》이나 《한겨레21》 같은 잡지도 앞으로 오백 해쯤 묵으면 대단한 값어치가 있는 책으로 여겨도 될까? 모든 시집과 소설책을 앞으로 천 해쯤 묵혀 대단한 값어치가 있다고 내세워도 즐거울까?


  어느 책은 오백 해가 아닌 다섯 해가 흘러도 빛이 난다. 어느 책은 다섯 해가 아닌 닷새가 흘러도 빛이 난다. 어느 책은 열다섯 해가 흐르거나 천오백 해가 흐르더라도 빛이 안 난다.


  책은 ‘나무를 베어 얻은 종이’라는 껍데기보다, ‘종이를 묶어서 빚은 이야기꾸러미’라는 속살로 따진다고 느낀다. 이야기를 읽으려고 책을 장만한다. 이야기를 나누려고 책방을 열고 도서관을 꾸린다. 이야기를 물려주려고 책을 읽어 아이들한테 조곤조곤 노래를 부른다.


  읽을 책을 읽으면 된다. 사라질 책은 없다. 종이가 바스라지는 책은 흙으로 돌아간다. 흙으로 돌아간 책은 나무 한 그루가 새롭게 자라도록 돕는 밑거름이 된다. 나무 한 그루가 새롭게 자랐으면 고맙게 베어서 새로운 책을 즐겁게 엮는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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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라페스타 알라딘 책방



  곁님 어버이와 동생들은 경기도 일산에 산다. 우리 집 아이들은 일산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이모부 삼촌을 보고 싶어 경기도 일산으로 온다. 두 아이 이를 고칠 적에도 경기도 일산으로 온다. 이를 고친 뒤 아이들이 놀고 싶다는 바람을 들어 주려고 이래저래 놀이터를 찾다가 라페스타라는 데에 온다. 이쪽에 뽕뽕이 놀이기구가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 낮에도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에서 살짝 책방을 들른다. 라페스타라는 데에 책방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알라딘 책방이 몇 해 앞서 문을 열었다. 책을 한두 권 구경해서 집어들더라도, 나로서는 가뭄에 단비 같은 쉼터이다. 아이들 오줌도 누이고 그림책 한 권과 만화책 두 권을 고른다.


  책방이란 어떤 곳일까. 책방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 책방은 마을에서 어떤 몫을 할까. 아이들을 헤아려 책방을 꾸미거나 보듬는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


  예부터 시골에서든 서울(도시)에서든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는 데가 ‘사람내음이 고소하게 풍기는 아름다운 삶터’라 했다. 그런데, 오늘날 시골에서나 서울에서나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기 어렵다. 전철이나 버스나 기차에서 아이들이 하하 호호 깔깔 낄낄 웃고 뛰놀려 하면, 어른들은 이맛살이나 눈살부터 찌푸린다. 공공기관이나 학교 같은 데에서 아이들이 달리거나 뛰려 하면, 어른들은 큰목소리부터 낸다.


  아이들은 어떡해야 하나. 아이들은 동네 골목길마저 없다. 아이들은 아파트 놀이터조차 너무 좁다. 마음껏 달릴 곳도, 신나게 연을 날릴 곳도, 구슬을 치거나 금긋기놀이를 할 만한 곳도 없다. 한참 놀다가 낯이나 손발을 씻을 냇가도 없고, 한참 놀다가 다리를 뻗으며 폭 주저앉을 풀밭이나 나무그늘도 없다. 웬만한 길바닥은 어른들이 술을 마시다 얹혀서 게운 자국이 또렷하고, 어른들이 뱉은 침과 어른들이 버린 쓰레기가 그득할 뿐 아니라, 자동차가 끊임없이 달린다.


  복닥복닥 웃음소리와 노래가 흐르는 책방이나 도서관이 생길 수 있기를 빈다. 아이도 놀고 어른도 노래하는 ‘삶마당’답게 나무가 있고 냇물이 흐르는 동네와 마을이 퍼질 수 있기를 빈다. 4347.7.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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