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읽고 싶은 책



  우리 집 큰아이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읽는 책을 따라서 읽고 싶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누나가 읽는 책을 따라서 읽고 싶다. 우리 집 큰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책을 물려받는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누나한테서 책을 물려받는다.


  어버이인 사람은 어떤 책을 손에 쥐어 마음을 살찌울 때에 아름다울까. 어버이로 지내는 사람은 아이한테 어떤 책을 물려주면서 사랑을 빛내고 싶은가.


  오늘 내가 마시는 바람을 아이들도 곁에서 똑같이 마신다. 오늘 내가 들이켜는 냇물을 아이들도 곁에서 똑같이 들이켠다. 오늘 내가 바라보는 하늘과 숲을 아이들도 곁에서 똑같이 바라본다.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책을 고르지 않는다. 나부터 스스로 눈빛을 키우면서 삶빛을 밝히고 싶기에 책을 고른다. 생각을 가꾸려고 책을 고른다. 꿈을 일구려고 책을 고른다. 이야기를 엮으려고 책을 고른다. 4347.6.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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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찾아서 읽는 두 가지 길



  책을 찾아서 읽는 길은 두 갈래이다. 하나는 나한테 빛이 될 책을 스스로 살피면서 찾아내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남들이 나더러 읽으라 하는 책을 책방에 주문하는 길이다.


  나한테 빛이 될 책은 무엇일까? 알 수도 있지만 알 수도 없다. 책방에 가서 책시렁을 돌아볼 때까지 알 수 없기 마련이다. 책방에 가서 책시렁을 돌아보면서 비로소 책이 하나둘 눈에 뜨인다. 이런 책은 이렇게 나를 살찌우겠네, 저런 책은 저렇게 나를 북돋우겠네, 하고 느끼면서 책을 하나둘 고른다.


  남들이 나더러 읽으라 하는 책은 무엇일까? 누군가 짜거나 엮은 ‘추천도서 목록’이라든지 ‘필독서 목록’이라든지 ‘베스트셀러 목록’이라든지 ‘스테디셀러 목록’이다. 이러한 책은 책방으로 마실을 가서 살 수도 있으나, 이제는 굳이 책방마실을 하지 않아도 이러한 책은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척척 주문해서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책을 찾아서 읽는 길은 두 갈래이다. 내 삶을 밝힐 책을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천천히 읽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남들이 말하는 책을 바지런히 훑으면서 줄거리를 익히고 ‘주제를 알아내려’고 하는 길이다.


  내 삶을 밝히는 책을 스스로 찾아서 읽으면, 아주 마땅히 내 삶을 스스로 가꿀 수 있다. 남들이 말하는 책을 바지런히 살피면, 아주 마땅히 자격증도 따고 시험점수도 잘 받을 수 있다. 어느 쪽으로든 누구나 저마다 이녁 삶에 맞추어 가는 길이다.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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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로 읽는 책, ‘이야기’로 누리는 책



  누구나 책을 읽는다.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면서 정보를 얻고, 누군가는 책을 읽는 동안 이야기를 누린다. 정보를 다룬 책이기에 정보를 얻지 않는다. 이야기를 쓴 책이라 하더라도 어떤 이는 이야기가 아닌 정보를 느끼면서 얻으려 한다. 정보를 다룬 책이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이야기를 깨달으면서 이야기꽃을 누린다.


  두 사람이 도란도란 속삭인다. 한 사람은 온갖 정보를 늘어놓는다. 한 사람은 이야기를 솔솔 풀어놓는다. 정보는 자꾸 새로운 정보를 부른다. 정보를 얻는 사람은 자꾸 새로운 정보를 찾는다. 이야기는 자꾸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누리는 사람은 늘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는다.


  정보는 지식과 맞닿는다. 그래서 정보와 지식은 자격증이나 급수나 계급이나 차례를 가른다. 정보와 지식은 더 많이 갖추어야 더 힘이 있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흐른 지식이나 정보는 어느새 낡은 것이 된다.


  이야기는 슬기와 이어진다. 그래서 이야기와 슬기에는 자격증도 급수도 계급도 차례도 없다. 이야기와 슬기는 더 갖추거나 덜 갖추는 틀이 없다. 하루가 흐르건 이틀이 흐르건 이야기는 늘 이야기요 슬기는 언제나 슬기이다. 이야기와 슬기는 하루가 가면 하루만큼 살이 붙고 이틀이 흐르면 이틀만큼 새롭게 빛난다.


  누구나 책을 읽는다. 그러면,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는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으면서 삶을 가꾸거나 밝히는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으면서 삶을 가꾸거나 밝힐 때에 사랑이나 꿈이 자랄 수 있는가.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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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책



  언제부터였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내가 처음 책에 눈을 뜬 날부터 내가 손에 쥐고 싶은 책은 언제나 ‘긴 책’이다. 나는 ‘짧은 책’을 바라지 않는다. 아직 책에 눈을 뜨지 못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책다운 책’에는 제대로 마음을 두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 접어들 무렵 비로소 ‘책다운 책’을 바라볼 수 있었고, 이즈음부터 내 손에는 ‘긴 책’만 깃들도록 하자고 다짐했다.


  어떤 책이 ‘긴 책’일까. 스스로 길게 읽을 수 있는 책이 ‘긴 책’이다. 오늘 읽고 모레 읽을 수 있을 때에 ‘긴 책’이다. 내가 읽은 책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고, 이 아이들은 또 이녁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이 ‘긴 책’이다.


  ‘긴 책’ 가운데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한테 읽힌 책도 있지만, ‘긴 책’ 가운데에는 고작 백 권 팔렸을까 말까 싶도록 적은 사람한테 읽힌 책도 있다.


  ‘긴 책’은 ‘살아남는 책’이 아니다. ‘긴 책’은 ‘삶을 살리는 숨결’이 깃든 책이다. ‘긴 책’은 돈이 되는 책이 아니다. ‘긴 책’은 사랑을 밝히고 꿈을 노래하는 책이다.


  다시 말하자면, 긴 삶을 바라기에 긴 책을 읽는다. 긴 노래를 부르기에 긴 책을 읽는다. 긴 사랑을 가꾸기에 긴 책을 읽는다. 긴 넋을 건사하고자 긴 책을 읽는다.


  가람이 길게 흐른다. 숲이 길게 뻗는다. 별이 길게 드리운다. 기나긴 온누리에 기나긴 숨결이 감돈다.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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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를 떠올린다고 읊는 비평



  ‘아무개’ 시를 읽으면서 ‘기형도’를 떠올린다고 읊는 비평을 읽다가 생각한다. 이 비평을 읽을 ‘시인’은 기쁠까. ‘아무개’ 시인더러 ‘기형도’ 시인 내음이 흐른다고 읊는 비평은 아무개 시인한테 어떤 ‘말’이 될까.


  ‘아무개’가 쓴 시를 읽었으면 ‘아무개’를 이야기하고, ‘아무개’가 품은 넋과 꿈과 빛과 사랑을 이야기해야 옳지 싶다. 아니, 아무개가 쓴 시를 읽었으니 아무개가 노래한 삶을 길어올려서 펼쳐야 맞겠지.


  그러나, 모르리라.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된장찌개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 돼지고기를 먹으면서 소고기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 그러면, 거꾸로 ‘기형도’를 읽으면 ‘아무개’가 떠오른다고 할 만할까. 또한, 거꾸로 이처럼 읊는 말은 죽은 시인한테 ‘산 아무개’ 시인이 어떤 빛으로 다가서는 셈일까.


  어린이문학을 일군 이원수 님 문학을 읽으면 이원수 냄새가 흐른다고 느낀다. 권정생 님 문학을 읽으면 권정생 냄새가 흐른다고 느낀다. 임길택 님 문학을 읽으면 임길택 냄새가 흐른다고 느낀다. 너무 마땅하다. 문학비평을 하는 이들이 시를 더 찬찬히 마음으로 읽은 뒤, 찬찬히 마음으로 느낌글을 쓸 수 있기를 빈다. 4347.6.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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