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읽는 동시집



  오늘 바다로 마실을 가면서 책을 두 권 챙길까 하다가 한 권만 챙긴다. 동시집을 한 권 챙기면서 틀림없이 너끈히 다 읽으리라 여겼으나, 동시집을 다 읽고 나서 더 읽을 책까지 챙기지는 않는다. 아이들과 바다로 마실을 갈 적에 책을 넉넉히 챙기면 나로서는 책을 느긋하게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바다로 가면서 책을 챙기면 책을 바라보느라 바다를 덜 바라본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끼리 놀아야 할 때가 있다. 이동안 나는 혼자 조용히 동시집을 읽는다. 동시집을 반쯤 읽고 나서 아이들한테 간다. 아이들은 모래밭에서 모래를 뒤엎느라 바쁘다. 나는 아이들을 살며시 바라보다가 바닷물 찰랑이는 데로 걸어간다. 맨발로 바닷물을 첨벙첨벙 밟는다. 아, 바닷물은 이 느낌이어서 좋지 즐겁지 싱그럽지 하고 생각한다. 혼자서 바닷물을 밟고 누비면서 재미있다. 조금 뒤 아이들이 다가온다. 바닷물을 밟으면서 노는 아버지를 알아챈다. 이제 아이들은 모래놀이보다 바닷물놀이가 훨씬 재미있다. 한여름에도 차가운 바닷물에 온몸을 담그면서 아이들은 바닷물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속으로 생각한다. 너희들 참말 물을 좋아하네. 너희들 참으로 바다가 반갑구나.


  아이들은 왜 이렇게 물을 좋아하면서 즐길까 궁금하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적부터 물을 늘 마주하기 때문일까. 우리 몸은 거의 모두 물로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우리가 먹는 밥이 거의 모두 물로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바닷물에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모래밭으로 나오자고 하면서 동시집을 마저 읽는다. 아이들은 모래밭에서 살짝 있다가 다시 바닷물에 들어간다. 얼른 동시집을 덮는다. 나도 바닷물로 들어가서 아이들과 섞인다. 세 시간 가까이 바닷물을 누비면서 논다.


  바다에 있는 동안 바다만 바라보고 바다만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숲에 가면 숲만 누리고 숲만 생각한다. 집에서는? 집만 바라보고 집만 생각하겠지. 마당에서 제비집을 볼 적에도, 제비집만 바라보면서 제비집만 생각한다.


  바다에서 동시집을 읽으면서 바닷물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아마, 동시집보다 바닷물 소리 때문에 책을 더 살뜰히 읽었으리라 느낀다. 동시집이 아무리 아름다웠다 하더라도 바닷물 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덮었으리라 느낀다. 4347.6.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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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마실



  책방마실을 할 적에 아이들은 책방에 깃든 기운을 누린다. 책방을 이루는 책꽂이뿐 아니라, 책방을 지키는 책방지기 마음씨를 함께 누린다. 책방이라는 곳은 책을 살피는 곳이요, 마음에 드는 책을 장만하는 곳이다. 책을 살피자면 누구나 책을 손에 쥐어 읽기 마련이니, 도서관 못지않게 조용한 곳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도서관이나 책방을 찾는 아이들은 으레 뛰거나 달린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아직 많이 어리면 목소리를 낮추기 어렵지만, 아이들 누구나 ‘도서관이나 책방’은 다른 곳과 달리 차분하면서 조용하게 놀거나 지내는 곳이라고 알아챈다.


  도서관에서라면 아이들이 뛰거나 목소리를 높이면 으레 싫어한다. 도서관이라는 곳이 워낙 이렇다. 이와 달리 책방에서는 아이들이 뛰거나 목소리를 높일 적에 모두 싫어하지는 않는다. 새책방에서는 꽤 싫어한다 할 만하지만, 헌책방에서는 그렇게까지 싫어하지는 않는다. 어느 헌책방 책손은 ‘책방에서 아이들 목소리를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오늘 나는 아이들과 책방마실을 한다. 지난날 나는 혼자 책방마실을 했다. 예전에 혼자 책방마실을 하던 나날을 돌이켜본다. 나는 새책방에서나 헌책방에서나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뛰놀건 말건 ‘내 책읽기’를 거스르거나 가로막거나 헤살을 놓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만나면, 이 책을 읽는 데에 온마음을 쏟기 때문에 다른 소리를 못 듣거나 안 듣는다. 나는 내 책에 마음을 기울이지, 다른 움직임이나 소리에 마음을 기울일 까닭이 없다.


  헌책방을 다닐 적에 아이들을 만나면 괜히 기쁘다. 이 아이들은 속깊은 어버이를 만나서 어릴 적부터 재미나고 아름다운 책터를 만날 수 있겠다고 느껴 기쁘다. 이 아이들은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그리 대수롭지 않다. 이 아이들은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방에서 감도는 기운’을 받아먹을 수 있으면 즐겁다. 책방지기가 가꾸는 책방 이야기를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받아안으면 된다.


  책은 틀림없이 책이기에, 종이로 된 책을 손에 쥐어 펼쳐야 이야기를 얻는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가득 그러모은 책시렁을 살피면서 새롭게 이야기를 얻는다. 책시렁을 살피는 사람들 둘레로 흐르는 바람을 함께 마시면서 새삼스럽게 이야기를 얻는다.


  인터넷으로만 책을 살 적하고 책방마실을 하며 책을 살 적은 다르다.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워 돌아다닐 적하고 아이들과 군내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돌아다닐 적하고 다르다. 어른들도 이웃을 만나며 물건을 장만할 적과 인터넷으로 물건을 장만할 적이 다르다. 어른들도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릴 적하고 자가용을 몰 적에 받아들이는 기운과 바람과 숨결이 모두 다르다. 4347.6.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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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읽어야 하는 책은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 마음이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가를 읽으면서 책을 만난다고 느낍니다. 우리 마음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읽는 동안 책을 알아차린다고 느낍니다. 여느 때에 늘 숲을 마음에 담은 사람은 어느 곳에 가든 숲을 다루는 책을 한눈에 알아봐요. 언제나 시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도서관에서든 학교에서든 시를 노래하는 책을 시나브로 알아내지요.

  구름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도시를 벗어나 너른 들녘을 마주하더라도 구름을 알아보지 못해요. 들꽃을 마음에 심지 않으면 골목에서나 숲에서나 들꽃을 알아채지 못할 뿐 아니라 꽃집 옆에 서더라도 꽃내음을 못 맡습니다.

  마음 가는 곳을 읽습니다. 마음으로 읽기에 줄거리 아닌 글쓴이 넋과 얼을 책에서 헤아립니다. 마음으로 읽으니까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아닌 책을, 말 그대로 책을 읽어요. 인기도서나 비인기도서를 읽을 까닭이 없어요. 인문책이나 처세책을 읽을 까닭도 없어요. 그저 책을 읽어요. 오롯이 책을 만나요. 마음이 사랑스레 피어나도록 책을 읽습니다. 4347.6.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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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읽는 책


  책은 늘 새롭게 읽는다. 그러니까, 무슨 말인가 하면, 책읽기란 새롭게 읽기이기에, 새롭게 읽는다고 느낄 때에 책읽기요,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누구라도 새롭게 읽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책을 손에 쥐고 펼쳤으나 ‘새롭다’고 느끼지 못하면, 책읽기가 아니다. 책을 손에 들어 한 장 두 장 넘기는 동안 ‘새롭다’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책읽기하고 자꾸 멀어진다.

  하루에 아홉 시간이나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아홉 차례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분은 아홉 시간에 걸쳐 아홉 차례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가르치면서 웃는다고 한다.

  나는 글을 어떻게 쓰는가. 늘 새롭게 쓴다. 나는 책을 어떻게 읽는가. 늘 새롭게 읽는다. 아이들은 만화영화 〈이웃집 토토로〉를 어떻게 보는가. 늘 새롭게 본다. 아이들은 영화 〈말괄량이 삐삐〉를 어떻게 보는가. 늘 새롭게 본다.

  새롭게 보는 동안 하루를 새로 연다. 새롭게 보지 못할 적에는 날마다 늘 똑같이 되풀이한다. 새롭게 보는 동안 사랑을 새로 가꾼다. 새롭게 보지 못할 적에는 날마다 늘 똑같이 되풀이하기에 툭탁질이 그치지 않는다.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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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하며 읽는 책



  되풀이하며 읽는 책이 있다. 문득 생각해 본다. 되풀이하며 읽는 책은 재미있는가? 재미있을 수 있다. 뜻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되풀이하며 먹는 밥을 떠올려 본다. 밥을 되풀이하면서 먹는가? 어제 먹은 밥을 또 먹는가? 어제 마신 술을 또 마시나? 어제 들이켠 바람을 또 들이켜나? 어제 똥을 누었는데 또 똥을 누나? 그래서, 되풀이하는 모든 것이 지겹나?


  교사는 학생한테 늘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알려준다. 교과서가 꾸준히 바뀌기는 한다지만, 교사가 학생한테 들려주어야 하는 교과서 지식은 늘 그대로이다. 교과서 지식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면, 교사는 날마다 되풀이하는 이러한 일이 지겹나? 시골이라면 한 학년이나 한 학급한테 한 번만 말할 테지만, 도시라면 교사는 여러 학급과 학년을 돌면서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똑같은 말로 알려주어야 한다. 교사라고 하는 ‘직업’은 지겨운가?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놀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되풀이하듯이 읽는 책은 마음에 어떻게 스며드는가. 되풀이하듯이 하는 일은 삶에 어떻게 젖어드는가. 되풀이하듯이 하는 놀이는 사랑을 어떻게 키우는가. 4347.6.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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